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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한 자나 '절망하고 있는' 자에게 흔히

삶의 밑'바닥'을 얘기한다.

'바닥'이... 저 삶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이 절망의 정의라면...
그것은 정말 '절망'일까?

'바닥'이 있다는 건 다시
그 '바닥'을 디디고 솟아 오를 곳이 있다는 것... 아!

아름다운 바닥! 밑바닥
'절망'은 결국 '희망'이 다른 이름
황지우가 얘기했지. '나는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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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게 '아프다'라고 말했다. 나는 놀랐다.
'아프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당신

 
나는 여지껏 아파본 적이 없다. 나는 그게 아프다.
저 지는 꽃이 당신의 아픔을 씻어주리라는 걸
아프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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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까닭

 

 

내가 너를 마음에 품게 된 건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여린 풀꽃들을 쓰다듬는

너의 손 때문이다

키를 낮추고 등을 구부리며

바닥 가까이 다가가

이름모를 풀꽃들의 흔들림을 매만지던

너의 긴 손가락 때문이다

 

내가 너를 마음에 새기게 된 건

독백처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쓸쓸한 내 말들을

조용히 고요하게 들어주는

너의 귀 때문이다

지는 꽃의 신음과

저물 무렵 두물머리

흘러가는 강 위로 부서지는 햇살의 아픔을

오롯이 들어주는 네 귀 때문이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게 된 건

너의 눈 때문이다

순한 소처럼 맑은 눈동자로

병든 눈물을 걸러내는

만신창이 내 몸을 바라보며

외롭고 쓸쓸하게 그러나

오롯이 새기어

 

거울 안에서 거울 밖의

나를 들여다 보게 하는

너의 그 눈 때문이다

 

 

---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말해지고 떠도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더 멀리 있는 것만 같고 더 고독의 병을 앓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언어로 그려지고 표현할 수 없는 게 사랑일지라도... 나도 너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마음에 품게 되고 마음에 오롯이 새기게 되며 끝끝내 자신의 가슴 깊이 그 누군가의 영혼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 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목적지도 없고 종착역도 없는 이 길 위를 하루 하루 걷고 또 걸을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우리네 삶이고, 영원히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문장이 바로 사랑이니까요.

  왜 너를 사랑하느냐구? 묻지 않고 그냥 사랑하는 게 사랑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그래도 사랑이 시작되고 깊어지는 길 위에서 한 번쯤 너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직나직이 고백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  여린 풀꽃들을 쓰다듬던 그 긴 손가락들을 만지고 싶습니다. 별 볼 일 없는 내 심심한 말들을 내 상처의 말들에 고요하게 귀기울이던 그 커다란 귀에 이젠 속삭이고 싶습니다. 맑고 고운 그 검은 눈동자로 병든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 보던 당신의 그 눈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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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花樣年華)

 

 

그 꽃이 어디서 피기 시작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 돌이 어디서 솟아올라 섬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 샘이 어디서 은은히 고여와 맑은 눈물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저 바람은 멀고 먼 과거로부터 불어왔지만
오래된 미래를 거슬러
여기로 불어오기도 했을 터

눈 멀지 않고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들을 동경했던 시절이 분명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브레이크도 없이
질주하는 시간은 무섭도록 일직선으로 이 생을 통과할 것이다

그것이 어디인지 누구나 말할 순 있어도
분명한 종점은 아닐 것이다

사라진다는 것
시간의 입술이 끝내 입맞춤하는 것들이
지는 꽃
침묵하는 돌
피가 흐르지 않는 몸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나 뒤늦게 알겠지만

어쩌면 적멸이 아닌
소멸을 향해
소멸이 결코 영원으로 이어지지 않는

그것이 바로
이 생이 가는 길이라해도

어딘가를 그리고
어딘가로 가려하고
누군가와 만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와 이별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와 지그시 만나
한 마음 지순히 내어주는

매순간 그런
찰나를 단 한 번의 순간으로 산다면
살아낼 수 있다면

빛나는 햇살 한 줌
부드러운 재처럼 내려와
시간이 입맞춤한
침묵의 생을
따스하게 피돌게 할 것이다

그곳 그 자리
온통 그리움의 땅으로
꽃들 피고 지리라
섬들 물 위로 솟아나리라
샘들 고이지 않고 흐르고 흐르리라

 

 

 

---화양연화(花樣年華) 라는 말이 있지요. 당연히 중국말이구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만옥과 양조위가 출연했던 영화제목으로 더 유명했지요.
  '화양(花樣)'은 번역하자면 '꽃처럼, 꽃과 같은'
  '연화(年華)'는 '시간, 세월, 시간들' 이란 말이니까~

제가 좀 살을 붙여서 표현해 본다면
'피는 꽃처럼 아름답고 빛나는 생의 시간들' 이라 말하고 싶네요.

저무는 시간들과 새로이 다가오는 새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이 연초의 시간들은
슬픔과 기쁨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늘 주곤 합니다.

늘 우리는 어떤 경계의 지점에서
뒤를 돌아다보곤 합니다.
뒤돌아 보면 늘 흐르고 지나간 것들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기억하는 자들의 마음으로
연어떼처럼 다시 되돌아 오기 마련이구요.

그리곤 아련하게 생각합니다.
내 삶에서 가장 빛났던 생의 순간들에 대해서~

가끔 어린 벗들이 제게 묻곤 합니다.
어느 시절이 샘에게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느냐고?

비록 제대로 답변을 하진 못했지만
그 때마다 제 깊은 추억의 저장고에서
자꾸만 시간을 거슬러 아름다운 꽃이 피었던
순간 순간들을 기억해 내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생의 흐름으로 놓고 봤을 때
이제 막 피는 꽃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어린 벗들에게도
이제 지는 꽃의 아픔과 저무는 해의 슬픔을 먹먹하게 느끼는 저같은 사람에게도
이제 스스로의 육체가 곧 저물어 가고 말 것이라고 느끼는 제 아버님같은 할아버지들에게도

시간은 브레이크가 없는 차와 같잖아요.
우리는 모두가 먼저와 다소 나중에 태어났다는 사실 말고는
그 차에 동승한 승객들이구요.

그 시간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줄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화양연화' 는
지금 막 꽃 피는 청춘의 시간이 아닐지도
이제 막 지는 꽃의 아픔으로 쓸쓸한 시간이 아닐지도

마음밭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아등바등 살아가는 살아내는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생각하고 누군가를 아파하고
어딘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가슴에 새기는
바로 지금 여기의 이 순간~!
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새해 초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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