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싸움


오늘 언론인들의 싸움 속에서 ‘언론 장악’이라는 걸 무슨 비윤리적이고 파렴치한 일처럼 말하는 건 보기 민망하다. 언론 장악이야 어느 정권이든 하는 것이다. 극우정권이든 자유주의 정권이든 혹은 좌파 정권이든 정권을 장악한 세력이 주요한 제도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한 장악하는 건 올바른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테면 정연주 씨나 최문순 씨가 이명박 정권에서 KBS나 MBC 사장을 맡을 가능성은 있는가? 뒤집어 말해서, 오늘 이병순 씨나 구본홍 씨가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KBS와 YTN 사장을 하는 걸 상상할 수 있는가? “이명박이 언론 장악을 한다”는 말 자체부터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언론장악을 전제로 하는 말인 것이다. 낙하산 인사인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차이는 그런 경향성을 뒤집을 만한 차이는 아니다.
핵심은 ‘언론 장악의 비윤리성’이 아니라 언론이 어느 세력에게 장악되는가, 어떤 계급의 편에 서는 언론이 되는가, 이다. 이렇게 말하면 오늘 이명박의 언론장악을 비판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라고 할까?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의감에 찬 얼굴로 자신들이 언론을 장악하면 인민의 언론이 되고 이명박이 언론장악을 하면 부자와 재벌의 언론이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언론을 장악했던 지난 10년 동안 그들은 정말 인민의 편이었던가? 그들은 줄기차게 진행된 신자유주의 개혁을 반대하고 저항했던가? 조중동의 성원들과 경쟁하고 반목했지만, 그들 역시 부자와 재벌의 편이 아니었던가? 몇몇 지나치게 불거지는 일들에 대해 보인 의미있는 성과들도  그들의 성과가 아니라 몇몇 결기 있는 기자나 피디의 개인적 용기가 만들어낸 행동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들은 그들의 적에 비하자면 얼마나 훌륭한 언론인들인가. 그 명백한 차이와 상대적 자긍심을 인정한다. 그들 입장에서 오늘 싸움은 저놈들이 장악하는가 우리가 장악하는가의 절체절명의 싸움이라는 것도. 그러나 대다수 인민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들의 편에서 생각하는 좌파의 입장에서 그 싸움은 저놈들의 싸움도 우리의 싸움도 아닌 ‘그들의 싸움’일 뿐이다.
어렵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맥빠지게 하려는 게 아니다. 완고한 계급주의로 현실의 싸움을 함부로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들의 싸움이 힘을 얻길 바란다. 그러려면 그들의 싸움이 그들만을 위한 싸움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말한다. “그래도 최소한 언론이 극우 세력에 넘어가는 건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백번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극우세력에 넘어가는 걸 막는 싸움이 결국 그들의 이해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
나는 그들이 인민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기 전에 그들 자신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언제나 인민들에게서 ‘기자님’ ‘피디님’이라 불리는 그들은 정작 인민들에게 뭘 했는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그들은 언제나, 특히 그들이 언론을 장악했던 지난 10여년 동안, 인민들의 지지와 격려로 그들의 힘을 유지해왔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인민의 편이었던 적은 없음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성찰하기 바란다.
그런 인정과 성찰이 그들의 싸움을 훼방할까? 천만에. 오히려 그런 인정과 성찰이야말로 그들의 적으로부터 그들의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하고 훨씬 더 많은 인민들이 그들의 싸움을 지지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인민들이 그들의 싸움을 더 열렬히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그들이 저놈들보다 나은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온전히 내 편이라는 생각도 안 들기 때문이다. 

http://www.gyuha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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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1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인정과 성찰이 그들 스스로하면 좋지만...그러기가 힘들다는 것 아닌가하네요. 인민들의 견인이 문제인데... 그들도 이미 거대한 신성가족을 이루고 있을텐데...성찰하지 않는다고 인민들이 미디어싸움을 하지 않을건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헤게모니 싸움일 것 같은데요..갑자기 헷갈리네...

라주미힌 2009-07-1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이 다중이 아니라는 증거인지도 모르겠어요.
누가 상식을 점유하느냐는 싸움에서 늘 밀리니 .. 이거 원.
힘들더라도 바르게 가는게 맞는거 같아요.
방향 잘못 잡은 노무현을 임기내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건만..
결국엔 MB를 낳았고 본인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잖아요.

"결국 그들의 이해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
반MB전선의 너무나 뻔한 한계. 김규항같은 사람들의 지적은 그나마 지식인 다운 모습이라고 보여지네용.
 

“우리 사법계 막가서야 되겠습니까? 법원장 재판 개입, 용산 편파수사, 재벌 면죄부 판결 그리고 대통령 서거. 이제 분노와 슬픔을 넘어 사법정의의 길을 물을 때다. 휘청이는 법원·검찰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최근 출간한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창비)의 광고 카피다. 아쉽다. 이 책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제목도 마찬가지다. 몇몇 서평도 아쉬웠다. 김 교수가 일반 시민이 판검사에게 “저하고 얘기 좀 하시죠!”라고 말을 걸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 취지를 놓친 채, 그 대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너무도 비현실적이라고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제목을 붙인다면, “법조 ‘스톡홀름 신드롬’”이 적합할 것이다. 1973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 인질강도 사건에서 인질들은 인질로서 당한 폭력을 잊어버리고 강자의 논리에 동화되어 인질범의 편을 들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행태를 보였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스톡홀름 신드롬’이라 불렀다. 이 개념을 다른 분야에 써먹을 때에 나타나는 문제는 ‘인질’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개념의 용법 타당성을 놓고 논란이 자주 빚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법조계의 ‘스톡홀름 신드롬’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지만, 그 취지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서비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그 서비스의 주체가 되는 게 엄청난 출세로 여겨진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가문의 영예’로 여기는 잔치판이 벌어지고, 자기가 살던 동네와 다닌 학교에 축하 현수막까지 나붙는다. 사법시험은 대학의 평판까지 좌우하기 때문에 일부 대학들은 합격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을 돈으로 스카우트까지 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학교의 명예를 모든 교수·학생들이 즐긴다.

법조계를 존경해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법은 썩었다”고 믿는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유전무죄·무전유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대부분 가족·친척 중에 판검사·변호사 하나 정도는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왜? 국민, 특히 돈 없는 서민은 법의 인질이기 때문이다. 법에 대한 공포가 있다. 바로 그 공포 때문에 그들은 인질범에게 주눅이 들어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데에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청탁은 사람 사는 인정이지만 너의 청탁은 범죄”라고 보는 이중의식을 갖지 않은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법조인 탓을 하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그들은 집념과 능력이 뛰어나서 우리 모두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선택받은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들을 단죄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국민이 인질 노릇을 자처할 때 변화의 출구는 열리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법조인 못지않게 국민이 달라져야 할 이유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 것이다.

“판검사들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 잘한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습관도 바꾸어야 합니다. 장벽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용기를 내 판검사들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 전화 한 통 걸 데가 없다고요?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여러분 같은 입장입니다. 시민들이 두려움의 장막을 걷고 법조계를 향해 말 붙이기를 시작하는 순간, 신성가족은 눈 녹듯 해체될지도 모릅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654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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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오슬로에 올 때에 중국에서 최근 8년 동안 특파원으로 있어온 Phil Pan이라는 미국 기자의 "모택동의 그림자를 벗어나면서"이라는 신간을 탐독했습니다 (그 기자의 블로그는 여기입니다: http://www.outofmaosshadow.com/blog/). 중국어에 능통하고 학구적 기자인지라 책은 거의 "대중화된 학술서"로 읽혀지더랍니다. 거기에서 제 머리에 딱 박힌 한 가지 장면이 있었습니다. 교수 집안 출신으로 일찍 공산당에 몸을 담았다가 1957년, 북경대 재학 시절에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가 "우파분자"로 찍혀 결국 투옥돼 문혁 때에 총살 당한 임조 (린짜오)라는 여성 시인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 감옥에서 인크를 주지 않기에 자기 피로 공산당의 독재를 비판하고 "영혼의 자유, 진정한 사회주의 구현"을 요구하는 시문과 산문을 쓴 걸로만 봐도 보통 위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독재의 희생자가 된 그 여인은, 1951년, 토지 개혁 시절에 20대 초반의 몸으로 작업반 반장이 돼 남부 중국의 한 시골에서 토호 박멸 작업을 맡은 일은 있었습니다. 토지를 안나누어주려는 토호를 인민들이 다 모여서 집단 비판을 한 뒤에 작업반이 그 기를 꺾어 그가 자신의 악질성을 자백케 하는 것은 순서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인민들이 특별히 봐주지 않는 이상 사법 절차에 들어가서 보통 총살하게끔 돼 있었지요. 그래서 문학 소녀 출신의 그 여성 반장은 한 토호의 기를 꺾어 자백케 하려는 참에 그를 밤새도록 찬 물에 들어가 있게 하고 거기에서 고통을 당하는 토호가 지르는 고함 소리를 "음악처럼 즐겼다"고 합니다. 밤새도록 "인민의 적"이 지르는 고함소리를 즐겁게 듣고 "인민의 해방이 왔다"는 걸 반겼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본인도 감옥에서 이와 같은 쓴 맛을 봤는데, 자신의 토지 개혁 시절의 잔혹 행위를 후회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후회 안한 걸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요. 중국 공산당의 대약진이나 문혁, 개혁개방을 어떻게 봐도 토지개혁 만큼은 중국 사회로서 엄청난 진보이었습니다. 토호, 지주, 회당들의 우두머리 등등에게 옭매였던 백성들이 최초로 "공민"이 되는 순간이었고, 최초로 경자유전의 위대한 원칙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공산당 치하의 사회가 각종 격차와 부패 등으로 홍역을 치른다 해도 아직까지 튼튼하게 남아 있는 것은 토지 개혁, 토지 공유 원칙, 즉 무토지 유랑민이 원칙상 없는 신중국의 특질 덕분이라 봐도 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임조 시인으로서 그 역사적 사업에 참가했다는 건 자랑스러울 수 밖에 없었지요.
 
문제는, 수천년 동안 토호들에게 사적 고문을 당해온 농민들이 토호들도 고문 당하는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토호의 시대가 지났다는 걸 실감하고 공산당을 신뢰할 수 있었는지, 토호들이 총살 당하는 걸 보지 않고서 안심하고 저들의 문중의 토지를 나누어 가질 수 있었는지 입니다. 원칙상이야 "토호의 피를 흘리지 않는 토지 개혁이 이상적이다"라고 하고 싶지만 그 당시의 중국 농촌의 현실을 아는 사람이면 그게 얼마나 순진한 꿈인지 이야기할 것입니다. 농촌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물리력이었고, 공산당이 물리력을 행사해야 경자유전 식 공민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시적 물리력 행사의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인민의 적을 물에 담아 놓고 그 고통을 다 같이 보면서 즐기는 것이었지요. 그게 토호 지배 하에 키워진 그 당시 농촌의 민도이었습니다. 그 정글 사회로 진보를 가져다주려는 사람들로서는 선택의 폭은 컸겠어요?
 
그래, 그게 여태까지의 상당부분 인류 진보의 엄청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이 칼을 들고 사회의 몸에 유혈적 "수술"을 하는 것은 하나의 아비투스가 된 것이지요. 우리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만, 자기 부대 탈영병들을 가차없이 총살하는 체게바라의 모습도 그의 진실된 모습입니다. 그 탈영병이 아내가 그립고 가족 생계가 걱정돼 부대를 무단 이탈하려는 빈농이라 하더라도 도시 중산층 출신의 의사 게바라는 가차 없이 "수술의 칼"을 꺼내곤 했지요. 유격대 생활에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얼마든지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고, 저도 이 말에 뭐라 반대하기 힙듭니다. 맞습니다. 탈영병 총살하지 않는 군대는 이 지구 상에 거의 찾기 힘들지요.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1950-51년부터 토호나 일관도 신도, 회당 당원들을 박살내면서 키워진 상습적 잔혹성이 나중에 바로 문혁 시절에 자기 학교 교사의 머리에 못을 박으면서 파안대소하는 홍위병의 행동 양식으로 발전됐다는 것입니다. "진보의 잔혹성"이 불가피하다 해도 (토지 개혁의 경우, 물리력 행사는 아마도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걸요). 아무리 불가피하다 해도 악인은 꼭 악과를 낳게 돼 있지요.
 
최소한의 폭력으로 최대한의 진보를 득하는 것은 바로 행복한 사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가 되려면 "폭력이 본질적으로 좋지 않다, 어떻게든 비폭력적 사회 발전의 경로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진보뿐만 아니라 보수도 공유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의 "경찰주의적 통치"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한국적 보수가 그 정도로 성숙됐는지, 정말 비폭력을 지향할 정도로 인식이 성숙된 사람들이 그 쪽에 있는지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거의 없는 것 같아 "피를 흘리지 않는 급진적 개혁의 길"이 어느 정도 현실적일는지 부단히 자기 자신에게 다시 되묻게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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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주주의 압살" 문제 때문에 교수들이 시국선언도 하고 관심도 많이 가지지만, 이와 동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은 쌍용자동차 사태입니다. "동시"라기보다는 쌍용자동차에 어쩌면 일차적 관심을 가지는 게 더 올바를 것 같기도 합니다. 제도적 민주주의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회-경제적 내실이 없는 민주주의는 결국 형해화돼 민심 이반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가 노무현 통치 시기에 많이 본 것입니다. 사실, 노무현의 역사적 실패란 바로 근로자와 영세사업가들에게 "생계 문제" 해결을 전혀 가제다주지 못한 "속이 빈 민주주의"의 실패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노무현 통치 시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이지만 사실 쌍용차의 문제의 불씨는 그 때에 결정적으로 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에 허덕이었던 그 기업의 처리 방식으로서 공기업화 등이 제시됐지만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적 정부는 제대로 된 심사숙고없이 상하이차라는 외국자본에 쉽게, 너무나 쉽게 넘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관료들이 대체로 이렇게 처리하는 것을 "외자 유치 성과"라고 발표하고서는, 그 다음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은 특징입니다. 결국 전세계의 과잉 생산으로 자동차 산업 자체가 극심한 위기에 빠졌을 때에 그 "외자"는 뺄 것을 다 빼고 맨먼저 방치해버릴 것은 바로 쌍용차와 같은 재외 업체들이지요. "외자"를 만능해결사로 생각했던 관료들은 그 정도로 눈치 채지도 못했을까요? 여기 이 대목에서는 꼭 "중국인"을 지목해 욕할 것도 없습니다. 노르웨이의 유수의 제지 업체 Norsk Skog사가 자금흐름에 문제 생기가 맨먼저 팔아버린 게 한국에서의 공장이었지 않았습니까? 한국 자본이라 해도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할 것이고 이게 자본의 보편적 논리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 자본의 논리로 이제 생계가 막막해진 천 여명의 해고 대상자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자본의 논리대로 그저 해고되게끔 놓아둔다면 이는 한국이 복지주의적 상생적 공동체의 길로 가지 않고 계속해서 자본 이익 극대화 논리의 길로 갈 것을 의미할 것이고,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선례가 될 것입니다. 요즘 정권의 집회 금지 등이 민주주의의 압살이라면, 쌍용차에서의 정리해고는 민생 파괴로의 길의 "터주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문제를 국가가 키웠으면 그 해결도 국가가 주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국가는 언젠가 오늘과 같은 소수 자본의 증식 "도움이"이자 폭압적 지배기구에서 복지 증진을 위한 재분배 기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분간 자금 흐름에 문제가 크다면 일부 노동자들의 무급 휴직 등 여러 가지 조치를 노조의 양해를 얻어 일시적으로 취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 기업의 해외 매각을 다 그르쳐버린 국가는 보조금이라도 지급해 경영 정상화를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책임이 있는 자세가 되는 것이지요. 해고란 세계공황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그리고 한국이라는 특수 환경에서는 사실 문제의 개인들에 대한 사형 선고이자 해당 지역으로서도 재앙 중의 재앙입니다. 미국에서의 선례들을 들먹이지만, 월마트가 최대 기업인 미국과 달리 한국의 서비스업이란 구멍가게,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 아니면 주로 유부녀들을 채용하는 대형 마트 수준이지 않습니까? 그러한 상황에서, 더군다나 이 영세 서비스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대공황 시기에 공장에서 잘려버린 남성 노동자에게 어디로 가라는 이야기입니까? 본인도 사실 사회, 경제적 사형을 당하지만 그 가족들과 그 지역의 온갖 가게와 식당들도 연쇄적으로 치명타를 입는 것이지 않습니까? 한국의 상황에 그나마 어느 정도 맞는 것은 미국의 대량 해고 만능주의보다는 최소한 정규직을 절대 내보내지 않는 "토요타식 경영"일 것인데, 정규/비정규의 철저한 차별과 비정규직의 초과 착취는 "토요타주의"의 대결점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문제들의 복지주의적 해결로의 접근법을 우리가 스스로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경제, 사회적 사형을 당하는 걸 우리가 가만히 보기만 하면 결국 그들을 위해서 울리는 조종은 우리를 위해 언젠가 울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고와 폭력적 진압이 아닌 대화, 타협, 공동체의 원조 등으로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선진화"인데 지금 정부와 사측은 그 쪽으로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가 대대적으로 압력을 넣지 않으면 이 문제는 모두들을 만족시켜줄 비폭력적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터인데 사회의 상대적인 무관심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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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6-1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영화만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보지만... 방임도 살인적일 수 있다는 걸 너무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깊은 슬픔에 잠기게 했다. 그의 지지자는 물론 그에 어지간히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결국 그의 장례식 날엔 굵은 눈물을 함께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함께 슬퍼할 줄 알기에 아직 우리가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슬픔 속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우리가 함부로 생략해선 안 될 또 다른 슬픈 죽음들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죽어간 사람들, 23명의 노동자민중 열사들이다.
그 23명이 모두 애당초부터 노무현을 반대하거나 적대한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노무현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신들의 편일 거라고,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우리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믿고 기대했던 ‘고졸 출신 서민 대통령’에 의해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으며 배신감과 절망감에 몸을 떨며 죽어갔다.
오늘 추모의 열기 속에서 끝없이 나열되는 대통령 노무현의 업적들은 대개 그르지 않다. 정치 개혁, 권위주의 탈피와 소통 강화, 지역갈등 해소 등등. 그는 정말 정치적 민주주의 발전에 그 어느 대통령보다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서민 대중의 실제 삶과 관련한 부분, 즉 사회 경제적인 민주주의에서 대통령노무현은 모자람이 많았다. 특히 지난 30여년 동안 지구상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우리 곁에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직접적인 계기가 무엇이든 마지막 노무현은 더 이상 고집스런 신자유주의자 대통령이 아니라 “삶과 죽음도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무상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잘못과 한계를 들춰내며 그의 죽음에 대한 슬픔조차 냉소하는 일도, 감상에 젖어 혹은 그를 죽게 한 미안함과 자책감에 젖어 그가 아무런 잘못이나 한계도 없었던 양 무작정 그를 찬미하는 일도 정중히 삼가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제 삶의 모든 부질없는 것들을 정화하고 떠난 사람 앞에서, 감상이나 냉소가 아니라 그의 삶의 공과를 분명히 기억하되 그가 품었던 뜻을 정갈하게 되새기고 그가 남긴 꿈을 우리 삶에 잇는 게 옳겠다. 그의 꿈을 잇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그것은 고집스러운 신자유주의자 대통령 노무현을 잇는 게 아니라 그의 본디 꿈, 그가 아직 순수한 이상주의자이던 시절의, ‘바보 노무현’의 꿈을 잇는 것이다.
그 꿈은 누가 이을 수 있을까? 오늘 노무현의 후계자라 지목되는 사람들, 그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파병을 하고 FTA를 밀어붙이고 ‘삼성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만큼 반민중적인 정치를 펼쳐 23명의 한 맺힌 죽음을 낳도록 내내 보좌한 사람들일까? 그들이 노무현의 꿈을 이을 수 있을까? 천만에. 여전히 자신들이 ‘이명박보다는 백번 나으니’ 아무런 반성할 것도 성찰할 것도 없다는 얼굴을 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노무현의 꿈이 아니라 노무현의 잘못과 한계를 다시 되살리는 일뿐이다.
노무현의 꿈은 오히려 대통령 노무현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배신했음을 지적한 사람들, 끊임없이 노무현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그가 잃어버린 제 본디 꿈을 회복하길 소망했던 사람들, 23명의 열사의 편에 섰으며 오늘 여전히 그들의 편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서 이어질 것이다. 바로 그들이 소년 노무현이 봉화산의 호미 든 관음상 앞에서 맹세한 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을 것이다. (한겨레)


2003  이해남 이용석 이경해 김주익 송석창 박상준 곽재규 이현중
2004  김춘봉 정상국 박일수
2005  오추옥 정용품 김동윤 류기혁 전용철 홍덕표 김태환
2006  하중근
2007  정해진 이근재 허세욱 전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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