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은 재미있는 책들.


사소한 것들의 과학 (마트 미오도닉, MID)


글쓰기는 내용 뿐 아니라 형식도 새로운 게 좋다는 걸 새삼 알게 해준 책. 과학책이지만 개인의 경험을 소설처럼 구성해 들려주고, 사적 공적 사진과 그림을 동원하며 필요하다면 영화 각본 형식도 불사한다. 물론 이런 '형식 파괴'를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 조사와 공부, 충분한 사색이 필요했겠지. 과학 '문외한'인 나로서는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게 즐겁고, 과학책이 대세구나!(응?)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독서였다. 원제는 "STUFF MATTERS" 인데 (흥미를 끌려고 했겠지만) 한국어판 제목이 좀 아쉽다. (부제는 더 아쉽다...)



작가의 공간 (에릭 메이젤, 심프라이프)


작가의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을 연결한 서술이 재미있다. 이를테면 작업실 풍경이 어떠해야 하는지 +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같은 것. 글쓰는 일을 존중하라는 말도 좋다. 나는 집중력이 부족한데 -_-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알고 보니 (사 놓고 읽지 않은) "일상 예술화 전략"의 작가던데,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어른 노릇 아이 노릇 (고미 타로, 미래인)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의 에세이. 아이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 어른들이 그렇듯이 획일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지 마라, 감동을 강요하지 마라 등 (좋은 뜻에서) 고미 타로가 할 법한 말들 모아 놓았다. 그런데 '제도 교육'조차 잘 되지 않는 나라의 독자로서 읽기엔 일본이니까 그런 말을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교육을 불신하는 태도는 그렇다 치고 본인이 아기 그림책을 그렇게 재미있게 많이 그려 놓고(!!)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길 건 또 뭔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왠지 생각이 좀 복잡해지는 책이다.



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이봄)


마스다 미리 만화책은 좋은 것도 별로인 것도 있었는데, 의외로 산문이 더 좋았다. (그림으로 말하는 작가니까 글은 그림보다 덜 좋겠지 하는 편견에 젖어 있던 나를 반성 =_= 그래 나나 잘 해야지..) 담담하고 솔직한 글이 이 책의 주제와도 잘 맞고, 반가운 책도 여러 권 다시 만났다. 어쩌면 홋카이도 바다를 옆에 두고 기차 안에서 읽었기 때문에 더 좋았는지도.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엘런 L. 워커, 푸른숲)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270쪽) 이 문장에 저자의 생각이 쏙 담겨 있다. 심리학자로서 자신이 아이를 갖이 않기로 결정하면서 갖게 된 생각과 여러 이유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나 역시 아이 없이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왜 안 갖냐"거나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만날 때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을 이 책에서 거침없이 해서 좀 좋았다. 예를 들어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이들에게 "아이를 왜 낳으셨어요?"라거나 "아이를 안 낳으셨어야 해요."라고 대꾸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 어딘가 분했는데, 그런 사람이 나뿐이 아니었다. (물론 이 책 속 사람들도 실제로 그렇게 대꾸하지는 않는다.) 아이 없이 사는 성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이들 얘기도 공감이 갔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이 없이 사는 것이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 결과라는 설명이 나를 안심시켰다.


덧붙여 적어 보자면. 아이 없이 사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 아이 낳은 이들을 비난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린이를 자주 만나는 나로서는 나는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부러울 때도 많고, 내 인생이 다른 식으로 흘러갔다면 아이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 허탈할 때도 있다. (이런 말 하면 꼭 "지금이라도 가지세요" "마음 편히 가지면 생길 거예요." 이런 분들 있는데 저기 제발......)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아이를 키우는 분들 중에도 아이 없이 살았으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떠올려보는 분들, 있지 않을까? 그러니 부러운 건 서로 부러워하고, 좋은 건 좋아하면서 각자 잘 살면 좋겠다.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니까.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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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6-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책도 좋을 것 같지만, 네꼬님의 글도 참 좋으네요.

네꼬 2016-06-22 11:32   좋아요 0 | URL
다양한 사연들이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근데 뭐랄까 좀 미국식 상담 기록(응?). 페이퍼에는 못 썼지만, 번역이 아쉬워요. 여자는 ˝~해요˝ 남자는 ˝~합니다˝ 투로 옮겼는데, 영어는 그런 거 없잖아요. 이상함. 나는 왜 이걸 다락님한테 하소연하고 있나! (그리고 고맙습니다..)

치니 2016-06-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없이 살았으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떠올려보는 분들, 있지 않을까? -> 수도 없이 떠올려 볼 걸요. 제 경우에는 근데 떠올린다고 그게 또 아이 낳은 걸 후회해서는 아니고, 그냥 자연스레 떠올려 볼 때가 있어요. 만약...? 하면서 이런저런 공상을 하는 거죠.

저도 요새 과학 팟캐스트가 제일 재밌어요. 학교 다닐 때 이런 거 있었음 과학을 좋아하는 이과생이 되었을지도! 라고 할 정도로요. 저 책도 보관함에 담아뒀는데, 어서 읽어야겠네요. 흐.

네꼬 2016-06-22 16: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1 : 후회해서가 아니라 다른 삶을 생각해볼 수 있죠! 저도 그래서 부럽고 허탈하고 그런 건데, 이런 얘기 하면 꼭 대화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ㅠㅠ 이렇게 알아주는 치니님이 좋아요. ^^

맞아요 2 : 저는 팟캐스트까지 듣진 않지만, 요즘은 과학이 설명해주는 명쾌한 부분들이 좋더라고요. 이런 걸 일찍 알았으면 (제가 이과생이 될 린 없고!) 세상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부터라도!

paviana 2016-06-2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선택을 지지해요. 너무 오래간만이지요? ㅎㅎ
아이 없는 삶도 아이 있는 삶도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거잖아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우리 살아요.

네꼬 2016-06-22 16:29   좋아요 0 | URL
꺅! 꺅! 꺅! (<-좀 방정맞은 원숭이 스타일)
너무 오래간만이에요 ㅠㅠ 나도 그렇지만 파비아나님도 너무해 ㅠㅠ
순간 순간 소중해요. 정말. 요즘 그런 생각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소중한 파비아나님. 꺅! 꺅!

코코죠 2016-06-2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안부를 전하고 묻고 싶은데 인터넷이 잘 안되는 곳에 있어요ㅠ 저는 구)오즈마에요. 기억해주시려는지. 여튼 또 끊기기 전에. 저는 딸이 하나 있는데 다들 하나 더 낳으래요. 하! 웃기지 않아요? 내 애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 아이가 없든 하나든 일곱이든 누구나의 인생에나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고, 그 말을 적고 싶었어요. 그나저나 우리 네꼬님은(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쓰다듬쓰다듬) 왜 자꾸만 이뻐지고 멋져지고 막막 깊어지고 근사해지고 그르나옹? 질투나게시리. . .

네꼬 2016-06-23 12:03   좋아요 0 | URL
악 오즈마님! 왜 코코죠가 되었죠. 그리고 왜 인터넷 안 되는 데 계시죠. 어디 가셨죠. (질문 - 따지기 공세...) 아기 크는 거 이래저래 훔쳐보고 있어요. 예쁘고 동그랗고 활기찬 아기던데! 각자의 이유로 그렇게 사는 거니까 각자 잘 살면 좋겠어요. 그래야 같이도 잘 살지. 그쵸?

그리고 나는 못나졌고 늙었고 얄팍해졌습니다. (정색)

moonnight 2016-06-23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히 책들을 보관함에 넣고;;

아이 네꼬님 글 너무 좋잖아요ㅠㅠ;; 저는 일단 결혼도 안 해서 왜 안 하느냐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느냐 심지어는 너같은 이기적인 인간 어쩌구 하는 말도 듣는데, 정말 각자 선택한 길에서 각자 잘 살면 좋겠구만요. ㅠㅠ;

네꼬 2016-06-27 11:20   좋아요 0 | URL
각자 잘 살면 ˝좋겠구만요˝ 정말요 그렇겠구만요.

왜 왜 자꾸만 남의 삶에 그렇게 간섭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럴 시간에 각자의 인생을 잘 닦으면 좋을 텐데. 간섭자들의 마음은 어디가 그리 허약한가..
 
홋카이도 홀리데이 (2015~2016년 개정판, 휴대용 맵북) - 최고의 휴가를 위한 여행 파우치 홀리데이 시리즈 10 최고의 휴가를 위한 여행 파우치 홀리데이 시리즈 11
인페인터글로벌 지음 / 꿈의지도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실용서, 특히 여행서는 찾아보기 편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홋카이도의 큰 그림을 그린 점(볼 것, 할 것, 먹을 것)과 여러 가게를 직접 방문해 특징을 서술한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런데 홋카이도는 무척 넓은 섬이고, 지역별 특색도 다른데 그에 해당되는 페이지가 적거나 없다. 기차 여행객이 많은 곳의 여행서인데 전체적인 기차 맵이나, 지역별 이동 시간 등이 안내되지 않아서 불편했다. (예를 들어 하코다테에서 노보리베츠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혹은 하코다테에서 오타루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가늠할 길이 없음.) 설령 책에 이런 정보가 자세히 있었다 해도, 여행서인 만큼 누구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도록 편집했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여 혹시 출판사에서 업데이트할 때 참고하실까 싶어 적어두자면 하코다테 야경을 보기 위해 전망대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는데 지도 어디에도 표시가 없었다. (전차 역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설명 뿐. 실제로는 전차역 근처 어느 골목에 있었음.) 책에는 늘 실수가 있게 마련이지만, 캄캄한 저녁 낯선 골목을 헤매야 하는 여행객에게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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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숲 2016-06-2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저도 이 책 보고 계획 세우고 있는데 기차맵이 없는 게 진짜 이상해요! ㅠㅠ 저 떠나기 전에 한번 만나 주세요, 네꼬님?

네꼬 2016-06-23 14:28   좋아요 0 | URL
그럽시다. (저스트 고가 역시 최고인 듯.. ㅠㅠ)

moonnight 2016-06-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홋카이도 못 가 봤어요@_@;;; 지금은 다녀오신건가요? 네꼬님이 홋카이도 책 한 권 내주세요. 그거 완독&암기하고 다녀오고싶어용^^

네꼬 2016-06-27 11:21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제가 여행기를 쓰면 먹는 애기 잔 얘기 술 먹은 얘기 밖에 없을 거예요. 필요한 정보는 하나도 없는 여행기라니. 음. 쓰고 보니 그런 쓸모 없는 글은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아무래도 피곤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수속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여기서 집까지 또 어떻게 가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좀 사치스럽더라도 차를 공항에 두자고 할 걸 그랬나 하는데 앞서 걷는 아저씨의 통화 내용이 들린다. 익숙한 듯 차 번호와 차종(비싼 차였다)을 대는 것을 보니 맡겨 놓은 차를 찾으시는 모양이었다. 하얀 바지에 분홍 셔츠, 재색 카디건 어디에도 주름이 없었다. 부인으로 짐작되는 분도 비슷한 차림이다. 일등석을 타셨나 보다. 나 좀 부러운가?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부러웠던 것은 노보리베츠의 온천 호텔에서 마주친 노부부였다. 할아버지는 우리한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 만큼 장난스럽고 재미있는 분이셨고, 할머니는 무척 조심스러우면서도 내내 웃는 얼굴이셨다. 할아버지는 호텔의 큰 개 사진을 찍는 사람들한테 빙글빙글 웃으며 이 개가 몇 년 전에는 요렇게 조그마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컸다고 아는 척도 하시고, 당신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짖는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사진을 찍으시면서도 사진을 찍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개에게도 피해를 줄 까 봐 (그럴 리가 없는데도) 조심하셨다. 다음날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목욕탕에 갔는데, 들어가는 길에 이미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노부부와 마주쳤다. 내가 인사를 해도 될까 망설이는 사이에 두 분이 먼저 인사를 하셨다. 그 짧은 사이에도 할아버지는 열쇠를 떨어뜨리시면서 아이코 하시고, 할머니는 멋쩍게 웃으시면서 할아버지를 챙기셨다. 나는 그분들이 부러웠다. 나중에 남편이랑 저런 노부부가 되고 싶다. 아마 내가 할아버지 같고, 남편이 할머니 같겠지만.


그리고 또 나는 공항 가는 기차에서 본 중년 부부가 부러웠다. 청바지에 재킷, 운동화를 신은 아저씨는 작은 여행 가방을 끌고 타셨다. 아주머니는 간편한 티셔츠에 머플러를 두르고 계셨다. 자유석 칸이었으므로 우리도 그분들도 서서 가야 했는데, 두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디를 가시는지 몰라도 그분들 역시 그런 여행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주머니를 훔쳐보고 나도 좀더 나이가 들면 꼭 숏컷을 해서 자연스러운 은발이 되어야지 결심했다.


*


여행 내내 비바람과 함께 다녔지만 홋카이도는 재미있었다. 지루할 만큼 실컷 기차를 타고, 버스로 캄캄한 산길을 올라 평생 잊을 수 없을 안개를 보았다. 시골 술집에서 주인 아주머니, 손님들과 함께 나는 겨우 10%, 남편은 80% 알아듣는 술 수다를 떨었다. (10%는 네, 전혀 소용 없지요.) 연어알이 얼마나 맛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조그만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면서 바다를 소재로 한 그림책을 읽었다. 빗방울을 얼굴에 맞으며 온천욕을 했다. 빗속을 뚫고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람 부는 언덕을 사진 찍었다. 맛있는 우유, 치즈, 아이스크림, 빵을 먹었다. 맥주를 마시고, 양고기를 먹었다. 유리로 만든 아주 작은 강아지 인형을 샀다. 친구에게 주려고 나무로 만든 장난감도 샀다. 재미있었다.


날씨 운은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다행히 집으로 오는 버스는 금방 탈 수 있었다. 여행 전에 아주 깨끗이 정리하고 간 덕에 집은 쾌적했다. 남편은 여행가방을 열고, 그 옆에 빨래 바구니를 가져다 놓았다. 빨랫감을 챙기다 보니 순식간에 짐 정리가 됐다. 우리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서 또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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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6-06-2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좀 부러운가? (네꼬님이?) 예스 예스 예스!

네꼬 2016-06-21 13:22   좋아요 0 | URL
엣 치니님이 뭐가요! 저는 거기도 가고 싶은데요!!! (다음에 가면 꼭 만나야지-)

moonnight 2016-06-2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네꼬님(과 남편분)부러워욧!>.< 아 너무 좋다. 네꼬님의 여행기. 아까전에도 졸랐지만, 네꼬님이 책내주세요. 글썽ㅜㅜ;

네꼬 2016-06-27 11:22   좋아요 0 | URL
호호호호호. 문나잇님도 언젠가는 홋카이도 여행 가보시길! 문나잇님의 여행기야말로 궁금한데요!
 
플레이 볼 높은 학년 동화 34
이현 지음, 최민호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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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구가 좋다. 동구는 야구를 좋아한다. 나는 야구를 모르지만 동구가 하는 야구 역시 좋다. 이제 막 6학년이 된 동구의 야구는 좋아서 하는 야구이지만 취미로 하는 야구는 아니다. 동구는 지금도 야구 선수고, 최동원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 어린이의 꿈이라고 해서 귀여운 것도, 창대한 것도 아니다. 대회 일정이 나오면 대진표를 복사해 방에 붙여 놓을 만큼 동구는 진지하다. 그게 멋있어서 나는 동구가 좋다.


동구에게는 야구가 인생의 전부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동구는 꼴찌 롯데의 열혈 팬인 엄마 덕분에 태어나기 전부터 야구를 알았고, 아기일 때부터 야구공을 가지고 놀았으며, 돌 사진도 사직구장에서 찍었다. 이 소년의 마음 가득 야구를 채워 넣은 것은 엄마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동구는 스스로 야구를 선택했다. 엄마는 동생을 돌보느라 동구를 챙길 사정이 안 되고, 엄마와 헤어져 서울에 사는 아빠는 동구의 야구를 반대한다. 고만고만했던 동구네 팀은 새 감독님의 지도로 실력을 쌓으면서 이기는 감각을 배워가고 있다. 져서 못 나간 경기를 보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며 경기장을 찾아가고, '분루를 삼키다'라는 말을 배우고, '제발 좀 이기고 싶다'고 생각하던 동구에게 이길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열심히 훈련하고 팀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을까? 이기면 모든 갈등은 봉합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동구는 배워간다. 팀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신뢰받던 주장 동구는 우승을 위해서라면 선수들이 파격적인 라인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영민에게 자신이 자리를 내놓게 되니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늘 함께 했던 친구 푸른이는 이제 야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 평정을 잃은 동구는 실수를 하고, 경기장 밖에서 야구를 다시 생각해야 될 처지가 된다. 


이 동화는 '훈련 끝에 이기는 감동 스토리'가 아니다. 동구에게 야구는 즐기면서 하면 그만인 느슨한 게임이 아니라, 이번에 지면 다음 경기에 못 나가는 냉정한 세계다. 가족 걱정과 친구 생각, 앞날에 대한 불안 등으로 마음이 어지럽지만, 마운드에 선 동구는 침착하게, 결연하게 경기에 임한다. 이기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당당히 지는 것을 배우면서 동구는 생각한다.


좋아한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걸 멈출 필요는 없다. 마음껏 좋아할 수 있다. 그건 만루 홈런만큼 짜릿하고, 최동원 선수가 되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다. (본문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동구는 계속 야구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동구를 '응원'한다고 쉽게 말하지 않겠다. 대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동구가 좋다. 동구는 정말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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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6-1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구가 좋네요.ㅜㅜ 좋아하는 동구를 더 알고 싶어서 책을 주문해야겠어요. 좋아한다고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아이가 배우는 게 짠하고 뭉클해요ㅠㅠ

네꼬 2016-06-14 15:55   좋아요 0 | URL
팬클럽 결성! 네 인생의 쓴맛을 보기 시작... 그래도 잘 해나갈 것 같아요. 동구 멋있어요 *ㅅ*
 

J가 선생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요, 사실은 어제 선생님한테 가기 전에 J가 울었거든요. 가기 싫다고요. 모르는 사람이랑 단둘이 얘기하는 거 싫다고요. (아이고 그럼 보내지 말지 그러셨어요!) 그래서 제가 한 번만 선생님 만나 보고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어요. 엄마가 선생님 만나 보니까 너무 좋았어서 그렇다고, 엄마 믿고 한 번만 가보라고요. 그래서 정말 한 번만 가는 거라면서 갔어요. 들여보내 놓고 괜찮을까, 마칠 때까지 좀 걱정을 하긴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데, 표정이 아주 환해가지고요. 신발 벗으면서부터 엄마, 있지 선생님은 일본 여행을 좋아하신대, 그리고 고양이 그림책도 봤어, 선생님은 일본 여행 갈 때마다 고양이 인형 사온대,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좋아하신대, 책도 되게 많아, 아로마 오일로 좋은 냄새 나게 하는 거 봤어, 마실 것도 많아, 엄마 엄마... 하면서 어찌나 쫑알댔는지 몰라요. 얘기 듣다가 제가 모르는 척하고요, 그래 선생님한테는 뭐라고 말씀 드릴까? 너 갈 거야, 안 갈 거야? 그러니까 얼른 갈 거야! 하잖아요. 그래서 둘이 같이 웃었어요. 조금 있다가 보니까 글쎄 혼자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J가 진짜 기분 좋을 때만 그러는데, 그걸 보니까 얼마나 예쁜지.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요, 어제 선생님이 저한테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 거예요. 언니하고 하던 얘기 말고 J만 아는 얘기를 해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J를 깨우면서 아유, 어제 엄마는 선생님네 커피 맛있어서 너무 많이 마셨는지 밤에 잠이 안 와서 혼났어, 그랬어요. 근데 J가 그런 얘기를 정말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거 보고 언니가 샐쭉해서 나도 가보고 싶다 그러니까 또 으쓱해가지고요. 이런 작은 걸 그동안 내가 못했구나 싶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또 너무 좋고요.



*



열두 살,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인 J를 어제 처음 만났다. 공부뿐 아니라 다방면에 재능이 많고 애교도 떼도 많은 언니와 달리 조용하고 순한 J. 사춘기를 시작하면서 부쩍 소극적인 아이가 되었다는 것이 어머니의 걱정이었다. 취미라고는 뒹굴뒹굴 하면서 책을 읽는 것뿐이라고. 그런데 만나본 J는 처음에만 낯을 가릴 뿐, 속이 단단하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 소녀였다. 서로 편안해지자 J는 좀 얄미운 친구와 속 터지는 친구(J까지 삼총사)에 대한 애정과 불만을 털어놓았다. 짜증나게 할 때도 많지만 역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인 쌍둥이 언니 얘기도 했다. 친구 중에는 벌써 직업을 고민하는 애도 있다면서 진로는 언제까지 정해야 되는 거냐고 내게 묻기도 했다. 그럴 수 있다면 뮤지컬이랑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노래를 잘 부르진 못하지만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스마트폰이 없어서 속상하다 하면서도 딱히 불편한 건 없고 그냥 조금 부러운 정도라고 또 의젓하게 말했다. <<샬롯의 거미줄>> (내가 편집했다)을 좋아한다고 해서, 100쇄 기념 컬러판을 보여주었다. <<엄지 소년>>을 좋아한다고 해서 에리히 캐스트너의 자전 소설인 <<내가 어렸을 때에>>(내가 처음 편집한 책이다)를 보여 주었다. 같은 작가의 <<로테와 루이제>>는 안 읽었다고 했는데, 내용을 대충 알려주고 영화화 된 얘기를 했더니, 영화는 보았다면서 반가워했다. '스크루지 영감'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캐럴>>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안경 너머로 J의 눈이 반짝였다. 그걸 보니 나의 어느 한 부분도 비슷하게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오늘 아침 J어머니께서 전화로 들려주신 이야기 중에서 '흥얼흥얼' 했다는 대목에 그만 감동을 받고 말았다. 내 몫은 작고, 책의 몫이 크다는 걸 안다. 하지만 오늘의 기쁨을 오래 기억하려고, 잘난 척인 줄 알면서도 여기에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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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6-05-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네꼬님 너무나도 멋져요.

네꼬 2016-05-13 17:54   좋아요 0 | URL
아이쿠, 너무 나갔나 하고 조금 손보는 사이 댓글이!
>.,< 감사합니다. ㅜㅜ (J가 멋졌어요!)

다락방 2016-05-1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잘난척은 진짜 엄청 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아니, 더 좋아요!
우리 네꼬님, 원래 잘하는 거 알았지만, 정말 잘하고 있네요. 잘하고 있는 내친구, 뿌듯해요. 힛.
아 이 글은 네꼬님의 오늘의 기쁨이지만, 저의 기쁨이기도 해요. 만세!

네꼬 2016-05-13 17:55   좋아요 0 | URL
아니 내가 원래 좀 겸손한 사람이잖아요 원래해해해해해해해해;;;;;
아무튼 저도 이참에 만셉니다. (부끄러움을 모름...)

heima 2016-05-1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정말정말 멋있어요!

네꼬 2016-05-14 11:17   좋아요 0 | URL
이거 너무 대놓고 칭찬 요구였는데 이렇게 성공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연하게) (나는 안 부끄럽다) (안 부끄럽다)

꿈꾸는섬 2016-05-13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넘 멋져요!
저도 가고 싶어요 그곳에ㅎ

네꼬 2016-05-14 11:19   좋아요 1 | URL
어른을 위한 독서교실 있으면 제가 가고 싶어요! 거긴 필시 꿈꾸는섬님도 오실 듯? 모두 모여서 책 얘기.. (전 주로 제 자랑을 하겠죠.. 상상만 했는데도 못났다....) 감사합니다. 칭찬 받으려고 썼기 때문에 저는 안 부끄럽습니다. 안 부끄러워요. 안 부끄럽.....

꿈꾸는섬 2016-05-15 11:48   좋아요 0 | URL
네꼬님 말씀대로 어른을 위한 독서교실도 가고 싶네요.^^
그리고 마구 자랑하셔도 돼요. 함께 기뻐해드릴게요.^^

네꼬 2016-05-16 13:42   좋아요 0 | URL
네 그럼 앞으로도 부끄러움 없이... (아니 이번에도 안 부끄러웠고요.. 아니 근데 왜 땀이..)

그리운남쪽 2016-05-15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르는 사람이랑 단둘이 얘기하는 게 두려워 울었구나, J는. 난 에리히 캐스트너가 나와서, <내가 어렸을 때에>가 네꼬 선생님이 처음 편집한 책이라 해서, 너무나 뭉클해져 엎드려 울었어. 어린시절을 홀라당 까먹어 버리곤 하는 어른들은, 때로 아이들도 슬프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에리히 캐스트너가 한탄했지. 불행하지 않았으나 나는 어린시절을 잘 까먹지 않는 어른, 그래서 울었어.
그 책 <하늘을 나는 교실>에 나오는 이야기 대부분을 아직도 기억해.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를 금연선생이라 불렀던 건 아니었다. 피우지 않기는커녕 헤비스모커였지만, 그가 기차의 2등 금연 객차를 개조하여 만든 곳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입시를 앞둔 어느 날 영어 모의고사에도 불쑥 나와주던 그 책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네꼬 선생님이 J와 보낸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자랑 보따리(?)를 펼치지 않았더라면, 내 마음에만 있던 에리히 캐스트너를 내가 또 어떻게 끄집어 낼 수 있었겠니. 고맙구나, J.

네꼬 2016-05-16 13:42   좋아요 0 | URL
어어어 그리운남쪽님. 댓글 읽는데 저 왜 눈물 나와요? 너무 뭉클한 얘기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저 좀 울어버렸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moonnight 2016-05-1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은 나의 아이돌♡♡♡♡
몇번이나 얘기했지만ㅠㅠ 제 조카아이들 네꼬님께 보내고 싶어요. 아이들이 너무나 너무나 행복해지는 책읽기교실^^ 저도 네꼬선생님네 커피 마시고 싶고. 수줍^//^

네꼬 2016-05-16 13:43   좋아요 0 | URL
하트하트 감사합니다 하트하트 하하하하
나도 아이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