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딸이 가족 카톡방에 뜬금없이(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갑자기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 거야?"라고 물었다. 이미 오전에 부모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중고등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니  솔직하게 답변하기 힘들었다. 나는 다리가 많은 바퀴벌레를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그런데 하필 내 딸이 바퀴벌레로 변신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줄 수 있을까.



이 질문 참 낯익다. 카프카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쓴 이야기가 백 년이 지나 자신은 알지도 못한 한 아시아의 나라 청소년들의 밈이 될 줄은.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출근 전에 자신이 침대 위에서 거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황당한 설정은 얕은 판타지가 아니다. 카프카는 그레고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레의 몸으로 자신이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수행해야 하는 책임을 상기하고 그것을 벌레의 몸으로 하지 못하는 데에 대하여 느끼는 죄책감에 주목한다. 벌레로 변한 그를 연민하거나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그런 그를 부끄러워하고 피하고 제거하고 싶어한다. 그가 무능력한 가족들의 빨대가 되어주어 집안에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이 되어줬을 때에도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당연시했고 그게 불가능해진 시점이 오자 그를 무시하고 조롱한다.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은 한 인간이 더 이상 사회가 부여한 외형적 가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그가 느껴야 하는 절망과 소외감을 놀랍도록 명징하고 세련되게 형상화한 우화다. 생명이 생명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을까? 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전제를 전복시키는 이야기는 인간이 잘 살겠다고 만들어 놓은 구조적 헤게모니가 얼마나 강력하고 잔인한지 시사한다. 카프카의 냉소적인 시선은 사랑은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기능과 기여로 의존하고 존중하고 존중받았는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예감을 카프카는 현실화시킨다.


십대의 사춘기 아이들은 어쩌면 이런 그레고르의 변신을 둘러싼 가족의 변심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성적으로 평가되는 자신들의 성과로 부모와 불화하고 더 이상 존재만으로 기쁨을 주던 영유아기의 매력을 소유하지 못할 때에도 부모들은 자신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너가 바퀴벌레가 되어도 난 기꺼이 난 너를 안아줄거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사랑이겠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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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4-09 15: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딸아이가 (저도 십대 아이) 엄마 내가 서울대에 못 가도 나를 사랑할 수 있어? 라고 말하더라구요. 물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근이지, 라고 카톡 아니 디엠을 보내고난 후 공부를 잘 하는 아이와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대할 때의 엄마 마음이란 건 어떤 식으로 다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는데 수치심과 자랑스러움 그 사이겠구나 싶었어요. 저는 공부를 못하는 딸이었는데 엄마에게 물어보니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대로 예뻤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여도 뭐 내 새끼니까 공부를 못한다고 그런 걸로 막 애정이 식고 그러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말씀하시더라구요. 블랑카님이 말씀하신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니 역시 그래도 내 새끼가 공부를 잘해서 인 서울 하는 편이 지방대 가는 편보다는 자랑스럽겠구나 어쩔 수 없이 뼈를 때리더라구요. 있는 그대로 그 존재 자체를 마주하고 사랑하는 일조차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쉽지 않구나 새삼 느낍니다. 아이들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요.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 해도, 내가 서울대 아닌 지잡대를 간다고 해도 엄마는 아빠는 나를 사랑해줄 거야 라는 믿음과 그 믿음이 바탕이 되어 내게 물어보았을 때 아이가 원하는 대답을 스스럼없이 해주면서도 다시 한번 통렬하게 깨닫게 되는 거 같습니다. 머리로는 이미 합리적인 답변이 준비되어 있지만 아이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은 이미 하나로 올곧게 정해져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고. 바퀴벌레 말씀하시니 떠오른 건데 전 거미나 지네 뭐 바퀴벌레도 그렇고 탁탁 죽일 때마다 아 만일 저게 전생에 우리 아빠였다면 어쩌지, 내가 보고싶어서 지네로 나타난 거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 들더라구요.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카프카의 변신.

blanca 2023-04-09 16:42   좋아요 1 | URL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게 한국 사회에서는 소위 좋은 학교에 보낸 결과론적인 걸로 치환되잖아요. 그걸 민감하게 느끼는 게 십대 아이들이고요. 공부를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조건부적 사랑을 느끼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은 사람 그대로 사랑받아야 한다는 기본 명제가 있고, 저도 어려워요. 그런데 최근들어 다시 보이긴 해요. 카프카는 정말 선각자구나 싶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도 이미 다 알았던 거예요.

페넬로페 2023-04-09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런 질문을 엄마한테 보내는게 유행이라고 하네요.
저도 받았어요.
카프카의 변신을 이미 읽어서 질문이 어떤 의미인줄 알아채고 딸아이가 좋아할 만 한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어요.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blanca 2023-04-09 16:43   좋아요 1 | URL
그런데 왜 갑자기 카프카일까요? 그것도 너무 신기해서요. 저는 안 읽어봐서 이번 기회에 처음 읽었는데, 우아, 입이 딱 벌어지더라고요. 카프카가 카프카했더라고요.

책읽는나무 2023-04-09 15: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딸 아이에게 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 변신을 예전에 읽어서인지?
어? 그거 카프카 소설이랑 비슷한 내용인데?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와.. 너 그 책 읽었단 말? 와...... 수선 떨었더니 안 읽었지만 일단 대답해 보라고 윽박질러, 뭔가 좀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냉큼 엄마는 니 방에 밥도 주고 평소처럼 벌레가 아니고 넌 내 딸이다! 세뇌시키며 살 거라고 말해줬더니 씨익 웃더라구요. 역시 뭐가 있군! 생각하고 빨리 말하라고 했더니 역시나 요즘 유행하는 십 대들의 질문이래서, 전 좀 뜬금없으면서 부모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게 아이들답다! 싶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책을 읽지 않은 남편의 반응이 궁금해서 아빠한테도 물어보라고 시켰더니, 박스 안에 넣어 먹이를 주며 키운다.라고 대답해서 응? 무슨 뜻? 그랬었네요ㅋㅋㅋ
전 질문을 받아도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보질 못했는데 블랑카 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질문이네요^^

blanca 2023-04-09 16:44   좋아요 1 | URL
아버님 답변 ㅋㅋㅋ 명답이시네요. 아이들 참 엉뚱하죠. 갑자기 카프카 소환...카프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떤 말 했을까 궁금도 하고요...그런데 읽어보니 참 십대 아이들에게 아주 적절한 상황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일까? 저도 돌아보게 됐습니다.

바람돌이 2023-04-09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질문이 요즘 청소년 사이에 밈이군요. 이제 십대 딸이 없으니 이런 거 아무도 안보내네요. 근사하게 답 잘해줄 수 있는데.... 안타깝다. ㅎㅎ
blanca님이 말하는 그런 불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다면 독특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으로 읽는다든가 말입니다. 제가 읽을 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편화되고 도구화되는 인간존재의 문제 뭐 이런걸로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전자가 더 근사하게 카프카를 읽는 방법이 되지 않을가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

blanca 2023-04-09 16:46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이 유명한 소설을 처음 읽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또 다른 측면으로 읽었어요. 카프카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드리운 암운...뭐 그런게 좀 읽히더라고요. 안 그래도 아주 불화했다는 얘기가 있긴 하더라고요. 자식이 나의 자랑이 될 때 가계에 도움이 될 때 지지해 주는 부모의 허울 좋은 사랑이 사실 자본주의의 인간 도구화와 통하죠. 여하튼 덕분에 벼르던 <변신> 읽고 저는 감동 받았어요. ^^

페넬로페 2023-04-09 17:19   좋아요 0 | URL
20대들에게도 유행이예요 ㅎㅎ

새파랑 2023-04-10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청소년들 사이에서 카프카가 유행인가 보네요. 요즘 청소년들 수준이 너무 높은거 같아요~!!

blanca 2023-04-10 10:41   좋아요 2 | URL
저는 정말 궁금한 게 누가 가장 먼저 이 질문을 생각해냈을까요? 그리고 그게 호응을 얻은 것도 너무 신기하고요. 뭔가 카프카는 세대와 지역을 넘어 쿵하게 하는 지점이 있나 봅니다.

다락방 2023-04-10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 님도 피해갈 수 없었군요! 요즘 SNS 에서 이거 엄마한테 질문하고 서로 답변 공유하더라고요. 하하하하.
저는 저한테 질문할 사람은 없지만 만약 정말 너무나 평범한 바퀴벌레라면, 그렇다면 내 소중한 사람이 변했다고 인지할 수 있을까, 인지한다면 사랑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겟어요.

blanca 2023-04-10 13:54   좋아요 0 | URL
카프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능하던 역할을 잃어도 사랑받을 수 있나? 이 질문을 바퀴벌레로 형상화한 것 같기는 한데 단도직입적으로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 거냐,고 아이가 물으니까 솔직히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뭔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라 더 그런가 봐요. 저는 그냥 ㅋㅋㅋ 이러고 말았어요.

앤디 2023-04-18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일전 이십대의 딸이 이 질문을 했을때 나의 대답은 -나도 ‘바퀴벌레‘로 변해서 딸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퀴벌레 다 이미 나는 벌레같은 사람이다

blanca 2023-04-19 12:01   좋아요 0 | URL
아, 아이가 듣고 싶은 답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5-04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좋아요 블랑카님! 블랑카님도 글 엄청 잘 쓰시네요. 알라딘에는 왜케 글 잘쓰시는 분들이 많은지ㅎㅎ 이 글보고 블랑카님하고 친해지고 싶었어요ㅎㅎ <변신>도 다시 읽고 싶어지고요^^

고양이라디오 2023-05-04 12:33   좋아요 1 | URL
역시 제 느낌이 틀리지 않았군요. 페이지를 넘겨보니 이달의 당선작이 수두룩... 멋지십니다^^b

blanca 2023-05-04 18:28   좋아요 1 | URL
기분 좋은 댓글이네요. ^^;; 감사합니다. 꾸벅.
 

나는 심한 저질 체력에 근육량도 형편 없지만 어떻게든 운동을 생활화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사설은 지난 주 일어났던 비극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한동안 운동을 쉬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많이 아주 많이 무리했다. 하필 1킬로 아령이 근처에 보이지 않고 평상시 무거워 잘 쓰지도 않는 3킬로 아령이 옆에 있길래 그걸 들고 상체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다.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 신 났다. 다음 날 지하철을 타며 모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다 걸어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아, 나 체력이 이렇게 올라오나봐. 이거야. 그 다음날은 석촌 호수 주변을 다 돌았다. 2.4킬로 정도? 비극의 서막은 그날 오후에 올랐다. 이상스럽게 몸이 가라앉았다. 열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로부터 과장 좀 보태 일주일 후에 깨어났다. 임파선도 붓고 열도 나고 입안은 다 헐고 약 때문에 속은 쓰리고. 내 몸에 가했던 그 모든 하중이 통렬히 나에게 복수했다. 이런 거였다. 결국 이럴 것을. 그 기간 나는 아주 몸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하루키가 왜 그렇게 몸타령을 했는지 젊은 시절부터 왜 그렇게 몸 관리 연설을 했는지 절절하게 이해가 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젊은 작가들이 쓴 이야기. 수상 작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코멘터리 북에서 성혜령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혜령 작가는 청소년 시기 암투병을 했다. 지금은 건강히 회복해서 직장도 다니고 있지만 그 경험에서 얻은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과 정기 검진이 주는 그것에 대한 각성, 나에게서 아주 긴 미래를 상정하지 않는 신중함, 그리고 지금 여기 이 현실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 그런 것들은 정말로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을 품고 나온 작가의 이야기 그 자체도.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는 죽은 자가 산 자의 꿈으로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인데 몽환적이면서도 유쾌하고 또 어쩐지 서글프다. 과거의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 속으로 찾아갈 수 있다면 나도 가고 싶은 날이 있다. 그건 아마도 중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던 날이 될 것이다. 나도 주인공처럼 우리가 시험 끝나던 날 사먹던 시장통의 떡볶이를 먹으러 가고 싶다. 주인공의 엄마가 좋아하던 커피포리에 빨대를 잘 조준해 달라 부탁한 마무리에 괜히 콧날이 시큰해졌다. 불가역성을 가능성으로 변환할 수 있는 건 소설 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겠지. 


성혜령의 <버섯 농장>은 도발적인 작품이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와 그 친구의 기묘한 복수 여정에 동행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지대에서 긴박한 클라이맥스를 형성한다. 언제나 그렇듯 사적 복수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제기와 지금 청년 세대들이 당면한 기성 세대와의 갈등의 지점에 대한 복합적 이해, 젊은 여성이 가진 자본으로 다시 그들이 계층화되고 그것이 가로막는 서로의 소통에 대한 예리한 통찰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남자를 과연 죽였을까? 


현호정의 <연필 샌드위치>를 읽으며 내가 왜 앓는 동안 그렇게 음식을 넘길 수 없었는지 그럼에도 단 음료에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나의 개별적 경험이 아니었다. 먹는다는 일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먹여야 한다. 내가 먹는 일은 때로 내가 억지로 연장하는 생으로 인해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이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이어질 수 있는 삶이 가진 은근한 폭력성. 그것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단순한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었다. 무심코 넘겼던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준 이야기였다. 


일곱 편의 작품이 고르게 잘 읽혔고 현실이 환상, 꿈, 과거와 교차하고 섞이는 서사가 많았다. 우리가 규정하고 확정하는 현실의 근간을 흔들고 진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탐색, 그럼에도 그 탐색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읽히고자 하는 의지가 보여 어렵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젊다고 할 수는 없는 나이지만 젊은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에 여전히 공명할 수 있다는 건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어떤 도전 의식을 일깨운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감상하고 감당하는 수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방향 전환을 모색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나를 깨어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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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04-08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읽고 싶어지는 리뷰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건강이 최고죠. 저도 요즘 아 이러다 갑자기 가는 수도 있구나 실감했어요. ^^;;

blanca 2023-04-08 16:57   좋아요 1 | URL
Persona님, 반갑습니다. 죽음이 사실 멀리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잊고 일상을 살다 한번씩 아프면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cyrus 2023-04-08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가는 책방지기가 <젊은 작가 수상작품집>을 읽고 계시던데, 오늘 <연필 샌드위치>에 묘사된 어떤 문장이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연필 샌드위치>에 대한 그분의 감상을 듣고 보니 초현실적인 느낌이 나더라고요. ^^

blanca 2023-04-09 09:57   좋아요 0 | URL
꿈 속에서 연필로 샌드위치 만드는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식이의 폭력성 같기도 하고 그 근저에 깔린 돌보는 자의 희생을 감춘 것 같기도 하고 묘하게 복합적 의미가 연상되는 작품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올해 수상작들은 생각의 여지가 많고 여운도 길었어요.

다락방 2023-04-10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순간부터 젊은 작가상 작품집 안읽어야지 하게 되었는데 블랑카님의 리뷰를 보니 또 읽어볼까 싶어지네요.
인생의 흐름을 같이 타고 있는 것 같아요, 블랑카 님과 저는요. 그래서 블랑카 님의 글을 읽는 것이 참 감사하고 좋아요.

blanca 2023-04-10 13:17   좋아요 0 | URL
제가 안 젊으니까 ㅋㅋ <젊은작가상 작품집>은 해마다 숙제처럼 읽습니다. 올해 좋았어요. 그리고 그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코멘터리 북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 놀랐어요. 인터뷰 내용들이 다 참 깊더라고요. 어떤 해는 솔직히 기대 이하인 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올해는 잘 읽히고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노안이 없는 젊은 그들이 부럽네요. ^^;;
 

자식을 키우는 일만큼 인생의 부조리를 강렬하게 느끼게 되는 경험은 없는 것 같다. 이를테면 내가 애를 쓰고 용을 쓴다고 해서 그 아이가 내가 바라는 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육자가 툭 무언가를 놓아 버리면서(이건 에고가 될 수도 있고, 포장된 모성애가 될 수도 있다.) 그 지점에서 아이는 제 인생의 방향과 소명을 찾아 잘 독립하기도 한다. 양육은 그래서 삶에 대한 연습과도 비슷하다. 내가 원한 바대로 계획한 대로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미가 있기를 소망한다.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 기대하지 않은 가르침을 준다.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다. 그 지점이 때로 더 좋기도 하다.





정말 좋은 책이다. 작법 책으로 환원해서 받아들이면 곤란할 정도로 인생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게 더 많은 책. 작가와 관련 없이 그냥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바르도의 링컨>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저자 조지 손더스가 시러큐스 대학 문예 석사 과정에서 25년간 젊은 작가들에게 한 강연의 핵심을 담은 책이다. 그가 선별한 체호프, 고골,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의 단편 일곱 편의 전문이 실제 실려 있고 이 작품들을 함께 읽는다. 그의 사전 안내 사항처럼 이 훌륭한 일곱 편의 단편은 "꼼꼼하게 구축된 세계 축적 모형"이므로 그것을 함께 읽는 과정은 결국 세계와 그 세계 안의 우리의 삶과 우리 자신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의 위트와 재치를 겸비한 조지 손더스의 안내와 해석, 문제 제기는 전략적 삶의 독해의 지점으로 우리를 끌어들임으로써 시야를 확장하고 삶의 축소성을 해체하고 확장한다. 지금, 여기에서의 자잘한 고민들 안에서 갇혀 있는 우리를 해방시켜 더 심원한 의미의 삶의 지평을 조감하게 해준다.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읽기를 지켜보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잠복된 욕망, 잊힌 기억들, 간과한 문제들은 다시 떠오르고 더 나은 해법을 향해 출항하는 여정에 그는 기꺼이 동행한다. 


제사에도 인용된 체호프의 <구스베리>를 통해 그가 처음으로 톨스토이를 만나 수영을 했던 일화를 통한 두 위대한 작가의 교감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기를 바랐던 두 마음은 각자의 위대한 성취를 통해 드러나고 작품을 통해 공명한다. 비를 맞으며 호수에서 수영하는 이반이 행복의 부조리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구스베리>는 결국 체호프가 사랑했던 톨스토이의 모순적인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응축체였던 것일 수도 있다는 저자의 해석은 우리가 결국 쓰기와 읽기를 통해 만나는 지대에 삶의 부조리함을 통한 연결의 실종을 복원하고 의미를 꿈꾸고 사랑을 지향하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나가야 함을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돌아와서, 그 부조리함 속에서 그럼에도 의미와 연결이 가능한 쓰기와 읽기에 대한 희망을 다시 찾는 이야기를 읽게 되어 기쁘다. 조지 손더스의 학생 시절, 교단에서 그에게 체호프를 낭독해 준 대작가 토비아스 울프가 쓰는 일에 대한 모든 무의미한 이야기를 일소시켜준 것처럼 그의 이야기 또한 읽는 이들에게 그런 의미를 준다. 사는 일도 그러하다. 언뜻 부조리하고 불합리해 보이는 나날들, 희망과 이상을 짓밟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 그 가운데에서도 나아갈 이유와 힘을 주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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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17 0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르도의 링컨 사두고 안읽었는데 작가의 다른 책도 블랑카 님은 읽고 이렇게 근사한 페이퍼를 적어 주셨네요. 저는 느끼는 바, 생각하는 바를 항상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스스로 저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데, 블랑카 님은 항상 정확하게 표현하시는 것 같아 그 점이 참 부럽습니다.
이 페이퍼도 언제나처럼 너무 좋아서 이 책도 담아갑니다.

blanca 2023-03-17 13:10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저도 쓸 때 그래요. 항상 그 언저리까지 갔다 마는 느낌, 답답해요. 아, 이 책은 정말이지 기대 이상이었어요.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좋은 책들이 계속 나와서 참 좋아요. 두꺼운 책은 부담 가지고 시작하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그 러시아 단편 읽는 느낌도 정말 좋았고, 무엇보다 작가가 글을 정말 잘 쓰더라고요. 문장 하나하나가 비범해서 참 부럽더라고요.

잠자냥 2023-03-17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살까말까하면서 계속 뒤로 밀리기만 했는데 블랑카 님 글 보고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땡투는 블랑카 님께. ㅎㅎ (근데 이번달은 그만 사야 해서 ㅋㅋㅋ 담달에 땡투 들어갑니다~)

다락방 2023-03-17 14:55   좋아요 2 | URL
저도 땡투 누르고 장바구니엔 넣어뒀어요. 문제는 언제 결제할 것이냐... ㅋㅋㅋㅋㅋ

blanca 2023-03-17 18:47   좋아요 2 | URL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도 소장하려고 줄도 엄청 그었네요.

그레이스 2023-03-27 08:09   좋아요 1 | URL
저도 장바구니에서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는데... 구매 버튼을 누르기로!

페크pek0501 2023-03-17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차하고 나면 비 온다는데 저의 경우 책을 사고 나면 꼭 더 좋은 책이 발견된다는...
blanca 님이 좋은 책이라 하시니 꼭 구매해야 할 것 같습니다...^^

blanca 2023-03-18 08:47   좋아요 2 | URL
페크님, 일단 선별한 단편 일곱 편 읽는 재미만 해도 이 책 살 가치가 있는데요, 그 소설들을 함께 읽는 거예요. 감상, 아쉬운 점, 저자의 일화. 정말 강의 듣는 느낌이었어요.
 
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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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좋을 때에 좋은 우정을 유지하기란 쉽다. 그러나 각자의 상황이 여의치 않고 하필 서로가 친구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누를 단추 앞에 서 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그때에도 우리는 담백하고 좋은 친구로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 삶이 엉망인데 하필 친구가 나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거기에 더한 무엇을 투척해 준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우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언 매큐언의 블랙 코미디는 여기에서 벌어진다. 기본적으로 그는 낭만화와 이상화를 경계한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그것을 둘러싼 페르소나로 사회에서 기능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참극은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터무니없이 힘을 잔뜩 준 진지한 희극에 가깝다. 고작 단지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서로와 자기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는 어리석은 존재다. 


여기서 만나 얼싸안았던 친구들은 떠났다.

각자 저마다의 과오를향해.

W.H. 오든 [십자로]


제사에 인용된 오든의 [십자로]는 <암스테르담>의 핵심 메시지를 응축하고 있다. 친밀한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믿어서 심지어 각자가 쇠락해졌을 때의 안락사의 동반자로 생각했던 클라이브와 버넌은 그 과오에서 결국 다시 만난다. 


마흔 여섯에 죽은 몰리 레인의 장례식에서 한데 모인 중년의 네 남자들은 남편 조지를 비롯해서 모두 어떤 시기이든, 어떤 형태로든 그녀와의 한 시절을 공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학교의 하숙집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차기 총리로 부상하는 외무장관 가머니 또한 그랬다. 그는 몰리에게 자신의 독특한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진을 찍게 한다. 이 사진은 세상에 드러날 시 그의 정치 인생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은밀한 비밀이었다. 그의 이런 복장 도착 사진 특종건을 둘러싼 긴장감은 언론인 버넌과 작곡가 클라이브의 갈등에서 정점에 이른다. 둘의 의견차는 작곡가 클라이브가 하필 자신의 음악적 영감의 순간에 목격하게 되어 무심코 방관하게 된 강간 사건의 증언을 둘러싸고 우정의 파열음을 내고 만다. 가머니의 사진 보도로 언론사에서 조기 퇴직을 하게 된 버넌은 자신의 좌절감을 친구 클라이브가 보낸 엽서에 모두 쏟아내고 마침내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클라이브는 클라이브대로 자신의 은밀한 방조를 경찰서에 고발한 친구 버넌에 대한 배신감으로 몸을 떨게 된다. 서로의 윤리적 결점을 각자의 위치에서 심판하고 고발하며 둘은 각자의 윤리의 염결성과 입지의 정당성을 변호하게 되지만, 재회한 곳은 바로 그 서로가 얼싸안았던 그 지점이다. 암스테르담은 결국 이 두 친구에게 남긴 마지막을 깔끔하게 끝맺음 할  합리적이고 호의적인 장소로서의 첫인상과는 달리 의도치 않았던 죽음의 장소로 둔갑하게 된다. 배신과 어처구니 없는 사고의 장소로.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결백하지 않다. 윤리의 자잘한 체로 거르면 그 위에 떠오를 많은 죄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영위하는 우리들을 포박한다. 그 위선이 드러날 때 각자가 추구했던 이상화된 길은 오명과 오점으로 얼룩진다. 선한 처음의 의도에서 벗어나 저마다 목표하지 않았던 엉뚱한 곳에서 서로 반목하고 어처구니 없는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삶의 아이러니를 이언 매큐언보다 더 생생하게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는 작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서로 사랑했던 친구를 죽이게 되는 비극이 희극처럼 느껴지는 건 그게 바로 삶의 아이러니의 핵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진짜 나의 그 머나먼 간극에서 이언 매큐언이 만들어낸 정밀한 촌극. 인간은 생각한 것처럼 대단치도 그렇다고 함부로 폄하할 존재도 아니라는 명징한 자각을 주는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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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7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7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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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안전하다는 인식은 환상이다. 이 환상은 곧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다시 그 환상으로 귀환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지금 이 상태가 공고한 것처럼 믿는다. 믿어야 견딜 수 있는 게 일상이므로.


그런데 이 환상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깨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조현병도 그 중 하나다. 이 책의 저자 에즈메이 웨이준 왕은 대만계 미국인으로 예일대 학생이었다. 조현정동장애 양극형이라는 복잡한 진단명은 그녀가 스스로의 삶을 설명하는 서사를 해체한다. 즉 그녀는 스스로의 서사를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조직해야 하는 평생의 과업을 부여 받는다. 이민자의 자녀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이비리그 대학생이 되었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병 때문에 교정에서 쫓겨나다시피 한다. 사람들은 다른 정신질환보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을 더욱 위협적으로 인식한다. 더 이질적으로 느낀다. 그녀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생긴 위계의 가장 최하위층을 점했던 환자들이 조현병 환자들이었다는 얘기는 정신 질환자들의 공간 속에서도 '한 존재의 파멸적 중단'을 암시하는 조현병에 대한 공포를 암시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조현병을 진단 받은 저자가 매일 사투를 벌이며 삶 속에서 '조율하는 나날들'에 관한 이야기다. 중단된 학업을 다시 이어가고 다시 사랑을 찾고 우정을 회복하고 길을 떠나고 직업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이야기는 묘하게도 무겁거나 비극적이지 않다. 그 안에서 찾아나가는 균형점, 자신의 정신병을 삶에 정체성에 통합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그 안에 있지 않다 할지라도 생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여러 비극적인 일들에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간접적 참조점을 제시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신비롭다. 막연한 희망, 위선, 위장의 장막이 벗겨지고 드러난 생의 속살은 차갑고 날카롭지만 우리가 그 안에서 숨쉬는 일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 준다. 슬프고 괴로워도 뚫고 나가는 그 어떤 지점에서 우리 모두는 만난다. 


저자는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믿는 '코타르 증후군'을 경험하게 된다. 살아있기에 아플 수 있고 이별로 인한 상실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아예 해체되는 경험이다. 이 안에서 나는 이미 죽었으므로 사람들을 사랑할 수도 없고 따라서 헤어질 수도 없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고통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묘한 경험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옥의 형벌 속에서는 죽음이라는 희망조차 없으며 지독한 고통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사실, 상처, 비탄은 그 나름대로 끔찍한 것들이지만, 지옥의 형벌을 받는 죽은 여자에게는 무척이나 인간다우며 살아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pp.236


에즈메이 웨이준 왕은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감히 그 지옥에서 걸어나와 다른 형태의 '조율하는 나날들'을 맞이하기를 기원해 본다. 그녀가 통과한 그녀만의 '조율하는 나날들'이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되든 나는 살아가게 되어 있고, 내 삶이 어떻게 풀리든 나는 것을 견뎌내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그녀의 말이 주는 희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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