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르노빌의 노동자들. 사진/ I. 가브릴로프. <북폴리오> 제공
체르노빌의 노동자들 = 1986년 체르노빌이 폭발 사고로 황폐화된 지 8일이 지난 뒤 노동자들이 핵발전소의 파괴된 원자로에서 자신들을 밖으로 실어 나를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수습팀이 훈련도 받지 않고 허술한 얼굴 가리개만 쓴 채 체르노빌에 투입되었다. 방사능 수준이 너무 높아서 버스 운전사들은 발전소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수습팀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고향지역으로 돌아와 아파 드러누웠지만 연락이 잘 안 되어 지역 병원들은 자신들이 방사능 오염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소년 피오네르들. <북폴리오> 제공
소년 피오네르들 = 이들은 “콜호스 수확의 최우수 전사”가 되어 부상으로 배지를 받았다. 당은 예전에 교회가 그랬듯이 아주 어린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볼가 강의 짐꾼들. <북폴리오> 제공
볼가 강의 짐꾼들 = 볼가 강의 짐꾼들이 차와 빵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차는 각설탕에 적셔 빨아 마셨다. 전쟁 전 차르 시대의 기준에서 볼 때 음식과 신발이 형편없던 이들은 볼셰비키 체제하에서 이와 같은 배급품을 받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일인당 곡물 생산은 1960년대 중반에 이르도록 1913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 바쿠 유전지대. <북폴리오> 제공
바쿠 유전지대 = 1933년에도 지금처럼 환경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스탈린은 외국 석유회사들이 이권을 착취하던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바쿠에서 볼셰비키 선동가로 활동했다. 이 나라의 거대한 석유 및 광물 자원은 당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이후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와 가스 생산국이 된다.

» 아버지와 아들. <북폴리오> 제공
아버지와 아들 = 러시아의 지방 거리에서. 지방에서는 달 표면처럼 어떤 사건이나 변화도 없었다. 봄이나 가을에 진흙을 피하려고 깔개를 깔았다. 여름에는 모든 행인들이 뒤에 작은 흙먼지 구름을 달고 다녔다. 겨울이면 거리는 온통 얼음투성이었다.

» 여성 농민. <북폴리오> 제공
여성 농민 = 경제가 붕괴하면서 식량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많은 여성들 중 한 명. “해방자”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 농노를 해방했다. 70년 뒤 스탈린이 새로운 형태의 농노제를 도입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 농촌 여성은 “노예의 딸, 노예의 어머니, 남편의 노예라는 삼중 노예 상태”의 전통적인 운명을 다시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집단농장의 점호. <북폴리오> 제공
집단농장의 점호 = 모스크바지역의 한 농장. 집단농장들이 과학적으로 경영되고 고도로 기계화되었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착취당하는 여성 농민들의 원시적인 힘에 의존했다.

» 낙천적인 러시아인들. 사진/F. 구바예프. <북폴리오> 제공
낙천적인 러시아인들 = 러시아인들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집에서 만든 보드카로 미래를 위해 건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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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죽음의 현장. <북폴리오> 제공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죽음의 현장 = 남자들이 먼저 죽고, 그 다음에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여자들이 죽었다. “가장 끔찍한 광경은 꼬마들이었다.”고 한 당 활동가는 썼다. “굶주림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어린아이의 자취를 깡그리 앗아갔고 그들은 고통받는 괴물을 닮아갔다. 두 눈에만 아이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가는 곳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엎드려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얼굴과 배는 부풀어 오르고 두 눈은 멍했다.”

» 부랑아의 작별. <북폴리오> 제공
부랑아의 작별 = 1921년 볼가 강 유역에서 끔찍한 기근이 발생했다. 신생 소련과 교역한 미국인 공업자본가 아먼드 해머는 “팔다리가 막대기처럼 시들고 풀을 뜯어 먹어 배가 끔찍하게 부풀어 오른 아이들”에 대해 기록했다. 미국의 원조에도 불구하고―볼셰비키는 그 후 되풀이된 대규모 기아 사태에서와는 달리 이 기근을 부인하지 않았다―수백만 명이 아사했다. 탐보프 주에서 볼셰비키 통치에 맞서 궐기한 농민들이 무더기로 총살당했다.

» 블라소프와 동지들. <북폴리오> 제공
블라소프와 동지들 = 블라소프와 동지들은 1946년 8월 1일 루뱐카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블라소프다. 그와 함께 11명이 교수되었다. 이 사진은 스탈린과 고위 지휘부를 위해 특별히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루뱐카에서 행해진 교수형과 관련해 유일하게 알려진 사진이며 블라소프의 KGB 파일에서 나왔다. 전쟁이 끝난 뒤 독일 협력자들 수천 명이 소련으로 송환되어 총살당했다. 1941년의 키예프 포위와 모스크바 전투의 영웅이었던 블라소프만이 스탈린의 관심을 끌었다.

» 모스크바에서 장보기. 사진/가브릴로프. <북폴리오> 제공
모스크바에서 장보기 = 1970년대 중반 사람들은 소도시에서는 구할 수 없는 식품과 옷가지를 사기 위해 소련 전역에서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열차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보조금 덕분에 비행기표가 엄청나게 저렴해 비행기도 주부와 물건으로 미어터진 가방으로 꽉 찼다.

»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B. 미할료프킨. <북폴리오> 제공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 = 1980년대 초. 사진에서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마을 생활은 야만적이었던 집단화와 숙청에 대한 기억 때문에 여전히 왜곡되어 있었다. 밀고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공동체 의식이 파괴되었다. 농업은 집단농장으로 인해 여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차르 시대 곡물 수출국이었던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이제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고 충분한 빵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 아르헨티나에서 수입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공산주의의 몰락 1991년 8월 공산주의 쿠데타가 실패한 뒤 잘려나간 마르크스와 레닌의 두상. 사진/G. 보드로프. <북폴리오> 제공

<북폴리오> 제공

중국과 영국에 이어 지난 20세기 러시아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20세기 포토다큐 세계사 3-러시아의 세기>(지은이 브라이언 모이나한)를 연재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무도회에서 1917년 혁명으로, 스탈린의 잔혹한 시대에서 냉전의 시대로, 글라스노스트에서 1993년의 제2차 혁명으로, 그리고 현대 러시아의 혼란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솔제니친,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등 그들의 놀랍고도 극적인 모습이 실려있다. 여기 대부분의 사진은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도 출판사 <북폴리오>의 도움을 받았다.


러시아의 세기는 모두 6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순서는

1. 로마노프 왕조의 나라 2. 붉은 혁명 3. 볼셰비키 4. 예술의 꽃 5. 노동자의 삶 6. 사회주의의 죽음 등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122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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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해 출판시장을 대표할 만한 책들은 어떤 것들일까. 독자들, 나아가 세상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출판사 대표 및 편집장 20명에게 들어보았다.

이들이 추천한 책들 가운데는 방대한 사료와 치밀한 논리로 기존 연구의 공백을 메워주는 ‘묵직한’ 책들이 적지 않았다.

사생활의 역사’ 처럼 국내에서 완간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책들도 있었다. 또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맞서 그 현실적 대안을 고민한 책들과 우리 사회의 치부를 날카롭게 꿰뚫는 사회과학서도 추천 목록에 포함됐다. 경제·경영서 분야에선 올해 출판계를 좌지우지한 우화형 자기계발서보다는 부의 원칙과 미래를 가르쳐주는 책들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향신문이 21일 국내의 대표적인 단행본 출판사 대표 및 편집장 20명을 대상으로 분야별 ‘올해의 책’을 추천받은 결과 인문 분야에선 ‘사생활의 역사’(5명)가 가장 많았다.

최근 전 5권으로 완간된 ‘사생활의 역사’(필립 아리에스 편집)는 2,000여년의 서양사 전반을 공적인 영역보다 사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춘 문화사이자 사회사다. 거대 담론 중심에서 벗어나 미시사·일상사로 대표되는 프랑스 아날학파의 시각으로 로마제국부터 현재까지를 다룬 역작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이제까지의 모든 인문·사회과학적 흐름이 이 시리즈에서 합쳐지고, 이후 모든 인간의 탐구는 이 시리즈에서 연원한다’는 평가를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으로는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김경원 외)가 꼽혔다. 일상생활 속에 자주 쓰이는 낱말들의 의미와 사용법, 오류 등을 소개하는 기획이 돋보인다는 평을 일찌감치 받았다. 정병준 목포대 교수가 쓴 ‘한국전쟁’ 은 국내 역사학자가 쓴 최초의 한국전쟁 연구서로 주목을 받았다. 방대한 사료를 비교·분석해 한국전쟁의 형성과정을 추적해낸 노작이라는 평가다.

박원순 변호사가 쓴 ‘야만시대의 기록’ 도 한국 고문의 역사를 최초로 파헤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총 3권에 걸쳐 일제시대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국내외의 고문 사례들을 통사적으로 정리해내 참혹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인권’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한국 근대 인식의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근대를 다시 읽는다’, 미시사의 전범으로 꼽히는 ‘몽타이유’ 도 추천됐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쓴 ‘국가의 역할’ 이 많은 표를 얻었다. 신자유주의에 과연 다른 대안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아가 현실적으로 어떤 정책이 가능한 대안인지를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제시했다. 이를 통해 경제에 있어 국가의 역할과 개입에 대해 균형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 정운영씨의 유고 칼럼집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가 뒤를 이었다.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최장집 교수가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의 실천 등을 분석한 ‘민주주의의 민주화’, 지난해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황우석 사태’를 기록한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한학수)도 추천됐다.

문학 분야에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과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가 나란히 꼽혔다. ‘우리들의…’는 올해 ‘공지영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한국 서적으로는 4년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소설. ‘아내가…’는 결혼제도의 통념에 대해 솔직하고 명쾌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경제경영서 분야에선 ‘부의 미래’, 뒤를 이어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박경철)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단순히 돈을 잘 버는 방법보다는 경제 현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과학 분야에선 ‘평행우주-우리가 알고 싶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미치오 가쿠)이, 예술 분야에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세기의 눈’(피에르 아술린)이 분야별 올해의 책으로 꼽혔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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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12-2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렇군요.
 

주식 용어에 ‘저평가주’라는 게 있습니다.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주식입니다. 이런 주식은 조만간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올해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2월초까지 출간된 책이 4만3천여종. 이 가운데 일부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대부분은 외면당했습니다. 과연 그들이 제대로 평가받았을까요. 대표적인 단행본 출판사 대표 및 편집장 20명에게 놓치기 아까운, 이른바 ‘저평가된 책’들을 추천받았습니다. 주로 인문서라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쯤 눈길을 줘보길,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어나가길, 그래서 지식의 깊이를 더하길 바랍니다.

대표적으로 저평가된 책으로는 ‘조선의 문화공간’ 이 꼽혔다. 조선시대 500년을 풍미한 사대부 87인의 삶을 이들이 마련한 문화공간을 배경으로 펼쳐낸 독특한 책이다. 10년을 파고든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 조선시대 문화공간에 대한 정밀한 고증과 함께 옛사람들이 남긴 아름다운 작품들이 가득하다. 출판사측은 “대중성이라는 미명하에 흥미 위주로만 나가지 않았고, 미련스럽게 4권을 한꺼번에 낸 게 부담으로 다가간 것 같다”고 밝혔다.

마주보는 한일사’근대를 다시 읽는다’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도 책의 기획이나 내용에 비추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마주보는…’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양국의 역사교사들이 매년 양국을 오가면서 토론한 지 5년 만에 내놓은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개항기까지 5,000년 한·일사를 최초로 공동저술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웅진지식하우스 이수미 대표는 “인문학의 위기가 실감나는 한 해의 희생양”이라고 평가했다. ‘비트겐슈타인 선집’ 도 그 출간 의의가 높이 평가됐다.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은 “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사상과 삶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트겐슈타인의 주요 저작들이 7권의 선집으로 완간됐다는 것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면서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할 책”이라고 추천했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와 ‘한미FTA 국민보고서’ 는 지난해와 올해 우리 사회를 뒤흔든 ‘황우석 사태’와 ‘한·미FTA’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출판의 사회적 책무를 상기시켜준 책들이다. 김기옥 한즈미디어 대표는 ‘여러분…’에 대해 “기록하고 반성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대개의 언론매체들과 독자의 반응은 별로였다”고 말했다.

여론조작’과 ‘부와 권력을 찾아서’ 는 저자들의 비중에 비해 관심을 크게 얻지 못한 책으로 거론됐다. ‘여론조작’은 세계적 석학이자 비판적 지성인 노엄 촘스키와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권위자 에드워드 허먼의 공저로 미국 패권주의 외교정책과 주류 언론의 기만적 행태를 파헤친 현대 미디어론의 고전. ‘부와…’는 중국학의 대가 벤저민 슈워츠의 주저로 중국의 계몽사상가 엄복의 눈에 비친 서구사상과 그 한계를 되짚어본 책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사가 마리우스 B 잰슨의 ‘현대 일본을 찾아서’ 도 ‘놓치기 아까운 책’으로 추천됐다. 책세상 문선휘 편집장은 “텍스트의 내용은 물론 장정과 책을 만든 공이 대단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인류사 속의 크고 작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순수한 기록을 모은 ‘역사의 원전’ 도 저평가된 책으로 추천됐다. 장인용 지호 대표는 “기획부터 번역, 편집까지 대단한 역작임에도 저자의 전작인 ‘지식의 원전’에 치인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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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 다섯 권이 마침내 완간되어 나왔다.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의 책임 편집 하에 일급 역사학자 40명이 집필에 참여하여, 모두 5천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텍스트와 3000여 점의 삽화로 엮어낸 이 책은 실로 기념비적인 대작.

지난 2002년에 1권 <로마 제국부터 천년까지>, 3권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 4권 <프랑스혁명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가 번역되었다가, 이제 2권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와 5권 <제1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가 마저 출간되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2천년 역사의 장대한 흐름이 완결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공공성 강화될수록 사생활 소중

사생활의 역사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은 아리에스였다. 따라서 이 책 다섯 권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원칙을 이해하려면 우선 제3권에 나오는 아리에스의 글을 유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설명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 그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시대를 대조한다. 하나는 개인이 공동체적인 제도와 집단행위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가 있는 중세시대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그러한 공동체 제도와 집단행위로부터 개인이 분리되어 있는 ―그의 표현을 옮기면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받는”― 19세기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유럽사는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공동체 속에서 영위되던 시대로부터 ‘나’의 행위, ‘나’의 느낌, ‘나’의 삶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로 이행해 간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런 발전이 정점에 도달했던 시기가 19세기로서 이때는 ‘프라이버시’의 황금기 혹은 개인주의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이때의 개인주의를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가정 중심의 개인주의’라 부를 수 있다. 이 시기에 가정은 세상의 거친 흐름 가운데에서도 애틋한 정을 나누며 행복을 일구어내는 따뜻한 곳,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성(城)과 같은 곳이 되었다.

» 프랑스 혁명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다룬 <사생활의 역사4>에 실려있는 그림으로 앙리 제르벡스의 <마튀랭 모로의 결혼>(1881년·파리)이다. 실존 인물인 모로씨의 아들이 결혼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당시 결혼식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사진 새물결 제공
그렇다면 왜 공동체보다는 가족이 그토록 소중해졌는가? 왜 사생활에 그토록 높은 가치를 두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공공 영역이 도처에 강력하게 존재하며 사람들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가장 뚜렷하게 발전한 현상은 다름 아닌 국가기구의 강화였다. 사실 근대사의 주요 내용은 대부분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조세 수취와 군사의 강화, 국가 간의 치열한 전쟁, 행정 조직의 비대화·관료화, 그리고 이런 것들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 등이 기존 역사학을 구성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이런 근대적인 ‘발전’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억압하고 존재를 왜곡시키는 외부의 힘으로 작용하였다. 공공성이 강력해질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위협받는 개인의 독자성, 혹은 내면의 가치를 지켜내야 할 필요 역시 커진 것이다. 결국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은 공공성의 강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러므로 사생활의 역사는 정확히 말하면 공공성과 사생활 간의 ‘관계’의 역사여야 한다.

사생활의 역사는 보수성과 혁신성이 교묘하게 중첩되어 있다.

이 책에서 조명하는 사람들은 일반 서민들보다는 주로 사회 상층, 즉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이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주체성과 내밀한 감수성을 지켜나가고 또 그런 것들을 사료로 남길 여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비좁은 오두막집에서 삼대가 함께 잠자리에 드는 농민들 입장에서야 무슨 사생활이 가능하며 무슨 회고록을 집필하겠는가. 자연히 이 책은 근대적인 프라이버시가 상층에서 하층으로, 또 도시에서 농촌으로 확산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면모를 띨 수밖에 없다.

인간에 대한 새삼스런 재발견

그러나 이 책은 기존 역사서와는 분명 다른 혁신적인 면모를 띠고 있기도 하다. 왕조, 국가, 자본주의, 산업화 등의 거대한 흐름만 주목하다 보면 자칫 인간을 획일적으로 파악하기 십상이다. 제1권의 첫머리에서 뒤비는 “기술 및 국가 통제의 급속한 발달과 더불어 개인이라는 존재를 방대하고 두터운 데이터뱅크 속에 들어있는 숫자로 만들어버리고 말 위험”을 경고하였다. 인간은 거대 서사를 구성하는 한낱 부속품같은 존재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성의 발전의 이면에 눈을 돌려서 인간의 다양한 존재 양태를 살핀다는 것은 표면적인 느낌보다 훨씬 더 진지한 문제제기일 수 있다. 사생활의 역사의 심층적인 의도는 인간에 대한 새삼스러운 재발견이며, 달리 말하면 인간의 본질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생활’ 혹은 ‘프라이버시’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

이 책의 중대한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핵심 개념의 모호성이다. 이 책은 사생활이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국가 혹은 공공성과 관련이 없는 것’ 식으로 네거티브 방식의 접근을 취한다. 그러다 보니 ‘사생활의 역사’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은 시대마다 다르고 같은 시대라도 지역마다 다른 결과가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큰 단점이지만 다른 한편 이 책의 장점으로도 작용한다. 각 연구자들은 음식, 가옥과 가구와 같은 기초 생활 요소들, 마을의 관습, 개인의 독서 경험, 성생활과 내면의 예민한 감수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전공으로부터 풍성한 이야기거리들을 길어온다. 이 책은 그 동안 다양하게 발전해 온 프랑스 사학의 성과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즉, 일상사, 심성사, 미시사, 역사인류학, 풍속사, 건축사, 미술사 등의 여러 분야에서 성취한 내용들이 개성있게 빛을 발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느슨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보여준다’는 말이 이 책보다 더 잘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인상적인 그림들은 단지 텍스트의 보조 자료가 아니라 때로는 수백마디 말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해 주곤 한다. 텍스트들 역시 흥미진진하여 그야말로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게 만든다. 이 책은 정말로 읽고 보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 된다.

뒤비는 서론에서 이 책이 ‘광범위한 일반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전반적으로는 이 주장이 타당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뒤비 자신이 다른 곳에서는 이 책이 전문 역사가들의 흥미를 북돋우고 다른 연구를 자극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역사 지식과 기존 연구서들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 교양층과 전문 연구자 층을 매개하는 중간 수준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 복고 왕정 시대에 낭만적 사랑의 기호 체계가 드러나 연인들 사이의 순결한 감정 토로를 자극했다.그림은 <연인들의 은밀한 이야기>(1820년경. 파리. 장식예술도서관). 사진 새물결 제공
공과 사의 관계에 성찰 제시

오늘 우리가 이 책을 읽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이번에 출판된, 20세기를 다룬 마지막 5권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원래의 아리에스의 개념을 따르면, 국가기구가 강화되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사생활이 강화된 현상, 즉 공(公)과 사(私)가 대립되는 현상은 19세기에 정점에 달했다. 그 이후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여기에 다시 한번 변화가 일어났다. 사생활은 자신의 거처인 가족을 떠나 공공 영역으로 확산되어 가는가 하면 반대로 공공성이 거침없이 우리의 집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이전의 네 권은 거의 전적으로 프랑스를 연구 대상으로 했던 반면 5권에서는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비교적 많이 포함하는데, 이런 연구를 통해 유럽 여러 지역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직장은 갈수록 가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예컨대 생일은 직장 동료들이 다 알고 축하하는 공개사항이다), 반면 바깥 세계에 속하는 시장과 정치권의 일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곧바로 거실에서 논의된다. 공공성과 프라이버시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항시 변동한다. 아마도 우리 사회야말로 컴퓨터 통신의 발전으로 사생활의 공공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는 곳이 아닐까?

우리 삶을 구성하고 규정하는 공과 사의 거대한 두 축이 빚어내는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 이 책은 이런 문제에 대해 명백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들은 그들 나름의 진지한 성찰의 사례들을 우리에게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답을 찾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주경철/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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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2 1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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