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선왕조실록 열일곱 번째 책을 출간한 박시백 화백을 만났다. 실록이란 엄청난 기록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 자체도 대단하거니와 지난 10여 년 동안 꼼짝 않고 하나의 작업에 집중해왔다는 사실도 놀랍다. 스무 권 완간을 눈앞에(지난 세월에 비하면 정말 눈앞이다) 둔 지금, 그가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짚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의외로) 알라딘에서 진행하는 첫 인터뷰라 독자분들께서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을 하나둘 묻고 듣다 보니 분량이 만만치 않다. 다행인 건 박시백 화백이 이날 유독 즐겁고 신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이다. 일과를 물으며 시작한 이야기는 조선사 전체에 대한 그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작은 이야기도 서로의 생각이 오고가며 쌓이면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자, 그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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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알라딘과 인터뷰가 없었습니다. 처음인 데다 이후 완간 때까지는 놓아드려야 할 듯싶어 오늘 작정하고 이것저것 여쭤보겠습니다. 이렇게 한 권을 마치고 나면 한 달 정도 휴식을 갖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 시간을 잘 지내야 하는데, 정말 어이없이 한 달이 그냥 지나가곤 해요. 쉬면서 다음 권을 위해 워밍업을 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질 않아요. 책이 나오면 오랜만에 소주 한 잔 나누자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면 한 달이 어영부영 지나가거든요. 그래서 10권 때까지는 보름만 쉬고 바로 다음 권 작업에 들어가곤 했는데, 이젠 긴장이 풀어져서 쉬엄쉬엄 지내고 있어요.

1년에 두 권씩 꾸준히 써내려면 나름의 흐름이 있을 듯합니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매일 하는 일이 모여 한 권을 만드는 거니, 전체적인 과정을 말씀드려도 괜찮겠지요? 일단 실록 공부를 시작하는데, 보통 3개월 정도가 걸립니다. 특히 세종실록이나 영조실록은 재위기간도 길고 관련 기사도 많아서 실록 공부에 훨씬 많은 공을 들였어요. 어쨌든 이 기간 동안에는 다른 건 안 하고 실록에 푹 빠집니다. 간간히 참고도서도 보는데, 이건 1할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한 차례 공부를 마치면 정리한 자료로 요약본을 만들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뒤가 뒤섞여서 금방 읽은 내용도 잊어버리기 쉽거든요. 책 뒤에 붙은 연표보다 상세한 형태의 자료를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걸 보면서 큰 흐름을 잡고 구성을 시작하는데, 얼개가 나오면 콘티를 짜고, 다음에는 그림 작업이죠. 보통 펜선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 교정 작업을 하는데, 이후에 컬러링을 거치면 한 권이 나오는 거죠. 이렇게 6개월 과정을 마치면 잠시 쉴 틈을 얻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선생님께서는 한겨레에서 만평 작가로 활동하다 돌연 자리를 박차고 나와 조선왕조실록이란 큰 기획을 시작하셨는데요. 조선사에서 실록을 선택한 부분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데, 그 이전에 왜 조선을 택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우연한 일이라 매력이 없는 답변이 될 듯한데요. 만평이라는 게 시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 환경이라는 게 계속 반복돼왔잖아요. 국회에서 여야가 멱살 잡는 장면, 이런 게 1년에 몇 번씩 나오는데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란 말이죠. 설, 추석 같은 명절도 1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돌아오는데, 이런 소재도 놓치지 않고 다뤄줘야 하고요. 이걸 몇 년 반복하다 돌아보니 몇 년 더 했다가는 만화적 에너지가 고갈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그런 평가를 내렸다면, 한겨레에 남아 있는 일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아직 새로운 시작을 할 힘이 있을 때 살 길을 찾자는 생각이었어요. 만화가로서 아직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교양만화가 밥벌이 삼기에 괜찮겠다 싶었어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군요. 전형적인 성공담 분위기인데요. 말씀하신 우연한 일이란 건 뭐죠?

아, 그래서 뭘 가지고 할까 고민을 했죠. 애초에 조선사는 관심 영역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현대사 쪽이었죠. 그런데 그때 <왕과 비>라는 사극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제가 배경지식이 너무 없고 무식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도서관에서 관련된 책을 찾아보는데, 이게 재미난 거예요. 게다가 쓴 사람들마다 관점뿐 아니라 아예 팩트가 다른 거예요. 황당했죠. 아, 우연은 다음 이야기인데요. 때마침 국역 조선왕조실록 CD를 30만원인가 40만원인가, 하여튼 특가로 판다는 광고가 한겨레에 나온 거예요. 그때 아, 이거다 싶었죠. 읽어보기도 전에, 해보자고 마음을 먹은 거예요. 일단 하면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혹시 다른 사람이 먼저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했지만요.(웃음)

선생님의 40대를 통째로 앗아간(?) 조선왕조실록과의 만남이군요. 잠깐 곁다리 질문인데 만평 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만화가로서 애초에 극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때가 서른 즈음이었는데 몇 차례 응모했다가 떨어지고, 도서관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한겨레에서 만평 작가를 모집하는 거예요. 만평이라고는 대학 시절에 몇 번 그려본 거 말고는 경험이 없었는데, 그냥 하고 싶은 거예요. 밍기적거리다 마감 전날에야 밤을 새면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어이없게 합격이 되었어요.

어째 이야기가 다시 전형적인 성공담으로 넘어가는 듯한데요.(웃음)

아, 그게 아니고 아마 박재동 선생님 눈에 뭐가 씌인 게 분명해요. 저는 완전 아마추어였는데, 함께 경쟁했던 친구들은 경험도 있고 잘 했거든요. 박재동 선생님이 실수하신 거죠. (웃음) 아마 가능성을 좀더 보지 않았나 싶어요. 1년 정도 하다가 아무래도 스토리가 있는 게 잘 맞겠다 싶어서 다른 지면을 얻었죠. 호흡도 맞았고 호응도 괜찮았어요. 그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 대한 연습을 한 듯해요. 그런데 전 프로 근성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프로 근성이 부족하다니, 무슨 말씀이죠?

대부분 만화가들은 1판에서 문제가 있으면 2판에서 수정을 하곤 하는데, 저는 그걸 참 싫어했어요. 틀리지만 않으면 그냥 가는 거예요. 프로 근성이 없는 거죠. (웃음) 물론 마감을 앞두고는 엄청나게 집중해서 작업을 마무리하죠. 아마 조선왕조실록을 이렇게 공들여 작업했으면 훨씬 질 높은 작품이 나왔을 거예요. 아무래도 호흡이 다르니까요. 조선왕조실록은 큰 흐름 속에서 편하게 흘러가는 지점이 있거든요. 

 

 

그럼에도 실록을 읽어내는 과정은 육체노동에 가까울 듯합니다. 아직 세 권이 남아 있지만, 실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읽어본 사람으로서 실록의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죠. 조선뿐 아니라 동양에서의 역사기록에 대한 기본 입장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최대한 살리는 데 있거든요. 최고 권력자인 왕조차도 기록에 접근할 수 없었으니까요. 우선 이런 역사 정신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제도가 대단하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실록도 사람이 기록하는 거니까 사관이나 당파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죠. 그럼에도 실록에는 어전회의나 왕과 신하들 사이의 토론, 상소문 같은 게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요. 이런 자료에 기초해 진실에 다가설 여지가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선조실록은 광해군 집권 시기에 나왔으니 북인 계열의 입장이 반영되어 율곡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서 서술을 했겠죠. 그런데 율곡이 올린 만언소라든가 다른 대신들과 나눈 토론 내용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거든요. 이런 걸 함께 보면 당파의 농간을 넘어 그 인물 본연의 모습에 상당 수준 다가설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실록이 ‘기록’이라는 애초의 목적을 제대로 구현했기 때문에, 하나의 기록물 안에서 균형 잡힌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거군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요. 기록이 많은 주요 인물이야 이런 방법이 가능하지만 소소한 인물들은 당대 사관이 나쁜 놈이라고 해버리면 그렇게 평가가 고착되기 쉬운 면도 있거든요. 이런 부분에서는 제 책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여튼 이런 부분은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당시를 마치 현장중계 하듯이 생생하게 살려놓은 기록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오늘 있었던 사건을 9시 뉴스나 신문으로 보는데, 평범한 사건 기사들은 팩트에 충실하지만 내밀한 정책 결정 과정 같은 내용을 보면 왕왕 팩트 자체도 언론사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런 현실과 비교해보면 실록은 정말 있는 그대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고, 이런 면에서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럼 ‘의미와 가치’에서 조금 벗어나, 제대로 보는 방법이랄까요, 이런 맥락에서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제가 당대 사건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해석하고 논평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하나는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당대의 관점에서 평가해보는 일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동안의 역사 기록을 보면 어떤 권위 있는 평가가 한 번 내려지면 이것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대로 이어지거든요. 후세 역사가들은 다시 그것에 기초해서 이야기하고요. 예컨대 조광조는 현령과를 주장했는데 이게 추천제잖아요. 과거를 통해서 인재를 뽑는 게 아니라 덕망 있는 사람들을 추천받아 임용해야 한다는 거죠. 만약 정책으로 채택이 되었다면 이후에 그야말로 정치적 인사가 횡행할 수밖에 없는 내용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은 당대에는 별로 없었죠. 그러면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폄하해버릴 것인가 하면 그건 또 그렇지 않아서 당대에 열혈 사림 열혈 청년 들의 시대상의 요구라는 게 있다는 거죠. 훈구파들이 장악하고 있는 틀을 깰 여지가 있으니까요. 이것에 기초해서 나름 새 세상을 건설하자는 사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니 이런 면들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죠. 설명이 좀 됐는지 모르겠네요. 다시 정리하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당대의 가치, 현재의 눈으로 보는 가치를 잘 조화해서 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조광조 말씀하신 김에 인물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조조록에서 대략 천여 명의 인물이 주요하게 다뤄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단일 만화로는 최다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웃음)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안에서는 의리(義理)를 얘기하다가 밖에만 나오면 바로 계산기를 두드린단 말이죠. 다들 너무 정치적인 거예요.
 
그렇죠.

아마 독자들이 이런 면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 일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걸 떠올려보면 이런 인물들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데 있어서 주요 인물 같은 경우에는 지금 현실에서 비슷한 사람을 떠올려서 그려보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네, 그랬던 적이 있죠.

결국 인물들이 얼마나 다채롭고 재미있게 구현되느냐가 중요할 텐데요.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혹은 그간의 경험에서 체득한 나름의 방법론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평가를 하다 보면 저 자신도 표현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릴 때 이야기한국사라는 열 몇 권짜리 책이 있었는데, 야사 위주였지만 학교에서 그걸 보고 조선사에 대한 지식을 얻었어요. 그리고 철들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제 역사 지식을 담보해줬거든요. 제 책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이 몇 번씩 봤다는 이야기가 꽤 있는데 자칫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말씀하셨듯이 한 권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을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팩트에 근거해서 자기의견을 내게 하는 정도의 단역으로 처리가 되고, 주인공에 준하는 인물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지는 이때는 어떤 생각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아무래도 더 신경 써서 연구를 하게 되죠. 그런데 아까 정확하게 말씀하셨는데 제 책이 기본적으로 정치사이고 정치인들의 일을 다루다 보니 개별 사건이나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봐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당파의 정치적인 명운이나 이해관계, 이런 것들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이 사람이 어떤 때에 아주 멋있는 말을 하거나 훌륭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냥 멋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밑에 깔린 의도는 당연히 정치적이라고 봐야겠지요. 다만 정말 당리당략에 따라가는 사람이 있고 소수지만 정말 공익과 대의에 충직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니까 그런 사람들의 행동까지 그렇게 보는 건 지나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여기에서의 기준은 해석하고 쓰는 사람일 수밖에 없겠군요.

그런 면이 있죠. 이런 갈등 상황에 대해 항상 고민하지만 마땅한 답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그동안 알려진 일반적인 평, 이것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게 거의 유일한 원칙인 거 같아요. 황희나  유성룡에 대한 묘사는 이런 나름의 원칙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겠어요. 황희는 흔히 청렴하고 두루뭉술한 인물로 알려졌는데 실록에 묘사된 황희는 여느 관리 못지않게 부패하기도 했고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는 식의 사람이 아니라 자기 주장이 분명한 사람이더라고요. 유성룡은 흔히 이순신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순신이 실제 곤경에 처해 목숨까지 위협받을 때는 선조의 주장에 부화뇌동하여 이순신을 배신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분명한 기록들이 있는데 야사에 기반하거나 인물 본인의 기록(유성룡의 경우 <징비록>)에만 의존하여 엉뚱하게 소개되어 온 것이죠.

궁금했던 건데, 혹시 앞에 나온 1권에서 16권까지 종종 펼쳐보시나요?

10권까지는 그랬었는데 10권 이후에는 나온 것도 겨우 한 번 봐요. (웃음) 너무 보기 싫어요. 이제 17권도 일단 재쇄 찍을 때 손봐야 하니 어쨌든 한 번은 봐야겠지만 말이죠. 앉아서 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해서 며칠에 걸려 보죠. 그렇게 보면 다음에는 거의 안 보는 거죠.

제가 질문을 드린 까닭이, 1권이 이미 10년 전이잖아요. 10년 전의 박시백이라는 사람이 10년 전의 한국사회에서 조선 개국을 바라본 거란 말이죠. 10년이 지났잖아요. 박시백도 변했고 한국사회도 변했고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거나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은 듯한데요. 어쨌든 변화가 있는데 지금 보면 생각이 달라졌다거나, 다르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만 표현이나 유머코드랄지, 전개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는 있을 수도 있는데, 큰 줄기에 대한 평가는 여전한 것 같아요. 

 



이번 17권도 역시 재미있게 봤습니다. 많은 독자 분들이 17권이 나오기 전부터 걱정을 하셨는데요. 막바지로 오면서 실록은 부실해지고 영, 정조 시대처럼 드라마틱한 사건들이나, 역사의 결절점 같은 게 없다고 생각하신 듯합니다. 그런데 막상 17권을 보니 정순왕후를 전면에 배치하고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면서 걱정과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하신 듯합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네요.

정순대비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나 견해를 넘어서 다채롭게 여러 면을 보여주시려고 노력하신 것 같은데 이런 의구심들이 이미 있었는지 아니면 순조실록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는데, 실록을 읽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일단 제 만화의 장점이 이거라고 생각해요. 조선왕조실록을 조선 개국에서부터 죽 봐왔기 때문에 동일한 발언이든 동일한 사건이든 맥락 속에서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령 정순대비도 그 파트만 툭 떼어놓고 보면 해석이 많이 달라지겠지만 전사를 잘 보면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반대로 그 뒤까지도 잘 살펴보고 그리면 더 좋은데 제가 게을러서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웃음) 가령 정조실록을 그릴 때 순조까지 공부한 상태에서 그리면 이후의 일까지 고려하면서 더 균형 있게 잘 그려갈 수 있다는 거죠. 애초에 시작을 그렇게 해서 바꾸기가 쉽질 않네요.

기왕에 정조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몇 년 사이 18세기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중의 관심과 다양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동안에 영, 정조 시대에 대한 여러 가지 평이나 해석이 정조에 대한 판타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영, 정조시대에 실학 등 문예부흥기라고 표현될 만큼 큰 변혁이 일어났는데 이건 당시 전 세계적 흐름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거든요. 정조 시대에 정약용의 거중기 등 여러 기술 부분의 발전을 예로 들어 당시 신기술의 적극적인 수용 등 특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거란 생각이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봐요. 조선은 굉장히 고루한 시대였지만 백성을 이롭게 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열려 있었거든요. 가령 일본이나 중국에 가보면 수차를 이용해서 논농사를 짓더라,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을까를 항상 생각해요. 중국은 땅이 넓고 불편하니까 수레를 사용해요, 이걸 보고는 우리 산길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수레를 쓸 수 없을까 하는 이야기를 매년 논의하거든요. 어쨌든 임란 이후에 여러 기술이 도입되고 특히 청나라를 통한 서양문물들이 영, 정조 시기에 많이 들어오죠. 이런 분위기가 잘 유지되었다면 자의적인 자본주의적 발전이 가능했겠지만 결국에는 둘 다 그야말로 성리학에 기반한 유학군주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거든요. 그들이 설계했던 세상 역시 그러하고요. 그런데 이런 부분은 잘 안 보는 듯해요. 신비화된 면들이 많은 거죠. 후기에도 썼지만 영조 50년, 정조 20여 년을 합하면 거의 100년이거든요. 아무리 옛날이라도 이 정도 기간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영, 정조 이후 탄력을 받아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바로 세도정치로 들어서면서 결국 마지막으로 간 거죠.

순조가 왕으로서의 기본 업무는 성실하게 수행하면서도 그 외에 시대적 과제라든지 이런 것들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하면서 다음 페이지에 정조가 위엄 있게 나와서 시대적 과업은 무엇이고 이건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장면을 대비해서 보여주시잖아요. 조금 전에 언급을 하셨는데 순조 당대에 순조가 역사적으로 떠맡았어야 할 혹은 적극적으로 부응했어야 할 시대적 과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것을 얘기하려면 정조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정조의 그런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이었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과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큰 시대적 흐름에서 본다면 정조도 세계사적인 변화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속에서 조선의 가야 할 길을 살필 정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과정은 선조 때 이후 계속 반복된 거죠. 물론 사후적인 평가이고 우리는 조선이 망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 망하려면 그 당시 이렇게는 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 당시 사람들에게 비슷한 수준의 기준을 들이댄다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죠. 당대 상황을 감안하면 정조가 척신들에 의한 정치를 바로 잡고 사대부 정치를 복원하고자 한 건 정조의 경험으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고, 그가 이를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정조도 신하들을 장악하려고 하는데, 그게 100퍼센트 이루어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이여절 사건도 정조 때거든요. 유사한 사건들이 꽤 있어요. 조선이라는 사회가 갖는 성격상 사대부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백성들에 대해서는 말로는 소중하다고 하지만 사실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거죠.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크게 사건이 안 되면 대충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있었고 백성들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백성들은 나의 처지는 늘 이러니까 정말 죽을 정도가 아니면 대개 태평성대구나 하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 같아요, 팔자니까. 이런 면에서 보면 순조가 시대적인 큰 흐름까지 읽어내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조선사가 이미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은 계속 있었던 거라는 말이죠. 가령 영조 때 균역법을 설치했는데, 이게 당시로서는 해결책이지만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죠. 이미 토지 상당수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버렸고, 양민들의 수는 줄어들고, 그들에게 대부분의 세금이 떠맡겨진 상황에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내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이 안 될, 조선 중기에 이 정도에 와 있었다는 거예요. 조선 초처럼 다 국유화시키는 등의 혁명적인 조치가 아니고서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가 있었단 말이죠. 순조가 관리들의 기강을 잡고 백성들을 위해 애를 썼으면 백성들 삶이 조금은 나아졌겠지만 조선사 전체로 보면 크게 흐름이 뒤바뀔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조가 30대 후반, 상당히 젊은 나이에 왕위를 물려주잖아요. 그런데 아들 효명세자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죠. 순조 입장에서 엄청 짜증났을 것 같더라고요. 나름 맡은 바 일을 정리하고 편하게 지내볼까 했는데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순조는 또 주어진 상황에 순응해서 주어진 일을 소화하죠. 그런데 순조가 왜 일찍 왕위를 물려줬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한 듯합니다.

저도 책에 쓴 이상을 말하기가 어려운 게 중반 이후로 기록이 협소해요. 물론 여기에도 저의 해석은 들어가는 거죠. 협소하다는 것은 그만큼 적극적인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니까요. 왜냐하면 실록이라는 특성상 중요한 사안을 놓고 신하들한테 의견을 묻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다 기록이 되거든요. 달리 보면 김조순 일파의 정치가 이미 어느 정도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병(病)이 있는데, 사람이 자꾸 아프면 짜증나잖아요. (웃음) 이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 같고 또 한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이미 자신의 영역 자체가 협소하고 장인 김조순에 의한 시스템이 다 구축된 조건에서 정말 자기가 뚜렷하게 해야 하는. 왕으로서의 결심이나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만큼 왕으로서의 책무와 관련해서 본다면 좀 무책임한 거죠.

마지막 꼭지가 이양선의 출현이고 마지막 장면은 외세의 쓰나미가 몰려올 거라는 예상인데요. 텅 빈 들판과 바다에서 조선과 외세에 대한 공간적 뉘앙스를 느꼈습니다. 영정조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앞서 말씀해주셨는데요.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영정조 이후가 아니라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하강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영정조 시대를 조선의 전성기로 보지 않아요.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하강했다고 생각해요. 임진왜란 때 이미 망해서 새로운 틀을 찾았어야 했는데 성리학이라고 하는 기본 이념을 어떻게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계속 그 체제로 간 거잖아요. 조선후기에 성리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뿐인 제도의 의미만 남았고요. 이에 기초해서 세상을 어떻게 하겠다가 아니라 집권을 위한, 사대부의 계속적인 집권을 위한 이데올로기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백성을 얘기하지만 돌아서면 자기 땅을 넓히려고 하고 자기 당파 이익을 위해 애쓰고 이런 것 말고는 없었으니까요. 이후에 효종 같은 경우 무언가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당파들이 장악한 상황이었고요. 숙종도 돌파하려고 했지만 왕권을 강화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던 거죠. 전체적으로는 하강인데 중간에 살짝 기울기가 줄어드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하강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봐요. 순조 때 와서 갑자기 그렇게 된 건 아닌데, 다만 순조, 현종, 철종으로 이어지며 세도정치가 60여 년이나 지속되면서 하강을 가속화시킨 측면은 있겠죠. 순조는 무리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위해 노력했지만 대세의 하락은 어찌 못하니까 점점 하락한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17권에서 빠져나와서 정리하는 질문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최근 한국사회 분위기를 보면 뭔가 적극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요즘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는 조선 시기는 어느 왕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것 없어요.

다인 건가요? (웃음)

옛날에는 50년에 바뀌던 게 지금은 5년 만에 바뀌잖아요. 조선이 500년 가까이 지배를 했는데 사람들의 DNA 속에 스며들지 않은 듯해요. 요즘 사람들의 스타일을 보면 조선과는 거의 정반대거든요. 오히려 고구려 시대의 유목민을 보는 것 같잖아요. 도전적이고 역동적이고 겁이 없고요. 다이나믹 코리아라 얘기하는데 그런 에너지가 너무 신기한 거 같아요. 조선은 답답할 정도로 옛것을 고수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조선사회는 개혁하기가 쉽지 않은 게 새로운 문제가 생겨서 하나의 개혁방안이 나오고 자리 잡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요. 대동법만 해도 100년이 걸리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기본 이념 자체가 옛것은 소중한 것이다, 이거예요. 옛 조상들이 만든 법은 그때 충분히 논의해서 만든 훌륭한 법이고, 어떤 법이든 약간의 문제는 있을 수밖에 없다. 옛날사람들이라고 그걸 몰랐겠냐. 가급적이면 새로운 걸 만들지 말고 기존의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항상 힘을 얻어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계속 묻히는 거죠. 정말 심해지기 전에는 계속 옛 법대로 가다가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요만큼 고쳐요. 진짜. 너무 답답한 세상이죠. 아 짜증나. (웃음)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인물 가운데 애착이 간다고 할지 아니면 강렬하게 남아 있다고 할지 그런 인물이 있을까요. 물론 세종과 이순신에 대해서는 수차례 언급하셨지만요.

여러 사람 말해도 되겠죠? (웃음) 세종대왕과 이순신 같은 경우는 불세출의 인물이라 생각해요. 우선 세종은 왕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신기하고 당시 조선으로서 대단한 복이었다고 생각해요. 세계정치사에서 일국의 지도자로서 이 정도로 천재인 사람이 있을까요? 나 진짜 궁금해. (웃음) 너무너무 천재였다, 천재인데 부지런하기까지 하고, 마인드까지 좋아요. 나라를 근사하게 이끌고 백성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 하고, 너무너무 대단한 왕이에요. 이순신도 당대에 그가 보여준 애국적인 태도가 너무나 경이롭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애국하는 마음이 있어도 장수로서 빼어나지 못하면 말짱 꽝이잖아요. 그런데 장수로서도 너무 너무 빼어나잖아요. 너무너무 창의적인 거죠. 이순신도 그야말로 천재예요. 전쟁에 있어서 본능적으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아는, 그러면서도 가장 기본에 충실한, 그야말로 지피지기하고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는 능력. 이런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모법적인 빼어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궁금한 건 이 두 사람 빼고인데요.(웃음)

조선 초반의 주인공 이성계와 정도전인데요. 이성계 이야기를 많이 안했었는데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이성계는 이룩한 결과에 비해 저평가된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고려는 자주국가였는데 이성계가 하면서 완전 사대국가로 바뀌어버렸다는 통념들이 있잖아요. 이성계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해석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이미 고려 말에 신흥사대부들의 사고 자체가 성리학 중심이었거든요. 당시 성리학이 아무리 개혁적이었다손 치더라도 기본적으로 중국을 높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령 조선건국에 실패해서 정몽주가 집권했다한들 아마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성계는 무장이었음에도 최고의 인텔리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건국을 하잖아요. 지도력에 있어서 굉장히 독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유형의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잘하는 건 자기가 밀고 나가고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은 정도전 같은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맡기고, 그러면서도 큰 줄기는 자기가 잡고 있고. 여러 면에서 매력적인 인물 같아요. 그리고 정도전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역시 인물 이야기가 재미나네요. 혹시 나중에 ‘평전’ 같은 걸 써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까요?

중종 때 정광필이란 사람인데, 나중에 평전 같은 걸 써보고 싶은 인물이에요. 재상의 역할에 가장 합당하고 충실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어요. 보통 명재상이라면 황희를 얘기하는데, 물론 기본 재능이 뛰어나지만 세종시대라고 하는 너무나 좋은 시대를 만난 데다, 이런 저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전폭적인 신임이라고 하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거든요. 정광필은 중종이라는 아주 독특한 왕을 만나서 한번도 제 뜻을 펴지 못한 사람인데요. 만약 중종이 제대로 된 나라의 설계도를 가지고 정광필을 알아봤다면 굉장히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광필은 조광조의 비현실적인 면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조광조로 대표되는 신진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거든요. 또 중종이 조광조를 제거할 때는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중에 남곤이 집권했을 때는 그의 독재와 전횡에 대해서 제동을 걸고요. 어찌 보면 왕의 최종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재상일 거예요. 그러니까 맞는 건 맞다, 아닌 건 아니다 말하는 게 중요한 덕목인데, 이런 면에서 자기가 위험하더라도 현실적이고 옳은 판단을 내리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그야말로 재상으로서의 덕목을 다 갖춘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쉽게도 중종이 좀 모자라서 제대로 활용을 못하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만화이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역사교양서기도 한데요. 그래서 선생님을 역사필자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조선사 이외에 다른 시대랄지 혹은 다른 지역이나 나라의 역사랄지 관심을 갖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젊었으면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았을 것 같은데 이거 끝나면 나이가 50줄이고 하기 싫을 것 같아서, 하게 될지 안하게 되지 모르겠어요. 관심이야 두루 있죠. 현대사, 중국사도 재미있고 유럽사도 재미있고요. 하지만 아마 대부분 거의 안하지 않겠나, 현재의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역사에서 빨리 벗어나서 사람들이 알아봐주건 아니건 간에 본연의 만화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만화 얘기가 나와서 질문을 드리는데 요새 웹툰 많이 보잖아요. 많은 직장인들의 출근 후 일상이 되었는데요. 즐겨보시는 혹은 찾아보시는 요즘의 만화가 있는지.

몇 년 전까지 제가 정말 잘 보는 편이었거든요. 예전에 <와탕카>, <애욕전선 이상없다> 등 몇몇 만화는 제법 챙겨봤고요. 그런데 <이끼> 정도까지는 보고 이후에는 별로 안 본 것 같아요. 그것 참 이상해요. 갑자기 안 보기 시작하니 안 봐지던데. 만화도 그래요. 제가 만화책을 워낙 좋아해서 집에 책도 많은데 예전에 제가 정말 좋아하던 책이 몇 권 있어요. 1~2년에 한 번씩 반복해서 보곤 했는데 이것도 어느 순간 안 보기 시작하니 안 보게 되더라고요. 최근에 재미있게 본 것은 <강철의 연금술사>인데 뒷부분이 약간 약하긴 하지만 재미있게 봤어요. 가족들은 요즘 <도로헤도로>에 빠져 있어요. 저도 봐야 하는데 보면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 같아 일단 안보고 있어요.

 

그럼 요즘 만화 말고 지금까지 보신 만화 중에 인상 깊은 작품은 뭐가 있을까요?

우리나라 만화로는 고우영 선생님 작품 두루 다 좋아해요, 모든 게 다 재미있어요. 워낙 빼어나시니까. <삼국지>, <십팔사략>, 옛날 꼬맹이 때 나를 매료시켰던 <대야망>, 그 다음에 이두호 선생님의 <임꺽정>인데, 일단 그림이 너무너무 멋있어요. 그 외에도 허영만 선생님 작품, 이희재 선생님 작품 등등 많습니다. 일본 만화로서는 <기생수>인데요. 참 좋아해요. 한 열 번은 본 거 같아요. 그야말로 1년에 한 번씩 보던 건데 최근 3년 동안은 안 보고 있습니다. 제 책 완간하면 봐야지요. (웃음)

최근 몇 년 '교양만화‘라는 장르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요. 휴머니스트 출판사도 교양만화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려 노력하는 출판사고요. 올 초에 <기획회의>에서도 이런 만화에 대해 평가하고 다룬 기획 기사가 있었는데요. 평가는 엇갈리는 듯합니다. 박시백, 김태권 등의 대표적인 교양만화 작가들이 있는데, 이걸 일종의 흐름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몇몇 작가들의 돌출된 작품으로 보는 사람도 있거든요. 선생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만화라는 매체가 일단 학생들에게 친숙하죠. 그래서 만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재가공해서 표현할 수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교양만화라는 것은 한 장르로 자리를 잡고 커나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다만 문제는 그동안에 학습만화라는 이름으로 폄하되면서 문제가 됐던 게 글을 쓴 사람은 만화적 센스가 없고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내용에 대한 해석능력이 좀 부족하고 이러면서 제자리를 못 잡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만화가들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하고, 예전같이 글 그림 개별 작가 체제로 간다고 해도 아직은 분화가 미흡하지만 지식을 만화식으로 가공해서 콘텐츠화할 수 있는 스토리 작가와 이에 맞춰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가 결합이 되면 확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이 워낙 많으니까 출판사들이 잘 기획해서 멍석을 깔아주면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올 거예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고정 독자, 대기 독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꾸준히 시리즈를 쌓아오면서 그런 독자들이 늘고 있고요. 많은 독자들이 1권부터 16권까지 수차례 보거나 다 읽은 독자들이거든요. 그런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과 아직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한, 이번 17권에서 박시백의 조조록을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릴게요.

일단 그동안 제 책을 보아온 독자들한테는 너무너무 고맙죠. 이게 한두 권짜리가 아니고 그야말로 장편인데 독자들의 호응이 없었다면 출판사도 힘이 빠졌을 테고 저도 힘이 빠졌을 테고 지금까지 못 왔을 가능성이 높잖아요. 그분들이 책을 사주고 평을 해주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에 너무 고맙고 진짜 지금까지 오게 한 동력이죠. 하여간 마지막까지 그분들의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 이런 정도밖에 할 말이 없네요. 새로운 독자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고 싶어요. 가끔 평들을 보면 그림이 되게 마음에 안 들어서 책을 안 본다는 말이 있는데,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림이 많이 떨어지죠, 떨어져도 열심히 그리면 되는데 아시다시피 1년에 두 권이라는 기한이 있어서 쉽질 않습니다. 출판사가 기다려줄 수 있어서 1년에 한 권씩 냈으면 좀 명품이 나오지 않았겠나 싶기도 해요. 내용도 더 충실하고 공부도 더 알차게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림도 아무래도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면 꽤 괜찮은 시리즈가 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현실이 그렇지가 않으니까 1년에 최소한 2권은 그려야 한다는 암묵적이 계획이 있거든요. 거기에 맞추다보니까 그림에 소홀하거나 그런 점은 있어요. 그런 면을 감안하면 만화로서는 부족함이 많은 만화지만 조선사에 대한 역사서, 소개서, 조선정치사를 다룬 책으로는 꽤 괜찮은 책이다, 라고 건방지지만 자부합니다. 역사서라고 하는 것은 저자의 평이나 주관적인 해석에 상당히 좌우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는데 문제는 그것이 얼마만큼 자료에 기초해서 설득력과 근거를 갖는가 하는 게 중요한 평가 기준인데요. 물론 제 책도 오류나 과도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하여튼 많이 노력한, 그리고 실록의 기록에 상당히 접근한 꽤 쓸 만한 역사책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아. 건방지다고 해야 하나. (웃음)

마지막으로, 후속권 작업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18권이 헌종, 철종. 19, 20권이 고종인데 19권은 흥선대원군에 집중해서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달라질 수도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은 원래 철종실록으로 끝나잖아요. 고종실록을 들여다보니까 역시 편집주간에 해당하는 자가 일본인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기에 무리라는 측면이 있긴 있어요. 그런데 어차피 그 이전에도 사실 그런 집권당파적 시각에 기초해서 내용이 걸러진 왕조들이 꽤 있기 때문에, 일본인이 개입했다고 해도 잘 읽어낸다면 역시 의미 있는 기록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조선인 사관들이 주로 기록을 했을 테고 다만 편집자들에 의해서 자신들이 곤란한 부분들은 빼거나 일부 고쳐 쓰거나 했을 수는 있겠죠. 그럼에도 다른 참고자료들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가장 유용한 텍스트가 아니겠나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문제는 조선왕조실록이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끝난 이후로는 의미가 없다고 봐요. 그래서 이걸 1905년으로 볼지 1910년으로 볼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이 더 필요할 듯해요. 어쨌든 조선이 망하는 것으로 20권이 끝난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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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지난 6월 9일, 17권 순조실록이 출간되자마자 홍대 근처 정글북까페에서 진행했다. 옛날 얘기를 조금 덧붙이자면, 박시백 화백은 내가 처음 만든 책에 일러스트 작업을 해준 오랜 인연이다. 편집자와 저자에서 MD와 저자로 바뀐 상황은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따뜻하고 여유로운 웃음으로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다. 인터뷰 정리에 한 달이 걸렸다. 게으름 탓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흐름에 대한 확인도 한몫했다. 혹시라도 사실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전적으로 내 탓이다.

지루한 장마에 지루한 인터뷰가 아니길 기대하며, 반가운 소식 하나 전해드린다. 지금까지 한 번도 독자와의 만남을 갖지 않은 박시백 화백이 장마 끝 맥주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긴 인터뷰를 모두 읽으신 분이라면 함께하고 싶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 주소에 댓글로 신청할 수 있다. http://blog.aladin.co.kr/culture/4919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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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키드 2011-07-15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교양만화를 좋아하는 1인입니다. 만화가 상상력을 제한한다거나 책읽기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더욱 의심하게 되는 인터뷰네요! 지난한 작업 과정에, 지식+흥미가 넘치는 대단한 결과물에 박수를 보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5 13:0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만화키드의 자세 계속 지켜가시길...

마노아 2011-07-15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다음 권도 차분하게 기다릴게요.
아, 그런데 마지막 초록색 글은 '헌종'을 '현종'이라고 쓰셨네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5 16:55   좋아요 0 | URL
앗, 정순헌철고순인데... 고맙습니다. 무리한 시각에 올리다 보니 실수가... 나머지 세 권은 이전 권보다 조금씩 빠르게 나올 예정이랍니다.

pena 2011-07-15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ㅁ@~!박시백님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우면서도 교양만화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신듯~!!!!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5 17:34   좋아요 0 | URL
더욱 새로운 모습은 만나고 싶다면 맥주파티에 신청을~~ ^^

외국소설/예술MD 2011-07-1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생수가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5 17:3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본문에는 빠졌지만, 저 얘기 나올 때, 저도 애장판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모든 판본을 다 갖고 계시다고... OTL...

시끌북스 2011-07-22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MD님도 그럼 이와아키 하토시 외에도 미노루 후루야의 만화들도 좋아하시나요? 미노루 후루야도 이와아키 하토시만큼이나, 정신분석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사고를 적나라하게 펼쳐준다는 데 매력있더라구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7-30 09:02   좋아요 0 | URL
네, <심해어> 무척 재미나게 봤습니다. 열심히 찾아보는 편은 아닌데, 주변에서 추천하면 읽어보는 편입니다. 미노루 후루야는 북디자이너 민진기 실장 덕에 알게 된 작가. ^^

ahlkan 2011-08-25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만화 정말 대단합니다! 이책으로 역사공부했으면 싶구요. 그리고
이 책보면 우리나라가 지금 왜 이모냥인가 알수잇습니다. 뭐 전통이라 이러는갑다 싶죠 ㅋㅋㅋ
대작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8-26 11:38   좋아요 0 | URL
동의, 동감, 공감 등등...

멜헝 2012-01-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만화는 역사를 정말 좋아하는 제게 역사교과서와 같은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책을 읽고 그다음 다른 책들과 참고자료를 접해가며 제머리에 정리해요ㅎㅎ
사실 1905년 또는 1910년으로 끝낸다 하셨는데 너무 아쉽네요
순종 승하까지 하길 기대했었는데

정윤서 2016-01-2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만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경기도 교육청에서 실행하는 행사의 교재에 위의 그림을 사용해도 될까요?
 

   
 

한때는 과학자였으나 지금은 영화를 만드는 랜디 올슨은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유쾌한 이야기'다. 마흔 즈음 인생의 경로를 과감하게 바꾼 그의 인생역정도 그렇지만, 그가 만든 영화들도 모두 비범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며,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과학계와 영화판을 넘나드는 숱한 예제들로 때론 과학자들을 우스꽝스럽게 조롱하고, 때론 신랄하게 비꼬면서도, 과학에 대한 더없이 깊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지적인 유머와 가슴을 울리는 통찰력이 담뿍 담긴 이 책은 과학을 즐기는 법을 가츠려주는 '내밀한 과학애정고백서'라고나 할까? 이 책은 손에 쥔 당신은 정말 운이 좋다!(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Don be such a scientist!" 이 책의 원제다. 어떤 과학자가 되지 말고 다른 어떤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일까. 하버드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 밑에서 배우고 뉴햄프셔대학에서 해양생물학 교수로 일하다 지금은 할리우드에 진출한 독특한 이력의 '과학자' 랜디 올슨. 그는 머리로만 소통하는 과학자들의 잘못과 한계를 지적하며 머리, 가슴, 복부 그리고 성기에 이르는 네 개의 기관, 즉 논리, 감정, 유머, 본능을 연속하여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머릿속에 든 정리된 지식은 고여 있는 물과 같기에, 이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흐르는 물로 바꿔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 4월 <말문 트인 과학자>란 제목으로 한국에 소개된 그의 책이 슬슬 잊히는 게 두려워(황우석 사건을 생각하면 정말 두렵다) 출판사의 도움으로 저자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여전히 과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랜디 올슨, 그의 말대로라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함은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라다. 

 

*알라딘 단독 이벤트로 해당 기간 동안 <말문 트인 과학자>를 구매하신 분 가운데 다섯 분께 <얼간이들의 무리> DVD를 드립니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10712_jung 

*인터뷰 진행과 번역은 출판사 정은문고에서 도움주셨습니다. 바쁜 와중에 애써주신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과, 한국어판 책을 든 귀여운 사진을 보내준 랜디 올슨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2008년부터 미국 각지의 대학을 돌며 <얼간이들의 무리(Flock of Dodos)>, <시즐(Sizzle)>의 상영과 과학 토크쇼를 결합한 ‘The sizzling Dodos College Tour’를 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과학 토크 투어’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며, 주 목표는 무엇인가요?

'과학 토크 투어'는 나의 두 번째 장편영화 <시즐>이 개봉된 2008년부터 시작했고, 지금까지 우리는 100군데도 넘는 대학과 박물관, 그리고 과학 기관들을 방문했어요. 이 행사의 주 목표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진중한 토론을 할 수 있는 2~3일 간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죠.
  방문 첫째 날 밤에는 주로 <얼간이들의 무리>를 상영한 후, <말문 트인 과학자>의 내용에 대한 강연과 사인회를 갖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 밤에 <시즐>을 상영하고, 매 상영회 이후엔 공개토론을 진행하죠. 멤버들은 나를 포함한 2~3명의 교수들로 구성되는데, 주로 커뮤니케이션, 저널리즘, 영화, 진화론(<얼간이들의 무리> 테마에 맞게), 기후학(<시즐> 테마에 맞게) 전공자들이에요. 낮에는 점심식사와 함께 학생들과 교수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토론들이 진행되고요. 참으로 흥미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죠! 



‘과학 토크 투어’에서 만난 대학생(예비 과학도)들의 반응이 궁금하네요. 그들은 당신 얘기의 어떤 점에 반응을 보이나요? 혹시 그들도 나이 든 교수님들처럼 ‘재미있는 과학’에 반발하지는 않나요?

가장 큰 반응은 주로 캠퍼스를 떠나고 난 이후에 발생하죠.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사람들은 내가 떠난 후에도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토론을 이어간다고 해요. 학생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하고 탐구가치가 높은 주제인가'를 전달하려는 의지를 갖춘 교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된 달까. 대부분의 캠퍼스에선 우리가 당겨 놓은 작은 불씨는 우리가 재차 방문할 때까지 활활 타오르는데, 동 캐롤라이나 대학, 윌리엄과 매리, 그리고 오는 9월 다시 방문하게 될 코넬 대학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는 다시 방문하는 수많은 곳에서 예전에 멈췄던 토론에 바로 시동이 걸리는 현상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당신이 이야기한, 과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힌 인물들로 꼽는 스티븐 제이 굴드나 칼 세이건은 사실 엄청난 사람들이죠. 우리가 그들을 모범(혹은 역할모델)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특히 스티븐 제이 굴드는 휴머니티를 기가 막히게 활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에요. 책에서 '자극과 충족'의 원리에 대해 언급했는데, 충족 부분은 당연히 과학에 대한 내용이겠지만, 자극 부분은 휴머니티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굴드는 역사, 예술, 오페라, 건축, 정치 등 워낙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과학의 내용과 비유할 수 있는 휴머니티적 요소를 귀신처럼 찾아낸 과학자입니다. 그의 저명한 에세이 가운데 하나에서 안정화 도태의 역학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야구선수의 타율과 비교한 적이 있어요.(이는 내가 음양의 조화를 평생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또한 상대성장 등 어려운 주제를 다룰 때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초창기의 미키 마우스가 점점 더 귀여운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간 것과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죠. 결국 휴머니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굴드를 저명한 과학자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도들은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휴머니티(교양) 과목들에 대해 불평하면 안 됩니다. 그 지식은 훗날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정말 빛을 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통 방식의 증가가 당신이 기대한 것처럼 과학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 또한 그런 미디어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때는 다소 적응 속도가 느렸지만, 이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때는 훨씬 더 빨리 적응했어요. 문제는 그 미디어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달린 거죠.
  책에서 블로그에 올라오는 온갖 부정적인 발언들을 꼬집은 걸 기억하나요? 물론 과학은 부정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필터를 거치지 않는 부정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일쑤거든요. 나는 이것을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릅니다.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요소가 아닐 수 없죠. 대중은 항상 긍정의 편에 서지만, 필터를 거치지 않는 긍정이 때론 비판적 사고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균형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혹시 당신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몇 년 전 ‘황우석 사건’이 있었습니다. 과학자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품었다 그것이 실망으로 돌아온 사건이었죠. 과학자의 윤리를 얘기하기 이전에, 과학자가 대중과 소통하고자 할 때 이런 위험성은 늘 존재할 수 있지 않나요? 

물론 황우석 박사 사건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과학계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으니까요. 나는 대중에게 과학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홍보하는 것은 적극 찬성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평가 자체가 미디어 중심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많은 대학과 연구소 들이 점점 더 미디어에 주목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것을 통해 대중과 의사소통 하는 한편, 연구기금도 마련하니까요. 그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큰 성공을 만들려 하고, 그것을 성공의 잣대로 삼는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죠. 대중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과학의 위한 연구'보다는 '대중이 관심 있는 연구'에만 치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곡물을 병들게 하는 해충에 대한 연구보다는 별 의미 없는 '인간이 키스를 하는 이유' 같은 공허한 연구에 더 치중할 수 있거든요.
  대중은 전문적인 과학자가 아니기에 결코 과학적 연구에 대한 의제를 지정할 수 없어요. 그것은 당연히 과학자들의 몫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중과 의사소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성공한’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당신 글을 읽다 보면 여전히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이 읽혀요. 당신에게 ‘과학자’라는 이력은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기 위해서 과학은 너무나도 중요한 학문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알지도 못하는 병을 앓다 죽었어요. 그리곤 이를 그저 운명이라 받아들였죠.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요? 병을 얻을 땐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또한 이유가 있습니다. 산이 그냥 뜨거운 용암을 분출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질학의 원리를 대입하면, 예측 가능한 현상입니다.
  세상만사가 결코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게 아니란 사실을 통해, 자연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감소하고 그만큼 우리의 삶도 평온해 질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과학이 있으며, 때문에 언제나 순수한 형태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의 지지보다는 비과학자들의 지지가 훨씬 더 필요하며, 그 지지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말문 트인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랜디 올슨 트위터 @RandyO_Head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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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최재천, 김용택, 박원순 등등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 열다섯 명의 서재를 살펴본 기획 <지식인의 서재>, 알라딘에서는 책 속에 갇힌 서재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아 직접 그들의 서재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첫 만남은 헤이리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 주인장 이안수. 가장 덜 알려졌기에 가장 궁금한 까닭에, 이분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출판사를 졸랐다. 자유로를 달려 도착한 모티프원은 지붕 아래 둥지를 튼 새들의 지저귐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걸어나오시는 이분, 하얀 수염을 기른 모습이 <킬빌>의 파이메이 아닌가. 오랜 기자 생활로 단련된 능숙한 인터뷰 솜씨는 인터뷰어의 기를 살짝 누르며 시작하는데...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알라딘 인문MD 박태근)

[문화예술인 이안수 인터뷰] 

이안수(이하 이) : MD가 무슨 뜻인가요?

박태근(이하 박) : (앗, 첫 질문도 시작하기 전에 선수를 뺐겼다.) 아, 그게 머천다이저의 약자인데, 책을 고르고 알리는 일을 합니다.

이 : 그럼 알라딘 MD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네요. 책이란 알곡을 씹어 반소화시켜서 전해주는 일이잖아요.

박 : (아, 이런 칭찬으로 시작을, 분위기는 이미 넘어갔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라고 하셨는데 시작부터 짐을 안겨주시네요. (웃음) 이번 책 <지식인의 서재>에는 열다섯 분의 문화인이 나오는데 사실 제 세대에서는 선생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합니다. 오랜 기간 잡지기자로 일하셨고, 사진과 솟대 작업 등 예술가로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그리고 이제는 이곳 헤이리에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을 만들어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간 삶의 여정을 소략하게 전해주신다면요.

이 : 대학을 졸업하고 30여 년을 여행하는 삶으로 지냈어요. 제가 좋아하는, 욕망하는 일을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보통의 직장 생활을 할 것인가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전자였어요. 그래서 택한 일이 여행 기자였어요. <월간 여행>이란 잡지에서 일을 시작했죠. 물론 한국의 잡지 시장이 불안정하고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저도 그 파고 속에서 <뮤직 라이프>, <디자인 저널> 등의 잡지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주로 여행을 비롯해 문화 분야에서 일을 해왔죠. 전 길 위에서 지내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월간 여행>에서 취재할 때는 보름 정도를 바깥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간첩 신고를 받은 적도 있거든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그저 즐거움이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옮기고 나서도 늘 떠나는 삶을 이어왔죠. 한 마디로 정리하면 ‘길 위의 방랑자’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 과정에서 제 아내가 빈 자리를 많이 채워줬죠.

박 : 경제적으로 많이 힘드셨을 듯한데요.

이 : 네, 그래서 애초에 결혼을 할 때 ‘나는 돈을 모을 자신이 없다’고 선언을 했죠. 저축을 하기 위해서 오늘을 산다면, 그건 굉장히 불안한 삶이에요. 언제든 사라져버릴 수 있거든요. 돈으로 미래를 담보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내 몸 속에 저축을 하면 그건 영속적이죠. 그래서 문화적 경험, 연극을 본다거나 책을 사서 읽는다는 건 피 속에 흔적을 남기는 거예요. 제 삶의 궤적도 이런 맥락에서 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을 떠돌다 이곳에 와서 드디어 헤이리에 자리를 잡게 된 겁니다. 

박 : 인터뷰를 진행하면 늘 우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데요. 오늘의 첫 번째 우문은 이렇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 많은 곳을 둘러보셨는데,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이 : 정말 우문인데요. (웃음) 인터뷰를 하면 99%는 그런 질문을 해요.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든지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을 꼭 묻거든요. 저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고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어요. 그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으로 내일을 추구하며 사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나를 감동시킨 ‘사람’이 있는 곳이에요. 아름다운 기억, 장소,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곳 말이죠.

박 : 이곳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과 선생님께서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연이 되고자 기다리는 거 아닐까 싶네요. 지금 선생님과 제가 마주앉은 이 공간의 이름이 ‘Library 0'인데요. 숫자 0인지 알파벳 O인지 모르겠지만, 1만 권이 넘는 책이 가득한 이곳에 이런 이름을 붙인 까닭은 무엇인가요.

이 : 그렇게 크지 않은 집이지만 공간마다 이름을 붙였어요. 말씀처럼 제로로 읽어도 되고 알파벳 O로 읽어도 돼요. 무엇이든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비우는 거 같아요. 책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삶을 감각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의 주관이나 껍질을 내려놓아야 하거든요. 단단한 껍질 속에 나를 가둬 두고는, 어떤 책을 읽어도 몸으로 깨달을 수 없어요. 자기를 비어 있음으로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다른 이에게 귀 기울이기는 데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독서를 스펙을 위한 공부로 생각한다면 다르겠지만 말이죠.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죠. 결국 어떤 태도로 상대를 대하고 만나느냐 하는 문제거든요. 정리하면 제로로 나를 비운 상태에서 책, 사람, 자연을 만나겠다는 결심인 거죠.  

 

 

박 : 그런 깨달음 역시 책과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얻은 건가요? 아니면 오래 전부터 품고 계신 삶의 지향 같은 걸까요.

이 :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죠. 저는 창고를 만들고부터 사람에게 재앙이 닥쳤다고 생각해요. 어떤 동물도 지금 먹을 것 외에는 음식을 쌓아두고 먹지 않거든요.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도 한 번 사냥을 해서 배를 채우고 나면 곁에 얼룩말이 와서 어슬렁거려도 절대 잡아먹지 않거든요. 잡아뒀다가 다음에 먹어야지, 이런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의 창고는 있음에도 무한정 쌓아놓기를 원한다는 거죠. 이게 불행의 씨앗이에요. 저는 여행을 하면서 비움의 철학을 몸으로 깨달았어요.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종이 한 장도 무겁거든요. 그래서 선수들은 지도책도 지나온 곳은 찢어서 버립니다. 말 그대로 종이 한 장도 무거운 게 우리 인생이라는 거예요.

박 : 책 제목이 <지식인의 서재>입니다. 이런 책은 대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게 마련인데요. 아마 이 책의 주인공들은 서재를 어떻게 꾸미고 나누고 채우는지 궁금해 하실 듯합니다.

이 : 아마 분류는 서재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부담으로 느낄 문제일 겁니다. 저도 애초에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해보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어떤 책이 필요할 때 제자리를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질서를 염두에 둔 거죠. 철학, 역사, 예술, 여행, 요리 등 큰 분류로 구상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서재는 저만의 공간이 아니고 가족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의 공간이잖아요. 저는 책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읽을수록 부가가치가 높아진다고 봐요. 누군가의 흔적이 쌓일수록, 다음 사람은 앞선 사람의 생각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이 곳에 여행을 온 어떤 분이 10권의 책을 골라서 읽는다고 하면, 그분이 고른 책 자체가 저에게는 또 다른 독서가 되는 거예요. 그가 고른 책으로 그 사람의 지금 생각과 고민을 읽어낼 수 있으니까요. 결국 서재를 열어두면서 책이 두 배, 세 배로 늘고, 독서가 열 배, 스무 배로 쌓이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꽂아두는 그 자리가 제자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떤 책을 찾을 때마다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에요. 어제 <즐거운 불편>을 찾을 때도 서재를 따라 저쪽에서 이쪽까지 여행을 하다 보니 하루가 꼬박 지났어요.

박 : 무분류의 분류라, 선생님께는 이거야말로 ‘즐거운 불편’이겠군요. (웃음)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아니시니 책을 읽는 시간은 따로 없을 듯한데요. 특별히 독서에 집중하는 때가 따로 있을까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왠지 선생님께서는 배를 깔고 누워 한 팔로 턱을 괸 채 책을 읽으실 듯한데요.

 

이 : 전에 누워서 읽어본 적도 있는데, 저에게는 잘 맞지 않았어요. 저는 책을 들어서 보는 게 좋더라고요. 물론 불편할 수는 있지만, 적당한 불편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곳에는 소파가 없어요. 지금 박 선생님께서 앉아계신 자리도 그다지 편하진 않을 거예요. 여기 있는 의자는 하나같이 팔걸이가 없거든요. 물론 제가 일부러 직접 만든 거지요. (웃음) 이 의자에 앉으면 손을 둘 때가 없어서 책상 위에 둬야 하거든요. 책 읽기에 적당한 수고로움과 불편함이죠. 그래서 저는 다른 이들에게 소파와 티브이 두 가지만 없애면 된다고 아주 강력하게 말해요. 책을 대했을 때는 편하게, 나머지는 불편하게. (웃음)

박 : 제가 책을 읽다가 놀란 부분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이 책들을 다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 걸 즐기는 저로서는 차마 믿을 수가 없는 말인데요. (웃음)

이 : 모든 책을 정독했다는 말은 아닌데요. 중요한 건, 저는 책을 받으면 그 속에 담긴 내용이 궁금해서 거칠게라도 넘겨보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너무 궁금한 거예요. 받는 순간 일독을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정독을 했든 속독을 했든, 혹은 두세 번 반복해서 읽었든 방치된 책은 없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책은 값을 치르고 사는 거잖아요. 저는 밥을 먹을 돈으로 책을 사거든요. 그걸 생각하면 어떻게 안 보고 내버려둘 수가 있겠어요.

박 :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책을 읽는 때는 따로 여쭤보지 않아도 되겠군요.

이 : 네, 언제든 읽는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거예요. 저는 명절 때 친지들이 모여도 책을 읽거든요. 그래서 늘 모임에서 열외지요. 이 앞집 사는 교수님하고 러시아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이분이 열흘 정도 함께 지내면서 제가 새벽 4, 5시까지 책을 읽는 걸 보고는 ‘우리나라 교수들 반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세요. 제가 바이칼 호수에 갈 때 관련한 책을 가져갔는데, 바로 그곳에서 그 책을 읽는 데 내용이 속속들이 들어오지 않겠어요? 지금 그 책이 말하는 그 바위가 바로 여기 있는데 읽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어떤 곳에 여행을 가서 며칠이 지나면 가이드처럼 다른 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다닐 수가 있어요. 어딜 가나 원주민이 될 수 있어요. 오히려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외국인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웃음)

 

박 : 음, 질문의 수위를 조금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도대체 선생님께 책을 따로 모아두는 서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이 : 네, 이 책에서 서재 이야기를 했지만 저도 사실 서재는 불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책은 계속 여행을 해야 하고, 읽은 책을 쌓아둘 필요는 없지요. 그래서 한 번은 책을 싹 비운 적도 있어요. 어느 곳이든 서재가 될 수 있거든요. 가방 속에 두세 권의 책을 넣고 다니다 펴들면 그곳이 바로 서재인 거죠. 다른 책으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거잖아요. 늘 순환하는 서재인 셈이죠. 공간을 점령하는 서재는 반대예요. 핑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책이 있는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한 재료로서의 접근성 때문인 거예요, 필요에 의한. 책이야말로 여행을 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박 : <지식인의 서재>도 서재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전해주기 위해 만든 책인 듯합니다. 열다섯 분의 서재를 다루는데, 선생님께서 눈여겨보신 다른 분의 서재가 있을까요? 물론 이것 또한 우문입니다, 벌써 두 번째군요. (웃음)

이 : 물론 각각의 서재는 모두 주인의 생각에 따라 모양을 갖추는 거니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겠죠. 몇몇 서재는 이것이 서재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거나 장식적인 효과에 치중한 건 아닐까 싶은 서재도 있어요. 그렇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각자의 개성이라 생각해요. 반갑게도 제가 꿈꾸는 서재와 비슷한 장면도 만났어요. (아마도 김용택 선생님 서재일 듯) 저는 언젠가 다시 길 위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지금 이곳도 길이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요. 저는 이곳이 항구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항구를 지키며 배를 맞이하는 입장이지만 언젠가는 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집 뒤에 조그마한 트레일러가 있어요. 저는 언젠가는 그게 내 집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박 :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의아했던 게, 오랜 기간 많은 글을 써오셨잖아요. 본문에서도 글쓰기야말로 책읽기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셨고요. 그런데 정작 책은 안 쓰셨단 말이죠.

이 : 물론 책을 엮을 만큼의 글을 써오긴 했죠. 잡지 생활을 마친 후에는 책을 써볼까 하는 고민도 있었고요. 블로그에도 꾸준히 글을 올렸고요. 이곳 헤이리에 출판인들이 많으니 출간 제안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책이라는 게 결국 소통하기 위한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의 유통이라는 게 책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내 생각은 여러 통로를 통해서 이미 누군가의 독서 행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거죠. 물론 책이라는 꼴로 정리해내는 것의 의미는 있겠죠. 그런데 나무를 자르는 죄스러움을 면할 정도의 절실함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생각이 더욱 숙성되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낼 수도 있겠죠. 요즘 책을 보면 왜 이걸 책으로 엮었을까, 어떤 생각으로 만든 걸까 의문이 가는 책도 많거든요. 내 책도 그런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을 좀더 곰삭힐 필요가 있어요.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서두르지는 않고 있어요.

박 : 나무에 대한 죄스러움은 크게 공감합니다. 저도 편집자로 일을 했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를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 맞아요, 저는 캐나다 최대의 제지공장 근처를 지나다가 일주일을 머문 경험이 있어요. 그곳에서 종이가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전 과정을 지켜봤거든요. 통나무가 베어져 오면 쪄서 물렁하게 만들고 큰 드럼에 넣어 갈기갈기 찢거든요. 나무의 사망을 지켜본 거죠, 그것도 처참한 사망을. 그걸 통해 얻는 게 이 종이 한 장이거든요. 나무의 시체 위에 뭘 기술해야 그 죽음이 아깝지 않을지 고민해야 해요. 모든 저자와 편집자 들은 적어도 한 차례는 나무의 죽음을 견학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박 : 네, 그 말씀 잘 새겨 기억하고 전하겠습니다. 어느새 인터뷰를 정리할 시간이 되었는데요. 알라딘 인터뷰의 마지막 공식 질문입니다. 독자 분들께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몇 가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 우선 요즘 제가 독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걸 먼저 말씀드릴게요. 요즘 저는 책을 읽는 것만이 독서인가, 하는 물음을 자꾸 던지게 되는데요. 삶의 경험이 쌓이면 자기 나름의 보편 혹은 체계가 생기잖아요. 이게 주관이고 소신일 텐데요. 이게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독서가 많은 역할을 할 텐데, 여기에서의 독서는 책뿐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책만 읽는 독서는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행동으로 옮아가지 않고 지식만 습득하게 되는 경우가 그래요. 독서 행위로만 습득한 추상은 믿는 행위가 아니에요. 내 피부에 닿는 감각과 경험이 믿는 행위에요. 책을 읽는 독서뿐 아니라 사람을 읽는 대화, 자연을 읽는 소요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거죠. 이게 모두 독서라는 거예요. 한 가지 재료로 요리를 만들 수는 없는 거예요. 이런 다채로운 독서가 모여 독서 행위가 완성되는 거예요. 저도 예전에는 텍스트에 집착했어요. 만 권의 책은 읽어야겠다, 이런 목표, 아니 욕심 말이죠. 그런데 그걸 마치고 나니 자유롭고 차분해졌어요.

박 : 텍스트에서 자유로워졌는데 책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의미일까요.

이 : 네, 요즘에는 책에 담긴 글보다 그림이 더 재미있어지더군요. 또 가공되지 않은 원 데이터, 예를 들면 도감이나 사전 같은 책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자연을 곁에 두고 살다 보니 자연물에 대한 사실 자체와 실제 자연물을 감각하는 나 사이가 궁금해진 것 같아요. 자연만큼 흥미로운 독서 행위는 없는 것 같아요. 다시 질문을 돌아가서 한두 권의 책을 권한다면, 우선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에요. 늘 다른 이에게 선물하는 책이죠. 그리고 한 큐레이터가 기획한 <비밀엽서>를 권하고 싶어요. 사람의 다채로운 본성을 보여줘서 자기와 맞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읽는 데 부담도 없고요. 마지막으로는 <현산어보>와 <택리지>를 추천합니다. 각각 자연을 읽는 행위, 시간과 공간을 읽는 행위가 잘 구현된 책이에요. 이런 책을 통해 가르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영속 가능한 지구의 삶을 공감해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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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뇽 2011-06-16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책인데 인터뷰를 보니 더 좋네요.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겠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52   좋아요 0 | URL
아, 이미 읽어보셨군요. 꼼꼼히 다시 읽어주시고 다음 인터뷰도 기대해주세요.

봄의로망 2011-06-16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홀.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헤이리에 이렇게 멋진 곳이 +_+ 나무의 처참한 사망. 명심해야겠어요. (사놓은 책부터 야금야금 읽어야 나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겠지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52   좋아요 0 | URL
앗, 사놓은 책들을 생각하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건 거의 병인지라~~

갈매나무 2011-06-1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다로든, 책으로든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두 분의 대화가 초 여름의 신록처럼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시원하고 경쾌하군요. 텍스트에서는 벗어났는데 책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뭇 중생들은 어쩌라고... 흠!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53   좋아요 0 | URL
그저 열심히 읽을 밖에요...

룰루브이 2011-06-1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사진을 보고는 우리나라 분이 아닌줄 알았어요;;; (무식의 통통;) 종이 한 장도 무거운 게 우리 인생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 인터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5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실제 뵙고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무협 영화를 좋아해서, 여행 가셨을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하시더군요. ^^

cc 2011-06-1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알라딘 MD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네요. 책이란 알곡을 씹어 반소화시켜서 전해주는 일이잖아요."
마음이 덜컹, 하네요. 멋진 인터뷰. 짝짝짝.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15:31   좋아요 0 | URL
노력해야지요. 다른 거 없습니다. 은근과 끈기.

바람은사시 2011-06-1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은 이로 하여금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영혼을 갖게 할 수 있는 책을 만들려 한다는 어느 출판사 대표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그분도 나무의 죽음을 목격하셨을가요?^^ 아무 생각없이 책을 대하던 마음이 죄스럽게 느껴지네요.
어른들이 책을 소중히 다루라는 말씀에 이런 뜻도 있겠구나 싶네요. 인터뷰 잼나게 읽었어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6-20 15:41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나무의 죽음' 하면 안타깝게도, 차윤정 선생이 떠오르네요.

여치 2011-06-1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이 한장 책 한권이 정말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저도 여행도 떠나봐야겠네요. 보면서 자연에서 또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알라딘 속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시간 가는줄 모르고 봅니다. 좋은 읽을 꺼리 주시는 md, 알라딘 감사해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6-20 15:42   좋아요 0 | URL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많은 알라디너께서 올려주시는 서재 글이 훨씬 풍성하고 재미난데요. 서재의 세계에 풍덩 빠져보시길.

미수가루아 2011-06-2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비우자....내려놓자..다짐다짐해보는데 비우는 게...왜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네요...말씀마다 어찌그리 쏙쏙 머리속에 콕콕 박히는지 모르겠네요..^^ 눈과 맘과 머리가 동시에 즐건운 인터뷰였습니다... ^^*

인문MD 바갈라딘 2011-06-27 16:34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모티프 원에 찾아가시면 거의 언제든 만나뵐 수 있으니 한 번 연락드려보세요. 실제 목소리도 또랑또랑하셔서 귀에 쏙쏙 들어온답니다.

무한의삶 2011-06-3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를 자르는 죄스러움'이라는 부분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뜨뜻한 것이 가슴속에서 솟구쳐오르네요. 인터뷰 잘 보았습니다~^_^

인문MD 바갈라딘 2011-07-04 11:55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한 주, 7월, 하반기 모두 힘차게 시작하시길.

알비스 2011-07-1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MD가 무슨 약자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대략 마켓팅 디렉터(Marketing Director)의 약자 정도로 짐작을 했었는데 머천다이저의 약자였군요. 요즘 보면 프레젠테이션을 PT로 프로듀서를 PD로(이건 쓰기 시작한 것이 오래됐지만) 국적불명의 무분별한 축약형 단어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좀 씁쓸하더군요.
앞으로도 좋은 인터뷰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8-09 11:59   좋아요 0 | URL
사실 MD의 정확한 의미는 아무도 모르는 듯합니다. 저도 제가 아는 선에서 말씀드린 거라. 다음 인터뷰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내 청춘의 감옥> 이건범 선생님입니다. 고맙습니다.

지구의 오랜 꿈 2011-08-03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도 뵙고 싶군요.
자연과 소통, 사람, 배움, 비움, 모두 아름다운 단어들입니다.
이런 분이 계셔 주셔서 참 고맙다는 생각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8-09 12:00   좋아요 0 | URL
네, 헤이리에 가시면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직접 뵐 기회도 만들어보세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로 이성적 인간의 허울을 벗겨내고 약탈하는 자로서의 인간 존재를 명쾌하게 드러낸 존 그레이의 신작 <추악한 동맹>. 이번에는 정치와 종교의 불온한 동맹에 사로잡힌 인류의 가능성을 짚어봅니다. 그의 시니컬한 시선 못지 않게 글솜씨 또한 화제를 모으고 있어 차례로 번역될 다른 작품들이 기대됩니다. 이에 여러 분의 아쉬움을 달래드리고자 펭귄출판사가 진행한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특히 <만들어진 신>과 관련한 논의는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인터뷰 번역과 정리는 이후 출판사 신원제 편집자가 맡아주셨습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enguin.co.uk/nf/Book/BookDisplay/0,,9780141025988,00.html

 

“검은 미사(Black Mass)”(<추악한 동맹>의 원제)라는 제목을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제목을 지을 때 이 책의 핵심 주제이자 근대사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 종교의 정치적 변형이라는 문제를 제목에 담길 원했어요. 검은 미사는 기독교 미사의 일종인데 다만 공식적인 미사의 뒤편에 존재하죠. 지난 수세기 동안 가장 파괴적인 운동은 천상의 유토피아적 전망을 이 땅에 실현시키겠다는 기독교의 종말론 신화에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정치 종교란 그런 것이죠. 자코뱅당에서 볼셰비키까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에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까지, 급진 이슬람교도부터 전 지구적 자유 시장을 외치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들까지, 근대 정치는 종말론 종교의 다양한 변형에 좌지우지 되어 왔습니다. 

다른 이유는 음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러시아 작곡가인 알렉산드르 스크랴빈(Alexander Scriabin, 1872~1915)의 열렬한 팬입니다. 스크랴빈의 아홉 번째 피아노 소나타인 “검은 미사”는 아마도 음악 역사상 가장 음울한 작품 중 하나일 것입니다. “검은 미사”라는 곡은 레닌과 히틀러, 그리고 마오쩌둥의 사상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어두우면서도 악마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펭귄 편집자이자 마찬가지로 스크랴빈의 추종자 중 한 사람인 사이먼 와인더와 대화를 나누면서 스크랴빈의 이 곡 이름을 따 책 제목을 짓자는 생각이 나왔지요.
  
이 책은 과거 큰 성공을 거뒀던 저작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새로운 출발이라고 봐도 될까요?
 
초기 작품들과 연속선상에 있는 지점도 분명 있습니다만 <추악한 동맹>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전작인 <False Dawn>에서는 지구화를 조명했지요. 그러면서 당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나 친기업적인 작가들이 보여 준 장밋빛 전망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지구화로 세계가 상호 연관될 수는 있겠지만 더 자유롭거나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지요.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갈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습니다. <Al Qaeda and What It Means To Be Modern>에서는 알카에다가 중세나 그 비슷한 시기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문제 삼았습니다. 알카에다는 실제 지구화의 산물이며 따라서 독특하게도 근대적이라 주장한 바 있죠. 

<추악한 동맹>에서는 이 분석을 더 심화시켰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근대 계몽주의가 승리를 거둬 우리가 신화적 사고에서 합리적인 세계관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이러한 이동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급진적인 계몽주의는 신화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 신화는 기독교의 기원, 혹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죠. 계몽주의는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대 정치를 추동하는 힘은 종교적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유토피아가 도래하리라는 믿음과 진보라는 관념이 바로 그 힘입니다. 예를 들어 무제한의 성장을 용인하고 믿는 최근의 경향은 인간이 이 행성의 주인이라는 일신교적 관념의 부산물입니다. 21세기 초반 이 세속적 신화는 죽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인류의 대부분은 근본주의적인 종교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라크 전쟁은 일종의 전환점이 됩니다. 이라크 전쟁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한 십자군 운동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고 석유 장악을 위한 전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시작은 그러했지만 이라크 전쟁은 결국 해소할 수 없는 종파 간 분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저자 입장에서 <추악한 동맹> 가운데 독자들 뇌리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추악한 동맹>의 2장에서 언급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1920년대 중반에 스탈린은 러시아 과학자에게 인간과 유인원을 이종 교배해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개발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사실 그 명령을 받은 사람은 과학자라기보다는 거래용 경주마를 사육하는 사람이었지요. 스탈린은 덜 먹고 덜 자도 되는 새로운 유형의 병사를 원했던 겁니다. 물론 그 병사는 정상적인 인간의 감정을 가지지 않아야 했지요. 스탈린은 이처럼 새로운 인간 종이 만들어진다면 자신의 힘을 확장하는 데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물론 그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추악한 동맹>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지식의 진전이 인류를 더 합리적으로, 혹은 더 자애롭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지식의 성장은 단지 인간들이 자신의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뿐입니다. 그 목표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죠. 지식의 성장으로 우리는 오늘날 번영을 누리고 수명이 연장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동시에 같은 지식이 기후변화와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도 가져 왔지요. 이 이중성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할 겁니다. 그 이중성은 우리 내면의 갈등을 반영하기 때문이지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Straw Dogs)>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이 책과 <추악한 동맹>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나는 인간 진보에 대한 휴머니스트들의 믿음이 전통적인 종교의 신화만큼이나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게 핵심이었지요. 사실 종교의 신화는 세속의 신화에 비하면 인간 삶의 현실을 견뎌내라는 메시지에 가까웠습니다. <추악한 동맹>은 이 생각을 더 발전시켜 미국 신보수주의의 발흥, 각양각색의 테러리즘, 그리고 고전적인 지정학으로의 회귀 등 지난 수세기 동안 발생한 대중적인 정치 운동을 분석하는 데 사용합니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처럼 <추악한 동맹>도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친숙한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의 성공을 보면서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룬 책을 읽고 싶어하는 잠재적 독자층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추악한 동맹>은 이 주제를 더 단호하게 밀고 나갑니다. <만들어진 신>이 과연 유용한 책일까요? <만들어진 신>이 유용하다면 그것은 이 책이 복음주의적인 무신론의 기독교적 기원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킨스는 종교란 과학이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한 이론이라 생각했고 신앙인들을 비합리적이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원시적인 과학 이론이 아닙니다. 종교는 신화입니다. <추악한 동맹>의 마지막 장에서 도킨스의 관점을 논하며 설명한 바 있죠. 과학과는 달리 신화는 진실 혹은 거짓으로 판명될 수 없지만 인간 경험을 실어 나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의 신화는 휴머니즘보다 진실하다고 봅니다. 도킨스는 자신이 다윈의 추종자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휴머니즘의 신화에 기대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주장은 과학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이 아니라 신념의 일부며, 그 신념은 도킨스 자신이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는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주의적 무신론자들처럼 도킨스 역시 신화의 보편성을 해명하지 못하며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화에 결코 의문을 제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만들어진 신>의 독자들이 <추악한 동맹>도 흥미롭게 생각할까요?
 
<만들어진 신>의 독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추악한 동맹>도 흥미롭게 읽을 것입니다. 종교에 대한 도킨스의 적대감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책에 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반면 도킨스처럼 전통 종교를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인간 진보라는 세속의 신념에 대한 내 공격은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추악한 동맹>은 분명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우려하게 하는 다른 지역이 있나요?
 
중동은 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계 거대 권력 사이의 지정학적 충돌이 종교 전쟁과 얽혀버린 가장 명백한 사례입니다.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 밖의 지역이 같은 경로를 밟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슬람과 서양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모든 산업 사회들이 연루되어 있는 갈등이죠. 중국과 인도는 에너지 집약적인 서구의 생활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그러한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산업주의의 확산은 많은 혜택을 가져오지만 자원 전쟁과 기후변화에 불을 붙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산업주의가 전체 행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다음 책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철학과 소설 사이의 경계에 관심이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가 자신의 작품을 소설이나 단편 이야기쯤으로 생각하고 썼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 철학 텍스트를 우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철학 그 자체가 일종의 소설은 아닐까요? 

또, 과학에 대한 글을 쓰고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적인 문제든 윤리적 문제든, 모든 문제는 원칙적으로 과학의 도움을 빌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그게 과연 사실일까요? 오히려 궁극적인 해결책인 양 내놓은 과학의 결론이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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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계의 두 고수가 만났다. 한겨레 '책과 지성' 팀장으로 인문사회 도서를 꾸준히 소개해온 고명섭 기자와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블로그로 강호를 평정한 로쟈 이현우. 알라딘은 고명섭 기자의 서평집 <즐거운 지식> 출간을 기회로, 꼭 함께 보고 싶었던 둘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최고수가 만났으니 불꽃이 튈 만하다. 당대 최고의 '책꾼'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책에서 서평으로, 다시 앎에서 삶으로 이어지며 듣는 이의 머리와 가슴에 횃불을 놓았다. 오늘 그 끝없을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본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알라딘 인문MD 박태근)

 

 

책의 바다를 항해하라!

사회 : 오늘 책의 달인 두 분을 함께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무척 반갑고 즐겁습니다. 특히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이번에 <즐거운 지식>이란 서평집을 출간하셨지요.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책의 세세한 내용보다는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 어떨까 합니다. 우선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담론의 발견>에 이어 이번 <즐거운 지식>에서도 독서를 항해에 비유하셨는데요. 그 까닭이 궁금합니다.

고명섭 : <담론의 발견> 때 왜 서문을 그렇게 썼는지는 사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노이라트의 배가 그때 내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대양 한가운데서 배가 고장 났는데 되돌아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고, 오직 배 안에서 부품이든 도구든 찾아 고칠 수밖에 없다는 대목이 마음에 확 와 닿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전망을 찾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고요. 돌아보면 그 시절에 앎을 향한 도전을 항해에 비유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있었는데, 니체 텍스트가 유행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어요. 이번 책에서는 지난번에 이어 자연스레 항해라는 비유를 쓴 듯하고요.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즐거운 지식>에 추천사를 써주셨는데요. 여기에서 고명섭 선생님을 ‘일등 항해사’라 부르셨습니다. 선생님 책인 <책을 읽을 자유>에서는 ‘지의 항해사’라는 호칭도 나오는데요.

이현우 : 서문에서 항해가 나오길래, 왠지 기대하셨을 듯해서요. (웃음) 또 마침 그때 <모비딕>을 읽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레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지의 항해사’는 편집자가 붙인 문구고요. 비평고원에 있는 제 게시판 이름도 ‘책의 바다’거든요, 이것 역시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그런 표현을 자주 쓰게 되네요.

사회 : 저는 이런 비유가 익숙하면서도, 뭔가 어긋난 느낌을 받았거든요. ‘항해’라는 건 지금 우리가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고전적인 느낌이 강한데, 독서라는 행위는 근대적 경험의 측면이 있으니까요.

이현우 : 그러니까 올드하다는 이야기인 거죠? (웃음)

사회 : 어떤 영화에서처럼 클래식하다고 해두겠습니다. (웃음)

고명섭 : 사실 맞는 지적이에요. 처음에 그 표현을 쓸 때 이게 올드냐 클래식이냐 걱정을 좀 했거든요. 저는 항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어렸을 적 본 영화 <모비 딕>이에요. 그레고리 펙이 주연했죠. 그리고 말론 브랜도가 출연한 <바운티호의 반란>(1962)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데, 세 번 정도 본 듯해요. 선상 반란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망대해에 갇힌 존재, 이런 이미지가 있어요. 옛날 얘기라는 말이지요.
  변명을 좀 하자면 역시 책은 옛날 책이 좋고, 책 이야기를 예스럽게 해 보자,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사실 제가 심리적으로는 반근대주의자예요. 현대성에 반감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계식 동력기관이 출현하기 이전 세상이 좋았다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면 배도 풍력으로 가는 배가 좋고 터빈을 돌려서 가는 배는 배라고 생각을 안 하거든요. 정리하면 올드패션이지만, 저는 이게 정서적으로 좋고 편하다는 말이지요.

이현우 : 항해에 대해 조금 심층적인 이유를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항해보다는 ‘책의 바다’라는 말. 너무 많고 망망대해를 보는 듯 막연하고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그런 이미지를 보존하려다보니 항해나 항해사 이미지가 따라붙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근대에 반대하거나 이런 이유는 아니고요. (웃음)

고명섭 : 저는 전근대주의자 혹은 반근대주의자적인 태도가 있는데 그간 공표를 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반동으로 몰릴까봐서요.(웃음) 그런데 마르크스주의가 망가지고 나서 여러 대안담론이 다시 소개됐잖아요. 예를 들면 아나키즘을 이야기할 때 중세의 도시, 근대 이전의 살을 모델로 삼기도 하거든요. 라다크처럼 말이죠. 이렇게 ‘과거가 사실 미래’라는 담론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전근대주의자라고 얘기해도 예전처럼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

사회 : 고명섭 선생님께서 쓰시는 서평은 신문지상에 공개되는 게 전제인데 블로그에 올리는 서평과 다른 지점들이 무엇일까요? 또 사적 서평이라는 지점에서 혹 남몰래 조용히 하고 계신 블로그가 있나요?

고명섭 : 공적 지면과 사적 지면의 차이에 대한 질문 같은데요. 이번 책은 제가 공적 지면에 쓴 걸 묶은 건데 사적 지면에 비해 뻣뻣한 기준이 적용되고 주장에도 엄격한 제한이 있어요. 물론 정확하고 엄밀한 글쓰기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요. 그 제한에 대해 더 얘기하면, 제가 기자생활이 18년인데 그 절반 정도가 책 기사 쓰는 일이었어요. 지면이 공적이라는 건 뭐냐면, 제 개인적인 관심사를 무조건 반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주에 신문사에 배달된 책을 대상으로 해야 하고 그 중에 여러 사정상 꼭 원하는 책이 아니어도 써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니까요.

일동 : 그런데 거의 원하시는 것만 쓰시는 것 같은데요? (웃음)

고명섭 : 독자들이 그렇게 볼지 모르겠는데, 사실 자기 설득 작업을 거치는 거예요. 이 책이야말로 내가 진정 원하는 책이다,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고 기사를 쓰죠.

사회 : 그래도 고명섭 이미지와 딱 맞는 책만 쓰시는 듯하거든요. 이런 책도 쓰나 싶은 책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요.

고명섭 :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온갖 종류의 책을 다 다뤘어요. 어린이 책부터 자기계발서까지요. <담론의 발견>에서는 ‘담론성’을 담고 있는 것만 골라서 낸 거지요. 제가 책팀장을 몇 년 했는데, 팀원들이 전부 선배예요. 팀장은 잡일도 있고 팀원도 배려해야 하거든요. 기사 쓰는 시간이 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선배들에게 지면을 내주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제가 딱딱한 걸 맡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다보면 이게 자연스레 자기 일이 되는 겁니다. 지면이 문학, 청소년, 실용 모두 따로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딱딱한 분야를 맡게 되는 거죠.

이현우 : 의도하지 않은 이미지란 말씀인 거죠?

고명섭 : 네, 그러다보니 매우 딱딱하고 엄숙하고 어두운 이미지로 저를 생각하더군요. 사실 저는 유머를 즐기는 사람인데 어느 날 돌아보니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를 갖게 된 거죠. 공부를 할 기회를 얻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대중성을 잃어 손해를 본 점도 있습니다. 독자 폭이 협소해진 면이 있거든요. 물론 좋다는 분도 있지만.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어떠신가요. 워낙에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셔서 각각 감각이 다를 듯한데요.

이현우 : 공적지면, 사적지면 차이는 아니고 매체의 차이인데요. 인터넷도 완전히 사적인 공간은 아니고 절반은 공적인 공간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래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돈 받고 쓰는 게 아니니까  구속을 덜 받는 장점은 있어요. 지면에 대해 생각했을 때 제가 보기에 오히려 중요한 건 분량이고요. 분량 맞추는 게 제약이라면 제약인데 다른 한편 재미이기도 해요. 쓰기 싫을 때는 안도감도 있죠. 여기까지면 쓰면 된다는 게 있으니까요. (웃음) 기본적으로는 제약인데 제가 적응하다보니까 이제는 긴 글을 쓰는 데는 적응이 안 되더군요.

사회 :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서평이 아니라 ‘기사’라는 표현을 쓰시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고명섭 : 공적인 지면에 쓰다 보면 객관성, 공정성을 늘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주관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걸 의식적으로 절제하는 편입니다. 기사의 성패는 절제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신문의 책 소개 기사들은 인상비평이거나 독후감이어서는 곤란합니다. 평론가나 칼럼니스트의 글은 주관성에 호소하더라도 최소한의 근거만 있다면 문제될 게 없지요. 그런데 기자는 사태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 우선입니다. 사태의 핵심,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포착해서 사진을 찍듯 전달하는 게 기자의 역할이니까요. 사회부 기자가 화재 사건을 취재할 때 불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났다, 이런 걸 알리잖아요. 마찬가지로 이 책은 어떤 책이다, 라는 사실 자체를 잘 전달하는 게 1차 임무죠. 가능하면, 주관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인적 논평을 자제하려 하고 서평이라는 말도 안 쓰려고 하는 거예요. 서평이라기보다는 책이라는 사건의 전말을 전달해준다는 의미에서 리뷰기사나 책 소개 기사라는 말을 쓰고 있지요.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한겨레>에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연재하시죠? 이건 당연히 기사가 아니라 서평이겠죠?

이현우 : 그것도 평까지 가는 건 아니에요. 분량 상 그렇게 쓰기는 어렵거든요.

고명섭 : 그렇죠. 분량 때문에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본인의 취향을 가지고 쓰시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을 자제하려는 거고요. 그걸 딱딱하게만 전달하면 읽기 어려우니까 양념을 넣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태도가 있는 거죠.

이현우 :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서평기사 쓰실 때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데 거기서 안정감을 느끼시나요? 일종의 전달자 역할에 머무는 듯한데요.

고명섭 : 예.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그친다는 거죠. 기사 쓰기는 논평 욕구와의 싸움이에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물론 그 경우에도 앞뒤 맥락을 살피면 내가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대로 전해주면서 논평을 안 하는 거죠. 독자의 판단에 맡기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책 기사는 기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팀원들에게 가능하면 주관적인 생각으로 논평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원칙을 주문했습니다. 어떤 책을 소개하기로 선택하는 것이 이미 하나의 논평이니까요.

이현우 : 선택과 기사 크기 자체도 논평이라는 말씀이죠?

고명섭 : 그렇죠. 그걸로 이미 주관적 판단이 되었으니 책 내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면 그걸로 된 거다,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면 기자들보다 독자들이 더 똑똑하거든요. 기자들이 종종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독자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이게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려는 태도를 버리고 책을 통해 뭘 배웠는지를 쓰면 되거든요. 그러면 기사가 정갈해지고 내용도 더 깔끔해지고, 독자를 속일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너무나 많은 기자들이 독자를 속여요. 책을 쓴 사람, 만든 사람, 그 분야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죠. 물론 제 주문에 대해 반발도 많았지요. 그러면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고. (웃음)
 



자신의 서평에 대해 생각하다

사회 : 이렇게 서평에 대한 두 분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 같네요.

이현우 : 직업차이인 것 같은데요. 직업적으로 서평을 쓰게 되면 고명섭 선생님처럼 더 많은 책임과 부담감이 있는데 저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도 다르지요. 기자라면 객관성에 대한 요구에 있는데 사람들이 저에게는 그런 요구까지 하는 것 같지 같습니다. 저도 만일 기자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한 번 더 신중하게 읽고 써야겠지만 ‘인터넷서평꾼’에게는 약간의 면책특권 같은 것이 주어지는 듯해요.

고명섭 : 아이러니한 것은 기사에 대한 반응이 오는 경우는 대개 기사에 하자가 있을 때거든요. 바로 이메일로 항의가 오지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옵니다. 그래서 하자 없는 공사, 혼이 담긴 시공, 이게 제 모토예요. 그게 목표다 보니 반응이 별로 없습니다. 반응이 많아야 좋은 글이라 하는데 저는 반응이 없는 글을 쓰는 게 목표에요.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시죠?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회 : 이현우 선생님의 경우는 반응이 바로 오지요? 강호의 한가운데에서 활동을 하시니까요.

이현우 : 제 경우는 오히려 반응이 없으면 문제가 없는 게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웃음) 그런데 궁금한 건 객관적인 것을 쓰시다 보면 분명 하지 못한 주관적인 말들이 있을 텐데, 이걸 따로 기록해 두시나요?

고명섭 : 아니오, 안 합니다. 목표는 하자 없는 시공인데 마음에 드는 기사는 적습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기사가 대부분이고 아닌 경우는 열에 하나, 둘 있을까 말까인데요. 최근에는 이현우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폭력이란 무엇인가>가 만족스러웠던 경우예요.

이현우 : <즐거운 지식>에서도 지젝을 맨 앞에 두셨죠.

고명섭 : 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항상 제 기사가 너무 부실하고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내용을 더 쉽게 풀어쓸 수 없을 때가 그렇습니다. 본인의 능력이 모자란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지요. 수도 없이 많은 예 중 하나가 지젝이 셸링에 대해 쓴 책을 소개한 기사였는데요, 처음에는 제가 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한번 용기를 내서 써 봤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기사를 쓴 후에 실패했다고 느꼈는데, 결국 이번 책에도 편집자가 넣지 않은 것 같아요. 편집자 역시 너무 어렵거나 문제가 많은 글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사회 : 본인의 능력이라 말씀하셨지만 사실 마감 시간도 중요한 원인이겠죠?

고명섭 : 예, 시간도 작용하고 지면도 작용하지요. 사전 공부의 양도 작용하고요. 이 세 가지가 좌우합니다. 지면이 좀 넉넉하면 사례를 넣어 쉽게 풀 수도 있는데, 그걸 못해서 압축하다 보니 안 되는 경우도 있지요. 마감시간의 경우는 마지노선이 금요일 오후 4시예요. 오후 1~2시 정도가 되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죠.

이현우 : 2시간이면 굉장히 빨리 쓰시네요.

고명섭 : 그렇게 마감에 쫓기면 페이스를 잃고 힘들 때도 있지요. 아까 공적지면과 사적지면 얘기가 나왔는데, 저는 블로그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기사에 집중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성격적으로도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못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또 트위터나 블로그도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테니 순수하게 사적인 공간은 아닐 테고, 여기에 글을 쓴다고 해도 결국 기사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현우 : 그러지 않으셔도 제가 기사를 많이 옮겨 놓아서 괜찮을 겁니다. (웃음)

고명섭 : 그러게요. 저공비행을 통해 보는 독자가 더 많을 것 같네요. ‘인터넷 한겨레’에 들어와서 보시는 분들보다요. (웃음)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최근에 방송대 TV에 출연하셨죠? 다채로운 매체에서 활동을 하시는데, 특별히 가리지 않으시는 듯합니다.

이현우 : 저는 원고청탁도 거절을 잘 못해요. 유일하게 거절했던 기억이 KBS에서 카이스트 학생들 자살사태에 대해 토론해달라는 거였는데 저와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사양했지요. 그거 이외에는 청탁을 거절 한 기억이 많지 않아요. 책을 많이 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자는 생각입니다.

사회 : 활동 공간 가운데 어디가 가장 편하세요?

이현우 : 물론 집에서 블로그 하는 게 가장 편하죠. 서평 쓰는 것도 괜찮은 일인데 항상 마감이 지나서 쓰거든요. 마감만 아니면 책을 더 살펴볼 수 있는데 마감이 지나면 못 그러거든요. 그래서 매번 애를 먹이게 되는 편집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정리하면 서평 쓰는 일은 좋아하는 일이기는 한데 약간 민폐도 끼친다는 거죠. 가장 좋아하는 건 저 혼자 글 쓰는 건데 요즘은 아쉽게도 그럴 여유가 별로 없네요.

고명섭 : 저도 마감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처음부터 청탁을 받지 않습니다. 열에 아홉은 거부합니다. 하도 거부했더니 이젠 아예 청탁이 들어오지도 않아요. (웃음)

이현우 : 월간 <인물과사상>에 쓰시잖아요.

고명섭 : 그건 제가 쓰겠다고 한거죠.

이현우 : 청탁을 넣으신 거군요.

고명섭 : 예, 그렇죠. 그런데 그래놓고도 2년이 넘게 준비하느라 시작이 늦었어요.  

 



윤봉길의 벤또처럼, 책을 세상에 던지다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많이 쓰셨잖아요.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굳이 그런 글을 쓰시는 거죠?

이현우 : 예상까지 한 건 아니고요, 예상 밖으로 논란이 생긴 경우가 있었지요. 서평의 경우는 아니고 오역 문제였는데, 사실 제가 번역한 <폭력이란 무엇인가>에도 오역이 조금 있어요. 쇄를 더 찍을 때 수정을 해야 합니다. 표현에 문제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론서나 철학서는 많이 나가는 책이 아니라서 한 번 나오고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게 교정되지 않고 남는 건 독자와 저자 모두에게 손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달랑 정오표만 올려놓으면 재미도 없고 해서 오역을 지적할 땐 동기부여 차원에서 ‘내러티브’를 부여하는데 이런 게 필화 사건이 된 경우도 있지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경우도 있고요.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오역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한마디 적었다가 강서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어요. 나중에 학위증명서도 검사실에 팩스로 보내고 했었죠. 작년에 강유원씨 공역서 관련으로 문제가 된 일도 기억이 나네요. 의외였거든요. 신뢰받는 출판사에서 그렇게 책이 나왔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요. 그 이전에는 주로 지젝 책 관련한 이야기들이 있었고요.

사회 : 대개 학자 사회에서는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상례 아닌가요?

이현우 : 저는 이게 품앗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번역비평학회 일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을 만나 보면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 대개 알아요. 그런데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한국사회의 안면 문제도 있고요. 그런데 각자 알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공유되지 않는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교정되지 않는 지식, 이건 지적 냉소주의라고 생각해요. 이런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요. 그 과정에서 불편하고 불쾌한 일들이 있더라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한 이론서의 역자를 만났는데 저 때문에 한 번 더 보게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이런 것도 저 나름대로는 기여라고 생각되네요.

고명섭 : 앞서 말씀해주신 맥락에서 한겨레 지면에서도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가 나온 거죠.

이현우 : 아, 그것 때문이었나요? 요즘은 거의 소설만 쓰고 있는데요.

고명섭 : 얼마 전에도 특종 하나 하셨죠. <안나 카레니나>.
 
이현우 : 그것도 필화사건이죠.

고명섭 : 그걸 최재봉 선배가 다시 기사로 썼는데, 일종의 칼럼 특종이죠.

이현우 : 들은 이야기로는 기사거리가 없어서 쓰셨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웃음) 그 이후로 문학동네 블로그가 꽤나 시끄러웠어요.

사회 :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쓴소리를 잘 안 하시죠?

고명섭 : 쓴소리요? 저는 책 기사 쓸 때 기본적인 태도가 쓴소리를 할 책은 쓰지를 말자예요. 일주일에 책팀에 300여 종의 책이 오면 1차로 걸러서 5, 60종이 회의실 탁자에 올라오거든요. 문제가 많은 책은 아예 회의실에 들어오지 못하고, 혹 거르지 못하고 채택된 책도 나중에 읽다가 문제가 발견되면 다른 책으로 바꾸기도 해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쓴소리를 하는데, 가능하면 그런 책은 쓰지 말자는 게 기본 입장이에요. 이진경씨 표현인데, 마르크스가 고전파 경제학의 하자를 알고 있었지만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의 약점을 보완해가면서 읽어서 이것을 완성시켰다, 란 평가가 있어요. 이처럼 책을 읽어서 내가 완성시키면서 읽자, 이런 태도도 있어요. 좋은 내용이기 때문에 배우는데, 약간의 부족한 부분은 내가 보충해가면서 읽자는 태도가 있어서 쓴소리를 안 하게 되는 거죠. 가능하면 장점을 찾아보려고 애를 써요.  쓴소리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사회 : 그럼 책에 대한 ‘화’를 어떻게 다스리십니까?

고명섭 : 기사를 쓰고 나서 출판사에 전화해서 이런 식으로 책 만들지 말라고 화를 낸 적도 여러 번 있어요. 기억 나는 사례가 20세기 좌익 혁명가 평전인데요. 출전 주를 다 빼고 출간을 한 거예요. 그래서 기사는 쓰고 나중에 출판사에 전화해서 따졌죠. 예전 같으면 왜 출전 주를 삭제했는지 기사에서 비판했을 텐데, 요즘 제 태도는 그런 말은 쓰지 말자예요. 그 인물 이야기를 예로 들면, 이데올로기나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한 거예요. 좁은 지면에 그 이야기만 해도 부족한 거죠. 이야기를 다 쓰고도 지면이 남았으면 출전 주 이야기를 했을지도 몰라요. 한국사회라는 시공간에서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떤 문제를 던지는가를 앞세우다 보니까 못 한 거죠. 이를테면 책을 사회를 비판하는 무기로 삼는 거예요. 제가 가끔 ‘벤또’라는 비유를 쓰는데,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에서 제국주의, 식민주의를 향해 던졌던 벤또 있지요, 책을 벤또 삼아 이 사회를 향해서 던지자는 거지요. 그래서 책이 벤또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웃음) 저자나 편집자를 대신해서 신문을 통해서 벤또를 던져주는 거죠.

이현우 : 꼭 ‘벤또’여야 하는 거죠?

고명섭 : 네, 도시락이라고 하면 맛이 안 납니다. (웃음)

이현우 : 일종의 책-벤또론이군요.

고명섭 : 이 벤또를 던지는 게 급하거든요. 벤또로서 제 기능을 하는 정도면 일단 던질 필요가 있는 거예요. 모양에 조금 문제가 있거나 맛에 문제가 있는 건 다음 문제라는 거죠.

 

 


내가 읽는 책, 내가 읽고 쓰는 책

사회 : 제가 인문사회 출판사 분들을 만날 때 이 책은 이현우 선생님께서 추천을 해주시겠구나, 고명섭 기자가 한겨레에서 서평을 쓰겠구나 하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두 분께서 요즘 벤또의 주재료로 삼는 주제가 있을까요?

고명섭 : 이 책의 배열이 그런 건데요. 우선 성능 좋은, 화력이 좋은 벤또를 던진 거죠. 지젝-벤또 같은 거요. 세상을 바꿔보려는 생각이 충만한 책들에 우선 관심을 보이는 거고요. 그 다음에는 유장한 호흡으로, 답이 안 보이는 시대에 훗날을 길게 보는, 카렌 암스트롱 식으로 말하면 ‘축의 시대’로 돌아가서 그 시대에 현자들이 고민했던 이야기를 다시 보는 거죠. 그중에서도 제가 관심을 두는 부분은 정치사상, 정치철학 쪽이에요. 그러다 보니 그런 책들이 눈에 빨리 띄겠지요.

이현우 : 저는 조금 잡다한데. 블로그를 하다 보니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책 말고도 그 책에 대한 정보나 서평이 공유되면 좋겠다 싶은 걸 많이 다루거든요. 블로그에 기사를 스크랩해두지만 정작 제가 관심을 덜 갖는 책도 있거든요. 그래도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 정도만 알아도 좋겠다 싶을 때가 있는 거죠. 책이란 건 읽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수가 읽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내가 지금 못 읽어도 우리 중에 누군가는 읽는다는 사실. 커다란 독서공동체 비슷한 걸 생각하는 거지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제가 문학 전공이다 보니 철학이건 문학이건 생각을 자극하거나 충격을 주는 책들이 좋아요, 통념을 뒤집어보는 도전적인 책이요. 이런 게 철학이나 이론서가 갖는 강점이죠. 독서공동체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너무 어려운 책을 눈높이에 적절하게 맞춰주는 부분도 중요하죠. 블로그에서 이런 작업을 해왔어요. 지젝을 재미나게 같이 읽을 수 있도록 미끼를 던지는 일 같은 거요. 서평도 그런 중개의 역할이고요. 책을 당장 읽지 않을 사람에게도 책의 정보나 중심 맥락, 흥밋거리를 던져줄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라도 관심 가질 수 있겠죠. 그런 기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은 사실 서평보다는 비평 쪽인데, 이게 만족도가 더 높아요. 서평은 분량이 제한적이고 자기 주관을 드러낼 여지가 적으니까요. 조금 여유를 두고 진행할 생각이에요.

사회 :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서평집으로는 두 번째인데요. <지식의 발견>은 서평보다는 비평의 맥락에 닿아 있는 책이죠?

고명섭 : 네,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지식의 발견>은 2003년~2005년에 월간 <인물과 사상>에 연재했는데, 신문 책면의 기사 분량이 제한돼 있다 보니까, 매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하고, ‘이만 총총’인 거예요. 하나의 책, 하나의 주제를 가능하면 충분히 써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인물과 사상>에 제안을 해서 연재를 했죠. 50매 분량을 쓰니까 처음에는 좀 힘들더라고요.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75매 분량을 썼는데, 여기에서도 기본 태도는 책 기사 쓸 때와 별 차이가 없었어요. 다만 제 목소리를 조금 더 넣고, 책 내용이나 저자 주장의 단순 전달로 그칠 게 아니라 내용에 개입해서 전달하자는 태도가 있었죠. 주제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책 하나로 부족하다 싶으면 다른 책을 엮어서 쓰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뚜렷하게 의도한 건 아닌데, 연재를 해 가면서 국내 저자의 책, 현실과의 접점이 넓은 책을 소개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국내 저자의 현실 발언을 담론 차원에서 다루는 책이 된 거죠. 근본적으로는 <즐거운 지식>과 차이가 없다고 봐요. 단지 분량과 주제 전달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거지요.

사회 : 최근 부서를 옮기셔서 이전에 정기적으로 쓰시던 서평 지면이 없어졌는데요. 여유가 생기실 테니 <지식의 발견> 같은 시도를 다시 해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고명섭 : 시간이 된다면 하면 좋겠는데, 저는 항상 시간이 없더라고요. 나만 그런가 모르겠지만….

이현우 : 다 그래요. 물어보면 시간 있다는 사람이 없어요. (웃음)

사회 : 정기적인 지면에 글을 쓰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고명섭 : 현재로서는 지금 연재하고 있는 니체를 빨리 마무리하는 데에 집중하고 싶어요.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지젝 연재를 마무리하셨죠?

이현우 : 네, 연재는 마쳤고 <실재의 사막> 번역 출간을 타진해보고 있는데 좀 늦어진다고 하네요. 다시 번역을 하게 된다면 연재 내용도 거기에 맞춰서 출간을 준비해야겠지요. 여름까지는 정리를 해볼까 싶어요. 그리고 지젝 해설서를 하나 더 쓸 텐데요. 이번에는 <시차적 관점> 읽기입니다.

고명섭 : <자음과 모음>에 연재하신 지젝 해설은 읽어보지 못했는데요.

이현우 : 책으로 나오면 읽어보시죠.
 

 



좋은 서평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가

사회 : 서평 혹은 리뷰라는 말이 흔해졌지요. 많은 분들이 블로그에 쓰고 계시고요. 많은 독자분들께서 두 분께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 좋은 서평이 무엇이고 어떻게 쓸 수 있느냐 하는 건데요.

고명섭 : 저는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선 사전지식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성실성, 세 번째 정직성, 마지막이 글쓰기 훈련인데요. 어떤 책에 대한 서평을 잘 쓰려면 그 책 하나만 잘 읽어서는 부족하고요. 그 책을 둘러싼 지식을 사전에 읽고 공부가 되어 있어야만 그 책의 가치를 정확하게 포착해서 전해줄 수가 있거든요. 신문기자의 경우는 언제 어떤 책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방어적 자세를 갖춰야 해요. 어떤 책이 나오든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쓰려면 그 분야에 대해서 항상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해요. 다음으로 좋은 리뷰를 쓰려면 성실하게 책을 읽어야 해요. 주마간산으로 읽으면 리뷰도 그렇게 겉핥기밖에 안 됩니다. 성실하게 읽을수록 좋은 글이 나와요. 크루즈 미사일이 지면 위에 붙어 날아가듯 책의 지면에 최대한 가까이 밀착해서 읽어야 해요. 주파 혹은 독파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게 성실성이에요. 정직성이란 것은 내가 아는 만큼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성실하게 읽어도 내가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고민이 부족하면 딱 그 만큼밖에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내가 느낀 만큼, 배운 만큼, 깨달은 만큼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책에 대한 예의 같은 거죠. 이런 걸 다 하면서도 개성 있고 문장이 깔끔하고 산뜻하고 신선하면 좋겠죠. 문체까지 자기만의 분위기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요.

이현우 : 말씀해주신 건 일반 독자를 위한 서평 쓰기보다는 좋은 서평 기자가 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대개 이해가 가는데, 성실성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감 시간에 쫓기면서 크루즈 미사일처럼 읽어내실 수 있나요?

고명섭 : 그래서 고통인데요. 두 가지 고통이 있어요. <담론의 발견>에서 플라타너스 잎사귀만한 지면에 글을 쓰는 게 매번 고통이고 도전이었다고 쓴 적이 있어요. 우선 지면에 응축해서 쓰는 거 자체가 괴로움인데요. 그보다 괴로운 건 마감을 앞두고 책을 독파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거죠. 예를 들어 <시차적 관점> 소개 기사를 쓰는데 이건 도저히 물리적으로 다 읽어낼 재간이 없는 거죠.

이현우 : 아까 ‘독파’라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결국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되는 거죠? (웃음)

고명섭 : 네, 그렇죠. <폭력이란 무엇인가> 같은 책은 다 읽을 수가 있으니까요.

이현우 : 300쪽 이내 책은 독파하고, 그 이상은 하는 데까지. (웃음)

고명섭 : 제가 왜 이걸 강조하느냐면, 너무나 많은 기자들이 책을 안 읽고 써요.

이현우 : 예전에는 보도자료 읽고 쓰면 됐는데 요즘에는 보도자료가 온라인서점에 그대로 공개되니까 기자들이 더 힘들어진 거 같아요. 특히 짧은 기사들이요. 3매 기사 이런 걸 쓰는 데 다 읽고 쓰는 기자는 거의 없을 듯하거든요.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서평은 어떤 걸까요?

이현우 : 저는 좋은 서평의 조건보다는 효과 면에서 말씀을 드릴게요. 저는 어떤 책을 안 읽도록 설득해주는 서평이 제일 좋아요. 돈과 시간을 절약하게 하거든요. 별 하나짜리 서평을 설득력 있게 쓰는 거죠. 본인은 불만이겠지만 다른 많은 이들에게는 유익하니까요. 별 다섯 개짜리 서평보다 오히려 하나짜리 좋은 서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마존에서 서평을 볼 때 별 하나짜리와 다섯 개짜리를 보는데, 하나짜리도 짧은 거는 특별히 새길 게 없어요. 그런데 길게 차근차근 왜 이 책이 별 하나인가를 알려주는 서평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으로 좋은 서평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서평. 돈과 시간을 요구하는 서평이죠. (웃음) 사서 꽂아두기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을 부추기는 글 말이에요. 세 번째는 잘 정리해주는 서평인데, 살 수도 있고 안 살 수도 있지만 읽은 척할 수 있게 해주는 서평이죠. 어디 가서 한 마디 던질 수 있는 서평이요. 고명섭 선생님께서 이런 서평을 많이 써주시죠.

고명섭 : 저도 그 세 번째 기사를 쓰려는 노력을 많이 하죠. 그래서 제 기사를 보고 참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책을 사서 볼 필요가 없다는 거죠. (웃음) 기사를 읽고 나면 책을 한 권 다 읽은 듯한 느낌이라는 거예요. 바로 그걸 노린 거죠. 어떻게 하면 그런 기사를 쓸 것인가 고민하거든요.

이현우 : 출판사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웃음)

고명섭 : 맞아요, 그래서 기사를 쓰면 출판사들이 아주 싫어한다는 거예요. (웃음)

이현우 : 저는 가급적이면 출판사 매출을 올려주려고 써요. 안 좋은 평을 쓸 때도 말이지요. 출판사들이 문을 닫으면 곤란하니까.

고명섭 : 논란이 될 때가 책한테는 가장 좋죠. 혹평이든 호평이든 말이죠.

 

 


내가 책을 읽는 방법

사회 : 이번 주에 에코의 <책의 우주>가 나왔는데. 에코의 장서가 5만 권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지인들이 찾아와서 다 읽은 거냐고 자주 묻는다고 해요. 그럼 에코는 다음 주부터 읽을 책들이다, 고 대답을 하고, 책을 언제 읽느냐고 물으면, 자기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유쾌하게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글을 쓰는’ 두 분께서는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사시는지요.

고명섭 : 에코가 매주 칼럼을 쓰는데요. 그렇게 20년 넘게 매주 칼럼을 쓸 수 있다는 게 무척 부럽더라고요. 가벼움이 부러워요. 저는 너무 무거워서 문제인 거 같아요. 저는 출판 담당할 때 기준으로 보면 정독으로 한 달에 대여섯 권 정도 되는 듯해요. 발췌독이나 읽다가 덮어두는 책들은 조금 더 많고요. 그런데 돌아보면 정독한 책만 남는다, 사실 정독한 책도 안 남는다, 정독이라도 해야 남을 가능성이 조금 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는데, 발췌독의 경우는 나중에 그 책을 보면 밑줄은 수도 없이 있는데 읽은 기억이 전혀 없는 거예요.

이현우 : 저는 책의 용도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종류에 따라 다른 독서법인 거죠. 문학 전공이다 보니 느리게 천천히 자세히 읽는 걸 훈련받았고 그런 걸 좋아해요. 시집을 한 시간에 다 읽었다, 이런 건 별 의미는 없잖아요. 잘 읽기 위해서 쓴다는 관점에서 ‘자기화’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제가 좋아하는 독서이고 권장하는 독서인데, 시간의 한계 때문에 이렇게만 읽을 수는 없다는 거죠. 때로는 속독을 필요로 하는 책들도 있거든요. 최근 원자력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는데 깊이 있는 독서를 필요로 하는 책은 많지 않거든요. 시사적인 책들의 경우에는 빨리 읽으면서 필요한 내용을 습득하는 독서를 요구하기도 하죠.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고요. 그에 반해 정독을 요구하는 책은 다시 읽는 걸 요구하죠. 두 번, 세 번 말이죠. 문학 강의를 하다 보니까 어떤 책은 매 학기, 일 년에 두세 번 이상 읽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건 그때마다 작품에 대한 생각이나 이해가 달라지고 추가되고 교정된다는 거죠.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동의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 책에서 <특성없는 남자>에 나오는 도서관 사서를 예로 드는데, 모든 책을 읽기 위해서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기로 선택한 자기희생 정신이 투철한 사서예요. 사서가 책에 몰입해 읽게 되면 자기 역할을 다 할 수가 없는 거죠. 서평가도 부분적으로 그런 운명을 갖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까 정독하면 좋겠지만 한 권의 책을 정독하기 위해서 열 권의 책을 거들떠 볼 수도 없는 경우도 있고, 거꾸로 열 권의 책을 보기 위해서 책을 정독하면 안 되는 처지도 있죠. 전자가 더 나은 운명이긴 하죠. 그런데 이런 경우는 소수일 듯하고요. 후자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고명섭 : 정보로서의 책 읽기가 있는데, 우리는 보통 교양으로서의 책 읽기를 말하거든요. 문사철이죠. 당연히 이 경우에는 정독이 좋은 듯하고, 정보로서의 책 읽기는 빨리 찾아가서 포착하는 게 필요하죠. 저는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도 많이 보는 편인데, 자기계발서도 내 것으로 소화하려면 정독이 필요하거든요. 역시 생각의 힘을 기르는, 내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는 차원에서의 책 읽기는 천천히 저작하듯이 읽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공식적이군요. (웃음)

사회 : 그럼 저도 공식질문을 하겠습니다. (웃음) 알라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인데요. 서점이다 보니 추천 도서를 부탁드립니다.

고명섭 : 얼마 전에 아는 분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최근에 의미 깊게 읽은 책으로 김용규 선생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그리고 <축의 시대>를 말씀하시던데요. 저는 여기에 더해서 김영사에서 나온 조철수 선생의 <예수 평전>을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요즘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분야이기도 해서, 이 세 책을 함께 읽어 보면 ‘잃어버린 신’에 대해서 지적으로 풍요롭게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게 ‘공식적인’ 생각입니다.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추천해주고 계시지만, 그래도 부탁을 드립니다.

이현우 : 읽은 책이라고 하면, 요즘 강의 때문에 읽은 책밖에 없어서. <러시아 문화에 관한 담론>이란 책이 최근 나왔는데, 전공서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교양서거든요. 서양 중세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좀 읽는데 다른 문화권에 대해서는 잘 읽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스나 중세 문화는 교양서이고 러시아나 일본에 대한 책은 학술서로 분류가 되거든요. 관심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어요. 형평에 맞게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고명섭 : 아까 책-벤또 이야기를 했지만, 이건 사회적 차원의 이야기고, 개인적, 실존적 차원에서 보자면 책은 도끼여야 합니다. 카프카가 대학시절 ‘책은 우리 정신의 두꺼운 얼음판을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고 친구에게 말했지요. 그렇게 강력하게 우리 정신을 흔드는 책을 읽을 때 우리의 삶과 사고의 관습이 깨지고 창조적 카오스 상태를 거칠 수 있다고 봅니다. 니체는 ‘나는 피로 쓴 글만 믿는다.’라고 했는데, 피로 쓴 글, 피로 쓴 책만이 정신의 얼음판을 깨는 도끼 노릇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자기 혼을 바쳐서, 혼이 흔들리는 강렬함 속에서 쓴 책이 독자의 혼을 흔들고 깨울 수 있지 않을까요.  평소 제가 마음에 품고 다니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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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5-15 12:58 
    지난달 언젠가 알라딘과 사계절출판사의 주선으로 <즐거운 지식>(사계절출판사, 2011)의 저자인 고명섭 기자와 대담을 나눈 바 있다. 알라딘 인문MD님의 대담을 정리해서 글을 올려주셨는데, '서평'에 관해 내가 몇 마디 거든 내용을발췌해놓는다.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많이 쓰셨잖아요.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굳이 그런 글을 쓰시는 거죠?이현우 : 예상까지 한 건 아니고요, 예상 밖으로 논란이 생긴 경우가 있었지요. 서
  2. mm-area의 생각
    from mimoarea's me2day 2011-05-16 10:35 
    [인터뷰] 서평계의 두 고수, 고명섭 기자와 로쟈 이현우를 함께 만나다
 
 
루쉰P 2011-05-1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직한 인터뷰 내용이 도움이 많이 되네요. 좋아하는 두 분의 대담이라 그런지 제가 책을 읽을 때 도움도 많이 되구요. 알라딘 MD님도 고생하셨어요. ^^

인문MD 바갈라딘 2011-05-16 09:1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제 인터뷰도 늘 '묵직'해서 걱정이네요. 고명섭 기자처럼요. ^^ 좀더 자주, 가볍고 경쾌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고맙습니다.

2011-05-16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6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룰루브이 2011-05-1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지식인을 알게 되었네요~~^^ 머리가 든든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5-16 17:13   좋아요 0 | URL
네, 고명섭 기자의 강연회도 진행하니 살펴주세요. http://blog.aladin.co.kr/culture/4791733 고맙습니다.

ziyeoni 2011-05-18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분 각각의 내공에 압도 당한 기분입니다. 긴 글은 끝까지 잘 안 읽게 되는데,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가볍고 경쾌한 인터뷰도 기대하겠습니다 ^^

인문MD 바갈라딘 2011-05-18 09:26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그러나 다음 인터뷰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만나게 될 터라. 가볍고 경쾌한 거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