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랑노래  -별꽃

 

 

 

별꽃이 땅에 피어있네

여린 줄기에 돋아난

별들을 구부려 들여다보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바람에 흔들리며 빛나고 있네

처연하게

등을 아니 온 몸을

엄마의 자궁 속 아기처럼 구부려야

볼 수 있네, 이 환한 햇살 아래

땅 위의 가장 낮은 바닥을 향해 수그려

자신을 감싸안아본 자에게만

드러나는 상처의 초롱들

그러니

꺾어선 안 되네

그냥 바라보기만 해서도 안되네

 

둥근 초의 마음의 심지에

불을 켜고 외롭게

가장 쓸쓸하게

안아야하리

 

함부로 영원을 말해선 안 되네

쉽사리 절망을 말해선 안 되네

혀의 말로 사랑을 너무나 분명하게 말해서도 안 되네

 

별꽃을 다가가 안겠다는 건

바닥에 엎드려 우는 슬픔을

말없이 꼭 안아주겠다는 것

 

땅 위의 별꽃을 안겠다는 건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별을

상처난 가슴에 품겠다는 것

 

그 별의 눈길로

나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것

너를 끝끝내 껴안겠다는 것

 

 

 

--- 꽃피는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매섭게 부는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주 내내 따스하게 내려오던 햇살 탓인지 꽃나무에 꽃들은 이미 활짝 피고 또 피어 있었습니다. 노란 개나리와 산수유, 분홍 진달래, 단아하고 우아한 하얀 목련꽃, 가려운 곳에 피어난 듯 순식간에 버즘처럼 번졌던 벚꽃들...

 

  잠을 잘못 잤는지 아침부터 갑자기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아픈 목을 서럽게 들고 산책을 나왔습니다. 눈의 수위가 자꾸만 바닥을 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였을까요... 이런 세상에나~ 화려한 꽃나무의 꽃들만을 바라보다 보니 핀 줄도 몰랐더군요. 땅바닥 곳곳에 여리고 작은 풀꽃들이 지천에 피어있었습니다. 노란 꽃다지, 제비꽃,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로 이 꽃!

 

  밥풀처럼 하얗고 눈꽃처럼 작은 별꽃들이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제게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으이구~~ 이 인간아! 이제서야 보느냐? 고 침묵의 말소리로 저를 질책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애기똥풀꽃의 이름도 모르고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써왔다고 자책했던 안도현 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픈 목이 때로는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을까요? 무릎을 굽혀 자궁 속의 태아처럼 수그려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밤에 고개를 들어 한참을 들여다보는 별처럼... 그렇게 보고 또 보았습니다.

 

  바닥의 바닥까지 몸도 마음도 가까이 다가가야 볼 수 있는 별들이 지금 대낮의 땅에 무수히 피어 있습니다. 화려하고 빛나는 것들이 저 높은 곳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절대 볼 수 없는 별들이 꽃처럼 이 바닥을 수놓고 있습니다.

 

  바닥이 되어 그 꽃의 작은 눈동자를 들여다 보고 오십시오. 그리곤 늦은 밤에 초 하나를 켜고 빈 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떠올려 보십시오.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오늘 깊은 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저 하늘에 별로 뜰 겁니다. 그러면 굳이 인간의 말은 필요없을 지도 모릅니다. 바닥의 별꽃으로 흔들리며 그 별을 올려다 보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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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하나 남은 것 없을 때

온다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을 때

온다

밤이 깊어도 잠이 깊어도

꿈 하나 이 가슴 깃들지 못할 때

 

온다는 말도 없이

어둠을 쓸어 내리는

별의 눈빛으로

끊임없이 잠 깨우는

부는 바람으로

너는 온다

 

바람부는 길 위

타고 남은 촛불에 불을 당기고

너를 새긴 시를 읽는다

나는 고요하게 너를 부른다

 

제아무리 바람 불어도

약한 눈물로 타고 있는

지상의 그리움은 꺼지지 않고

 

개밥바라기별 하나

나를

너를 새긴 메타포를

더디게 오고 있는 너를

눈 밝히며 내려다 본다

 

 

 

--- 요즘 밤마다 저는 서재의 전등을 끄고, 초에 불을 켭니다.

  고요하게 일렁이는 둥근 촛불을 바라보면 제 마음도 어찌나 조용하고 차분해지는지... 그 적막과 침묵의 시간들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 좋습니다.

 

  어제는 촛불을 켜놓고 서재 여기저기에 꽂혀 있는 시집을 들춰 읽었습니다. 릴케, 딜런 토마스, 기욤 아폴리네르, 옥타비오 빠스, 최승자, 로버트 브라우닝...

여러 시집들의 시들을 들추어 읽으며 저는 이 지극하고 아름다운 시들을 저 먼 개밥바라기별처럼 나를 들여다보고 있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연하고 막막한 삶에서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리워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핍과 부재는 늘 끊임없이 그리움을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그 절박한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기다림의 삶입니다.

  그 기다림이 바로 생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로 그럴 때

  제 아무리 바람 불어도

  지상의 그리움은 꺼질래야 꺼질 수가 없는 법이지요.

 

  오늘밤

  집 안의 전등이란 전등은 모두 꺼뜨리고 초를 켜보세요.

  그리고 고요하게 낮은 목소리든 침묵의 목소리든

  그리워 하는 사람을 새긴 시를 읽어 보십시오.

 

  별의 눈빛을 타고 더디고 더디지만

  분명 너는 당신에게로 오고 또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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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다

 

 

 

너의 눈동자는 떨림

너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빛날 때

빛나는 눈동자에 어둠 속 치떠는

나를 별처럼 새길 때

나는 음악처럼 떨린다

 

너의 긴 손가락들이 가만히

내 머리칼과 얼굴을 매만질 때

너의 따스한 손이 내 부르튼 손에 겹칠 때

네 촉촉한 입술이 내 갈라진 입술을 살포시 덮칠 때

네 긴 손가락들이 내 몸 가장자리 구석구석의 건반을 투명하게 건들 때

나는 악기처럼 떨린다

 

아주 가까이 있다거나

아득히 멀다는 건

나와 너 사이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

 

가까이서 혹은 아득히 먼 별에서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고

물든 잎들이 한없이 흔들려 떨어질 때

내 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의 가지 가지 벌겋게 물든

잎들을 부드러운 혀로 소리없이 건드릴 때

나는 악기처럼 음악처럼 떨린다

 

네가 있어도

네가 없어도

내 안에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부는 바람에 그리움의 온 몸을 떨어

나는 노래처럼 떨린다

너의 노래로 오래도록 떨린다

 

 

 

 

--- 사랑은 결코 이성적인 영역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온통 감성과 광기의 영역이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입니다.

 

  어제는 편한 운동복을 입고 동네 뒷산을 느릿느릿 산책했습니다. 굳이 어딘가를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해야한다는 생각도 없었기에 어슬렁 어슬렁 산책자가 되어 흙길을 밟고 또 밟았습니다.

 

  바쁜 한 주, 아니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몰랐습니다. 이토록 지척에 만발했었는지... 꽃나무에 꽃들이 다 벙글었더군요. 목련, 개나리, 벚꽃...

꽃이 이렇게 핀 줄도 모르고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문학이 어쩌니 메타포가 어쩌니... 이런 강의를 하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보고프다' 라는 말없는 편지를 자꾸만 쓰고 또 썼던 겁니다.

 

  아~ 이런 사람이란 어찌나 죄스럽고 불쌍한 중생인지요?!

 

  그래도 작년 가을에 썼던 이 시를 꺼내 보며 위로했습니다. 잎 진 나무 아래에 앉아 불어 오는 바람과 지는 잎들 속에서 악기처럼 떨렸던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 순간에 끄적였던 시들... 그 떨림을 감지했던 미세한 촉수를 다시 벼르고 별러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속도가 자꾸만 나를 너를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 때면 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 떨림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허덕이더라도 낮의 시간에 근처 가까운 들길을 한 번 걸어보십시오.

 

  피어 있는 꽃, 그 꽃나무 아래에 서서 꽃처럼 아름다운 누군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순간이 무척 떨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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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먼 곳의 너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듣는다

눈 감고 너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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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부풀어 오른 달은 점점 쭈그러지다 다시 부풀고

이 별의 가슴 한복판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별에서 저 달로 촘촘히 징검다리를 놓겠다는

미친 새들은 아름다웠지만

부풀어 오른 바퀴는 슬픔으로 굴러도

시계추처럼 선로를 일탈할 수 없다

 

환한 세상, 빤한 세상

다투어 고속열차 고속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새 역사를 만들기에 바쁜, 분명한

시작과 끝만 보는, 보이는 빛나는 도시

이별과 만남과 이별만

손 흔들고, 으스러지게 끌어안는 포옹만 있는

사막, 선인장은 소금기 수액을 뿜어 내며 무엇을 기다리는가

 

누구도 가지 않아 빈혈 앓는 역

빠르게 지나치는 속도를 눈에 담을 수는 없어

느린 풀을 곱씹는 순한 소처럼 엎드려

나 홀로 간이역을 지킨다

다 해진 신발을 벗고

따스한 햇살 속에 몸을 풀고 있는 기차 등을 핥는다

 

 

 

--- 일상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게 내 삶을 관통할 때면... 저는 조용한 곳을 홀로 찾아가 한참을 머물다 오곤 합니다. 지금은 더 이상 기적 소리도... 고단한 생의 짐을 지고 이고 오가는 사람들의 흔적도 오랜 전설처럼 사라져 버린 간이역은 바로 그 머묾에 가장 걸맞게 고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녹이 잔뜩 슨 철로의 늙은 몸을 지는 햇살이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풍경 속에서 이제는 가고 오지 않는 한 세월을 추억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한 때 사랑하는 사람과 청량리를 출발한 무궁화호에서 종착역도 아닌 어느 간이역에 무작정 내려 철로의 간격만큼 떨어져서 철로의 동선을 따라 느리게 걸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

정처없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간이역의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다시는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려 본 적이 있으신지요?

 

  세상의 속도가 빈혈을 앓을 정도로 당신을 어지럽게 한다면...

  누군가의 부재가 당신의 가슴을 저미도록 도려내고 있다면...

  느린 풀을 곱씹는 소처럼 간이역의 철로에 엎드려 보십시오. 더 이상 달리지 않는 기차의 등에 저무는 햇살이 서서히 내려 앉을 때 그 느린 소의 혀처럼 추억을 곱씹고 또 추억해 보십시오. 

 

  어쩌면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가 당신에게로 다가설 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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