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강, 마리 여사의 전공 분야군요. 꽤나 분주한 화요일입니다. '차이'건 '사이'건 틈이 없는 하루입니다. 

내일은 마지막 강의를 전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책에서 확신하시라.(자료를 제공해준 출판사에 전하는 제 마음의 표현입니다)

 

제3장. ‘통역과 번역의 차이’에서
 


사전 없이 책을 독파하다

당시 여름 숲속학교에 도서관이 있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다가 한자로 ‘箱根用水하코네용수’라고 쓰여 있는 책을 발견했다. 일본을 떠난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여서 낯선 땅에서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난 듯한 정겨움에 그 책을 꺼내어 꼭 움켜쥐었다.
  표지는 한자였지만 안은 온통 러시아어였다. 그런데도 망설임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카쿠라 데루高倉テル1891~1986라는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다. 후지산 기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물에 좌우되었던 에도시대에, 지하터널을 통해 하코네箱根 아시노코芦ノ湖 호수의 물을 끌어와 저수지와 운하를 만들어 농사짓는 데 쓰기 위해 권력층과 싸우고 많은 사람의 협조를 얻어 그 사업을 성공시키는 이야기다.
  나는 책 내용에 푹 빠졌다. 한창 읽을 때는 그것이 러시아어로 쓰였다는 것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사실 캠프에 가기 전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몇 번인가 책을 빌려 읽으려고 했는데, 말을 몰라서 제대로 읽을 만한 것이 없었다. 단어의 뜻을 모르면 보통 사전을 찾는다. 일일이 사전을 찾으며 읽다 보니 흥미가 줄어들어 도중에 책장을 덮고 좌절할 때가 많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끝까지 읽었다. 그래서 사전 없이 책을 읽는 데 자신이 생겼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이후에 이야기하자.
  그 캠프에서 마음에 맞는 아이들끼리 독서회를 열었다.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정해 소리 내어 낭독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우스운 장면에서는 같이 웃고, 슬픈 대목에서는 같이 눈물을 흘린다.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진동은 다른 사람의 진동과 공명하면 더 깊고 커진다. 그만큼 더 깊은 희로애락을 맛볼 수 있다. 한편 똑같은 문장도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그것으로 서로 충돌하는 재미도 있으니 독서회는 해보는 게 좋다.
  한번은 함께 읽을 책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선정되었다. 익살스런 표현이 러시아어로 잘 번역되어 있었다. 그 학교는 대충 50개 나라의 아이들이 다녔는데,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메이지시대의 일본인이 쓴 이야기를 이렇게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구나 싶어 자랑스러웠다.
독서회를 자주 갖다 보니 러시아어로 된 글자를 읽는 게 편해졌다. 그래서 차츰 러시아 작가가 쓴 책에 도전하게 되었다. 지금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마침 그때가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이어서 남녀관계의 미묘한 사정과 섹스 같은 게 너무 알고 싶었는데, 선생님이나 부모님께는 물을 수 없지만 문학 작품에는 그런 내용이 잔뜩 나와 있으니 열심히 읽은 것 같다. 아무튼 많이 읽었다. 



살아 있는 말을 하기 위한 과정

통역을 할 때 그 모호함의 결과로서 즉 개념의 결과로서 나온 코드화한 문자나 소리만을 주워 옮겼기 때문에 동시통역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 과정은 모호함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개념이 표현된 것을 문자나 소리로 인식했을 때 그 내용을 듣거나 읽어 해독한다. 그러고 나서 ‘아, 이것을 말하고 싶었구나’ 하고 그 모호한 대상의 정체를 인식한다. 모호한 대상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자 그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통역을 할 때는 이 모호함을 다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즉 말이 생겨난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쳐야만 한다. 말이 생겨나고 그것을 듣거나 읽고 해독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하는 개념을 얻어서 그 개념을 다시 한 번 말로 한다. 코드화해서 소리나 문자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살아 있는 말이 될 수 없다. 결과만, 즉 말만 옮기는 것이 빠를 것 같지만 사실은 앞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빠르다.
  왜냐하면 말이란 그 부품인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소설뿐 아니라 예를 들어 물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물리학도 좋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축구 기사도 상관없다. 말이란 그런 텍스트다. 이렇게 텍스트가 된 것을 인식하고 다시 텍스트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단어마다 주워서 암기하거나 문법이라는 해골만 머리에 넣는, 살아 있는 말과 관계없는 행위를 열심히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매력도 없다.
  동시통역은 개념을 파악해 옮겨야 성립한다. 수화의 경우는 어떨까? 아마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일일이 옮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신앙을 버리지 않는 한, 통역으로의 비약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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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메신저, 차이를 알고 사이를 좁히다

‘소통의 메신저’로서 마리는 자신이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을 글을 통해 세상에 전하기 시작한다. 사는 것 자체가 곧 ‘소통’이라는 말처럼, 그녀가 쓴 글들과 그녀의 인생 자체가 ‘소통’을 의미할 텐데, 이번 작품은 암이라는 고통과 싸우면서도 직접 젊은이들과 얼굴을 마주한 그녀의 마지막 소통, 마지막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강의가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홍성민, 옮긴이의 말 가운데)

 
   

오늘은 바로 강의에 들어가겠습니다. 드디어 책을 만났기에, 강의실보다는 혼자 집에서 읽으려고요. ^^ 2강의 주제는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입니다.

 

제2장. ‘이해와 오해 사이’ 에서

같이 웃을 수 있는 기쁨

그런데도 내가 왜 통역사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무리하도록 하자.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일 때문에 가족이 함께 체코 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5년 동안 러시아어로 가르치는 학교에 다녔다.
  4학년이 되던 해에 치보라는, 캐나다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남자아이가 전학을 왔다. 그런데 이 아이가 아주 심한 장난꾸러기였다. 전학 온 첫날, 앞자리에 앉은 여자아이의 갈래머리를 잘라버려 그 아이가 엉엉 소리 내어 우는 바람에 수업이 엉망이 되었다. 다음 날에는 교실에 비치해둔 지구의에서 구를 떼어내어 그걸로 복도에서 축구를 했다.
  선생님들에게 치보는 몹쓸 전염병을 일으키는 역신疫神 같은 아이였고, 치보 아버지는 치보가 못된 장난을 칠 때마다 학교에 불려왔다. 그럴 때면 치보를 잡으려는 아버지와, 교무실의 펜이며 서류를 던지면서 도망치는 치보 사이에 항상 술래잡기 한판이 벌어졌다.
  분명 선생님들도 이런 치보를 미워했을 텐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치보는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등교했다. 짓궂은 장난으로 수업을 망치는 것이 그 아이가 살아가는 유일한 보람인 것 같았다. 선생님들이 치보를 보는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리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선생님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무렵, 한 사건이 일어났다. 수학 도형 시간이었는데, 치보가 교실에 갖고 온 거품기의 스위치를 켜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옆자리의 여자아이에게 들이대며 장난을 쳤고, 여자아이는 꺅꺅 비명을 질러댔다. 그 난리를 치니 수업이 될 리 없었다.
  그러자 수업 중이던 갈리나 세묘노바라는 여선생님이 갑자기 치보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며 “더 이상 말썽 피우기만 해. 그 불룩한 감자 얼굴을 시머트리symmetry로 만들어줄 테니까” 하고 말했다.
  시머트리는 ‘대칭형’이라는 뜻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됐다. 치보까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치보는 싸움을 한 뒤여서 오른쪽 볼이 보라색으로 불룩하게 부어 있었고, 우리는 바로 전 수업시간에 ‘시머트리’라는 단어를 갓 배운 터라 굉장히 신선한 말이었던 것이다. “오른쪽 볼하고 똑같이 되도록 왼쪽 볼에 한 방 먹여주겠다” 하는 틀에 박힌 어투가 아니라 매우 시적인 여운이었기 때문에 모두감탄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 이후 치보가 수업시간에만큼은 조용한 아이가 된 것이다. 이 사건은 ‘갈리나의 기적’으로 교내에서 유명해졌다. 단, 식당의 포크와 나이프가 가끔 몽땅 사라져 모두가 의아해할 때, 옥상에서 치보가 보란 듯이 그것들을 운동장 화단을 향해 던지며 악동의 체면은 유지하고 있어서 모두 묘하게 안심하기는 했지만.
왜 치보는 ‘시머트리 사건’ 이후 수업을 망치는 장난을 갑자기 그만두었을까? 갈리나 선생님의 말은 확실히 박력이 있었다. 선생님의 애인은 플라이급인지 밴텀급인지 되는 권투 선수였는데, 애인과 나란히 서면 선생님이 훨씬 어깨도 넓고 가슴도 두꺼웠다. 그렇게 몸도 말솜씨도 헤비급인 선생님이 치보에게 왜 더 빨리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걸까?

인간은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원한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치보의 체험을 나의 체험에 끌어다 생각해보니알 수 있었다.
  나는 치보가 전학 오기 2년 전 프라하에 살기 시작했는데, 러시아어로 가르치는 학교로 처음 전학 갔을 때는 안데르센 동화의 인어공주와 다를 게 없었다. 매일 4시간에서 6시간 동안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에 계속 출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학교 아이들이 짓궂은 장난을 쳐도 선생님께이를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따지거나 항의할 수도 없었다. 그건 정말 억울하다. 제일 억울하고도 서글픈 것은 반 아이들이 웃는데 같이 웃을 수 없을 때였다. 그런 상황이 너무 슬펐다.
  어른이라면 가방을 챙겨 집에라도 갈 수 있지만 아직 어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매일 비통한 각오로 학교를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겨우 아홉 살인 아이가 어깨 결림과 편두통에 시달릴 정도로 학교 가는 일은 고통이었다.
  치보 역시 전학 온 당시에는 나처럼 낯선 환경에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짓궂은 장난으로 수업시간을 때웠던 것은 결국 나의 어깨 결림이나 편두통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갈리나 선생님이 ‘시머트리’라고 한 순간에는 선생님의 말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소리 내어 웃었으니까. 같이 웃을 수 있다는 기쁨을 그 순간 치보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치보는 더 이상 장난으로 수업시간을 때우는 행동을 멈춘 게 아닐까.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하는 동물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커뮤니케이션은 불완전한 행위라서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하는 동물이라는 확신이 나에게는 있다. 아마 그런 확신이 내가 통역 일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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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 2011-03-29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마리 여사 ㅎㅎ
 

   
 

드물게 귀여운 ‘지적 앙탈’
전혀 팬시하지 않고도, 소녀적 감수성이 이리 살아남을 수 있다니.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침내 해석해내고 마는 그의 통찰은, 그 지점과 만나 그렇게 드물게 귀엽다. 내가 그의 생각들을 '지적 앙탈'이라 부르기로 결심한 이유다.
                                                                                                                       -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네, 그분입니다. 알라디너가 사랑한 그녀, 마리 여사.
이번 책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그녀가 강의한 내용입니다.
저도 아직 실물을 보지 못했으니 길게 설명드리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쁜 소식 한 가지는 전해드리지요.
오늘,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에 걸쳐 하루에 한 꼭지씩 본문 내용을 공개합니다.
작년에 마리 여사의 책이 여럿 나와 지칠 법도 하지만, 기필코 기운내셔야 합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그녀의 글은 한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몇 권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기운냅시다. 

 

제1장. ‘사랑의 법칙’에서
 


암컷이 본류다

고민이 있으면 역시 책을 많이 읽게 된다. 이쪽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선택하는 현상은 지금 말한 여러 사회적 요인에 더해, 인류라는 종種이 절멸하지 않고 존속하기 위해, 즉 종을 유지하고 진화해가기 위해?진화란 환경에 적응해가는 것이므로 이것도 존속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부지런히 대대로 이어온 행위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명작이 있다. 열네다섯 살쯤 됐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에 빠진다. 줄리엣은 로미오와 섹스를 하는데 특별히 아기를 갖고 싶은 것은 아니다. 로미오의 아이를 원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섹스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정신적인 행동이나 마음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식행위와도 관계가 있다.
  지금은 섹스가 점점 쾌락으로 기울고 있다. 쾌락 쪽으로 관심이 기운다면 특별히 생식행위는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굳이 피임까지 하면서 섹스를 한다. 호모섹슈얼동성애자은 아이를 낳지 못하면서도 유사類似 생식행위를 한다. 그래서 생식이라는 인류 존속을 위한 행위와, 남녀간에 서로 끌리는 감정은 사실 그 뿌리가 같다.
  인간을 포함해 압도적으로 많은 생물들은 왜 수컷과 암컷이 있을까? 인류는 왜 남자와 여자가 존재할까? 만일 누구를 고를 필요 없이 아무하고나 섹스를 해도 마찬가지라면 한 개체 안에 남녀의 기능이 갖춰져 있어도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누구는 퇴짜를 놓아서, 또 누구는 퇴짜를 맞아서 상처 받지 않아도 되고, 퇴짜 놓은 쪽도 스스로 잔혹한 인간이라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실제로 생물계를 넓게 조망하면 섹스 없이도 생식하는 생물이 많다. 아메바처럼 세포 분열로 증식하는 생물도 있고, 찾아보면 많다. 또 수컷 없이 암컷 혼자 알을 낳고 알에서 다시 암컷이 태어나는 단성생식을 반복하는 생물도 있고, 정자의 개입 없이 난자가 분열해 개체로 성장하는 생물도 있다.
  하나의 개체가 환경 변화에 따라서 수컷이 되기도 하고 암컷이 되기도 하는 생물도 있다. 최근에는 인간의 줄기세포로 복제인간을 만드는 기술까지 개발되었다. 즉 정자 없이 난자만 있으면 자기와 닮은 개체를 만들어 종족을 유지하는 생식이나 번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는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있다.
  성서를 보면 성모 마리아는 추잡한 섹스 따위 하지 않고 동정童貞인 채로 신에게 수태 고지를 받아 예수를 잉태해 출산하는데, 사실은 이것이 오역이었다는 걸 알고 있는가? 맨 처음 헤브라이어로 쓰인 성서에는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는 의미였는데, 이것을 라틴어로 옮길 때 ‘처녀’라고 번역해버린 것이다.
  또 어떻게 신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쓰여 있는 「창세기」 처음 부분을 보면, 신이 최초의 인간으로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갈비뼈(속설에 의하면 13번째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고 나와 있다.
기독교 세계인 유럽 쪽 언어에서는 ‘인간’과 ‘남자’를 뜻하는 단어가 같은 경우가 많다. 영어도 그렇다. ‘man’은 ‘남자’라는 뜻과 함께 ‘인간’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woman’은 ‘man’이라는 단어에 비하면 왠지 불필요한 것이 붙어 있고, 그래서 인류의 지류支流처럼 생각된다.
  유럽 문명에서 자라다 보면 아무래도 남자가 본류고 여자가 지류구나 하는 느낌이 들지만, 순생물학적으로 보면 여자가 본류다. 암컷이 본류다. 인류도 여자가 본류다. 수컷 없이도 존속할 수 있다. 그래서 종種의 유지라는 생명 전략 자체에는 수컷이 필요 없다. 남자 없이도 종은 유지해나갈 수 있다.
 


수컷의 존재 이유

그럼 수컷은 왜 존재할까? 왜 남자가 있을까? 암컷만으로 생식이 이루어질 경우, 새끼는 암컷의 형질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완전히 복사가 되는 것이다. 복사기로 복사를 하면 길게 두 쪽 낸 참외처럼 꼭 닮은 것이 나오는데, 복사한 것을 복사하고, 또 복사한 것을 복사하고, 다시 그것을 복사하고, 그렇게 계속 복사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마모되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복제인간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복제인간으로부터 복제인간을 만들고, 그것의 복제인간, 또 그 복제인간, 하는 식으로 복제해가면 유전자 정보의 많은 부분이 소모되어 더 이상 복제할 수 없거나 불완전한 복제가 된다.
수컷과 암컷, 두 가지 성性이 참가해 다음 세대를 만드는 생식에서는 암컷과 수컷의 유전자가 혼합된다. 그리하여 암컷의 복제도 아니고 수컷의 복제도 아닌 전혀 다른 형질의 2세가 생겨난다. 그래서 남자는 인류의 존속 자체를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지만, 인류가 진화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다. 퇴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남자는 샘플이다!

나는 젊었을 때 이 두 성性의 관계에 대해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흥미를 가졌다. 1960년대 구舊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구성원인 아르메니아1922년 소련에 흡수되었다가 1991년 독립했다의 게오다캰 박사(이론 생물학자로 당시에는 아직 공학박사였다)가 ‘남자는 샘플’이라는 주장의 글을 잡지에 발표했다. 글을 읽은 순간 박사의 가설에 흥미가 생겨 그가 쓴 책들을 찾아 읽었다.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가설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관심이 아주 많이 갔다. 박사의 가설은 이런 것이다.
  가령 물소 100마리를 키우는 목장이 있다고 하자. 여러분이 목장 주인이라면 수컷은 몇 마리, 암컷은 몇 마리를 키울 것인가? 우선 송아지가 많이 태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암컷 99마리에 수컷 1마리로 해야 한다. 그러면 99마리의 송아지가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이 양적으로는 가장 많은 숫자다. 암컷의 수에 비례해 송아지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단, 수컷의 유전 형질은 한 종류뿐이니까 암컷에 의해 각기 다른 형질의 송아지가 태어난다. 99종류의 송아지 99마리. 암컷의 숫자와 같다.
  만일 태어나는 송아지의 다양성을 최대한 추구한다면 수컷 50마리에 암컷 50마리로 해야 한다. 50×50으로 2500종류의 송아지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기는 한데, 물론 2500마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암컷의 수와 같은 50마리의 송아지가 태어난다. 이것은 1세대에 한해서다.
  그럼 형질을 우선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목장 주인이 양만을 추구해서 계속 수컷은 한 마리만 키우면, 질병이 돌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날 경우 한 번에 싹 죽게 된다. 그래서 우수하고 강한 소를 만들어야 할 때 목장 주인은 수컷을 99마리로 늘리고 암컷은 1마리로 줄여야 한다. 그러면 수컷들 사이에서 경쟁이 심해진다. 자신의 유전 형질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 것은 99마리 가운데 단 한 마리뿐이기 때문이다.
 수컷들의 경쟁 못지않게 암컷의 안목도 예리해진다. 한 마리의 유전 형질밖에 얻을 수 없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이긴 수컷인 만큼 우수한 송아지가 생기는 것이다. 암컷에 의해 더 우수한 수컷이 선별되고, 그것으로 더 우수한 송아지가 생긴다는 계산이다.
  앞에서 남자를 ABC로 분류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남자도 그런 식으로 여자를 분류할 거라고 생각한다. ABC나 ABCD 혹은 ABCDE 하는 식으로. 하지만 남자를 보는 여자의 눈이 더 까다롭다. 가끔 너그러운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매우 까다롭다.
  남자에 비해 여자가 이성을 보는 눈이 까다로운 이유는 뭘까? 출산의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는 것도 여자고, 어느 정도까지 키워야 하는 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인 만큼 건강하고 강한 아이를 원하는 게 당연하다. 여자는 우수한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 그래서 상대를 고를 때 남자보다 더 질質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남자에 따라서 여자의 운명이 좌우되는 사회가 계속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영향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암컷의 수가 많으면 다음 세대 역시 양적으로 증가하고, 반대로 수컷이 많으면 다음 세대의 질적 변화의 폭이 커진다. 수컷은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암컷을 상대해 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는 개체 수, 즉 양을 늘리려고 한다. 암컷은 이와는 반대로 될 수 있으면 우수하고 강한 수컷을 골라 상대하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다음 세대 만들기에 분업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컷은 양을 추구하면서도 질을 맡는다. 변화의 담당자이자 질質의 담당자다. 암컷은 양을 맡으면서도 질을 추구한다. 실로 완벽한 분업이지 않은가.
  이 논리는 남자의 바람기를 합리화하는 근거가 될 만한데, 순수하게 생물학적으로 그렇다는 것뿐이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서 꼭 이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이러한 남녀의 역할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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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 2011-03-2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금 먼 곳에서 추천하고 가오. ^^ 내일 서점에 가서 마리 여사 책들 표지 구경이나 해야겠는 걸. ㅎㅎ

인문MD 바갈라딘 2011-03-28 13:22   좋아요 0 | URL
네, 아마 나머지 책들이 모두 출간되면 이전 표지들을 최근 표지에 맞춰서 세트로 판매할 수도 있을 듯.

최 여사 2011-03-2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저도 사랑합니다, 그녀.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찾아올게요. ^^

인문MD 바갈라딘 2011-03-28 13:22   좋아요 0 | URL
꼭 제때 올려야겠군요. 퇴근 전에는 올리겠습니다. 꾸벅.

룰루브이 2011-03-2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

2011-03-26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3-28 13:22   좋아요 0 | URL
아, 잘 지내시죠? 인문학스터디가 별다른 뒷풀이가 없어서 따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고맙습니다.

금자 2011-03-2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마리여사 책이 나왔군요! 두든반 새근반~ 서점으로 고고씽!

인문MD 바갈라딘 2011-03-28 13:23   좋아요 0 | URL
아, 알라딘도 있습니다. 잊지 마시길... ^^

순오기 2011-04-0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산책에서 보고 클릭했답니다~~~~
착실하게 읽어보렵니다.
카테고리가 '북 엠마고'군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4-02 07:30   좋아요 0 | URL
아, '북 엠바고'입니다. 늘 본문이 길어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마리 여사의 글은 분량도 맞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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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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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의 위대함은 그 시작이 야만이었다는 데 있다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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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를 뒤집어 다시 산을 오르는 빌 브라이슨의 용기에 박수를~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 1- 고전문학, 저 너머를 상상하다
권순긍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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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찌든 고전문학을 거부한다, 아니 고전문학도 거부한다, 그냥 문학이라 불러다오
룸살롱 공화국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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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상상하는 딱 그 수준의 일들이 벌어지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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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현상이 존재한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알 것인가?’ 이것의 인식 수단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사회과학 방법론입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사회과학 공부를 해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살리는 사회과학의 힘이 생소하고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초대장을 보냅니다.  
   

 

 

 

사회과학방법론, 대학 필수 교양으로 들었는데, 가설을 세우고 분석 방법을 마련해 증명하는 과정을 거쳤던 기억이 납니다. 두어 달 정도 각종 통계나 기사를 비판적으로 보고는 잊고 살아온 듯합니다. 우석훈 선생은 80년대 투쟁과 비판의 언어였던 사회과학을 소통과 실천의 언어로 자리매김하려는 듯합니다. 이 기획은 오랜 기간 여러 사람들과 강의를 진행하고 글을 쓰고 나누며 공들여 만든 한국사회의 사회과학 입문강좌입니다. 우석훈 선생의 연이은 저작에 조금 지친 분들께는 새로움을, 사회과학이란 말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께는 유쾌한 경험을 전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만든 과정은 '사회과학 방법론 기초(http://cafe.daum.net/woo-s/)'라는 까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이 책의 서문을 공개합니다. 더불어 강의 차례와 책의 차례를 함께 정리해 비교해보실 수 있습니다.

 

  

무엇이 공동체를 지키는가!

 

사회의 그 어느 것도 공짜로 좋아지거나 개선되는 일은 없다. 정부나 정당이 알아서 미리미리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발언하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레드 퀸의 가설’이 바로 그 얘기 아닌가? 열심히 뛰지 않으면 제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나라, 그게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정말 이상한 나라를 보게 될지 모른다.  

 

나는 우리의 문제를 풀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경제학과 사회학을 결합시킨 ‘사회경제학’ 같은 분과를 열어서 사회와 경제를 통합적으로 살펴보고 싶었는데,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경제학과 생태학을 통합적으로 접근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내가 희망했던 것은 ‘유학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 대학원생들과 박사과정 후배들을 모아 계속해서 스터디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강의를 줄곧 했던 것은, 최소한 내가 속해 있는 생태경제학 분야만큼이라도 국내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벽에 부딪혔다. 지난 10년 동안 대학원은 물론 학부에서도 유학이 당연한 일이 되었고, 이제는 초등학생에 유치원생까지 유학을 보내는 풍토가 되었다. 국내에서 생산된 인재가 최소한 자기 나라에서 부당하게 설움 받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완결된 교육 과정을 갖지 못했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자녀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보내고, 중고등학교는 외국에서 다니게 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긴다. 교육 과정의 문제를 고쳐서 좋게 만들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자녀를 외국에 보내 교육시키는 사회라니! 그러고도 잘살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리는 우리말로 학문할 수 없게 만든 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기 말로 학문을 하는 풍토에서 비로소 세계적인 이론이 나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프랑스어로 철학하는 프랑스, 독일어로 학문하는 독일, 일본어로 연구하는 일본, 우리 한국만 우리말로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을 폐기하는 중이다.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요즘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 과제에서도 SCI(과학기술 논문 색인지수) 기준을 들이대면서 외국의 학술지에 발표하도록 유도한다. 정부가 돈을 들여서 자국의 국민들이 읽기 어려운 논문을 쓰도록 하는 셈이다. 정부 연구 과제는 기본적으로 세금에서 지원하는 것인데, 그 세금의 납세자들이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외국의 학술지에 실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기본 논문은 대부분 영어로 쓰여지고, 우리말로 된 문헌들도 거의 외래어 수준이어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학계의 장벽이 너무 높아지면 결국 국민이 그 분야를 외면하게 된다. 벽은 너무 견고하다.

 

 

몇 년 동안 대학생, 대학원생들과 크고 작은 스터디를 하면서, 기초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학문의 전문화만 지나치게 외치면서, 사회과학의 기본을 다루는 논의가 없었고, 마땅히 쓸 만한 교과서도 없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들이 큰 부담 없이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안내하는 책을 내고 싶었다. 

이 책에 정리한 내용은 대학생들과 공동 연구 및 분석 작업을 하면서 약식으로 가르쳤던 기초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몇 번에 걸쳐서 진화시킨 것이다. 여러 차례 강의를 하면서 호응도가 높지 않거나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은 제외했고, 현장에서의 실용성을 강조했다. 인문사회 분야의 학부 1~2학년 또는 비전공자인 경우 대학원 1학기 정도에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용들로, 사회과학에 대한 개괄적인 입문서 수준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옛날얘기만 늘어놓지도 않았고, 1990년대 이후 발전된 방법론에 대해서 많이 소개하려고 했다. 

욕심 같아서는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시선을 확장시키기 위해 사회과학 공부를 할 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경제와 윤리 혹은 경제철학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전개해보고 싶다. 

각 장의 끝에는 예습용 목적으로 쪽글이 하나씩 달려 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복습을 충실히 하는 편이 낫겠지만, 공부가 지겨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나 창의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는 예습이 더 도움이 된다는 나의 공부 습관이 반영된 것이다. 시간을 내서라도 쪽글을 써보고 다음 장을 읽는 편이, 효과는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결국 글의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인데, 그런 훈련을 병행하면서 실제 내용을 읽는다면 응용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사회과학의 힘은 비판에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한국에서 사회과학은 대결의 언어였고, 날 선 논쟁의 언어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확히 분석하고 구체적 맥락을 드러내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과 싸우기 위해서거나 논쟁하기 위해서 학문을 한다면 너무 허망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실 좌파든 우파든, 소통이라는 말을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느냐”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건 홍보지 소통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이 된 데는 언어의 문제도 있다. 

좌우로 싸늘하게 갈리는 양상은 일상에서보다 학문 내에서 더 강한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사보타지 외에 한 게 뭐가 있는가? 사회과학 내에서도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렸던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는 동안 일반인들은 사회과학으로부터 멀어졌고,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언어는 사라져버린 셈이다. 사회과학이 학문으로서 부여받은 소명으로부터 우리가 너무 멀리 온 게 아닌가? 

이제는 소통을 넘어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탈권위주의와 탈계몽주의 시대에 이해와 공감을 위한 새로운 의사전달 방식이 사회과학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그런 개인적인 고민이 책의 후반부에 들어 있다. 우리의 특수성을 생각할 때, 전통적인 방법론 논의보다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사회과학이라는, 좀 오래되었지만 인류 보편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같이 대화하고 논의하고, 또 그렇게 뜻을 모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이 나라는 경제 근본주의에만 경도되어 ‘돈의 언어’만 난무했지, ‘이성의 언어’는 온데간데없었다. 의견을 모아나가고 합의해가는 장치 중의 하나인 사회과학의 언어가 죽었던 것 아닌가? 경제학은 사회과학을 구성하는 수많은 분과 중의 하나에 불과한데, 돈의 언어가 보편적이 되면서 지독한 경제 근본주의의 폐해를 낳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단계라면, 조금은 더 이성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갈 방법을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볼 시점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성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책을 준비하면서, 사회과학 르네상스라는 희망을 생각하며 내가 가졌던 간절함이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 새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과학이 기본적으로 수다쟁이들의 언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맞다, 사회과학자들은 참 말 많은 사람들이고, 간단한 것을 아주 기괴한 언어를 통해서 복잡하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좀 시끄럽고 요란해져도 좋은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처받거나 아픈 기억을 갖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1980년대의 사회과학은 상처를 주는 데만 집중하다가 결국 많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사회과학은 남성적인 측면만 강조되었고, 수컷들의 호전성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온화하게 얘기하거나 부드럽게 얘기하면 전투성이 떨어진다는 것, 그게 우리가 지났던 80년대의 모습이었다. 사실 남들에게 상처를 주면 자신에게도 상처가 남는다. 논쟁에서 이기면 이긴 것 같지만, 그건 진짜 이긴 게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고한 완화시켜야 그게 진짜 이긴 것 아닌가? 

만약 우리에게 사회과학의 시대가 다시 돌아온다면 더 많은 소녀들과 주부들이 이 사회과학에 초대되어야 하고, 그들이 “당신들이 맞다, 틀리다‘라고 기꺼이 평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은 글을 쓰거나 생각을 정리할 때 또는 사회의 대안을 찾아갈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실용적인 목적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의 언어가 엘리트 남성들의 전투 용어에서 여성을 포함한 생활인들의 일상용어로 바뀌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대중들과 어떻게 얘기하고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줄 것인가, 그런 실용적인 측면을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의 이런 노력이 과연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결실의 기준을 나는 10년 후에 조기 유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되었는지로 삼고 싶다. 우리가 이렇게 고군분투했는데도 사회적으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아주 허망한 일이다. 개개인의 삶이 지금보다는 윤택해지거나 풍성해지면 좋겠지만, 이건 객관적 지수로 확인해볼 길이 없다. 그러나 조기 유학이 계속되는지 아닌지, 그런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한국 상황과 사회적 논의의 방향을 보았을 때, 조기 유학이 더 늘면 늘지,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생태학에서 사용하는 ‘깃대종 접근법’인 셈인데, 특수한 생물은 그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지 알 수 있다.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던 ‘쉬리’ 같은 게 그런 깃대종이다. 조기 유학은 하나의 단일한 사건이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면, 교육 문제, 학문의 내적 재생산 문제, 청년들의 취업 문제, 여성들의 권리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한국의 경제 엘리트들도 지금보다는 좀 더 염치와 도덕을 탑재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정말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다음 10년의 논의와 변화를 모아 이 책의 개정판을 내게 될 것이다. 우리 공동의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논의에 참여할 때 비로소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법률로 정해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덕적인 호소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사회적 논의를 보다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려면 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니 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과학으로의 초대장을 보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음 10년, 새로운 희망을 여러분과 함께 꿈꾸고 싶다.
 

 

[강좌 차례] 

1강. 프롤로그. 착한 것과 똑똑한 것  

2강. 학이란 무엇인가? : 학의 기원과 현대적 분화 

3강. 인과론과 실존의 문제 : 인간의 특수성 

4강. 경제적 인간과 사회적 인간 : 구조와 개인 그리고 다리 

5강. 설명과 이해 : 과학철학과 해석학 

6강.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 일원론과 다원론 

7강. 선형 모델과 비선형 모델 

8강. 시간을 다루는 법 : 탈역사주의, 목적론, 진화론 

9강. 공간을 다루는 법 : 균질성, 단절, 땅값주의, 정주권 

10강. 작업가설의 유용성 : 파라다임과 에피스떼메 

11강. 관찰과 개입 : 전문가와 지식인 그리고 지성 

12강. 대상과 애정 : 중립성과 당파성 

13강. 랩과 스쿨 :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차이 

14강. 집단지식과 개별지식 : 미국식 사회과학과 유럽식 사회과학 

15강. 에필로그 
 

[책 차례]   

1장. 지금, 우리에게는 사회과학이 필요하다 

2장. 착해지기 VS 똑똑해지기 

3장. 학문이란 무엇인가? : 백과사전형 지식의 귀환 

4장. 실존과 선택 : 학자의 탄생, 그리고 지지 않는 학문 

5장. 경제적 인간과 사회적 인가 : 개인, 구조, 그리고 다리 

6장. 설명과 이해 : 과학주의 VS 해석학 

7장. 환원주의와 다원론 : 쉬운 길과 어려운 길 

8장. 균질성과 비균질성 : 주체의 속성 

9장. 선형과 비선형 : 단순한 숫자와 복잡한 숫자 

10장. 시간을 다루는 법 : 역사에 목적지 같은 건 없다 

11장. 공간을 다루는 법 : 걷고 싶은 거리? 굽고 싶은 거리? 

12장. 스토리 라인 잡기 : 작업가설의 유용성 

13장. 사회과학, 실험은 없다!




댓글(3) 먼댓글(1) 좋아요(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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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아빠 2011-03-1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우 우석훈 샘이다~ㅎㅎ

힘센소 2011-03-1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앞으로 풀어낼 우 선생님 강좌가 흥미진진 기대됩니다!!!

좌석훈 2011-03-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또 어떤 얘기를 풀어내실지 궁금하네요. 강연이 진짜 알짜시라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