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어떻게 질문할것인가‘이다. 다시 말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다양한 시선이 경합하지 않고 하나의 시선이 지배할 때 우리의 인식은 축소되어 편협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 P6

소수자들의 다시 읽기와 다시 쓰기는 해석하는 위치를 점령한 주류 서사에 균열을 내는 저항 행위다. - P16

예술적 남성 동맹이 추구해온 자유 • 아름다움의 개념과 방향성을 의심하지 않으면 전위는 불가능하다. 모두가 자유를 갈구하지만 여성을 착취하는 현실은 외면한다. 권력을 분석하지 않고 자유를 말하는 것, 타자를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예술적 사기다. 자유와 아름다움이 타자를모욕하며 형성되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구속이며 추함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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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누군가를 해하지 않을 때조차 여성들을 어떤 경계 안에 옭아매는 것이 여성혐오다. 우리는 경계를 위반하거나 어떤 과오를 범할 때에야 비로소 애초에 왜 자신이 경계 안에 갇혀 있었는지 그 이유를 깨닫는다.  - P21

그건 바로 여성이 명백히 성별에 근간을 둔 적대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에 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시말해 역사적으로 가부장제가 지배해온 사회에 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 P23

지만, 이것만은 알고 있다. 싸우는 것은 중요하며 가치 있는Start alles일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는지가 명징해지면우리가 더 잘 싸울 수 있으리라는 것. 나는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이어지는 장들을 써나갔다. - P29

 말하자면 인셀은 타인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애정과 존경을 담아 우러러보길 기대하는 남성들이 가진 유해한 특권의식의 결정체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눈길로 자신들을 추앙하지 않았거나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겨냥하고 심지어 파괴한다. 그런애정과 추앙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믿는 특권의식이 가정 - P37

폭력, 데이트폭력, 그리고 친밀관계에 있는 파트너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당수 남성들과 공유하는 특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한다. - P38

반성적 사고를 통해 여성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자명한 사실을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정 어려운 일은 여성이 온전한 인간 존재임을, 그저 사랑과 섹스와 도덕적 지지를 제공하는 존재 그 이상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성은 자기 자신으로 고유하게 존재하고, 다른 사람과 [자율적으로] 관계 맺는 존재로 살 수 있어야 한다. - P49

여성혐오는 여성을 짓밟고, 힘패시는 여성을 짓밟는 폭압자를 "좋은 남자"로 포장함으로써 보호한다.
힘패시는 여성혐오의 피해자나 표적을 비난하거나, 그를논의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 P64

힘패시는 종종 남성이 여성에게, 그리고 어떤 경우 아동에게 가한 폭력을 근본적으로 왜곡한다. 힘패시는 잔혹한 범죄를 이해받을 만한 애정으로 인한 범죄, 또는 공감받을 만한절박한 행동 정도로 기발하게 변모시키며, 강간과 같은 여타의 범죄들을 단순한 오해와 술이 초래한 해프닝 정도로 기발하게 전환시킨다. - P70

밀그램은 피험자들이 설계자의 지시에 순응해야 한다는 허구이지만 강력한 도덕적 의무감을 갖고 주어진일을 수행했다고 상세히 밝힌다. 사람들이 그 순간에 도덕적 양심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실험 설계자의 모습을 하고있는 현장에 존재하는 권위자의 명령에 순응해야 한다는 허구이지만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의무감을 주입하는것이 생각보다 쉽다는 사실이다.  - P101

권위를 지닌 남성 인물에게 저항하고 도전하는 여성들에게는 협박과 처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여성혐오가 여성들에게 내면화된 수치와 죄책감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는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P115

특권을 가진 남성이 통증을 호소할 때, 그 통증이 진짜라는 믿음은 이 사회의 기본값으로설정되어 있다. 덕분에 남성은 의료적 차원의 관심과 치료뿐아니라 공감과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는 존재가 된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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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나혜석.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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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 Vs 제국주의 일본

이 단어의 대조만으로 연상되는 수많은 이미지가 있다. 식민지 조선에는 가난함과 어려움, 고통, 비참함이 따라붙을 것이고, 제국주의 일본에는 부유함, 군국주의, 잔인함 뭐 이런 이미지들이 따라붙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항상 그렇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둘로 나뉘어지지 않는다.


나혜석 Vs 하야시 후미코

이 두 여성은 부자집 마님 나혜석과 노동자집안 출신이고 딱히 부자이지 않은 여성작가 하야시 후미코로 이들의 대비는 관념적이고 일반적인 분류를 뛰어넘는다. 내가 이 책에 이끌렸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전혀 다른 분류를 보여주는 기획때문이었다. 나혜석의 여행기는 이미 여러 차례 출판되었지만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색다른 대비를 통해 보여주는 세계는 단순한 두 사람의 글이 아니라 훨씬 다양한 해석과 생각을 하게 해줄듯하였다. 두 사람의 여행기 자체는 그렇게 뛰어난 글들은 아니다. 나혜석보다는 본격 작가인 하야시 후미코의 글이 훨씬 좋긴하지만 뭐 그렇다고 엄청나게 훌륭한 글이라고 할 수는 없고..... 출판사의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며 식민지 시대를 색다른 시각으로 보고, 하나의 시대를 한 가지 시각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도 볼 수 있는 책이라서 나는 읽으면서 참 좋았다. 


원래도 나혜석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심경이었다. 뛰어난 여성화가였지만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려운 삶이랄까? 여성이기 이전에 사람임을 주장한 여성 페미니스트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지금 봐도 너무 독특한 그녀의 주장들과 삶을 따라가다보면 무조건 공감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느껴지는 그런 여성이다. 그녀의 여행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1920년대에 여성이 그것도 결혼을 해서 아이가 셋이나 있던 여성이 시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모두 맡기고 무려 20개월동안 세계 일주를 한다. 이 말만 들었을 때 나혜석이 얼마나 대단해보였던가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점점 실망하게 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수원의 명문가 참판댁 애기씨로 태어나서 그래도 당시로서는 진보적이었던 아버지덕분에 딸이지만 신교육을 받았고, 일본 유학까지 마치고 변호사인 김우영과 결혼해 부자집 마나님이 된 여성, 그리고 화가로서도 성공하여 이름을 떨치던 여성의 세계 일주는 혼자서 간 여행이 아니었다. 만주지역의 부영사를 지냈던 남편이(이 시대 이 정도 직위면 적극적인가 소극적인가의 차이일뿐 친일파로 분류하는 것은 당연할 듯하고....) 힘든 지역의 관리를 6년간이나 지냈다고 일본 정부로부터 포상휴가를 받는다. 포상휴가가 20개월이나 되지는 않았겠지만 아마도 그 포상휴가에 본인들의 돈도 꽤 보태져서 여행이 길어졌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한 여행에서 이 두 사람은 유명 인사다. 부산에서 출발한 이들은 조선 땅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곳곳에서 마중나온 수십명의 환영인파를 만나고,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난 이후에도 일등칸에서 항상 상류층들과 어울리고, 유럽이나 미국지역에 도착해서도 현지에서는 항상 먼저 이곳에 유학을 온 이든 누구든 이들을 맞이하며 온갖 도움을 주는 그런 여행인 것이다. 미국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올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호화유람선 여행까지 정말 아주 럭셔리한 여행이다. 여행이란 원래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는 법이다. 여행이 다른 생각을 갖게 하고 세상의 다른 면을 보게 하려면 여행자 자신의 치열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하는 법이다. 이 시대의 나혜석에게 그런 고민의 흔적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더욱 하게 된다. 그녀의 여행기를 읽는건 마치 여행가이드북의 지역 소개를 읽는 느낌이다. 


반면 하야시 후미코의 여행은 자신이 쓰는 돈을 하나씩 하나씩 일일이 기록하며 아껴가며 삼등석 열차를 타고 배 역시 가장 낮은 등급의 방에 묵으며 항해하는 여행이다. 그곳에서 온갖 나라의 온갖 인물을 만나지만 모두 자신과 비슷한 가난한 이들이다. 하지만 여행의 이야기는 원래 이런 칸에서 나오는 법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속에서도 삼등열차속에서 부대끼며 가다 보면 친해지지 않을 수 없고 그속에서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후미코의 시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출신 계급인 노동계급에 더 많이 가 있다. 그래서 러시아 땅을 지나면서는 사회주희 혁명 후의 러시아가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이 동경하던 그 땅의 현실과 많이 달라보이는 모습을 꼼꼼히 관찰한다. 나혜석처럼 온갖 여행지를 가기보다는 (그러기에는 돈이 없어서) 한 곳에 머물며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사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래서 글을 읽는 재미는 오히려 하야시 후키코의 글이 더 있으며, 심지어 공감이 더 가는 쪽도 하야시 후미코쪽이 되어 버린다. 


아 정말 민족보다는 계급인가? 피는 물보다 안 진하다. 


여행기 중 흥미있었던 대목이 있는데 나혜석이 그들이 부영사로 살았던 만주 단둥현에 도착했을 때의 소감과 하야시 후미코가 만주 창춘에 도착했을 때의 글이다.

 

만주 거주 동포의 경제 발전은 오직 금융기관에 있다는 견해 아래 단둥에 조선인금융회가 설립된 후 이내 단둥에 사는 조선인 금융계의 중심 기관이 되어 그 전도유망함이 우리 눈에 보일 때 한없이 기뻤다. 

총독부와 만철(남만주철도 주식회사)에 교섭한 결과 수백여 명 학생을 수용할 만한 보통학교가 건설되고 이번에 만철 경영이 되어 직원 모두 얼굴에 기쁜 빛이 가득한 모습을 볼 때, 어찌 만족이 없으랴  - 21쪽


1931년 11월 12일 밤, 창춘 도착, 입김이 하얗게 서릴 뿐 눈은 아직 내리지 않는다. 지난해 빈손으로 왔을 때와 달리 트렁크가 네 개나 있는 데다 역 안이 병사들로 가득했기에 한가로이 짐꾼을 부르고 자시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나는 번쩍이는 검을 꽂은 소총이 숲속 나무처럼 죽 늘어선 일본군 사이를 뚫고 가까스로 어스레한 대합실에 들어갔다. - 149쪽


약간의 시기 차이는 있지만 만철이 일본의 만주침략의 교두보라는 것을 외면하는 나혜석의 모습

그리고 만주사변 직후 만주를 지나면서 일본의 침략을 똑같이 두려워하는 눈으로 지나가는 후미코의 모습이 대비된다.

이런 문장들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비교하면서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이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서도 우리의 예상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찾아 보는 것이 또한 이 책의 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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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01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치않아도 이번 주 벌거벗은 한국사에서 나혜석을 다뤘는데 아쉬운 건 제가 보다가 잠이 들었다는 거죠. ㅋ 눈뜨니까 무슨 선전만 잔뜩..ㅠ 암튼 행려병자가 되어 죽지않았습니까? 너무 곧으면 휘어진다고 나혜석은 시대를 거부하고 싶었나 보죠. 근데 참 두 여인이 대조적이긴 하네요.

바람돌이 2023-04-01 22:21   좋아요 2 | URL
아 그랬군요. 뭐 요즘은 놓쳐도 유튜브에 다 올라오니까 살짝 아쉽긴 해도 다시 볼수 있잖아요. ^^
나혜석은 저는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이자 페미니스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의 생을 돌아보면 그런 면보다는 또 지극히 개인적이고 과격할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면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저는 그게 어쩌면 귀하게 자라서 귀하게 살았던 삶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자신의 불륜으로 이혼을 함으로써 모든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는데 이게 또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좀 징글맞다 싶을 정도이기도 해요. 불륜과 이혼만이 문제가 된건 아니거든요. 어쨌든 아주 복잡한 인물인것만은 틀림이 없어서 이 인물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오히려 평범해서 제가 친숙하게 여겨지는 인물은 일본인인 후미코더라구요. ^^

blueyonder 2023-04-01 15: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잘 모르던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피는 물보다 안 진하다.˝라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바람돌이 2023-04-01 22:22   좋아요 2 | URL
에고 딱히 큰 뜻을 담은 말은 아닌데 인상적이셨다니 갑자기 부끄럽네요. 허접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희선 2023-04-02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나라 사람인지 다르기도 하겠지만, 부자인지 가난한지로 다르게 생각하기도 하겠습니다 어디에 있든 다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건 아닐 것 같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3-04-03 10:11   좋아요 1 | URL
이런 글을 볼때마다 사람이란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도 얼마나 다양한지를 생각하게 되네요. 그래서 저는 이런 책이 참 좋아요. ^^

공쟝쟝 2023-04-04 12: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람돌이님이 진심으로 걱정됩니다! 일단 일본여성 편을 드셨으니 친일파 이십니다. 거기다가 민족보다 계급이라니요! 빨갱이이십니다. 그 뿐입니까? 이건 여성주의자들이 기획한 책임이 틀림없습니다. 친일파 빨갱이보다 더 괴랄한 페미니스트!!! 바람돌이님의 똑똑함과 명석함이 너무도 걱정되어 댓글을 답니다! 좋은 거 많이 보고 맛난 거 많이 드십시오.

바람돌이 2023-04-04 14:38   좋아요 2 | URL
친일파빨갱이페미니스트라니 이건 뭐 대한민국 땅 정도가 아니라 지구를 떠나야 할 수준인데..... 어떡해요. 나 어디서 살아???? ㅠ.ㅠ
일단 살수 있을 때까지 무조건 빌붙어보겠어요. 지금 먹는 한끼가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무조건 많이 먹는것부터 시작하는 걸로..... ㅎㅎ
 

북플에서 매일 알려주는 " 00년전 오늘 남긴 독서기록....." 을 보면 3월의 나는 매일 바쁘다 바빠를 연발하고 사는 인간이다.

똑같은 일을 매년 반복하면서 왜 요령조차 안 생기는지 매년 똑같이 바쁘다 바빠일세.

결국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 ㅠ.ㅠ


2월 말에 비비언 고닉 이벤트 알림이 잘 안보인다고 막 나대며 홍보를 하고 그리고 리뷰대회 1등할거라고 막 장담했었다.

아마도 나의 서재 지인 여러분들은 다 알고 계실터....
















나는 정말 잘 쓰고 싶었다. 

심지어 리뷰를 <사나운 애착>과 <짝없는 여자와 도시> 모두 다 읽고 다 쓸 생각이었다.

그래서 진짜로 1등 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사나운 애착> 1권 읽기만 했다.

바빠서 리뷰를 못 썼다고 말하고 싶다. 막 우기고 싶다. 3월은 원래 내가 가장 바쁜 달이라고 막 우기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ㅠ.ㅠ

<사나운 애착>은 다 읽었다. 그리고 술술 읽히기도 하고, 내용 역시 재밌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막 공감이 가는건 아니다.

비비언 고닉의 엄마는 나의 엄마나 내가 아는 주변의 엄마들과 너무 다르고, 이들 모녀의 애증관계도 내가 아는 모녀간의 애증관계와 너무 다르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무언가 특별한 공감지점을 찾아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 그래, 이런 모녀관계도 있구나, 애증의 관계라는 건 비슷하지만, 그 애증의 지점이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정도.

차라리 나는 나의 엄마가 비비언 고닉의 엄마처럼 자기 주장을 하고, 딸에게 막 불평불만도 말하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히려 하게 되었으니 이는 저자의 책을 쓴 의도와 완전히 다른 지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의 공략대상은 다음 책 <짝없는 여자와 도시>가 되었다.

이 책이야말로 나의 최고의 리뷰가 되리라! 우하하하 하며 야심차게 책을 들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짝이 있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나에게 게이 친구가 없는 것이 문제인가? 

왜 이 책은 아예 읽히지를 않는 것인가?

앞 20여페이지를 3번째 읽다가 혹시 내가 난독증이 생긴건가 의심하면서 일단 슬그머니 책을 치우게 되어 버렸으니....

이로써 나의 리뷰대회 상금은 날아가 버리고....

나는 로또를 사지도 않으면서 로또 당첨을 바라는 그런 인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ㅠ.ㅠ



저기 저 <짝없는 여자와 도시>를 다시 책장에 쑤셔넣고 고른 책이 <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인데,

이 책은 또 비비언 고닉처럼 글을 잘 쓴 책은 아닌데 할 얘기는 또 엄청난 책인 것이다. 

리뷰를 쓰야 하는데..... 쓰야....



















아 그리고 3월은 또한 바쁘고 바쁘다.

그럼에도 놀거는 다 논다.

봄바람이 불어오니 토요일이 되면 오랫만의 출근 휴유증으로 널버러져 있다가 일요일이 되면 또 정신을 차리고 

"아 꽃놀이 꽃놀이...."이렇게 비명을 지르며 집을 나서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꽃놀이에 집착하는 이 증상도 뭔가 연구대상이다. 



지지난주에는 오륙도 앞바다에 수선화가 만발하다 하여 길을 나섰다가 엄청난 교통 체증을 만났다.

그래서 평소에는 안보이던 도로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네





나 - 해작사? 저 절은 참 이름이 특이하네. 무슨 뜻이지???

남편이 - (진짜 빵 터지면서) 응. 해군작전사령부

나 - 아씨! 그런걸 왜 줄임말 쓰는데.... 공공기관에서 저렇게 말 줄여도 돼?


하여튼 그렇게 간 오륙도앞 해변은 사람으로 넘쳐나고 수선화는 예쁘긴 한데 뭔가 좀 모자란 느낌.




집앞에 만발한 벚꽃잎은 우리 동네 놀러온 분들 보라하고, 평일에 많이 보는 우리는 지난 일요일에는 다시 울주 반구대암각화쪽으로 꽃나들이를 갔다.

천전리 각석쪽으로 가는 길과 반구대 암각화쪽으로 가는 길, 2개의 길이 있는데 모두 봄내음이 물씬하고,

특히 반구대 암각화쪽으로 가는 길은 뭔가 원시림같은 이국적인 풍경이 막 펼쳐지면서 입에서 절로 감탄사를 나오게 한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반구대 암각화앞까지 차를 타고 왔던거 같은데 지금 이렇게 박물관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들어오니 훨씬 더 좋은 거 같다. 



저기 저 절벽 위에 진달래꽃을 보니


나 : 여보 여보 나 저기 저 꽃 따주오, 그리고 헌화가도 불러주오.

남편이 : 맘은 꿀떡같은데 거북이가 없소

나 : 그러길래 내가 그놈의 거북이 구워먹지 말랬잖소....ㅠ.ㅠ 거북이 없어도 되니 꽃 따주오

남편이 : 거북이 없으면 안되오

나 : 매우 매우 짜증나오....ㅠ.ㅠ


음 헌화가와 수로왕 탄생설화가 짬뽕된 대화이긴 한데 말도 안되는 내맘대로 바보들의 대화랄까? ㅋㅋ




그러다가 이런 풍경도 나오고요.



꽃만큼이나 아름다운데 봄날 돋아나는 새순의 연두빛이잖아요. ^^


이렇게 휴일이면 꽃보러 다니느라 정신없는데, 오랫만에 출근했더니 평일에는 밥사주고 술사주는 인간도 많아요. ㅠ.ㅠ

요즘은 안주 비쥬얼이 진짜 장난 아니어서 술이 막 꿀떡꿀떡 넘어가는데 꿀떡꿀떡 못먹어서 너무 슬퍼....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어 쬐매만 마시면서 슬퍼하는 나날들입니다.

최근 먹은 최강 비쥬얼의 안주 - 한우 육회입니다요. 그리고 술은 역시 소주여야 하나 건강을 생각해서 쬐매 약한 하이볼로....






이렇게 사는 것의 문제는 역시 책을 읽을 시간과 서재에 글을 쓸 시간이 안난다는 것.

평일은 거의 뻗어서 밥먹고 나면 책장 몇장 뒤적이다가 잠드는 상태. 

그래서 약속했던 <제2의 성>은 그냥 포기, 언젠가 다시 시도할테다 하면서 주먹만 불끈.

오늘이 3월 31일인데 이달의 책인 <남성 특권>은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결국 이번 주말이 되어야 될듯하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고 있다는 인증샷



직장에서 화병의 꽃이 예쁘길래 그냥 같이찍어봤다.

저 띠지 보이시죠들...

반쯤 읽었어요. ㅠ.ㅠ


그리고 저는 요즘 아침 저녁으로 이런 길로 걸어서 출퇴근 중입니다.

여러분 부러워하시라고 올리는 사진입니다. 




사실 가장 바쁜 일들이 오늘로 마무리 되었어요.

뭐 내일은 내일의 일이 있겠지만 진짜 정신없는 달은 지나갔으니 이제 4월부터는 열심히 출석도장글도 쓰고,

책도 다시 열심히 읽고 그런 바람돌이로 돌아오겠습니다. ^^

그래놓고 내일은 친구들과 진달래보러 산에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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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1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03-31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내가 짝이 있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나에게 게이 친구가 없는 것이 문제인가? ㅋㅋㅋㅋ
네 그래서 그렇습니다. 거북이랑 꿀떡꿀떡 빵 터집니다.
그나저나 저 육회 정말 아름답네요?!

바람돌이 2023-03-31 15:01   좋아요 1 | URL
그래서 짝없는 여자는 저의 존재론적 한계로 인하여 읽어지지가 않는 것이라고 극구 주장하고 있습니다. ㅎㅎ
저 육회는 맛도 환상적이어서(소고기가 맛이 없을 수가 없는....ㅎㅎ) 심지어 술과 함께하나 더더욱 환상이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3-03-31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뭡니까?
기다려도 리뷰 올리시지 않아서요~~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저도 요즘 꽃이 점점 좋아지더라고요^^
오륙도 오랜만이예요^^

바람돌이 2023-03-31 15:02   좋아요 2 | URL
리뷰대회는 이제 저에게 맞는 책이 나올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으로....
리뷰 쓸려고 책 샀다가 어떤 이유로든 책이 안 맞아서 못쓰는 일의 반복이랄까요?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그건 그냥 나의 게으름이 아닌가? 나는 왜 쿨하지 못하고 이렇게 변명만 하는 것인가라고 또 반성하고 있습니다. ㅎㅎ

다락방 2023-03-31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꽃 사진 보며 감탄하고 와, 저런 길로 출퇴근하신다니 정말 황홀하시겠어요, 하려고 하였으나!
그런데 육회사진이 진짜 너무 압권이네요? 저는 글 읽기 전에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고~ 했어요. ㅎㅎㅎㅎㅎ

남성특권 마저 힘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제 여동생부부(둘다 교사) 3월이라 몸살 한번씩 앓고 학교 들어간 제 조카들도 한번씩 앓네요.
바람돌이 님, 건강 잘 챙기셔요!

바람돌이 2023-03-31 15:37   좋아요 0 | URL
저집은 사직야구장앞에 있는 술집으로 모든 안주의 비쥬얼이 장난 아닌.... 맛은 뭐 당연히 아름답습니다. ㅎㅎ
오늘도 내일도 그래서 일요일까지는 남성특권 꼭 다 읽고 4월의 책 빨리 읽어서 행복해질테야요. ㅎㅎ
4월은 책은 행복의 약속이니까.... ^^
저도 다락방님 가족분들도, 특히 귀여운 조카분들 모두 모두 건강 챙기며 화이팅해요. ^^

거리의화가 2023-03-31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는 매달린 진달래 보며 나누는 두분 대화에 빵빵 터집니다!^^
여전히 재미나게 사시는 두분을 보며 흐뭇미소 짓고 갑니다ㅎㅎㅎ 저도 꽃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3월은 이제 지나갔으니 4월에 즐겁게 보내면 되겠죠^^

바람돌이 2023-03-31 16:22   좋아요 1 | URL
바보 부부의 대화라고.... 나이들수록 어떤 대화도 진지함이 불가능해집니다. ㅎㅎ
화가님 꽃사진도 보러가야겠네요.
내일이면 주말이면서 즐거운 4월입니다. 4월은 안 잔인하고 행복한 달입니다. 저에게는.... 3월이 끝났으니까요. ^^

건수하 2023-03-31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두 권 다 재미있게 읽었으나 리뷰는 못 쓰겠더라고요 ㅋㅋ

헌화가와 구지가의 짬뽕...
그래도 낭만적입니다. 문학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


바람돌이님 저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오늘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응?) 이제야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프로필 사진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최병수님이 아시는 분이라던가... @_@
아니면 저 펭귄이 마음에 들어서 올리시고, 출처를 표기하신 걸까요?

바람돌이 2023-03-31 16:26   좋아요 1 | URL
앗 저처럼 리뷰 못쓰신분 좋아요 좋아... ㅎㅎ
하지만 그래도 수하님은 두권 다 읽으셨군요. 저는 한권만....ㅠ.ㅠ

저 헌화가와 구지가는 오로지 옛날옛적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것이죠. 낭만이라니요. 그저 바보들의 대화일뿐이고 중요한 것은 남편이가 꽃을 따줄 생각이 일도 없다는 것이죠. ㅎㅎ

프로필 사진요? 아 진짜 저거 십몇년전에 저 작품보고 너무 좋아서 프로필 사진으로 했는데 그 뒤로 귀찮아서 안바꾸고 있는 것일뿐입니다. 대문 사진도 뱅크시 작품인데 아주 오래된 지붕인데 귀찮아서 안 바꾸고 있을 뿐이고요. 최병수씨는 아는 분도 아니고 저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ㅎㅎ

건수하 2023-03-31 16:34   좋아요 1 | URL
꽃 억지로 따다가 큰일나십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3-03-31 17:39   좋아요 1 | URL
앗 그 그렇습니까? ㅋㅋ

blueyonder 2023-03-31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사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 꽃길도 부럽습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3-04-01 00:01   좋아요 1 | URL
세상 사는게 쉬운게 없는데 가족끼리라도 사이좋게 농담해가며 살아야지요. ㅎㅎ
꽃길은 정말 부러우라고 올린 사진인데 부러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난티나무 2023-03-3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꽃도 좋지만 저 연초록연초록 정말 좋아요.
해작사!!!!! 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4-01 00:02   좋아요 0 | URL
저는 세상에서 봄날 새잎이 날때의 저 연두빛과 가을 벼가 초록에서 노랑으로 바뀌어 갈때이 색깔이 제일 좋아요. ㅎㅎ 해작사 저만 웃긴거 아니죠? 진짜 빵 터졋다니까요? ㅎㅎ

coolcat329 2023-04-01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3월 바쁘셨군요.
저도 3월은 그냥 도둑맞은 기분입니다.
바람돌이님 리뷰대회 나가셨으면 분명 뽑히셨을 거에요. 늘 글 읽으며 부러웠거든요.

한우육회가 김부각위에 있는 거죠? 오 둘 다 좋아하는데 환상의 조합이네요.
육회는 정말 👍 의 안주죠.
즐겁게 바쁘셨네요~ 살랑살랑 봄답게 보내셨어요~^^

바람돌이 2023-04-01 22:26   좋아요 0 | URL
쿨캣님 이렇게 진지하게 뽑혔을거라고 얘기해주시면 좋으면서도 부끄럽사옵니다. ㅎㅎ
사실 이곳에는 쿨캣님을 비롯하여 글을 잘쓰는 분이 너무 많아서 항상 부러움의 한숨만 쉬는 것이 저인지라....

저 육회가 김부각위에 있고, 육회위에 있는 하얀건 배이고요. 이걸 찍어먹는 소스를 또 따로 주는데 진짜 맛있더라구요. 술안주 최고이지만 역시 비싼 관계로 자주 먹을 수는 없는..... ㅎㅎ
책은 못읽었지만 이정도면 봄날은 봄날답게 보냈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희선 2023-04-03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월 바쁘게 지내시면서 꽃도 보셨군요 다니는 길에서 벚꽃을 보셔서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저기 절벽에 핀 꽃을 보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셨군요 나무 연둣빛도 예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3-04-03 09:00   좋아요 0 | URL
삼월이 아니면 못보는 모습이니까요. 요즘은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좋은 모습을 보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또 막 느끼게 되는 그런 날이네요. 역시 사람이 뭔가 결핍을 느껴봐야 좋은게 좋은건지 아나봐요. ^^
 

1931년 11월 12일 밤, 창춘 도착. 입김이 하얗게 서릴 뿐 눈은 아직 내리지 않는다. 지난해 빈손으로 왔을 때와 달리 트렁크가 네 개나 있는 데다 역 안이 병사들로 가득했기에 한가로이 짐꾼을 부르고 자시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나는 번쩍이는검을 꽂은 소총이 숲속 나무처럼 죽 늘어선 일본군 사이를 뚫고 가까스로 어스레한 대합실에 들어갔다.  - P149

창에 이마를 대고 자작나무가 눈보라에 부러질 듯 비틀비틀하는 숲을 바라보는 내게 페름 군이 탱고 한 구절을 불러준다. 어찌하여 러시아인은 이토록 노래를사랑하는 걸까. 차라리 이 사람의 아내가 되어 페름에서 내려버릴까 하는 자포자기 심정에 잠시 빠졌지만, 여하튼 말이 통하지 않는 데다 60센티미터 남짓 키 차이가 나서 단념했다.  - P160

자작나무 장작을 가득 실은 삼두마차가 달려가고 눈이 물보라처럼 사방으로 흩어진다. 유리를 포갠 듯 눈길이 반짝이고 기차 소리에 나무 위 눈 덩어리가 도깨비불인 양톡 떨어진다. 정말이지 차창 너머 설경은 일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일본에 돌아가 8 전짜리 가락국수를 먹는 것도 나쁘지는않지만 달려, 달려, 기차여! 눈물을 참을 길 없네, 어이, 아직도여긴 시베리아 한복판일세. 혼잣말을 해보며 이중창문 밖을싫증도 안 내고 바라봤다. - P171

언어가 통하지 않은 탓일까, 참으로 불가사의했다. 왜냐하면 내 눈에 들어온 러시아는 일본에서 알던 러시아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산자들이 연모하는 러시아가 이런곳이었던가! 일본의 노동자 농민은 도대체 러시아의 무엇을 동경하는 걸까? 그럼에도 러시아는, 프롤레타리아는 변함없이프롤레타리아다. 그리고 어느 나라든 죄다 특권자는 역시 특권자다. 3루블짜리 기차 식당에는 군인과 인텔리풍 사람이 대다수였다. 복도에 서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중에 군인이나 인텔리는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이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 P174

300 프랑은 가구를 포함한 가격으로, 그 가구란 것이 상당히 보잘것없다. 옷장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목재 품질을 뽐내고 두 개 있는 의자는 너무 높아 어떻게 앉아도 발이그네를 타고 만다. 때때로 배꼽 빠지도록 웃기에 딱 맞는 의자랄까. 이 의자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어떠한 야심을 품지않아도 그만. 자지러지게 웃고 또 자지러지게 웃으며 죽음을 맞이할 때 제격이겠다. - P189

그녀가 조만간 에펠탑에 데려다준다길래 에펠탑에 올라가도 별로 재미있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더니 "밑에서 바람이불어 올라와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란다. 파리는 가벼운 곳이다. 그녀는 품위 없는 곳만 바라본다.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릴지 모르지만, 나는 불우하기에 품위 있는 곳과 인연이 없다. - P196

돈으로 당신의 나라에 가보는 거야." 이것이 열일곱 살의 꿈으로 내가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문명이 이토록 우리 젊은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단다.
"남자 친구는 많이 있나요?"라고 묻자 "남자든 여자든 친구는많죠"라며 뽐냈다. - P214

사람에게는 아주 다양한 모습이 있나 보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일직선으로 손가락을 힘차게 달려보지만 지금의 내 마음과 닮은소리를 내주지 않는다. 우물 밑바닥으로 돌을 던지는 듯한 소리다. 가벼운, 바람 부는 소리는 이 세상에 없는 걸까? 나는 있는 힘껏 피아노를 경멸하기로 한다.  - P238

세계대전이후 대체 어디에 평화가 왔나? 각국의 인민은 녹초가 됐다.
유럽을 걸어보면 지금도 베르됭의 피비린내가 난다. 발 없는남자, 한 손 없는 남자, 한쪽 눈 없는 남자, 이런 베르됭의 유물이 무얼 하고 있냐면 대개 샌드위치맨이거나 걸인 또는 비올라켜는 광대다. 과거 인기가 높던 어느 인간의 말로, 그 모습의 사람들이 유럽 각국에서 우글거리며 배출구를 찾고 있다. - P240

삼등실도 이렇게 더운데 기계실 화부나 석탄 운반부, 요리사들은 오죽 숨 막힐까? 다행히도 우리 삼등실 손님들은 일등실 손님처럼 일일이 예의를 갖춰 식당에 갈 필요가 없다.  - P262

베르됭의 망막한 광야에 서 있는 전투 기념비를 본나는 동양의 베르됭, 만주 하늘이 떠올라 몸과 마음에 무언가스며드는 기분이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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