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그분들은 공통적으로 제게 묻곤 했어요. 아픔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그런데 난 그 질문이 참 싫었어요. 아픔은, 슬픔은 절대로 극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제 자식을, 사랑하는 남편을 보낸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요? 그건 극복이 아니죠. 어떻게 참고 더불어 사느냐의 문제일 뿐, 절대로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냥 견디며 사는 거죠. -47쪽
이해인> 하느님은 인간에게 사랑을 직접 가르치지 않아요. 교리 같은 게 있긴 하지만 그건 다 인간이 만든 것이지요.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 스스로 알아가는 거예요. 일상에서 문득 사랑에 눈을 떳을 때 바로 그러한 순간의 삶 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녹아 있는 겁니다.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걸, 사랑은 나눔이라는 걸 불시에 깨닫게 되는 것이죠. 결국 하느님과 예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 몸속에 육화돼 있어요. 그걸 어떻게 발견하고 끄집어내느냐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 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인 셈이죠.-116쪽
이해인> 말은 입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천은 몸이 있어도 마음이 함께하지 못하면 결코 행할 수 없습니다.-121쪽
이해인> 신앙도 그래요. 신앙을 가지는 건 좋지만 그것에 삶의 전체가 좌지우지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종교를 떠나 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논어도 읽고 화엄경도 읽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죠. 그래야만 울타리 속에 갇혀 평생 일방적인 사랑만 느끼지 않고 울타리 밖을 포용할 수 있는 더 큰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122쪽
박완서> 순응하며 사는 거, 그게 '하느님 마음'이겠네요.
이해인> (중략)모든 사람이 다 정겹게 느껴지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일일이 내 일처럼 느껴져요.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경지, 그런 마음, 그게 하느님 마음이죠.-144쪽
이인호> 요즘은 늙었기 때문에 생기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젊었을 때는 이것도 사리고 저것도 사리고 했지만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삶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겨도 된다고나 할까요.
방혜자> 저는 삶의 순간순간이 그전보다 더 명철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이 먹어 괴롭거나 슬픈 게 아니고, 깨어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기쁩니다. 몸이 쇠약해지면서 자신이 겸허해지고 삶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아주 평화로워요. 스며들듯이 조용하게, 열매가 익어서 꼭지가 똑 떨어지듯이, 자연스럽게 생을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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