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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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쥔 물과 같은 내밀한 욕망을 보았다. 

질금질금 흘러내리고 마지막까지 손에 남은 것을 보았을 때 드는 안도 또는 연민은 

바닥에 쏟아진 콜라처럼 진득하게 말라간다. 예전의 그 맛, 냄새, 빛도 아닌 악취의 물질.

변해가는 점도와 질감은 치우기도 놔두기도 어려워진다.

스승과 제자는 그렇게 됐다.

마치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 감췄어야만 했던 것을 보였을 때 

나타나는 혐오는 사랑의 다른 말인 것이다. 

서로가 사랑했던 서로의 모습을 박제하기란 관계에 대한 질긴 애착인 셈이다. 


파멸적이다. 사랑의 금형이 여러가지인 것은 감춰진 것들을 본인도 알 수 없어서인데, 

알면알수록 우리를 채운 것들에 대한 이물감은 더욱 커져간다. 

섬세한 시적 감수성으로 포장된 겉면을 뜯었을 때의 기대는 반란을 일으킨다. 

은밀한 관계로 상징되는 은교는 묘한 흥분상태로 이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에대한 엿보기는 투명한 돋보기 앞에 증폭된다. 


읽는 내내 들키지 않으면서 엿보는 재미에 빠졌다.

두 남자의 관계, 그것의 성격을 드러내고 변화시키는 한 여자의 밀고 당기기는

독자의 욕망까지도 탐닉하는 저자의 못된 욕망을 드러내었다. 

물론 자신의 것도 드러난 것은 알고는 있겠지. 

그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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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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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인류의 위협이 초월적 존재 앞에 겸손해 질 수 있을까.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p. 415


가장 가까이 있는 수 많은 존재들에게서 느껴지는 불안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국제 사회나 주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을 보면 ‘악’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월함이 곧 파괴와 살육으로 이어져왔던 인류의 역사를 대충 훑어도 인류는 진화와 문명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 말인지 안다. 버려지는 식량과 굶주리는 인간, 비용과 이윤을 위해 재단되는 노동, 구속되어진 신체와 삶에 신음하는 사람들, 인종과 종교, 문화와 경제, 영토 등등의 이유로 제 명을 다 하지 못하는 상황들...


문명은 한 가지 편의를 알려 줄 때마다 백 가지의 악을 감춘다. – 허먼 멜빌


이 소설에서 미덕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내리는데, 공존, 공생을 위해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한 경외심이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를 뒷받침하고 있지 않나 싶다. 하기 어려운 것, 우리는 그것을 채득하기 위해 혹독한 훈육이 있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비관적인 내용이 가득하다. 우리가 이 따위로 진화해왔지만,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번식력에만 있지 않다라는 약간의 가능성도 열어둔 게 작가가 발휘한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평화와 화합이라는 슬로건을 단 국제적인 쇼가 한창이다.

Inspire a generation! 을 주제로 한다는데, 이 소설이 주는 영감은 SF(Social Science Fiction)의 걸작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신인류의 탄생은 현생인류의 한계를 보여주고, 신인류의 인격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간결하지만 절실한 메세지가 인상적이다. 우리가 신인류의 인격에 어떤 태도와 방향을 가져야 하는지는 명확한데 말이다. 


이 소설에 또렷하게 보여지는 인류에 대한 혐오에 격한 공감을 하면서도, 그것 또한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씁쓸함 마저도 좋게 느껴진다.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게 쓰다니... 싫은 듯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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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07-3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이 무척 좋았어요. 무거운 주제를 정말 재밌게 쓰기도 했고, 인류에 대한 혐오와 기대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읽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기도 하고. ㅎㅎ

라주미힌 2012-07-31 09:27   좋아요 0 | URL
이 사람 책 두 권이나 더 갖고 있으면서도 이 책부터 읽게 되었네요.. 흐흐흐.
다 읽어볼 생각이 확 들데요...

라로 2012-08-0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소설이었군요!!^^;;
싫은 듯 좋다니,,,,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줘봐봐요.ㅎㅎ

라주미힌 2012-08-02 09:46   좋아요 0 | URL
맛있는 계란탕같은... 철장에서 기계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맛은 별개인 것이 되버리는... 그런 류? ㅎ... 날도 더운데 건강관리 잘 하세용...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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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대상을 두고 무지막지하고 잔악하게 행해졌다는 점뿐만 아니라 끄집어 내면 여러 면에서 성폭력과 나치즘은 유사한 점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무찔러야 하는 것들의 증오의 근거로써 이 둘의 연관성을 굳이 연결하였다. 그들의 증오는 이유가 없지만, 우리가 가진 그들에 대한 증오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이런 식의 서술에는 문제가 있다. 죄악의 본질을 인간의 비이성, 비인간적, 비정상, 비윤리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까발려서 정의를 얻겠다는 식의 전개는 지극히 소설적이고 편해 보인다. 우리는 감춰진 것들로부터 고통과 억압, 상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이뤄지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또한 만능 캐릭터가 짠하고 나타나 그것을 깔끔하게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도 않는다. 단지 증오에 대한 증오의 순환고리를 끊는 것은 철저하고도 완벽한 복수를 통해서 얻을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맛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만 묻어 난다. 그래서 말초적이다. 잘 짜인 소설이고 몰입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반복적으로 이런 소설에서 그런 쾌락을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간판만 바꿔 다시 나오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새롭게 보이지 않듯 비슷한 쾌감도 반복되면 불감증이 오기 마련 아닌가. 감각도 기억력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에게 성격을 부여하고 여러 사건에 인물들을 잘 배치해 놓은 것은 소설이 가진 장점이지만, 이야기 이외의 것에서 무언가를 끄집어 내려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 그런 점만 놓고 본다면 데이빗 핀처 감독이 만든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 소설이 가장 중점적으로 잘 다룬 부분은 그것이기 때문이니까. 사회적인 것은 액세서리 수준이고 영화에서 그것을 보여주기엔 너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니까 과감하게 잘 쳐냈다. 그래서 데이빗 핀쳐의 영화는 단순하고 싱겁고 뭔가 빠진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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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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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눈이 사진기가 아니어서 아쉬운 순간이 가끔 있다. 표정에 가려진 감정이라던가, 행위 속에 감춰진 관계와 상황들을 포획하는 일은 발명품만의 기능이니까. 물론 기계가 가지는 이런 우월함이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럼에도 늘 현재적일 수 밖에 없게 순간을 박제하여 복제되게끔 하면서도 영속성을 통한 일회성의 의미를 더욱 강화한다. 사물을 보는 관점은 다양해지고, 의미는 열려있게 되니 예술로써도 훌쩍 커버린 이런 생활 밀착형 예술은 목이 뻣뻣하지 않아서 좋다.

 

한 번은으로 시작하는 글과 사진은 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간에 휘발되는 무궁무진한 이야기성과 다시는 마주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인연의 끝자락을 간신히 잡고 있는 사진을 마주한다는 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놀라운 경험이다. 누군가의 앨범을 들춰보면서 느꼈던 감성의 비슷한 부분들이 보인다. 일상의 기록에 불과해 보이지만, 단지 그것은 단 한번이었다는 엄청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삶과 사람, 사물에 대한 진득한 애정 없이는 보일 수 없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사진기가 더욱 휴대성을 강조하면서도 대포만한 크기의 사진기가 가진 기능들을 그대로 해내고 있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상업적으로 알아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삶을 다른 관점으로 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 동안 찍어둔 사진들을 다시 한번 본다.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었는지. 그 사람의 표정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내 표정도 어느 순간 같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빼어난 사진을 보기 위한 책이 아닌, 삶은 광활한 여정에 있고, 사진은 삶을 닮아있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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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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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투쟁을 벌이는 쪽은 우리 부유층 쪽이며, 부유층이 투쟁에서 승리하고 있다. 워렌버핏

한 사람이 207일째 크레인에 올라가 있습니다. 올라간 시기는 명확한데 내려올 시기는 먼 미래에서 잃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남작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산의 영도에 있는 일입니다. 가장 추웠다던 지난 겨울이 지나 폭우와 폭염이 이어지는 날들의 연속적인 일기예보를 들을 때마다 그녀가 생각납니다. 1차, 2차, 3차… 함께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녀의 무모해 보였던 투쟁이 모두의 투쟁으로 바뀌고서야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의 크기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외롭게 싸워왔던 수 많은 노동자들의 삶이 스쳐갑니다. 어렴풋이 우리가 가진 전부가 어떤 것인지, 무엇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지 답안도 보이는 듯 합니다.

왜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인간답게 일하고 살아가는 일이 이토록 힘들게 되었을까요. 사람이 살게끔 하는 원리가 아니라, 사람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대한 매뉴얼이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인 계급이 상업에 관해 새로운 법안이나 규제를 제안한다면, 언제나 채택하기 전에 최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여 오랫동안 세심하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상인 계급의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과는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공공을 속이거나 심지어 억압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고, 많은 경우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 애덤 스미스142p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자본에 월계관을 씌워주던 전 대통령의 말이 떠오릅니다. 서울시장 출신들의 시장만능주의적인 정책에 의해 거래되는 수 많은 것들의 본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우리가 교환하고, 축적하고, 매겼던 그 가치들이 화폐로 귀결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화폐를 사회적 관계로 풀어낸 ‘돈의 본성’이 파헤치고 있는 부분은 불평등한 권력의 서열에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가 있는 반면, 배당만 챙겨가면서도 더 큰 이윤을 쫓아다니는 자가 있습니다. 규칙을 항상 이기는 자들이 만든 것은 분명한데, 우리는 그것을 바꿀 힘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 규칙에 더 적합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에 대한 보상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말입니다.

시장에서 없어져야 할 것은 우리를 생태적 파국의 벼랑으로 내몬 영속적이고 압도적인 확장 및 이윤 추구의 욕구다. 우리의 마음에서 없어져야 할 것은 시장이 세상의 가치를 평가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믿음이다. 289p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가격표를 붙이지 않고도 가치를 매길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인류 생존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241p

‘모든 개별 시민이 삶의 다양한 모든 측면에서 그 자신에 대한 정당한 지배자이자 주인으로 드러낼 수 있다’ 소포클래스

기업을 인격화하여 정신분석을 하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어패스 같은 반사회적 정신 장애 소유자라고 합니다. 반복적으로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 않으며, 사기를 치고, 충동적이고, 공격적이고, 타인의 안전에 개의치 않고, 무책임하고, 타인을 해치거나 학대한 후에도 이를 합리화하고 혹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기업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하나 같이 이들 기업은 국가경쟁력과 시장경제의 발전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모두의 행복을 책임지는 것으로 스스로를 묘사합니다.

그런데, 왜 김진숙은 크레인에 올라갔을까요. 목을 매거나, 투신한 노동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들과 함께 하고자 모인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혀서 불편하고 시끄럽고 지저분하다는 주민들의 날 선 비난에 빠진 것이 있습니다.

매 상황에서 힘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도는 하나의 고정된 주체가 아니다. ~
4달러짜리 빅맥을 누리는 소비자도 ‘힘 있는 자들’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힘 있는 자들’이었던 우리가 납세자가 되어, 도덕적 해이에 빠진 대주주 덕에 파산한 금융기관에 쏟아 붓는 세금을 짊어져야 할 때에는 약자의 자리로 몰리게 된다.
301p


스스로 그 불편함 이상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500km 이상의 거리와 5시간 이상의 시간, 생계를 위한 일당,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기꺼이 포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멘탈리티로 이해 할 수 없고,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동의어였던 평등(이소노미아 isonomia)와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오직 사사로운 문제에만 몰두하다가 농락당하고 마는 고립된 개인(이디오테스idotes)이 상상할 수 없는 희망은 포기의 순간에 찾아오니까요.
아마도 희망은 행복을 동반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맞이하기도 전에 다음 세대의 몫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 속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 책은 그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가진 강력한 설득력과 유려한 문장으로 다시 한번 우리의 세계를 그려봅니다.
김진숙 동지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있지 않더라도 우리를 감싼 세계를 의심하는 모든 사람들이 상상하던 그 세계로 가는 길을 꿈꾸게 합니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에 있기에 누군가는 그곳에 이르겠지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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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8-0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는 시궁창에 있다네 그러나 우리 중 몇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지 - 오스카 와일드

웽스북스 2011-08-01 14:46   좋아요 0 | URL
아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