사랑

 

 

 

그 무엇도 깊어지면 다 신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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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빨리 가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천천히 가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이정표도 없고

어디에서 떠나야 한다는 출발점도 없다

 

길은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선 아이처럼, 해질 무렵

마을 어귀에 다다른 지친 발걸음이

그렇게 돌아오고 있다

 

끊어졌던 뼈가 이어지기도 하고

추억 속으로 사라졌던

기억을 이어주기도 하며 그렇게 천천히

지나온 길들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길들은 엎드려 풀을 뜯고 있다

 

길이 길임을 알려주는 경계도 없다

억새와 유채는 길을 따라 피어 있고

대문도 없는 빈집, 구멍 송송 뚫린

돌담만이 바람을 흘리며 이곳이 집이라며 속삭이고

 

고봉밥으로 솟은 묘비

없는 무덤들 사이, 길은 잠시 머뭇거리다

긴 그림자를 끌고서 다시 길을 걷는다

 

종착역이 없는 기차는 쓸쓸하지만 온통

길은 땀냄새나는

삶의 간이역만을 통과하며 말한다

 

길에 어찌 종착역이 있느냐고

마침표를 경배하는 자는

이 길에 오지 말라고

 

 

 

--- 요즘 전국 어느 지역에 가 보아도 '올레길'이라는 말을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올레길을 걸으면서도 '올레'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1년에 유네스코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장 유명한 섬 '제주'의 언어(제주어)를 소멸 위기의 언어로 분류한 적이 있는데요...

 

  이 '올레'란 말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섬 '제주'의 언어(방언)입니다. 보통 큰 길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과 그 길들을 이 섬에서는  '올레'라고 했습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제주 올레길은 제주의 해안 지역을 따라 해안길, 산길, 들길, 각종 오름, 그리고 마을의 골목길 들을 마치 등뼈처럼 연결하면서 이 섬을 도는 뭍사람들의 여행 코스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만... 원래 이 말의 본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제주도의 마을 곳곳의 좁은 골목길들과 여러 큰 길들이 만나는 곳곳의 풍경, 그리고 그 길 위의 모든 만남들을 의미한다고 보아야겠지요.

 

  억새와 유채가 바람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길가 곳곳에 끊임없이 집을 나섰다가 해질 무렵 돌아오곤 하는 길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 곳곳에 땀냄새나는 사람들의 노동과 그 노동을 넉넉히 받아주는 땅들이 있습니다. 이 길은 절대로 직선의 고속도로가 아니랍니다. 꾸불꾸불 등뼈처럼 이어지고, 이어진 줄도 모르게 연결된 미세한 인드라망의 길이랍니다.

 

  올 겨울,이 길 위에서 저는 생의 운명과 길 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었습니다. 어떤 단 한 사람을 떠올리면서요~.

  삶이란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순간순간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삶의 매 순간 순간은 그 어떤 종착역을 향해 가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발 한 발 디디고 디디는 발자국들은 항상 느낌표를 찍으며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에도... 살아가며 만나는 그 어떤 사랑의 순간들에도 마침표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오늘도 저 '제주 올레' 길이 멀리 있는 제 귀에 속삭입니다.

 

  "마침표를 경배하는 사람은 결코 이 길에 오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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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열쇠
                                                          


모두가 잠들어 가는,
모처럼 기분 좋게 달렸지만

피곤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새벽

이영훈의 옛사랑을 흥얼거리며
돌아오는 길

문 앞에서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른다

식은 땀을 흘리며 자꾸만
익숙한 몸의 구석구석을 더듬어도
너무나 익숙하다고 믿었던

네가 없다 결코 내곁을
떠나지 못할거라 믿었던

네가 없다 가만히 웅크린 채
평온한 등불을 켜고 나를 기다리는
저 안의 세계처럼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뒤돌아보지 않고 저 어두운 생의 손잡이를
열고 닫아줄 거라고만 생각했던

네가, 네 작은 몸이 없다
텅 빈 벽처럼 문 앞에 서서

공포에 떠는 이
깊은 밤,

 

 

 

- 끊임없이 바람 부는 먼 섬에서 대학이란 곳에 발 디디려고 허름한 자취방을 전전하던 오래 전 그날들.

  김광석과 안치환의 노래를 즐겨 틀어주던 눅눅한 지하의 퀘퀘한 주점, 그 곳에서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거나하게 마시고 아무도 없는 빈 방으로 터벅터벅 돌아오곤 했습니다. 

  사람의 따스한 온기가 이 누추한 몸을 기다리고 있진 않았지만, 그저 이 지구별의 지상 위에... 외롭고 높고 쓸쓸한 몸을 고단하게라도 누일 방 한 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눈물겹게 고맙던 시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예기치 않은 운명이나 일상이 우리네 삶을 끊임없이 방문하듯

그 반복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심야의 귀갓길... 휘파람을 불며 이문세의 노래들을 부르며 기분 좋게 방문 앞에 섰던 2월의 어느 눈 내리는 밤이었습니다.

  어느새 부턴가 모든 것들이 간편하게 숫자를 누르면 띡~~ 하고 열리는 번호키 문으로 거의 바뀌고 말았지만, 그 시절은 거의 모든 집이 쇠를 깎아 만든 열쇠를 품 안에 품고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여튼 저는 방문 앞에서 그 작은 열쇠 하나가 없어 차운 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아... 조금 과장스럽게 말한다면 한참을 넋놓고 알 수 없는 공포에 몸과 마음을 떨어야 했습니다. 내 가까이에 늘 있다고 아니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지극히 평범한 존재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낭패감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때 열쇠집에 전화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한참을 오들오들 떨던 아픈 기억은 무슨 꿈을 꾸듯이 가끔... 불시에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 기억이 어느새 그리움이 되어 버린 시절입니다. 그래서 시의 언어로 반드시 새겨두고 오래오래 그 문 앞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을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늘 익숙하기만 했던 것들이 불현듯 사라졌을 때의 그 아픔과 따스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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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사람들은

나를 탄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타는 게 아니라

나를 타고

돌고 싶은 거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원을 그리며

 

돌고 돌고 돌아

돌고 돌고 돌아

 

자기(自己)의 바깥으로

한 번쯤 튕겨져 나가

 

저 하늘의 어깨 위로

슬며시 오르기 위해

 

저 별의 눈빛에

빠져들기 위해

 

저 우주의 사랑으로

떠돌기 위해

 

 

 

 

--- 해가 지는 저물 무렵을 지나 어둠이 서서히 내려 앉는 시간에 어슬렁 어슬렁 산책을 나섰습니다. 머그컵에 탄 커피 한 잔을 조금씩 마시며 서서히 몸을 지우는 길들에 서성였습니다. 그러다 한 아파트 안의 작은 놀이터에 이르렀구요.

 

  놀이터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내아이 두엇과 그 아이의 어머니일 듯한 여인 둘이 네모난 스마트폰에 시선을 붙박고 간간이 노는 아이들을 쳐다보곤 하는 풍경이 조용히 펼쳐지고 있었지요. 구석 한 켠에 그네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조용히 그네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머그컵의 식은 커피는 잠시 나무의자에 내려놓고... 저는 좀 전까지 어린 소녀가 힘차게 탔을 것만 같은 그네의 작은 몸에 제 몸을 포개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뒤로 최대한 뒷걸음쳐서 두 발을 허공으로 띄웠습니다. 메트로놈처럼 그네는 왔다 갔다 갔다 왔다 하며 제 몸을 띄웠다 가라앉혔다 반복했습니다. 달이 뜨고 있는 밤이구요...

 

  누군가가 제 등 뒤로 다가와 저와 그네를 따스한 손으로 밀어주고 있다고 순간 느꼈습니다.

아~! 그리곤 저 역시 사랑하는 누군가의 등 뒤로 고요히 다가가 제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힘껏 그 사람과 그네를 밀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과 서로 그네를 타고 그네를 밀어주는 그런 고요한 밤이라면

  그 그네에 탄 나와 당신은 분명 저 별의 눈빛에 닿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어쩌면 우주의 사랑으로 떠돈다 해도 슬프지 않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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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

 

   

긴 손가락의 여자

가늘고 긴 손으로

내 얼굴을

차갑게 부르튼 내 손을

아픈 마음을 매만지는

 

너는

고운 눈으로 별을 보는 여자

별빛같은 눈으로 나를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닥에 핀 풀꽃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우는

 

너는

물음표의 귀를 아는 여자

세상 모든 신음을

제 마음의 통증으로 듣는

 

너는

입이 아닌 마음으로 말하는 여자

아프다 라고 말하지 않아도

아픈 여자

슬프다 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물의 강으로 조용히 흘러오는 여자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고

아무도 없을 쓸쓸한 세상에

나를 너를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닥에 핀 흔들리는 풀꽃들을

껴안아준 여자

껴안아줄 여자

해는 지고 아직

보이지 않는 별 아래

상처의 등을 밝히고 부는 바람 속을 걷는

 

너는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다고 믿게 하는 여자

비틀거리다 쓰러져 가는 몸을 다시 일으켜세워

마지막 걸음을 한 발 두 발

자꾸만 디디게 하는

 

너는

슬픔의 안에서 슬픔 밖에는 볼 수 없던 내게

슬픔의 밖에서 슬픔의 살을 들여다 보게 하는

 

너는

‘운다’라고 쓰게 하는 여자

아니

그냥 ‘운다’

그 자체인

 

너는

우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우는 눈에 나를 담아내어

우는 눈 속에 우는

나의 눈으로 나를 비추는

그런

 

 

 

 

--- 누구나  위로받기를 원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위로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로움에 처절히 진저리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깊은 밤이면 저는 가끔씩 생각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위해 진정 눈물을 흘리며 아파해 본 적이 있는지를? 그저 가슴 따스한 누군가에게 위로만 받고 싶어했던 것은 아닌지?

 

  '베아트리체'는 그런 사람입니다. 긴 손가락으로 다독다독 슬픔의 어깨를 토닥이는 여자... 입이 아닌 마음으로 말하기에 아픈 여자... 물음표의 귀로 세상의 신음을 제 마음의 통증소리로 듣는 여자... 슬픔의 맑은 눈으로 바닥에 주저 앉은 존재들을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여자... 우는 게 아니라 그냥 '운다' 그 자체인 여자... 깊은 밤이면 마음 속 상처의 등을 켜고 나를 너를 우리를 비추어 슬픔의 밖에서 슬픔의 안을 들여다 보게 하는 여자... 

  

  그렇게 별빛같은 눈으로 지그시 바라다 보며 

  괜찮다 괜찮다며 마음의 고개를 끄덕이면서 

  긴 손가락으로 그늘진 당신의 등을 감싸고 다독이는

그런 사람이 당신에겐 있었던지요? 아님 지금 있으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너무나 사랑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만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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