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인간은 점점 달아오르는 이 행성에 너무 많이,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P8

그 결과, 세상은 멈추었다. 로봇은 인류라는종이 살아남아 활동을 계속하는 한 언제나 행성 - P20

의 모든 다른 생명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종을 위한최선의 안전장치는 인류 문명의 종말이었다. - P21

"한때는 인간이었잖아요. 그때는 당신이 인간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런 건 생각해본 적 없다. 인간이었을 때 나는 그냥 인간이었다. 내가 인간인지 아닌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흡혈인으로 변한 이후다. 인간의 피를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된 이후, 인간을 사냥하고 살해하기를 열망하는 욕구에 굴복한 이후, 인간의 피를 마시면서 내가 그냥 사람이었을 때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강렬한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
"인간의 기준이 뭐죠?" - P65

안전장치가 가동되고 혼란의 시대가 찾아왔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고 사람이 사람을 약탈했다. 거기에는 남자도 여자도 없었다. 공격하는자와 공격당하는 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 무렵에화장실에서 살며 침입자를 잡아먹는 여자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화장실의 미친 여자‘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은 남자들이었다. 더구체적으로는 여자 화장실에 초소형 카메라를설치해서 화장실 안을 엿보던남자들이었다.  - P101

많았다. 여자는 이곳저곳 화장실 초소형 카메라렌즈에 무작위로 나타났고 언제나 누군가 남자를 죽여서 먹었다. ‘화장실의 미친 여자‘는 한 명이었으니까, 모든 여자가 다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 P102

"나, 사람이에요. 로봇 아니에요."
기계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은 존재가 있었다.
내가 사라지면 그의 마지막 순간을, 그의 마지막 선택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 P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여러 가지를 숨기지 않고 스스럼없이 말해주는 것처럼보인다. 그래도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내생각에, 이 세계에서 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사람이 이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을까? - P44

나는 바다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볼 때마다 어떤 감동을 받는다. 아마 바다가 영겁에 걸쳐 - 혹은 거의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변화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닷물은증발해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를 내린다. 영원한 사이클이다.
바닷물은 그렇게 조금씩 교체되어간다. 그러나 바다라는 총체가 변화하는 일은 없다. 바다는 늘 똑같은 바다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인 동시에, 하나의 순수하고 절대적인 관념이기도 하다. 내가 바다에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느끼는 건 (아마도) 그런 종류의 엄숙함이다. - P79

내 전임자들, 즉 나보다 앞서 이곳에 왔을 꿈 읽는 이들도나처럼 설명다운 설명을 듣지 못하고, 그 행위의 의미도 파악하지 못한 채, 날이면 날마다 오로지 오래된 꿈을 읽고 또 읽었을까? 그들은 직무를 무사히 완수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 P117

얼마든지 멀리 달려가려무나. 벽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언제나 거기 있을 테니. - P207

훗날 고야스 씨는 자신이 왜 일상적으로 스커트를 입는지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첫째로는, 이렇게 스커트를 입고 있으면, 네, 왠지 내가 아름다운 시의 몇행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랍니다." - P268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소년은 이 현실세계와 마음이이어져 있지 않다. 이 세계에 진정한 의미로는 뿌리내리지 않은 것이다. 임시로 매어둔 기구같은 존재, 지상에서 살짝떠오른 상태로 살고 있다. 그리고 주위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그러니 매어둔 고리를 풀고 이 세계를 영원히 떠나버리는 일에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 P535

옐로 서브마린 소년ㆍㆍㆍㆍㆍㆍ 그 자신이 그대로 하나의 자립한도서관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크게 숨을 내뱉었다.
궁극의 개인 도서관. - P557

"그렇지. 하지만 비평적 기준으로는 매직 리얼리즘일지 모르지만, 가르시아 마르케스 자신에게는 이런 이야기 방식이지극히 평범한 리얼리즘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해. 그가 살던 세계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이 지극히 일상적으로 혼재했고,
그런 풍경을 보이는 대로 썼던 게 아닐까." - P672

"그렇게 참을성 있게 기다릴 만한 가치가 나에게 있을까?"
"글쎄." 나는 말했다. "하지만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기다리고 싶다는 마음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 P680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 P684

도서관에 가기 전 자유로운 오후 시간, 나는 옐로 서브마린소년이 바깥세계에서 축적한 방대한 양의 책을 읽어나갔다.
그건 나 한 사람을 위해 제공된 개인 도서관이었다. 소년은 나를 위해 자기 안에 있는 도서관을 고스란히 개방해준 것이다. - P7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가 올라이이고 어부이며 마르타와 결혼했고 요한네스의 아들이며 이제 언제라도,
조그만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 P17

신이 존재하기는 하겠지, 올라이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다. 그리고 그는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 신은 홀로이 세상과 인간들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래 여하튼 존재하기야하지만, 창조과정에서 방해를 받은 거지, 올라이는 생각한다.  - P17

그리고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였으니 자네가 저세상으로가도록 도와야지, 그가 말한다내가 저세상으로 가도록 도와? 요한네스가 묻는다그리고 페테르는 고개를 끄덕인다 - P129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23-10-23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괜찮던가요? 노벨상 받아서 한 번 읽어볼까 해서 3부작 짜리 단편 하나 읽었는데, 음...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더라구요. 너무 쉽게 사람을 죽여서 놀랐어요. 열 일곱인데.... 노르웨이 문화에 대해 너무 몰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여튼 이 책 제목도 좋아보이고 표지도 예뻐서 시도해보려는데 어떨까요?

바람돌이 2023-10-24 13:35   좋아요 1 | URL
이책은 대가의 느낌은 좀 아닌데.... 그래도 저는 좋았어요. 삶과 죽음의 순간에 대한 묘사가 저는 마음에 들더라구요. 그렇게 분량이 많지 않으니 읽어보셔도 좋을것 같아요. ^^

꼬마요정 2023-10-24 23:44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도전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님^^
 

그곳은 용산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그녀는 이어서그렇게 썼다. 페이퍼백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 - P19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 P32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 P32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대해 쓴 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 P43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P52

그날 차 안에서 다희에게 한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밖으로 나가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녀 안에서 아우성치며 그녀를 밀어붙였다.
이미 정리한 시간이기에 그녀는 정제된 언어로 이야기했지만, 몸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땀이 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머리가 아팠고, 때로는 그때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 P101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 P120

다희와 주고받던 이야기들 속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이있었으니까.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서로를 비췄다. 다희에게도 그 시간이 조금이나마 빛이 되어주었기를 그녀는 잠잠히 바랐다. - P123

핸드폰을 집에다 두고 나온 채 이십 분을 늦은 친구에게, 내가좀 있다 연락할게 기다려봐, 이야기하고 다시 전화하는 것을 잊은 애인에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깊이 상처받았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꼭 버려지는 것 같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마음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 P206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고양감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 P2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 은퇴했다.
나는 위대한 작가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쓰지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내가 일단나의 책을, 나의 소설을 쓰기만 하면… - P45

"말도 안 돼. 살던 집을 떠나 다른 집으로 가는 건누군가를 죽였을 때만큼이나 슬픈 일이야." - P53

너를 두렵게 하고 너를 해칠 수 있는 유일한 건 인생이라는 것,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 P112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당신은 당신의 돔도 보석도 그대로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없어진 것은 단지 당신 일생 중 하루뿐임을 - P1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