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시대에 살면서 과학의 힘을 무시하는 만용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과학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혜택을 찬양하는 것과 더불어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진정한 평가를 내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끊임없는 도전과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한 과학자들의 위대함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인류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과학자들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과학이란 무엇이고, 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세밀하게 포착한다.(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사람은 누구일까? 다소 황당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20세기를 수놓은, 하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최고의 인명 구조원 10명을 찾는 여정이다. 최초로 혈액형을 발견하여 10억8천3백만 명 이상 생명을 구한 카를 란트슈타이너, 인슐린을 찾아내서 1천6백만 명 이상 생명을 구한 프레더릭 밴팅, 홍역/소아마비 백신 개발로 1억1천4백만 명 이상 생명을 구한 존 엔더스 등 저자의 추산에 따르면 이들 10명의 슈퍼 히어로가 구한 생명이 무려 17억 6500만 명이다. 그럼에도 왜 이들은 아인슈타인보다 훨씬 덜 알려진 걸까. 미국을 초토화시킨 천연두를 막아 1억 22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빌 페이지는 이렇게 말한다.   

“젊은 사람들은 천연두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정말 근사하지 않나요?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정말 행복했어요.” 그렇다. 연구는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본문) 

수십 억은 아니지만 매일 수백 혹은 수천에게 즐거움을 전해주시는 서민(단국대 의대) 선생님의 추천사 전문을 단독 공개한다. 사정상 책에는 한 단락만 실렸다.

 

열정보단 끈기를

김병만이 열연하는 ‘달인’은 개그콘서트의 최장수 인기프로다. 어떤 기발한 코미디도 6개월이 지나면 식상하기 마련인데, ‘달인’은 예외다. 불가능한 분야에 도전해 매번 그걸 이루어 내는 모습이 웃음과 더불어 감동까지 주니, 김병만에겐 ‘달인’이란 호칭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김병만이 연예오락 분야에 쏟는 만큼의 열정을 쏟아 부은, 그래서 인류에게 행복을 선사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어두울 때 아무 생각 없이 켜는 전구는 물론이고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전화기 역시 몇몇 선각자들의 부단한 노력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수많은 ‘달인’들이 있었다. 우리가 천연두를 전혀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도, 수술할 때 부작용에 대한 걱정 없이 수혈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분들 덕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수많은 ‘그분’들을 다 알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자기가 좋아서 한 건데 뭐!”라는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니까. 다만 이런 생각은 좀 해봄직하다. 인류를 구한 그 수많은 생명과학의 달인들 중 왜 우리나라 사람은 하나도 없을까? 매번 빚만 지고 갚을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 다음, 혹은 다다음 세대에서는 ‘달인’이 나오도록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달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사람은?’이란 주제 아래 열 명의 달인들을,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 이들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열정
이들에겐 세상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고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고자, 혹은 세상에 태어났으니 뭐 하나 도움이 되는 업적을 남기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 예컨대 뉴욕 명문고등학교 출신인 데이비드 날린은 화려한 생활을 뒤로한 채 병마와 싸우러 방글라데시로 간다. 천연두 박멸에 성공한 빌 페이지는 “너무 심한 환자를 보면 공포에 질려 달아나고 싶어”지는 나이지리아에서 일했다. 프레더릭 밴팅은 “당뇨에 대한 생각은 잊고 안정되게 정착해 병원 일에 전념”하라는 약혼녀의 요청을 뿌리쳐야 했다. 여기서 “약혼녀가 별로 안 좋았나 보다” 같은 말은 하지 말자.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자기 팔에 찌를 만큼의 열정을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2) 끈기
선각자적인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부딪히는 장벽이 많다. 먼저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 “(스타틴이) 쥐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금이 아니라 전혀 낮추지 못한 것이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엔도는 실험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4년의 연구와 349번의 실패 끝에 뮐러는 마침내 그의 350번째 화합물인 디페닐 트리클로로에틸 유도체를 파리가 들어 있는 상자 속에 넣었다.” 그 다음으로 기존의 지식이 바뀌는 걸 원치 않는 보수적인 과학계가 있다. 예컨대 “영국의 유명한 의학 잡지 <랜싯(Lancet)> 지의 표지 기사로 실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도 그 기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표지 기사였는데도.” 심지어 연구를 방해하는 세력도 존재한다. “(상사는) 새로운 실험 계획의 단점을 지적하면서, 계획을 조금 미루고 기술 및 임상연구위원회의 평가를 받아보라고 했다....오랫동안 실험을 미루라는 것은 콜레라 실험을 영원히 접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콜립(밴팅의 동료)은 인슐린을 정제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토론토 대학은 밴팅을 의대 직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는 게 바로 끈기다. 우리나라 연구자들 중에도 열정을 갖고 있는 분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끈기가 부족해 위대한 업적을 내지 못한다. 약간의 장벽만 있어도 “우리나라는 연구환경이...” “미국에 비하면 연구비가...” 같은 말을 하면서 연구를 때려치운다. 우리 교육도 앞으로는 열정보다 끈기를 지향해야 할 텐데,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학원에 잡아놓는 게 그 일환일지 모르겠다.

3) 대가
대단한 연구를 이루고 나면 돈과 명예가 따라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아니다. 예컨대 “빈 대학은 란트슈타이너에게 끝까지 전임 교수 자리를 제의하지 않았다.” 획기적인 콜레스테롤 억제제를 개발한 엔도는 돈을 버는 대신 회사에서 내쫓겼고, 페니실린을 약으로 만든 플로리는 그 명예를 플레밍에게 빼앗겼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간혹 노벨상이 그들에게 보상을 해주긴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그것만은 아니다. 페이지의 말, “젊은 사람들은 천연두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정말 근사하지 않나요?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정말 행복했어요.” 그렇다. 연구는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 우리 교육은 아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가르치고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을 읽으면 한때나마 그런 마음이 생기는 건 확실하다. 지금 연구의 일선에 있는 분들, 앞으로 연구를 할 분들도 이 책을 읽어야겠지만, 연구와 관계없는 분들도 이 책의 독자가 됐으면 좋겠다. 연구자에게 있어서 필요한 건 일반 대중들의 지지와 격려고, 위대한 연구의 수혜자는 바로 그들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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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우리나라 보수의 실체와 몰락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다음 정권을 준비하는 민주 개혁 진영에게도 소중한 교훈을 주는 반가운 책이다. 유쾌하고 꼼꼼한 일독을 권한다.(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사평론가 김용민의 신작 <보수를 팝니다>는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보수를 내다 팝니다'와 조중동으로 포장됐던 '보수를 후벼 팝니다'를 콘셉트로 모태 보수의 나약함을 공략하고 기회주의 보수를 실력으로 이기고 무지몽매 보수를 우리 편으로 꼬시며 가장 강력한 자본가 보수와의 긴 싸움을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보수 완정정복 교과서'다. 

다음 주 출간을 앞두고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인 한미 FTA 문제에 대한 김용민의 분석을 단독 최초 공개한다. 김용민의 FTA 그레이트 빅엿 "김종훈은 어떻게 노무현을 속였는가"

  

 

예약구매 하기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12124X 

나꼼수 응원댓글 달기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11018_nacom 

김용민 교수 강연회 신청하기 http://blog.aladin.co.kr/culture/5179680  

 

김종훈은 어떻게 노무현을 속였는가

어떻게 자기를 믿어준 대통령까지 속이고 친미할 수 있을까?

‘노무현의 사람’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밥줄을 끊고 내보냈던 이명박 정권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이 있다. 바로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이다. 참여정부 시대에 한-칠레 FTA, 한미 FTA를 주도했던 김종훈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FTA의 전도사로서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섰다.

미국이 쌀을 걸고 나오면 협상을 깨라
그런데 <위키리크스>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터뜨렸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7년 8월 29일, 그러니까 한미 양국이 FTA에 서명한 지 두 달 정도 되는 시기에 김종훈은 얼 포머로이 미국 하원의원,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쌀 추가 협상을약속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미국이 쌀을 걸고 나오면 협상을 깨라”고 강경하게 주문했고, 그래서 서명 당시 FTA에는 쌀이 제외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캘리포니아의 곡물업자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포머로이의 불평에 김종훈은 “한국 정치권은 농민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강한 보호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어 현재로서는 쌀 문제를 다룰 수 없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의 쌀 관세화 유예가 2014년에 끝나면 한국 정부가 (미국과) 재논의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결국 노무현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노무현은 개성공단 생산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해서 FTA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협상 초기부터 이 문제를 타결 짓도록 지시했지만 김종훈은 멋대로 맨 마지막까지 미뤄버렸다. 역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의 외교 전문을 보자. 2006년 6월 11일에 조태용 외교부 북미국장은 미국 관료를 만난 자리에서 “한-미 FTA 협상에 개
성공단을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가 또 하나의 관심사”라는 질문에 “김종훈 대표가 ‘정치적인 문제는 마지막으로 남겨두겠다’고 말하더라” 라고 대답했다. 결국 이 역시 노무현을 속인 것이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실 노무현이 한미 FTA를 추진한 중요한 이유가 바로 개성공단이었기 때문이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아서 미국에 손쉽게 수출된다면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는 급상승할 것이고,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서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을 경제 개방으로 끌고 나오는 데 훨씬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은 국내 산업이 겪을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서라도 한미 F TA를 추진하려고 했다.
  그런데 협상대표 김종훈은 노무현을 속이고 한미 FTA의 진정한 의미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그나마도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참여정부 때보다 더 한국에 불리하고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질시켰다. 바로 그 김종훈이 여전히 협상대표다. 이명박 정부가 이제 와서 ‘노무현이 추진한 FTA’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까지도 속이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관료사회가 가진 지독한 보수 성향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고위 관료들에게는 ‘권력은 결국은 보수의 것’이라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흔히들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고위직 공무원들이야말로 뼛속까지 보수다. 사실 공무원의 정서에는 보수가 더 맞다. 대중들은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무원이야말로 IMF가 오든 금융위기가 오든 구조조정 당할 걱정이 없는 가장 안정된 자리라고 생각하고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한다. 이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렁 정권이 진보 진영 쪽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이들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대통령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꼼수를 부려서 보수의 이익을 충실하게 챙긴다.

숭미 사대주의에 찌든 외교부
외교 부서는 더 심각하다. 그들의 미국 편향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외교부에서 출세하려면 반드시 북미국을 거쳐야 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외무부 장차관의 3분의 2가 북미외교라인 출신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일본외교라인 쪽에서 나왔다. 이런 상황이니 ‘친미연대’나 ‘숭미 마피아’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외교부의 미국 편향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금은 유엔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반기문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노무현을 속인 일이 있었다. 용산기지 이전을 놓고 미국과 협상을 벌이던 당시 외교부 협상팀은 노무현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배제시켜 버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2003년 11월 18일에 작성한 ‘용산기지 이전 협상평가 결과보고’에는 이 협상팀이 어떤 방침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담겨 있었다.

● 대통령은 반미주의자이므로 협상개입을 최소화시킨다.
●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얼마의 돈이 들든지 추진해야 한다.
● 국회와 국민들이 문제 삼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의 형식으로 문자의 표현을 바꾸는 것을 협상의 목표로 한다.

  도대체 이거 어느 나라 협상팀의 방침인가? 한미 양국 모두가 한마음으로 미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이게 무슨 협상이겠는가? 그냥 일방통행이다.
  결국 참여정부가 처음에는 자주 외교를 표방했지만 갈수록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를 비롯한 주요한 외교 문제를 겪으면서 점점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인 것도, 숭미 사대주의에 찌든 외교부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속이고 미국의 이익에만 충실했으니, 오죽하면 참여정부 시절에 한미 FTA에 적극적이었던 정동영이 이제는 김종훈에게 “제2의 이완용”이라고 부르짖고 있겠는가?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이다. 장관은 그 핵심 브레인이다. 그리고 핵심 관료들은 팔다리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뜻이 실제로 반영되려면 머리만 진보여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머리가 원하는 바를 실천하는 부분은 팔다리인데 이 팔다리가 머리에서 내리는 지시를 안 듣고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한 것이다. 나중에 가면 팔다리가 머리를 조종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행정부의 지지 기반이 약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공무원 사회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래서 관료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해 주면서 개혁에 동참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큰 실책이었다. 정권은 기본적으로 보수의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세력들이 과연 대통령의 말을 들었겠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오히려 그들은 주어진 자율성을 보수를 위해서 봉사하는 데 악용했다.
  따라서 진보 진영이 집권하게 된다면 공무원 사회를 제대로 개혁하고 수술해서 정부의 머리가 생각한 내용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젊고 유능한, 그리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발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보수 관료들에게 또다시 끌려 다니면서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하는’ 예전의 실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개혁의 최대의 적은 보수 정당이 아니다. 그들은 선거 때문에 그래도 가끔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척이라도 한다. 탄탄한 철밥통을 갑옷처럼 두른 보수 관료들이야 말로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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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o 2011-11-05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딴나라당 알바들이 이 블로그 관리 들어간 것 맞군요.
제대로 책 한 권 읽어볼 수준도 안 되는 잡것들이...

gma.... 2011-11-05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작 저런것들로 속였다라고하기엔...
협상에는 전략이라는것이중요합니다
말할때도마찬가지구요...
제가보기엔.. 속였다라기보다는 옳은판단으로 적재적소때 화제를 꺼낸거같은데요
생각해보세요 미국과 협상자리에 시작하자마자 개성공단이야기 쌀 절대 개방불가 라는이야기를했으면
협상이 제대로 되었겠습니까? 쌀같은경우만봐도 굉장히 중요한문제라고 볼수있는데 보면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을뿐이지 포기한다는말도없고 결국 개성공단이야기도 하지않았겠습니까?
중요한건 협상을통해서 그당시 어떤성과를 이루어 냈느냐 가중요한거 아니겠습니까?
글에는 문맥이 있듯 협상에도 협상을하는 대화에도 그에따른 맥이있는것입니다

달그림자 2011-11-05 14:3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러나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죠, 그것이 안될 때는 혐상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우선순위를 정한것을 관리가 함부로 고치면
협상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shaind 2011-11-06 16:0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협상에서 "뭔가가 안될 때는 협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식의 경직된 자세는 그 자체가 협상력을 대폭 깎아먹는 악수입니다.

이봐요 2011-11-06 22:3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개성공단과 쌀 문제는 노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특히 개성공단은 노대통령이 fta를 추진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는데 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해 맨 뒤로 미루었다면 이는 수단을 위해 목적을 저버린 것이 아닙니까?

몽실엄니 2011-11-07 11: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봐요 님의 글에 전적 동감합니다 이런 의견이 세력화되어 지금이라도 바로 잡을 방법이 없을까요?정말 암울합니다

꾸르몽 2011-11-0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현재 한국의 현상을 볼수있는 올바른 눈들이 하나 둘씩 켜지는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남아있습니다.^^

쯔쯔쯔 2011-11-0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수꼴들 댓글다는 꼬라지는 하나같이 지저분하군

가만히 있으면 반감이라도 덜사지

괜히 주댕이 놀리다가 지들 깎아내리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

애국자 2011-11-0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싸우지말고 누가 애국자 구 누가매국노냐 가문제아닌가 객관적으로봤을때 김종훈이가 매구노 맟네 시발

no FTA 2011-11-0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종훈 빨리 잘라야겠어요
저런 위험한 사람을 외교의 중요한 자리에 쓰다니요.
손녀딸하고 세계여행이나 가쇼.

red 2011-11-05 13:5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미국에게 이권을 주고싶고 주권 주고싶은 현 정권이 그 일을 해주는 사람을 자를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만 빼면 많이 괜찮은데...
참 맘에 안들죠

siba 2011-11-07 23:1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김종훈도 (to the core) 친미니까요...

kkk7 2011-12-06 12:3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으로 김 종훈본부장님은 우리를 먼저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이뵙지는않았지만 생각이깊으신분으로 제기억에남아잇는데요,,,요즘 많이힘들어 하시더라구요, 너무청렴결백하시다보니 비쳐지는모습이 직선적이고 당돌하게비쳐지는거겠지만,옆에앉아서애기해보시면 너무좋은분이시랍니다,매국노라는표현은 좀심하신거가군요~~^^

보수웃기네 2011-11-05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가 보수냐!! 보수라는 색이 바랜지 오래 되지 않았나..그냥 필요없는 세력으로 전략해버린지 오래지..
야당은 솔직히 북한문제만 빼면 나쁘지 않은데..국익을 위해서 더 노력하니 얘들이 보수같기도 하더라..
누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지 참 환장할 노릇..

ㅇㅇ 2011-11-0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솔직히 우리나라 정치 잘해서 물꼬만 트면 과학이나 다른분야에서 탑먹을수있는데 노벨상도 충분히 딸수있는 민족이고.. 진짜 똑똑한 사람많은데.. 거지새끼들이 나라를 말아먹네

수꼴반대 2011-11-05 22:3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댓글에도 좋아요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ㅎ

jad 2011-11-0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위키리스트에 보면 김종훈이.. 미대사에게 흘린 내용들이 많죠.. 즉 그는 이완용이 많습니다. 보수가 아닌 수구 세력들이지죠.,. 님의 글을 보고 확실한 정립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shaind 2011-11-0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걸 보면 노무현이 얼마나 아마추어적이었는지 알 수 있고, 이걸 관료들이 자기 분야에 맞게 소화하느라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했다는 걸 알 수 있음. 협상에서 xx는 무조건 안돼라는 경직된 태도는 그만큼 큰 반대급부를 요구받게 되는데, 그럼 결국 손해보는건 경직된 쪽이 됨. 협상에서는 모든 것이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가야 이득을 최대화할 수 있음. 외교부는 노무현이 내린 외교적으로 불가능한 정치적인 지침을 나름대로 외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열심히 잘 소화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음.

어딜봐서? 2011-11-07 16:3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도대체 어딜봐서? 그렇게 잘난 네가 설명 좀 해줘. 도대체 어딜봐서?

S 2011-11-0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석학 장하준교수가 한미FTA 아예 폐기하랍니다. 수구꼴통들 보면 장하준교수보다 똑똑한척 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이런 2011-11-0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나가다 댓글을 보고 한마디 합니다. 협상에 대해 뭘 배웠는지, 모르면, 솔직히 모르겠다라고 할 것이지,..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 라고 말하는것은 경직된 사고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에는 협상하는 방법에 대한 기본과정이 있습니다. 그 맨 마지막에는, 협상할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유롭게 회의장을 걸어나갈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협상의 기본을 이야기 한거고, 김종훈이 어긴겁니다.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가서 좀 배워라,
똥개 샤끄여.

bloodlust 2011-11-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 지금 저 blog읽고 속에서 뭐가 울컥했어.
근데 짦으나마 내가 봐왔던 한국의 공무원 혹은 공기업등의 그런 조직의 사람들의 실태를 기억을 집어본다면...
솔직히 저런 김용민 교수의 지적을... 아니 이 책을 도저히 부정할수없다.
그들의 숭미.. 아니 그들의 종미사상을...
더 웃긴건 그들은 그들의 종미사상도 깨달지 못한체 오히려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애국이라 불릴수있는 충성과 한민족이라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극단적인 이중성이란것이다.
... 뭐... 그런 한국이란 국가와 한민족이라는 공동체가 그들의 철밥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국가와 공동체를 강조하는거겠지만...
그렇게 국가와 공동체극 강조하고 그들의 이익이 그런 국가와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그들의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으면서까지 종미를 지키는 모습이란....
그리고 상당수 애국과 민족애가 어느정도 있었던 건전한 보수주의자들이 종미적 수구꼴통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한편의 블랙코메디를 버무린 일본 고어 동인지 만화를 보는듯하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싶다...
한걸음 더 나아가자면... 그들은 오히려 그런 미국의 이익이... 종미적 사고가 진정한 한국의 국익과 애국 그리고 민족을 위한 길인걸로 완전히 자기세뇌화를 매일 거르지 않고 하는 중이란것이다.
아마 그렇기에 공무원 사회에 오래있을수록 윗대가리일수록 그런 종미적 사고방식에 더욱더 물든거겠지만..
마치 이완용등의 많은 친일매국 병원균들이 일본에 종속되는것만이 한민족이 살아남는 법이라고 자기쇄뇌를 했듯이 말이다...
(그거 아냐? 이완용은 독립신문 초창기 창간 멤버란 사실을...ㅋㅋㅋ)
뭐... 이완용같은 친일파나 현 한국의 종미적 공무원들이나 그것이 일본이 됐던 미국이 됐던 그런 외국에 반한 나머지.. (김어준 총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쫄아서) 친일매국이나 총미매국적 버러지들이 된거겠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매국질이 애국인줄 착각하고있는거겠지만...

풍덩 2011-11-0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역사는 매국노가 자자손손 잘 산다는 걸 보여줘서 그렇죠. ㅠ.ㅠ 그걸 뜯어고쳐야 해요.

바보때러잡는귀신 2011-11-10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용민이 저 걸레같은 인간이.....

주노네 2011-11-1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울컥한다...CBA...

이완용의부활 2011-12-3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2의 이완용이란 말이 이해가 가네요 대통령을 속이고 협상하고 이명박정부에 붙어서 기생충처럼 미국의 입장에서서
우리가 불리한 fta를 밀고 일은 다벌려놓고 이젠 퇴진이라니 발빼면 새상이 당신을 잊을것 같은가? 역사에 남을일이다

좋은날 2012-02-13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네요.솔직히 정동영이 FTA를 막 반대만 했을때... 과거에 자기가 만들어 놓고 왜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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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1월, 매해 그렇듯 올해도 다사다난. 그중 연말을 장식할 키워드는 스티브 잡스와 나는 꼼수다 아닐까 싶다.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정치>, 나는 꼼수다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공개한 <나는 꼼수다 뒷담화>에 이어 시사돼지 김용민의 본격 정치 평론이 나온다. 제목은 <보수를 팝니다>. 나꼼수 애청자라면 제목의 중의성을 이미 파악했을 터, 이 책은 보수에서 진보로 자리 바꿈한 자기 고백과 성찰이자 현 단계 대한민국 보수의 현상과 본질을 유쾌하게 파헤치는 시도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보수 완전정복 가이드'라 하겠다.

이 책의 인트로와 아웃트로, 보수를 유형별로 나눠 설명하는 본문 한 꼭지를 최초로 공개한다. 즐겁게 보시고 아래 주소로 가 예약구매를 하면 임무 완료다. 더불어 알라딘에서 마련한 '책으로 만나는 나는 꼼수다'에도 응원 댓글 부탁드린다. 아, 마지막으로 김용민 교수의 출간 기념 강좌도 있으니 마음껏 신청하시라. 

 

예약구매 하기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12124X 

나꼼수 응원댓글 달기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11018_nacom 

김용민 교수 강연회 신청하기 http://blog.aladin.co.kr/culture/5179680   

 

Intro.  
내가 지금 보수를 파는 이유
 

보수는 왜 그렇게 말하고, 왜 그렇게 행동할까?

보수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보수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왜 저러지?” 우리나라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보수 정치인들이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무식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름을 가진 이른바 보수 단체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빨갱이 척결’이라는 주문을 외면서 마구잡이 폭력을 휘두른다. 정말로 궁금하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말하고,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할까? 그건 그렇고 더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이해 안 가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선거 때만 되면 마치 기계처럼 저들에게 표를 던져왔던 걸까?

사실은, 나 역시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보수의 가치를 믿었고, 보수라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전통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보수가 이 나라를 바로 잡아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나는 개인적으로 쓰라린 경험을 몇 차례 겪고 나서야, 내가 생각하고 믿었던 보수가 대한민국에서는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미련 없이 보수에서 떠났다.

돌이켜보니, 내가 알아야 할 정치의 모든 것은 보수에게서 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내가 청년 보수로서 가졌던 믿음, 보수주의자들과 만나서 얻었던 경험들은 오랫동안 많은 교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겪었던 경험과 상처와 고민들이,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보수는 왜 그럴까?”와 같은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과 해답을 내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보수를 팝니다’의 두 가지 의미

‘보수를 팝니다’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물건을 사고팔듯이 보수를 파는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 상품은 삼성 갤럭시(애니콜)도 아니고 농심 새우깡도 아니다. 사실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지금도 가장 잘 팔리고 있는 히트 상품은 바로 ‘보수’다. 돈과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오랫동안(그것도 성공적으로) 보수를 팔아 왔다. 이들은 보수를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지만 정작 보수의 진정한 가치나 철학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인터넷 쇼핑몰에서 값비싼 명품 백을 샀는데 배달된 택배상자에는 벽돌만 들어 있는 꼴이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벽돌이 명품인 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땅의 보수는 어떻게 포장되어 어떻게 팔려 나가는가. 왜 ‘명품 벽돌’은 여전히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경제학자와 같은 눈으로 이들의 세일즈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보수를 팝니다’의 첫 번째 의미다.

‘보수를 팝니다’의 또 한 가지 뜻은, ‘파들어 간다’는 것이다. 보수의 겉모습만 본다면 ‘왜 그러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겉모습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눈에 보이는 표면 아래에는 어떤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가 자리 잡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보수라고 해서 다 같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 역시도 진보 진영 만큼이나 다양한 종류들이 있고, 이들이 때로는 서로 손을 잡고 때로는 격돌하기도 하면서 맺어지는 관계가 커다란 보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고학자처럼 보수의 밑바닥을 열심히 파 들어가 보고, 생물학자처럼 보수를 여러 가지 종류로 분류하여 각각의 종(부류)이 어떤 먹이사슬과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이것이 ‘보수를 팝니다’의 두 번째 의미다.

보수, 알아야 이긴다

‘보수를 이해해 보자’라고 말한다면 “그럼 보수를 이해하고 좋게 봐 주자는 뜻이야?”라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는 것은 봐 주자는 뜻도 아니고 용서해 주자는 뜻도 아니다. 예를 들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범행 동기나 심리 상태를 이해하려고 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보수를 이기고, 보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수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겉으로 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보수의 모습 뒤에 어떤 속셈이 깔려있는지를 간파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카운터펀치를 먹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헌법으로 보장된 자유와 권리가 심각하게 위축되는 현상을 목격했다. 그런데 진보 진영의 목을 조르기 위해서 동원된 이런 모든 꼼수들이 이제는 거꾸로 보수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2012년은 자기 덫에 자기가 걸려 버린 보수가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으면 자동으로 말랑말랑한 감이 입 속으로 쏙 들어가지는 않는다. 잘못하다간 이마에 떨어져서 얼굴만 더러워질 수도 있고, 하필 딱딱한 땡감이 떨어져서 이가 부러질 수도 있다. 2012년에 보수가 몰락의 길을 걷는다고 해도 그것이 자동으로 진보 진영의 대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진보 진영도 미리미리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변화의 거센 물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칫 휩쓸려가 버릴 수도 있다. 우물쭈물하다가 진보의 집권은 또 짧게 끝나고, 보수에게 부활의 시간만 벌어주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이겨도 지는 보수, 죽어야 사는 진보

이제 우리는, 보수를 제대로 꿰뚫어 이해하고, 2012년과 그 이후를 보내며 기회주의 보수의 철저한 몰락을 꼼꼼하게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진보 진영은 5년 임기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말고, 진보의 큰 그림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는 시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보수 역시도 제대로 된 철학과 가치를 지닌 진정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 보수 역시도 언젠가 집권을 노려볼 수 있는 건강한 정치 구도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열심히 보수를 ‘파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보와 보수, 모두가 제대로 된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하는 정치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그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버그 투성이에 하루가 멀다 하고 에러 메시지를 쏟아내는 이 엄중한 시기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버전 업을 이루기를 기대해본다. 그 버전 업을 위한 수많은 설치 파일 중에 하나로 이 책이 살짝 포함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다. 

 

Outro.
당당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공익근무요원으로, 휴전선 대신에 동호대교를 지키던 시절, 그러니까 1994년의 일이다(이걸 가지고 혹시나 병역 의혹 어쩌고저쩌고 수작 부릴 꿍꿍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날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어느 날 난데없이 위에서 감사가 들어왔다. 하는 꼴을 보니 타깃이 나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괘씸죄였다. 감사가 나오기 얼마 전, 근무지의 불합리한 구조를 <조선일보>에다 투고했고(그때는 청년 보수였으니까), 실명과 함께 투고가 게재되었다. 그걸 보고 ‘어디 뭐 하나 걸리기만 해 봐라’ 하고 치사한 보복 차원에서 나온 감사였다.

하지만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감사 해 볼테면 해 보라지. 나는 당당했다. 결국 감사는 먼지만 털다가 끝났다. 그 일을 통해서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 내가 당당하다면, 그래서 겁먹지 않고 자신감을 가진다면 보복은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보복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보복이라면 정말 많이 당해 봤다. 조용기 목사를 비판했다고 극동방송국에서 잘리고, 노조 활동을 했다고 CTS 기독교 방송에서 잘렸다. 시사평론가가 된 이후에도 이런저런 외압으로 맡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잘린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 CBS <시사자키>의 오프닝 멘트가 문제가 돼서 잘릴 때에는 사내 게시판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만약 그런 보복이 두려워서 할 말 못하고, 스스로를 검열했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아마도 이런 책을 낸다고 해도 아무도 집어 들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당신이 내가 쓴 책을 사 볼 마음이 들었겠는가. 보복이나 작은 불이익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버텼던 그 뚝심 하나라도 있으니 김용민이란 놈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궁금했으리라 생각한다.

등을 보이지 마라! 당당해야 이긴다

나는 덩치만 컸지 싸움은 못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싸움의 법칙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싸움의 법칙 중에서 '등을 보이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다. 상대방에게 한 방 맞았다고 해서 겁먹고 등을 돌리면 그때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상대는 '아하, 저놈 겁 먹었네? 다음 카드가 없구나.' 하고 그때부터는 안심하고 무차별 공격을 한다. 물론 한 대 맞으면 정신이 얼얼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의연하게 버텨야 반격할 기회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방의 펀치를 받아줄 것인가? 지금까지 진보 진영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저항했다.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고 비장한 용어들을 쏟아냈다. 상대방보다 내가 더 무섭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듯이 험악하고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런 비장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진지하고 비장하게만 싸우기는 너무나 힘들다. 너무 힘들면 지치게 된다. 지치면 포기하게 된다. 이해찬 전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 일제에서 독립운동할 때 가장 변절을 많이 한 시기가 1939년에서 1943년까지다. 그즈음 '우리가 도저히 독립 못하겠구나' 하고 많이 변절했다. 그게 다 포기하고 좌절했기 때문이다." 기회주의 보수로 변절한 어제의 진보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이재오 김문수는 민중당이 총선에서 실패하고 나서 ‘도저히 안 된다’면서 변절의 길로 갔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온 것이 훗날 민주노동당으로 발전하는 국민승리 21이었다.

즐겁게 싸워라! 웃을 수 있어야 이긴다

당당하게 싸우고 유쾌하게 웃자, 이것이 독자 여러분들께 내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다. 표정이 비장하고 목소리가 높을수록 속으로는 더 겁을 먹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경쟁하듯이 더 심각하고 더 험악한 구호를 외치면 누가 유리할까? 똑같이 겁을 먹고 있는 상태라면 가지고 있는 돈과 권력을 비롯해서 써먹을 수 있는 무기가 많은 보수가 더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쾌하게, 그리고 즐겁게 싸워야 한다. 상대는 내일 세상이 끝장이라도 날 것처럼 험악하게 주먹을 휘두르는데 이쪽에서는 여유 있게 껄껄 웃고 있다면, 심지어 주먹 한 방을 맞고서도 피식, 하고 웃는다면, 상대의 공포심은 더욱 커진다. 그러면 그 공포를 이기기 위해서 더욱 주먹을 휘둘러 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먹은 헛방이 많고 초점이 없다. 그러다 보면 제풀에 지쳐버린다. 하지만 이쪽은 에너지가 넘친다. 왜? 유쾌하고 즐겁기 때문에, 그래서 에너지가 오히려 계속해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나는 꼼수다>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는 이유도, ‘왜 이렇게 빨리 안 올라옵니까?’하며 성화를 부리는 이유도, 즐겁고 유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같은 내용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웃음기 없는 말투로 방송했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을까? 이명박 정권과 자본의 언론 탄압과 장악으로 방송도 신문도 할 말 하기 힘든 시대에, ‘탄압할 테면 탄압해 봐라, 웃겨서 원!’ 하듯이 방송 내내 흐르는 출연자들의 당당함과 유쾌함이야말로 이 방송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런데 이 책은 왜 별로 안 유쾌해요?”라고 따져 묻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송에서는 ‘목사 아들 시사돼지’로서 여러분들을 유쾌하게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이 책은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원천을 제공하는 책이다. 의연하고 유쾌해지려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의연하고 유쾌해지게 하려면, 알아야 한다. 상대를 알고,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지금은 힘들고 끝이 안 보일 것 같지만 결국은 상대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거 아무리 해도 우리가 못 이기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면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힘들어도 우리가 이길 거야’라고 믿는다면 유쾌해질 수 있다.

블로그에서, 트위터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유쾌하고 즐겁게 ‘노는’ 모습들을 보아 왔다. 이명박 정권은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다. 웃음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더 강한 힘으로, 더 무자비하게 억압하려고 들기만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 크게 한 번씩 웃어 주자. “에이 재미없어! 얼굴 좀 펴라!”하고 말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여러분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그래서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여러분의 생각을 전해주고 즐길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솔선수범하여 크게 한번 웃어 드리겠다. 여러분들도 각자 여러분들만의 개성 있는 표정으로 크게 한 번 웃어 보시길! 

 

본문 한 꼭지
모태 보수, 기회주의 보수, 그리고 무지몽매 보수
 

보수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다. 보수라는 깃발 아래 뭉쳐 있는 한나라당을 보아도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에는 무척 큰 간극이 존재한다. 여기에 더하여 이른바 ‘소장파’도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 지붕 세 가족의 불안한 동거 생활이다. 그리고 당 바깥에는 지만원이나 조갑제 같은 극단으로 치우친 사람들도 있다. 보수가 다 같은 보수가 아니라면, 도대체 보수라는 큰 테두리 안에는 어떤 종류의 보수다. 그리까? 여러 가지 분류 지법. 그리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어떻게 보수가 되었는지, 그리고 보수의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를 기준으로 크게 세 유형의 보수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모태 보수 (혹은 선천적 보수)
 
이들은 말 그대로 돈과 기득권을 갖춘 집안에서 아쉬울 게 없이 자라온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나라당의 대권 주자로는 박근혜와 정몽준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유승민 또는 이정현을 필두로 한 여러 친박계 의원들, 그리고 남경필, 홍정욱, 원희룡과 같은 한나라당의 이른바 ‘소장파’ 의원들 역시도 탄탄한 성장 기반을 바탕으로 보수가 된, 모태 보수로 분류될 수 있다.
 
모태 보수는 전체 보수 진영에서 언제나 일정한 세력을 형성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뿌리 깊은 전통과 비교하면 실제로 이들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경우는 많이 찾아볼 수가 없고, 대체로 주도권을 다른 보수(다음 유형인 기회주의 보수)에게 빼앗기거나, 혹은 그냥 넘겨주기도 했다. 아직까지 모태 보수 출신의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기회주의 보수 (혹은 후천적 보수)
 
이들은 대체로 보수와는 다른 길, 혹은 아예 반대 편 길을 걷다가 어떤 계기에선가 급작스럽게 보수로 돌아선 사람들이다. 때로는 극과 극을 달리는 전향, 혹은 변절로 진보 진영의 비난은 물론이고 보수에게까지 그 진정성을 의심을 받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주로 권력을 장악한 보수 중에 후천적 보수가 많다는 사실이다. 만주군 장교를 지내고 한때 남로당에 몸담은 전력까지 있는 박정희를 필두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노태우,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갔다가 호랑이에 빙의되어 버린 김영삼, 그리고 현 대통령인 이명박까지 모두 기회주의 보수들이다. 지금까지 보수 정권을 이끌어온 대통령은 모두가 후천적, 혹은 기회주의 보수로 분류되는 셈이다. 물론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김문수 역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뉴라이트 계열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신지호, 최홍재, 김영환을 비롯한 이들도 후천적 보수, 또는 기회주의 보수로 분류될 수 있다.
 
무지몽매 보수 (혹은 묻지마 보수)
 
흔히 ‘까스통 할배’라고들 지칭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서민이나 빈민층에 속하면서도 맹목적으로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보수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언제나 보수에게 착취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수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놓여 있는 환경이나 기반은 보수의 기득권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부류에 비해서 지식과 정보가 대단히 부족한 이들은, 정치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지식을 거의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단순히 말해서 그냥 <조선일보> 보고 세뇌된 보수다. 이들은 정치라기보다는 처세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자신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자본가니까, 그 자본가들이 보수라면 나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들을 따라가는 게 진리다. 이런 단순한 논리다.

역으로 말한다면 충분한 설명과 설득 과정을 거치면 중도 또는 그보다 더 진보적인 위치로 옮겨갈 여지가 가장 많은 부류다. 보수라고는 하지만 실체도 없고 내용도 없는 집단이 바로 무지몽매 보수다.
 
물론 모든 사회 현상에는 예외가 있다. 보수 역시 반드시 이 세 부류 중에 하나로 칼같이 나눠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정몽준과 같은 경우에는 그 배경은 모태 보수지만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파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회주의 보수의 속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보다는 언제나 준비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것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정몽준과 같은 부류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생각이다).
 
개중에는 보수 분류의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 정신을 실천하는 인물들도 있다. 이인제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의 주요 정치인으로 보수와 각을 세웠다가 경선에서 노무현에게 패배한 뒤, 참여정부 시기에는 보수로 돌변해서 박정희 이미지를 내세웠다. 그러다가 2007년에는 다시 민주당 후보로 등장했다. 시사평론가인 나로서도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그런 변화 과정을 거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이 책에서 보수를 해석하고 전망하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 분류는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다. 이들의 성장 배경과 특징을 살펴보면, 그리고 이들이 어떤 식으로 뭉쳤다가 깨어지고 관계를 맺는가를 파악하면, 보수 진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 부류를 어떤 식으로 공략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보수는 어떤 길로 갈 것인가를 예측해 보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꼼수 Point]
모태 보수는 선천적 보수다. 기회주의 보수는 후천적 보수다. 무지몽매 보수는 묻지마 보수다. 보수의 행태와 전략을 이해하는 데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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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lust 2011-11-0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좋은 책인것같군요.
진짜 돈있으면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군요.
하지만 보수라는 표현보다는 수구꼴통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군요.
제가 보기에도 김용민 교수는 보수지 진보는 아니니깐요.
정확히 말하면 수구꼴통에 실망한 정통보수정도?
그리고 모태던 기회주의던 꼴통들이던 수구꼴통을 설득을 통해서 바꿀수 있다는 이상론은 이미 노무현때 파기된거 아니였나요?
예를 들어 꼴통들... 아니 무지몽매들? 어짜피 대화가 통할 지적능력이 있는것들이 아니죠.
김용민 교수님이 지적했듯이 무지몽매한것들은 힘앞에서만 알아서 기는 노예적 근성의 설치류들이죠.
그런것들은 본보기로 반정도만 처형하면 말 잘듣죠.
결국 그런 무지몽매의 꼴통들이 수구꼴통의 말을 잘듣는것도 일제와 승만이때를 비롯해서 박정희때와 두환이때 피를 봤거든요. 그러니 걍 힘앞에서 알아서 기는 노예들이 뭘더 하겠어요.
무지몽매한것들한텐 설득이 아니라 본보기로 반정도 고기덩어리로 만들면 알어서 잘 까고 다닐겁니다. 모태? 뭐... 죽일건 없고 걍 재산몰수에 거지만 만들면 되겠죠. 어짜피 김용민 교수의 지적처럼 온실속의 화초들이니깐요.
단 그것들의 새끼들은 악다구가 될수있으니 다 수용소에 보내서 재교육을 시키는게 최고고...
기회주의자들... 무지몽매한것들 이젅에 우선적으로 하나도 남김없이 갈아서 동물사료로 만들어야죠.
왜냐면 우선 그래야 무지몽매한것들한테 본보기가 되고, 둘째 저런 암세포들은 잘라내는것외에는 치료방법이 없으니깐요.
어짜피 정치엔 빛과 그림자 양면이 존제하는거고 피흘림 없는 계혁은 존제할수 없으니깐요...
특히 한국처럼 친일파 청산도 없었던.. 아니 궁극적으로 현 수구꼴통의 한국사회의 왜곡성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친일파들의 득세를 고려한다면... 피흘리는건 필연적인거죠. 마치 Sulla나 Augustus가 정적들을 다 척살하고서야 계혁에 성공했듯이... 시대는 바뀌었어도 변하지 않는건 인간의 본성임을 고려해본다면... 대화나 설득? 그건 X까라고 하세요. 어짜피 이것도 투쟁입니다.
 

 

이미 장안의 화제를 넘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나는 꼼수다. 안 그래도 기분 좋은 금요일에 퇴근 시간을 더욱 기다리게 만드는 나는 꼼수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한 고도의 전략 기획 방송 나는 꼼수다. 그분께 헌정하지만 정작 그분이 듣고 계신지는 알 수도, 확인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나는 꼼수다... 

'당신도 꼼수PD가 될 수 있다'는 믿기 힘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메인 카피로 활용한 이 책은 종편으로 절대 갈 리 없는 김용민PD가 정리한 나는 꼼수다의 공략집이라 하겠다. 흥행의 비결을 스스로 분석하고, 나꼼수를 스타일로 격상시킨 자화자찬 구성에 세상 온갖 권력과 맞서 싸운 자신의 무용담까지 결들인 이 책에 가카께서는 흔쾌히 추천사를 하사하셨으니... 그 뜻이 깊고도 놀라워 세계 최초로 여러분께 공개하는 바이다. 

졸라 재밌어, 씨바!! 당장 예약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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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가 쓰는 추천사 

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는 여러분의 각하입니다.
기 팍팍하다며 호소하는
가 꺽인 청년들,
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지 마세요.
판을 보시라고요.
천에 널린 게 일자리입니다.

대기업 공기업만 갑니까?
세상에는 일손 못 구하는 중소기업도 많습니다.
명백백한 사실은 허영부리다가는
복한 삶을 자초하는 겁니다.
아주지 않는다고 앙탈 마세요.
니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요?
로 다 좋은데 가면 비싼 사교육비 왜 들입니까?

세상이 발전이 없는 건 헛된 평등심리 때문입니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니 분수를 알고
어카를 끄는 것부터 해야지 하고 마음 먹어봐요.
'망의 세월', 여러분의 신화도 될 것입니다.

'는 꼼수다 뒷담화', 이런 거 읽는다고 말리지는 않겠지만
나라를 살린 역군의 이야기 '신화는 없다'가 더 감동적입니다.
징한 처세와
식한 돈벌이 기술을 여러분에 알려드릴 겁니다.
시대가 원하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성을 가진 젊은이가 되세요.

일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런하시도록 말입니다. 

 

나는 꼼수다 프로듀싱 노트

얼마 만에 앉아보는 콘솔 석인가. TV와 라디오를 합해 하루에 고정 6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잘 팔리는’ 방송 연사인 나지만, 본의 아니게 접게 된 PD의 꿈을 언젠가는 다시 실현하겠노라고 수차례 다짐했었다. 특정 방송사에 입사하는 방법부터 아예 창업하는 것까지.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양지 위의 길이 아니었다. 더러는 실패하고, 더러는 단념했다.

남의 스튜디오를 돈 주고 빌려서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녹음하는 것이지만, 지상파 매체가 아닌 스마트폰 이용자에 한정된 서비스이고 아울러 금전적 반대급부는 없으나 PD의 꿈은 결국 실현됐다. <딴지일보> 딴지라디오의 ‘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 제작자로서 말이다. 총수 김어준 형과 정봉주 17대 의원, 주진우 <시사IN> 기자 덕이다. 스마트폰 보급대수 2,000만 시대라는 점, 무엇보다도 국민 속에서 뜨겁게 고양되고 있는 정치 개혁에 대한 열망 이것이 방송의 밑천이요, 종자돈이다. 그렇게 우리는 4.27재보선 다음날,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한 <마포FM>에서 첫 온에어 등을 켰다.

모든 게 주먹구구였다. 타이틀을 무엇으로 할지도 녹음 1분 전에 정했다. 사실 아이디어가 분분했다. 종국에 채택된 ‘나는 꼼수다’ 말고 ‘나는 가카다’, ‘나는 총수다’(이상 김어준), ‘안녕하십니까 서울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17대 국회의원 민주당 소속 정봉주와 그 추종자들입니다’, ‘대인의 자격’(이상 정봉주), ‘코리아 리크스’, ‘명박허전’(이상 김용민) 등이 물망에 올랐다.
  당일 화젯거리에 대해서는 구두 논의 30여 초 정도만 소요됐다. 서태지-이지아 사건이 BBK 의혹 문제와 맞물려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첫 주제가 됐다. BBK 의혹에 관한 한 정치권 최고 권위자가 바로 정봉주 전 의원 아니었던가.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못하겠으나 그 다음으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간 이다.

시험 삼아 몇 건 올렸는데, 말하자면 ‘공식 오픈’이니 ‘개국’이니 하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는데, 속칭 ‘난리’가 났다. 청취자의 폭발적인 반응이 집중된 것이다. 그리고 두 달여. ‘초대박’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이 부족할 지경이다. 2011년 7월 7일 9회를 기점으로 아이튠즈 집계 대한민국 전체 1위에 올랐다. 그간 독보적 1위였던 ‘두시탈출 컬투쇼’를 2위로 내려앉혔고, 뉴스 정치 분야의 ‘손석희의 시선집중’, ‘박경철의 경제 포커스’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그러다가 8월 8일 미국 팟캐스트 뉴스·정치 부문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8월 22일과 27일 업로드 된 ‘나꼼수’ 호외편과 16회는 이튿날까지 미국 아이튠스 팟캐스트 인기 에피소드 순위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이 아이튠스의 발원지인만큼 이를 전 세계 1위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었다.

한 지상파 드라마 PD가 “듣다보면 뒤집어진다. 통쾌하다”(김민식 MBC PD 블로그)고 호평하고, 유명 소설가는 트위터에서 “영상도 없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듣고 있을까”(공지영)하는 반응을 보였다. 트위터 안에서 “커피숍에서 언니들이 떼로 모여 ‘나는 꼼수다’ 이야기를 한다. 대단하네. 그 방송”(ID:nabts)이라고 소개하는 글도 발견할 수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내 강의 듣지 말고 ‘나꼼수’를 들으라”고 강연 중 밝혔다고 한 것도 화제였다. 한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권력 핵심부 인사가 이 방송을 듣고는 “청와대 안에 엄청난 빨대(정보원)가 있는 것 같다”며 염려했다고 한다.

(중략) 

‘나는 꼼수다’가 업데이트되는 날(대체로 목, 금요일)에는 나의 트위터(@funronga)가 몸살을 앓는다. 낮 12시 녹음이고 빨라야 저녁쯤 업데이트하는데, ‘틈만 나면 올라왔나 본다. 언제 들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아침부터 폭풍처럼 몰려온다. 우물가도 아니고 우물가에 가기 전 상태에서 숭늉부터 찾는 분들이다. 그러나 반갑고 고맙다.

정치적 편향성을 우려하며 <MBC>가 자사의 방송진행자로 활동하던 김미화, 김흥국을 내보냈다. <MBC>는 나아가 소속 직원의 대외 발언, 심지어 고정 출연자의 방송 외 자리에서의 주장까지 공정성 여부를 심의하겠다고 한다. 정치적 편향성을 규제받는 제도권 방송의 한계이기도 하겠으나 ‘나는 꼼수다’와 확연히 대조된다. 대중을 계몽하는 방송 대 대중을 존경하는 방송으로 구획되기에 말이다. ‘만나면 좋은 친구’라고 하면서 선생님 노릇하려는 <MBC>와, 재담어린 친구의 자리를 선택한 ‘나는 꼼수다’ 둘 중에 누구에게 미래가 있을까.

나는 ‘흥행’에 고무돼 유료 광고를 받고 공개방송과 주 2회 방송을 해보자는 제안을 얼마 전 김어준 총수에게 했다. 그랬더니 김 총수는 ‘배고픈 사람들이 골방에서 시시덕거리며 떠드는 식의 콘셉트를 포기하지 말자’고 답한다. 나의 거품 낀 망상은 그렇게 정리됐다. 고단한 시대를 살며 정치적 혁명을 꿈꾸는 이웃을 위한 ‘뒷담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우리의 본령(本令)을 설정한다.
  참고로 이 프로그램은 2013년 2월까지만 진행된다. 이후에는 그 분이 못 들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 나라가 IT강국이라고 해도 감옥에서까지 스마트폰을 허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나는 꼼수다 뒷담화> 본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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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찾사 멤버 2011-10-1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찾사(우물가에 가기 전 상태에서 숭늉부터 찾는 사람들)'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나 반갑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돼지 아들 목사'가 아닌 '목사 아들 돼지'님을 비롯한 나꼼수 제작진께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린비에서 펴내는 루쉰 전집 번역자, 숭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공상철 교수의 첫 책 <중국을 만든 책들>, 제목 그대로 중국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텍스트를 선별하여 책이 만들어진 역사, 문화의 맥락을 추적하고 이후 중국 문명사와 중국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책입니다. 첫 꼭지는 당연히 갑골문이겠죠. 무늬가 문(文)으로 변한 까닭, 신과 소통하던 언어가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언어로 바뀐 과정, 더불어 문(文)이 어떻게 문화, 문명의 기반이 되어 꽃을 피웠는지 등 갑골문에 얽힌 이야기를 강의하듯 구성지게 들려줍니다. 남은 꼭지들이 너무 기대되는 책입니다. 게다가 저는 일단 책 이야기라 하면 점수를 주고 들어가는 '책바보'니까요. ^^ 

 

   

세계의 무늬 갑골문(甲骨文)
 

길을 떠납니다. 지금부터 떠나는 이 길은 장장 3천 년 하고도 몇 백 년이 더 되는 ‘중국’이라는 문명사입니다. 이 문명이 걸어간 길, 그 길의 궤적과 굽이를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더듬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가다듬어두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여정이 그리 만만하진 않을 테니까요.
  이 길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시대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꾸었던 꿈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시간의 지층 속에서 이들은 말이 없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리 묵묵할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기행이란 세계에 말을 거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말을 걸지만, 이것이 세계에 접수될지 어떨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접수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말들은 불가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니 조금은 헐거이 임해도 좋을 일입니다. 어차피 3천 몇 백 년의 시간을 열람해야 한다면, 거기서 꼼꼼한 견문록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테니까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행의 초입에서 얼마간 예비 점검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소한 이 문명을 특징짓는 기본 원리나 힘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문(文)'을 들겠습니다. ‘문’이란 중국 문명을 관통하는 일종의 슈퍼 코드입니다. 이것이 발현되는 과정이 ‘문화(文化)'나 ‘문명(文明)'이란 말의 원래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므로 일단 이것의 의미와 성격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여정은 이 코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출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문’이란 무엇일까요?


태초에 무늬가 있었다고?
문명사를 거슬러가다 보면 거기서 으레 만나게 되는 것은 시간의 오리지널 포인트를 향한 모종의 충동입니다. 흔히 ‘태초’나 ‘창세기’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는 중국 문명조차 이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살이의 존재론적 근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런데 『논어』를 읽다보면 그것에 무심한 듯한 언설 하나가 등장합니다.
  “하늘이 어디 말을 하더냐!”(『논어』 「양화(陽貨)」)
  헤브루 종족의 하늘에 ‘태초의 말씀’이 울려 퍼지던 무렵, 고대 중국의 하늘은 이처럼 침묵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슨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고대 중국의 하늘은 ‘거룩한 말씀’ 대신 신비한 무늬의 형태로 강림했던 것 같습니다. 동방의 하늘이 보기엔 아무래도 사람의 귀보다는 눈이 더 미더웠던 모양이지요.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황하(黃河)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등 비늘에 신비로운 무늬가 어른거리고 있었나봅니다. 그로부터 이 무늬에 ‘황하의 도상’, 즉 ‘하도(河圖)'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전설상의 복희씨(伏犧氏)는 이 무늬에 근거해 저 오묘하기 짝이 없는 팔괘(八卦)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어느 날 황하의 지류 낙수(洛水)에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등짝에도 신령스런 무늬가 선연했다는 겁니다. 종으로 횡으로 더해도 각각 15가 되고 대각선으로 더해 봐도 15가 되는 이 신기한 무늬를 사람들은 ‘낙수의 그래픽’, 즉 ‘낙서(洛書)'라 불렀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은 이 마방진(魔方陣)에 의거해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세계 질서 체계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카테고리’의 뜻으로 쓰이는 그 ‘범주(範疇)' 말입니다.
   

중국의 어느 수학자는 지구 문명이 언젠가 다른 행성과 접촉할 때 이 무늬가 의사소통의 수단이 될 것이라 우기고 있지만, 아마도 이 전설은 어떤 신종 담론―음양오행설로 추정되는―을 정당화하기 위해 후인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겁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재미난 것은 ‘도서(圖書)'라는 말이 이 ‘하도낙서(河圖洛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도서’란 세계의 신비한 비밀이 담긴 무늬일 터이고, ‘도서관’이란 그런 무늬가 빼곡히 수장된 장소가 되는 셈인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책에 이런 현묘(玄妙)한 내력이 있었다니 좀 의외입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어떤 이미지 하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보르헤스(L. Borges)가 「바벨의 도서관」에서 묘사한 ‘육각형의 진열실들로 구성’된 ‘세계’라는 이름의 거대한 도서관 같은 것 말입니다.


갑골문의 발견
사실 이 도서관의 유래에 대해 우리는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장서는 얼마나 되는지, 언제 누구에 의해 쓰이게 되었는지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풍문은 익히 들은 바가 있습니다. 도서관에 수장된 책의 종류가 의외로 다양하다는 것, 우리가 보는 종이책은 비교적 후대에 나왔다는 것, 초기의 책은 목간(木簡) 이나 죽간(竹簡)을 엮어 만들었다는 것, 여기서 책(冊)이라는 글자가 나왔다는 것, 또 어떤 책은 청동기나 비단 위에 쓰여 있다는 것 등등 말입니다. 여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적어도 그날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런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책 무더기가 저 깊숙한 지하 세계에 감추어져 있었을 줄 말입니다. 거북딱지나 물소 뼈에 새겨진 이 책들은 이로부터 갑골문(甲骨文)으로 명명되어 중국사의 연대기를 훌쩍 앞당겨놓고 말았습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商)나라―혹은 은(殷)나라로 불리는 기원전 1700년경에서 기원전 1100년경까지 존재한 왕조―의 실체가 이로부터 빛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그 발견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지금부터 1백여 년 전인 1899년, 북경에 왕의영(王懿榮)이라는 한 관리가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가 학질에 걸려 여기에 좋다는 거북의 골편(骨片, 뼛조각)을 대거 사들였는데, 마침 그 집에 식객으로 있던 유철운(劉鐵雲)이라는 자가 거기서 이상한 글자들을 발견하고는 급히 그에게 보인 모양입니다. 평소 고대 문자 해석에 일가견이 있던 왕의영은 그 글자들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나라 문자가 거기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으니까요. 이리하여 그것을 구입한 한의원을 통해 골편의 출처를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문은 금세 퍼져 골편의 출원지 안양(安養) 소둔촌(小屯村)에선 일대 난리가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나라의 마지막 도읍 은허(殷墟)가 바로 거기였다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해외로의 밀반출은 물론 위조품까지 대량 유통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출토된 골편의 수가 무려 16만여 개에 이르렀습니다.
  갑골문의 대부분은 복사(卜辭)입니다. 복사란 상나라 말기 12명의 왕이 통치하던 273년 동안 가국(家國)의 대소사를 점친 기록입니다. 선왕에 대한 제사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전쟁이나 자연현상, 재해 등등 그 내용은 다양합니다. 문명 초기의 형편상 하늘의 의사를 묻는 일은 지고至高의 가치였을 겁니다. 이 일의 중요성은 점에 쓰이는 거북 껍데기를 구하기 위해 거국적인 시스템이 작동되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골편에는 남방으로부터 거북이 천 마리를 공납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까요. 이런 식으로 사용된 거북이가 최소 1만 6천 마리, 물소는 몇 천 마리라는 게 학계의 통론인데,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는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그러면 점은 누가, 어떻게 친 것일까요? 당시엔 점을 치는 직책을 일러 정인(貞人)이라 했는데, 간혹 왕이 직접 주관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점술의 중요성에 따라 정인의 숫자도 늘어났는데, 학자들에 의해 이름이 확인된 사람만 해도 120여 명에 이릅니다. 점술 과정은 거북점의 경우 대체로 이랬습니다. 먼저 배딱지를 떼어낸 뒤 가운데 난 수직선을 기준 삼아 내장이 있던 안쪽 면 양편으로 가지런하게 홈을 팝니다. 껍질이 두껍다보니 열에 잘 갈라지게 하기 위한 조치였을 겁니다. 홈은 두 가지 모양입니다. 먼저 대추씨 모양의 홈을 파고(‘착’鑿) 거기에 약간 겹치게 둥근 모양의 홈을 다시 파는데(‘찬’鑽) 그리하여 홈의 형태는 중절모 모양이 됩니다. 이런 홈이 좌우로 대칭을 이루며 많게는 수십 개나 패어 있습니다. 거북 껍질이 워낙 귀하다보니 사용 효율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것이겠지요.
  이제 점을 칩니다. 점이라고 해야 나무 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홈에다 대고 지지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지지는 건 아닙니다. 점칠 내용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소리에 담아 표출하기도 했겠지요. 이윽고 달구어진 부분이 ‘퍽’ 하며 갈라지는데, 혹자는 이 소리에서 ‘복(卜)’자가 나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균열은 으레 두 방향으로 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유도하기 위해 이중으로 홈을 판 것이니까요. ‘착’에선 수직선이 나오고 ‘찬’에선 수평선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대개 ‘ㅏ’ 아니면 ‘ㅓ’ 모양의 균열이 드러나는데, 물론 뼈의 자연적인 결을 따라 미세한 차이가 발생했겠지요. 이 기본 형태와 미세한 차이가 곧 하늘의 응답인 셈입니다.
  점이 끝나면 배딱지 바깥 면에 ① 점친 날짜와 정인의 이름, ② 점의 내용, ③ 갈라진 무늬를 보고 길흉을 판단한 내용, ④ 점괘가 실현되었는지 여부 등을 새기는데, 앞의 두 항목만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지막 항목은 점괘가 그대로 실행되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한 뒤 추가로 기록한 것인데,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것으로 점이 완료됩니다. 그러고는 이 골편을 특정 장소에 한데 모아 보관하고 관리했을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국가문서관리국에 기밀문서를 보관하거나 국립중앙도서관에 자료를 수장해두는 개념이었겠지요. 주로 갑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도 아마 이런 까닭이었을 겁니다.


신의 언어들
그런데 여기서 정작 흥미로운 것은 해석 문제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지요. 골편에 나타난 무늬는 어디까지나 하늘의 소관입니다. 그것은 뼈의 강도와 결에 따라 달랐을 것이고, 홈의 각도와 꼬챙이의 열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었겠지요. 그러니 같은 사안이라 해도 매번 무늬가 달랐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석하는 일은 엄연히 왕이나 정인의 몫입니다. 설령 그들이 하늘과 교통하는 능력을 지녔다 해도 어디까지나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그가 신의 의사를 판명한다고 할 때, 어떻게 자의와 주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모든 해석은 사람의 숨결이 투사된 지극히 인간적인 해석일 수밖에 없겠지요.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한 번의 점으로 끝나지 않고 몇 번씩 반복되었던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언젠가 TV를 보니 이런 장면이 나오더군요. 어느 오지의 원주민들은 벌꿀 채취를 생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그날은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벌집을 털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산의 신으로부터 작업 허가를 받아내는 방식이 재밌습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희생(犧牲)으로 끌고 간 양의 몸에 경건히 기름을 붓습니다. 그러고는 둥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이윽고 양이 세차게 몸을 흔들면서 기름을 털어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비로소 작업에 들어갑니다. 신이 이 위험천만한 작업을 허락했다는 겁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보면, 양이 제 몸에 묻은 기름을 털어내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를 신의 뜻으로 여기고 태연히 외줄 하나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골편에 드러난 하늘의 의사를 해석하는 일 역시 이런 차원이었을 겁니다. 해석학이라는 학문도 따지고 보면 그 출발은 이랬으니까요.
  그런데 고대인의 해석학에도 제법 노회한 구석은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그냥 일방적으로 물어서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꽤나 신중합니다. 먼저 긍정적인 방식으로 넌지시 물어봅니다. 그러고는 같은 사안을 다시 부정적인 방식으로 되물어봅니다. 상당히 교묘한 방식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러면 신의 의사를 좀 더 주밀(周密)하고 분명히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요? 아니면 신을 헷갈리게 만들어서 소망하는 대답을 얻고자 했던 걸까요? 다음 사례를 통해 판단해보시지요.

戊戌卜, 永貞.(무술일에 점을 치며 영이 묻습니다.)
今日, 其夕風?.(오늘 저녁에 장차 바람이 불겠습니까?)
貞 : 今日, 不夕風(묻습니다. 오늘 저녁에 바람이 불지 않겠습니까?)3
戊子卜, 貞.(무자일에 점을 치며 각이 묻습니다.)
帝及四夕, 令雨?(상제께서 나흘 뒤 저녁에 이르러 비에게 명령하시겠습니까?)
貞 : 帝弗其令今四夕, 令雨?(묻습니다. 상제께서 지금부터 나흘 뒤 저녁에 비에게 명령하지 않으시겠습니까?)
王占曰 : 丁雨, 不惠辛.(왕이 점괘를 해석하십니다. 정일에 비가 온다. 꼭 신일이진 않을 것이다.)
旬丁酉, 允雨.(열흘 뒤인 정유일에 정말로 비가 왔다.)4
이런 방식만 있는 게 아닙니다. 좀 더 직접적인 전략도 있습니다. 신더러 제발 대답을 좀 해달라고 들들 볶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다음의 사례를 보면 그 윽박지름의 정도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동방의 신들도 인간들에게 닦달을 당하느라 꽤나 피곤했을 듯합니다.
貞 : 亥王入.(묻습니다. 신해일에 왕이 들어옵니까?)
于癸丑入.(계축일에 들어옵니까?)
于甲寅入.(갑인일에 들어옵니까?)
于乙卯入.(을묘일에 들어옵니까?)5
更子卜, 何貞 : 翊辛丑, 其侑틌辛, 卿.(경자일에 점을 치며 하何가 묻습니다. 다음날 신축일에 신辛 할머니께 유제侑祭를 경제卿祭로 지낼까요?)
更子卜, 何貞 : 其一牛.(경자일에 점을 치며 하가 묻습니다. 소 한 마리로 할까요?)
更子卜, 何貞 : 其.(경자일에 점을 치며 하가 묻습니다. 희생양으로 할까요?)
……
丙午卜, 何貞 : 其.(병오일에 점을 쳤는데, 하가 묻습니다. 희생양으로 할까요?)
丙午卜, 何貞 : 其三.(병오일에 점을 치며 하가 묻습니다. 희생양 세 마리로 할까요?)


문명과 문자
위의 사례를 통해 감지되는 것은 하늘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놀이입니다. 서로 주고받고 밀고 당기고 다투고 화해하는 그런 우주론적 놀이 말입니다. 문명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신이 신성(神性)을 박탈당해왔음을 이야기해줍니다. 상(商)나라의 ‘제(帝)'는 그 자체로 신이었고, 주(周(나라의 ‘천(天)'은 그 자체로 하늘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국(戰國) 시대 말엽에 이르면 사정이 좀 달라집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공자의 일갈(一喝)은 그 전조이자 서막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하늘은 늘 땅을 짝으로 요청하게 되었고, 그 결과 ‘천지(天地)'라는 신종 담론이 대두하게 됩니다. 훗날 한(漢) 제국의 이념적 토대가 되는 이 담론은 자연히 천지지간에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사람에겐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역할을 부여하게 됩니다. 이른바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가)' 이런 관념의 발로였으니, 인격신의 관념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람에게 무게중심이 쏠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문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상에선 한창 신의 의지를 인간화된 무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은밀히 수행되고 있었던 거지요. 히브리 사막에 바벨탑이 고도를 더해가던 그 무렵에 말입니다. 이 작업의 고도화된 형태가 바로 상형문자였습니다. 갑골에 새겨져 있던 그 무늬들 말입니다.
  지상의 인간들이 이처럼 독자적 질서를 구축해가고 있을 무렵, 동방의 하늘에선 우려의 목소리와 탄식의 씩둑거림이 꽤나 무성했던 모양입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이 곡식을 뿌렸고 귀신은 통곡했다”(『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는 겁니다. 귀신의 통곡은 지상에서 더 이상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회한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곡식은 왜 쏟아졌던 것일까요? 그런데 주석을 보면 귀신이 통곡한 이유는 회한 정도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창힐은 처음으로 새의 발자국 모양을 보고 서계(書契)를 만들었다. 그러자 사기와 허위가 생겨났다. 사기와 허위가 생겨나자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뒤쫓으며, 농사를 버리고 송곳과 칼을 날카롭게 연마하는 데 힘을 쏟게 되었다. 하늘은 인간이 굶주리게 될 것을 알고서 곡식을 뿌렸다. 귀신은 문서로 탄핵받을까 두려워 밤새 울었다.”
  서계, 즉 문자가 생겨나자 기만과 사기술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에 의한 귀신 경영까지 가능하게 되었다는 이 해석은, ‘문명(文明)'이나 ‘문화(文化)'란 것의 본질을 다소 민망하게 짚어줍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문명과 문화에 공히 밑받침되어 있는 ‘문(文)'이라는 글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문이란 무엇인가
“文은 종횡으로 얽힌 무늬다.”(文錯畵也)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사전은 ‘文’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고대 기물에서 이 글자는 주로 두 팔을 벌린 사람의 가슴에 어떤 문양이 그려진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때의 문양으로는 ×, ∨ 형태가 일부 있고 대개는 남성의 심벌 모양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지금껏 의론이 분분합니다. 다만 ‘文’이 “사자(死者)의 미칭(美稱)으로 쓰였으며, 살아 있는 사람을 찬미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혈액을 따라 빠져나간다는 당시의 믿음을 고려할 때, 시신의 가슴에 그려진 붉은 무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매개하는 영적 교류의 양식이자 이별의 양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의 ‘글월 문(文)’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일까요?
  비근한 사례들을 통해 이 점을 한번 생각해볼까요. 쉽게 이야기하면 요즘 유행하는 QR 코드 같은 걸 떠올리면 됩니다. QR 코드란 흑백의 격자무늬 패턴으로 정보를 나타내는 이차원 무늬의 그물이지요. 이 그물 속에 넣고 싶은 기본 정보를 다 넣을 수 있습니다.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상징하는 이 코드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의외로 대단히 아날로그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묘하게 신학적인 충동마저 들기도 합니다. 흡사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전자두뇌’ 같다고나 할까요. 이것의 어떤 측면이 이런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요? 바로 여기에 ‘무늬’의 우주론적인 성격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걸 사람의 몸에 새겨보면 어떨까요? 이것이 바로 문신(文身)입니다.
  문신도 일종의 무늬입니다. 요즘은 일회용 문신도 있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고대 사회에서는 장식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소통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닌 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잔재는 아직도 ‘어깨’와 ‘덩치’ 들의 팔뚝이나 등짝에 남아 있거니와, 거기서도 왜 유독 호랑이와 용이 단골 메뉴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굳이 부연치 않아도 좋을 겁니다. 무력의 신성성을 강변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부적 역시 무늬의 일종입니다. 누런 바탕에 빨간 선의 이 무늬는 과학이라는 잣대에 의해 상당 부분 그 의미가 미신의 영역으로 추방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일부 식당의 문지방 위나 누군가의 지갑 속에서 풍요와 안녕의 염念을 담고 있는 걸 보면, 우리 시대 문화의 한 양식임을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매년 입시철이 되면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부적 열기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도장 역시 그렇습니다. 오늘날엔 서양식 사인 문화가 대세를 이루면서 인감 폐지론이 대두되기도 하지만, ‘둥근 도장에 붉은 인주’라는 관념은 아직도 생활세계 곳곳에 건재합니다. (따지고 보면 사인 역시 ‘신의 지문’인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지요. 한글 도장과 한자 도장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그 사람의 존재성을 온전히 담아낼까요? 아마 대부분은 후자라고 할 겁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흔히 ‘도장체’라 부르는 이 문자는 진(秦)나라 공식 문자인 소전(小篆)인데, 상형문자에서 기호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한 형태입니다. 바로 다음에 정립되는 예서(隸書)나 해서(楷書)에 비해 회화적 성격이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런 만큼 그 주름에 존재의 흔적이 훨씬 더 진하게 각인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은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한글 도장이 왠지 밍밍하고 심심해 보이는 이유도 이 흔적의 결핍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명함만은 기어이 한자를 고집하는 기성세대의 취향을 시대착오라고 나무랄 일만은 아닙니다. 일종의 고전적 형태의 아바타(avatar)니까요.


문의 분화 양상
이런 점은 ‘文’의 의미 분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문자의 역사에서 ‘文’은 ‘紋’과 ‘彣’이라는 글자를 파생시키는데, 모두 ‘무늬’라는 뜻입니다. 다만 앞의 무늬에는 실이, 뒤의 무늬에는 깃털이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여기서 전자는 그 의미가 대개 ‘질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후자는 대개 ‘권력’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먼저 실이 갖는 맥락을 따라가볼까요. 원시 방직술의 기본 형태는 먼저 날실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그 끝에 방추차를 매단 다음 가로로 씨실을 얽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날실은 ‘경(經)'으로 씨실은 ‘위(緯)'로 불렸는데, 그러니까 경위란 직물이 만들어지기 위한 기본 얼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얼개는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에도 경서(經書)가 있고 위서(緯書)가 있는가 하면, 세계지도를 지탱하고 있는 두 축이 바로 경선(經線)과 위선(緯線)입니다. 왜 이런 계열적 질서가 만들어진 걸까요? 여기서 수직선인 ‘경’이 왜 ‘바이블’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지, 수평선인 ‘위’보다 왜 가치론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미루어두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서양 문명 역시 글을 의미하는 ‘text’가 직물을 의미하는 ‘texture’와 같은 의미 계열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만은 짚어두기로 하지요.
  한편 깃털의 의미도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정치적 군장을 의미하는 ‘왕(王)'은 머리에 쓴 깃털 모자를 본 뜬 글자로도 해석되는데, 이때의 머리 장식은 그 자체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 추장의 깃털 모자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오늘날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미(美)' 자 역시 사람(大)이 양가죽(羊)을 뒤집어쓴 모습이었으니까요. 중국 운남(雲南) 지방에 남아 있는 어느 암각화는 원시 마을의 일상과 권력관계를 생생히 보여주는데, 여기서 모자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에 정확히 비례합니다. 게다가 문명이 만개하면 할수록 모자는 더 크고 화려해지는데, 그리하여 마침내 ‘황’皇이라는 대형 모자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모자에 ‘황제’라는 의미를 덧씌운 사람이 진(秦) 시황제(始皇帝)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식으로 빛나는 무늬는 하늘과 인간 세계를 매개하는 권능을 상징하게 되었고, 이 상징은 곧바로 현실 정치권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엔 이 일련의 의미를 ‘문창(彣彰)'이라는 말로 포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彣彰’에서 오른편의 깃털을 떼어내어 보다 인간화된 무늬로 만드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장(文章)', 즉 우리가 쓰는 글이었던 것입니다.


인문의 자리
위진남북조 시대를 살았던 유협이라는 사람은 『문심조룡(文心雕龍)』이라는 최초의 문학 개론을 쓰면서 그 첫 문장을 이런 묘사로 시작합니다.
  무늬(文)의 속성은 지극히 포괄적이다. 그것은 천지(天地)와 함께 생겨났다. 어째서 그런가? 천지가 생겨나자 이어 검고 누름(玄黃)의 구분이 생겨났고, 둥글고 네모남(圓方)의 구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해와 달은 하얀 옥을 겹쳐놓은 것과 같아 하늘에 붙어 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산천은 비단에 새긴 자수와도 같아 땅에 펼쳐진 형상을 나타낸다. 이 모든 것들은 대자연의 무늬다. 위를 쳐다보면 해와 달이 빛을 발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과 강이 아름다운 무늬처럼 펼쳐져 있으니, 이는 위아래가 확정된 것으로, 이로써 천지가 생겨난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어울릴 수 있으며 영혼을 지니고 있기에 이들을 삼재(三才)라 부른다. 인간은 오행(五行)의 정화요 천지의 마음이다. 마음이 생겨나면서 언어가 확립되었고, 언어가 확립되면서 문장이 분명해진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그러한 이치(自然之道)인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이 세상 만물에 확대해보면, 동식물은 모두 나름의 아름다운 색채와 모양을 가지고 있다. 용과 봉황은 아름다운 무늬와 색채를 통해 상서로움을 나타내고, 호랑이와 표범은 그 얼룩덜룩한 무늬와 색채를 통해 위엄스런 풍채를 드러낸다. 구름과 노을에 새겨진 화려한 색채는 화가의 교묘한 채색보다 더 뛰어나고, 초목의 꽃들은 굳이 자수 기술자의 신비한 솜씨를 빌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 모든 것들은 외부에서 가해진 장식이 아니다. 모두 저절로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의식이 전혀 없는 사물들에도 이토록 무늬가 찬란하거늘 마음을 지닌 인간에게 어찌 무늬(文)가 없겠는가.(『문심조룡』 「원도(原道)」)
  이는 고대 문화사의 성장에 관한 아름다운 증언이자 유협이 살았던 위진남북조 시대의 세계지도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혼돈의 세상 속에서 꿈꾼 이념적 지도입니다. 그는 이런 무늬의 네트워크 속에 자신이 살아가는 난세를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글(文章)의 존재론적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의식이 전혀 없는 사물들에도 이토록 무늬가 찬란하거늘 마음을 지닌 인간에게 어찌 무늬가 없겠는가.”
  그러므로 이 한마디는 사람의 무늬, 즉 ‘인문(人文)’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고심에 찬 모색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유협 시대의 이 무늬의 네트워크는, 송나라 때에 이르면 ‘리(理)’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개편을 맞이합니다. 흔히 우리가 ‘이치(理致)’, ‘도리(道理)’, ‘진리(眞理)’라고 할 때의 ‘리(理)’가 그것인데, 원래는 옥을 가공하기 전에 옥 자체의 결을 면밀히 살핀다는 의미였습니다. 흔히 ‘물결’, ‘살결’, ‘숨결’ 할 때의 ‘결’이 딱 이 의미입니다. 송나라 신진 사대부들은 이 ‘리’를 절대적 진리(天理)의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질서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동아시아 중세사에서 6백여 년간 누린 영광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 ‘문리(文理)’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 문명사에서 천문―인문―지리라는 우주론적 네트워크의 위상과 의미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늘의 무늬(天文)와 땅의 결(地理), 이를 사람의 무늬(人文)로 매개하고 전환하려는 모색의 과정이 곧 중국 문명이 걸어간 길인 것입니다.
  이 모색이 조심스럽게 첫걸음을 떼던 그 지점에 무수한 뼈 무더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늘의 의지를 아로새겨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대 중국의 문명사는 이들의 삶과 염원으로부터 성큼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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