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주미힌님, 이벤트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엽기적인 이야기는 아니구, 그냥 보편적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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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때 담임은 날 참 미워했다.
난 그걸 우리 엄마가 촌지를 안갖다바친 탓으로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도대체 왜 촌지를 안줬을까.
드렸는데, 워낙 큰손들이 많아서 엄마의 촌지가 송사리로 보였던 걸까.
어떤 학생이 괜히 미울 수도 물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열두살짜리를 이유없이 미워한다는 게 난 이해가 안간다.
눈치가 빠르지도 않은 나도 나에 대한 담임의 증오를 느낄 수가 있었는데
첫 번째.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삼국지 얘기를 가끔씩 해주셨다.
한번은 애들이 공부하기가 싫었는지 삼국지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많은 애들이 아우성을 쳤다.
“해줘요오오오오!” “해주세요요요”
그런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난 짝에게 이런 말을 했다.
“중국 이름은 이상해. 이름이 ‘비’가 뭐야.”
다른 애들에 비하면 크지도 않은 목소리였지만
선생님은 굳이 나를 나오라고 해서 벽에다 머리를 박고 서있으라 했다.
그 시간 내내 서있었다.
처음 받아보는 벌이라 수치스럽기 그지없었고, 다리가 떨렸다.
두 번째.
선생님이 내게 분필을 집어던졌을 때도 모욕감에 몸을 떨었지만
이건 정말 황당한 얘기다.
산수 시험을 보는데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애들이 다 혀를 내둘렀다.
공부를 무지 잘하던 여학생-지금은 친구의 부인이 된-이 “이거 다 맞추면 컴퓨터야!”라고 말했을 정도.
산수만 잘했던 난 서른세문제를 모두 다 맞춘 우리반 유일한 학생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교에서도 다 맞춘 애는 두명밖에 없었다.
다 맞은 사람 일어나 보라고 하자 난 의기양양하게 일어났다.
선생의 얼굴이 굳어졌고
기상천외한 제안을 한다.
“문제가 서른세문제고 하나에 3점씩이니 총점은 99점이지 100점은 아니다.”
그러면서 선생은 칠판에다 다섯문제를 더 냈고
우리반 애들한테 그 문제를 풀게 했다. 1점을 위한 시험, 한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난 4개밖에 못맞췄고,
내 성적표에 기록된 산수 점수는 99점이었다.
그런 논리라면 왜 99.8이 아니냐고 따질만도 했지만
그때의 난 그리 똑똑한 애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다.)
만점 맞은 애가 내가 아니었다면 그 선생이 그랬을까?
그 선생이 그런 짓을 한 게 그 시험 한번이었던 걸로 보아
내가 미워서 그런 거라고 난 생각한다.
세 번째.
어떤 문제의 답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였다. 그때 난 “...돕는 자를...”이라고 썼는데, 그걸 틀리게 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애들이 그랬고, 항의를 했다.
“‘자’란 말은 원래 ‘놈’이란 소리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놈을 돕는다는 게 말이 되냐?”
이건 물론 나를 겨냥한 건 아니지만, 그 선생이 얼마나 또라이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여간
그 인간은-갑자기 선생이라고 부르기가 싫어지네-거리 측정하는 걸 가르쳐 준 뒤 학교 운동장의 거리를 재보라고 했다.
다들 나가서 쟀고 측정치를 써냈다.
1등한 애한테는 짬뽕 한그릇을 주기로 했다.
가장 근사치를 맞춘 학생은 짬뽕을 먹었다.
그 당시 짬뽕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부러워 죽었다.
그 다음에 선생은 건물 높이를 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거기서 난 1등을 했다.
우리학교 건물높이가 15.20m 였는데 내가 써낸 답은 15.19m 였다.
내가 일등을 하자 선생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게 짬뽕을 불러주는 대신
선생은 이런 제안을 했다.
“짬뽕 대신 비슷하게 맞춘 일곱명에게 노트를 한권씩 주겠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냐고 따질만한 똑똑함이 내겐 없었다.
난 담임한테서 이런 말도 들었다.
뭔가를 묻기에 대답을 했더니
“넌 목소리가 왜 그따위냐.”라고 했는데
그 뒤 난 한동안 말을 하기가 싫었다.
음악 시험을 보는데
노래제목은 까먹었지만 편의상 ‘떠나가는 배’라고 치면
“멀리 떠나”까지 하니까 담임이 “그만!” 하고 소리를 질렀고
내 음악 성적은 양이 나왔다.
그 선생이 얼마나 싫었는지
대학 가서 같은 이름을 가진 교수를 만났을 때
거부감이 팍팍 들었다.
어린 가슴에 상처를 준 그 선생
명문사립에 근무한다는 이유 하나로
잘먹고 잘살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