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제인 구달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엄청난 열정으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돌아갔습니다. 방한 기간에 카이스트에서 진행한 강연회 내용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통역은 제인 구달의 한국 매니저 역할을 자임하는 최재천 교수가 맡았고, 강연 녹취는 사이언스북스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녹취 원고를 바탕으로 제가 편집을 했는데 혹여 내용의 오류나 의미 전달에 문제가 있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저에게 있습니다.
 

제인 구달 선생님께서는 이번이 다섯 번째 한국 방문이십니다. 전에는 서울에서만 강연을 했는데 이번에 카이스트와 인연이 닿아 대전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도시 대전에서 제인 구달 선생님의 강연을 진행하게 되어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부디 이 강연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올해는 선생님께서 아프리카 곰비 현장연구를 시작하신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희망의 자연>을 여러 분에게 전하고 선생님께서 이끄는 환경운동 ‘뿌리와 새싹(http://www.tongsub.net/rs)의 활동에도 힘을 더하기 위해 기꺼이 한국에 오셨다고 합니다. 그럼, 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침팬지가 알려준 ‘외로운 인간’
(그 유명한 제인 구달 선생님의 침팬지 언어 시연으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1960년 탄자니아에서 시작한 침팬지 연구가 50년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프리카에서 연구하는 꿈을 꿨는데 자금도 없고 여자의 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실현될 날이 올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기대와 희망은 헛된 꿈이 아니었던 셈이죠.
  아프리카에 가서 처음 만난 분이 인류학 연구자 루이스 리키 박사였습니다. 리키 박사는 야생 침팬지를 10년 정도 연구할 사람을 찾았는데 저는 망설임 없이 그 일에 도전했습니다. 이후 50년을 연구하면서도 매번 침팬지가 인류와 얼마나 비슷한지 놀라게 됩니다. DNA가 1% 남짓한 차이라 혈액형만 맞으면 수혈도 가능할 정도니까요. 면역 체계와 뇌구조도 거의 비슷하죠. 침팬지는 다른 영장류처럼 떼를 짓지 않고 작은 그룹을 만들어 살다가 경우에 따라 뭉치기도 합니다. 모자, 형제, 가족 관계로 거의 60년을 같이 보내지요. 암컷은 거의 모든 수컷들과 짝짓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혀낼 수가 없습니다. 침팬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개체가 개성을 갖고 있는데, 거울을 보며 자신을 인식하기도 하고 유머 감각도 있는 편이죠. 이런 점들을 볼 때, 침팬지는 "우리 인간만 자연계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탄자니아의 현장에서 1년 반쯤 연구를 하다가 학위가 필요하다는 말에 케임브리지 연구소에 갔는데 왜 침팬지에 번호가 아니라 이름을 달았느냐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피피는 어떻게 지내요?’가 아닌 ‘42번은 어때요?’라고 묻는 게 이상했는데 말이죠. 그곳에 있는 대단한 교수들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또 하나의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동물도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죠. 그 선생님은 바로 개입니다. 동물과 같이 지내본 사람은 다 압니다. 그들 각자가 모두 개성과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침팬지 연구를 하기 전부터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연구가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를 알려줄 거라고 생각했었죠.  


가장 똑똑한 생명체가 지구를 해친다
제가 처음 아프리카에 갔을 때는 침팬지가 100만 마리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30만 마리도 안 됩니다. 사람들이 사냥하고 숲을 없앴기 때문이죠. 1986년에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았습니다. 야생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는 모든 연구자가 모였습니다. 이 회의에 참여하기 전까지 저는 좋아하는 연구를 하며 침팬지와 함께 산다는 것 자체로 무척 행복했는데, 이후에는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단순한 연구자가 아닌 활동가 역할에 중심을 두었고 이후로는 한 곳에서 3주 이상 지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각지를 돌아다니며 질문을 했습니다. 아프리카는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비참한 곳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제국주의 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라 해결책도 쉽게 보이지 않았고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인간이 얼마나 많은 생물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 계신 분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번 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저도 일본, 중국, 홍콩을 거쳐 한국에 왔으니 여름을 뜨겁게 보낸 셈이죠. 지구온난화를 실감한 여름이었습니다. (웃음) 작년에 그린란드에 갔을 때 거대한 빙벽이 무너져 내리는 걸 봤습니다. 함께 있던 에스키모 말이 30년 전에는 여름에도 녹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만약 극지방의 모든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은 지금보다 7미터나 높아집니다. 파나마에 갔더니 바닷가의 집들이 점점 내륙 쪽으로 이사를 가고 있었습니다. 해수면이 높아지니 섬에 사는 사람들은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인간은 가장 똑똑한 생명체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 행성을 망가뜨리고 있는 걸까요? 오래 전 계산이지만 모든 인간이 미국인처럼 소비한다면 지구가 3개나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만약 지금 새로 계산해본다면 대여섯 개 혹은 더 많은 지구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런 수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건 어머니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는 거죠. 



‘희망의 자연’에서 발견한 생명 이야기
물론 비극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세계 각지에서 종의 멸종을 막기 위해 삶을 바친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희망의 자연>을 쓴 겁니다. 그래서 이번 책을 쓸 때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뉴질랜드의 검은울새 이야기입니다. 제가 만난 돈 머튼은 고양이 같은 포식자로부터 검은울새를 지키기 위해 삶의 터전을 본토에서 섬으로 옮겼습니다. 정부는 어디든 마찬가지인지 그 역시 행정 문제로 1년이나 허가가 나지 않아 고생을 했습니다. 결국 7마리만 남았는데, 이중 2마리만 암컷이고, 또 2마리 가운데 1마리만 임신이 가능했습니다. 슬프게도 임신이 가능한 새의 남편은 생식 능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 암컷 ‘올드블루’는 ‘올드옐로’라는 새 남편을 얻었고 마침내 2개의 알을 낳았습니다. 머튼은 알 2개를 꺼내고 둥지를 망가뜨리면 두 새가 새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을 거라고 기대하고는 그 두 알을 다른 새에게 탁란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이었고, 올드블루는 새 둥지에서 알을 다시 낳았습니다. 이후 탁란했던 새끼가 알에서 깨자 다시 부모에게 돌려줬고, 새 알은 다시 탁란하는 식으로 반복해서 새끼 6마리를 얻었습니다. 생물학자 3명이 함께 새끼를 키웠고, 매년 이 일을 반복하여 이제 200마리 이상의 새가 섬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2cm 크기의 아메리카송장벌레입니다. 송장벌레는 사체를 두고 수컷끼리 싸우는데 이긴 수컷이 암컷과 짝짓기를 합니다. 조금만 지체하면 파리가 사체에 알을 낳기 때문에 재빨리 옆에 방을 만들고 알을 낳습니다. 송장벌레 부모는 새끼가 씹을 수 있을 때까지 대신 씹어서 먹이를 줍니다. 그리고 애벌레가 직접 먹이를 씹어 먹을 수 있게 되면 곁을 떠납니다. 이게 사람이 아니라 곤충이 하는 일입니다! 제가 만난 젊은 곤충학자 ‘루 페로티’의 말로는 한 할머니가 이 송장벌레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식이 손자들을 키우는 것보다 더 잘 보살핀다며 7천 불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삶 역시 생태의 일부
다시 곰비와 침팬지 얘기로 돌아가보죠. 1960년 탄자니아에 처음 갔을 때는 수풀이 울창했습니다. 하지만 1986년 경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보니 곰비 국립공원을 제외한 다른 곳이 거의 황폐화되었더군요. 국립공원 바깥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무 하나 없는 심각한 지경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프리카 주민들이 땔감용으로 그리고 경작을 위해 나무를 베어버린 거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당장의 삶이 중요했으니까요. 그래서 주민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히 여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젊은 여성들에게 장학금을 줘 공부를 할 수 있게 돕는 등 여성의 삶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면 가족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과밀한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우선이라 판단했고 가족계획도 시도했습니다. 더불어 그루민 은행을 본떠 마이크로 크레딧 등의 프로그램도 시작했는데, 이런 경제적 뒷받침 덕분에 얼마 전부터는 훌륭한 커피를 경작해 미국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경제 사정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아, 이야기가 너무 멀리까지 왔네요. 어쨌든 이제 곰비에도 겨우 100마리 정도의 침팬지만 남았는데,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절실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떨어진 서식처를 연결시켜 주는 겁니다. 이제는 최신 기술로 숲속의 나무를 모두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기금도 확보해서 숲 보전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국립공원 주변의 숲들을 연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책 <희망의 자연>에는 황폐화되었다가 복원되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희망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눈앞의 일뿐 아니라 그와 연관된 다양한 것들을 함께 보기 시작하면 자연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책에는 인간의 지혜가 자연을 구한 사례들도 나옵니다. 완전히 망가진 것처럼 보이던 자연 환경이 되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검은울새처럼 멸종 직전에 있던 종도 되살아 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인간 정신 덕분입니다. 



잃어버린 지혜를 되찾는 방법
강의 초반에 제가 던진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십시오. 어떻게 이 똑똑한 인간이 이 행성을 망칠까요? 지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 자손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고민하는 대신 눈앞의 이익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머리와 가슴 사이에 큰 단절이 있었고, 기성세대들이 현실과 너무 쉽게 타협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절망적인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만들어낼 희망은 아직 충분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뿌리와 새싹'은 탄자니아에서 12명의 아이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21개국으로 퍼졌습니다. 고등학생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유치원 아이들부터 대학생들까지 층이 넓어졌고, 특히 대학생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메시지는 한 사람이 매일매일 노력을 기울인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모인 분 가운데 어린 학생들도 많습니다. 물론 환경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손들이 살아갈 때를 생각하길 바랍니다. 저는 76세의 나이지만 3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특별나서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에너지와 열정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슴으로 이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세계 121개국에 뿌리와 새싹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외롭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침팬지 이야기로 돌아가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어미를 잃은 2살배기 침팬지 이야기입니다. 이 침팬지는 의학 연구에 사용될 목적으로 미국에 보내져 15년 동안 조그만 우리에서 살았는데, 이제 의학 연구에 필요하지 않게 되어 3마리의 암컷과 함께 다른 장소에 보내졌습니다. 이 수컷 침팬지의 이름은 ‘올드맨’인데, ‘마크'라는 사람이 그를 돌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마크에게 침팬지를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먹이를 갖다 줄 때마다 그들이 서로 껴안고 키스하는 걸 보았습니다. 마크는 그들이 서로를 아끼는 모습을 보고 마음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러던 차에 바나나를 건네주다 손을 맞잡게 되고, 점점 가까워서 털도 골라주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크의 실수로 새끼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내 암컷이 뛰어와 마크의 목을 물고 죽이려 했는데 올드맨이 달려와 암컷을 떼어내고 마크를 구해주었습니다. 마크는 올드맨이 자기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합니다. 이건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학대받은 침팬지지만 인간에게 큰 도움을 준 일입니다.
  저는 우리 인간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뿌리와 새싹이 하는 일의 근거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바꾸기엔 정말 늦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 답은 이 책도, 제 강의도 아닌 여러분의 삶과 가슴 속에 있습니다. 명심하세요, 당신 안에는 희망의 본성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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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인 구달, '희망의 자연' 카이스트 강연
    from 사이언스북스 블로그 2010-10-22 13:29 
    제인 구달, 카이스트 강연 (1/6) 지난 9월말, 제인 구달 선생님이 출간과 환경운동 네트워크 '뿌리와 새싹'의 한국내 활동 활성화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강연회와 수목원에서의 '생물다양성의 해' 행사, 동물원 유인원관 방문 등의 행사는 간략하게나마 저희 트위터로 중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강연을 듣고 싶었지만 사정상 참석 못 하신 분들을 위해 얼마 전 강연 동영상을 사이언스북스 페이스북에 업로드하였습니다. 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된 피에르 바야르, 여름언덕에서 '패러독스' 시리즈로 그의 책을 꾸준히 소개하는 덕분에 텍스트 읽기의 새로운 맛과 멋을 즐겁게 마주하는 요즘입니다. 올해에도 <예상 표절>과 <셜록 홈즈가 틀렸다> 두 권이 소개되었고, <망친 작품을 어떻게 개선하는가>와 추리비평 3부작의 마지막 작품 <햄릿>도 멀지 않은 때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내년 봄 그가 한국에 온다는 거죠. 강연과 인터뷰가 이어질 텐데 가능하면 알라딘 독자분들과의 자리도 마련해보겠습니다. 

며칠 전 한국일보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culture/201010/h2010101721061486330.htm&ver=v002), 지면의 한계로 인터뷰 전문이 실리지 못했습니다. 피에르 바야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집중되는 알라딘에서 이 사태를 간과할 수 없어서 출판사의 도움을 얻어 이메일 인터뷰 전문을 공개합니다. 인터뷰 진행과 번역은 <예상 표절>과 <셜록 홈즈가 틀렸다>의 번역자 백선희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추리비평이란 무엇인가? 

<셜록 홈즈가 틀렸다>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두 책의 장르를 "추리비평"이라고 명명하셨습니다. 추리비평은 단순히 '추리소설을 대상으로 한 문학비평'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듯합니다. 추리비평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십니까?

사실 추리비평에 해당하는 작품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햄릿에 대한 수사>, <셜록 홈즈가 틀렸다>입니다. "영문학 3부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책들은 한편으로는 추리과정을 좇아서 책의 마지막에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에 관한 이론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두 가지 독서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요. 독자들은 책 한 권 값에 두 권을 얻는 셈입니다!
  추리의 관점에서 추리비평의 목표는 추리소설의 저자들과 그들이 무대에 등장시키는 탐정들이 범인을 지목할 때 종종 오류를 범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이론적 성찰의 관점에서는 매번 다른 문제에 관해 숙고하는데,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에서는 '해석의 망상'을, <햄릿에 대한 수사>에서는 '귀머거리들의 대화'를, <셜록 홈즈가 틀렸다>에서는 문학작품 속 인물들에 관해 성찰하고 있습니다. 추리와 이론적 성찰 가운데 한쪽만 읽고 싶은 독자는 관심 없는 장을 "건너뛰어도" 좋지요.

추리비평은 모든 추리소설에 적용이 가능한 건가요? 아니면 어떤 특성을 지닌 추리소설만 추리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요?

추리소설 대부분에 적용이 가능합니다. 대개의 추리소설은 수사가 치밀하지 못하고, 진짜 범인들은 꽤나 지능적이어서 법망을 벗어나곤 하기 때문이지요. 추리비평은 갖가지 미스터리(도난이나 실종 등)에 관해 수사하는 것을 임무로 삼습니다. 또한 인물들이 그들을 만들어낸 저자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책 속에서 자율적인 삶을 산다는 원칙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인물들은 살인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온하게 살기도 하지요. 종종 작가가 알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한 채 말입니다. 그들의 비밀스런 삶을 밝혀내는 것이 추리비평의 몫이지요.

3부작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로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셰익스피어의 <햄릿>,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와는 다른 인물들을 살인범으로 지목하셨는데요. 그것이 저자들의 의도라고는 생각하시지 않는지요? 다시 말해 이 저자들이 진짜 범인들을 감추고 독자가 책을 '제대로' 읽어내어 진짜 범인을 찾아내주길 기다린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선생님께서 작품에서 찾아낸 그 정교한 플롯을 훨씬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가정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이 작가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지요! 중요한 건 진실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작가에 의해 범인으로 잘못 내몰린 이 인물들의 후손들이 조상이 범했다고 간주되는 죄의 중압감에 눌린 채 살아가는 걸 상상해보세요. 저는 이들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겁니다.
  

 

 

이론적 픽션이란 무엇인가?

독서에 대한 충격적이고 전복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선생님의 저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이고 한국에서도 출간 이후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문학교수로서 정독하지 않은 책들을 거론하며 논의를 펼친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됐을 법도 한데요.

저의 모든 책이 - "추리비평"과 관련된 책만이 아니라 - 제가 "이론적 픽션"이라고 부르는 것, 다시 말해 픽션과 이론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이 책들에서 "나"라고 얘기되는 인물은 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화자입니다. 픽션의 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구분을 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인문학 서적에서 화자는 으레 저자와 동일시됩니다. 그런데 제 책에서 화자는 저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이를테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첫 페이지에서 화자는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으며 읽지 않은 책에 대해 강의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제가 그러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사실이라고 보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대충 훑어봐도 필요한 그 많은 예들을 찾기 위해 충분한 독서를 한 사람이 쓴 책임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론적 픽션의 이점은 소설가가 작중 인물들을 다룰 때처럼 여러 이론들을 온전히 제 것으로 삼지 않으면서 그 이론들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유동적인 텍스트를, 그 자체가 문학작품으로서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텍스트를 창출해내지요. 어쨌든 제가 바라는 바는 그렇습니다.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이 책에서는 유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유머에 어떤 자리를 부여하시는지요?

제 책에서 유머는 아주 중요합니다. 심지어 제 글의 첫째 목표라고 할 수도 있지요. 많은 인문학 서적에 유머가 있긴 하지만,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지요. 그렇지만 제 글에서는 유머가 중심에 있습니다. 유머 - 제 시도가 제대로 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만! - 는 인문학의 경우 대개 딱딱하기 마련인 이론적 진술 속에 일종의 '틈'을 만들지요. 이 '틈'이 조금 전에 픽션에 대해 얘기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텍스트를 한결 유동적으로 만들어 성찰하기 좋게 만들지요. 그런가 하면 인문학 서적은 진지하다는 생각에 길들어 있는 많은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지요.

선생님께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을 빌려 모든 독자에게 책이란 '화면 책들(livres-écrans)'이며 독자는 "책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이 만들어낸 그 대체물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73쪽)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독서란 결국 주관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책은 인간에게 어떤 메시지를 의미의 훼손 없이 전달하려는 의지가 담긴 매체이기도 합니다. 글을 써서 자기를 이해시키기란 불가능하다고, 씌어진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읽기란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자신을 이해시키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무렵 제 흥미를 끌었던 건 두 사람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부조리한 상황이었습니다. 부조리한 상황이지만 사실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인간의 의사소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황입니다.
  저는 <햄릿에 대한 수사>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한 해석들을 주의 깊게 비교 분석하고 나서, 같은 텍스트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믿는 두 비평가가 사실은 같은 책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비평가들은 적어도 해당 작품을 읽기는 했지요. 논의하는 텍스트를 읽지 않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텍스트에 개입하라!

<예상 표절>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그렇듯 제목부터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표절은 시간상 선행하는 텍스트에 대해 이뤄진다는 통념을 여지없이 뒤집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해한 바로 '예상 표절'은 '예술적 혁신의 선취', 즉 앞으로 일어날 예술적 혁신을 미리 간파해 자기 작품에 반영한다는 의미로 이해되는데, 이는 비난의 대상이긴커녕 예술가들의 지상목표가 아닐까요?

제 책에 제시된 사례에는 그런 '선취'만 있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표절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문제의 작가들은 후대 작가들에게서 예술적 요소들을 명백하게 차용하고 있지요. 그건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추리비평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저는 정의를 실현해서 각자에게 제 몫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비선형적 방식으로 문학과 예술의 역사를 생각해보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마치 위대한 창작자들이 미래의 예술적 주제와 형태들이 어떨지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어떤 주제나 형태가 순환적인 방식으로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오늘날 작가들에게 "미래의 발명에 가담할 수 있는 미학적 요소를 과거로 찾아나설 것"(118쪽)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역시 어떤 면에서 창작을 활성화할 수 있는 독서방법을 제시하는 책으로 읽힙니다. 책(독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은 결국 뛰어난 창작법을 확립하기 위해서인지요?

제가 제 책에서 펼치고 있는 비평의 행보 전체가 곧 창작의 행보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독자에게 텍스트 앞에서 가만히 있지 말고 텍스트에 개입하도록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독자는 의식하지 못한 채 이미 개입하고 있지요.
  게다가 <예상 표절>이 허구(픽션)의 화자에 의해, 다시 말해 한 등장인물에 의해 얘기되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마십시오. 저라면 몇 가지 점에서는 화자보다 훨씬 신중한 태도를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 화자는 책에 대해 매우 창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아주 멀리까지 나아갑니다. 거의 책들을 다시 쓰라고 제안하지 않습니까.

그동안 많은 책을 내셨는데 선생님의 관심사를 기준으로 그간의 저작들은 어떻게 분류될 수 있을까요? 아울러 최근에 새 책을 출간하신 걸로 압니다.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한데요.

제 책들은 모두 "개입주의 비평"이라고 불릴 만한 것에 속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텍스트들 앞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개입해서 텍스트들을 바꾸거나 전통적으로 이루어진 독서를 바꾸지요.
  이번에 출간된 <작품의 작가가 바뀐다면?>에서도 역시 픽션의 이름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이 알려진 작가가 아니라 다른 작가에 의해 씌어졌다고 상상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를테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톨스토이가 썼다고 상상하면 텍스트가 전혀 달라 보이고, 눈에 띄지 않았을 여러 측면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거죠. 또한 학문적 탐구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카뮈가 쓴 <이방인>에 대한 연구는 이미 너무도 많지만, 카프카가 쓴 <이방인>에 대한 연구는 훨씬 적을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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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랩 2010-10-2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비평이라...몰랐던 분야인데 추리소설과는 또 다른 맛이 있을 것 같네요.^^ 앞으로 텍스트에 개입하는 독자가 되어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책을 읽어야겠어요~ㅎㅎㅎ
 

알라딘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이란 이벤트를 상시 진행합니다.

매주 담당 MD가 10권 이내의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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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새로운 책으로 페이지가 바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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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삼성- 이건희, 그리고 죽은 정의의 사회와 작별하기
김상봉 외 지음 / 꾸리에 / 2010년 10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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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를 잇는 대국민행동강령
파리의 장소들- 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
정수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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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파리를 지나치기엔 그 깊이가 너무 아름답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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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현실과 가장 치열하게 맞붙는 세대는 20대다!
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33,000원 → 29,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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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 메타포로 현실을 드러내는 놀라운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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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0년 10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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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생명에 대한 스티븐 호킹의 최후 변론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경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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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에 대한 탄탄한 구조를 잡아주는 입문서
인문학 콘서트 2- 인문학, 한국인을 탐색하다
이어령 외 지음 / 이숲 / 2010년 10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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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의 고수들이 한데 모여 펼친 한국학 만찬!
덤벼라, 빈곤- 우리 사회의 빈곤에 맞서는 통쾌한 외침!
유아사 마코토 지음, 김은진 옮김, 우석훈 해제 / 찰리북 / 2010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2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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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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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오후 4시 반, 여름 날씨라고 하기엔 바람이 심심찮게 불고 가을이라 하기엔 여전히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당기는 긴 햇살을 맞으며 약속 장소로 걸어가는 길. 봄날인양 원피스 자락을 하늘거리는 ‘작가 목수정’을 만났다. 알라딘 인문학스터디 강의가 6월 3일이었으니 정확히 세 달만의 만남, 강의에서 들려준 ‘야성의 사랑학’은 그 사이 <야성의 사랑학>으로 무르익었고 그는 한국에서 파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작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으로 우리가 목수정을 발견했다면 이번 책은 그가 발견한 우리의 스산한 풍경이지 않을까. ‘야성의 사랑학’이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지 그에게 물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알라딘 인문MD 박태근)

  

 

(이 인터뷰는 책이 출간되기 전에 진행한 ‘사전 인터뷰’이며, 진행자는 원고의 절반 정도를 미리 읽고 진행했다. 알라딘과 그의 첫 번째 인터뷰는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www.aladin.co.kr/author/wauthor_interview.aspx?AuthorSearch=@827060)

  


우리 시대의 ‘사랑학 개론’을 시작하다

첫 질문은 편집자께 드리겠습니다. 지난 목수정 선생님과 알라딘의 인터뷰에서 이번 책의 단초를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생각의 고리를 잡아 선생님을 만났는지 궁금한데요.

인터뷰 말미에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같은 사회적 질병을 앓고 있는데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겠느냐”, 선생님께서는 “마음껏 달리면서 당신 속에 있는 야성과 만나라, 당신의 야성이 해답을 줄 거”라고 말씀하셨죠. 흔한 자기계발서나 심리치유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대답이었어요. 그리고 ‘사랑학’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이런 분이라면 임기웅변 같은 사랑의 잔기술이 아니라 삶과 세상을 바꿔낼 만한 제대로 된 사랑의 기술을 말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야기가 시작된 거죠.

선생님께서도 지난 인터뷰에서 그런 주제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셨는데요. 이런 제안을 받고 바로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셨나요?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은 게 작년 3월인데 5월부터 집필을 시작했어요. 다음 책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그 제안이 불을 당겨준 셈이죠. 사실 문화정책에 대한 책과 사랑학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시키는 방향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거든요. 주변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특히 첫 책에 추천사를 써주신 박재동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까지 주시며 재촉을 하셨어요. 선생님도 그 나이에 가장 결핍된 부분, 가장 아쉬운 부분이 “어떻게 사랑하는가”의 문제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게 이 부분인데 우리는 어디서도 배우지 못하고 탐구할 자유도 얻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거죠. 하루아침에 할 수 없는 일인데도, 당장 시작해야 한다며 강하게 말씀을 하셨어요. 사실 이 주제는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에도 공부하면서 새롭게 쓰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 책은 그 시작이죠. 대학 시절부터 고민한 문제지만 구체적으로 책을 쓰게 된 원동력은 프롤로그에 쓴 문제의식이에요. 그걸 화두로 삼아 내가 고민해왔던 사랑학에 대한 얘기를 풀어보자. 그렇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참 많이 부족하고 미완성인 상태에서 시작한 책이에요. 

"슬픈 풍경들에 부대끼던 마음이 차츰 무뎌질 무렵, 하나의 부재가 선연히 고개를 들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자신들의 가슴을 불시에 두드리는 여인에게 다가가 차 한 잔 할 수 있냐고 청하는 남자들의 부재. 그걸 어떻게 발견한 걸까? 3개월 남짓 면밀한 관찰자의 입장에 있으면서,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나는 광경을 전혀 목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모래바람 이는 황량한 산하와 이미 오래전에 방전되어 버린 에너지를 통찰했다면 믿으시려나."(8쪽)  

말씀처럼 프롤로그의 첫 장면이 중요하고 또 강렬한데요. 제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 같습니다. 제가 주변을 탐문해본 결과 대략 96, 97학번까지는 그런 경험이 있는데 99, 00학번에 접어들면서 그런 일을 보지 못했다는 대답이더군요.

네, 의외로 세대적인 경계가 아주 선명해요. 그런데 부끄러움의 측면에서 보면 이전 세대도 마찬가지거든요. 제 기억을 돌아보면 어떤 남자가 학교까지 작심하고 쫓아왔는데, 제가 그 사람이 쫓아오는 걸 알고는 지하철에서 내려 다음 열차를 탔거든요. 그 사람도 따라 내려서 또 같은 열차를 탔는데 문에 딱 끼인 일이 있거든요. 그런 수모를 겪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에요. 게다가 그때는 전화번호를 달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무조건 시간 있으면 차 한잔 하자, 이런 거니까요.

본문에서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을 말씀하시잖아요. 우연히 마주친 인연을 찾아주는 코너가 있다고.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환경하고는 다른 듯한데 이것 역시 이성과 야성의 문제로 볼 수도 있을 듯해요. 언론이라는 매체가 다뤄야 하는 대상, 시각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틀이 일정하게 자리 잡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일정한 엄숙주의에 묶여 있는 거죠. 모두가 베일 속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대학교 2학년 때 한 친구가 ‘너는 어떤 일을 하는 것과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해?’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저는 어떤 사람과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거든요. 그 이상 가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대답을 하고 나서는 잠깐 후회도 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맞는 얘기 같은 거예요. 내가 뭘 하든지 그걸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없으면 즐겁지 않거든요. 영원할 필요는 없지만 사랑으로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상대와 함께 있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이런 능력을 배양하는 일도 중요하고요.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나고 함께 사랑을 키워내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죠. 삶의 퀄리티를 크게 좌우하는 일이니까요.

지난 인터뷰에 우리가 범상치 않는 사람에게 ‘예술하세요?’라고 물어본다는 얘기 있잖아요. 다들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걸 읽으면서 사랑, 정치, 예술이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이 책의 구성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이 가는데요.

네, 맞아요. 문화 내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쌓아왔던 것들, 족쇄가 되는 것들을 끊어내는 해방의 과정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이 예술이고 사랑이고 정치죠. 이 세 가지가 제대로 작용을 한다면 말이죠.

 


가장 자연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가장 야성적인 것이 가장 문명적인 것이다

<야성의 사랑학>, 제목이 강렬한데요.

제목이 마음에 들어요?

네, 일전에 출판사에서 제목에 대해 물었을 때 좋다고 생각했어요. 야성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은 아니잖아요. 사실 ‘야성’과 ‘사랑’을 함께 생각하면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과격하고 치명적인 사랑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야만’과 ‘야성’을 예민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을 듯한데요.

야성이라는 말과 가장 가까운 말이 자연인 것 같아요. 타고난 본성, 타고난 직관. 그러니까 일고여덟 살짜리 아이들이 보여주는 본능적인 반응을 보면 되는데, 아이들은 정말로 자연이 하는 소리를 듣나 봐요. 우리는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라는 걸 뒤늦게 막 깨우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아는 거예요. 아이와 길을 걷다가 껍질이 벗겨진 나무를 봤는데 “엄마, 저 나무 아프겠다. 얘 이렇게 상처 나서 아프겠다.” 비가 보슬보슬 오고 있었는데 “비야, 사람에게 내리지 말고 얘한테 내려. 얘가 너무 목이 마를 거야. 빨리 커야 해.” 이렇게 말을 해요. 옛말에 ‘벼는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런 연구 결과들이 있잖아요.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같은 책도 있고요. 우리가 고맙다는 말을 하면 물이 가장 아름다운 결정을 이룬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가이아 이론도 있고요.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지식으로 습득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있는 거예요. 이걸 교육이라는 틀로 묶어 놓는데 사실은 ‘그 상태로 아이들에게 있는 것’, 그게 인간의 본성, 야성인 거지요.

그 패턴이 사랑에도 적용된다는 말씀이죠?

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슴이 쿵쾅거리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취향이 있어요. 아무리 잘생긴 애가 있어도 모두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요.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방식이, 문화가 있는 거죠. 저는 오늘날의 교육이 그걸 죽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서 성인이 되었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봐요.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본능을 대신해서 스펙이 내 짝을 찾아주는 촉수가 되는 거죠. 취향이 다양하지 못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획일화되는 현상이 야만이고, 자연에 가까울수록 야성이면서 진정한 의미의 문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책에서 콘라드의 거위를 예로 드는데, 거위들도 짝짓기를 할 때 모든 문화적 코드를 동원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가장 많이 파괴된 동물이 인간이라는 거죠. 제 이야기와 연결해보면 짝짓기나 살아가는 방식에서 오히려 거위 같은 동물이 인간보다 문명화되어 있다는 거예요.

문명과 이성, 이성과 야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군요.

우리 인간들은 많이 먹으면서 한편으로는 다이어트로 살을 빼는, 이런 일들을 하잖아요. 너무 많은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그걸 정수하기 위해 돈을 쓰고. 굉장히 어리석은 일을 끊임없이 하는 존재예요. 어쩌면 가장 고등한 삶의 방식은 식물일 수 있어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가장 적게 소비하고 가장 오래 평화롭게 생활하는 거죠. 자연이 만들어낸 것 가운데 촌스러운 건 하나도 없어요. 정말 신기하게 모든 자연은 우아함을 갖고 있거든요. 가장 자연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가장 야성적인 것이 가장 문명적인 것이라는 말이죠. 현재 한국사회에서 제가 보는 가장 끔찍한 야만적인 풍경은 학원버스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예요. 전교 1, 2, 3등의 이름과 학교가 적혀 있는데, 글을 깨치기 시작한 아이들부터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가 보잖아요. 예전에는 적어도 이름 한 글자는 지웠던 거 같아요. 본격적인, 거침없는 경쟁 사회가 된 거죠. 이런 게 야만이에요.

그럼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쉬어가는 질문 하나 드릴게요. 선생님의 소울메이트, 빌헬름 라이히는 어떻게 만나신 건가요?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어요. 그런데 희완이 저에게 당신은 하이쉬를 만나야 한다, 이렇게 자꾸 말하는 거예요. 라이히가 프랑스어로 하이쉬거든요. 그때만 해도 누군지 모르다가 어느 날 하이쉬가 라이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처음에는 라이히 전기를 봤어요. 그런데 제 자신이 라이히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희완이 저를 잘 본 거죠. 평소에 한국 사회의 위선적인 모습, 그 중에서도 성에 대한 위선이 가장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을 늘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 부분이 대화 중에 튀어나왔겠죠. 그러면서 희완이 제가 말하는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이 있다고 알려준 거죠. 라이히의 책을 읽으면서 빙의된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라이히가 성과 정치를 결합하면서, 그러니까 프로이트와 맑시즘을 결합하면서 양쪽으로부터 다 버림을 받거든요. 우리 사회에서도 계급 문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여전히 개량이라는 비판을 받잖아요. 제가 레디앙에서 겪은 수모도 운동권 내에 여전히 살아 있는 엄숙주의 때문이었죠. 이런 주제를 감히 신성한 운동의 공간에 퍼질러대는 저라는 인간에 대한 단죄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 받아야 할 비판과 수모가 라이히의 삶에서 보였던 거죠. 라이히는 망명을 다니면서도 자기 주장을 놓지 않았고, 결국 감옥에서 죽었어요. 정말 ‘혼자’였죠. 한 사람이라도 마음 깊이 이해해줘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랑을 좀먹는 것들, 사랑을 일깨우는 것들

책이 3부로 되어 있는데요. 2부 ‘위선, 연애불능의 사회’에서 ‘사랑을 좀 먹는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주시잖아요. 특히 유교와 효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시는데, 한국사회에서는 적어도 심성적으로는 여전히 이 가치가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잖아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 그러니까 사랑에서는 접점은 전혀 보이지 않고 결절 지점만 보이거든요. 혹 다른 맥락에서 일말의 가치를 찾아볼 수는 없을까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말이죠.

가장 큰 문제는 효란 단어에 너무 많은 것들이 뭉뚱그려져 있다는 거예요. 효가 뭐냐고 물으면 ‘부모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거든요. 대부분 사랑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게 사랑이면 왜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을 효라고 따로 불러야 하냐는 거죠, 다 똑같은 사랑인데. 왜 그토록 각별한 작명이 필요했느냐 하면 사실 효는 도리거든요, 사랑이 아니라. 도리는 ‘그럼에도 불구하는 지켜야 하는’ 거예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자식에 대한 엄청난 권력을 갖고 행사하는 사람들이죠. 제 경우,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언젠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진짜 내가 쓰고 싶은 걸 다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내 안의 도덕의 틀, 자기 검열을 엄마라는 존재가 계속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유교가 정말 작동을 잘 한 거죠.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가정으로 위임하면서 전체 가족들의 위계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 셈이니까요.

효가 당연한 걸 다른 것으로 구분하면서 권력을 획득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효, 아니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을 포함하는 ‘사랑’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사랑의 기본적인 조건은 ‘자발성’이에요. 그렇지 않은 사랑은 없잖아요. 그런데 도리는 자발성과 무관한 개념이거든요. 자발성에 맡겨두었을 때 작동하기 너무 힘들기 때문에 도리로 만들어 놓은 거죠. 어쩌면 효가 부모에 대한 사랑을 좀 먹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싶다가도 누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예를 들면 추석 때 찾아뵙고 싶지만 못 갈 수도 있잖아요. 불효자가 되는 거죠. 그런데 불효자가 되는 건 내 부모와의 관계뿐 아니라 내 부모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지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거든요. 저는 효라는 게 불효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검열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효가 불효를 양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이게 사라지면 더 좋아질 거라고 봐요. 검열이 있으면 검열의 안과 밖이 생기지만, 검열이 사라지면,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것, 그리운 사람,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되겠지요.  효도하기 위해 그 어떤 모험도 하지 못하는 사람, 효도하지 않기 위해 자기 인생을 일부러 망치는 사람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2부에 있는 ‘언어에 담긴 성의 사회적 온도차’에서 프랑스나 스페인 말은 남녀 성을 구분한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몰랐던 사실이 아님에도 새롭게 다가왔거든요.

저는 여성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언어를 배울 때 맨 처음 검열하는 건 어떤 명사에 남성을 붙이고 어떤 명사에 여성을 붙이는가 하는 부분이에요. 독일어는 하늘에 여성을 붙이는 유일한 언어예요. 대부분의 언어에서 하늘은 남자고 땅은 여자거든요. 동양의 언어들도 겉으로 드러나 있진 않지만 감춰져 있고요. 저는 성에 주어진 계급적 의미들을 가장 먼저 관찰했던 것 같은데, 결혼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구분해서 부르고 남자는 구분하지 않는 나라가 여럿 있어요. 프랑스의 마담(madame), 마드모아젤(mademoiselle), 므슈(monsieur)도 그렇죠. 한국에는 처녀, 총각, 아줌마, 아저씨가 있으니까 덜 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웃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모든 종류의 순결, 정조에 대한 요구는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다.’ 저는 순결이란 단어가 여자에게만 있는 단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20대가 되어서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던 거죠. 그게 바로 여기서 드러나더라고요. 여자는 언어 자체가 결혼 전과 결혼 후를 구분하고 남자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세상의 모든 언어가 이걸 기준으로 여자의 의미를 매겨왔고 본질적으로 성에 대한 억압은 오로지 여성에 대한 억압이었다는 걸 그런 언어를 통해서 다시 느꼈어요.

하나의 명제로 제시하신 게 ‘성과 애는 결합시키고 성과 경제는 분리해야 한다’는 말인데요. 이 책에서 문제제기 하신 부분이 해결되려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명제의 반대 상황이 주류 사회에서는 하나의 포맷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른 식으로 말하면 성평등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것과 같아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지향점이란 말이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성적 억압은 여성에 대한 억압이에요. 여성을 덜 억압하는 사회가 되면 성적 억압이 줄어들고, 이게 양성 평등에 가까워지는 길이거든요. 사실 능력이나 참여에 있어 남여는 이미 동등한데 사회는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악랄하게, 외환위기 이후에는 더 극심하게 차단하고 있거든요. 이 부분이 제도로 보장되면 바로 성과 경제가 분리되는 거예요. 여자들이 혼자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비혼모가 되었을 때 85%의 여성이 아이를 낳길 원해요. 우리나라에서 아직 이들에 대한 시선이 따갑지만, 정책적으로 비혼모에게 일정 기간 동안 지원을 해주는 제도가 생겨서 출산과 양육을 위한 경제적 여건이 마련된다면, 그들은 모멸감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낳으려는 사례가 많다는 거예요. 이게 프랑스의 모습이기도 하고 러시아 혁명 직후의 모습이기도 하거든요. 사소한 제도 하나가 현상을 확 바꿀 수 있다는 거죠. 관념적인 게 아니라 제도적인 장치로서 바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에요. 흔히 관념적 혁명이 이루어져야 제도가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제도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요. 민주노동당의 경우를 봐도 처음 국회에 입성했을 때 사람들이 이런 당이 있는 줄도 모르다가 국회의원 10명이 되니까 한 달 만에 지지율이 25%로 뛰었거든요. 내심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주저하던 이들이 너도나도 지지하게 되는 상황인 거죠.

제가 차례를 보고 얄팍한 생각으로 이걸 먼저 읽어야지 했던 꼭지가 ‘야성을 일깨우는 아홉 가지 방법’인데 아쉽게도 이 부분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힌트를 좀 주시지요.

제가 첫 번째로 꼽은 게 접촉이에요. <감각의 박물학>을 쓴 다이앤 에커먼의 이야기인데, 생명체에 있어 접촉은 태양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거예요. 애정은 추상적일 수 있는데 이건 직접적인 거죠. 아무리 사랑해도 직접 안아주지는 않는,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이 한국에는 진짜 많아요. 지금도 접촉이 전혀 없어요. 이게 알게 모르게 어떤 한이 쌓이는 것 같아요. 내가 왜 그렇게 20대에 애정을, 사랑을, 연애를 갈구했을까 생각을 해보면, 본능적으로 요구했던 접촉의 결핍이 쌓여온 결과로 보이거든요. 실제로 제가 몇 가지 사례를 들었는데, 12세기 여러 나라를 점령했던 하인리히 2세의 실험이 대표적이에요. 아이들이 어떤 접촉도 없을 때 처음 하는 말이 무엇일까 알아보기 위해 어떤 접촉도 없이 먹이기만 했는데 그 아이들이 다 죽었다는 거예요. 또 다른 사례는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에서 낙태를 금지하고 여자들에게 아이를 5명씩 낳으라고 강요한 일인데요. 아이가 늘어나니 결국 한 보육사가 100명이 넘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때 거기서 양육되었던 많은 아이들이 다른 나라로 입양이 되었는데 그 아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자폐증을 앓았어요. 사실 사육에 가까웠던 거죠.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아주 살벌한 관계를 형성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성장기에 성장이 멈추기도 해요. 불안이나 공포 속에서 접촉 없이 자란 아이들 말이죠. 반면에 꽃향기가 있는 오일로 마사지를 해주면 치매가 호전이 된다고 해요. 아이들이건 어른이건 접촉이 생명과 같다는 거죠.  

접촉이 생명과 같다, 선생님께서도 이 방법을 실천하고 계신가요.  

저도 어쩌면 접촉을 많이 할 수 있는, 많이 하는 사람과 살고 있기 때문에 10년, 20년 전보다 야성이 발달한 것 같거든요. 이게 머릿 속에 강렬하게 자리 잡은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 아이한테는 널 만지지 않는다는 게 무척 슬픈 일이더라고요. 이 아이는 접촉이란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한 아이인데 이게 없으면 엄청난 형벌인 거죠. 자기가 받아야 할 접촉의 함량을 인지하면서 요구하는 삶. 그러면서 명랑하고 쾌활하게 성장하는 거죠. 직관이 잘 발달하고요. 직관이 발달하려면 오감이 발달해야 하거든요. 현대인이 가장 덜 발달한 부분이 촉감이라고 생각해요. 내 손끼리 부딪치는 게 아니라 남과 맞닿으면서, 정 어려우면 마사지라도 받아야 하는 거예요. 나를 안아주는 연인이 내 곁에 없다면 마사지를 받고 해주는 감각을 일깨우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도 시도할 필요가 있어요.

 

 

 

 

 

 

  

 

나머지 여덟 가지 방법도 궁금한데요. 선생님께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중년의 사랑, 노년의 사랑도 들려주실 거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알라딘 인터뷰의 공식질문입니다. 우리의 야성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몇 권 추천해주시지요.

우선, 조금 전에 말씀드린 <감각의 박물학>이 있고요. 리처드 윌킨슨이 쓴, <평등해야 건강하다>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평등해야 서로 사랑할 수 있거든요. <자유로운 아이들 서머힐>도 추천하고 싶어요. 저자 A.S 닐은, 멀리서나마, 라이히를 끝까지 지지하고 격려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고, 라이히가 생각한 방식으로, 그리고 제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대로 학교를 운영한 사람이죠. 모든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열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줘요.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는 2년 전에 선물을 받았는데 최근에야 읽었어요. 이 책을 읽고 책을 쓰면 더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에요. 조기유학을 계획하는 모든 소녀들, 여기가 아닌 저기를 꿈꾸는 모든 제3세계의 여자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에요.

재미난 말씀 고맙습니다. 책이 나오면 많은 독자들과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서울과 파리를 잇는 새로운 접촉의 방법을 고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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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로망 2010-10-0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작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감명깊게 읽은 독자로서, 더할 나위없이 끌리는 책이네요! <야성의 사랑학>! 저의 페이보릿 작가가 되어버린 목수정 님.>_< 찬찬히,야금야금,아껴 읽겠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0-10-07 11:04   좋아요 0 | URL
어쩌죠? 글이 너무 시원시원해서 단숨에 읽히는데... ^^

주성치 2010-10-0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력적인 인터뷰네요. <야성의 사랑학> 요즘 읽고 있는데, 막힌 속이 뚫리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도 더 추워지기 전에 제 안에 숨은 야성을 좀 깨워봐야겠어요. 꾸준히 책을 쓰신다니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하겠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0-10-07 11:51   좋아요 0 | URL
아홉 가지 실천 방안으로 하나씩 연습해보시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요즘 한겨레21 마지막 페이지 칼럼을 맡고 계신데 찾아보셔도 좋을 듯하네요. http://search.hani.co.kr/hani/search.php?pageType=han21&keyword_str=목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