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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국경을넘어 > [퍼온 글]평택에 왜 미군기지가?

1) 왜 제주(그것도 남서쪽 끝단에 있는) 모슬포에 첨단전략공군기지가 들어서야 합니까?
☞ 이곳은 대만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대만해협을 향한 전투/전폭기의 즉각적인 출격이 가능한 유일한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 이곳에는 F15가 우선배치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고, 현재 군산비행장에 배치된 스텔스전략폭격기까지 배치될 것입니다.

2) 왜 제주남단에 모슬포 공군기지 예정지 옆에 첨단해군기지가 들어서야 합니까?
☞ 이는 중국과 대만분쟁에 미국의 항공모함과 같은 전략무기들이 상주하는 기지가 됩니다.

3) 왜 제주도 남서쪽 모슬포에 MD기지가 들어섭니까!!
☞ 도대체 어디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겠다는 겁니까!!

4) 왜 미사일방어기지(패트리어트기지)들이 모조리 서해안에 집중배치되어야 합니까!
☞ 인천 문학산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수원/오산/평택/군산/광주에 이미 있습니다.
  제주 모술포옆에 MD기지가 들어설 예정이랍니다.
☞ 도대체 어디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잡으려고 만든겁니까!! 그리고 하나같이 미군부대들을 기준으로 서쪽지역에 모두 배치되었는데 이건 또 뭐하는 플레이입니까!!

5) 군산항에 핵잠수함이 들어왔다 나갔다 합니다. 중국은 여기에 상당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죠. ☞ 왜냐하면 핵잠수함은 중국의 바로 코앞에서 중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전에서 항공모함과 거의 동격으로 가장 위협적인 전략무기로 평가받고 있죠.



6) 왜 군산 미공군기지에서는 24시간 핵전략폭격기인 스텔스기가 하루종일 공중에 떠있을까요?
☞ 꼭 이래야 됩니까! 남의 나라에 다른나라의 전략핵무기 공격수단이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7) 왜 미국의 핵항공모함이 우리나라에 들락날락합니까!! 뭐 어쩌자는 겁니까!!

8)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모든 미군의 전쟁기지들을 왜 우리가 공짜로 지어줘야 합니까!!

9) 미군은 평택의 미군기지가 앞으로 100년이상 영구적으로 사용될 동북아시아 전략기지가 될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합니다. 왜 우리가 이런 화약고를 우리돈으로 지어주고 평생을 자자손손 당신들의 머나먼 후손까지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까!!

10)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한미전략적유연성합의에서 동북아분쟁발생시 한국군이 자동으로 동북아 지역군으로 편제되어 재배치된다라고 합의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미국놈들 총알받이가 아니고서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젊은이들.. 당신의 후손들이 왜 총을 짊어지고 남의나라 전쟁터에 동원됩니까!!

이상 10가지 질문에 대한 합리적이고 명쾌한 답변을 내세울 자신이 없다면 조용히 읽어만 보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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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내이름은김삼순 > 주목!! 삼순이도 이벤트하렵니다!^^

예전부터 다른님들의 이벤트를 보면서 저도 하고 싶은 맘이 정말 간절했지만

어찌어찌하여 미루다 이제서야 하게 됐네요^^

저두 복잡하고 그런건 딱 질색이니깐 님들이 좋아하시는 그냥 숫자이벤트할께요~!

요즘 서재마다 방문자수가 폭등하죠? 제 서재도 그 효과를 조금 보고 있어요^^;;

예전에는 하루 방문자수 100!!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요즘에는 글 하나 올려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어느날은 200명도 넘더라구요,,ㅎㅎ

그러니 다른님들의 서재 방문자수는 대충 짐작이 가네요^^

암튼!! 결론은 솔직히 6666이란 숫자를 이벤트로 할까말까 말성이다가,,

(왜냐하면 어릴적에 이 숫자와 관련된 무서운 영화를 본 기억에 별로 달갑지 않은 숫자라,,,)

그래서 다시 7000으로 하려다 이 숫자는 또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바람에 그냥 저 내키는대로

★★6789!!★★라는 숫자를 내 걸었습니다~ㅎ

요번주 안에는 잡힐거라 예상^^;;

이 숫자를 5번째로 잡아주시는 분께 만원 상당의 책 선물하겠습니다~

왜 하필 5번째냐구요?

제가 김씨 가문의 막내딸,,다섯째 딸이거든요^^

글구 저도 이벤트 참여해봐서 아는데 첫번째로 잡기는 정말 너무너무 어려워요,,

그 빠른 손놀림,,저는 그렇지 못하기에 저처럼 조금 느리신 분께(?) 행운을 드리려구요^^

이벤트라면 적극 참여하시는 알라디너님들!! 이번에도 믿습니다!!

소심한 A형보다 어쩜 더 소심할지도 모르는 B형 삼순이는 이벤트 참여가 너무 저조하다 싶으면

혼자 구석가서 울다가 극기야는 이 페이퍼를 날려버릴수도 있어요 ㅋㅋㅋ

친분이 별로 없는지라,,많은 분들에게 홍보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구요~^^

처음 하는 이벤트라 조금 긴장되는데,,움,,반응이 좋으면 앞으로 정기적으로 이런 이벤트 마련하겠습니다!

여러분들 관심과 참여에 달려있어요^^ 말이 너무 길어졌는데,,저는 이만 인사드리구,,

암튼 기대할께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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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평택투쟁이 애국적 투쟁이라니… -인권오름 제 4호

 

 

[뒤척이다] 평택투쟁이 애국적 투쟁이라니…

 

평택에서 애국은 깡패를 사랑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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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골 
내가 처음 평택에 내려왔던 것은 2004년 5월 29일에 열린 평택평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평화가 무엇이냐'는 문정현 신부님의 발언이 인상적이어서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남겨두고자 노래로도 만들게 되었다. 그 발언 가운데 '김지태 위원장이 땅을 강제로 빼앗기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평화'라는 부분이 나온다. 고백컨데, 나는 당시 김지태 위원장이 누군지 몰랐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다들 알고 계실 것이다. 대추리 이장님이 노무현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들을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농사밖에 모르던 시골 촌부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그 과정은 그대로 한국의 조그만 농촌마을에서 벌어진 주민운동이 국가 공권력의 온갖 회유와 압박 그리고 폭력을 이겨내며 성장해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 그것이 감동적인 것이다.


자치를 일구는 사람들

그러다 말로만 듣던 팽성 농민들의 촛불집회에 오게 된 것은 2005년 1월 6일이었다. 당시에는 본정리에서 촛불 집회를 열고 있었는데, 125일차 정도였던 것 같다. 서울 길바닥평화행동 사람들과 함께 와서는 나는 '여러분들의 투쟁은 정당합니다. 여러분들은 고립되어 있지 않아요. 저는 이 투쟁에 지지를 보내고, 힘을 실어주러 왔습니다'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이제 촛불집회는 600일을 훌쩍 넘어서 계속 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국가에 대한 믿음이나 의존을 철저히 버리고 자신들의 힘으로 자치를 해나가고 있다.

평택주민들의 이 웃음을 누가 빼앗아갔는가. <사진 출처: 평화바람>


지난 2월 초 팽성에 유례없이 큰 눈이 내린 적이 있었다. 밤사이 내린 눈으로 모든 도로가 눈으로 뒤덮여서 평택역과 대추리를 오가던 버스도 그날은 운행을 중단했다. 그렇게 눈이 많이 왔지만 대추리에 제설차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평택시에서는 미군기지 수용 예정지역에 굳이 세금을 뿌려가며 제설차를 보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은 정부의 도움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신종원 씨가 트랙터를 몰고 나선 것이다.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던 마을이 금세 말끔해졌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주민들에게 더 이상 정부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국가가 주민을 버린 곳에서 비국가 자치공동체가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이곳 황새울 들녘에서 국가를 넘어서는 자치 운동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국가조직으로 대표되는 위계적 질서를 거부하는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배우고 있다. 또한 노무현이 직접 찾아와 수십 억원의 돈을 준다 해도 땅에서 나갈 수 없다며 그저 농사를 짓고 싶다는 촌로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으며, 황금만능주의가 판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귀한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대추리, 도두리에 깃들어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아끼고 돌보는 공동체가 파괴되어 서로 친하던 이웃이 어느 순간 원수가 되어 버린 것에 대해 가장 큰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고 이간질을 획책해온 국방부는 참으로 악랄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파괴해버린 상호부조의 끈끈한 민중의 삶의 원리를 남아있는 주민들은 평화지킴이들, 인권활동가들 그리고 사회운동단체 활동가들 등 '외부세력'과 하나 되어 다시 복원시켜 나가고 있다. 평택의 평화를 지키러 들어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주민들은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기에 '대추리 바이러스'가 그렇게 널리 퍼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반미=민족사랑? 글쎄…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외부세력은 어떤 단일한 목적을 갖고 들어온 사람들도 아니고, 누가 가라고 시켜서 들어온 사람들도 아니다. 노동자도 있고, 선생님들도 있고, 학생도 있고, 나처럼 활동가를 가장한 백수들도 있다. 그렇기에 성향도 다양하다. 서울에서 선전전을 하다보면 팽성의 주민이 아닌 사람은 무조건 한총련으로, 그리고 반미주의자나 폭도로 알고 있는 시민들의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나는 비폭력을 내 실천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기에 폭도는 아니며, 학생도 아니기에 한총련이 아는 것은 확실한데, 반미주의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미국의 무지막지한 군사적 패권주의를 누구보다 혐오하며, 그 제국이 깡그리 망하기를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전쟁의 위협이 현저히 감소하길 누구보다 절실히 바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분명 반미주의자이다. 하지만 반미를 외친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민족은 극복의 대상이지 애정의 대상은 아니며, 국가 역시 철폐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노동자가 자본가를 사랑할 수 없듯이 민중이 외치는 애국은 어쩐지 어색하게 들린다. 국가란 그 우두머리가 부시든 노무현이든 김정일이든 소수의 지배자들이 다수의 인민을 결국 강압으로 통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팽성에 주둔해 있는 미국 군인에게도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K-6 기지 근처에서 미군들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당신들은 왜 이역만리 땅에 와서 총을 들고 있느냐고. 그들은 대부분 돈이 없어서 왔거나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어 온 사람들이다. 이라크에 가 있는 한국군 자이툰 부대 장병들 역시 똑같은 대답을 한다. 돈을 벌고 싶거나 또는 애국을 하기 위해 왔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국가가 지금 대추리, 도두리에서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가?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농민들에게,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국가는 민주주의라는 최소한의 허울마저 훌훌 벗어던지고 그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실체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벼랑 끝까지 내몰린 빼앗긴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는데, 국가는 전투경찰과 군대를 보내 방패로 찍고, 몽둥이 세례를 퍼붓지 않았는가? 이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연행해 가두고, 구속을 시키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미 1980년 광주를 잊었다는 말인가? 그때 국가폭력의 실체를 가슴에 똑똑히 기억하지 않았나. 정권이 몇 번 바뀌고, 민주화가 되고, 인권신장을 위한 국가기구가 설치되는 등 표면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해서 국가의 폭력적 본질이 바뀐 것이 아님을 우리는 지금 현재 황새울 들녘을 불법적으로 점거한 군인들과 경찰들을 보며 생생히 느끼게 된다.

5월 4일 군부대를 동원한 강제집행이 있은 직후 만들어진 선전물. <사진 출처: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서울대책회의>


사실 팽성 주민들에게 국가는 이미 '깡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지난 2월 주민들은 주민등록증을 모아 불태우며 자치를 선언하고 더 이상 국가의 보호를 받지 않고, 국가의 통제도 거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주민들은 몇 년 동안 대화를 하자고, 땅을 버리고 나가고 싶지 않다고 절박하게 외쳐 왔지만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행정부의 힘을 모두 동원한 국가는 귀를 틀어막은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깡패짓을 하고도 거리낌 없는 이 국가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가진자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할 테고, 기득권은 점점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가는데,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약탈은 더욱 심해질 테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착취도 더욱 노골적으로 벌어질 텐데, 그리고 점점 늘어만 가는 빼앗긴 사람들의 불만에 국가는 이제 군대까지 동원해 자신의 폭력적 의지를 관철시키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애국의 물결, 깡패를 사랑하자고?

곧 다가올 월드컵 기간에 다시 이 땅은 애국의 물결로 넘실거릴 것이다. 나는 최소한 대추리, 도두리에서만큼은 애국자들이 없어졌으면 한다. 미국을 반대하면서 애국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폭력에 반대하면서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체제를 유지시켜 나가는 미국, 그리고 이에 기생해 이윤을 챙기고, 기득권을 유지해가는 한국의 지배계급이 밀실에서 손을 잡고 황새울 들녘을 무기와 군대로 채우려고 하는데 우리는 그 빌어먹을 국가는 이제 평택에서 물러나라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다름이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되길 바라는 나는 국가주의에 물들어 '미국과 맞장을 떠도 지지 않을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평택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많이 결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다만 그놈의 국가라는 것이 팽성의 농민들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한민족이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특히 '양키들'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는, 또는 독도를 호시탐탐 넘보는 일본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강한 북한과 경제력이 강한 남한이 통일해 강한 국가를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군을 내쫓는 평택 투쟁이야말로 '애국적 투쟁'이라고 설교하시는 분들도 있다. 행정대집행을 막기 위해 모인 평택지킴이들을 '애국투사'라고 사람들이 부르며 일제시대에 활약한 독립투사 같다고 하신다.

글쎄. 난 전쟁의 위협을 몰고 오는 미군은 열화우라늄탄을 비롯해 저들이 가져온 무기들과 함께 한반도에서 지금 즉시 모조리 사라져야 한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한민족 국가를 세우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국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이미 소수 주민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팽성의 농민들을 보며 나는 다시금 '누구의 입장을 갖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 6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황새울 비국가 공동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가가 없는 곳에서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밭을 일구고 땅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곳에서 애국은 깡패를 사랑하자는 것이다. 아름답고 따사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애국자가 모두 없어져야 한다는 권정생 선생의 시를 노래로 불러본다.
조약골 님은 피자매연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 호 [입력] 2006년05월17일 3: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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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팽성 주민, 평택 시민. 눈물만 짓지 않을 것"

 

 

 

"팽성 주민, 평택 시민. 눈물만 짓지 않을 것"

 

팽성대책위, 평택대책위.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 인권 침해 사례와 향후 계획 밝혀

서정환 기자   서정환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팽성대책위와 평택대책위 공동기자회견ⓒ민중의소리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계획이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 시키고 있는 가운데 팽성주민대책위와 평택대책위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평택 지역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와 향후 일정을 밝혔다.
  
  17일 오전 11시, 평택시청 현관 앞 계단에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양 대책위는 또 "그간의 언론 보도가 정부측의 주장만 대변해 평택 상황을 왜곡시켰다"며 "주민들의 입장과 목소리를 알려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도두2리 이상렬 이장은 "팽성 주민들과 평택 범대위야 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나라가 잘 되라고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외부세력이니 보상이니 하면서 사실과 전혀 다른 비난을 받고 있다"면서 언론의 공정한 보도를 요청했다.
  
  이 이장은 특히 지난 4일의 행정대집행 이후 하루하루를 고통속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과 목소리를 들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평택대책위원회 이은우 정책위원장은 양 대책위의 향후 활동에 대해 △내일(18일)부터 매주 목요일을 '대추리, 도두리 주민과 함께하는 평택시민 공동체의 날'로 정하고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촛불 집회를 펼칠 것(월∼금 사이에는 평택 시내에서 촛불집회 개최) △전국 각지를 돌며 평택의 사실을 알리는 평화순례를 펼칠 것 △평화 농사를 지속적으로 진행 할 것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한 고소인단을 모집하여 소송을 제기 할 것 △5월 21일 평화마라톤 대회 및 문화제를 개최 할 것 등의 사업계획을 밝혔다.
  
  양 대책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비무장지대에 사는 주민보다 더 처참한 현실에 놓여 있는 팽성 주민들의 눈물나는 현장을 전 국민들이 방문하여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느껴주시길" 국민들에게 호소 했다.
  
  또한 "팽성주민들, 평택시민들은 대추리, 도두리 들녘에 푸른 벼이삭이 싹틔울 수 있도록 결코 눈물만 흘리지 않을 것"이라며 "평택의 자존감과 평화,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공동행동을 통해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05월17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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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바람돌이님께 - 성북동 이태준 고택 수연산방


성북동 이태준 고택 수연산방

멋스러운 고택, 아기자기한 마당, 차 한잔에 예스러움이 가득

외국인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곳들이 있다. 인사동, 고궁 같이 우리네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성북동에 있는 이태준의 고택에 마련한 전통다원 수연산방 역시 외국인들이 와서보면 눈을 반짝이며 좋아할 만한 곳이다.

이태준 선생 살던 집
 고택이라는 말 그대로 옛날 한옥을 그대로 쓰고 있다. 상허 이태준은 <달밤>, <돌다리>, <가마귀> 등의 단편을 발표한 일제치하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소설가. 그의 친필 사인이 적힌 고서적이며 옛 가구, 구식 재봉틀, 다기 등 예스러운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있다.
 마루에 올라서면 저만치 북악산 자락이며, 산 능선을 따라 서울성곽이 놓여 있는 것도 보인다. 이태준 선생이 집을 지을 당시만 해도 풍경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 서울에서 이 정도의 경치를 가진 집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고택은 작지만 기품이 있고, 어딘지 모르게 멋스럽다. 집을 지을 때 기일을 정하지 않고 여유롭게 지은 덕분이리라. 목수들이 나무를 깎고 기둥을 세우는 등 손으로 하나하나 차례를 지켜가며 순리대로 지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은 1930년에 지은 것으로 광복후 월북하기 직전까지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수필집 <무서록>을 집필하기도 했다고.
 그가 앉아 글을 썼을 사랑방에 앉아 그가 바라보았을 북악산 자락을 바라본다. 마루에 비치해둔 그의 작품집 가운데서 <무서록>을 가져와 펼친다. 

 나무들은 아직 묵묵히 서 있다. 봄은 아직 몇 천 리 밖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무 아래 가까이 설 때마다 나는 진작부터 봄을 느낀다. 아무 나무나 한 가지 휘어잡아 보면 그 도통도통 맺혀진 눈들, 하룻밤 세우만 내려주면 하루아침 따스한 햇볕만 쪼여주면 꽃피리라는 소근거림이 한 봉지씩 들어 있는 것이다. 봄아 어서 오라! 겨울나무 아래를 거닐면 봄이 급하다. -無序綠 중 일부

마당에는 그가 애써 오라고 부르던 봄이 무르익어 하늘거린다. 제비꽃이 무성하게 화단을 덮고,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잎사귀를 펼치고 있다. 그가 물을 길어 올리던 우물도 여전하다. 속을 들여다보니 2미터 정도 아래 물이 찰랑거린다. 누군가 두레박을 내려주기만을 기다리는 듯. 

사랑방에 앉아 풍경 감상
 수연산방은 전통 한옥에 문을 연 전통 찻집으로는 1호라고 한다. 고택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찻집의 역사도 깊어 가는 셈이다. 집의 규모가 작아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없는데 본채에는 사랑방, 안방, 마루까지 해서 차탁 6개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서 마당에도 테이블을 놓고, 라일락 나무 아래도 둥그런 벤치와 테이블을 두었다. 그리고 담장을 벽으로 삼아 지붕을 얹어 두 개의 공간을 더 마련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자리를 늘려간 덕분에 자리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그게 이 집의 멋을 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사랑방의 바깥 쪽 자리. 원래 방 높이보다 한단 정도 높게되어 있고 문에는 한지 대신 유리를 끼워 밖이 잘 보이게 했다. 여기 앉아 있으면 담장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건너 보인다.
 안방 바깥 문 앞에 있는 작은 마루도 명당자리. 나무 난간에 팔을 올리고 앉아 작은 마당이 주는 자연의 향기도 맡고, 코를 간질이는 바람도 맞기 좋은 자리다. 꽃이 피는 시기에는 라일락 나무 아래 놓인 벤치도 인기다. 작은 계단을 딛고 올라가 들어가는 자리도 독특하다. 천장이 낮아 키 큰 사람은 머리가 닿을 정도지만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고택의 정원이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정성이 담긴 차 한 잔
 수연산방의 스테디셀러는 송차와 대추차. 솔방울로 만든 송차는 향긋한 솔향이 그만이다. 진하게 우려낸 대추차는 이집 주인의 인간미를 짐작케 한다. 요즘은 희멀겋게 흉내만 낸 대추차가 흔하고, 식품회사에서 만든 대추차를 그냥 물에 타서 주는 곳도 많은데 여기서는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끓여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요즘부터 여름 동안에는 얼음을 띄운 오미자차와 미숫가루도  인기다.


 수연산방에서 나와 성북동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왼쪽으로 심우장 표시가 보인다. 만해 한용운이 지은 집으로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 집에서 눈을 감았다. 남향으로 지으면 조선총독부를 마주 보게 된다고 하여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대문 옆에 고목이 인상적이다. 심우장 안에는 만해선사의 글씨, 연구논문집 등 그에 관한 책이나 글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수연산방 정보
찾아가기 : 4호선 한성대역 하차후 85번 버스를 타고 태고사 입구에서 내린다. 성북2동사무소 옆에 수연산방이 보인다. 광화문 쪽에서 갈 경우 삼청공원, 삼청터널을 지나 성북동길을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성북2동사무소가 보인다.
영업시간 : 12시 ∼ 오후 10시30분
안내 : ☎02-764-1736
메뉴 : 커피 4,000원, 송차·녹차·오미자차·모과·유자 등 전통차 5,000원, 미숫가루 5,000원, 냉녹차·냉커피 6,000원. 이외에 간단한 주류와 안주 서너가지가 있다.

www.visitseoul.net



  ※ 지도가 조금 잘못되었는데 간송미술관은 성북초교 바로 앞에 있고 성북2동사무소 바로 옆이 수연산방(이태준 고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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