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최고 인기 교양강좌를 책으로 옮긴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의 저자 이상원을 만났다. 인터뷰 준비로 책을 살피면서 뭔가 기발한 교수법과 학습법을 기대한,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 나를 돌아보았다. 인터뷰 때 만난 그 역시 비슷했다. 꾸미거나 치장하는 말이 없었다. 질문은 거리낌 없이 그의 생각으로 들어갔다가 있는 그대로 답변으로 튀어나왔다. 그를 만나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글쓰기 수업을 대하는 태도를 들으며 "글은 한 번 쓰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소통의 출발점이자 너와 나,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 과정의 일부'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수업에서 글을 쓰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며 낮은 자세로 학생들의 글을 마주하는 이상원의 인문학 글쓰기 강의를 만나보자.

 

 

 

알라딘에서는 이 책을 바탕으로 인문학스터디_인문학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실제 글을 쓰고 함께 읽는 형식의 모임으로 2월 1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합니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20120112_inmunstudy11

 

 

 

인문학 글쓰기,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나?

 

책 서두에 6년 전부터 강의를 시작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그때가 여러 대학에서 학부대학 등 새로운 교양 교육 과정을 만들면서 글쓰기 강좌를 연 시기인데요. 대학 글쓰기 교육의 초창기부터 함께하신 셈인데요. 처음 시작하셨을 때와 지금 글쓰기 교육의 환경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한데요.

글쎄요, 관련한 책은 많이 나왔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해요. 여전히 학술적 글쓰기라 불리는 논리적, 논증적 글쓰기에 치중한 수업이 대부분이거든요.

 

선생님 수업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인데요.

네, 제가 이단아 같은 느낌도 들어요. 그래서 자주 스스로 묻게 되죠. 잘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 혼자 다른 데로 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요.

 

강의하시는 학교의 수업은 인문학 글쓰기, 사회과학 글쓰기, 과학기술 글쓰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역할이 어떻게 구분되어 있나요.

사실 이름은 다르지만 세 가지가 모두 학술 글쓰기의 하나로 큰 차이는 없어요. 다만 애초에 그렇게 나눈 이유는 수강생의 전공 차이가 아닌가 싶어요. 이공계 전공생들이 과학기술 글쓰기를 듣고, 사회과학 글쓰기는 사회과학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 전공생들이 주로 들으니까요. 다만 인문학 글쓰기는 누가 듣는지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인문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글쓰기 수업 별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듣는 사람에 따른 구분인 듯해요. 물론 다른 두 글쓰기는 상대적으로 양식이나 논지 전개 방식 등이 정해진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이걸 가르쳐주고 학생들이 여기에 맞춰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거죠. 그런데 인문학 글쓰기는 좀 다른 듯해요. 미운 오리 새끼 같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철학 글쓰기와 어문학 분야의 글쓰기도 상당히 다르잖아요.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은 듯해요.

 

그럼에도 인문학 글쓰기란 강좌를 맡은 초기부터 나를 소개하는 글, 감상 에세이, 주제 에세이 세 가지의 글을 쓰고 함께 읽는 워크숍 형태의 커리큘럼을 구상해서 수업에 적용해오셨잖아요. 초기부터 이런 방식의 수업에 확신을 가지셨던 건가요?

2006년부터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는데 그 이전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 수업을 진행했어요. 그때 수업이 학생들이 번역한 원고를 서로 읽어가며 이야기하는 방식이었거든요. 글쓰기 수업을 맡기 전에 모의수업을 했는데, 여기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평가가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오게 된 거죠. 이후에 상황에 따라 약간의 수정은 있었지만 큰 방향에서는 변화가 없었어요. 고민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그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번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시면서 글쓰기를 가르치시고, 번역을 하시면서 번역을 가르치신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개인의 경험으로나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나 상호작용하는 측면이 있을 듯한데요.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게 말이죠. 제 글쓰기 수업을 보면 글을 쓰고 고치는 일 못지않게 ‘읽기’가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거든요. 다른 친구들의 글을 읽어줘야 하니까요. 결국 열심히 읽기라는 게 제가 번역을 하고 번역 수업을 했던 경험에서 오는 것 같아요.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는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저는 이게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런 면에서 수업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겠지요.

 

 

학생들이 만드는 자유로운 글쓰기 수업

 

학생들에게 글쓰기 과제를 주실 때 주제나 소재를 주지 않고 자유롭게 골라서 쓰게 하시잖아요. 오히려 학생들이 혼란스러워 한다거나 부담스러워 할 것 같은데요.

물론 처음에 주제를 스스로 잡아서 쓰라고 하면 우왕좌왕하죠. 실제 글을 쓰기 전에 기획 발표를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때까지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의 관심사가 다양하거든요. 게임이라든지 만화라든지 자기가 심취한 분야가 있는데, 여기에 대해 글을 써볼 기회는 가져보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이걸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고, 이런 도전 자체가 글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공부하고 생각해요. 글쓰기의 중요한 단계이기도 하고요. 대학에서 글쓰기 과제는 대개 주제나 범위가 정해지잖아요. 그래서 그렇지 않은 글쓰기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유롭게 진행을 하면, 학생들이 써오는 글쓰기의 주제가 정말 다양하겠네요.

네, 주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요. 솔직히 깊이라는 면에서는 얕은 부분도 있죠. 그런데 이 글은 그 학생이 살아가면서 쓸 수많은 글 가운데 한 편이고, 그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시도이기 때문에 저는 이 부족함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에서 예로 든 오렌지주스나 초코 과자에 대한 글을 깊이 있게 끌고 가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고민하고 써보는 경험 자체가 소중하니까요. 깊이 못지않게 접근의 다양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글쓰기의 주제뿐 아니라 수업의 흐름도 무척 자유로운 듯한데요. 교사로서 개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요? 그런 마음이 드는데 참는 편인지 아니면 그런 마음 자체가 크지 않은지 궁금한데요.

아, 저는 그런 마음이 크지 않은 편이에요. 앞에서 혼자 떠드는 걸 싫어해요. (웃음) 일방통행이잖아요. 물론 뒤에 앉아 있어도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럴 때도 주로 참는 편이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을 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끼어드는 편이에요. 그래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힘들진 않아요. 저는 학생들이 절 잊어버리길 바라요. 다만 제가 앉아 있는 이유는 학생들이 수업에 제때 와야 한다는 정도의 의무감을 전해주는 거죠. 그 다음은 학생들 몫이고요.

 

앞서 잠깐 나온 부분인데, 글쓰기 주제를 미리 발표하고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데요.

하나의 글쓰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글 주제를 발표하는 게 아니라 앞선 글을 다듬어가는 과정에 새로운 글쓰기 주제 발표가 맞물리는 거죠. 사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과정인데요. 학생들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갖고 글쓰기에 들어가도록 해주는 역할도 있고, 서로의 글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어서 좋은 방법론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을 합니다. 다른 글쓰기 선생님들께서도 ‘이건 괜찮은데’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결국, 글쓰기는 소통이다

 

학생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댓글을 주고받게 하시잖아요. 오프라인 수업과 온라인 공간에서의 의견 교환이 잘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보통 게시판 문화에서는 좋지 못한 모습도 자주 보게 되는데요.

일단 익명성이 배제된 온라인 소통이라서, 배설하는 식의 댓글을 남기게 되면 다음 수업에서 글쓴이가 그 친구에게 물을 수밖에 없거든요. 왜, 무슨 의도로 이런 댓글을 남긴 건지 말이죠. 그런 면에서 책임과 압박감이 있지요. 그냥 ‘잘 읽었습니다’ 정도의 댓글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자기 의견을 전개할 정도의 분량은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수업 시간에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게시판 내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소통하는 경우도 있어요. 댓글을 통해서 잘못을 확인하면 금세 글을 수정하고 바뀐 내용에 대해 다시 댓글로 남겨두기도 하거든요.

 

글을 고치는 일이 정서적으로 쉽지 않은데 게시판에서 그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인다면, 상황을 지켜보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꽤 즐거운 일일 듯하네요. 글쓰기 분량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면 좋겠는데요. 선생님 수업에서는 분량 제한은 없지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주시잖아요. 그런데 의아했던 게 감상 에세이나 주제 에세이보다 나를 소개하는 글의 최소 분량이 적은 점인데요. 아무래도 자기 이야기를 쓰는 글이니 할 말들이 더 많을 듯한데요.

최저 분량을 정해놓으면 물론 생각의 폭이 제한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학생들 가운데 30% 정도는 최저 분량을 훨씬 넘겨서 써요. 글의 분량에 제한을 둔다기보다는 지나치게 짧아지는 부분만 경계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고쳐 쓰기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수업을 하다보면 거의 고치지 않는 친구들도 있어요. 의견은 경청하되 최종 판단은 자기 몫인 거죠.

 

선생님 글쓰기 수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손으로 글을 쓰는 것과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 선생님께서는 둘의 차이를 경험해본 세대시잖아요. 차이를 느끼시나요?

저는 학부 때까지는 손으로 쓰고, 대학원 때부터 컴퓨터를 활용했는데요. 너무 악필이어서 컴퓨터가 아니라면 번역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혜택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지 둘의 차이랄까 손으로 글쓰는 일의 의미랄까, 이런 부분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다만 글쓰기 계획을 하는 과정에서 마인드맵핑을 할 때는 손으로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니터 앞에서는 하기 힘든 작업이니까요. 그런데 문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손으로 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필사를 강조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실제로 해보지 못해서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드는 공력에 비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싶어요. 물론 아예 문장을 만들지 못하는 정도라면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수업 평가 관련해서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우선 첨삭이 없다는 부분이 의아한데요. 많은 분들이 글쓰기 수업을 듣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강사가 조목조목 짚어주기 때문일 텐데요.

제 첨삭이 없다뿐이지, 저는 실제 첨삭이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서로 첨삭을 해주고 있으니까요. 제가 첨삭한다고 했을 때 이야기할 부분은 학생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거의 다 나오거든요. 만약 안 나온다면 제가 개입해서 한두 마디 더할 수도 있고요. 제가 첨삭을 안 하는 부분은 비판받을 여지도 있을 텐데, 첨삭이 일방향 소통이 되거나 제가 제시하는 정답을 보여주는 데 그친다면 오히려 제가 생각하는 수업의 방향과는 배치될 수도 있으니까요. 당연히 첨삭을 꼼꼼히 해주시는 선생님들의 노고는 칭찬받아 마땅하지요. 다만 전체 수업의 그림에서 이런 선택을 한 거라는 변명 아닌 변명이에요. (웃음)

 

수업의 평가는 절대평가인데요. 다행입니다. (웃음) 세 가지 글을 써내는 일에서 낙오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상대평가였다면 채점자 입장에서는 난감할 듯하거든요. 물론 절대평가라 해도 기준은 있을 터인데,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글 세 편을 제때 썼는지, 친구들의 글에 댓글을 제대로 달았는지는 양적 지표로 나오는 것이고요. 수업 시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는 제가 판단하는 부분이지요. 그게 다죠 뭐. 출석도 수치로 나오는 거고요.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면 A+나 A0를 받는데, 절대평가 수업이라서 A0를 받은 학생들의 이의제기가 많아요. 할 수 없어요. 싸워야죠 뭐.

 


모든 글은 귀하다

 

나를 소개하는 글, 감상 에세이, 주제 에세이 세 가지 유형 가운데 어떤 글을 읽을 때 가장 즐거우세요?

다 재미있죠. 비교는 어렵고요. 각자 다른 재미지요. 나를 소개하는 글은 기발한 내용이 많은 데다,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글을 읽고 실제 강의실에서 얼굴을 마주하기 때문에 둘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어요. 감상 에세이는 서로 다른 경험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재미있어요. 영화라든지 여행이라든지 하는 내용이니까요. 마지막 주제 에세이는 내용을 두고 논쟁이 많이 벌어져요. 이렇게 각자 재미가 있는 거죠.

 

본문에서 학생들의 글 일부분을 직접 보여주는데, 이 부분이 본문과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느낌은 덜했거든요. 그리고 뒷부분에 학생들의 글을 일부분이 아니라 통으로 보여주시는데 이렇게 배치하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일단 밀접한 연관성을 느끼지 못하셨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드릴 말씀이 없는데, 우선 저는 보여주고 싶었어요. 말로만 설명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실제 어떤 글을 쓰는지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앞부분에는 일부분만 보여주기 때문에 전체를 보여주자는 생각에 뒷부분에 따로 글 전체를 넣은 건데, 여기에는 다른 생각도 하나 있어요. 이 책이 단순히 글쓰기 강의를 보여주는 걸 넘어서 요즘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읽어보셨겠지만, 상당히 감동적이거든요.

 

한 학기 수업으로 마무리가 되는데요. 학생들이 이후에는 각기 다른 글쓰기를 경험하게 될 텐데,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선생님의 수업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각자 다른 인생 경로가 펼쳐질 텐데요. 공부를 해나갈 학생들은 주로 주제가 정해진 글쓰기를 경험할 텐데, 그렇더라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을 미리 생각해보는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읽을 사람들을 배려하는 시도를 하게 될 거라 기대해요. 회사에 들어가서 기획서를 쓴다거나 하는 친구들에게는 형식과 내용의 기발함이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자유롭게 글을 쓸 친구들에게는 자기 글을 두고 일종의 합평을 해보았다는 경험이 앞으로 글을 쓸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주제 에세이나 감상 에세이를 소설로 쓰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결국 읽는 이를 미리 생각해본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이군요. 책에서 가장 와 닿았던 말이 “모든 글은 귀하다”였거든요. 우리는 늘 다른 이의 글을 평가하는데, 선생님 글쓰기 수업은 거기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 때문에 모든 글에 이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깨달음이기도 해요. 저도 논문을 썼고, 다른 사람들의 논문을 읽기도 하는데,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이걸 읽는 태도도 달라졌어요. 글쓴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결과이기 때문에 존중해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학생들도 서로의 글을 그렇게 대해주기를 기대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해주는 것 같고요. 자기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글이라도 열심히 읽어주고 내가 왜 동의할 수 없는지 찾아보는 게 그 글에 대한 합당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이런 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인 것 같아요.

 

알라딘 인터뷰의 공식 질문이 남았습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추천해주셔도 좋고, 선생님 강의를 들을 학생들에게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제일 처음 글쓰기에 영향을 주신 분이 이오덕 선생님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 글을 처음 읽었는데, 그야말로 꾸밈없는 글을 강조하신 분이시잖아요. 제가 하고 있는 많은 생각이 선생님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책 이외에도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여러 곳에서 생각을 찾거든요. 그래서 뭘 하든, 운동이든 여행이든,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생각을 이어가면 좋겠어요. 이걸 내가 왜 좋아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런 식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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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올해의 인물을 꼽는다면 아마 '나는 꼼수다'가 제일 위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바람이라면 잦아들 때도 되었건만 엄청난 취재와 자료를 바탕으로 뿜어내는 가공할 예지력에 이제 나꼼수 열풍은 메가톤급 태풍이 되어 한국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관련하여 나꼼수 멤버들이 출간한 책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바, 알라딘에서는 이들 네 명을 차례로 인터뷰하기로 작정했다. 지난 10월 28일 김어준 총수의 인터뷰를, 11월 24일 김용민 피디의 인터뷰를 각각 진행했고, 오늘 김총수, 내일 김용민 피디의 인터뷰를 차례로 공개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다른 두 분의 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이다. 물론 이전 두 인터뷰와 동일하게 트위터로 실시간 중계를 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린다. 

(인터뷰 녹취에 트위터리언 @81231004 님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사진은 총수의 거부로 따로 찍지 않았습니다.) 

총수님께 축하드릴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그러게 왜 다들 저한테 축하를 하는 건지.

<닥치고 정치>가 전 서점에서 종합 1위를 했는데요. 스티브 잡스 자서전 때문에 2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아, 알라딘에서는 하루를 더 견뎠네요.
알라딘에서 제일 먼저 1등하고 제일 늦게 내려왔네요. 잡스는 우리에게 기회를 줬기 때문에 약 2주 정도 양해할 생각이 있어요.

나꼼수의 영향도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의 성공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텐데, 총수가 생각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요.
제 사진이죠. 하하하.

사진 하니 마지막 문장(“나는 잘생겼다! 크하하하)도 떠오르네요. 사진과 관련해서 트위터에서 질문이 하나 올라왔는데 셔츠가 좀 커 보인다네요.
아 멋을 몰라서 그런다고 전해주세요. 나름의 스타일.

딴지일보가 온라인 미디어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고 나꼼수도 새로운 흐름의 중심에 있는데, 총수님은 의외로 SNS를 안 하시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책에 다 써 있는데요. 천성이 게을러요. 좀 길게 얘기하자면, 물론 SNS가 일상에서 전혀 만날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냈고 실시간으로 소통하게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두고 웹상의 트친들과 소통하느라고 리얼 스페이스, 현실 세계에서의 상대하고는 대화가 끊어져요. 일종의 디지털 분리 불안이죠. 그게 안 하게 된 절대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그런 요인도 하나쯤은 있다는 거죠.

역시 면 대 면이 좋다는 말씀인가요?
나는 직접 만나는 게 좋아요. 천성이 그래요. 그리고 그게 일종의 트렌드이기도 하잖아요. SNS가 가진 장점도 많고 그 장점 때문에 유행한 것도 있지만 유행 때문에 하기도 하잖아요. 전 유행에 둔감해요. 남들이 다하기 때문에 싫어, 이런 건 아니에요. 그런 트렌드가 재미있으면 같이 가죠. 그런데 트렌드이기 때문에는 안 가요. 트렌드에 뒤처지는 게 불안을 주거나 무섭거나 내가 낙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어요.

솔직히 ‘바빠서’, 뭐 이런 간단한 답변도 기대했습니다만
내 주변은 거의 다 트위터를 하는데 그들이 에너지를 너무 쏟아요. 나는 거기에 에너지를 나눌 여력이 없어요. 물론 나는 꼼수다를 해서 제가 알리고 싶은 걸 트위터를 통해서 알릴 필요도 있겠지만 그런 이득만큼이나 손해가 크다, 내가 이걸 하면서 뺏기게 된 에너지가.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논리적으로 공박해서 이해시키고 싸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설득 가능한 대상과 싸우는 게 아니다, 지금. 우선순위가 달랐던 거죠.
 
언젠가 하실 날도 오겠죠?
트위터를 하든 자기 블로그를 가지고 있든 누구나 오해를 받잖아요. 누구나 자기를 있는 그대로 남한테 설득할 수 없어요. 이해시킬 수도 없고. 그러면 이런 걸 하게 되면 자기를 이해시키고 싶은 욕구가 막 솟구쳐요, 모두가. 사람들이 제일 못 견디는 게 오해거든요. 그리고 그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하지만 자기에게는 대단히 큰, 거기에 매달려서, 이해는 가지만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많아요. 트위터에 열성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의 핵심은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거거든요. 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생각이 없어요. 오해에 대해 반응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모두에게 이해시키려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트위터에 대한 필요가 없는 거죠. 지금은. 앞으로 영원히 안 하겠다는 거는 아니고 현재 상황에서는 해서 얻는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크다. 뭐 그런 종합적인 생각이에요. 해명, 변명, 이해시키기, 그런 게 싫어요 전. 귀찮고.

독자 리뷰 가운데 내용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이 도입부인데요. 좌파 우파 이야기하시면서 일종의 진화심리학 같은 설명을 하셨는데,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게 이런 무학의 통찰에 이르기 위해 어떤 수련이 필요한가인데요. 이전 인터뷰에서 부모님의 교육이 남달랐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만.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부모가 저를 잘 길러주신 부분은 철저하게 방목해주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금기가 없었다는 거고요. 여행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여행을 다니다 보니 사람이 사는 데 지켜나가야 할 규칙이라는 게 대단히 단순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하필 내가 한국에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하필이면 사모아에서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은 짐바브웨에 태어나잖아요. 우연히 그렇게 태어나서 그 공간적 시간적 제약 속에서 사는 거죠. 지역과 시간에 따라 적용되는 특별한 규칙이 있거든요. 여행을 다니다 그렇게 특수해 보이는 규칙들이 대부분 사소하고, 또 결국 사람 사는 데 통하는 규칙은 대단히 단순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저는 그게 상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람 사는 곳에 으레 통하는 상식, 그 상식의 기준으로 보자면 우리가 지켜야 할 보편 상식이 복잡한 게 아니거든요. 그걸 제외하고는 그 주변에 존재하는 무수한 이론, 개념들은 그냥 하나의 참고사항이다, 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러니까 애초에 금기가 없었던 데다가 여행을 다니면서 얻은 깨달음이 더해진 거군요.
네, 그렇게 껍데기가 사라지는 거고. 그럼 진짜 본질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이 이어진 거죠. 오로지 이 사건의 본질이 뭘까, 이 현상이. 이렇게 생각하는 게 훈련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운 좋게 몸에 쌓인 거죠. 그러다 보니 좌파, 우파에 관한 무수한 책들과 설명들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거고요. 그가 마르크스라 한들, 마르크스는 인간이 아니냐 씨바. 다만 상당히 똑똑하고 명석했던 인간이다. 하지만 그도 그 시대에 한계 속에 있는 인간이죠. 마르크스도 뻘 소리 많이 했어요. 그렇다고 그가 멍청하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이상하거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당대의 천재는 맞는데 그 사람의 이론도 한 사람의 이론인거고, 그래서 그 사람의 이론도 하나의 이론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모두가 각자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별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씀이군요.
모두 그렇게 비슷한 정도의 가능성을 두고 그냥 상황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건 청소부 아저씨건 저한테는 똑같은 사람이에요. 지위가 그 사람은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청소부 아저씨가 더 위대해, 이러면 오바고. 계급장 떼고 보면 다 인간이니까. 근데 그걸 의식적으로 계급장을 떼고 보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계급장 떼고 단어를 빼고 이론을 빼고 있는 그대로 현상이 뭔지 그렇게 보도록 생겨 먹었어요. 그러다 보니 좌우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던 거죠. 최초의 출발은 똥 누다가 였던 거 같아요. 무슨 책을 보다가 좌파가 어떻고 길게 썼는데, 맞는 얘기들도 있지만 불완전한 얘기들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뭐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죠. 이런 게 아닐까? 그러니까 무학이라고 하는 거고요.

결국 직관과 통찰이라는 말씀이군요. 시작은 화장실에서...
사실은 대단히 놀라운 과학적 발견이나 철학적 사유나 그런 게 대단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엄정한 과학적 추론을 통해 탄생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굉장히 놀라운 과학적 발견들은 대부분 직관과 통찰에 의해 발견이 되었어요. 이러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거죠. 중간에 엄청난 논리적 갭이 있는데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고 거꾸로 그걸 자기 직관과 통찰로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게 많다는 거죠. 그 직관과 통찰이라고 하는 게 인간에게 있는 굉장히 강력한 무기인데 이것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이성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꼼수는 2013년 2월에 종방이라고 말씀하셨고, 닥치고 정치 본문에서는 문재인 이사장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두 가지의 접점은 결국 내년 대선이잖아요. 이 책을 쓰실 때와 지금의 시점 차이가 있는데, 변화된 지점이 있을까요.
없어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만나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인상 비평하는 걸 즐기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하죠. 어떤 사람들은 개그맨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입만 살아서 나불댄다고 생각하고. 입이 나불대라고 하고 있는 거지. 씨바. 안철수랑 박원순이 나온다고 해서 대선이 바뀔 것도 없어요. 안철수가 나올 거라고 생각도 안 하고. 말만으로는 부족해요. 직접 만나보고, 그 사람이 나온 길을 보고, 했던 말들을 종합해보고, 했던 선택들을 봐야지. 말은 자기를 잘 못 표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상황에 따라서 그 말을 해야 해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말을 가지고 말꼬투리를 잡거나 이러니까. 말도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직접 들었을 때 말과 보도된 말을 들었을 때 전혀 달라요. 그러니까 저는 그 사람을 만나보고 판단해요. 특히 정치는. 문재인 이사장은 그렇게 만나본 사람 중에 최고라 이거죠. 개인적으로.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세대 정치의 뚜렷한 반영이 보였잖아요. 나꼼수의 지지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적극지지층인 2, 3, 40대에 대한 전략이 하나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 여전히 나꼼수를 모르고 또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략이 있을 텐데요. 듣지 않는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게 기본 태도일까요?
아니요, 듣고 있는 사람도 신경 안 써요. 우리의 일관된 철학입니다. 이걸 듣는 사람들, 지지하는 사람들의 요청도 수십만 가지예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니 우리가 생겨 먹은 대로 갈 거예요.

나꼼수 역풍과 검찰 조사 등 앞으로 공권력, 정치권에서의 압력들이 더 거세질 것에 대해 어떻게 예측하고 대응할 계획이신지.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고요. 다 예상한 바고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다 나름의 계획이 있습니다. 앞으로 재밌는 일들이 벌어질 거예요.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항상 예상한 대로만 움직여주셔서 감사하다고.

트위터로 올라온 몇 가지 재밌는 질문들이 있는데요. 주진우, 김용민, 정봉주 이 세 분이 대선출마하면 셋 중에 누구를 지지할 거냐 하는 질문입니다.
바보짓은 하지 말라 그래.

만약에 각하 퇴임 시에 나꼼수가 막방을 한다. 그러면 이후에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계획 없어요. 저는 항상 혹시 내가 내일 할 일을 오늘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는 스타일이지, 무려 1년 4개월 후의 계획을 지금 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러나 이건 말할 수 있어요. 잘할 거다.

지금까지 진행된 나꼼수 방송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화가 있다면요.
지나간 건 생각 안 해요. 다음 걸 더 재밌게 어떻게 할까 생각하죠.

가장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국내외 가리지 않고.
저는 사람이 사람을 존경할 일은 없다고 봐요.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무시하거나 존중하거나. 그런 거죠 뭐. 사람끼리 뭐 존중씩이나 해. 다 불완전한 사람끼리.

김총수께서는 남자의 포스를 꽤나 풍기시는데, 본문에서 서른 중반에 남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남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해요. 연애를 해야 자기가 찌질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점에 가니까. 자기가 찌질한 걸 알아야 안 찌질해져요. 자기가 찌질하다는 걸 모르면 찌질해져요.

본인이 연애하면서 했던 찌질한 짓도 있나요?
저는 연애하면서 거의 찌질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연애를 하다가 도망가거나 내가 더 유리하려고 사기를 치거나 그런 게 찌질한 거거든요. 아니면 상대를 내 뜻대로 하려고 억지를 부리거나. 그래본 적이 없어요. 제가 해보지 않았지만 그런 경우를 많이 봤죠. 연애 상담의 90%는 그거예요. ‘나 안 찌질하지?’ 자기가 찌질하다고 인정할 수 없는 거예요.

나중에 더 나이 들면, 배 나오고 지성 있는 아저씨들이 있는 불친절한 바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대략의 개업 시기는 언제일까요?
가카 퇴임 후에 생각해보죠. 지금 가카랑 노느라 바빠요.

창업 멤버에는 나꼼수 멤버들도 다 포함이 되는지?
나중에 생각해 보겠다니까요. 지금 네 명은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한 목적으로 모인 거지, 포함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나중에 한 번 해야지, 여기까지 생각했지.

총수 본인이 생각해도 이건 좀 저질인데, 저급한데 이렇게 생각해본 욕망이 있는지.
제 상상에는 금기가 별로 없어요. 다만 상상대로 하지 않죠. 행동으로 옮기면 반사회적이거나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상상에서는 뭘 못해요. 이런 상상도 하고 저런 상상도 하고 다 하는 거지. 

다음 정권에서 정부에 들어간다면 국정원장이 제격일 듯한데 어떤가요.
공무원이잖아요. 하기 싫어요. 공직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은 부담이 안 되는데 그에 따르는 의무들 그건 귀찮아요.

교통방송 사장도 공직인가요?
그건 박원순 시장 당선 직후에 사석에서 선언했어요. 교통방송 포기한다. 우리한테 밥 한 끼만 사라. 이렇게. 서울시청 식당에서 밥 한 끼만 사라. 그걸로 퉁 쳤어요.

최근에 김용민 신간과 정봉주 의원 신간이 나왔고. 연말까지 나꼼수 관련 책들이 연달아 나올 텐데, 대개 반기는 편이지만 한편 너무 빨리 소진되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딱 한 권씩만 냈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들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거잖아요. 사실 김용민은 오래전부터 계속 책을 써왔어요. 그동안 안 팔렸을 뿐이지. 그런데 그게 갑자기 이것 땜에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있는 거죠. <조국 현상을 말하다>도 나꼼수와 상관없이 나온 거예요. 제 책만 오로지 나꼼수와 어느 정도 관련해서 나온 거고. 정봉주 의원은 선거에 출마할 거니까 나오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많이 나온 게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 있죠. 누가 그렇게 꼼꼼히 상황을 챙기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만 그들에게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용민이는 벌써 예전부터 써놓은 책이 몇 권이 있는데. 오히려 일부러 안 내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보일까봐. 걔는 쓸데없이 많이 쓰거든요. 재미도 없는데. 나꼼수 관련해서는 용민이도 한 권, 저도 한 권인 거예요. 참, 그리고 이런 것도 있죠. 출판사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으니까. 다 거절해도 되는데. 그간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도 있죠.

벌써 다음 책 기대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글쎄 다음은 생각하지 않는다니까요. 제 장점은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사람들은 계획부터 세우잖아요. 계획이 안 될 경우를 상정하고,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할지 상정하고, 그리고 그게 실패할 경우 내가 어떻게 변명할 건지 고민하고, 졸라게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막 힘들다고 하고, 안 될 수도 있다고 하고, 보호막 치고, 그러다 자기가 설득돼. 그러고 안 하죠. 그런 사이클이 졸라 많죠. 저는 그냥 하는 스타일이에요. 하고 싶다. 하자. 하는데 이 일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지. 이 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이 다음이 오면 생각하면 되죠.

나꼼수 콘서트는 방송을 듣거나 책을 본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게 되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무엇보다 큰 의미는 고맙다는 부분이에요. 물론 실용적인 의미로는 서버 비용을 만들어야겠다는 의미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의미만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했을 거예요. 분명히 고마운 부분이 있어요. 티셔츠도 팔아주고 계속 유지되도록 응원도 해주고. 이런 유대가 있죠. 그 유대에 대한 연대의식. 유대감에 대한 보답이라고 보면 되요. 그러나 계속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이것만 하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거거든요. 또 할지 안 할지는 몰라요. 계획이 없기 때문에.

FTA 관련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한 광고가 나왔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FTA, 이번 정권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이런 식의 광고인데요.
비겁한 광고죠.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FTA에 이미 독소조항이 있었어요. 그것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현실화된 것이죠. 물론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이 빠졌으면 좋았겠죠. 그게 정부가 할 역할이었고. 왜냐면 당시 시민사회에서 몇 가지 독소조항 이야기하면서 과거 멕시코의 사례를 볼 때 미국 국회에서 비준을 받으려면 이런 조항들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예상했단 말이죠. 우리 정부가 협상력이 있었다면 그런 조항들이 안 들어가도록 만들었겠죠. 물론 그때 당시만 해도 예상이었기 때문에, 그중  일부는 예상에 그쳤고 일부는 실제 포함된 거죠. 노무현 FTA와 이명박 FTA는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어요. 같은 점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입장을 밝혀야 할 부분이 있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거고요.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시작했던 FTA에서 사실, 제 개인적으로 볼 때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과오는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가 뭔지 체감을 하지 못했다는 건데요. 그 당시만 해도 용어로만 존재했지 그게 어떻게 사회를 양극화 시킬 것인지 거기에 대한 이해가 없었거든요. 그건 노무현 정부의 잘못이긴 해요. 하지만 노무현 정부만의 잘못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정부니까 책임져야죠. 그걸 깨닫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임기가 많이 남지 않았을 때였어요.

FTA 혹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이해가 부족했다는 말씀인가요?
당시만 하더라도 노무현 정부의 발상은 이런 거였거든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FTA를 체결하지 않은 OECD 국가는 두 군데밖에 없었어요. OECD국가였나 아니면 WTO 체제 국가였나 헷갈리는데, 둘 중 하나예요. FTA 자체가 악은 아니거든요. 협정일 뿐이죠. 그러니까 그게 상호 이익의 균형에 맞는가. 그리고 우리 쪽 불이익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가. 우리 권리를 침해하진 않는가. 우리가 불리할 경우에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지 FTA 협상 자체가 악은 아니에요. 통상 협정이고 어느 나라와도 맺을 수 있죠. 그 균형을 맞추느냐 못 맞추느냐의 문제인 거죠. 지금 FTA를 반대하는 쪽은 FTA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정교하게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보이죠. 거꾸로 따지면 미국한테 FTA가 악인가요? 미국한테 유리하니까 한 거잖아요. 협정이 악일 순 없어요, 조건이 악할 수 있는 거지. 그 조건을 따져내는 데 있어서 협상을 담당했던 우리 측 관료들이 대단히 친미적이었고, 실제 미국에게 협상 당사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했고. 또 그것을 노무현 정부가 통제하지 못했고. 그러니 노무현 정부의 책임도 있고 우리 정부 관료 자체가 대부분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들이라는 근본적인, 태생적인 한계도 그 안에 있는 것이죠. 어쨌든 노무현 정부 FTA의 최초의 출발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는데 다른 국가들과 경쟁을 하는 와중에 우리가 보다 좋은 조건으로 미국과 협정을 맺어서 그 시장을 선취하자, 이런 발상이었던 거죠. 저는 그 발상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FTA 얘기가 너무 긴데? 씨바.

그래도 마무리는 해주셔야.
어쨌든 노무현 FTA와 이명박 FTA가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책임질 부분이 있고 이명박 정부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 그 두 개가 분리되어야 하고 노무현 정부의 인사들이 답할 부분이 있고 현재 이명박 정부가 책임지고 답할 부분이 있다. 이렇게 정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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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ly 2011-12-16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무현과 그의 정부가 신자유주의가 뭔지 체감하지 못해서 FTA를 추진했다라고 하는 이 어이없는 분석의 기초는 무엇일까?
그럼 노무현 이전의 정권들은 모두 박정희식 국가자본주의나 케인즈주의식 경제정책을 추진했단 말인가?
신자유주의가 계급의 문제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그의 의식에 다시 한번 아찔함을 느낀다.

jdh8479 2012-01-11 08:06   좋아요 0 | URL
탈규제적 개방의 폐해가 얼마나 클지 모르고 추진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가 잘못된 점을 늦게 깨달았다고 얘기하는 것인데, 글을 제대로 정독하면 알 내용인거 같고요.
당신의 논리를 그대로 빌어 신자유주의만이 '계급'의 문제라는 어이없는 분석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계급'의 문제와 그 사고 프레임을 이용한 사회주의적 해석방식은 박정희식 국가자본주의는 노동계급
을 착취한 체제일 따름이며 케인즈주의 역시 자본주의의 폐해를 개량한 것일 뿐이라며 비판하지 않습니까? 요컨데 '어느 체제'에서든 '계급'의 프레임으로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 '신자
유주의'의 문제점을 '계급'의 해석방식으로 깨달았다고 새삼스러워 할 것도 없는 거지요.

cncjs 2012-01-0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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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반올림’을 만난 가족들

“제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많이 울었어요.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민머리에 앙상한 여자 아이가 말한다. 스물두 살이라는 제 나이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던 유미는 몇 달 후, 죽었다. 

열아홉 살 유미는 일기를 썼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다. 유미는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다. 대신 기숙사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썼다. 회사에 입사하던 날, 유미는 기숙사 방에 침대가 있다며 좋아했다. 시골집 유미의 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고향 집에서 회사가 내준 아파트형 기숙사로 짐을 옮기며 유미는 자신이 출세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착각임을 깨달았다.

입사 초반엔 퇴사하고 싶단 생각을 정말 많이 하면서 울었다. 만날 울고 엄마한테도 퇴사하고 싶다면서 계속 울었다. 그러면서도 엄마 때문에 퇴사하지 못하고 참고 일했다. 차라리 친구들처럼 대학이나 갈걸. 싫은데도 참고 일하는 건 엄마한테 미안해서이다. 엄마가 대학 가라고 했는데 끝까지 우겨서 이 회사 왔는데, 엄마한테 미안해서 퇴사 못하겠다. 슬픈 책이라도 읽고 아주 펑펑 울고 싶다.(2003년 유미의 일기)

수원은 대도시다. 바다 냄새 나는 고향 속초와 달리 사람도, 놀 곳도 많았다. 오프 날이 되면 유미는 회사 동기들과 시내에 나갔다. 스무 살 여자아이들은 CGV 영화관, 이마트, 피자헛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피시방에 갔다. 보안을 이유로 기숙사 안에서 인터넷을 쓰지 못하게 해 유미는 투덜거리며 나가곤 했다. 가수 ‘신화’ 소식도 궁금했고 친구들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도 들러야 했다. 그렇게 회사 밖을 맴돌았다.
  기숙사로 돌아오면 선배와 동기 들이 곤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네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유미는 까치발로 걸었다. 다들 겨우 든 잠이었다. 교대근무로 낮밤이 바뀌어 자는 것도 일이었다. Day(오전근무), Swing(오후근무), G. Y.(밤근무), 서로 출근하는 시간이 다르니 자는 시간도 달랐다.) 출근 준비하는 룸메이트 때문에 겨우 든 잠을 깨면 왠지 서러워 눈물이 났다.
  몇 날 며칠 계속되는 12시간 맞교대, 휴일도 가리지 않는 잔업, 물량달성을 외치는 상사들 앞에서 열아홉 살 신입사원 유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자두는 것뿐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에 유미는 침대에 엎드려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곳에 일기를 썼다. “참고 또 참았다. 내가 막내니까. 엔지니어가 뭐라고 했을 때는 정말 짜증나서 눈물이 났다.” 작은 실수에도 엔지니어는 윽박을 질렀다. 기계가 멈추면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정작 오퍼레이터(생산직) 자신인데 말이다.
  입사 초, 생소한 설비와 외국어로 된 공정 이름, 온갖 화학식 앞에서 유미는 기가 죽었다. 낯선 일이니 실수가 많았다. 선배들은 호되게 몰아쳤다. 그래야 일을 빨리 배운다고 했다. 공장은 빠르게 돌아갔다. 그 와중에 일이 더딘 신입사원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모든 것이 실수 없이 신속하게 돌아가야 하는 그곳에서, 유미는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엄마 말대로 공부를 할걸 그랬어.’ 유미는 후회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다이어리 장을 넘겨 그곳에 월급을 어떻게 쓸지 적었다. 엄마에게 돈을 보낼 때는 안도가 됐다. 아빠는 이번에 집을 새로 옮길 거라고 했다. 지금 집은 낡았다. 유미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가족들이 살던 집이었다. 할머니는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고생스러워했다. 유미는 집에 갈 때 가져갈 할머니 선물을 다이어리에 적었다. 매달 적금도 넣어야 했다. 내년 봄에 친구랑 쌍꺼풀 수술 상담도 받으러 가기로 했다.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2, 3년만 일해서 돈 모아 대학이라도 갈까? 유미의 계획은 끝이 없었다. 옆 침대 룸메이트가 뒤척였다. 유미는 움직임을 멈췄다.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창문을 닫고 자야 하는데…… 눈이 감겼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옅은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회사 냄새였다. 싫었다.

  “차라리 그렇게 빨리 간 게 다행이에요. 너무 힘든 병이야. 너무 고생을 해.”
  황상기 씨가 잡은 운전대 아래로, 딸이 사준 열쇠고리 인형이 흔들거린다.
  “애가 음식을 삼키지를 못해. 새 모이만큼, 그냥 먹는 흉내만 내. 항암치료 받으니까 입안이 다 헐어서 음식을 입에 넣을 수가 없어. 먹지 못해 삐쩍 말라서 몸무게가 20킬로그램밖에 안 됐어요.”
  그는 뜸을 들이다 말한다.
  “우리 유미는 굶어 죽은 거야.”
  끝없이 반복되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지켜봤다. 서둘러 간 것이 다행이라고 모진 소리를 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병실에 누운 딸을 보면 가슴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올랐다. 그럴 때면 유미의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욕을 했다.
  그는 유미의 병이 회사로부터 온 것이라 확신했다. 회사가 아니고는 그 무서운 병이 어디서 온단 말인가. 유미는 열아홉에 반도체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딸아이는 병이 들어 돌아왔다. 친척 누구도 백혈병은커녕 암에 걸린 전력이 없었다. 백혈병은 10만 명 중 2, 3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이라고 했다. 아이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다. 한창 젊고 건강할 나이였다.
몇 해 전 유미의 선임이 유산을 해서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몸이 약했나 보네, 그렇게 넘겼다. 유미가 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유미 엄마는 말했다. 얼마 후, 유미와 2인 1조로 일했던 선배가 백혈병에 걸렸다. 이상했다. 유미의 병도 백혈병이었다. 후회는 분노로 변했다.
  화를 내는 그에게 회사는 말했다.
  “산재라니요. 증거 있으세요? 큰 회사를 상대로 싸우려면 싸워보시든가요.”
  답답한 마음에 그는 국회의원을 찾아갔다. 지방 방송국도 찾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내 딸이 직업병에 걸렸다고 하니, 다들 말했다. “증거를 가져오세요.” 그는 울었다. “힘없는 개인이 증거를 어떻게 찾아요?”
  규모가 있는 언론사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그는 아픈 딸에게 더듬더듬 인터넷을 배웠다. 인터넷으로 작은 언론사를 찾을 생각이었다. 서툴게 마우스를 쥐고 검색을 했다. 전화번호가 보이기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내 딸이 백혈병에 걸렸어요. 삼성반도체에서 일을 했는데…… 그런데 병에 걸린 게 내 딸만이 아니에요.”
  그렇게 월간 《말》지의 윤보중 기자와 연락이 됐다. 비슷한 경로로 《수원시민신문》의 김삼석 기자와도 만나게 됐다. 유미의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세상은 유미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좀 더 많은 기사가 나오면 내 딸이 억울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까? 그러는 사이 회복돼가던 유미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됐다.
  2007년 3월 6일, 유미가 고열에 시달렸다. 이제 어떤 해열제도 듣지 않았다. 내성이 생긴 터였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유미는 몸이 뜨겁다 하다 차다 하다 했다. 가쁜 숨을 쉬었다. 그러고 더는 숨을 쉬지 않았다. 그는 차를 갓길에 세웠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딸이 죽었다.
  요즘도 그는 유미가 누웠던 차 뒷좌석을 문득 돌아보곤 한다. 택시를 모는 그는 그 자리에 유미만 한 아이를 태우고, 유미가 살아 있다면 그만할 나이의 아가씨들을 태운다. 처음에는 그냥 생각을 말자 했다.
  그러나 잊지 못하는 것이, 딸에게 한 마지막 약속이다.
  “유미야, 너 병 걸린 이유, 누구 때문인지 아빠가 꼭 밝힐게. 그 억울한 거 꼭 풀어줄게.”
  황상기 씨는 유미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회·인권단체들을 만났다. 아픈 유미를 보며 무작정 언론사에 전화를 걸던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유미의 사연에 관심을 갖는 단체들이 있었다. 반도체산업이 알려진 대로 청정산업이나 굴뚝 없는 공장이 아니라는 인식이 차츰 사회단체들에 생겨났다. 그렇게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7년 반도체 노동자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만들어진다.

황유미. 1985년생, 여성. 2003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3라인 디퓨전 공정 세척 업무, 1년 8개월간 근무. 2005년 6월 백혈병 발병,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 당시 23세
 


“제수씨, 요즘 회사에 백혈병 얘기가 돌고 있어요. 이게 회사에서 일하다가 걸릴 수도 있는 병이라고 하네요. 민웅이도 그 병이었잖아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는데 혹시 모르니까 한번 제수씨가 알아보세요.”
  남편 선배의 전화였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백혈병이 회사 때문에 걸렸다고? 애정은 어떤 대꾸도 못 했다.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살림이었다. 생각은커녕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버거웠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인생은 달라졌다. 다른 데 관심을 두기에는 삶이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남편 선배의 전화를 받은 후 자꾸 컴퓨터에 눈이 갔다. 보름 정도 지났을 때 애정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삼성반도체 백혈병’을 검색하니 ‘황유미’라는 사람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황유미라는 젊은 여자가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남편과 같은 회사, 같은 병이었다.
  그날 그녀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말도 안 돼. 삼성이 어떻게 우리한테 그럴 수 있겠어.’
  삼성은 그녀가 열아홉 살 때부터 일해온 회사였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삼성은 그녀에게 지금의 가족을 만들어준 울타리 같은 존재였다.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며 사기 치는 게 아닐까? 나 같은 사람 이용해서 돈이라도 뜯어내는 거 아니냐고.’
  애정은 복잡한 얼굴로 잠든 아이들을 내려다봤다. 아빠 얼굴을 모르는 두 아이 희준과 예인. 말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면서 희준이는 부쩍 아빠를 찾았다. 안 되겠다 싶어, 한 날은 희준이에게 아빠를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는 몹시 좋아했다. 희준이를 데리고 간 곳은 남편 유골이 있는 납골당이었다. 납골당에 도착한 아이는 엄마 눈치를 봤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납골당 곳곳을 뛰어다니다가 아이는 결국 물었다.
  “아빠한테는 언제 가요?”
  왜 죽었을까. 그저 이상하다 생각했다. 건강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그랬을까. 내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나냐고 그랬던 적이 있다. 왜 그리 빠르게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저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유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빠를 잃은 아이들이 적어도 아빠가 죽은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냥 만나만 보면 되잖아.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라고. 어린애가 아니야. 사실인지 아닌지,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닌지 이제 알 수 있는 어른이야.’
  아침이 오고, 그녀는 반올림에 전화를 걸었다.

황민웅. 1974년생, 남성. 1997년 6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1라인 백랩(연마) 및 5라인 CMP 설비 엔지니어, 7년 4개월간 근무.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 당시 32세
정애정. 35세, 여성.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5라인에서 11년간 근무. 고 황민웅의 아내

 

부산 서면역을 지나던 중이었다. 친구가 희진의 팔을 잡아 세웠다.
  “저기서 뭐 하네. 삼성? 불매운동 같은 거 하나 봐.”
  희진은 삼성이라는 말에 고개를 홱 돌렸다. 역사 앞에서 사람들이 서명을 받고 있었다. 등 뒤로 걸린 현수막에 삼성 로고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가자. 저런 건 서명을 해줘야 해.”
  희진은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발길은 조심스러웠다. 다리가 아팠다. 아픈 건 다리만이 아니었다. 눈은 침침하고 조금만 무리 해도 팔이 저리고 말을 더듬었다. 이게 다 삼성 때문이었다. 삼성 불매운동을 한다면 몇 번이라도 서명을 해줄 테다. 그녀의 작은 복수였다.
  4년을 일했다. ‘뼈 빠지게’라는 말이 어떤 건지 알게 될 만큼 일했다. 그리고 몸에 이상이 왔다. 다발 경화증.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병이었다. 워낙 희귀병이라 원인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스트레스가 주원인일 거라고만 했다. 삼성에서 일하면서 스트레스는 모자라지 않을 만큼 받았다. 돌이켜봐도 지긋지긋했다.
  하루에 적어도 500개 이상의 LCD 패널(LCD를 완성하기 전 형태)을 검사했다. 하루에 12시간을 부려 먹을 때도 많았다. 불량 하나에도 사람 잡아먹을 듯 굴었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해지면 재발이 된다고 했다. 재발은 장애 있는 몸으로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한 번 재발이 돼 오른쪽 시력을 잃었다. 끔직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내내 울었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조금도 주지 않는 회사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자신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을 받아주는 회사가 과연 있을까. ‘평생 벌이를 할 수 없는 걸까’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생각을 말아야지.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지. 헛웃음을 치는 희진에게 앞서 가판으로 간 친구가 되돌아왔다.
  “불매운동이 아닌데?”
  그제야 삼성 로고 옆에 걸린 현수막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삼성전자·반도체에 근무하다가 예상치 못한 질환을 겪으신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희진. 1984년생, 여성. 2002년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 입사, 4년 3개월간 LCD 패널 화질·색상 패턴 검사 업무. 2008년 다발 경화증 확진 

 

희수 씨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사람들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시사 프로그램을 봤다. 내 아내도 이 일과 관련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내는 삼성반도체에서 6년을 일했다. 그는 담당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
  “아내도 직업병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간호사는 말했다.
  “저 사람들은 백혈병인 혈액 쪽 암이고요, 이윤정 씨는 뇌 쪽이니 관계가 없어요.”
아내는 뇌암에 걸렸다. 의사는 시한부 1년을 선고했고, 아내는 머리를 열고 수술을 받았다. 삼성에서 일한 6년을 빼고는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아내였다. 삼성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거지? 멀어지는 간호사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정말 아무 상관이 없을까?

이윤정. 1980년생, 여성. 1997년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6년간 고온 테스트 업무. 2003년 퇴사. 2010년 뇌암(악성 뇌종양) 진단 

 

“아버지, 억울해요.”
  아들 진혁은 눈을 감기 전 말했다. 눈을 감은 아들의 이목구비가 반듯했다. 백혈병은 사람 못쓰게 만드는 병이라는데 얼굴 하나는 곱게 갔다.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는 잠든 것처럼 평온한 아이의 얼굴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아이는 정말 착했다. 속 썩인 일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없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래, 그리 수더분했으니 힘들다 내색도 없이 일만 하다 갔겠지. 12시간 잔업을 군말 없이 했다. 어차피 10시간을 일하나 12시간을 일하나 잠잘 시간밖에 없는 건 똑같다면서 돈이라도 더 벌겠다고 했다. 아들이 젊은 나이에 한 일이라고는 돈 버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니 ‘억울했다’.
  그도 억울했다. 건강했던 아들이다. 아들은 일요일이면 조기축구도 빠지지 않았다. 회사 봉사활동에도 매달 나가는 눈치였다. 운동 좋아하고 활동적이던 아이. 덩치도 좋고 건강만은 자신하던 아이. 다 키워놓은 아들이, 자신의 전부였던 아들이 사라졌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둘러앉아 떠들썩하던 밥상 풍경은 사라졌다. 그와 늙은 아내가 묵묵히 밥상을 지켰다. 착한 아들은 마지막까지 부모 걱정을 하다 갔다. 친구도 많고 활달한 아버지는 안심이 되지만, 어머니가 크게 속앓이를 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의 말은 틀렸다. 그는 괜찮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도 친구도 허무했다. 외아들 앞세운 부모가 무얼 위해 산다는 말인가.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는 이가 몽땅 빠져버렸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아들의 죽음 앞에 산재신청을 할 생각도 잠시 했다. 젊은이들이 흔히 걸리지 않는 병이었다. 전자회사에서 일을 했으니 약품사용을 안 했을 리 없었다. 그도 예전에 중공업에서 일했다. 냄새만 맡아도 토악질이 날 정도로 독한 물질들을 생산 현장에서 얼마나 빈번하게 쓰는지 그때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산재신청을 하지 않았다. 순순히 산재를 인정할 기업이 아니다. 숨넘어가는 아들에게서 사직서를 받아 간 무서운 곳이었다. 노부부에게 싸울 기력 따윈 없었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냥 이렇게 있는 거 다 쓸 때까지만 살자.”
  그러던 어느 날,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같이 젊은 나이에 병에 걸린 이들이 많다고 했다. 마침 삼성이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을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삼성SDI에 다니다가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이 고소의 이유였다. 삼성SDI에서 백혈병으로 죽은 사람이 없다고? 그럼 내 아들은? 삼성SDI는 아들이 다닌 회사였다. 그도 증인이 필요하면 나서주자 했다. 아들 죽인 회사가 더럽게 구는 꼴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박진혁. 1978년생, 남성. 2004년 삼성SDI 언양공장의 부품세척 하청업체인 (주)KT&G 입사.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2005년 사망. 당시 28세 

 

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처음 삼성을 찾았을 때 홍보그룹 관계자는 말했다. 겨우 6명이 백혈병에 걸렸을 뿐이라고. 몇 만 명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6명이면, 그것은 그저 우연이라고.6) 이제 황상기 씨는 말한다.
  “거짓말만 해요. 처음에는 나한테 여섯 명밖에 없다고 했어요. 자 이제 봐요, 몇 명인지. 또 이야기해보라 그래요,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그의 딸이 세상을 떠나고 4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렸다고 반올림에 제보를 한 이는 13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는 2011년 현재 50여 명이다. 제보되지 않은 죽음이 더 있을 것이다. 딸의 죽음을 산재라 의심했던 황상기 씨는 생각을 바꿨다.
  산재가 아니다.
  “정말 그들이 몰랐을까요?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무슨 약품을 사용했는지, 삼성은 몰랐을까요? 회사가 알았다면, 알고도 그대로 두었다면 이건 산재가 아니에요.”
  산재일 리가 없다.
  “살인이에요,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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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2014-08-3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제나 힘없고 착한 분들이 피해를 보는군요...안타깝네요...뭐라 말할수가 없습니다..작업장의 유해성을 밝혀낼 사람이 있을까요..? 안타깝네요..
 

  

이 책은 분노이고 절규입니다

오 주여, 저마다 고유한 죽음을 주소서.
사랑과 의미와 고난이 깃든
삶에서 나오는 그런 죽음을 주소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에 대해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지금껏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그들의 비참한 노동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는 저는 위로의 말조차 할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삶과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여기 이 책에 기록된 대로 자신의 생명을 소진하며 노동하는 분들의 희생 위에서 지속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생각하면, 저는 지금도 제가 이분들의 죽음의 기록 앞에서 말을 보태는 것이 염치없고 뻔뻔하기까지 한 일처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제가 책 앞머리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 말씀을 보태는 것은 여기 기록된 분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이 그대로 잊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 때문입니다.

생각하면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들 한국인은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한 자들을 수탈하고 희생시켜 그 과실을 남은 자들이 향유해왔습니다. 흔히 우리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경제성장이란 바로 그런 수탈의 다른 이름입니다. 변변한 자본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독재적 리더십에 의해 추진된 경제개발이란, 국가 폭력을 동원하여 가장 가난한 자들을 희생시켜 이루어낸 성과였던 것입니다.
  슬픈 것은 그렇게 약자를 희생시켜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살게 된 사람들이 그들이 누구 덕에 그런 호사를 누리는지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많은 희생자들이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다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희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들 덕에 우리가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경제성장을 말할 땐 가당찮게도 박정희 덕이라고 말하고 오늘날 한국경제의 성과를 말할 땐 삼성과 이건희를 입에 올립니다.
  하지만 이런 야만의 역사 속에서도 이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도덕적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탐욕과 무지의 어둠 속에서도 진리의 빛을 밝혀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40여 년 전 평화시장에서 한 줄기 불꽃으로 피어올랐던 전태일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비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때, 그는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시대의 어둠을 드러내고 우리를 부끄러운 거울 앞에 마주 세웠습니다. 그 한 사람의 희생이 그 이후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으니, 그는 우리의 스승이었습니다.
  어찌 전태일뿐이겠습니까? 제가 아직 푸르른 청춘이었을 때, 과자공장의 노동자들이 저처럼 하얀 손을 가진 청년들 앞에서 울먹이며 말하던 것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먹는 달콤한 사탕을 하루 종일 비닐 껍질로 포장하는 우리의 손끝에 핏물이 배는 것을 아느냐고.
  물론 지금 과자공장에서는 손끝에 핏물이 배도록 노동자들이 과자를 포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모든 공정은 이젠 우아하게 자동화되어 더 이상 나이 어린 노동자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인가요? 그리하여 기술이 발전하면 더 이상 누구를 희생시키지 않아도 좋으니 이제 우리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사탕의 달콤함에 취해도 되는 것인가요?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약자를 희생시켜 남은 자들이 그 이익을 나누어 갖는 약탈의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폭로합니다. 수십 년 전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시들어가던 소녀들과 영등포 제과공장에서 사탕을 싸던 처녀들은 이제 초일류기업이라 자랑하는 삼성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모두가 선망하는 바로 그곳에서 백혈병을 얻어 나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부자라고 떠벌리는 이건희는 자기를 위해 노동하다 병든 그들을 위해 쓸 돈은 없습니다. 아니 그들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재해 판정을 받는 것조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해 동안 단 한 건의 산업재해도 일어나지 않은 삼성전자는 그 덕분에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의 일부를 돌려받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건희만이 나쁜 사람이겠습니까? 박정희의 죄악을 애써 모른 척하면서 지금도 대를 이어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그 모든 악행의 공범이듯이, 지금 이 순간 삼성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애써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역시 살인을 방조하는 공범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알기 위해서는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이 책은 신음이고 절규입니다. 그리고 비열한 우리 사회를 되비추는 거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절규에 귀 막고 그 거울 앞에서 애써 눈감는다면, 바로 우리가 다음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앞에서 결단하고 가난한 이웃의 부름에 응답한다면, 지난날 끝내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던 것처럼 이제 경제의 영역에서 정의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가신 분들의 죽음은 ‘사랑과 의미와 고난이 깃든’ 그런 죽음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남은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김상봉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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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총수, 김용민 피디에 이어 정봉주 의원이 책을 냈다. 내년 총선을 앞둔 그가 나꼼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는 첫 책이다. 물론 그가 지금의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하기까지의 삶과 미래권력으로 떠오르기까지의 정치 활동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그가 바라보는 2012년 정치와 나꼼수의 미래는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와는 달리 사뭇 진지해보이기도 한다. 

알라딘에서는 북엠바고 코너를 통해 이번 책 <달려라 정봉주>의 한 꼭지를 단독 공개한다. 내용은 나꼼수의 실체적(?) 위력을 보여준 서울시장 선거를 전후한 이야기다. 오세훈 시장의 주민 투표부터 후보 단일화를 거쳐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을 나꼼수와 정봉주의 시선으로 기록했다. 즐겁게 읽고 깔대기는 이 책 예약구매에 들이대주시길 바란다.

 

<달려라 정종주> 예약구매 하기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11107_run
나는 꼼수다 응원 댓글 달기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11018_nacom 

 

나꼼수의 첫 소설, ‘오세훈과 빅 엿’
한편이 말하면 다른 한편이 답했다. 때론 그 반대로 이어지는 치열한 대화가 이어졌다. 나꼼수 청취자들을 사이에 두고.
  첫 번째, 나꼼수가 물었다. 당신의 대권욕심으로 인해 아이들 급식이 볼모가 되고 있다고. 그리고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걸고 하겠다는 것, 이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보수라고 하는 수구들이 총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는, 마치 대선이 미리 치러지고 있는 듯한 이 형국은 당신 뒤에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또 다른 기획자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오세훈은 답했다.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대권에 불출마 선언하겠다고. 우리는 웃었다. 걸려들었다고.
  나꼼수는 호외를 통해 다시 물었다. 아무도 당신의 대권도전에 관심이 없다고. 주민투표는 결국 투표함도 열지 못할 것이고 그래도 당신은 서울시장직을 그만두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재차 꼬드겼다. 또 걸려들었다. 오세훈 시장이 답했다. 주민투표에 서울시장직을 걸겠다고! 주민투표가 무산된 뒤 이제 나꼼수는 여유 있게 분석하며 지적했다. 당장 그만둘지 아니면 총선 뒤에 그만둘지 그것은 이미 당신의 손을 떠났으며 한나라당의 뜻일 거라고 지적했다. 또 꼬드긴 것이다. 그런데 또 걸려들었다. 나꼼수 예언 적중률 100%다. 
  오세훈은 이번에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당장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전셋집 걱정을 하며 홀연히 강북으로 떠난 것이다. 엄청난 나꼼수의 열혈 애청자였나보다. 물으면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답을 하니 말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들의 극구 만류도 단호히 뿌리치고. 이쯤 되면 한나라당의 X-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세훈과 정치적 상황을 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주민투표의 의미와 정치적 역학 관계를 분석한 것은 서울시민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다음으로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본게임이었다. 보수언론에서는 아침저녁으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소식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박영선 후보와 박원순 시민사회 후보는 언론에서 형식적으로만 보도할 뿐이었다. 두 후보에게 치고 들어올 네거티브 전략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정치적 성향을 분명히 하고 있는 나꼼수로서는 가장 적절한 역할이었다. 이른바 ‘박 대 박’(박원순 대 박영선) 아바타 토론이었다. 정봉주, 김용민이 박영선 아바타 역할을 맡았고 김어준, 주진우는 박원순 아바타였다. 방송의 의도는 분명했다. 두 후보 중 누가 진보진영의 후보가 되든지 예상되는 네거티브 요소를 모두 드러내 더 이상 이를 문제 삼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후보 보호 프로젝트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급적 후보의 발언을 자제하도록 제어하고 아바타들이 한없이 망가져야 한다는 전략이었다. 사전에 전략회의나 기획회의를 하지 않는 나꼼수다 보니 이런 의도가 후보들에게 잘 전달될 리 없었다. 
  ‘맑은 영혼의 소유자’ 정봉주가 나꼼수 1회부터 시작된 전체 방송 중 가장 많은 욕을 먹은 방송이었다. 역할에 가장 충실하기 위해 가장 나대고 많이 망가졌는데 다른 분들이 조금 적게 그러다보니 나 혼자 나댄 것으로 보인 것이다. 마치 청취자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닌가 오해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방송이 진행되면서 사고가 생겼다. 기획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은 탓인지 방송을 진행하다가 편집하겠다고 예고했는데 전달이 잘 안 된 것이다. 그 내용을 듣지 못한 채 그냥 방송이 진행된 대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 박영선 후보와 김어준 총수가 서로 감정이 격앙된 가운데 방송 녹음이 끝난 뒤 심한 말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좋은 의도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힘들게 말리긴 했지만 감정은 서로 격해졌고 방송 내용이 잘 정리되지 않으면 자칫 민주당에게 위협을 줄 수도 있는 방송이 될 처지였다. 민주당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꼼수 또한 곤란한 처지에 빠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방송의 편집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다가 민주당 측에서는 두 분이 감정이 격해져 말다툼을 하고 있는데 민주당원인 정봉주가 당을 변호하지 않았다는 오해까지 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선거 캠프 책임자들이 계속 전화하면서 우려를 전했다. 잘못하면 정봉주도 정치적으로 우스운 꼴이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2007년 대선 국면에서 함께 BBK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치적으로 우정을 쌓아왔던 박영선 의원과도 서먹한 관계가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진보 진영의 후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한 기획이 수포로 돌아갈 처지였다. 수십 번을 들어보면서 편집에 또 편집을 했다. 김용민 교수, 김 총수는 거의 3일 동안 한잠도 자지 못했다. 편집된 것을 내게 보내고는 의견을 주고받고 또 편집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그 만큼 꼼수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무척 민감한 사안이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난리가 났다. 업데이트 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파일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당시 녹음 내용도 이리저리 흘러나가면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3일 만에 파일이 올려졌다. 정말 환상적으로 균형 잡힌 최고의 편집이었다. 민주당 17대 의원을 함께 지냈던 의원들 중 박영선 캠프에 있는 분들에게 전화가 왔다. “정 의원, 수고했어”.

박원순, 유모차 부대로 경선 이기다
10월 3일 드디어 야권의 경선 날이었다. 젊은 층들의 관심을 끌 요량으로 오후 3시부터 나꼼수 팬 사인회를 열었지만 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온 팬들을 뒤로 한 채 혼자서 빠지기로 했다. 나에게는 팬들도 중요하지만 당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인회를 뒤로 한 채 투표장으로 향했다. 투표장 앞에서 박영선 후보를 만나 포옹을 했다. 꼼수 파일이 올라오고는 지난 며칠간 있었던 오해가 사라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서로 밝게 웃음을 교환했다. ‘나의 동지 박영선’.
  박원순 후보가 범야권 시민후보로 확정되면서 우리 나꼼수팀도 바빠졌다.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박원순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차이가 많이 났던 지지율이 점차 좁혀진다는 여론조사팀들의 보고가 있었다. 박원순 캠프는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 연합군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더 우왕좌왕이다. 나꼼수 내부에서도 말도 안 되는 네거티브를 갖고 조직적으로 유권자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것은 대단히 고단수 수법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으로 봐서는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직접 진두지휘하고 기획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소년 박원순이 13세 때 벌어졌던 망자입양의 문제, 학력의 문제, 대기업 협찬의 문제 등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말 그대로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얽히고설킨 삶속에서 나온 것들 아니었던가! 본인이 선택한 문제도 아닌 것을 검증이라며 걸고 들어오는 네거티브는 정말 말도 이해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보수 언론이 나팔을 불어대니 효과가 있었다.
  나경원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일단 바닥의 분위기가 너무 좋은데다 네거티브가 표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길어봐야 7일안에 치고 빠지기 작전으로 가야했는데 투표일을 너무 많이 남겨 놓고 네거티브를 걸었기 때문이다. 선거를 오래 치러 본 경험으로는 중반을 넘어가면 한나라당의 네거티브는 위력을 잃을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우리 진영이 이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나꼼수팀이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준비를 했다. 내곡동 대통령 사저문제는 오랜 기간 정보를 갖고 있었고 조금 더 보완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선거가 급해지면서 나꼼수에서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통 시사주간지 ‘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특종으로 내곡동 사저 매입 소식이 나꼼수를 시작으로 언론에 터지면서 한바탕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나경원 캠프가 당황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경원 캠프는 청와대 문제라고 꼬리를 자르려고 했다. 그러던 차에 또 다른 기회가 왔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나꼼수 출연을 자처했다. 기회였다. 느낌이 왔다. 기획회의라고 하면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꼼수 멤버들이 이번에는 이리 저리 다각도로 기획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당대 최고의 고수, 달변가 아닌가! 그런데 적진에 단기 필마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자칫 잘못하면 잘해도 본전일 것이라는 판단이 들기도 했다.  전략을 세웠다. 홍 대표는 한껏 띄워주고 화기애애하게 놀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 특히 나경원 후보에 대한 검증은 철저하면서도 제대로 깐다는 것이었다. 
  나경원 후보가 17대 국회의원 시절 내 사무실을 찾아와 아버지 학교에 대한 감사 건을 얘기했다는 내용을 물었다. 홍 대표는 당황하면서 그런 문제는 나경원 후보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김용민 피디가 파일 내용을 편집하고 있는데 이미 녹음하면서 말했던 내용들이 기사가 되어 돌기 시작했다.
  발칵 뒤집혔다. 별 결점이 없어 보이던 나경원 후보 캠프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녹음 다음날 나 후보 학교 관련 내용을 올리지 말라는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올릴 경우 허위사실 및 명예훼손을 문제 삼아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또 장기 편집에 들어갔다. 나는 이미 BBK 건으로 명예훼손 소송에 걸려있지 않은가. 이번에 걸려들면 꼼짝없이 가중처벌 될 게 뻔했다.
  나꼼수 팀들은 이번에는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더 신중하게 들여다봤다. 나꼼수 파일 사상 최초로 문제가 될 것 같은 부분을 무음 처리했다. 청취자들은 궁금했지만 그 무음 처리된 부분에 들어갔음직한 내용은 이미 언론에 다 나가고 난 다음이다. 이 내용이 나간 뒤 며칠 동안 언론의 이슈가 되면서 나 후보측의 상승세가 꺾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누나 전문 기자’ 주진우 특종
그러다 핵폭탄이 터졌다. 나경원 후보가 다녔던 피부과의 회원 가격이 1억 원이라는 사실이 나꼼수를 통해 밝혀졌다. 그야말로 여론을 확 뒤집어놓은 핵 폭탄급 사건이었다. 만일 부정하고 반박하면 더 공개할 자료를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시민들은 경악했다. 게다가 오세훈 전 시장까지도 같은 피부과에 다녔다는 사실에 충격은 더 컸다. 나도‘한 피부’하지만 그들 피부는 정말 깨끗하다. 
  선거는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는데 나 후보측에서 대응할 뚜렷한 카드가 나오질 않았다. 처음에 너무 화력을 집중한 탓이다. ‘완전히 무너지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선거 중간 중간에 유세장에 나타난 나꼼수 멤버들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온라인 나꼼수에서 나와 오프라인 유세장으로 와도 나꼼수의 역할은 지대했다.
  많은 사람들은 서울 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 측과 관련된 검증 내용들이 모두 나꼼수를 통해서 밝혀진 것을 두고 서울시장 선거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쌍방향 소통의 시대에, 게다가 개인 미디어 시대에 나꼼수가 정보를 독점했다는 사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일 제대로 된 언론이 살아있었다면, 또 그들이 본연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었으면 과연 나꼼수의 위상이 그렇게 대단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나꼼수가 서울 시장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한 것은 대한민국의 언론이 짓밟히고 언론의 자유가 죽어있다는 철저한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국민들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박원순 시장의 탄생으로 끝났고 나꼼수 멤버들은 나경원측에서 ‘1억 피부과 발언’을 문제 삼아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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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silly1 2011-11-20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장 가서 사다가 직접 사인을 받아야겠는데....

usedtoilet 2011-11-23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사인 받고 싶음..봉도사님 울 동네 내려오시면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뎅....
봉도사님 홧팅~~\

화니 2011-11-2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