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막달라마리아는 신학적으로 마음대로 채울 수 있는 ‘무형의 빈 공간null?
‘이었다. 그녀에게 날을 세운 베드로의 정통파 교회가 기독교 주류가 되면서, 그 빈 공간은 너무도 쉽게 얼룩덜룩한이미지로 더럽혀졌다. - P22

 올랭피아는 인기 많은쿠르티잔으로 설정됐기에 일단 미모가 출중해야 했다. 마네는 올랭피아의 미모가 돋보이려면 한눈에 비교될 만한 ‘생긴‘ 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네에게 그런 여자로는 흑인이 적격이었다. 이는 마네 이전에도 백인 남성 화가들이 흑인 여성을 소비한 방식이기도 하다. - P32

대중들은 켈러가 시각·청각 장애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접하지 못해, 순백의 영혼을 지녔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켈러는 튀어나온 눈을없앤 뒤 유리로 만든 파란색 의안을 새로 끼웠고, 수수한 하 - P40

얀색 드레스를 입은 채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을 갖췄지만 ‘불행히도‘ 장애를 지닌 여성은, 사회가 편안하게 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이미지였다. 사람들은 동정이 깃든 눈길로 그녀에게 ‘숭배의 박수를 쳤다.
헬렌 켈러를 향한 이 같은 ‘낭만적‘ 시선은,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의 그림 <눈먼 소녀>에서도찾을 수 있다. - P41

"커버링은 주류에 부합하기 위해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라며 "사회가 소수자성을 ‘티내지 말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주류의 눈치를 살폈던 대처는 자신의 여성 음색을, 루스벨트는 자신의 장애를 숨긴 셈이다. 그렇다면 대중의 시선에 민감한 정치인들만 커버링을택했던 걸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조각가이자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1475-1564 도 일평생 자신의 본 모습을 커버링했다. 왜냐하면 그는 성소수자였기 때문이다. - P61

특기할 사실은 대리모 사업을 옹호하는 쪽이 그 이유로자신의 유전자(남성의 정자)를 가진 아이를 갖고자 하는 열망을내세운다는 점이다. 즉 대리모 출산은 부계 ‘혈통‘을 지키기위해 모성을 착취하는 ‘가부장제의 폭력‘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리모 같은 소리》의 저자 레나트 클라인의 말처럼 말이다. "불임인 이들이 다른 제3자 여성의 포궁(자궁)과 난자를 빌려서까지 ‘자기‘ 아이를 낳고자 하는 욕망은 - P78

근본적으로 남성의 것이며 이 절차가 보장하는 것은 ‘대리모를 의뢰한 남성‘의 유전자인 것이다." 이때 가난하고 어두운피부의 여성은 ‘걸어 다니는 자궁‘으로 환원될 뿐이다. - P79

툴루즈 로트레크는 이런 성 구매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엄숙한 성도덕으로부터 ‘해방된‘ 예술가로 포장했고, 19세기 프랑스를 지배하던 성 보수주의 규범에 반항한 화가로 평가받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툴루즈 로트레크가 그린 ‘노동으로서의 성매매‘는 성구매자를 ‘서비스이용자‘로, 포주를 ‘사업가‘ 혹은 ‘관리자‘로 은연중에 정당화한다. 결과적으로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이 성매매 현장의폭력성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고 하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 P88

 실제로 드가가 그린발레리나는 앞서 보았듯 얼굴이 뭉개져 있거나 땀 흘리거나푸념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등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을현실 속의 인간으로 대한 증거가 아닐까. 무엇보다 드가는누드모델 출신이었던 수잔 발라동을 비롯해 메리 커샛, 마리브라크몽 같은 여성 화가들을 발탁하고 작업을 격려한 화가이기도 하다. 이렇듯 여성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기에, 성매매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처지를 툴루즈 로트레크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 P93

어쨌거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셋 중 누가 주문했든 그들 모두 부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부자는 왜 굳이 목돈을 들여 <내반족 소년을 주문했을까. 바로 가난한 사람의 존재는 부자들에게 천국을 보장하는 ‘보험‘이었기 때문이다. - P174

그래서일까.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원주민은 더 이상괴성을 지르며 백인을 공격하는 악인이나 머리 가죽을 벗기는 원시인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대평원에서 생태주의적 삶을 영위하는 초월자나 현자로 그려진다. 백인에게 영적인 각성을 주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신화적, 낭만적인 재현은 이제 원주민들이 백인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어쩌면 죄의식의 위장된표현일지도 모른다. 원주민을 야만시하는 신성시하든 둘 다타자화인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이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면, 이런 낭만적인 시각은 곧바로거둬진다. - P190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이렇게 얘기했다. "중요한 질문은 동물들이 이성을 가지고 있는가, 말을 하는가가아니다. 그들이 고통을 느낄 줄 아는가이다." 맞는 말이다. 비건 활동가 캐럴 애덤스의 말대로 "정의란 호모사피엔스라는종의 장벽에 갇힌 취약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20

기후 위기의 책임을 인간 일반으로 설정하면 윤리적 책임과 결단을 요구할 주체를구분하고 가시화하기 어려워, 사실상 책임자에게 면죄부를주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모두의 잘못이라고 하면 아무의잘못도 아니게 되듯 말이다. - P228

이 덕분에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그림은 CIA의 간택을받을 수 있었다.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와 달리 미국의예술은 자유를 수호한다는 이미지가 필요했는데, 더할 나위없이 자유로운 그의 화법은 이에 딱 들어맞았다.  - P261

 추상표현주의가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순수성‘
때문이 아니라 뚜렷한 ‘정치성‘ 때문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공격하며 "예술가의 미적 상상력은이데올로기와 타협해서는 안 되며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서도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알고 보면 이 말은 곧 스스로를 비판하는 말이기도 했던 셈이다. - P2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에르 카반은 『예술 스캔들Scandale dans Lart』에서스캔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다음과 같은결론에 도달한다. "스캔들은 무질서를 질서로 탈바꿈시킨다. 하지만 이때의 질서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 질서다. 새로운 질서는 모든 논리로부터 자유로우며, 조롱과 모순, 기괴함과 참신함을 혼합하고, 예술작품에 대한 비평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스캔들은 그것이 일으키는 시끄러운 반응으로 알아볼 수있고, 그 사실 자체로 스캔들은 사회의 무질서를 드러낸다. 예술 스캔들을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는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야심이다. - P17

그는 사람들의 비난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자세를 고수하며 너무나도 순진한 답을 내놓아 질문한 사람을 무색하게 만든다. 외국사람들이요? 주인이 부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요. 코피를 흘리는 하인이요? 집에서 무슨 사고를 당한 모양입니다. 앵무새를든 어릿광대요?
단순한 장식용이지요. 세속적인 분위기요?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에서 저보다 더 심했습니다만... 이렇게 하여 베로네세는 당당한 승리자의 모습으로 재판소를 나올 수 있었다. 단, 작품의 제목을 <최후의 만찬>에서 <레비 가의 향연으로 수정해야 했다. - P43

16세기에 개신교의 확장에맞서 세력을 유지하려던로마 가톨릭교회가최후의 만찬을 그토록중요시한 이유는 예수가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나누어주는 행위를통해 성찬식(그리스어로Exapotia는 ‘은총을 베풂‘을의미한다)을 거행했기때문이다. 예수는 인류의죄를 대속하여 자신의 살과피를 바침으로써 제자들에게성찬례를 지속할 것을명하였고 자신의 희생을기리게 했다. 즉 성찬의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살과 피로 바뀐다는 교리를부정하는 개신교들의 주장에맞서기 위해 최후의 만찬의제작을 그토록 강조했던것이다. - P44

머리 위로 비치는 희미한 후광 고리를 제외하고는 성모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징표는찾을 수 없다. 왼쪽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빛은 그녀의 육체를 직접적으로 비추는데,
그녀의 시신에서 더 이상 신성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으로형성된 그림의 엄숙함은 평범한 마리아의 육신과 대비를 이루며 오히려 모순적인인상을 남긴다. 모든 죄인들의 구세주를 낳은 성모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고,
그녀의 죽음은 전 인류의 애도의 대상이 된다. 카라바조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손과얼굴뿐 아니라, 베들레헴의 허름한 외양간에서 예수를 출산한 그녀의 가슴과 배에도빛을 고루 비춘다. 이제 성모의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하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평범한 사람들의 범인류적 비극으로 탈바꿈한다. - P48

<오르낭의 매장>이 발표될 당시 언론의 반응을 되짚어보면, 대중과 평단은 그림 속 인물들의 평범함에분개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심리적, 사회적 요소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쿠르베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보내는편지」에서 회화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강력한 어조로피력한다. "회화는 보이지 않는 물질들로 구성되는순전히 물리적인 언어입니다. 추상적이거나 보이지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은 회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회화에서 상상력은 존재하는 것의 가장 완전한표현 방법을 찾아주는 것일 뿐, 그것이 존재한다고가정하거나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 P109

사실 이번 스캔들의 근본적인 이유는 적개심을 나타낸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한 것과는 전혀다른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이삭 줍는 여인들의 평온한 위대함이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밀레의 여인들은 동정을 구걸하지도, 연민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이 그림은 더욱 전복적이면서 강렬하다. 만약 밀레가 여인들에게 구멍뚫린 낡은 옷을 입혔더라면 처음에 그림을 공격했던 사람들은 기꺼이 그것을 옹호했을 것이다. - P111

화가는 오른쪽 여성의 왼손을 완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본질은신체의 해부학적 묘사가 아니라 보호하고자 하는 손짓에 담긴애정의 표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툴루즈 로트레크는르누아르가 1876년, <습작, 토르소, 빛의 효과>(146쪽 참고)에서보여준 인상주의의 교훈을 가슴에 새겨두었음을 알 수 있다. 눈은대상과의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그것에 강렬함을 부여하며 붓이완성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 P184

<샘>이 아방가르드의 상징이 되기까지는 그로부터삼십여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스캔들은 화가들에게 현대 미술 작품들을 선전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제 예술가들은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스캔들을 일으킬 수 있는 소재를 발명하기 시작했고, 미술에서 연출은 연극 무대의 그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 P219

하지만 반란의 주동자들은 비판의 주체를 무력화함으로써 그들의 둥지인 현대 미술을 위험에 빠뜨리는 모순에처한다. 현대 작품을 비난하는 이들은 무지하고, 오로지 소수의 시대를 앞선 이들만이 그 가치(즉, 역사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차지하는 가치와 미래적 가치도 포함하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프레임이 구축되자 예술적 창조에 이상적 재갈을 물린 꼴이 되었다. - P2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이야기, 제22회 양성평등미디어상 우수상 수상작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화가의 그림 속에서 또는 잊혀진 화가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던 많은 여성들을 지금 이 순간으로 다시 불러내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게 한다. 그러면서 21세기의 한국사회는 그들이 살던 사회와 정말 달라졌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9-23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유리작가님 책들 저는 다 좋았어요 바람돌이님 *^^* 처음 접한 책이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이었어요. 과거엔 예술등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 또한 남성들만위 몫이라 더 저평가되고 묻힌거 같아요 ㅠㅠ

바람돌이 2022-09-25 00:27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에 읽은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 읽었네요. 적당히 얼버무리지 앟고 쉽고 명확하게 단호하게 얘기하는게 참 좋았습니다. 다만 저는 얼마전에 읽었던 다른 분의 <불편한 시선>이란 책이랑 주제, 소재, 내용등이 거의 겹치는지라 따로 리뷰까지 쓰면 거의 중복인거 같아서 그냥 100자평만 썼네요. ^^

yamoo 2022-10-01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도 있었군요! 양성평등미디어 우수상...상도 참 많네요..ㅎㅎ
이유리 작가는 첨인데, 글이 좋은가 봅니다. 뭐, 내가 몰루는 작가가 한둘이어야지요..ㅎㅎ
그래도 이런 페이퍼 덕분에 이러저런 책도 알고 서점에 놀러가서 한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좋은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10-02 22:04   좋아요 0 | URL
글이 쉽고 명쾌해요. 하고 싶은 말을 둘러가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시원시원하고 좋았어요.
세상에 작가는 너무 많아서 모르는 작가가 더 많은게 정상이지않을까요? 그래서 이곳에서 다른 분들로부터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될때마다 막 기쁜것 같아요. ^^ 이유리작가 이번에 <기울어진 미술관>이란 신작도 나와서 지금 읽으려고 줄세워놨어요. ^^
 

옷을 입고 벗는 일조차 혼자서는 불가능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여성들은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상을 자연스레 학습할수밖에 없었으리라.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우리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옷이 우리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부장제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 P21

하지만 남성에게는 ‘남자의 적은 남자‘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마법 거울이 없다는 게 중요하다. 마법 거울은 여자들 사이에만 숨어들어 가부장제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여자끼리 경쟁하라고 부추겨왔다. 그과정에서 여성들은 연대하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고립돼 재능을 낭비해야 했다. 이제 여성들은벽에 걸린 거울에게 질문하는 걸 그만둬야 할 것이다. ‘여자의적이 여자‘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여자의 적이기 때문이다.
비제 르브링과 라비유 기아르가 몸소 증명하지 않았던가. - P33

호주의 코미디언이자 희귀 유전병 ‘불완전 골형성증‘을않은 장애인 스텔라 영 (Stella Young)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장애인의고군분투가 비장애인들에게 동기부여 휴먼스토리로 소비되는 현상을 ‘감동 포르노‘라고 비판하며 한 말이다. 이 일침은 예술가의 그림에도 유효하다. "나의 가난, 내 삶의 비참함, 내몸에 새겨진 고통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도구가 아니다"라고 그것은 피해자의 대상화이며, 대의를 가장한 관음이며, ‘고통 포르노‘일 뿐이라고 말이다. - P117

이처럼 고갱이나 앵그르 같은 서구 남성들에게 비유럽은 철저히 미개한 곳이었다. 거기에 사는 여성들은 ‘새장 속의새‘ 이거나 유아적이고 원시적인 존재였다. 이런 타자화를 통해유럽 남성들은 자기네 문화의 우월성을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한편으로 그들은 비유럽 문화에 매료됐고 갖고 싶지만 가질 수없는 것에서 느끼는 갈증을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내 투사하기도 했다. 원시를 추구했지만 원시를 열등한 것으로 보고 한편으로는 원시에 매혹되는 서구 남성들의 모습에서, 여성을 혐오하지만 여성 없이 못 살며 여성을 숭배한다고 하면서 착취하는 가부장 남성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 P146

세상은 남편 돈 쓰는 아내에겐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하다. 반면 아내의 시간을 가로채는 남편에겐 너무나 관대하다.
아내의 삶과 시간을 많이 착취한 남편일수록 더 성공하게 되기에, 가부장 사회는 아내의 헌신을 더 독려하기도 한다. 가부장제 속 여성의 삶은 ‘뱀과 사다리 게임‘과 같다. 열심히 인생의 사다리를 올라가도 아내가 되는 순간 뱀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갈확률이 높다. 바로 이것이 비혼 여성에게 ‘이기적‘이라고 결코손가락질 할 수 없는 이유다. 어느 누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하겠는가. - P154

붓과 팔레트를 든 젠틸레스키가 캔버스 앞에 서있다.
곧 그녀가 창조한 형상들이 캔버스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여성은 재현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만연했던 시대에 젠틸레스키는 이처럼 자신을 그림 그리는 주체로 표현했다. 그녀는 <자화상>을 통해 세상에 대고 "나는 불쌍한 성폭행 피해자만은 아니다. 나는 화가다!"라고 천명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것입니다" - P188

국감장에서 리얼돌을 직접 가지고 나오고 공적인 자리에서 룸살롱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사회를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21세기 한국사회는 19세기 영국, 20세기 중국에서얼마나 나아갔을까. - P231

이러한 사회의 악평과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여성들은 ‘쿠션어‘를 사용한다. 쿠션어란 틀린 내용 하나 없는 얘기를 하는데도 조심스러워하고, 자신의 주장이 단정적으로 들릴까봐 애교와 이모티콘 같은 ‘쿠션‘을이어붙여 문장을 맺는 어법을 말한다. 쿠션어를 쓰면 적어도 드세 보인다‘ ‘싸가지 없다‘는 비난은 받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어법이 오히려 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듣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힘들어 결과적으로 발화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 P239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나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여자가 차렸다! 만일 남자 요리사가 차렸다면 즉각 이름이성경에 남았을 테고, 그는 그리스도교 성인이 되어 길이길이 존경받았을 테니 말이다. - P2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반도의 고인돌은 크고 작은 다양한 규모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 실현 가능한 모든 형식이 공존할 정도로 고유양식도 없으며, 1인 1기로 조성되어 합장 흔적 역시 거의 없다. 심지어 무덤이 아닌 단순한 기념물로 세워진 것들도 있다. 요컨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한반도의 고인돌이다. - P13

정신적으로 성숙한 공동체만 죽음을 묵상하고 기념할 수 있다.
그리고 풍요로운 생산물을 평등하게 누리는 사회만 많은 실용적 기념물을 만들 수 있다. 즉 한반도 고인돌 사회는 묵상하고 기념하는 정신공동체였고, 평등하고 협업하는 경제공동체였다. - P17

새 모양 토기와 배 모양 토기가 혼을 실어 피안의 세계로 보내는 도구였다면, 집 모양 토기는영혼의 영원한 안식처로써 껴묻었을 것이다. 고상형 집토기들은 모두무덤에서 발굴한 껴묻거리였다. 부장용 집토기들은 상징적 건축물이다. 고상 건물은 만들기 어렵고, 난방과 취사를 해결할 수 없는 데다 생활에 필요한 여러 공간을 조성할 곳도 없다. 하지만 가장 귀하고 안전한 집이기에 귀중품 창고나 제사 의례용으로 쓰였을 것이다. 무덤에 껴묻을 최고의 집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고상형 집토기일 수밖에 없다. - P39

하늘을 향한 가야인들의 사후 세계관은 무덤의 위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낮은 평지에 무덤을 둔 신라나 고구려와 달리 마을 앞의 높은구릉 위에 무덤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높은 아크로폴리스에신전을, 낮은 네크로폴리스에 무덤을 조성했다. 그러나 가야의 아크로폴리스는 곧 네크로폴리스였다. 존귀한 영혼은 높은 곳에 묻혀 높은집에서 살며 높은 그릇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상의 낮은것들이 일상이라면 높은 것들은 존귀한 영원의 세계에 속한다. - P39

2009년 미륵사지석탑 해체 과정에서 금제사리봉안기를 발견했다.
그동안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미륵사는 서동과 선화공주가 세웠다고 추정했는데,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전혀 다른 사실이 기록되어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사태적덕의 따님인 사택왕후가선한 인연으로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639년 정월 29일사리를 봉안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즉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아니라 백제의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 P50

현재 각황전은 2층이지만, 장육전은 3층이었다. 장육전 내부에는화엄경을 새겨넣은 거대한 석경벽을 세웠는데, 화엄석경은 임진왜란때 불타 지금은 1만 9,000여 조각으로 남아 있다. 추정하면 600여 매의 돌판에 총 55만여 자를 새긴 대규모 경관이었다. 내부 고주가 서있는 5칸 3칸 기둥 사이 사방으로 석경벽을 두르고, 이를 순회하며 화엄경 전편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른바 장육전은 건축으로 쓴 화엄경이었고,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이 되는 종교적 근거였다. - P68

몸체의 목조 기둥들은 무거운 지붕 무게 때문에 길이가 줄어들게된다. 특히 모퉁이에 지붕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모퉁이 기둥은 안쪽 기둥보다 조금 더 줄어든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네 모퉁이 기둥을 조금 높게 하는 ‘귀솟음‘이라는 건축 기법이 발전했다. 경사진 지붕은 아래 기둥을 바깥쪽으로 밀어내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안쏠림‘이라 하여 수직선보다 약간 안쪽으로 기둥을 기울인다. 중국 송나라 때 출간된 건축 기술서 『영조법식』에는 귀솟음과 안쏠림의 기준수치를 계산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의 건축은 기계적인 중국식 기술보다는 전체의 조화를 우선하여 유연한 기술을 발달시켰다. 즉창작자로서 목수의 판단과 안목이 건축의 격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 P92

이러한 세부 기법들의 개발은 물리적 변형을 보완하기 위함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심리적 불안을 제거하고 시각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방편이 되었다. 지붕 처마를 수평으로 맞추면 처마 선이 처져 불안해 보이므로 아예 추녀 부분을 들어 올린다. 지붕 끝의 추녀가 무게 때문에처지더라도 수평선보다 올라가 있어 안정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또 기둥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배흘림하면 원통형 기둥보다 더 견고해 보인다.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단 하나지만, 곡선은 무수히 많다. 직선이 휘어지면 곡선이 되지만, 곡선은 휘어도 곡선이다. 귀솟음도 안쏠림도 배흘림도 물리적 변형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수평, 수직,
직선으로 변하지 않는다. 변형되더라도 여전히 솟은 채로 쏠린 채로,
배흘린 채로 안정되어 있다. - P92

 텅빈 누각을 통해 낙동강 물줄기가 들어오고 지붕 위로병산이 펼쳐진다. 누각 아래로는 입구가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알 수있다. 누각의 존재는 자연경관을 산, 강, 사람의 천지인 경관을 수직으로 나눈다. 이는 성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태도이고,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서원의 주인인 원장이 앉는 자리다.  - P159

자연을 선택해 인공적환경으로 치환시키는 이러한 수법을 ‘차경‘이라 한다.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차경 수법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경법이었다. 건축물은 자연을담아내는 액자 역할을 한다. 액자가 크고 화려하면 그림이 죽는다. 건물이 화려하면 자연이 초라해진다. 만대루는 기둥과 지붕밖에 없는 매우 간단한 건물이며, 화려한 단청도 장식도 일절 없다. 건물은 자연을학문을,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그 담기는 내용물이 건축의 실체다. 성리학자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서원을 건축했다. - P160

곡운구곡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었다. 김수증의 이상이 응축된 소우주였고 시와 그림으로 추상화한 거대한 건축이었다. 그는 화음동 삼일정의 세 추녀에 각각 음양, 강유인의라고 썼다. "인간사는음양의 굴곡이 있으니 때로 단단하고 때로 유연해야 하나, 늘 어질고의로움은 잊지 말라"는 일생의 깨달음을 남긴 것이다. - P193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오히려 한옥 교회를 배척했다. 유교적 체제의 봉건적 모순에 질식했던 그들에게 전통이란 버려야 할 적폐있고 서구의 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또한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선교모국의 건축과 문화를 이식했던 것처럼 서양식 고딕 교회를 더 이상적이고 현대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성공회는 토착 건축과 전통문화를 존중했다. 비록 그것이 시대를 너무 앞선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시대 성공회의 건축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 P230

20세기 후반 유럽의 철학계는 2,500 년 동안 견고하게 쌓아온 저구 사유의 전통을 부정하고 분해하는 디컨스트럭션, 즉 해체주의적 파고가 높았다. 해체적 사고는 이성과 남성과 직선 중심의 전통을 감성,
여성, 곡선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다시 이분법적 서구 사상의 전동으로 회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크 데리다 등이 주창한해체적 사고는 달이성, 탈남성, 탈직선의 세계를 지향하여 다양하고자유로운 세계를 열고자 했다. - P295

1990년 탈냉전 이후 지구촌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념 아래 급속한세계화가 진행되었다. 금융 자본은 세계화의 동력이며 디지털 기술은대단한 수단이었다. 건축의 소중한 가치였던 역사적 지역적 맥락이란세계화 속에서는 구태의 껍질이 되었다. 새로운 건축적 가치란 얼마나많은 자본을 투여하고, 얼마나 빨리 첨단 기술을 도입하느냐로 바뀌었다. DDP는 일시적으로 불시착한 외계의 우주선인가, 아니면 새롭게열린 영원한 우주인가? DDP를 둘러싼 상반된 평가들은 건축 시장의세계화 속에 혼재하는 혼란과 갈등이다. - P298

 역사의 질곡과 진실을 알아야 역사적 건축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건축은 기초적인 인문학에 속하며, 지식인 건축가는 포괄적인 인문학자로서 성찰하고 사유하며 깨닫고 실행해야 한다. 승효상은 자신의 사유를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지식인 건축가이며, 10여 권의 깊이 있는 저서를 쓴 인문학자이다. - P309

사유원은 자연 속의 단독자로서 인간의 의미를 묻고 고독을 공유하며 어울려 생각하는 건축적 장소다. 여기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앞서 실존적 생명체로 존재하며, 자신의 내면을 응시해 근원과 영혼을 맞닥뜨릴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예측한 건축이라면, 사유원은 태초로 돌아가 변치 않을 본질을 담은 건축이다. 과거가 오래된 미래라면, 미래는 새로운 과거일수 있다. 근원과 본질은 여전히 중요하다. - P309

 그러나 삶과 일체화된 시간은 진동하는 추처럼 왕복적이다. 숨과삶을 품는 건축은 영겁을 지나도 근본과 현재 사이에서 또 묻고 또 대답한다. 과거가 영원한 현재라면 미래 또한 늘 현재일 수 있다. 근원을묻고 현재의 물음에 충실히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다. - P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