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트를 읽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뭉크의 노트에 ‘절규‘라는 말은 없다는 점이다. 절규. 누가 처음 한국어로 번역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르웨이어 스크리크skrik 는 있는 힘을다하여 부르짖는 ‘절규‘보다는 너무 놀라 지르는 외마디 소리인 ‘비명‘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하다. 이 그림을 더 정화히 이해하는 데도 ‘비명‘이라는 단어가 도움이 된다.
- P57

신경 쇠약과 현기증을 자주 느꼈던 20대의 뭉크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생각해보면, 이토록 강렬한 색감을 품은 거대한 자연의 모습은 뭉크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고 시각적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뭉크는 이 시각적 충격을 청각적으로 ‘자연의 비명‘이라 표현했고,
그 비명을 듣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다시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바로 <절규>라는 그림이다.
- P61

자신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드러내다 보니 기술적으로 이를 보완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그저 자연을 관찰하듯이 볼 수는없는 법이다. 그것은 분명 강렬한 비극적 경험으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찢어지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었으리라.
- P105

뭉크는 자신이 세상에 보여줘야 할 그림은 살아 숨 쉬고, 느끼고,
아파하고, 사랑하는,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강렬한 삶의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감동과 경의를 끌어낼 수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P198

뭉크가 살던 시대에는 화가들이 그림에 담을 모티프, 주제, 화풍,
기법에 집중했을 뿐 그림을 어떻게 전시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뭉크는 그림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림 하나하나가 모여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어떻게 배치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있을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뭉크는 그림에서 뿐만 아니라 전시 기획과 디자인에서도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였다.
- P223

나는 예술로 삶과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내그림들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뭉크의 노트(MM T 46, 1930~1934)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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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뭉크가 남긴 많은 글 가운데 그의 예술을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문구이다. 뭉크는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처럼 풍경이나 사물을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대상을 관찰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 자신의 기억을 그리려고 했다.
기억이란 감정과 생각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기억을 그린다는 것은 그림의 대상이 화가의 뜻대로 ‘해석‘되고 편집 된다는것을 의미한다.  - P13

친구 두 명과 함께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의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는 우울감에 숨을내쉬었다. 가슴을 조이는 통증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섰고, 죽을 것같이 피곤해서 나무 울타리에 기대고 말았다. 검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로 핏빛 화염이 놓여 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흥분에 떨면서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관통해서 들려오는 거대하고 끝없는 비명을 느꼈다. --뭉크의 노트(1892)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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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호퍼의 작품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에 착수하기 전에 제계적이고 치밀한 준비 작업을 거치지만 걸고 계산적이지 않으며,
자신이 감정적으로 보다 친밀감을 느끼는 오브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적경험과 회화적 관섬 사이의 화합을 지향하고, 시신과 그림을 일 지시키려 노력하며, 문명화 과정 중에 파묻혀 버린 진정성에 이르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어한다. - P14

호퍼는 언뜻 불안정해 보이는 회화적 요소들에서 출발해서 마침내 신세계라는 경험의 장(場)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역할을 직접 겨냥하는 상징체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그리고 도상학적 기법의 고정된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새로운 투사를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되는 회화적 요소들은 바로 이 상징체계에서 나온다.  - P23

"모든 예술활동의 처음이자 끝은 내안의 세계를 통해서 내 주위에 세계를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다.  - P28

1920년대 말 호퍼는 집이나 풍경, 도회지 정경을 인간적 삶의 관점에서 재현한다.  - P43

호퍼가 후기로 갈수록 작품에 내재하는 육체직 · 성적 팬태즘을 부재(不在)의 방식으로 은밀하게 회화적 복합체로 변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52

문제의 핵심은 이 그림과 이 그림이 재현해내는 것 사이의 관계에 있지 않고,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 재현이 사실은 환상일 따름이란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실상 리얼리즘적 재현이란 개인의 능력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질서정연하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복구해내려는 허구에 뿌리를 둔 환상이다. 호퍼의 후기작들은 순수한 현실에 대한 이와 같은 허구성을 꼬집는 반발의 의미를 간과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 P63

눈으로 보는 바를 그리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간직하고 있는 바를 그리는 것은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 이는 상상의 힘이 기억과 결합함으로써 변모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화가는 자신을 구속하는 것, 즉 필연적인 것만을 다시 만들어낼 뿐이다. 기억과 창조성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자연이 부과하는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 P67

얼핏 리얼리즘에 충실한 듯이 보이는 호퍼의 회화는 복제가 가능한 현실을 단순히 재현해내지 않고, 언제나 순수 경험세계를 뛰어넘는 재구성을 지향한다. 호퍼가 자주 재현해내는 그림 속 그림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전반적 회화 작업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복제해내는 대신에 빈 공간을 창조해낸다.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지각이나 지각하는 능력 자체에서 드러나는 단절을 부각시킨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호퍼의 작품은 침묵의 메타포로 설명되곤 한다. 말이란 말해지지 않은 부분과 침묵의 지배를 받는 부분이 있다. 호퍼의 회화도 공개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부분이 은밀하게 구심점을 이룬다. 전반적으로 호퍼의작품은, 분명한 의미로써 해석되는 회화적 상황을 측량할 길 없는 깊디깊은 심연속으로 밀어 넣는 독특함을 보여준다.
- P85

호퍼의 회화 작업은 표현적 형태를 추구하면서도 반드시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려 하지는 않는 독특한 시각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호퍼의 회화는 현실을 상상력과 기억의 힘을 빌려 변모시키고자 했던 에드가 드가와 궤를 같이 한다.
- P86

호퍼에게 리얼리즘이란단 한번도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냄을 의미한 적이 없었다. 호펴는 순수한 회화적 재현을 전혀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매 작품마다 복제와 상상력, 재현과 구성 사이에 즉각적인 상호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실과 결부된 여러 회화적 요소들과, 또한 이것들을 함께 엮어내는 시선의 현실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만이 호퍼의 회화가 제시하는 현실을 설명해준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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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책이지만 너무 진지해서 웃기는 대목은 없더만 거의 마지막 페이지네서 빵 터졌다. 특히나 저 ‘철학적 개념이 있는‘계단이라니...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말에는 프랑스 해체주의철학자 데리다를, 1990년대 들어서는 들뢰즈를 인용하지 않으면 무식한 건축가 취급을 받았다. 『해체주의』, 『천개의 고원』, 『주름] 같은읽어도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던 글을 설계에 적용하고자 노력하는 학생이 많았고, 심지어 설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건축학과를 졸업한후에 철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관념이 실재를 이끌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해체주의의 대표적인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 Peter Eisenman(1932~)의 경우 주택 설계를 했는데 안방 침실의 방 가운데가 갈라져서 침대가 둘로 나뉜 디자인을 하여 부부가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없거나, 건물의 모양이 필요 이상으로 기괴하게 복잡해서 복잡한 모양 틈새로 방수가 제대로 안 돼서 시공 후 비가 새는일이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어떤 계단은 올라가도 막혀 있는 ‘철학적 개념이 있는 계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 P339

그런데 건축은 어떻게 시간을 뛰어넘어, 시대가 다른 사람 간에도 소통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걸까? 건축 공간이 시간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회화나 음악과는 다르게 건축만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도구는 비어있는 공간이 보이드공간이다 - P25

그런데 밀과 벼는 재배 방식에 차이가 있으며, 이 재배 방식의 차이가가치관의 차이를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벼농사 지역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 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 P62

이런 이유에서 서양의 건축 공간은내부와 외부가 벽으로 확연히 나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밖에서 건물을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이것이 서양 건축의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바라볼 경치가 없기때문에 그림과 조각으로 실내를 과도하게 꾸몄다.
- P74

어두운 실내에서 밖을 보면 자연은 밝고 처마 부분은그림자가 져서 어둡게 된다. 이때 녹색과 자줏빛을 채도가 낮은 차분한톤으로 칠하면 그림자 진 상태에서 칙칙해 보이고 자연과 건축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단청 색깔처럼 채도가 높은 밝고 선명한 톤으로 칠하면 단청이 그림자에 들어가 있어도 밝은 바깥 경치와 연결돼 보인다. 나는 이런 경험을 불국사의 어느 처마 밑에서 할 수 있었다. 단청의 색깔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건축물이 자연에 흡수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것은 건물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제3자의 시각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사람의 1인칭 시점에서 디자인적 판단을 내렸음을 알 수 있다.
- P79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 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은 밀 농사의 혼자 농사하는 방식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커졌고, 외부와 단절된창문 없는 벽 중심의 건축으로 바깥과 교류가 적은 성격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건축물 역시 독립된 개별적인 건축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축적 개인주의‘가 발전했다. 반면 벼농사는 집단 농사 방식으로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가치였으며, 많은 강수량 때문에 사용하게 된 재료인목재를 이용한 기둥 중심의 건축 양식은 외부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양식으로 발전되었다. 강수량 차이로 인해서 서양은 독립된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동양은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두 문화의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조금 더 비교해 보자.
- P80

서양의 문화는 양식이라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반복을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이는 마치 체스에서 각각의 말들이 다른 형태의 규칙과 위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양식 혹은 규칙을만들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것이 서양 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반면동양의 나무 기둥과 보를 가지는 구조 양식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다만 건물은 놓인 대지의 조건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반응하면서 건물의 배치를 변화시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이고 상대적인 공간을 연출해 왔다. 물론 여기에도 풍수지리 같은 보이지 않는 규칙은 존재했지만, 그 풍수지리라는 규칙도 물과 산과 사람의 상대적인 관계에관심의 초점이 있다. 이렇듯 동양 건축은 양식보다는 상대적인 관계를중요하게 여겨 왔다.
- P117

15세기에 들어서 삼각돛이 발명되고 난 후 공간이 압축되었고, 16세기에는 해상 무역 길을 통해서 도자기 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7세기에는 동양의 책이 번역되어서 유럽에 전파되었다. 패러다임은 꾸준히 변화하여 그 결과 18세기 들어서는 조경 디자인에서부터 서양의 패러다임 변화의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픽처레스크라는 조경 디자인 양식으로 확립되었다. 픽처레스크란쉽게 설명하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드는 정원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18세기 조경가 험프리 렙턴 Humphrey Repton(1752~1818)은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서 언덕이 될 수도, 평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원을 디자인할 때,
정원 내에 위치한 개인의 시선에서 자연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렙턴은 보는 이의 위치가 정원 내 구성 요소 간의 관계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 P186

 픽처레스크 정원을 거니는 사람들은 본인이 여러 다른 위치에서 다른 투시도적 이미지를 바라본 경험들을 바탕으로 정원의 전체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구성했다. 서양 정원 디자인에서 상대적 관계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된 것이다.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은 서양 문화에 있어서 경직된 기하학에서 탈피하여 상대성에 가치를 두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점이 된아주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P191

결론적으로 서양의 근대 건축은 기술 혁신과 동양 건축 유전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2세대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연 사람이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다.
- P208

기본적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의 5원칙은 동양의 기둥식구조의 건축 양식이 서양에 전파되어 산업혁명의 새로운 재료인 콘크리트와 함께 만들어진 문화적 변종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코르뷔지에의 철근콘크리트 기둥 구조가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사용하면 당연히 만들어지는 현상이니 동양 문화의 영향은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철근콘크리트 재료가 반드시 기둥 구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뒤에 나오는 루이스 칸이나 안도 다다오 같은 건축가는 철근콘크리트 재료를 기둥 구조로 사용하지 않고 벽 구조체로만 사용했다. 코르뷔지에가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기둥식으로 사용한 아이디어는 그의 창의적인 생각이다. 나는 그 창조적 생각이 만들어지는과정 중에 동양 문화의 영항을 받은 당시 유럽의 문화적 패러다임이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 P244

바라간은 캘리포니아 라호이아에 있는 소크 연구소 현장에서 "이 공간에 나무나 잔디 대신에 돌로 포장된 중정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소크 연구소의 입면으로 하늘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바라간은 칸에게 비움을 통해서 진정한 자연을얻으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 P290

안도는 "건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존재감을 느끼게끔 해 주는중간 장치다. 중정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자연은 매일 매일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중정은 집 안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핵이며 빛, 바람, 비와 같은 자연의 현상을 전달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 P307

그의 건축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재료인 콘크리트를 사용하는데, 큰 창문과 복잡한 진입동선으로 적극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자연과 교류한다는 면에서는 동양적인 성격을, 벽 구조를 가지면서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평면과 단면을가지고 있다는 면에서는 서양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동서양 문화 유전자의 교배를 통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 수 있었다.
- P328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진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다양성의 소멸‘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패션, 건축, 산업 디자인 등 각종 디자인 분야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어 왔다. 패션은 옷감을 가위로 자르고, 바느질했으며, 건축에서는 돌을 쌓고, 나무를 깎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각 분야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제작 방식에 근거해서 서로 전혀 다른, 다양한 결과물을 창조해 낼 수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컴퓨터에서 디자인하고, 스크린상에서컴퓨터로 만든 3차원 그림을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그 형태를 CADCAM(Computer Aided Design, Computer Aided Manufacturing)을 이용해서 제작하는 비슷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매스 미디어의 과다한 노출로 인해 서로 점점 더 베껴 가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 분야의 ‘다양성‘이 사라져 가는 추세다. 기술에만 의존하는 창조는시간이 지날수록 다양성이 사라진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20세기 중반국제주의 양식에서 경험했다. 기술이 이끄는 획일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피하느냐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 P356

새로운 생각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크게 두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제약이고, 둘째는 융합이다.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서로 다른 생각이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창조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변화와 새로움을 거부했던 문화는 발전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는 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 P396

디지털과 융합될 시대는 기술이 너무 압도하기 때문에 개인이사라지고 획일화될 가능성은 더 높다. ‘과연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인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려면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 내는 눈이 필요하다. 앞으로사회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인간다움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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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포르투갈에서 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나는 짬시간을활용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버스에서, 기차에서, 지하철에서, 그 정류장들에서 이동하고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도읽지 않았고 노래도 듣지 않았다. 가능한 한 머리를 비우면서, 도시의 소리들에 감각을 열어두고 싶었다. 심지어는 소음까지도.
- P17

 딴사람의 이름으로 쓰기, 아니 아예 딴사람이 되어 쓰기 - 이것은 페소아가 거의 평생에 걸쳐 습관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지속한 일이다.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또 자아로부터도 유체 이탈‘ 하여, 과거 이력까지 정교하게 만들어낸 어느 타인의 관점을 취한 상태에서 시심을 발휘하는 행동, 그렇게 지어진 시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어디도 아닌 곳에 위치할수밖에 없고, 그 시의 시선은 온전히 캄푸스의 것도, 페소아의 것도,
시인이 아닌 실존 인물 시민 페소아의 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게 복수의 시선들이 탄생하고, 그 시선들이 서로 어지러이 교차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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