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로 이성적 인간의 허울을 벗겨내고 약탈하는 자로서의 인간 존재를 명쾌하게 드러낸 존 그레이의 신작 <추악한 동맹>. 이번에는 정치와 종교의 불온한 동맹에 사로잡힌 인류의 가능성을 짚어봅니다. 그의 시니컬한 시선 못지 않게 글솜씨 또한 화제를 모으고 있어 차례로 번역될 다른 작품들이 기대됩니다. 이에 여러 분의 아쉬움을 달래드리고자 펭귄출판사가 진행한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특히 <만들어진 신>과 관련한 논의는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인터뷰 번역과 정리는 이후 출판사 신원제 편집자가 맡아주셨습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enguin.co.uk/nf/Book/BookDisplay/0,,9780141025988,00.html

 

“검은 미사(Black Mass)”(<추악한 동맹>의 원제)라는 제목을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제목을 지을 때 이 책의 핵심 주제이자 근대사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 종교의 정치적 변형이라는 문제를 제목에 담길 원했어요. 검은 미사는 기독교 미사의 일종인데 다만 공식적인 미사의 뒤편에 존재하죠. 지난 수세기 동안 가장 파괴적인 운동은 천상의 유토피아적 전망을 이 땅에 실현시키겠다는 기독교의 종말론 신화에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정치 종교란 그런 것이죠. 자코뱅당에서 볼셰비키까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에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까지, 급진 이슬람교도부터 전 지구적 자유 시장을 외치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들까지, 근대 정치는 종말론 종교의 다양한 변형에 좌지우지 되어 왔습니다. 

다른 이유는 음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러시아 작곡가인 알렉산드르 스크랴빈(Alexander Scriabin, 1872~1915)의 열렬한 팬입니다. 스크랴빈의 아홉 번째 피아노 소나타인 “검은 미사”는 아마도 음악 역사상 가장 음울한 작품 중 하나일 것입니다. “검은 미사”라는 곡은 레닌과 히틀러, 그리고 마오쩌둥의 사상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어두우면서도 악마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펭귄 편집자이자 마찬가지로 스크랴빈의 추종자 중 한 사람인 사이먼 와인더와 대화를 나누면서 스크랴빈의 이 곡 이름을 따 책 제목을 짓자는 생각이 나왔지요.
  
이 책은 과거 큰 성공을 거뒀던 저작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새로운 출발이라고 봐도 될까요?
 
초기 작품들과 연속선상에 있는 지점도 분명 있습니다만 <추악한 동맹>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전작인 <False Dawn>에서는 지구화를 조명했지요. 그러면서 당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나 친기업적인 작가들이 보여 준 장밋빛 전망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지구화로 세계가 상호 연관될 수는 있겠지만 더 자유롭거나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지요.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갈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습니다. <Al Qaeda and What It Means To Be Modern>에서는 알카에다가 중세나 그 비슷한 시기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문제 삼았습니다. 알카에다는 실제 지구화의 산물이며 따라서 독특하게도 근대적이라 주장한 바 있죠. 

<추악한 동맹>에서는 이 분석을 더 심화시켰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근대 계몽주의가 승리를 거둬 우리가 신화적 사고에서 합리적인 세계관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이러한 이동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급진적인 계몽주의는 신화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 신화는 기독교의 기원, 혹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죠. 계몽주의는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대 정치를 추동하는 힘은 종교적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유토피아가 도래하리라는 믿음과 진보라는 관념이 바로 그 힘입니다. 예를 들어 무제한의 성장을 용인하고 믿는 최근의 경향은 인간이 이 행성의 주인이라는 일신교적 관념의 부산물입니다. 21세기 초반 이 세속적 신화는 죽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인류의 대부분은 근본주의적인 종교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라크 전쟁은 일종의 전환점이 됩니다. 이라크 전쟁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한 십자군 운동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고 석유 장악을 위한 전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시작은 그러했지만 이라크 전쟁은 결국 해소할 수 없는 종파 간 분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저자 입장에서 <추악한 동맹> 가운데 독자들 뇌리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추악한 동맹>의 2장에서 언급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1920년대 중반에 스탈린은 러시아 과학자에게 인간과 유인원을 이종 교배해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개발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사실 그 명령을 받은 사람은 과학자라기보다는 거래용 경주마를 사육하는 사람이었지요. 스탈린은 덜 먹고 덜 자도 되는 새로운 유형의 병사를 원했던 겁니다. 물론 그 병사는 정상적인 인간의 감정을 가지지 않아야 했지요. 스탈린은 이처럼 새로운 인간 종이 만들어진다면 자신의 힘을 확장하는 데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물론 그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추악한 동맹>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지식의 진전이 인류를 더 합리적으로, 혹은 더 자애롭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지식의 성장은 단지 인간들이 자신의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뿐입니다. 그 목표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죠. 지식의 성장으로 우리는 오늘날 번영을 누리고 수명이 연장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동시에 같은 지식이 기후변화와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도 가져 왔지요. 이 이중성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할 겁니다. 그 이중성은 우리 내면의 갈등을 반영하기 때문이지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Straw Dogs)>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이 책과 <추악한 동맹>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나는 인간 진보에 대한 휴머니스트들의 믿음이 전통적인 종교의 신화만큼이나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게 핵심이었지요. 사실 종교의 신화는 세속의 신화에 비하면 인간 삶의 현실을 견뎌내라는 메시지에 가까웠습니다. <추악한 동맹>은 이 생각을 더 발전시켜 미국 신보수주의의 발흥, 각양각색의 테러리즘, 그리고 고전적인 지정학으로의 회귀 등 지난 수세기 동안 발생한 대중적인 정치 운동을 분석하는 데 사용합니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처럼 <추악한 동맹>도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친숙한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의 성공을 보면서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룬 책을 읽고 싶어하는 잠재적 독자층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추악한 동맹>은 이 주제를 더 단호하게 밀고 나갑니다. <만들어진 신>이 과연 유용한 책일까요? <만들어진 신>이 유용하다면 그것은 이 책이 복음주의적인 무신론의 기독교적 기원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킨스는 종교란 과학이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한 이론이라 생각했고 신앙인들을 비합리적이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원시적인 과학 이론이 아닙니다. 종교는 신화입니다. <추악한 동맹>의 마지막 장에서 도킨스의 관점을 논하며 설명한 바 있죠. 과학과는 달리 신화는 진실 혹은 거짓으로 판명될 수 없지만 인간 경험을 실어 나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의 신화는 휴머니즘보다 진실하다고 봅니다. 도킨스는 자신이 다윈의 추종자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휴머니즘의 신화에 기대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주장은 과학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이 아니라 신념의 일부며, 그 신념은 도킨스 자신이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는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주의적 무신론자들처럼 도킨스 역시 신화의 보편성을 해명하지 못하며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화에 결코 의문을 제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만들어진 신>의 독자들이 <추악한 동맹>도 흥미롭게 생각할까요?
 
<만들어진 신>의 독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추악한 동맹>도 흥미롭게 읽을 것입니다. 종교에 대한 도킨스의 적대감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책에 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반면 도킨스처럼 전통 종교를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인간 진보라는 세속의 신념에 대한 내 공격은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추악한 동맹>은 분명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우려하게 하는 다른 지역이 있나요?
 
중동은 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계 거대 권력 사이의 지정학적 충돌이 종교 전쟁과 얽혀버린 가장 명백한 사례입니다.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 밖의 지역이 같은 경로를 밟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슬람과 서양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모든 산업 사회들이 연루되어 있는 갈등이죠. 중국과 인도는 에너지 집약적인 서구의 생활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그러한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산업주의의 확산은 많은 혜택을 가져오지만 자원 전쟁과 기후변화에 불을 붙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산업주의가 전체 행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다음 책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철학과 소설 사이의 경계에 관심이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가 자신의 작품을 소설이나 단편 이야기쯤으로 생각하고 썼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 철학 텍스트를 우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철학 그 자체가 일종의 소설은 아닐까요? 

또, 과학에 대한 글을 쓰고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적인 문제든 윤리적 문제든, 모든 문제는 원칙적으로 과학의 도움을 빌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그게 과연 사실일까요? 오히려 궁극적인 해결책인 양 내놓은 과학의 결론이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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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만 강조된 사회과학의 본질을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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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하라>, 이것은 책의 제호가 아니다. 93세 노투사의 육성이다. 혁명과 코뮌 그리고 레지스탕스의 역사가 만들어낸 프랑스 지성의 절정이다. 그리고 청년들과 미래를 향한 절절한 애정이다. 앵디녜부! 레지스탕스! 앙가주망! 분노와 저항과 참여를 통하여 거대한 역사의 일부가 되기를 호소한다. 프랑스보다 분노할 것이 훨씬 더 많은 우리들에게 그의 외침은 정수리에 올려놓은 얼음조각처럼 가슴 서늘한 깨달음이 된다. 분노의 표적을 잃은 채 부당한 증오에 함몰해 있는 자신을 깨닫고 진정 분노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격렬한 희망’, ‘평화적 봉기’에 이어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이 곧 창조이다.(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작년 프랑스를 뒤흔든 13쪽짜리 책이 있습니다. 출간 직후 수십 만부가 나가 한국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분노하라>. 사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다만 매일 분노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바꿔볼 생각이나 행동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러려니, 하며 체념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94세의 나이에도 체념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진보를 믿으며 현실의 가능성을 키워가자고 제안합니다. 이제 프랑스발 분노의 바람이 한국에도 들이닥칠 참입니다. 뜨거운 분노의 바람에 앞서 <분노하라>의 한국어판 번역자(임희근)와 저자가 나눈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참고로 이 책은 다음 주에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옵니다. 

* 저작권 문제로 해당 인터뷰 전문을 내리고 일부 질문과 내용만 남겨둡니다. 전문은 책으로 만나보시길. 

 

[스테판 에셀 인터뷰]

책에 소개된 프로필 외에, 그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우리 집안은 관습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습니다. (중략) 그래서 일찍부터 저는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과는 일정 거리를 두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도덕이란 타인들이, 사회가 만들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규범(code)에 순응하는 것일 터입니다. 또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할 것, 즉 발명이며 창조, 즉 결국 각자 자기만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올해 94세의 고령인데도 정말 정정하게, 열정적인 삶을 살고 계신 듯합니다. 백 세에 가까운 노령에도 그러한 강건함과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비결, 그것은 물론 ‘분개할 일에 분개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기쁨’입니다.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개’입니다. 분개할 일에 분개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중략)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과 베푸는 기쁨을. 남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책임을 감수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 이 마음을 북돋워야 합니다. 사람을 책임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자꾸만 교육을 통해 계발해야 하며, 마음 교육을 위해서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집필 당시 이런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 작은 책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때가 이 세계의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또한 어떻게 보면, 정치적 윤리를 설파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행동을 취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윤리적 기본이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에서 (요즘 사람들에게 들려줄) 메아리를 찾습니다. 그러면 젊은 세대는 그 메아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렇습니다. 겨우 20페이지밖에 안 되는 제 책이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것은  전세계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절감하고 있는 문제 제기에 이 책이 화답을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레지스탕스 정신과 전통이 오늘날 어떻게 계승되고 반영된다고 생각하십니까?

1944년 5월 채택된 ‘프랑스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의 프로그램은 치열한 현실성을 띤 내용이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텍스트였습니다. 우선 길이가 짧았고, 또한 내용이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짚어냈습니다. (중략) 잘 되어가는 사회란 무엇입니까? 모든 시민에게 존재의 방도가(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 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하는 사회, 금권에 대항하여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입니다. 세 단어로 짧게 줄이면 여전히 이것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 
 

만약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으십니까? 또 오늘날의 레지스탕스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 나름으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광고 메시지나 언론이 전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만 자유롭게, 양심에 입각해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옛날 레지스탕스 당시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네트워크를 이용해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상의 여러 네트워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습니다. 아랍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런 일을 훌륭히 해냈고, 그리하여 독재자를 축출하는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현재 아랍과 이슬람권-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민주화 요구가 한창입니다. 이 흐름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튀니지의 젊은이들, 이집트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압박을 받으면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이슬람 문명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문명이라면 그 문명 속에 갇힌 채 무력하게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도처에 독재와 압박에 순응하지 않는 깨어 있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미얀마나 그밖의 나라들... 이런 나라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주 소중한 시기입니다. 특히 이렇게 떨치고 일어난 이들이 다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도처에, 때는 왔습니다.  
 

책에서 강조하신 ‘창조적인 저항의식’으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방법이 있을까요?  

제도들이 민주적으로 기능하기까지 시민들의 참여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사람들이 항상 잘 깨닫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교육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교육도 부족하지만 정치적 창의성도 부족합니다. 시민과 통치자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참여(적) 민주주의’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도 여전히 막연합니다. 사실은 보통선거 방식으로 ‘넘버 원’을 선출하는 것–지방선거든, 전국적 선거든–만이 여러 제도를 제대로 기능케 하는 민주적 형태는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 일단 선출된 대표자는 시민들이 원하는 바, 생각하는 바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한 단계 높은 정치적 창의성은 우리 제도에 무엇을 요구할까요? 새로운 형태의 기능을 요구합니다.     


부자들에 의한 미디어 독점과 언론 독립 정신의 훼손을 매우 우려하고 계십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인 듯한데, 시민들 개개인 혹은 미디어 종사자들이 이런 상황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오늘날 모든 문제들은 상호의존적입니다. 인류가 이 땅에서 사는 방식을 전반적으로 재고하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극도의 빈곤 문제가 생태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이 두 문제는 테러리즘 문제와 연관됩니다. 즉 우리 각자 안에 내재한, 그리고 우리가 다른 것으로 바꾸려 노력해야 할 ‘폭력의 필요성(폭력을 자행하고 싶은 경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문제 말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관해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함께 행동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비폭력 원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미래로, 희망으로 향한 문을 닫아버리게 합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썼듯이 제가 보기엔, 격렬할(폭력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희망뿐이라는 것입니다. (중략) 하지만 꼭 알아두십시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이나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들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어려운 구축(構築)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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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워튼 2011-06-0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다리던 책인데 돌베개에서 나오네요. 읽고 분노하겠습니다. ^^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0 17:35   좋아요 0 | URL
벌써 식은 건 아니겠지요? 분노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해환 2011-06-0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쥘과 짐과 한집에 살며 까트린을 엄마라고 부른 할아버지였다는 깨알같은 정보, 얻어갑니다~ㅎ 언제나오나 손꼽고 있었는데, 드디어 담주 화욜이군요. 한껏 기대하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0 17:35   좋아요 0 | URL
이미 분노의 열기를 느끼고 계시겠군요. 후후.

루쉰P 2011-06-0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정보 너무 감사해요. ^^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0 17:35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보내주시는 관심과 애정 늘 고맙습니다. 다음 주에는 폭풍처럼 재미난 이야기가 올라갈 테니 기대해주세요.

처음처럼 2011-06-13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짤막한 인터뷰이지만, 구순이 넘은 노투사의 진심에 피가 끓는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5 10:23   좋아요 0 | URL
네, 책에는 조금 더 긴 인터뷰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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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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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라마 속 스파르타쿠스의 스케일은 실제 역사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도시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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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과 미래만 가득한 도시 문화에 전하는 돌아봄의 가치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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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촌스러움이 없다는 미적 감각을 확인시켜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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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1-05-3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마지막에 깨알 같은 책소개가 있군요 ㅎㅎ

인문MD 바갈라딘 2011-05-31 17:07   좋아요 0 | URL
우와, 우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날아가는 카피를 잡아두고자 자료처럼 올리는 리스트인데, 감동입니다. 저 카피에 부응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