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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입으로 굴려 발음하면 왠지 뭔가가 반짝이는 느낌이 돈다.
이 책의 표지처럼 뭔가 온통 반짝이는 곳에,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손을 꼭 잡고 있는 그런 마음.
어쩌면 허밍으로 노래 하나가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 가는 길~~~
기독교국가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가 이토록 따뜻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해방 후 오랜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 1년 중 유일하게 통행금지가 풀렸던 단 하루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대하고 기대하던 딸의 머리맡에 고구마깡 과자 한봉지를 올려놔줬던 엄마에 대한 추억같은 것 때문일까?
크리스마스라는 말속에서 나오는 반짝임은 왠지 뭔가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그래서 좀 더 특별해지는 그런 반짝임이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당연히 예상되듯이 사는게 막막하기도 하고 치사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뭔가 작은 기대 하나를 놓치지 않고 사는 그런 그냥 삶,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린 나와 너의 삶들, 그런 삶들을 이야기한다.
첫번째 이야기인 <은하의 밤>에서 은하는 그다지 잘 나가지는 않지만, 그만그만한 방송국의 방송작가다. 열심히 살아왔는에 어느 날 암에 걸리고 휴직을 하고 병을 치료하고 복직하기 전 그녀가 느끼는 감정.
이후에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발병 이전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며 그런 삶에는 오로지 고독, 크기를 잴 수 없이 크고 깊은 고독만이 필요하리라는 결론이었다. 그것은........ 설명하자면 아주 무섭도록 자기 삶 속으로 포섭된 고독이었다. 참여자 없는 연극이자 듣는 이 없는 아리아, 만남이 불발된 채 혼자서 나누는 열렬한 악수 같은 것. - 13쪽
비혼 여성으로 오롯이 혼자서 병을 감당하고 이후의 삶을 혼자 걱정해야 했던 은하의 마음에 깃드는 이런 고독은 그냥 공감이 가는 마음이다. 원래 아픈건 오롯이 혼자 견디는 고통이지만, 그 나머지 삶을 버텨줄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또 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군가는 결혼 여부와는 사실 별 상관없다. 은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건 그저 조카의 '다행이다'라는 한마디, 그리고 '고모 이제 안 아파요? 다 나았어요"라는 그런 마음이다. 아픈 연후에 복직하며 삶이 한도 없이 퍽퍽해지는 마음의 묘사 끝, 저 조카의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래서 힘내서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되는 그 과정이 직접적인 묘사 없이도 와닿는다. 어쩌면 이 소설속 은하와 조카의 대화는 소설에 그치지 않고 위로가 필요한 우리들 모두에게 위로의 기억이 되어줄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그런데 그런 삶의 위로나 전환은 무조건 밖에서만 오지 않는다. <은하의 밤>의 또 다른 인물인 오태만씨. 아나운서로 방송국에 취직했으나 해당부서가 없어지는 바람에 예능국으로 넘어와 뭘해야 할지 하지만 회사에는 무조건 붙어있어야 하니까 새 부서에 적응하고자 무진장 애쓰는 사람. 그래서 보도국 사람들이 모두 부당한 부서 조정에 항의해 파업을 할 때도 나는 원래 보도국 일도 잘 못했어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예능국에서 한번 해볼려구요라는 말로 자신을 억지로 북돋우던 그가 마지막 순간 파업을 하는 동료들을 돕는 것은 딱히 어느 순간이 계기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살아보면 그렇지 않던가? 물러서고 물러서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해버리는..... 내내 마음에만 쌓아두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던 것들을 결국 행하는 순간은 그리 대단한 계기가 아니라 이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것 말이다. "아이고 저 미친 새끼"소리를 들어도 "내가 미쳤지 미쳤어" 자조해도 그럼에도 할 수 밖에 없는 어떤 것들이 우리 인생에 있으니 말이다. 사소한 시간들의 의미가 나는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보이는데 나보다 훨씬 일찍 그런 비밀을 알고 보여주는 것은 작가의 힘이겠지.
단편 <당시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는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이야기다. 오래 기른 반려견의 죽음 이후 그 상실의 아픔에 고통받는 세미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주변 사람 중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에게 하나씩 하나씩 연락을 한다. 어떤 이는 나와서 이년 전에 죽은 자신의 반려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자신의 반려동물을 데리고 와 안아보고 사는 얘기를 하게 된다. 어디든 아기와 동물이 매개가 되면 사람들은 쉽게 친절해지고 쉽게 웃으며 쉽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만남과 대화는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소소한 일상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내뿜는 반짝임은 그런 소중한 순간들의 타일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