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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1980년 한국SF침체기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곧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그 결과 이땅에 적지않은 미군들이 주둔하게 되었고 이들 기지촌 주변에서는 자연스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여러 책들이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SF도 적지 않았다. 당시 서양의 SF는 나름대로 대중문학으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이웃 일본에서도 전개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기지촌에서 흘러나온 서양 SF들이 널리 퍼지면서 대량으로 번역, 출판되었고 SF잡지도 창간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H.G.웰즈의 <우주전쟁>이나 <투명인간> 정도만이 눈에 뜨일 뿐, 1960년대가 되도록 SF의 번역출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 SF문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작품이 등장한다. 바로 1965년에 발표된 문윤성의 <완전사회>라는 장편소설이다. <주간한국>에서 창간기념으로 주최한 제 1회 추리소설 공모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독특한 설정이라던가 문체 등이 지금 보아도 신선한 감흥을 주는 역작이다. 인공동면에 들어간 주인공이 먼 훗날 깨어나보니 전 세계가 여성들의 공화국으로 변했더라는 이야기가 펼쳐지며, 또한, 한글 자모가 세계의 공용문자로 쓰이고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도 펼치고 있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중반에 흥사단 출판부에서 <여인공화국>으로 제목이 바뀌어 재출간 된 바 있다.
한편 국내 최초의 과학전문 기자출신중 한 명인 서광운은 당시 발간되던 <학생과학>지에 스스로 집필한 SF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더불어 몇몇 청소년문학 작가 등과 함께 60년대 말에 ‘한국 SF작가클럽’을 결성한다. 한국 SF작가 클럽은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청소년 대상의 작품집을 출간하는 등 SF 저변 확대에 힘쓰다가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지만, 사실상 국내 최초의 SF관련 조직으로서 선구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뒤로 1980년대가 되기 전까지 국내에 번역된 SF들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아동용 전집류와 추리문고에 포함된 몇몇 작품들이 갈증을 덜어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들의 출간에는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배경이 있다. 다음은 일본의 어느 SF팬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글이다.

한국 SF 출판 최초의 전성기는 1970년대 중반이다. 다만 이 때 출판된 것은 아동전용 SF. 당시의 추리소설 붐에 편승해 ‘동서추리문고’와 ‘아이디어회관’이라고 하는 두 문고가 차례차례로 SF를 출판. 현재 20대 중반으로부터 30대 정도까지의 SF팬 상당수는 어렸을 적에 이 2개 시리즈의 세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디어회관’의 SF출판 리스트를 보고는 놀랐던 것이다. ‘27세기의 발명왕’, ‘합성뇌의 반란’, ‘초인 부대’, ‘로봇 스파이 전쟁’ 등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타이틀 뿐. 이건 일본의 쥬브나일 SF 총서와 꼭 닮지 않았는가. 조사해 보면 아무래도 이와사키 서점의 ‘SF 세계의 명작’이나 ‘소년소녀 세계 SF문학 전집’ 등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텍스트 자체도 일본어로부터의 이중 번역이 아닐까? 예를 들어, ‘The Cybernetic Brains’를 일본과 한국에서 우연히 ‘합성뇌의 반란’이라고 똑같이 번역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 SF는 그 여명기부터 일본의 영향 하에 출발했다는 것이 된다. 이걸 한국의 SF팬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비록 일어판의 중역이기는 했지만, 70년대 말부터 선을 보였던 동서추리문고의 몇몇 SF들은 사실상 이 땅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성인용 완역판이었다. 레이 브래드베리나 아서 클라크, 알프레드 베스터 등 기라성 같은 서양의 SF작가들이 처음 소개되었으며, 역시 같은 시기에 모음사에서는 아서 클라크의 <2001: 우주의 오딧세이>가 출간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SF의 번역출판은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양상을 보인다. 비록 일어판의 중역이나마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내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인프라 구축과 새로운 작가군의 등장
1987년에 이르러서 국내 SF창작 분야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가 나왔다. 복거일이 ‘대체역사소설’인 <비명을 찾아서>를 발표하여 작품에 담긴 문학성 못지않게 상업적으로도 적잖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설정인 ‘가상의 역사’에 기성 문단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고 독자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사실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는 SF의 여러 갈래 중 하나지만 국내의 SF독자들에겐 상대적으로 낯선 서사구조였는데, 이 작품으로 인해서 비로소 SF의 폭넓은 가능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주목할 만한 또다른 사실은 <스포츠서울>지에서 신춘문예에 SF부문도 포함시킨 것이며, 또한 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교양과학서적 붐은 SF독자층 형성에 간접적으로나마 기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기할 만한 일은 1980년대 후반부터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컴퓨터 통신망의 확산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인프라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젊은 작가군을 양산하게 되었다. 컴퓨터 통신망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그러한 통신망에 자신의 습작을 연재하는 작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 중에서는 창작 SF를 발표하여 광범위한 인기를 얻고 마침내 책으로도 출판한 작가들이 여럿 배출되었다. 한편 90년대에 접어들면서 SF의 번역출간도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원작 발표 50여년 만에 소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양 SF의 고전과 최신작들이 대거 번역 출판되었으며, SF 출간을 지속적인 사업으로 벌여나갈 것임을 표방하는 출판사까지 생겨났다. 이런 흐름은 그뒤 어느 정도의 부침을 겪긴 했지만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90년대에 의욕적으로 SF를 펴 낸 대표적인 출판사들은 다음과 같다. 시공사에서 ‘그리폰북스’라는 SF총서를 내면서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 조 홀드만의 <영원한 전쟁>,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 등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으며, 나경문화에서는 폴 앤더슨의 <타우 제로>, 필립 호세 파머의 <연인들>, 아서 클라크의 <도시와 별>등을 선보였다. 또 서울창작에서는 주제별로 작품을 엮은 단편집 시리즈인 <토탈호러>, <환상특급>, 등을 내놓았고 고려원 미디어와 잎새 출판사에서도 일련의 SF번역작들을 꾸준히 출간했다. 아쉬운 점은 이들 중에서 지금 현재까지 계속 SF를 내는 곳은 시공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3년 말 현재 국내에서 SF팬들의 장르적 기호에 부응하는 SF출간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곳은 시공사 외에 ‘행복한책읽기’ 출판사의 행책SF가 있다.
한편 90년대에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작가로 등단한 사람들 중에서는 이영수가 단연 발군의 작품들로 SF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듀나’라는 필명으로 소설은 물론 문화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에세이들을 발표하여 고정 독자층을 형성시켰으며, 작품집과 에세이집도 여러 권 출간했다. 이밖에도 몇몇 기성 작가들이 SF를 발표하곤 했지만, 이영수만큼의 장르적 세련미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복거일은 <비명을 찾아서> 이후 <역사 속의 나그네>라는 야심찬 대작 시간여행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3권까지 내고는 중단된 상태이며, 그 뒤 다른 SF들을 몇몇 발표했지만 전작들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역사 속의 나그네>는 주인공이 ‘시낭(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서 펼치는 모험기적 설정을 취한 작품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SF와 관련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대학의 정규 강좌에서 SF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학교의 영문학과에서 고전 SF를 중심으로 장르의 특성에 주목하는 강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학술 세미나도 이따금 열리고 있다.

스타작품과 작가를 기다리며
SF의 저변이 확대되려면 무엇보다도 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발한 창작작업이 요청된다. 그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SF팬들은 이미 독자적으로 SF대회(컨벤션)도 열고 출판사의 SF 기획출판에도 관여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열정을 보이고 있으나, 정작 창작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융성하는 환타지문학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몇몇 국내외 작품들에 힘입은 바가 큰데, SF도 결국은 이런 ‘스타’ 작품과 작가가 언제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 관건일 것이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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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을 타진하는 한국SF는 SF평론가 박상준님이 2003년 GE메디칼 시스템 코리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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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을 거쳐 유입된 SF싹
우리나라에 서양 SF가 도입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19세기말 동북아시아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과 일본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국제적 열강이었으며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들이 일종의 필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양에서 태동한 ‘과학소설’, 즉 SF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과정도 모두 중국어나 일본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다시 중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내에 소개된 최초의 SF는 주울 베르느의 <해저여행기담(해저2만리)>와 <철세계>로 알려지고 있는데(1907-1908년), 둘 다 원서에서 직접 번역된 것이 아니며 내용도 번역이 아닌 번안으로서 등장인물과 사물의 명칭 등이 당시 우리 실정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쳐져 있다. 또한, 1912년에는 김교제의 <비행선>이라는 작품도 나왔으나 이 소설은 원작이 무엇인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뒤로는 1920년대에 주울 베르느의 <월세계 여행>과 카렐 차펙의 <인조인간(R.U.R.)>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기록이 있다. <인조인간>은 ‘로봇(robot)'이라는 말을 최초로 탄생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소설이 아닌 희곡이다. 유념할만한 사실은 이 작품들을 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번역된 해외 SF작품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제시대 중반기 이후의 지적 환경을 유추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당시 한반도에서는 학교에서 더 이상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가 ‘국어’ 과목으로 행세했고 따라서 1930년대 이후의 지식인 청년들은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로 읽고 쓰는 일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당연히 더 이상 외국 책들을 한국어로 번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대부분의 해외 문학작품들은 일본어판으로 읽혀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생존해 있는 원로 작가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입증이 되는 바이다.
한국 최초의 창작SF는?
우리나라의 SF문학사와 관련해서 아직 명백하게 규명되지 않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SF는 누구의 어느 작품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900년에 오시카와 슈로우가 쓴 <해저군함>이, 그리고 중국은 1904년에 한 문학잡지에 발표된 <달 식민지 이야기>라는 작품이 각각 최초의 SF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관련된 학문적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서 이에 대한 언급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다만 필자가 보기에는 1929년에 김동인이 발표한 단편소설 가 일단 최초의 창작 SF로 유력한 후보작이다. 어떤 과학자가 사람의 배설물을 대체식량으로 활용하고자 연구한다는 내용이 전개되며, 대중들의 차가운 반응 때문에 의기소침한 주인공이 휴식을 취하러 시골에 갔다가 겪은 일을 통해서 일종의 자기모순적 반전을 시도한다. 과학자는 시골집에서 보신탕을 대접받지만, 그 개가 그날 오전에 자신이 목격했던 것임을 알고는 역겨움에 수저를 들지 못한다. 그 개는 길에서 배설물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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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섬뜩하게 반영하는 SF
정자세포는 물론이요, 체세포를 이용해서도 인간복제가 가능해진 시대에 첨단 유전공학은 어디까지 다다르게 될까? 자칫하면 유전공학의 급속한 발달은 인간 사회와 가족제도에 대한 기존의 도덕율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지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폴란드의 의사출신 과학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다음과 같이 흥미로우면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을 가정해본 바 있다.
삼백년 전에 이미 죽었지만 생식세포가 냉동보관 되어 있는 존이라는 사내가 있다. 그 세포들을 이용해 수태한 여인은 피터를 낳는다. 엄연히 존은 피터의 아버지인 셈이다. 만약 존이 죽으면서 생식세포는 커녕 단 하나의 체세포도 남기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대신 존은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여성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유전공학자에게 다음과 같은 유지를 남겨놓았다.
그 여성이 낳은 아이는 누가 봐도 존을 빼닮아야 하며, 다른 어떤 남자의 정충도 쓰면 안된다. 오로지 그 여성의 난자를 가지고 처녀생식(또는 단성 생식)만 가능하다. 따라서 유전공학자는 유전자를 조율해서 피터가 존을 쏙 빼닮게 태어나도록 발생학적인 단계에서부터 관리해야 한다. (이 때 존의 사진이나 생전에 녹음해논 존의 목소리를 참고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때 유전학자는 존이 태어날 아이에게서 기대하는 모든 특징들을 해당 여인의 염색체 속에 ‘조각해 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존은 피터의 아버지인가 아닌가?’
이정도 되면 ‘맞다’ 또는 ‘아니다’ 식으로 명쾌하게 답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어떤 면에서는 존은 사실상 아버지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경험론에만 호소해서는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정의는 본질적으로 유전공학자 뿐만 아니라 존, 피터의 어머니 그리고 피터 모두가 살아있는 사회의 문화적 기준에 의해 내려질 것이다.
더욱이 만약 유전공학자가 어떤 의도이건 간에, 그 아이의 유전형질의 45%를 유언한 대로 하지 않고 전혀 다르게 구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피터는 해당 문화권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존의 자식이라고 할 수도 없고 딱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만간 부분적으로만 아버지가 되는 것이 가능한 상황들이 생길지 모른다. 이러한 문제를 묘사한 작품이 오늘날에는 환타지지만, 삼사십 년 뒤면 정말로 실감날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식 간의 인위적으로 가공된 이같은 혈족관계는 그때가서는 지금과 같은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부자관계는 유전공학이 실현되는 시대와는 다를 것이다.주3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예언인가! 이 글은 1980년대 중반 발표되었는데,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당시 불과 삼사십 년 뒤면 자신의 가정이 현실화되리라고 내다보았으며 그러한 예상은 현실과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2002년말 미국에서는 외계인을 신으로 추앙하는 종교단체 라엘리언 산하의 인간복제기업 클로네이드가 법적 규제를 무릅쓰고 복제인간 아기를 출생시켰다고 공표함으로서 인간 유전자의 무분별한 조작에 반대하는 사회 일반의 여론을 들쑤셔 놓았다.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바야흐로 실정법을 동원해서까지 인간복제를 막아야 할 정도로 기술이 앞서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새로운 밀레니엄에 태어난 우리의 아들 딸들이 어른이 될 때 쯤에는 렘의 말마따나 결혼하지 않고 단지 처녀생식만으로 자식을 얻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가치관과 도덕은 어떻게 변모할까?

SF보다 더 SF적인 현실
SF보다 더 SF적인 현실은 비단 과학의 첨단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SF에서나 꿈꾸어 보았을 만한 문명의 이기를 일상 생활 속에서 훨씬 더 자주 접하게 된다. 모바일폰으로 영화를 보고 카메라를 찍고 CD 음질의 음악을 듣는 판이니 SF 컨텐츠가 그려내는 미래의 파노라마가 오히려 밋밋해 보일 지경 아닌가. 전국민의 반수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디지털 위성방송의 채널 수가 190 개를 넘어서며, 한 가정에서 CDMA 방식 핸드폰을 2대 이상 쓰고 있는 21세기 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바라보면 지금까지 출간된 SF 소설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래에 대한 상상화이기는 커녕 오히려 현 시점에서 씌어진 리얼리즘 소설처럼 생각될 지경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 로벗 실버벅이 일찍이 70년대 중반에 대체 자신이 지금 SF가 그려낸 미래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진짜 현실 속에 살고 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라고 푸념을 했을까. 이처럼 현실과 SF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함께 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차 SF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을 떨쳐내기가 어려워진다.
미국 SF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휴고 건즈백(Hugo Gernsback)이 장편소설 에서 컬러 TV와 비디오 전화 그리고 원격 화상회의가 등장하는 27세기의 모험담을 발표한 해가 1929년이다. 그러나 2003년의 우리들은 이러한 과학문명의 이기(利機)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나머지 SF적인 비전을 현실과는 동떨어진 별개의 별천지인 양 오해하기 쉽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어제의 SF 세계와 만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SF란 하루하루 변하면서 쏜살같이 달리고 있는 과학이란 열차에 타고 있는 인간을 순간포착해서 카메라로 찍은 다음 인간학적인 해석을 덧붙여 놓은 해설판이다. 그래서 과학소설은 꿈인 동시에 현실이다. 요즘 SF가 대중문화의 강력한 아이콘으로 등장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SF 자체가 꿈을 주면서도 현실에서 계속 확인할 수 있는 공명 현상을 지속적으로 일으켜 오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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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SF에 빠져드는가는 SF평론가 고장원님이 2003년 GE메디칼 시스템 코리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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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향력을 보여주는 두가지 사례
1998년 11월 25일, 미국의 게이랙시언들(the Gaylaxians)주1이 당시 개봉을 앞두고 있던 <스타 트렉 Star Trek> 극장판 시리즈 ‘봉기Insurrection’편의 관람 보이코트를 벌인 적이 있다. 여기서 ‘게이랙시언’이란 SF를 즐기는 게이와 레즈비언을 지칭하며, 은하 (Galaxy)에 빗대 만들어진 조어다.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그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열렬한 SF 매니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명쾌했다. <스타 트랙>은 60년대 TV 시리즈를 거쳐 70년대 후반부터는 꾸준히 극장판 시리즈로 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대중적 인기로 인해 이 영화를 추종하는 오타쿠 그룹인 일명 ‘트레키’들이 미 전역에 생겨났고 최근에서는 할리우드가 <갤럭시 퀘스트>라는 패러디 영화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의 동성애자들이 <스타 트렉>에 주목한 것은 단지 지명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타 트렉>은 단순히 외계를 탐험하는 신비한 모험담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스토리 전개상 유전적으로 특이한 인간들과 각양각색의 외계인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문제는 아무리 괴상망칙한 외계인이 설치고 돌아다니는 설정이어도 정작 인간 동성애자는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불만을 품었던 것이다. 일견 신기해 보이지만, 이 사건은 SF 컨텐츠가 얼마나 우리 삶 속에 깊숙히 들어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일깨워 주는 하나의 본보기이다. 동성애자들은 SF적 설정을 통해 미래에도 게이와 레즈비언이 존재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지금보다 더 사회적으로 용인될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SF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텔레비전 광고로까지 확장된다. 미국의 대형서점 체인 보더스(Borders)의 광고가 좋은 예다. 여기서는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전화하여 주위에 피해를 주는 몰상식한 사람을 한 트레키가 ‘스타 트랙 백과사전’에서 보고 배운 대로 스포크식 지압으로 까무러치게 만든다.(스포크는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요 캐릭터로 인간과 외계인의 혼혈이다.)

SF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가
18세기 초엽 여류 작가 메리 쉘리의 <프랑켄슈타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현대 SF가 밀레니엄을 넘어선 시점에서 소설은 물론이고 재패니메이션과 할리우드의 킬러 컨텐츠로 툭하면 차출되고 있다. SF의 이러한 매력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다시 말해 SF는 어떻게 해서 거의 200살에 가까운 나이를 먹으면서 영향력 있는 하위문화 텍스트로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일까?
필자는 그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번째 원인은 본질적인 차원으로, SF가 다름아닌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SF는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거나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과학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근거를 디딤돌 삼아 미래에 대한 예기치 못한 놀라움(희망에서 공포에 이르는)을 불러일으켜 대중의 상상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 준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다. 16세기에 발간된 노스트라다무스의 <여러 세기 Centuries>와 조선시대에 유행한 정감록 같은 예언서들은 바로 이같은 대중의 강렬한 소망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리라. 미국의 인기 과학소설가 로벗 실버벅은 과학소설 작가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표가 바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즉 작가들의 욕심은 경이로운 것들에 대한 기적이나 마술같은 비젼을 선보임으로서 독자들을 경악하게 하고 그 결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원작자 아서 C. 클라크는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사회의 과학기술은 우리 눈에 마술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번째 원인은 사회 현상적인 차원으로, 오늘날 현대 산업사회의 삶이 허구의 SF보다 더 SF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급속하게 변모해왔기 때문이다. 지칠줄 모르고 끊임없이 전진해온 현대 과학은 SF가 예견한 전망 가운데 상당수를 이미 실현시켜 사실상 과학소설과 현실 사이의 경계선을 흐려놓고 있다. 일례로 몇 년 전, 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학의 재미 한국인 과학자 윤경근은 ‘유전자 수리’를 통해 흰 쥐를 검은 쥐로 만드는데 성공한 바 있다. 흰 쥐가 생기는 이유는 피부 색깔을 변화시키는 색소인자인 멜라닌 생산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결함이 생긴 탓인데, 그 유전자 변이를 고쳐주면 다시 멜라닌이 만들어져 흰 쥐가 검은 쥐로 변하게 된다. 이처럼 변이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고치는 기술은 좀 더 보완을 거쳐 사람들의 각종 유전성 질환을 치료하는데 이용될 전망이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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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사이버펑크
70년대는 아이디어의 고갈과 장르 판타지--상업화된 환상소설--의 팽창으로 인해 SF의 실험 정신이 위축되어 있었던 시기였고, 그 연장선상에 있던 1980년대 초의 상황은 60년대 초의 그것과 놀랄만큼 닮아 있었다. 폭주라고 밖에는 형용할 길이 없는 테크놀러지의 급격한 발달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었고, 변화의 문학을 자처하는 ‘과학소설’ 또한 새로운 방법론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보급에 의한 PC 혁명이 몇년 후 현실로 다가왔을 때, 윌리엄 깁슨과 브루스 스털링을 위시한 젊은 작가들은 이런 시대상황에 걸맞는 SF상(像)을 재정립하기 위해 상호 연대를 모색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미국 전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각종 SF 컨벤션이 접촉의 장을 제공해주었지만, 뉴웨이브의 유산인 창작 워크샵 및 컴퓨터 네트워크를 이용한 의견 교환이 활성화되면서 이들의 활동은 점점 뚜렷한 방향성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사이버펑크(Cyberpunk)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사이버펑크 SF는 1984년 윌리엄 깁슨의 장편 ‘뉴로맨서(Neuromancer)’의 출간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의 처녀 장편이자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3부작의 1부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주요 SF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비롯, 최우수 신인에게 주어지는 P. K. 딕 기념상 등을 석권했고, SF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사이버스페이스와 사이버펑크라는 단어를 회자시켰다. 80년대의 SF를 주도했던 사이버펑크 운동은 바로 이 장편에서 시작되서 이 장편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버펑크는 사이버네틱스와 무질서, 혼란를 뜻하는 펑크를 결합한 조어이며, 컴퓨터 공학, 인공지능, 유전 공학, 전자 공학 등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SF 소설을 가리킨다. 사이버스페이스란 전세계의 수천만의 컴퓨터가 결합된 인공적 우주를 의미하고, 깁슨의 주인공들은 매트릭스 시뮬레이터(Matrix Simulator)라는 일종의 변환 장치를 통해 각종 데이터가 기하학적 도형으로 시각화된 가상 현실내로 몰입(jack in)한다. 개개의 아이디어 자체는 특별히 새롭다고 할 수 없지만, 아이디어와 현실 사회를 결합하는 수법의 참신함과, 현란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파격적 문체의 매력은 깁슨을 거장의 대열로 끌어올렸다. 원래 깁슨의 작풍을 묘사하기 위해 쓰여졌던 사이버펑크란 용어가 SF의 하위 장르가 되고, 나아가서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까지 발전하는 데는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경우에는 <매트릭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10여 년이 더 걸렸다.) LDG가 지향했지만 결코 성공시키지는 못했던 ‘SF의 생활화’를 사이버펑크 운동이 완전히 이루었다면 과장이 되겠지만, 사이버펑크가 뉴웨이브에 필적하는 80년대 SF의 경향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90년 하드SF 르네상스
21세기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1990년대의 SF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하드 SF이다. 저명한 앤솔러지스트이자 평론가인 데이빗 G. 하트웰이 ‘혁명’으로까지 지칭하고 있는 기술주의적 SF의 부활은 멀게는 70년대에 데뷔한 과학자 출신 작가들의 꾸준한 작품활동이 결실을 맺은 결과이기도 하고, 가깝게는 80년대 사이버펑크 운동의 기반을 이룬 정보 및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달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할 정도로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특히 1980년대에 영국 잡지 『인터존』 등을 통해 데뷔한 후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개시하고, 1990년대 들어 전문 작가로 변신한 영연방의 작가들--영국의 폴 J. 맥컬리, 이언 맥클라우드, 스티븐 박스터, 에릭 브라운,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렉 이건--의 작품은 기존의 하드 SF 개념을 일신하고도 남을 만한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현대 SF의 최첨단에 위치하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현대 SF를 규정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작가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글로 읽을 수 있는 1990년대의 하드 SF소설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므로, SF팬들을 위해서도 체계적인 소개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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