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슬립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필립 말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을 순식간에 다시 읽으면서 든 생각은, 그의 유머가 좋고 약간은 엉성하지만 다채로운 인물들 구성이 좋고, 무엇보다 필립 말로의 꿋꿋한 자기확신과 남들에 아랑곳하지 않는 신념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문동이여, 나머지도 번역해주세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2-12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김진준님 번역 좋죠 ! 문동에서 끝까지 출간해줘야 할텐데 ,,,,,

비연 2021-02-12 16:02   좋아요 1 | URL
번역 잘 하셨더라구요~ 사람이름 잘못된 한 부분을 발견하긴 했지만..^^;;; 문동이 힘을 내야할텐데. 전부 번역 안해주고 <기나긴 이별>로 넘어갈까봐 걱정...

다락방 2021-02-1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지고 있는 챈들러 다 팔거거든요. 새로 들이기 위해서는..
김진준 번역이 좋다고들 하시니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그런가, 구판으로 며칠전에 재독했는데 김진준 번역으로 다시 봐야겠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건지, 이미 읽은건데도 누가 범인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하하하핫.

비연 2021-02-16 18:03   좋아요 0 | URL
아. 전, 박현주 번역도 나쁘지 않고 좋아하는 작가건 전작으로 가지고 있고 싶어서.
김진준 번역 잘 하더라구요. 박현주랑은 좀 다른 것도 있고.
글고 10년도 전에 읽은 거라 당연히 범인은 기억이 안날 수 밖에 없는..
저도.. 이 내용이 그 내용이었어? 이러고 읽었.. ㅎㅎ;;
 
















내 지식이 별로 없어서인지, 번역이 미흡해서인지, 아뭏든 이 책은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뭔 말인지 모르고 읽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론에서 보았던 그 중요한 주제의식들에는 경의를 표하는데 그 이후엔 정말 가시밭길이다. 정치학이나 사회계약론이나 등에 대한 내 지식의 얕음이 전적인 이유라고 하기에는, 글이 매끄럽지가 않다. 어쨌든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하루에 한 장 읽으면 꽥.. 이다. 어느새 눈이 무거워지고 속에서 다른 걸 읽어야겠다는 열망이 생긴다. 이 중에 4장 여자와 동의 부분은 그래도 번역도 괜찮은 편이고 내가 이해(?)가는 부분도 많았다. '동의'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부분. 이 장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이런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은 기분. 



여자가 남자와 맺는 가장 내밀한 관계들은 동의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자들은 결혼에 동의하며, 여자의 동의 없는 성교는 강간이라는 형사 범죄를 구성한다. 여자와 동의의 쓰이지 않은 역사를 검토하기 시작하면 동의 이론의 억제된 문제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된다. 여자들은 동의 이론가들이 동의 능력이 없다고 공언했던 개인들을 예시한다. 하지만 동시에 여자들은 언제나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제시되었으며, 여자들의 비동의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되거나 '동의'로 재해석되었다. (p 121)


여자들의 영향은, 심지어 좋은 여자라도, 언제나 남자들을 타락시킨다. 왜냐하면 '자연적으로' 여자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지위 혹은 시민의 지위에 도달할 수 없으며, 동의를 제공하는 데 요구되는 능력을 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관계에서 여자들의 '동의'는 막중하다. 더구나 여자들의 동의는 언제나 주어진 것으로 가정될 수 있다 - 겉보기에 분명 동의를 거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소에 따르면, 남자들은 '자연적인' 성적 공격자들'이다. 여자들은 '저항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다. 루소는 '공격과 방어의 질서가 변한다면 인류는 어떻게 되겠는가' 리고 묻는다. 정숙과 순결은 탁월한 여성적 덕목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또한 열정의 피조물이기에, 정숙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중성과 위장이라는 그들의 자연적 기술을 이용해야만 한다. 특히 여자들은 '응'이라고 말하기를 욕망할 때조차도 언제나 '아니'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루소는 여자와 동의의 문제의 심장부를 드러낸다. 동의에 대한 겉보기의 거부는 여자의 경우 액면가로 취해질 수가 결코 없다. (p 128)



그러니까 이런 거다. 여자의 동의란, 동의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존재라서 할 수 없는 것인데,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성적으로 공격을 하면 '저항은 해야 한다'는 것이고, 심지어 열정 그자체인 여자들은 동의를 겉으로는 아니라고 표시함으로써 위장을 한다고 '생각한다' 라고 본다는 거다. 참 놀랍다. 따라서 여자는 늘 '동의'가 default인 거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싫다고 안 했잖아, 싫으면 반항을 했어야지, 따라왔으니 동의한 거 아니야, 결혼했는데 성관계에 동의가 무슨 필요가 있어, 네가 동의 안 했으면 나도 안 했을 거야... 아하. 그 근간의 생각이 이런 것이로구나. 



강간법은 최근에 '정의의 패러디'라고 묘사되었다. 이에 대한 많은 이유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피해자의 '동의'가 해석되는-또는 무시되는-방식이다. 이 문제에서 여론과 법원은 홉스적이다. 그들은 강요된 복종을 포함해서 복종을 동의와 동일시한다. 기소된 강간범들은 거의 언제나 여자가 실제로 동의했다는, 혹은 자신들의 여자가 동의한다고 믿었다는 변론을 제시한다.. (중략) ... 동의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단순한 삽입 증거를 넘어서 신체적 상해를 보여주는 것이 거의 법적 기준의 지위를 갖는다.' (p 133)


정의의 패러디라는 말의 각주에는 이런 말이 있다. '강간은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범죄다. 강간 피해자는 빈번히 '그것을 자초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은 실제로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믿음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 정확한 지적이다. 



대중만이 아니라 탁월한 법률가들조차도 '자연적으로' 성적으로 공격적인 남성은 여자의 거절을 진짜 욕망을 숨기는 대수롭지 않은 제스처로서 무시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강간 피해자들은 '좋은' 여자와 '나쁜' 여자로 나뉜다. 명백히 폭력이 사용된 곳에서조차도 피해자가 '의심스러운 평판'을 가졌다거나 '형편없는' 성도덕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에는 '동의'가 제공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p 135) 


이전에 읽은 <페이드 포>가 생각났다. 말하자면 성매매 여성들은 위의 기준으로 볼 때 '나쁜' 여자일 것이고 따라서 이 사람들은 '더' 막 대하고 폭력을 행사해도 되고 심지어 돈을 주었으니 '당연히' 성적인 모든 행동이 용납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위의 기준으로 볼 때 말이다. 



1994년 여름 리머릭에서의 그날, 내가 돈을 받았기 때문에 성폭행당하지 않았디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똑떨어지고 복잡하지 않은 언어로 성폭행이 설명되거나 기술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사회적 정의가 그릇된 것이라고 믿는다. 성매매에 내재된 성학대와 성매매 영역 밖에서 일어난 성학대 간의 유사성은 너무도 극명해서 무시해버릴 수 없다. (p 181)


이런 것을 레이첼 모랜은 '돈이 지불된 강간'이라고 했다. 이 표현이 적확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회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 그러니까 나쁜 여성, 그러니까 형편없는 성도덕을 가진 여성은 이런 짓을 당해도 된다, 이런 건 당연한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기저에 깔려 있다면, 세상은 그릇된 거다. 정확히 그렇다. 







동의는 언제나 어떤 것에게 주어져야만 한다. 양성 관계에서 남자들에게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어제나 여자들이다. '자연적으로' 우월하고 능동적이고 성적으로 공격적인 남성이 주도권을 행사하거나 계약을 제안하며 '자연적으로'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여자는 이에 '동의한다'. 평등주의적인 성적 관계는 이러한 기초에 의지할 수 없다. 그것은 '동의'에 근거 지어질 수 없다. 어쩌면, 여자와 동의의 문제에서 가장 현저한 측면은 다음과 같다. 즉, 두 동등자들이 함께 지속적인 연합을 창조하기로 자유롭게 동의하는 개인적 삶의 형태를 구성함에 있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언어가 없다. (p 146)


'동의'를 했냐 안 했냐가 화두가 되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것을 여성이 마치 자율적인 선택권이 있는 것마냥 받아들일까 말까를 결정하는 것처럼 만들어서 여성에게 귀책사유를 돌리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에게 '동의'라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 '동의'라는 것의 범주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성평등이 없는 상태에서 공격은 남자가 방어는 여자가, 그런데 공격은 남자의 본성이니 방어를 잘 하라는 식의 논조를, 정치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유지하는 한, 남녀 관계에서의 가부장적인 구조를 깨기는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 책이 번역만 좀더 매끄러웠더라면, (어쩌면 내가 기본적인 지식이 좀만 더 있었더라면) 정말 크게 와닿을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부분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2-09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9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1-02-15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의라는 범쥐를 따져봐야하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강요된 동의인지, 자율적인 동의인지도 중요할 것 같고. 공격자들을 과연 동의, 거부라는 것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비연 2021-02-15 22:3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한 단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하나의 단어를 보더라도 참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고들이 나올 수 있는 것 같구요. 번역이 좀 힘들긴 해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마다 일상에서 좋아하는 순간들은 다 다르기 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은, 주말에 와인과 안주를 놓고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 사실, 와인만이면 모르겠지만 안주까지 대동하면 책 보기는 좀 어려울 수 있고 대부분 이런 상황에선 영화를 본다. 


최근에 매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일이 일단락되어서 (아직 요원하긴 하지만) 편한 마음으로 이 자세를 취하며 영화를 보는 시간을 한번씩 만들고 있다. 많이 행복한 시간이다. 


와인 안주를 만들면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는 것도 꽤나 즐겁다. 넷플릭스와 왓차가 내 곁에 있으니 왠만한 영화는 다 볼 수 있고 그래서 이걸 볼까 저걸 볼까 꼼지락거려보는 재미가 그만이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암튼 어제 일요일 저녁에 내가 그런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는 것이고, 영화는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를 선택했습니다, 이 얘길 하고 싶은 거다. 







이 영화를 알게 된건, 빌 게이츠 덕분이다. 빌 게이츠가 이 영화의 원작인 실화 소설을 그 해의 최고 소설 중에 하나로 꼽았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것. 그렇다. 이 영화는, J.D.밴스라는 실존 인물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쓴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날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빌 게이츠가 얘기하기도 했고 해서, 책을 보기 전에 우선 영화부터 찜을 해둔 상태였다. 어젠, 문득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강렬한 감정에 휩싸여 선택. 거실 탁자에 와인과 안주(브리치즈구이)를 놓고 감상 시작. 




(*아름답다. 그만큼 칼로리는 폭탄이었음을 고백..;;) 



영화는 예일대 법대에 재학 중이고 중요한 인턴십 면접을 앞에 둔 J.D.밴스가 누나로부터 엄마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는데서 시작한다. 입원의 이유는 헤로인 과다복용. 뭐 이 쯤 되면, 어떤 내용이 전개될 지 예상이 되기 시작한다. 최종 면접이 잡힐 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일단 엄마에게 가기로 한다. 그 와중에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가게 된다. 


오하이오주에서 살던 J.D.밴스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누나, 이렇게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낳아준 아빠는 알 수 없고 엄마는 간호사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 알고 보면, 엄마는 고등학교 때 매우 우수했으나 꼬이고 꼬여 결국 이렇게 된 것이라고 중간에 설명이 나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지금은 하고 있지만, 사실은 할아버지는 주사가 심해서 어릴 때 아이들을 학대했고 할머니는 그걸 막고자 심지어 할아버지에게 불을 붙이기까지 했었던 아픈 과거가 있다.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걸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엄마는 마약에 손을 대게 되고 결국 일자리도 잃게 된다. 아들인 J.D.밴스를 데리고 누군가와 결혼을 하지만 거기에서 J.D.밴스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어 술을 먹고 사고를 치고 성적은 바닥을 기게 된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손자의 양육을 맡겼다가 이렇게 뒀다가는 인생을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딸에게서 손자를 데려온다. 그리고 단호하고 강하게 손자를 대하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애를 쓴다. J.D.밴스는 첨에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가 할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약도 못 먹으면서 손자를 위해 음식을 구걸(?)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고는, 마음을 잡게 된다. 그렇게 그렇게 알바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래서 해병대도 가고 대학도 가고.. 이젠 예일대 법대생이 되었다. 이 얘기. 




















힐빌리(Hillbilly)는 사전적 정의는 '두메산골 촌뜨기' 인데, 뉘앙스는.. 우리나라 말로 따지면 '흙수저' 정도의 의미인 것 같다. (아 이 용어 정말 싫지만 말이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인턴십 면접을 갔더니 유수한 집안의 자제들이 (예일대이니 어련하겠는가) 와서 아빠 얘기하고 집안 얘기하고.. 정작 본인은 포크와 나이프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는 채,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멀뚱멀뚱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보면 '개천에서 용난' 얘기이고, 그 핵심엔 가족이 있다..를 강조한다.


어수선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가족이지만, 가족이 지지대가 되었기에 지금의 나가 있다.. 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할머니는 특히, 손자의 장래를 위해 헌신한다. 엄하게, 살아남을 길에 대해 얘기하고 없는 살림에 그렇게 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한다. 누나는, 어렵지만 엄마를 용서하려 하고 감싸려 하고 동생을 보호하고 싶어한다.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자식을 보호하려 하고 나중에 아들이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조용히 잡고 있던 손을 놓아준다. 가라고. 가족은 말한다. 남을 건드리지는 마라. 그러나 나를 건드리면 끝까지 대적해라. 그러다 안되면, .. 가족이 나타날 것이다. 


영화는 좀 밍숭맹숭한 느낌이 나기도 하고, 대단히 감명깊다 싶지는 않지만, 미국이란 사회, 러스트벨트라는 곳에서의 사람들의 삶,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체제들, 계급적인 사고방식, 이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에 대한 비평도 비평이지만, 책에 대한 비평도 만만치 않다. 저자가 군데군데 백인우월적인 요소들을 계속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제일 커 보인다. 백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이 상황을 대면하는 것과 흑인이나 다른 인종이 대면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일 테니까. 결국 저자는 성공한 백인이고 이제 그 관점에서 과거를 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게다. 빌 게이츠도 백인이니.. 아마도 인종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는 그다지 못 느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관함에 넣긴 했는데, 살지 안 살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 말미에, 실제 인물들의 근황과 사진들이 나온다. 와. 내가 진정 놀란 건, 배우들과 실존 인물들의 싱크로율. 거의 도플갱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아서 이게 실제 인물인지 배우인지 살짝 살짝 놓치게 되더라는 것. 글렌 클로즈의 나이든 모습이 슬프긴 했지만(예전엔 화려한 악역으로도 많이 나왔어서 더 그런 듯) 역시 연기력은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하기도 했고. (감독이 론 하워드라는 것을 고려할 때) 영화의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난 건 아니지만 볼 만은 했다. 배우들 연기도 좋았고.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1-02-08 14: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것도 책 사놨어요... 아아 세상의 모든 책을 갖춘 나란 사람... ㅠㅠ
저 안주 이름이 브리치즈였군요! 비쥬얼 너무나 훌륭하고 와인과 찰떡일 것 같습니다. 아름다워요 ㅠㅠ

보다 말았지만 글렌 클로즈는 그 뭐지, 마이클 더글라스랑 나왔던 가면의 정사였나, 거기에서의 모습이 퍼뜩 떠오르네요. 백래시 읽다가 가면의 정사 보고 싶어져서 봤는데 앞에 조금 보고 그만뒀었죠...

유부만두 2021-02-08 14:16   좋아요 4 | URL
영화 ‘위험한 정사’에요. 거기서 글렌 클로즈 엄청 무섭게 나왔었죠. 그런데 불륜남은 용서받는듯한 결말이 엥? 스럽던 기억이 나요.

비연 2021-02-08 14:21   좋아요 3 | URL
전 이 책은 평을 보고 아직은 망설이는 중... 살까말까 살까말까.
와인 안주.. 저거. 너무 간단하고 너무 맛나요. 추천~ ㅎㅎㅎ

글렌 클로즈 나온 영화 <위험한 정사>.. 글렌 클로즈가 예전엔 정말 무서운 역에 많이 나왔었는데.
저도 결말이 좀.. 뷁스러웠던 기억이..;;;;

유부만두 2021-02-08 14:1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힐빌리 영화 찜 해두었어요. 글렌 클로즈의 변신이 정말 대단하죠?!
신기한 건 힐빌리 깡촌 사람 어린 시절이 90년대잖아요? 그게 그렇게 옛날 같지 않은 전 옛날 사람인거죠? 그게 좀 슬펐어요.

비연 2021-02-08 14:23   좋아요 5 | URL
전 처음엔 글렌 클로즈인지도 몰랐어요. 이름 박혀 있으니 이 사람이겠지 싶은.. 헉.
흠.. 90년대면 옛날 아닙니다! ㅎㅎ (저도 옛날 같지 않거든요 ㅋㅋ)

미국이란 나라가 빈부격차가 더 크고 사실은 계급이동도 쉽지 않은 나라라서, 요즘도 그럴 거에요. 미드 같은 거 보면, 켄터키주나 네바다주나 이런 데서 왔다고 하면 막 무시하고 안 끼워주고 그러더라구요.;;;

수이 2021-02-08 15: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읽으려고 어제 샀는데 이렇게 또 비연님 페이퍼에서 똬악 마주하네요. 영화 넷플에 있는지 몰랐는데 봐야겠어요. 비연님 와인 사진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요. 어플도 사용하시지 않는 거 같은데 어쩜 이렇게 예쁘게 나올 수가 있지?! 영화 보고 책 읽으면 도움될듯 해요. 고마워요 비연님

비연 2021-02-08 18:12   좋아요 2 | URL
어머어머. 이런 우연의 일치가! 영화 보시는 건 추천드려요~ 보고나서 책 읽으면 여러모로 새로울 듯.
사진은.. 흠.. 수많은 실패 끝에 한 장 건진 걸 올리는 거라 ㅋㅋㅋ

얄라알라 2021-02-08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이미 아담스가 영화 위해, 모습을 바꾸었나봐요. 영화도 기대되네요^^

비연 2021-02-08 18:12   좋아요 2 | URL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를 아주 실감나게 합니다. 굿이에요~ 영화 한번 봐보심도 괜찮을 듯^^

붕붕툐툐 2021-02-08 2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저 쉽지만 만난 안주의 요리법을 알려주세요, 플리즈~ 저 사진 이후로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오네요~ 전 역시 글보다 먹는게 좋은 먹보인가봐요~😊

scott 2021-02-08 21:05   좋아요 2 | URL
비연님이 나중에 차근 차근 알려주시겠지만
일단 제 스톼일 레시피를 알려드리면 ㅋㅋ

*필요한 재료- 브리치즈 한통(원통형으로 생긴게 브리치즈 구이용)
믹스 견과 두봉지

꿀 적당히(메이플 시럽도 오우케이!)
체리-블루베리 딸기 같은 베리류 생과일(있으면)
1오븐에 구워야하기 떄문에 브리치즈를 종이 호일 위에 올려놓고 포크로 뽕뽕 질러주세요(꿀이 스며들수 있게)
2구멍난 브리치즈 위에 꿀 한스푼(넓게)을 발라주세요
3믹스견과류를 꿀바른 브리치즈위에 뿌려주세요
4오븐(170도 정도)넣고 15분 땡!-전자렌지에 해도 되지만 맛은 ㅋㅋㅋ
체리-블루베리 딸기 같은 베리류 생과일과 함께 냠~냠~*(카나페처럼 크래커 위에 올려놔도 맛남~*)

비연 2021-02-08 21:05   좋아요 2 | URL
scott님, 딩동!
더 자세한 건 아래 링크 클릭요^^

https://in.naver.com/witchyoli/contents/234213742074336?query=브리치즈

붕붕툐툐 2021-02-09 13:04   좋아요 2 | URL
꺅! 얼마전 회생시킨 오븐을 돌릴 절호의 찬스군용! 스콧님, 비연님 감사해욤~😻😻

han22598 2021-02-09 0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ook보다..movie보다....역시 food! 정말 탐나는 안주네요 ^^

비연 2021-02-09 07:3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이런이런~ 안주사진도 가끔 올려야겠어요 ㅋ

붕붕툐툐 2021-02-09 13:05   좋아요 1 | URL
ㅋㅋㅋhan님께 공감백배! 안주사진 많이 올려주세용~😻😻
 
















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 2월의 책, <여자들의 무질서>. 무질서(disorder)라는 단어가 좋아, 으헝, 하면서 딱 펼쳐드니.. 역시나 다른 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 선정도서들과 마찬가지로 서론이 내 앞을 가로 막는다. 다행히 33페이지까지 밖에 되지 않아서, 그래, 서론인데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흠. 어렵네? 허허.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니, 역시. 캐롤 페이트먼은 정치학자였던 거다. 사회학자나, 법학자나, 여성학자나, 역사학자나.. 가 아니라, 이제껏 잘 접하지 못했던 정치학계의 거두였던 것이다. 그러니 시각은 정치학적인 시각. 같은 사안이라도 풀어내는 것이 새로울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복지국가의 경우에 아이러니는 여자들이 복지에 기여하라고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복지는 여자들이 가정에서 아이, 노인, 병약자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제공하는 사적인 무급의 '복지'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국가가 여자들에게 한 요구들은 고유한 사적 책무를 갖는다고 간주되며 따라서 시민으로서의 지위가 애매하고 모순적인 자들에게 적합한 형식을 항상 취해왔다. 여자들의 '기여'는 그들 시민권의 일부로 혹은 시민권과 유관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고, 그들의 성에 고유한 사적 책무의 필수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p 24)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서, 남성은 공적이며 여성은 사적이다. 따라서 시민은 남성이고, 여성은 남성의 피부양자의 자격만 있을 뿐이며,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성별 자체를 기반으로 한 사적인 책임 뿐이다. 오. 명료하게 정리되네. 이렇게 돌봄노동의 문제도 나오고, 성적 동의라든가 하는 문제도 나오고... 시민이 아니니 노동자의 범주에도 들어가기 힘들며, 그러니 어떤 권리를 얘기할 때 양성적인 측면을 고려하기 힘들게 된다. 그러니 여성의 급여는 작을 수 밖에 없고 직장에서의 위치는 애매하다. 시민의 범주에 못 들어가고 노동자의 범주에 못 들어가고, 그냥 남성에게 종속된 상태로 남게 된다... 아니, 이 책이 1989년에 나온 책인데도 왜 이렇게 절렬하게 느껴지는 거지. 왜 아직도 이런 걸 현실로 느끼게 되는 거지. 갑자기 분노스러워지는. (활활)


서론까지 읽고, 일단 덮고, 일요일의 마무리를 위해(흠?) 와인과 영화를 누릴 생각이지만... 역시나 서론밖에 읽지 않았음에도 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 선정도서는 '놀랍다' 싶다. 어려워도 흥미롭고 쉽지 않아도 읽고 싶어지는 책들 뿐이다. 부라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2-07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역시 비연님~^^♡ 부라보!!

비연 2021-02-07 20:38   좋아요 2 | URL
^_________^
 
















주된 관심사가 'equity'에 있다보니 이런 책들을 좀 찾아보는 편이다. 제목을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저렇게 되지만 원제는 <Poor Economics>, 말하자면 빈곤의 경제학 정도가 되겠다. 제목이 현혹되어, 아,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인 거야? 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좀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그 상황에서 하는 선택이 우리가 봐선 아니겠지만, 그들에겐 '최선의' 선택이다. 그들에게도 그 나름의 합리적 상황 배경이나 이유가 있다 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고, 따라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들을 개선해주면 그들도 우리가 보기에도 reasonable한 선택이 가능하게 된다. 큰 변혁이 아니라도 작게 작게 시작하면 변화할 수 있다. 요약하면 뭐 그런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결론 부분이 아니라 그 문제의식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난'이 뭐지? '가난한 사람'은 뭐지? 우린 왜 그들을 '도와야' 하지? 그들을 돕는다고 하는 방법이 맞는 건지? 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게 흥미로왔다. 생각해보면 가난한 나라를 원조하는 많은 입장에서, 그들을 가난하다고 규정한 이유가 있을 테고 그들에게 돈이든 현물이든 사람이든 지원할 때는 이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일텐데, 어쩌면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딱, 지원하는 입장으로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의문심이 들어 버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축 행위는 사람들이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자신의 바람을 실현할 기회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솔한' 소비를 줄이고 미래에 투자하려 한다. 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달리 계획이 없다. 이에 따라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간의 저축 활동이 달라지고 똑같이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저축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p275~276)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돈을 주면 저축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필요한 소비재를 산다. 자식을 교육시키려 하지 않는다. 현재 더 개선할 여지가 있어도 그냥 그 상태에 머무르려고 한다. 처음엔 잘 하는 것 같다가도 나중에 그대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국가에 뭔가를 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그들은 그러니까 가난한 거다... 라는 생각에 반문을 하고 있다. 그들이 먼 미래를 바라보고 뭔가를 하기 위해선, 그 먼 미래에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에겐 그게 없다. 따라서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지내는 거다. 따라서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불어넣어주면 그들에게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라고 저자들은 말하고 싶은 거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희망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골대를 조금 가깝게 밀어주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첫걸음을 내딛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p278~279) 


이 점에 동의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는 '넛지'가 필요하다. 그냥 돈을 주면 되지 현물을 주면 되지 봉사활동을 하면 되지 이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한다면 그 길은 요원하다. 그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거기에서 motivation 될 수 있는 trigger를 잡아주는 것이 제일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한 걸음 내디디면 그 다음 걸음을 내딛기가 쉬워지니까. 


개인적으로 지금의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동남아시아 권의 빈곤은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나라들에게서 수탈받은 경험으로 인해 상당히 왜곡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빈곤이 그냥 경제적으로 못산다, 이게 아니라 그 안에 역사적으로 쌓여온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내재되어 하나를 해결하려고 하면 다른 하나가 걸리기도 하고, 정치나 사회가 너무 부패하여 빈곤이란 것이 풀리지 않는 매듭이 되어버린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빈곤한 나라들에 원조라는 것을 할 때 '정치적' 개입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해결하지 않으면 빈곤이 해결되지 않는데? 라고 얘기한다 해도,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치적인 개입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큰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그래서 소액금융제도 등과 같은 시도가 의미가 있다고 보다. 



일반적으로 원조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동반하고, 지도자들이 부패한 상황에서 원죠를 계속하면 정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스털리가 비관적인 입장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각 국가가 저마다 성공 비결을 찾을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도록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한 가지 전문가적인 충고를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자유다. 이것은 최대한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적 자유란 '가장 과소평가되고 있는 인간의 발명품', 즉 자유시장이다. (p325) 



이 견해에 일견 동의하고..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상태로 그냥 방치하자가 아니라, 자꾸 Top-down방식으로 하려 하지 말고 'Bottom-up'방식으로, 그러니까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유도해보자, 라고 제의한다. 그냥 인도주의적으로 감정에 호소해서 원조를 하려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난한 사람/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그 부분을 해결하자는 것. 이런 논의제기로 이들은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제 경제학이란 것이 주류경제학에만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노벨상의 흐름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후속 작품으로 이 책도 나와 있길래, 일단 사두었다. 지금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곧 보게 될 것 같다. 세상이 마냥 나빠지지만은 않는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건, 이런 학자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실천에 기반한 연구를 끊임없이 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 같이 잘 살자라는 취지 아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더디더라도 그 노력을 조금씩 인정받아 가는 흐름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꽤 읽을 만 했다. 문제의식을 달리 했을 때 사안이, 그 해결방안이 얼마나 달리 보일 수 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1-02-06 19: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저축 하신 것 같아요. “후속 작품으로 이 책도 나와 있길래, 일단 사두었다.”ㅎㅎㅎ 비상식량 마련, 그렇게. 책 산 것에 대해서 이렇게 우아하게 말하시다니!😅

비연 2021-02-06 22:2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책저축. 정말 딱 맞는 표현요^^

붕붕툐툐 2021-02-06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이 읽고 있어요 올릴 때부터 내용 궁금했는데, 드뎌 완독하시고 후기 남겨주셨군요!! 앞부분 딱 저예요~ 내가 합리적인 이유가 궁금했는데!ㅋㅋㅋ
저는 오늘 친구랑 대화하면서 가난이란 뭘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거든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인 거 같네요!!

비연 2021-02-06 22:29   좋아요 2 | URL
가난이란 뭘까요. 정의라는게.. 참 중요한 거 같아요. 뭐든 거기서 시작하는~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