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지는 일에 흔히 연상되는 이미지는 귀여운 아기다. 임신하기 이전에 내가 아픈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거나 극심한 사춘기 반항아를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비단 임신, 출산뿐만은 아니다. 완벽한 인생의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현재 내가 겪는 일들을 비정상적인 것이나, 과도기적인 측면으로만 폄하하게 한다. 이 어려움만 지나가면, 다음에는 완벽한 이상향의 시기가 올 거야, 와야 마땅해 같은 생각. SNS에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타인들의 찰나의 이미지는 행복한 장면들 뿐이다. 인생은 그런 순간들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는 생각은 더 강화된다.
아이를 낳았다. 귀엽기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이를 낳으면 두 시간마다 일어나서 아이에게 수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잠이 들 만하면 다시 반사적으로 일어나 아이의 배고픔을 달래줘야 한다. 이 시기만 끝나면 평화로울 거야. 그러나 이후 아이가 걷기 시작하며 사방의 모든 것을 입안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잠시도 방심할 틈이 없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 굴러 떨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제 유치원에만 가면 나에게도 자유가 올 거야. 기관에 가면 평화로운 시간은 막간에 아주 잠깐뿐, 끊임없이 각종 집단생활 때문에 감염병에 걸려온다. 뭔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중요한 약속도 잡지 못한다. 아이가 드디어 학교에 간다. 드디어 본게임 시작이다. 사교육을 시켜도 시키지 않아도 온전히 그 선택은 나의 몫이다. 그렇게 비장하지 않아도 괜찮았겠지만, 그러나 내 아이 앞에서 완벽하게 쿨하기란 어렵다.
그리고, 드디어 클라이맥스가 펼쳐진다. 사.춘. 기. 내 생살 같았던 아이를 떼어 놓으려면 이 시기의 혼란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언제까지나 엄마가 세상의 전부고 엄마 말이 전부라면 그 아이는 영원히 성장할 수 없다. 반항도 하고 거부도 하고 나만의 비밀스러운 세계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말만 쉽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 세상의 불완전함과 불합리함, 삶의 부조리를 가장 실시간으로 농축하여 체험하는 일이다. 노력한다고 선의를 가진다고 다 제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이 세 책에는 우리가 부모가 되는 일에서 감히 상상하지 못할 반경을 넘어 성장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공통점은 이 세 아이들이 아프기 전 모두 부모에게 기쁨을 주던 빛나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는 점과 이들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키우려 노력했던 부모들이 뒤에 있었다는 점이다. 바깥에서는 비난할 수도 있는 아이들의 모습 안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부모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자기 아이가 자라나 다른 아이를 가해하거나 약물에 중독되거나 양극성 질환을 앓게 될 거라 상상하거나 생각하며 아이를 대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일은 우발적 사고처럼 일어난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취약한 우발적 사건, 사고에 내 생살을 내어놓는 일과 다름 아니니까.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거나 아플 수 있다. 언제나 건강하고 언제나 나를 으쓱하게 해줄 훈장으로 아이를 여기게 된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나의 에고는 아이로 인해 부풀어 오를 것이고 인생의 본질적 취약성,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나의 성취를 나에게서 쉽게 떼어 놓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건강한 분리는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세 책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다.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아팠다는 점이다. 바깥으로 드러내어 놓지 않은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사춘기를 만나 발현된 아이들의 질환에 대한 대처 또한 어렵게 했다. 사람들은 비난하고 쉽게 비판한다. 때로는 심지어 예비 범죄자로 아픈 아이들을 대한다. 최근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들로 이런 편견들은 더 강화되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에 대한 부모의 책임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쉽게 이야기할 대목이 아니다. 내 품에서 벗어난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하여 그 임계점을 상정하는 건,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어지는 그 부모, 자식 관계의 아이러니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활시위에서 떠난 화살처럼 자유로운 존재이고 부모에게는 그 화살의 경로를 강제로 수정할 어떤 권리도 힘도 없다. 아이가 질병을 얻어 방황하거나 심지어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도 인간사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아이가 준 행복했던 기억들은 이따금씩 열어보는 보물상자로 간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아이 대신 삶을 대입해도 말이 된다. 세 부모가 예상치 않았던 경로로 틀었던 아이들과의 시간을 통해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성장과 도약이 때로는 우리가 가장 바라지 않았던 형태로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난 자리에 남는 심오한 깨달음을 공유하게 해주어 저자들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