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프랑스인      권위적인/소극적인       배려하는/냉담한      여성적인/남성적인      재미있는/엄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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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심술궂은      열정적이/둔감한          매력적인/심각한

정중한/퉁명스러운   책임감있는/무신경한     사교적인/비사교적인     페미니스트/전통적인

눈에 띄는/은둔하는  메리포핀스/사악한 마녀

            비비안 마이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묘사한 비비안의 모습 - 11쪽


인간이 모순적인 존재라고 다들 얘기하지만 그래도 한 사람에 대한 묘사가 이토록 극단적인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느닷없이 갑자기 발견되어 우리 앞에 훅 다가온 사진예술가 비비안 마이어

2007년 시카고 경매장에서 존 말루프라는 26살의 부동산 중개업자는 무명 사진작가가 찍은 인화하지 않은 필름과 네가티브 필름이 잔뜩 든 상자들을 낙찰받는다.

이 필름들에서 이것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아챈 존 말루프의 필름 주인 찾기가 시작이었다.

열심히 찾았으나 존 말루프가 이 사진작가를 찾아낸 것은 2009년 4월 그녀의 부고기사를 보고서였다.

보모로 평생을 살았고, 끊임없이 사진을 찍었으나 그것을 세상에 내보낸 적은 없었고,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산 이 여성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토록 수많은 사진을 남겻으면서 왜 생전에 한번도 전시회를 열거나 세상에 내보이려 하지 않았을까?

존 말루프와 또다른 수집가 제프리 골드스타인의 노력으로 세상에 그녀가 알려지면서, 앤 마크스라는 이 책의 저자가 그녀의 삶을 찾는 여정에 동참하였다.

앤 마크스는 존 말루프와 제프리 골드스타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사진과 자료의 이용권을 받아 비비안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하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이었다.

한편으로 비비안은 누구도 자신을 찾지 못하게 할 요량이었는지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노출하는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5년에 거리에서 비비안이 찍은 이 어린아이의 사진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여 마음이 찌릿해진다.

눈물이 글썽한 눈동자, 하지만 세상을 향해 도전적인 응시, 어른 남자용 시계와 자신을 보호하려는듯하지만 어딘가 무너져 내리는 팔, 그리고 학대받은 건지, 지나친 노동의 흔적인지 알 수 없는 상처들.

어른과 아이의 모습이 묘하게 섞인 이 어린 아이의 초상을 보는 순간 비비안의 어릴 때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어졌다.

그녀 역시 폭력적인 아버지, 무책임한 어머니속에서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가 떠난 이후에는 어머니와 함께였으나 거의 방치되다시피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굉장히 강인한 사람이었을 듯하다.

이 불행한 가족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낼 수 있었던데서 말이다.

세상에는 불행한 가족의 고리를 끊지 못해 평생을 같이 수렁으로 끌려가버리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말이다. 

그녀의 나이 열네 살에 그녀는 독립하고, 외할머니의 친구인 에밀리 오마르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그녀의 독립이 시작된다.

책임감있고, 그래도 손자들을 최선을 다해 보살폈던 외할머니의 영향인지 비비안은 나이 많은 노인들과 편안하게 지낸다.


 

27살이 비비안, 믿을 수 있는 어른 에밀리 오자르와 같이 있는 모습의 그녀는 딱 그녀 나이 또래의 모습과 웃음, 당당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녀가 첫번째 행복했던 시기가 이 때가 아니었을까?



고향인 프랑스에 갔던 시절 그녀가 찍은 고향사람들에는 그들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보인다.

마을의 어른을 부감으로 찍은 사진에서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위엄이 돋보이고, 아기양 3마리를 안고 있는 남자에게서는 자신의 양에 대한 애정과 뿌듯함이 돋보인다. 양 1마리를 안고있는 청년에게서는 사진이 어색한듯하지만 그래도 비비안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피사체가 되어주는 수줍은 모습이, 그리고 알프스를 배경으로 선 노인에게서는 묘한 당당함이 보인다.

어떤 사진을 봐도 이 때의 그녀가 세상과 사람에 대해 보고싶고, 알고싶고, 찍고싶다는 열망이 보이는 모습들이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찍힌 비비안의 모습은 건강하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아름답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이나 희망 이런 것들을 가지고 돌아가는 모습이다.



뉴욕으로 돌아온 비비안은 뉴욕거리와 뉴욕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대상으로 부단한 실험을 하고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엽서 사업으로 확장할 방법을 찾는다.

이 일을 진행하는 와중에 보모라는 직업은 살곳을 해결해주고, 시간을 만들어주는 유용한 직업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작품이나 사업을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이렇다 할 연줄도 없이, 가진 것도 없었던 여성 사진작가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치기는 당연히 힘들었을 것이다.

이 즈음 어딘가에서 비비안은 오랜 시절을 보냈던 뉴욕을 떠나 시카고로 떠난다.

그녀의 시카고행에는 가족으로부터 떨어지고자 하는 욕망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시카고에서 그녀가 만나 행운이 갠스버그 가족과의 만남이었다. 

그 집안에서 3명의 남자아이들을 돌보았던 기간은 비비안에게 정서적인 안정감과 소속감, 그리고 아이들과의 유대와 사랑을 체험했던 기간이었던듯하다.

이 때 아이들을 찍은 그녀의 사진은 따뜻하고 자신의 사진 역시 여러가지 실험속에서 자신을 또렷이 위치시키려는 의욕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생애에서 유일하게 가족 비슷한 것을 가져본 시기였지만 이것이 진짜 가족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크자 더 이상 보모는 필요없어졋고, 그녀는 떠나야 했다.

비비안이 사람들과 헤어지는 과정을 보면 지나치게 단호하다는 인상을 버릴 수가 없다.

보모로 일하던 다른 가족을 떠날 때도 그녀는 항상 어느날 갑자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호하게 떠나는 쪽을 선택한다.

보통 이런 경우는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역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비비안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었다.

어릴 때 방치되었고,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했던 이의 안타까운 두려움.

더더군다나 정말로 사랑했던 갠스버그 가족과의 헤어짐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더욱 두텁게 만들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이후 그녀의 삶에서는 조금씩 이상 징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압도적이었던 것이 저장 장애이다.

사진과 필름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 온갖 잡다한 기록, 영수증등에 대한 강박적인 저장 장애.

새로운 고용주에게 나는 내 인생과 같이 이 집에 들어와요라고 말했을 때, 그 비비안의 인생이 200개의 상자더미일 줄은 고용주가 결코 알 수 없었다. 

이 시기부터 그녀는 거의 사진을 인화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서 세상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날 것 그대로 소유하는 것이 그녀의 목적인 듯.......



그럼에도 세상에 대한 관심과 희망은 여전히 간직한 모습을 그녀의 약간 코믹한 스파이 비비안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옷을 자화상처럼 찍은 사진에서는 그녀가 앓고 있던 정신 질환과 상관없이 여전히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감각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온전히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고, 딱히 다른 사람과의 정신적인 유대를 깊게 가지는데는 저항이 많았던 이 외로운 사진작가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았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녀의 마지막 자화상은 사진의 초점이 흔들리고, 그녀의 저장장애를 상징하는 상자들과 함께 한다.

그리고....



2008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찍힌 그녀의 마지막 사진.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고 하루종일 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비비안의 기록된 마지막 모습이다.

로저스 파크에서 쓰러져 구급대원에게 실려갔던 비비안은 이후 회복되지 못하고 갠즈버그 형제들이 마련해준 요양원에서 오랫동안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녀의 사후 그녀의 수백개의 상자를 경매에서 낙찰받은 존 말루프와 제프리 골드스타인의 노력 이후 그녀가 알려지고 그녀의 작품이 회자되고, 전시되고, 그리고 작품집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나는 카메라다, 이 말처럼 비비안을 적절하게 묘사하는 말이 있을까?

이 사진집에 실린 그녀의 다양한 사진들을 보면 그녀는 비록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오래 유지하는데는 두려움이 많았지만,

당대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지대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당대의 사회문제에 대해 카메라로 관찰하는 위치에 늘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아래의 자화상이 보여주듯이 어쩌면 비비안은 항상 관찰자의 위치에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겟다.

사진의 주인공들은 저 멀리 길의 끝 바다의 시작점에 멀리 존재하고 그들을 찍고 있는 비비안 자신은 그림자로 존재한다.

이 비비안의 사진에서 누가 주인공일까?

그림자 비비안의 저 꼿꼿하고 자신감에 찬 자세만으로도 그녀가 그녀 삶과 사진의 주인공이라는 당당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일까?




개인적으로 이 사진집에서 가장 마음이 갔던 사진



기차를 타고 가다 잠이 든 어느 남녀의 사진.

이 사진을 보면서 바로 "아 이렇게 늙어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비비안의 사진 중에서는 드물게 그저 아름답기만 한 장면이다.

비비안도 이 사진을 찍으면서 잠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비안에 대해서 차갑다 냉정하다 이상하다라고 했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표현하지 못한 따뜻함, 인간애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저 한장의 사진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비안의 삶이 워낙에 알려지지 않았고, 그럼에도 그녀의 사진은 엄청나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의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그녀의 삶을 재구성해보고싶은 욕구로 이어지는 듯하다.

프랑스 작가 가엘 조스에 의해 쓰여진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소설인지 아니면 그저 비비안의 뒤를 쫓아 기록한 기록물인지 헷갈리는 지점들이 많다.

하지만 책 앞쪽면에 작가는 분명히 이 책은 소설- 픽션이라고 선언하고 시작한다.















이 책은 소설의 외피를 둘러싼 비비안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상상으로 만들어낸 비비안의 내면?


책 서두에 "이 책은 픽션이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오는 이름, 인물, 사업,  장소, 행사, 현장 그리고 사건들은 저자의 상상의 산물이거나 허구적 방식으로 서술된 것이다. 아직 살아 있거나 세상을 떠난 실존 인물들 또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이며 '이스테이트 오브 비비안 마이어', '말루프 컬렉션' 혹은 '하워드 그린거그 갤러리'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라고 쓰여있다. 

아마도 작가가 여러 자료를 이용하긴 했지만 어떤 자료에 대해서도 정식 사용허가를 받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어떤 지점에서는 비비안의 사진을 묘사하는데 그 사진이 없어서 굉장히 갑갑해지는 장면들이 몇 개 있다.

책은 소설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번에 나온 앤 마크스의 위의 책 <비비안 마이어>와 크게 다른 지점은 없다.

비비안의 내면을 보기 위해서는 가엘 조스의 감상적인 한탄보다는 역시 그녀의 사진을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남긴 14만점의 사진

그것이 그녀가 남긴 그녀의 삶이자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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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9-04 12: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비안의 마지막 흔들린 셀피와 스파이 비비안
마음에 특히 들어옵니다. 한 사람의 생이 그저 경이로워요. 고향사람들을 담을 때 비비안의 눈을 상상해봅니다. 성수동에서 사진 전시회 열리고 있던데 가을에 가보면 올마나 좋을까요. 2015년에도 했는데 못 가봤어요. ㅠ
전 다큐를 봤었고 책은 가지고 있지만 전시회 느낌이 있으니^^ 다음에 서울 가시게 되면 한번…

바람돌이 2022-09-04 13:34   좋아요 2 | URL
스파이 비비안은 저도 비비안의 다른 면모를 보는 것 같아서 참 좋더라구요. 마지막 셀피는 마음이 아프고요.
프레이야님 덕분에 또 전시소식도 알게 되었네요. 다름 서울갈 때 같이 가자고 또 딸과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가을과 함게 전시회도 보고 다음 서울행이 또 기대되네요. ^^

새파랑 2022-09-04 1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람돌이님이 가장 마음에 갔던 사진이 좋아보이네요. 배경과 그림자가 잘어울리는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22-09-04 21:49   좋아요 2 | URL
그쵸? 뭔가 비비안의 마음이 그림자에 잘 드러난다고 할까? 비비안답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

stella.K 2022-09-04 19: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14만점요? 대단하네요.
저장장애라...
왜 비비안 마이어인지 알 것도 같네요.

바람돌이 2022-09-04 21:51   좋아요 3 | URL
평생동안 찍은 것들이고 대부분의 필름은 현상하지도 않은채 모아만 둔것이니 얼마나 많은지요. 이 책 말고 다른 곳에서는 또 15만점이라고도 하더라구요. 이렇든 저렇든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죠. 한 사람의 일생이 이룰 수 있는게 어느 정도일까를 생각해보기도 햇어요.

그레이스 2022-09-04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년시절의 포즈는 예사롭지가 않네요^^

바람돌이 2022-09-04 21:51   좋아요 2 | URL
아 유년시절의 저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가 아니에요. 비비안 마이어가 찍은 거리의 아이 사진인데 제 생각에 비비안의 어린 시절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에 가져와봤어요. ^^

그레이스 2022-09-04 22:03   좋아요 2 | URL
하하하하;;;;;
바로 밑에 글을 놓쳤군요^^;;

잠자냥 2022-09-04 2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 소녀 사진 정말 인상 깊습니다! 그 아래 바람돌이 님 설명도!

바람돌이 2022-09-04 22:22   좋아요 3 | URL
아 저 소녀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의 저자인 앤 마크스의 생각이기도 하구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면서 제 생각을 덧붙여 봣어요. ^^ 저는 저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왠지 지금 저 아이의 팔짱 낀 팔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너를 안아줘도 되겠니? 라고 묻고 싶어요.

페넬로페 2022-09-05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사진이 젤~~
아이의 모습에 어찌 세상 다 산 것 같은 모든 것이 담겨 있을까요!
여러 인물들의 사진의 느낌이 다 다르네요~~

책읽는나무 2022-09-05 11: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 사진에서 벌써 압도 당하는데 왜 전시회를 하지 않았을까? 저도 의아합니다.
비비안 마이어에 왜 바람돌이님이 푹 빠지셨는지 글과 사진을 보니 공감이 가네요^^

2022-09-05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9-06 14:24   좋아요 2 | URL
20대 초기에는 사진으로 엽서사업 같은걸 해볼려는 시도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게 좌절되면서, 또 가족에게서 벗어나는게 중요해지면서 시카고로 이전하고 뭔가 복잡한 것들이 있었을듯해요. 하지만 비비안은 또 자기 얘기를 남들에게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다 짐작일분 오늘 우리가 알 수 있는건 정말 얼마 안되네요.
태풍은 밤사이에 빠르게 지나가서 다행입니다. 나무님도 별 탈 없으시죠?

거리의화가 2022-09-05 1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지막 사진이 참 좋아요 두 분의 모습이 참 편안해보이네요. 저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4만점의 사진들이 그녀의 인생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바람돌이 2022-09-06 14:25   좋아요 1 | URL
저 사진을 보면 다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듯해요. 정말 사진으로만 남은 사람이 비비안 마이어가 아니가 싶네요.

mini74 2022-09-05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리뷰에서 드디어!! 작품을 보내요 ~

바람돌이 2022-09-06 14:25   좋아요 1 | URL
^^ 역광의 마이어 보면서는 저도 사진이 없으니까 좀 갑갑하더라구요. ^^

희선 2022-09-06 0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남긴 사진 14만점이라니 엄청나네요 보모 일을 하다가 남은 시간에는 거의 사진을 찍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비비안 마이어가 죽은 다음 사진이 알려지고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도 알려졌지만, 그런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었을지, 그건 모르겠군요 사진뿐 아니라 글도 남겼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사진이 바로 비비안 마이어를 나타내주는 거겠네요


희선

바람돌이 2022-09-06 14:28   좋아요 1 | URL
보모일을 하다가 남은 시간이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서 보모일을 한듯하더라구요. 애들 데리고 맨날 산책 나가고 위험한 시위현장도 데려가고, 그리고는 가는 곳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고..... 그래서 해고당하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 비비안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사진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관 이런걸 글로도 남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은 저도 하게 되네요.
 

 "샹소르에서 찍은 내걸작들을 자주 봐요. 정말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사진이 정말 많아요. 내의견을 말해보자면, 그렇게 나쁜 사진들은 아니에요." 사진 촬영 기술은 최고로 익히려고 노력했지만, 암실에서 사진을 인화하는 기술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비비안의 직업적 야망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 P131

보모가 조앤의 가족을 떠나간 방식은 지금도 이 가족의 고개를 절레절레 짓게 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아이들은 비비안과 함께 방을 썼는데, 이른 아침에 들리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야 했다. 눈을 뜬 아이들은 여행가방을 질질 끌면서 방을 나가고 있는 보모를 보았다. 보모는 아이들에게조용히 하고 다시 자라고 하더니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  - P148

이 같은 초기 연출 방식은 그 뒤로 평생, 경계 없이 실험하고 새로움을시도했던 자화상 사진 촬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뉴욕을 떠날 무렵이면 비비안은 토스터 기계나 쟁반을 비롯해 거의 모든 곳에 자신의 얼굴을비춰 사진을 찍었다. 비비안은 늘 몸을 가린 채 무표정한 모습이었지만,
해변에서만큼은 긴장을 풀고 수영복 차림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 비비안은 자화상 사진을 더 자주 찍으면서도 자신을 덜드러내게 되는데, 그녀의 신체적 페르소나가 점차 극단적이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 P169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은 조금이라도 추적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면 가족들이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비비안의 정체를 폭로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비비안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입을 다물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진이 비비안의 감정 배출구 역할을 한 것은 당연하다.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를 힘들어했던 여인이 그토록 개방적이면서 감성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사진을 촬영했다는 데서 역설을 발견한다. - P205

저장 장애는 진행되는 질병이기 때문에 적절한 개입이 없으면 시간이갈수록 악화되어, 그저 수집만 하던 상황에서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단계로 넘어간다.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고립된 채 제대로 사회생활을하지 못하며, 그 때문에 상처받고 분노해 더욱더 사람들과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스트레스도 저장 장애를 악화시키는데, 1966년에 겐스버그 가족을 떠나면서 비비안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그때부터 비비안은 신문 한 장, 한 장을 모두 찍는 강박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11년을함께한 집과 가족을 떠난다는 것은 비비안의 저장 장애를 한층 악화시키기 충분한 불안정한 사건이었다. - P268

비비안에게 이미지를 보관하는 형식은중요하지 않았다. 사진이건, 네거티브건, 현상하지 않은 필름이건, 모두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일 뿐이었다. 비비안에게는 원하기만하면 필름을 현상할 수 있는 자원이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는 욕망보다 갖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컸다. - P273

분열성 성격장애에 관한 강연에서 마호니 박사는 분열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실행 능력이 탁월하며, 종종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고압적인태도, 강한 자기 주장, 자기 만족, 그리고 완벽주의를 보상적 특질로 발전시킨다고 설명한다. 비비안에게는 이런 특징들이 모두 있었다. 또한 분열성 성격장애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모르거나 지속적으로 사회와 접촉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깊은 양가성이 존재해, 친밀한 관계를갈망하면서도 타인에게 휘돌릴지 모른다는 위협을 끊임없이 느낀다. 확실하고 안전하게 분리되어 있을 수 있는 거리를 찾는다"고 덧붙이고 있다.
분열성 성격장애인 사람이 성적 학대를 받았다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자신을 매력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꾸며 위험한 성적 매력을 숨긴다. 여성은 근원적인 여성성을 감추고 남성적이고 강한 태도를 장착할 수 있다." - P274

비비안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녀가 사진에 분명히 담은 인간애 사이의 극단적인 차이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비비안에게 사진은 믿음과 감정,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표현하는 배출구로 기능했고,
그 결과 보편적인 진리와 폭넓은 정서를 반영하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낳을 수 있었다. 그녀의 사진 언어는 무수히 많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주제의 일부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비비안의 사진에서 여성은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긍정적으로 묘사되지만 남자는 모든 연령에서 좀 더 냉소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 P275

자화상 사진은 비비안이 병치되는 이미지를 만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실재하는 시간 속에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는 데 위협적이지 않은 매개물이었다. 지금까지 비비안의 아카이브에서 찾은 자화상 사진은 600장이 넘는데, 들여다볼 때마다 새로운 사진이 계속 발견된다. 이토록 많은자화상 사진은 소통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비비안의 욕구를 보여주면서도,
작업 전체를 보았을 때 비비안의 자아상과 마음의 상태가 어떤 식으로 변해갔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 P277

레인 겐스버그는 존 말루프 앞에서 비비안을 회상하며 "스스로 나설 수없는 사람들을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비비안은 분명히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어른들 손에서 자란 사람이 폭넓은 사회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놀랍다. 분명 할머니 외제니가 심어준 포용력과 정의감이라는 씨앗이 비비안의 깊은 지성과 정밀한 사고에 의해활성화되어 단호하고 진취적인 그녀 자신의 관점을 형성했을 것이다. - P308

비비안이 자신의 방에 전시한 자화상은 단 하나, ‘스파이 비비안‘뿐이었다. 여섯 장으로 된 자화상 시리즈에서 비비안은 지금까지의 자화상과는다른,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도저히 자화상을 찍을 새로운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옷을 사용해 신체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신문을 피사체로 삼을 때처럼 비비안은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을 살짝 희화화했다. - P340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사진에 관해 비비안은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전문 사진작가가 되려고 노력했고,
자신이 찍은 작품을 판매하려 했으며, 지인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그러다 정신 질환이 발현해 신문을 병적으로 모으고, 그게 어떤 형태이든 자신의 사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비비안은 자신의 재능을 확신했고, 유명인을 동경했으며, 예술은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할 수 있다고 믿었고, 궁극적으로는 숙명론자였다. 창고 사용료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서 사진도, 네거티브도, 현상하지 않은 필름도,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했던 비비안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일어날 법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사건들이 차례로 일어나게 할 도화선을 마련해놓았다. 비비안이 살았던 인생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면 상황은 훨씬 명확해지겠지만, 그 누구도 비비안의 궁극적인 바람이 무엇이었을지 분명히 알 수 없을 테고, 어쩌면 비비안자신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저 비비안 마이어의 진정한 꿈과 바람이 어떻게 해서든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 P389

청년기의 비비안은 여자가 우월한 존재는 아닐지라도 남성과 동등한존재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1950년대에는 자신이 페미니스트의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겐스버그 가족에게 분명히 보여주었고, 그 뒤 10년간은페미니스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가톨릭 신자로 자랐지만, 산아제한을 찬성했고, 낙태권을 지지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노동자 계층으로 규정하면서, 좌파적인 이상과 조직적인 노동 운동을 옹호했다. 1950년에는 프스 공산당 지도자 모리스 토레즈Maurice Thorez 를 지지하는 집회에 참석했고, 1954년에는 미국 공산당을 창건한 이스라엘 암터 Israel Amter 의 추모식 사진을 찍었다. 시카고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자운동을 지지했고, ‘노동자 인권선언Bill of Rights for Working People‘과 워싱턴 포스트」의 노조 파괴 행위를 비판한 평론 같은 문헌 자료를 보관했다. 시민 평등권 운동이 절정에달하기도 전에 인종차별 폐지와 소수자 권리를 옹호했고, 다른 인종이 서로 섞여 살아가는 것을 지지했다. 시카고의 아프리카 하우스와 제시 잭슨의 <오퍼레이션 푸시>의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회원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에 관해서는, 비비안은 독자적인 행보를 걷는 이단아였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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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프랑스인 · 권위적인/소극적인 배려하는/냉담한여성적인 남성적인 재미있는/엄격한.
너그러운/고집 센 · 쾌활한/냉소적인 깔끔한/지저분한.
.
친절한/심술궂은 열정적인/둔감한 매력적인/심각한.
정중한/퉁명스러운 책임감 있는/무신경한.
사교적인/비사교적인 페미니스트/전통적인.
눈에 띄는/은둔하는 메리 포핀스/사악한 마녀- 비비안 마이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묘사한 비비안의 모습 - P11

비비안의 사진을 발견하고, 비비안의 작품에 돈과 명성이 따라붙자 추측과 비난이 먹구름처럼 순수했던 처음의 찬사를 재빨리 감싸기 시작했다. 언론은 비비안의 작품을 수집한 두 사람에게 사진작가의 작품을 관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자격과 권한과 자질이 있는지를 물었고, 많은 사람이비비안 마이어가 대중에게 사진을 공개하는 걸 원했을지를 놓고 맹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 P22

처음부터 사람들은 비비안에게 그들 각자의 가치와 기대를 투영했다.
비비안에 관한 가장 강력한 신화는 그녀가 소외됐고, 불행했고, 무엇도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슬픈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비비안은 끝내 살아남은 생존자였고, 엉망이 된 가족과 과감히 절연하고 자기 삶의 질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린불굴의 의지와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비비안은 끈질긴 회복력으로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 P24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았다. 나는 독자들이 비비안의 이야기 속에서, 작품 속에서 그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영감을 받을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이 전기가 끝날 때쯤이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이며,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은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관한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수수께끼는 풀렸다. - P25

프랑스에서 찍은 초기 사진들은 비비안이 정말로 아꼈던 사진들일 것이다. 비비안이 인화한 사진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때 찍은 것으로 비비안은죽을 때까지 이 사진들을 간직했다. 시카고에서 비비안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들을 크게 확대해 액자에 넣었는데, 이때 찍은 사진들은 오랫동안비비안이 방에 전시한 유일한 작품이기도 했다. - P87

프랑스에서 비비안은 훗날 자신이 깊게 탐구하게 될 주제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인다. 이른 시기에 성별과 인종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식을 가졌던 비비안은 공산주의자 집회, 궁핍하고 가난한 사람들, 다인종 가족을 사진에 담으며 사회적 대의에 대한 깊은 헌신을 미리드러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니스의 영화 촬영장을 담은 사진들은 영화와유명인, 파파라치 같은 사진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 P93

목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온 비비안은 새롭게 시작할 자유를 얻었다. 그때까지 비비안은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 중요한 삶과 가려진 삶 깊이 사랑받는 삶과 비극적으로 버려진 삶이라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두 삶을 살아야 했다. 부자들과 어울렸지만 가난한 사람들 손에서 자랐고 모든곳에 속해 있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이제, 비비안은 온전히 홀로 설 수 있었다. - P100

이 키메라는 허리 부근에서 잡을 수 있게 설계되어 눈에 띄지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동시에, 사진 찍는 사람의 얼굴을 가리지 않았기때문에 비비안이 원한다면 피사체와 눈을 맞추고 촬영을 할 수도 있었다.
정사각형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수평에서 수직으로 카메라를 돌린 필요가 없어졌고, 렌즈가 허리 부근에 있어 피사체 대부분을 아래에서 위로찍어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비비안의 사진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이런 기능들 덕분에 조용하고 튼튼한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는 비비안에게 완벽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곧 비비안은 카메라를 부드럽게 쥔채로 자화상을 찍기 시작했으며 자기 자신을 진지한 사진작가로 표현할수 있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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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암흑을 휘젓고,
그림자들을 흐트러뜨리고, 유령들을 소환하는 일이다.
허공에 질문을 하고, 잃어버린 메아리들에 귀 기울이는일이다. - P32

인종차별이 절정에 달하던 1950년대에 비비안 마이어는 흑인, 히스패닉계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소외된사람들, 주변인들, 버려진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 부서진 사람들의 사진을. 그리고 작품으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셀 수없이 많은 그 자화상 사진들에 대해서는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녀는 당혹스러운 존재-부재 속에서 육체 혹은 얼굴의 파편들을 드러내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레임 안 그리고 어긋나고 중심에서 벗어난 프레임 밖이, 그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은유처럼,
주제의 해체와 소멸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것과 같은 무에 대한 보잘것없는 저항이다. - P33

자유롭고 대담하고 삶의 광경들이 가득한, 그리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이 작품들을 만들어낸 여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정점에 달한 감수성과 깊이를알 수 없는 생경한 방식 뒤에, 기묘함과 지나치게 이넓은 옷들 뒤에 고독이 숨겨져 있다. 유모라는 사회적조건과 두려움 가득했던 가정사가 초래한 유폐된 삶을초월하는 힘. - P39

나중에 일자리를 얻어 고용주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비비안은 딱 하나의 요구 사항을 제시한다. 자기 방문에 자물쇠를 달아달라는 것이었다.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내밀함과 사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 P88

그녀의 사진 작업에는 나이 든 여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무엇도 우연히 찍히지 않는다. 예술가는 자신의머릿속에 맴도는 것,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 자신을 관통하고 찢어놓는 것을 추적하는 법이다. 그것 말고는 없다. 비비안 마이어는 무엇보다 예술가였다. 그녀가 그렇게 주장한 적이 없었어도 말이다.  - P126

어떤 이유로도, 추하고 절망스러운 유기의 장면들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업에 관음증은 존재하지않는다. 그렇게 얼굴에서, 몸짓에서, 세부에서 한 사람의 삶 전체의 전개를 몇 초 만에 알아보려면 스스로 많은 경험을 해야, 존재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 P132

는 것이 된다. 인생에서 자양분을 제공받은 작품은 인생보다 더 위대하다. 내가 문학을 보는 방식도 이와 같다.
황금 같은 단어들이 평범한 여행을 시베리아 횡단 여행으로 변모시킨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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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찍은 사람들과 풍경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한다. 마이어는 탁월한 시선과 완벽한 기술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그녀는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담았고, 평생 그 일에 몰두했다. 음악가의 수업을 빗대어 말하자면 이론상우리도마이어가 보았던 세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 P9

마이어는 새 카메라를 목에 두르고 도시를 누볐다. 자신이 일하던 집의 모습들도 담았다. 사진에는 아이들, 생일 파티, 다양한 가정 풍경과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자주포즈를 취해주던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가장 생기 넘치고 독창적인 작품은 뉴욕의 거리 사진이다. 마이어는 뉴욕 거리에서 도시의 모습과 생활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 도시 특유의 문화를 찍었다. - P15

항상 방심하지 않고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 그녀의 직업이었다면 주의 깊게 사진을 들여다보고사람과 공간을 관찰하는 일은 특별하고도 은밀한 즐거움이었다. 마이어를 알았던 사람들이 그녀를 이야기할 때 독특한 차림새나 걸음걸이도 자주 언급하지만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은 그녀의 목에언제나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 P18

을지 우려했다. 1987년 잘만과 카렌 우시스킨의 집에서 일하기 위해 구직 면접을 볼 때 마이어는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인생과 같이 이 집에 들어옵니다. 제 인생은 상자들에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마이어를 고용했고, 마이어가 일을 하기 위해 집에 도착했을 때 부부는 함께 온 200개가넘는 상자에 깜짝놀랐다고 한다. - P22

대다수 사진가들이 안전하게 최상의 사진을 확보하려고 같은 대상을 다양한 구도로 여러 장 찍는 데 반해 마이어는 관심이 있고 눈에 들어온 피사체를 단 한장만 찍었다. 필름낭비를 하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고 단호한 자신감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덕분에 필름 한통에서 흥미로운 사진들이 차지하는비중이 믿을수 없이 높다. 마이어는 자신이 무엇을하고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26

마이어의 셀프포트레이트는 어디에서 어떻게 자세를 취하고 찍을 것인지를 늘 의식했다는점에서 수행적이다. 하지만 반복해서 계속 찍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의 반복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다. 갔던 장소에 대한 기록일수도 있고 중요한 순간들에 대한 기록일 수도 있다. 어쩌면 시간을 단호하게 동결시켜버리는 사진의 속성에 기대어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응시하고 바라보는 수단으로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혹,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간헐적이지만 단호하게 세상 속에서의 고독함을 선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순히 누구를 찍었고, 무엇을 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사진가임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말하기 위한 수단인지도 모른다. - P33

마이어의 사진, 필름, 테이프는 세상을 기록하는 행위가 그녀 삶의 중심임을 말해준다. 다양한 기록 저장장치와 특히 사진을 통해 마이어는 자신을 인생의 관찰자 위치에 둘 수 있었다. 마이어의 사진에는 모순을 포용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는 동시에 가까워지고,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P36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보는 사진들이 마이어의 의도대로 출력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녀가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보았던 이미지라는 사실이다. 마이어의 작품이 매혹적인 이유는 우리는절대 알지 못할 이유로 스스로 예술가로 존재할 수도 존재하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의심할 나위 없이 예술가였던 한여성의 시선으로 보았던 세상을 우리도 똑같이 본다는 점이다. - P41

그녀가 남긴 사진들은 사진이 그녀에게 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준 자의식과 대리 자의식 그리고 유물의 증거이다. 비비안마이어의 사진이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그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진들이 우리에게 예술가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보며,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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