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살면서 아무 이유가 없거나 앞으로도 영영 이유 같은 건 찾지못할 일들을 수없이 하고 있으며, 심지어 끝없이 반복한다. 너희는 아무 이유 없는 행동을 하며 행복해한다. 이유 없는 행동을 이유 없이 하다가 이유 없이 성장한다. 그것이 내가 지난 세월부터 오늘까지 수도 없이 보아온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갑자기 술에 취해 나타나서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나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마치 너희가 원래 마땅한 이유 없이는 절대 행동하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모르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그 어떤 행동이든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존재인 것처럼 여기에 앉아서울고 소리치고 화내고 낙담하고 절망한다. 그리고 서럽게 운다.
갑자기 자기가 아닌 존재라도 된 듯, 지금 이순간 자기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는 듯, 운 다. 나, 오래된 나무, 여기, 내앞에서……….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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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현실을 살아내는 10대 아이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위로하듯 판타지하면서 아름다운 로맨스를 곁들인 소설, 내일의 피크닉!​

고아로 스무살이 되면서 보호종료가 된 수안, 배달로 하루벌이를 하며 살아가던 어느 비오는 날 연을 만나게 된다. 연은 1년전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다. 비를 타고 왔다는 연은 수안에게 대뜸 고백을 한다. 그리고는 수안을 빗방울에 태운다. 그렇게 시작되는 수안과 연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오가며 펼쳐진다. 빗방울을 타거나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이는등 연의 세상은 환타지 그 자체다. 그런 연을 만나는 시간을 설레어하는 수안의 로맨스가 참 예쁜 청소년 성장 소설이다.

배달라이더로 살아가는 수안의 오토바이 배달을 통해 엿보게 되는 노동 현장의 실상이 참으로 고달프다. 그런 수안에게 위로가 되는건 비를 타고 오는 연이다. 비오는 날만 기다리는 수안에게 연은 꿈으로도 찾아온다. 그리고 한때 친구였던 해원에게서 건네 받게 되는 일기를 통해 연의 죽음에 관한 과거 이야기도 따라 나온다.

해원과 연은 한때 친했지만 어느날 멀어진 친구다. 기업체 현장실습장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둘은 다시 가까워진다. 두 소녀의 이야기는 콜센터 현장의 부조리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로 인해 연은 불행한 선택을 하게 되고 아이들을 응원했던 선생님까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수안의 배달라이더도 그렇고 아직 성장하는 아이들을 책임져주는 어른은 왜 하나도 없을까? 궁지로, 사지로 내밀기만하는 어른들이 참으로 부끄럽다.

수안과 연, 해원은 호우가 쏟아지던 날 선생님과 함께 김치전 한장을 부쳐 먹는다. 그동안의 아픈 이야기들이 승화되는 순간이다. 연은 점점 흐려지고 자신의 세상으로 떠나게 되지만 그것이 결코 슬프지만은 않다. 스스로 생각할줄 아는 아이들로 성장했으며 내일의 피크닉이 있으니까! 청소년 근로 현장의 비리를 고발하는 소설이며 꿈을 꾸는 것 같은 수안과 연의 이야기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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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청색지시선 7
이어진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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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어들이 달빛처럼 흘러넘치는 이어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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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청색지시선 7
이어진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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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이끌리는 책이 있다. 제목에 이끌리는 책이 있다. 표지와 제목 모두에게 이끌리는 시집, 이어진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


꽃보다 사람이라고 했던가, 아름다운 책이다. 표지를 보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괜히 두근두근 설레어하면서 책장을 펼친다. 그렇게 시작된 시와의 만남은 참으로 색다른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마침표도 쉼표도 없이 쭈욱 펼쳐지는 시라니, 시어들이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흐르고 있으며 그 흐름속에 함께 흘러가는 기분이 된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시라고 생각했던 모든 형식의 틀을 깬 다. 그런데도 아름다울 수 있다니!


시인의 말에서부터 그랬다. 이러저러한 어떤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시를 읽는 상대를 불러 들여 곁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이야기들이 달빛으로 흘러넘치게 만들어 버리다니, 몽환적이기도 하고 판타지하기도 하며 시공간이 자유롭게 펼쳐져 마치 다른 세상속에 있는것 같은 기분도 든다.


너는 문장들을 밟고 있다 단어들이 계속 계단을 만들고 있다 너는 단어들을 밟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너는 흰구름을 밟고 문장을 오르고 있다 문장으로 연결된 계단을 밟고 너는 집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불이 꺼지고 너는 단어처럼 가만히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잇다 백 층 깊이의 계단을 파헤치며 너는 시를 읽고 있다 계단이 되너 가는 나를 읽고 있다 -p19


어쩌면 시인의 시를 표현하는 한편의 시인듯하다. 시어들이 질서없이 뻗어 나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뻗어 나간 가지들이 우주로 저 반대편의 어느 곳으로 혹은 내안으로 눈으로 길바닥으로 막 내던져지고 흩어지고 펼쳐치고 그런다. 몸에서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아침과 점심이 교대로 외출하고 책속에 내가 잠들고 실어증에 걸린 커피를 마시고 날개가 너의 눈 안에서 파닥거리고 마음에 바람이 젖어들고 잎사귀를 바라보다 눈이 먼다.



아름다운 시 한편을 필사해본다. 단어들이 계단을 만들고 그 계단을 밟고 또 단어들이 만들어지는 느낌으로 시를 필사해본다. 그저 누구든지 이어진시인의 시집을 그냥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너는 문장들을 밟고 있다 단어들이 계속 계단을 만들고 있다 너는 단어들을 밟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너는 흰구름을 밟고 문장을 오르고 있다 문장으로 연결된 계단을 밟고 너는 집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불이 꺼지고 너는 단어처럼 가만히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잇다 백 층 깊이의 계단을 파헤치며 너는 시를 읽고 있다 계단이 되너 가는 나를 읽고 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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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간듯
쉼표도 없이 이어지는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들,
읽다가 방황하고 길을 잃게 되지만
현실과 사차원의 경계를 넘나들듯 오락가락하다
그 끝에 도달하게 되면
왠지 아무렇게나 자라나 황홀한
자연의 풀숲을 지나온 기분이 된다.





동백을 사랑하는 손연필을 깎아 꽃병에 꽂아 두면 도화지 속에서 하얀 손가락이 돋아 나왔네 흑심이 다 닳아갈 때면 창문 밖으로피어오르는 동백나무들 사각사각 눈 위를 달려오는 꽃잎들 동백정원을 뛰어다니는 말발굽 소리

벽이란 벽은 모조리 너의 환영으로 피어나, 뼈와 뼈사이에 꽃잎이 달싹이고 검은 가지는 벽의 어깨를 감아쥐고 지붕 위로 올라가고, 꽃잎을 입으려고 도화지의 깊은 눈동자가 반짝이네 꽃잎 울림 잠깐이면 돼요 손가락은 바쁘네 태어나기도 전에 우린 서로의 색을 알아차린것일까 붉은 색깔의 물감이 손목에서 흘러나왔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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