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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읽는 세계사 - 사소한 몸에 숨겨진 독특하고 거대한 문명의 역사
캐스린 페트라스.로스 페트라스 지음, 박지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1월
평점 :
"근자에 읽은 역사 책 중 재미로는 단연 압권, 얼른 누군가에게 얘기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라는 최재천선생님의 추천사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이런 류의 다이제스티 역사서가 이제 좀 지겹기도 했고, 또 이런 류의 역사책을 가장한 가쉽서들에 대한 불만도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난 결론은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고로 이 글은 입이 근질거려서 쓰는 리뷰 되겠다.
일단 목차가 근사하다. 이 그림이 진짜 목차다. 1. 구석기 시대 여성의 손 2. 핫셉수트 여왕의 턱수염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만 미리 말하는데 이 그림에는 사진이나 삽화가 없다. 딱 1개의 삽화가 있는데 그게 이 차례이고, 그리고 딱 1개의 그림이 있는데 그건 바이런의 초상화다. 사진이라고 딱 1장 넣어놓은게 왜 굳이 바이런의 초상화였을까? 그걸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은데 내 추측으로는 바이런이 잘 생겨서이지 않을까이다. 거짓말이라고? 아니 이 책을 읽어본 분들이라면 분명 나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이 책의 작가들은 남매라는데 사심이 가득하다. ^^ 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 바이런의 얼굴이다.(바로 이 책 유일의 그림이다.)
뭐 이정도면 사심이 가득해도 할말 없는 얼굴이지 않나? 바이런은 이 잘생긴 얼굴로 엄청난 바람둥이였다니 여러방향으로 인류애 가득한 분이셨겠다. 물론 이런 얘기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애초에 몇 페이지 읽지 않고 내 손에서 던져졌을 것이다. 저자들이 바이런에서 얘기하는 것은 장애가 있던 그의 발과 그의 삶 문학이 연결되는 지점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외모와 삶과 문학작품이 일치하는데다가, 또한 그 일치를 위해 삶의 다양한 장면들을 관리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유지하는 모습까지 보다 보면 어쩌면 바이런은 당대의 아이돌 스타가 아니었을까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광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니, 그의 신체이형증(자신의 신체적 불완전성, 그러니까 발의 장애-을 지나치게 곱씹는 정신질환)과 당시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점으로 표현되던 동성애취향에 대한 고뇌까지가 모두 바이런이다.(이 장면에서 책 내용과 상관없는 하나의 궁금증을 풀었는데, 그것은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를 항상 이름을 말할 수 없는자라고 부르는것에 대한 궁금증이다. 서양전통에서는 무언가 지나친것에 대한 이런 표현이 일종의 관용적 표현인듯 하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있는 이야기는 내게는 첫번째 구석기 시대의 여성의 손이었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동굴벽화 하면 알타미라나 라스코의 동물그림부터 떠올리는데 그게 최초의 그림들이 아니란다. 최초의 동굴그림은 여성과 아이들로 추정되는 이들의 손도장이다.
지금 현재 알려진바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이다. 보르네오섬에서 발견되었다. 이런 류의 손도장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래 사진은 프랑스 가르가스 동굴의 손도장 벽화이다.
사실 벽화라고 하는 것도 손도장이라고 하는 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런 손도장은 손을 벽에 대고, 대나무 대롱 같은것에 물감을 가득 넣어 입으로 뿌려서 자국을 남기는 기법으로 그려졌다. 오늘날 그래피티를 그리는 기법과 비슷하다.
그러면 도대체 구석기시대의 인간들이 왜 이런 손그림을 남겼을까? 정답이야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상상할 뿐이다. 어둡고 불편하고 위험해보이는 동굴 깊숙한 곳에 여성들과 아이들 몇몇이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리고 벽에 손을 대고 입에 대롱을 물고 물감을 뿌린다. 그리고 자신의 손그림을 보며 무언가의 행위를 당연히 했을테고 그 무언가는 종교적인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어떤 부족은 자기 부족의 손자국을 전부 구별해낼 수 있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무언가를 기원하고 남긴 서명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이 책이 가진 장점 첫 번째를 말할 수 있다. 생각보다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다. 이런 역사책들이 가지는 구태의연한 통속성, 여기저기 흔히 알려진 이야기들을 끌어모아 재배치한 느낌이 없다는.... 원래 이런 책을 읽을 때 책이 재미있으려면 내가 모르는 얘기가 훨씬 더 많아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재미를 보장한다. (물론 27편의 이야기가 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 많다는 것뿐.... 해리엇 터브먼의 뇌의 이야기는 좀 믿기 힘들고, 마르틴 루터의 장 이야기는 과장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흠은 책의 재미에 비하면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들을 더 좋아할 수도 있고......)
이 책의 두번째 장점은 정치적 올바름이다. 특히 여성에 관한 서술에서 그 올바름을 유지하는 것말이다.
사실 다비드상 같은 조각을 볼 때 궁금했던게 있다. 조각의 다른 부위에 비해서 성기가 너무 작은 것이다. 그런데 부끄럼 많은 나는 어디에도 못 물어봤는데(사실 아는 사람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가 더 정답에 가깝지만), 이 책에서 제우스를 표현한 이 조각을 예로 들어 그 비밀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당대의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완벽한 남성의 특징 중에 바로 '작은 음경'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정말???? 믿을 수 없어!!! 그럼 오늘날은 왜 이렇게 된거야????)그리스 인들의 생각에 모범적인 남성은 '햇볕에 그은 피부, 잔근육, 탄탄한 몸, 평온하고 신중한 마음'이 포함되는데 크고 불룩한 음경은 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 음경뿐 아니라 곧추선 음경 역시 무절제와 무분별한 성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하게도 공식적인 입장일 뿐이고 사적으로는 성난 황소와 같은 음경이 각광을 받으면서 은밀하고도 공공연하게 만들어져 유통되었다고 하니 남성들의 성적 이중성은 시대를 막론한다. 저자들은 여기서 여성의 조각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아주 기묘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즉 고대 그리스 여신 조각상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 성기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글을 보자.
여러 학자들은 이것이 작은 음경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미소지니스트(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라는 뜻으로 놀랍게도 그리스어다!)의 사고가 확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들은 욕망을 억눌러야 했던 반면, 성적으로 적극적인 존재로 여겨진 여성들은 조각상에서만큼은.... 욕망을 가져볼 기회조차 거부당했다. - 48쪽
고대 미술에 나타나는 이 오래된 미소지니를 확인하는걸 잊지 않는다. 참 성차별의 역사는 길기도 길지만 모든곳에서 깨알같이 많기도 하구나. 서양만 그러한가? 그럴리가!!! 베트남의 영웅 찌에우 티 찐은 가슴이 90cm여서 가슴을 뒤로 넘겨 다녔다는 전설이 있는 이이다. 3세기 중국의 침략에 대항해서 싸운 여성영웅이다. 워낙 오래된 일이고 자료가 없어서 그의 실제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데, 오히려 수세기가 지난 뒤에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교문화권이 된 베트남에서 그녀가 어떻게 평가되고 쓰여졌는지를 알려준다. 베트남의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가부장제에서 그녀는 역사적 인물이 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온갖 믿기 어려운 일화들과 신체적 특징들이 과장되이 전해지게 된다. 결국 그것은 그녀를 신화화해서 무성적 존재로 만드는 방법에 의해 유교질서 안으로 그녀를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 다른 생각도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역사속에서 서양과 동양 가릴 것 없이 성차별의 역사가 스며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도 신선한 시도였다. 그 외 카톨릭의 성유물 숭배와 당대 카톨릭의 부패를 연결하는 이야기,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당대의 권력자에 대한 아부가 되는 이야기들도 우리가 어떤 사건들을 볼 때 그 이면을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려주었다.
세번째로 이 책의 장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대륙의 이야기들을 균형있게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없는데 이 책을 통해서 식상하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 알아보기 힘든 조각은 멕시코 치아파스에 있는 마야문명의 유적이다. 마야의 야스칠란 왕국의 왕비였던 카발 쇼크 부인이 자신의 혀에 구멍을 뚫은 다음 나오는 피를 받아 제사를 지내는 제의의 한 장면이다. 이런 피어싱이 여성에 한해서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닌듯하고 그 대상을 어떻게 선정했는지는 오늘 우리가 알 수 없으나 끔찍하면서도 흥미로운 의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신들이 인간을 위해서 성스러운 필을 내주었기에 인간은 이 조각의 쇼크부인처럼 자신의 피를 양식으로 신에게 내주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 그들의 종교도 이해는 힘들지만 흥미진진하다.
결국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입이 근질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재미있고 괜찮은 이야기를 나만 알고있는것은 부당하니 말이다. 앗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장점이 하나 더 있는데 소소하지만 정말 깨알같은 유머와 농담을 즐길 수 있다는것이다. 딱히 대단한 농담도 아닌데 책을 읽다보면 저자들의 농담에 낄낄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농담이 너무 많으면 짜증나는데 그 경계를 잘 지키고 있으니 책의 퀄리티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즐기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