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 - 당신이 지나친 미술사의 특별한 순간들
이원율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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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그림과 유명한 그림은 다르다.

이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유명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유명한 그림이 왜 유명한지를 알려주는 책.

저자는 아예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한 작품을 보고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도록 미술 공부에 첫 걸음을 뗀 분에게는 '완전한 생애 첫 미술사 수업', 적당한 수준을 넘어 미술을 본격적으로 알고 싶어진 분들에게는 '제대로 된 생애 첫 미술사 수업'으로 이 책이 제 역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 10쪽


이 책에서 다루는 23명의 작가와 그들이 문제작만으로 미술사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딱 2가지의 목적은 확실하게 성취하고 있다.

그 첫번째는 유명한 그림이 왜 유명해졌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두번째는 책을 다 읽었을 때 시대를 바꾸는 예술의 힘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나는 이렇게 자기 목적에 충실한 책이 좋다. 

어정쩡하게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하다가 갈길을 읽고 방황하는 책 말고......


첫 번째 예를 들어보자



조토의 유명한 그림 <애도>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보자.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뭐 딱히 잘 그린 그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현장에서 직접 보면 다를지도 모른다고? 

아니! 이 그림은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성당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그림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많은 그림들 속에서 이 하나를 보고 감동에 빠지기는 힘들다.

종교적 감동이라고 하면 나는 오히려 조토 이전의 중세 그림에서 더 감동을 받는다.

중세의 그림들은 "너 이래도 감동 안 받을래?"라고 하면서 그림을 보는 이를 윽박지른다.

종교적 핵심을 모두 제외해 버리고 오로지 신성만을 부각하니까 말이다.

그러면 이 그림은 왜 유명한가? 그리고 왜 당대의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가?


그것은 조토가 신의 눈이 아닌 인간의눈으로, 배운대로의 규격에 맞게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그렸기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머니, 비탄에 빠져 엉엉 울고 있는 천사들.

지금에 와서야 별거 아니지만 처음으로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의 충격은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그림에서 예수의 죽음은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의 영역으로 내려온다.

그것이 인간의 신앙심을 더 깊게 했을지 아니면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을지는 논외의 문제지만 실제 조토의 그림을 주문했던 스크로베니가 감동했다는 얘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조토로부터 예술의 중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마네의 너무나 유명한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다.

역시나 지금 봤을 때 딱히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거나 그렇지는 않다. 물론 나만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 그림 역시 감동적인 그림이 아니라 유명한 그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오감, 감각을 해방시킨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인간의 신체가 아니라 뱃살이 접히는 것까지 포함하여 인간의 눈이 포착할 수 있는 모든 빛과 그림자를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회화의 핵심 가치가 "개인의 감각, 즉 화가 각자의 개성"(213쪽)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와 그 작품의 첫 번때 가치를 독특한 개성에 두는 시대의 시작이고, 이것은 현대 예술의 기본 기조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네는 현대 미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이 된다. 


이런 얘기들이 조토에서부터 잭슨플록, 팝아트의 리처드 해밀턴까지 펼쳐지며,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미술사에서 유명한 그림들이 왜 유명한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게된다고 하겠다.


두번째로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결국 유명한 예술이라는 것은 기존의 한계를 깨는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조토가 회화를 중세의 장인 기술에서 해방시켜 독립적인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낸 것은 그가 인간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이다. 신성의 영역에 인간의 감정을 들이댄 것이나 마찬가지로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깸으로써 조토는 위대한 화가 되는 것이다.

고흐는 사실적 묘사를 뛰어넘어 피사체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혼을 그림으로써 그림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라는 신화를 깬다. 세잔은 그림에서 형태를 해방시켜, 사과는 마땅히 이런 모양이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부숴버린다. 다음 마티스는 형태에 이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색채마저 해방시켜 버린다. 칸딘스키와 같은 추상화로 가게 되면 사물의 재현이라는 오래된 미술의 본래적 의미마저 파괴하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결국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의 획득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과 예술가의 힘은 바로 이 새로운 시각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이 시각을 획득한 이후에 보는 세상은 우리에게 다른 측면의 사고와 세계관을 선사하는 것이다. 

결국 이 한권의 책에 담긴 유명한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이 그 오랜 역사동안 무엇을 해왔는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그림들 중에서 당신이 매우 좋아하고 감동을 느끼는 그림을 만난다면 그건 또 굉장한 행운이다.

하지만 그런 그림을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술이 끊임없이 과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확대하는 과정을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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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08-12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서 인상 깊은 묘사를 꼽으라고 하면, 나체 여성의 맨발바닥을 정면으로 그린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아는 맨발바닥을 상세하게 묘사된 그림이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카라바조와 쿠르베, 그리고 만테냐의 죽어서 누운 예수 그림이거든요. 맨발바닥 묘사는 흔하지 않아서 신선하다고 생각해요. ^^

바람돌이 2023-08-12 14:14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진짜 나체여성의 발바닥을 정며으로 그린 그림은 거의 없는거 같네요. 저는 또 이 그림에서 그건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cyrus님 덕분에 그림의 다른 면모를 또 봅니다. 좋네요. ^^
카라바조와 쿠르베의 발바닥은 기억이 안나는데 만테냐의 예수의 발바닥은 그림 직접 봤었어요. 발바닥이 고통을 부르짖는듯한 느낌이어서 강렬했던 기억이 나네요. ^^

야클 2023-08-12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한 꼭지씩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입니다.

바람돌이 2023-08-12 14:16   좋아요 1 | URL
한 꼭지씩 읽어도 좋을거 같아요. ^^ 이분 예전에 후암동 미술관이라고 신문 연재하시고 블로그운영할 때 가끔씩 읽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나오니 좀 더 정독해서 읽게 되네요. ^^
 

한 작품 을 보고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도록 미술 공부에첫걸음을 뗀 분에게는 ‘완전한 생애 첫 미술사 수업‘, 적당한 수준을넘어 미술을 본격적으로 알고 싶어진 분들에게는 ‘제대로 된 생애 첫미술사 수업‘으로 이 책이 제 역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 P10

조토가 위대한 이유는 중세의 공식들을 싹 다 깨부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의 눈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대상을 관찰했습니다. 중세가
‘배운 대로‘라면 조토가 띄운 르네상스는 ‘보이는 대로‘ 입니다. 조토는 인간의 표정과 감정을 공부했습니다. 신이든, 성인이든 상관없이 그 대상에 자신이 탐구한 형형색색의 감정을 그려 넣었지요. - P29

바로크 미술의 핵심은 역동적 구조, 강렬한 색채입니다. 15세기 르네상스미술이 안정감과 단정함, 절제된 표현을 추구했다면, 바로크 미술은과장과 극적 효과를 추구합니다. 르네상스 미술이 깔끔한 교복 차림의 모범생이면, 바로크 미술은 것을 바짝 세운 채 껄렁하게 앉아 있는 반항아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애초 바로크라는 말 자체가 ‘현란한‘, ‘불규칙한‘, ‘변덕스러운‘ 같은 의미로도 통합니다. 포르투갈어로 바로크는 ‘비뚤어진 진주‘라는 뜻입니다. - P96

윤두서는 수백 년간 이어진 조선의 화풍을 바꾼 혁신가입니다.
조선 땅에 등장한 첫 사실주의 화가입니다. 사실주의는 보이는 걸 그대로 담는 화풍입니다. 피사체의 외면을 넘어 요동치는 내면도 그립니다. 나아가 그 시대상까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 P196

윤두서는 조선이 낳은 첫 서민풍속화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사실주의는 자화상에만머물지 않았습니다. 윤두서는 서민을 그림의주인공으로 둡니다. 그간 아무도 하지 않은파격이었습니다.  - P199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기성 화단을 제대로 한 방 때리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감각을 다룬 작품입니다. 마네는 인간의 오감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인간의 누드를 그렸습니다. 뱃살이 접히는 걸 보고는 이마저도 똑같이 묘사했습니다. 그늘이 진 곳에도 빛을 표현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무엇 하나 만져지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현실에선흔치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지금껏 인간의 주관이 이렇게나 가득 스며든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 P212

쇠라는 인상주의가 흩트려놓은 조형 질서를 다시 구축한 화가였습니다. 인상주의의 무기인 ‘감각‘이 신중한 계산, 입증 가능한 과학과도 함께 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혁신가였습니다. 그의 점묘법으로 인해 인상주의는 진화했습니다. 색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쇠라가 없었다면 인상주의 또한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달지못한 채 잠깐 반짝인 뒤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신인상주의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 화풍에서 영감받은 야수주의와 추상회화의 등장 또한 한참 늦어졌을지도 모릅니다. - P264

 세잔은 선과 색으로 대상을 모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선과 색으로 대상에 ‘새로운 형태‘
를 부여하는 일도 미술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겁니다. 이는 급진적 발상이었습니다. 인상주의도 이해받기 힘든 시절에 이런 생각을 이해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야 세잔의말이 그림에서 형태를 해방한 선언문으로 인정받습니다. - P299

세잔이 여러 방향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표현하던 버릇은 피카소가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대상을 조각조각 낸 뒤캔버스 위에서 재창조했습니다. 입체파가 탄생한 겁니다. 피카소의<아비뇽의 처녀들>은 세잔의 <대수욕도>(그림 9)를 본 뒤 그린 작품입니다.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를 이끈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역시 "세잔의 작품을 보자 모든 게 뒤집혔다.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다시 생각해야 했다"고 했지요. - P309

이런 점에서 로댕이 조각계에 남긴 업적은, 마네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미술계에 안긴 충격과 같다는 말을 합니다. 로댕은 조각의 땅.
인상주의 화가들은 미술의 땅을 넓혔기 때문입니다. 로댕 덕에 "조각은 아름다움 없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고, 마네와모네 등 인상주의 무리로 인해 "그림은 예쁜 장면 없이 예쁠 수 있다!"는 말이 생명력을 얻었으니까요.  - P322

한편 클림트를 내세워 회화 운동으로 시작한 빈분리파의 성과는건축과 공예 영역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찍어낸 듯 지을 수 있는건물, 별 생각 없이 만들 수 있는 공예품에도 예술을 투영시킨 것이이들의 가장 큰 공로 중 하나입니다. 고루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의빈 분리파는 엄청난 포용력을 가졌었는데요, 이들의 이상은 그들만의 예술 타파, 즉 생활 속의 예술 실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화보다 더 큰 영역으로, 회화보다 일상적인 영역으로 눈길을 줄 수밖에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과 사람이 쓰는 것, 건축과 공예로 무대를넓힌 이유였습니다. - P354

회화란 ‘대상‘ 없이 그 자체로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칸딘스키의 신념이었지요. 생각, 즉 아이디어만으로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대상 없이 점, 선, 면과 이를 아우르는 색만으로도 보는 이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칸딘스키로 인해 회화는 대상에서조차 해방을 맞이합니다. 이렇게 회화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무언가를 재현하기는 해야 하는 것"이라는 불문율마저 무너집니다. - P401

반면 몬드리안 표 ‘차가운 추상‘은 감정 따위는 한 방울도 섞지않은 건조한 추상화입니다. 오직 질서와 규칙뿐입니다. 대상의 영혼을 그리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내다 버립니다. 감정을가라앉힌 채 천천착을 거듭하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몬드리안은 그런 점에서 해방, 폭발이 아닌 절제까지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화가라는 평도 받습니다. 무표정의 배우가 연기하는영화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겁니다.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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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09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언제 베트남에서 돌아오셔서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을 가셨습니까!

바람돌이 2023-08-10 15:40   좋아요 1 | URL
하하하~~ 베트남에서 돌아와서 일상으로 못돌아오고 미술관으로 잠시 피했습니다. ^^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점멸하는 수백 개의 텔레비전 화면과 다채로운 이미지들의 향연 때문일까. 많은 사람이 백남준의 예술을브라운관들이 켜켜이 쌓인 ‘비디오 조각‘으로만 한정하여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남겨진 통찰의 유산이다. 백남준은 1960~1970년대에 첨단 기술이 바꿀 미래 사회를 내다보았고,
이를 예술적 언어로 그려냈다. 그가 말한 첨단화된 미래사회의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다. - P13

"비디오아트의 앞날을 밝게 보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확신해요. 뒤샹은 비디오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 했죠. 그는 들어오는 문은 크게, 나가는 문은 작게 만들었어요. 그 문이 바로 비디오죠. 바로 그문을 통해 뒤샹에서 나올 수 있는 거예요." - P22

 이들은 그저 영상만 내보내는 기계로여겨졌던 텔레비전을 쌍방향의 피드백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았고, 피아노 건반을 치듯 누구나 쉽게 영상을 다룰 수 있는 기계를 원했으며 모든 사람이 적극적으로 예술가가 되기를 바랐다. - P89

 백남준은 케이지를 만남으로써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P99

우리는 예술을 통해 자본주의, 즉 돈만 좇는 잘못된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무분별한 인간의 탐욕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패망하고도 다시 관료주의와 군대가 득세하는 모습을 믿을 수 없던 우리는 예술을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예술이라는 것은 자유를 위한 갈구였다. - P124

백남준은 참여와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은 독재 혹은 창작자 혼자만의 예술이라고 간주했다. 관람객들 저마다가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즐김으로써 예술이 다양성을 획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백남준이 추구하는 예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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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1-25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게 만든, 나가는 문을 통해 만나는 작가가 뒤샹이다...아! 옮겨주신, 이 부분은 제 짧은 배경지식으론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혹시 이 책 읽게 된다면 꼭 22쪽을 꼼꼼하게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3-01-25 12:00   좋아요 0 | URL
책에는 딱히 설명은 없구요. 저는 그냥 뒤샹이 샘을 발표한 이후로 예술의 범위가 확 넓어졌잖아요.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성품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예술작품이 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여기에서 현대 예술의 의미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특히 무언가 새로운 생각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다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게 뒤샹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예술에 포함될 수 있는 범위가 무한대로 넓어졌죠. 이런 상황에서는 예술가가 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는 정말 힘들었지 않았을까? 무엇을 하든 뒤샹의 정의에 포함되어버린다는..... 물론 이건 저 말에 대한 저 혼자만의 해석입니다. ^^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강형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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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를 보면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분이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서 사진기자가 되어 미국의 주류 언론사에서 활동하셨다. 평생을 사진기자로 살면서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받으셨다고 하니 사진이 좋을 것은 뭐 말하나 마나이다. 특히 제주 화산섬 사진과 고라니가 뛰어가는 고령 가야고분군 사진은 압권이었다. 


저자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와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문화에 관심있는 외국인에게 알리고 싶다는 의도로 이 책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필요한 일이고 훌륭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도에 따라서 본문은 영어와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영어와 한국어가 같은 내용은 아니고, 영어로는 해당 문화재나 사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고, 한국어 문장에서는 좀 더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어는 대충 읽다가 일단 기본적인 소개가 주를 이루고 거기다 짧은 영어로 번역기 돌려가며 보는것도 귀찮아서 몇개 보다가 그냥 다 패스하고 한국어에 집중했다. 


그런데 해외교포라는 저자의 위치와 함께 이런 종류의 글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글의 내용들이 아쉬움이 많았다. 이 책이 사진과 만듦새의 훌륭함으로 인해 정말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보류해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맘이 들기까지..... 일단 생각의 차이로 넘길 수 있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세상에는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문화에서 약간의 국뽕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정말 많으니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는 학술서도 아닌 이 책에 과한 비판이 되리라......


다만 한국어 소개 글의 내용 중 오류와 맥락상 틀리게 읽힐 부분이나 비교가 잘못된 부분, 검증되지 않은 것들 등은 다음 인쇄에서는 꼭 고쳐서 다시 쓰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저자가 이렇게 썼더라도 이 분이 외국에서 오래 사신 분임을 감안하면 편집자가 찾아내서 저자와 의논해서 수정 했어야 되지 않나 싶은데 아닌가? 이 책을 펴낸 출판사가 작은 출판사도 아니던데 말이다. 


1. 중국 남조 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남제서>에 백제 동성왕이 선비족을 크게 무찌르고 중국 허베이성, 산둥성, 장쑤성, 황해 유역에 여러 왕을 임명했다는 기록, 2백제 멸망 후 백제의 난민들과 귀족들이 왜로 건너가 정착하고서 '일본'으로 국호를 정해 불렀다는 기록 등은 3. 백제가 아시아 대륙의 해안선을 따라 동아시아의 많은 제후국과 교류하면서 융성하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해양 제국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 25쪽


과거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이 많지만 현대의 우리가 그 모든 기록을 다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어떤 역사서든 그것을 쓴 사람의 어떤 의도, 역사관, 당대의 상황이 반영될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라 과장이나 의도적 비의도적 왜곡, 입증되지 않은 소문을 그대로 사실인양 기록한 것 들 등이 횡행하는 것이 역사기록이다. 따라서 현대의 역사가들은 그런 기록들을 당대의 다른 역사서, 실제 상황이나 세력들의 역관계, 사회상황등을 고려하며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제야 사학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기록 하나가 나오면 무조건 그것을 숭배하면서 봐라 우리 민족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이걸 무시하는 주류 역사학자라는 놈들은 전부 매국노, 친일파일세 저격하기 바쁘지만 어쩌겠는가? 아닌 건 아닌거다.


밑줄친 1번부터 말하면 <남제서>라는 책에 실린 기록은 사실상 검증되어야 할 부분이 정말 많은 내용이다. 일단 남북조시대 선비족을 비롯한 북방 유목민족들에게 중원을 빼앗긴 한족의 입장에서 쓰였다는 것, 따라서 선비족에 대한 증오나 무시, 그리고 그를 상대한 나라들에 대한 과장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 그리고 제나라의 뒤를 이은 양나라의 소자현이라는 개인이 쓴 역사서임을 감안하면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졌을지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당대의 상황을 고려하여 살펴볼 수 밖에 없는데 동성왕대의 백제는 고구려의 압박으로 웅진으로 천도해 웅크리고 있다가 중흥을 도모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외교전을 다양하게 펼치는 노력을 하는데 그 노력의 일환이 바로 중국 남조와의 외교였다. 이로써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있던 선비족의 북위를 압박하고 고구려를 압박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때 고구려를 막기에도 어렵던 백제의 국력이 대군을 보내 당대 승승장구하던 선비족의 북위를 정면대결로 무찌르고 그들의 땅을 빼앗아 봉건제후 왕들을 임명했다라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남제서>라는 책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기록을 그대로 믿고 이를 기정 사실처럼 이렇게 쓰는 것은 역사 왜곡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꼭 중국과 일본만 역사왜곡을 하는 것처럼 떠드는데 솔직히 우리나라도 두리뭉실 얼버무리면서 하는 역사 왜곡 많다. 역시 아닌건 아닌거다라고 말할 밖에.....



밑줄친 2번에서 일본이 국호를 '일본'이라 부른 것은 나라 시대(710~794)부터이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한 이후 많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이후 일본 내에서 어느 정도의 세력권을 형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단정해서 말하기가 어렵다.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정말로 미스테리이다. 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서로 상대를 제압하고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실제 몇가지의 사례들을 보면 이건 뭐 한 집안 같다고나 할까? 백제의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고 하고 이전 시대에는 백제계 귀족들이 일본 정계를 휘둘렀던 시기도 분명 있었으니 서로 위 아래를 가리기 어렵다고 할까? 하여튼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 우리가 일본의 뭐든 만들었다고 주장할 부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문화적으로 이 시기의 국뽕이 가장 심한데 일본 문화에서 백제의 영향력이 많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시기 일본의 문화가 확 뒤떨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일본 나라 가서 나라국립박물관에 가보면 당대 일본의 문화수준 역시 굉장히 뛰어났음을 순식간에 확인할 수 있다. 


밑줄 친 3번 역시 저 설명에 부합하려면 4세기 말 근초고왕대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기의 해양 제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역시 학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근초고왕대 백제의 전성기에서 100여년이 훌쩍 흐르고 난 뒤에도 백제가 저 설명에 부합했을지는 의문이다.


이 설명은 모두 백제 금동대향로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저렇게 무리하게 역사를 과장하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신 중 하나는 인쇄술이 발명된 것이다. 고려는 목판 인쇄와 금속 활자 인쇄까지 모두 가능한 나라였다. 이는 1. 기동성 있게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몽골 기마병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문명이었다.  2. 고려의 인쇄 기술은 소수의 학자들만이 누려 온 지식을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44쪽



고려의 인쇄술을 설명한 내용은 틀림이 없으나 비교대상이 몽골이라는 것이 좀 안타깝다. 미국에 사신 분이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대하다고 알려져있는 동양인을 비교대상으로 삼은건가? (칭기즈칸은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지난 천년간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로 선정된 바 있다.) 문제는 칭기즈칸도 몽골제국도 위대했으나 인쇄술에 있어서는 이들은 전혀 위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관심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목민족의 특성상 몽골은 자신들의 기록을 남기는 것에 정착민들만큼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서양의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것은 자랑이 될 수 있으나 몽골보다 인쇄술이 발달했다는건 좀 뭐랄까? 마이클 조던이 아이슈타인한테 "내가 당신보다 농구 잘해"라고 자랑하는 느낌이랄까? 비교대상 선정 실수라고 하겠다. 


그리고 2번째 문장은 우리나라의 인쇄기술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이 바로 이부분이다. 지식의 다양한 계층으로의 확산과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쇄술이 그토록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몇 백년간 더 조선후기가 되기까지 지식은 소수의 지배층 지식인들-사대부 양반들-에게 독점되어 광범위한 계층으로의 지식의 확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저 지식을 독점한 지배층 - 사대부들의 숫자가 늘어났을 뿐이다. 이것은 인구증가 때문이지 인쇄술 덕분은 아니다. 서양의 인쇄술 발달이 성경의 자국어 번역과 이어지면서 종교개혁과 이어지고 광범위한 지식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과 비교되어서 흔히 안타까움으로 이야기 되어지는 부분이다. 



현재의 위치인 국립 경주 박물관으로 성덕 대왕 신종을 옮겨 올 때 종의 무게를 견딜만한 쇠막대기를 특별히 제작했다. 하지만 1. 종을 매다는 구멍에 끼우기에는 너무 굵어 어쩔 수 없이 이전에 썼던 녹슨 쇠막대기로 종을 매달아야 했다...... 성덕대왕신종은 1000년이 넘도록 바깥 공기에 드러나 있었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아름답고 장엄한 소리를 내고 있다. 2. 신라 사람들의 철기 다루는 기술이 가히 놀랍기만 하다.  - 117쪽



단순 실수인지 알 수 없지만 성덕대왕신종을 옮길 때 문제가 되었던 쇠막대기(쇠막대기가 아니라 쇠고리로 알고 잇는를 당시 포철에서 만들었었는데 구멍에 끼우기에 너무 굵었던게 아니라 실제로 끼워서 들어올렸을 때 이 쇠막대기가 휘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원래 종에 있던 쇠고리를 그대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그리고 밑줄친 2번 부분은 저자가 몰랐을리는 없고 서술상의 실수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 책의 전체 내용을 읽다보면 마치 성덕대왕신종이 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결정적으로 밑줄 친 2번으로 인하여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성덕대왕신종은 청동이다. 이 종을 매다는 고리 부분만 철기로 제작된 것이다.  저자가 쓰면서 금속과 철기를 같은 단어(iron)로 쓰는 영어때문에 혼동한 것 같은데 사실 이런 건 편지자가 잡아줘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진짜 크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일본이 한글을 쓰지 못하게 하자 국어학자들이 모여 한글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1. 비밀 단체인 조선어 연구회를 만들어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기 시작했다. 2. 일본에게 원고를 빼앗기기도 하고 학자들이 투옥되는 등 위기를 겪었지만,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전인 <조선어 사전>을 발행했다. 그리고 3. <조선어사전>을 이어받은 <큰사전>이 1957년 총 6권으로 완성되었다.  -161쪽



밑줄 친 1에서 조선어 연구회는 비밀단체가 아니었다. 지금의 한글날의 원류인 '가갸날'을 제정하고 잡지 <한글> 발간, 조선어 강습회 개최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한글 연구와 보급에 힘쓴 공개된 한글 연구단체였다. 저런 활동은 비밀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밑줄친 2번, 조선어 연구회는 1931년 그 유명한 조선어 학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본격적인 우리말 모으기와 사전 편찬작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2번의 서술에서는 마치 조선어 연구회가 일본에 원고를 빼앗기고 투옥된것처럼 연결되는데 이는 조선어 연구회가 아니라 조선어 학회다. 동시에 1938년 발행된 <조선어 사전>역시 조선어 연구회에서 발행한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데, 이 시기 조선어 연구회는 존재하지 않았고, 조선어 학회가 있었다. 더 큰 오류는  이 사전은 문세영이라고 하는 분이 다른 몇분의 도움을 받아 발행한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조선어 학회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전이 조선어 학회에서 만든 <맞춤법 통일안>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비공식적으로 조선어 학회와 어떤 관련이 분명히 있을듯은 하지만 이부분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는 듯하다. 따라서 밑줄 친 3번에서 말하는 <큰사전>이 <조선어 사전>을 이어받았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아직 모호한 부분이 있다. 


다음 인쇄에서는 저자와 내용을 잘 살펴서 틀린 부분만이라도 수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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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1-02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금동 향로는, 뭐라 말로 할 수 없고요, 직접 봐야 뒤집어지더군요. 아휴 당시에 깜놀했던 감격이라니요!!! 근데 부여까지 가서 본 것이 복제품이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흑흑흑......

바람돌이 2022-11-02 20:27   좋아요 1 | URL
반전!! 저 금동향로가 자주 서울이나 다른 박물관들 기획전 할 때 나들이를 갑니다. ㅎㅎ
그래서 진품 보려면 어디 있는지 미리 찾아보고 가야 한다는.... 그런데 금동향로는 복제품도 워낙에 잘 만들어서 사실 구별 못해요. 진짜 똑같아요. ㅎㅎ

2022-11-02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2-11-02 2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대단하세요. 이런 지적을 할 수 있는 독자라니 저는 감탄을 하며 읽었습니다. 몽골보다 인쇄술이 발달했다는 건 제가 봐도 좀 생뚱맞아 보이네요.
훌륭한 사진들에 걸맞게 내용이 좀 더 고 정확했다면 좋았을 책인데 아쉽네요.

바람돌이 2022-11-02 20:38   좋아요 2 | URL
에고 저 대단한거 아네요. 저 역사과 출신이라 이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물론 제대로 공부 안하고 겉만 대충 아는 전공이긴 하지만요. ㅎㅎ 그래도 사진들은 굉장히 잘 찍었고 기획 의도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coolcat329 2022-11-02 20:43   좋아요 2 | URL
아 그렇죠! 역사 전공하셨죠! 그래도 대단하신거에요.😆
종고리는 철 몸통은 청동이라고 짚어주신 부분에서 속으로 아! 감탄했답니다. ㅋ

그레이스 2022-11-02 2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지적하시는 바람돌이님 정체가 궁금합니다.
존경합니다 ~♡
앗 이 글 쓰고 위에 보니 역사과 나오셨군요.
반가워요
우리 막내가 역사 전공인데 ...^^

바람돌이 2022-11-02 21:37   좋아요 3 | URL
앗 집에 역사전공인 따님? 아드님? 역사가 공부는 재밌어요. 그런데 우리집에는 왜 저 따라서 역사전공하는 놈이 하나도 없는지..... ㅎㅎ

scott 2022-11-02 2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이 책에 바람돌이님 리뷰 끼워넣고 주말 박물관으로~@@@

바람돌이 2022-11-03 21:51   좋아요 2 | URL
주말에 서울 중앙박물관 산책도 좋겠네요. ㅎㅎ 금동대향로는 지금은 어디에??? 아마 부여박물관에 있겠죠?

mini74 2022-11-03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금동대향로랑 성덕대왕신종 작게 만들어서 외교 선물한다는 기사 본 거 같아요. 넘 부러웠던 ㅎㅎ몽골과 인쇄술 비교 예 드신거 넘 재미있어요~ 바람돌이님 진짜 이런 리뷰는 작가님을 위해서리도 링크 보내주셔야 합니다 ㅎㅎ 👍

바람돌이 2022-11-03 21:53   좋아요 1 | URL
그거 박물관 기념품점가면 팔아요. 물론 굉장히 비싸다는게 함정이지만..... 금동대향로는 실제크기로도 복제품 만들어서 파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도 100만원이 넘었던것 같은..... ㅎㅎ

mini74 2022-11-04 15:25   좋아요 0 | URL
헉. 백만원 ㅠㅠ 그렇군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11-03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서 수정해서 꼭 개정판이 나오면 좋겠네요. 책의 타겟이 전문가들보다는 대중일 것 같은데 그럴수록 오류를 최소화해서 내용을 점검하고 나왔어야 할텐데 말이죠. 바람돌이님 리뷰 엄지척입니다!!!

바람돌이 2022-11-03 21:54   좋아요 1 | URL
독자로서 저의 일은 여기까지요. 나머지는 출판사에서 판단하겠죠. ^^

책읽는나무 2022-11-03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목조목 오류를 잡아내신 꼼꼼함에 감탄했습니다. 아마 제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런가 보다. 하며 읽었겠죠??
바람돌이님이 짚어 주신 부분을 상기하며 읽어 보니 책의 빠른 수정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책 제목 자체가 <우리 문화유산>이니까요^^
그리된다면 책의 퀄리티가 훨씬 더 올라가겠죠??^^
예전에 미니님도 다미여 책의 오류를 잡으시고, 바람돌이님도 이 책의 오류를 잡으시고...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이 알라딘 친구분들이라 자랑스럽네요^^
덕분에 좋은 역사 공부가 되었습니다.

바람돌이 2022-11-03 21:58   좋아요 2 | URL
아유 제가 역사부문에서 이정도 찾아내는건 자랑이 아니고 당연한거고요. 미니님이 진짜 대단하신거죠. 예전에 어떤 영어선생님이 자기 영어 잘하는걸 은근히 자랑하는데 어찌나 어이없던지.... 아니 영어선생이 영어 잘하는건 당연한거지 자랑이 아니잖아요. 제가 역사를 이정도 하는것 역시 자랑이 될 수 없고 못하는게 나쁜거죠. ㅎㅎ
나무님 선물인 책이라서 이 책이 다시 좀 더 내용을 수정보완해서 나오면 좋겟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희선 2022-11-06 0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으로 이민 간 분이었군요 바람돌이 님 역사 잘 아셔서 잘못된 부분 쓰셨군요 편집자가 역사를 잘 알고 고칠 부분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바람돌이 님이 이렇게 쓰신 거 출판사에 보내면 좋겠네요


희선
 
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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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통해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짚어보는 책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유리작가는 탁월하다.

그의 글의 최대의 강점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에둘러 말하지 않고 논점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게 별거냐고  할수도 있는데 잡문 나부랭이라도 쓰본 사람은 안다. 그게 별거라는걸.....

나같이 몇명 보지도 않은 리뷰정도만 쓰는 사람도 글을 쓸 때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한다.

' 아! 이게 확실한가? 괜히 이렇게 썼다가 틀렸다고 지적 받는거 아니야? 아! 이렇게 쓰면 너무 과격한가? 내가 제대로 생각한거 맞나? 혹시 이렇게 썼다가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는 건 아닌가?' 등등등.... 아니 내 글을 몇명이나 읽는다고 저런 쓸데없는 걱정과 자기 검열로 글을 몇번이나 고쳤다 다시 썼다 하는거다.

그래도 자신없는 분야는 두리뭉실 쓰거나 에둘러서 뭔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다. 이 과정에서 글은 논점이 불분명해지고 재미없어진다. 

그러므로 이유리 작가가 아주 명쾌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위험부담을 다 작가 스스로가 안고 간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면에서의 공격이 예상됨에도 내 할말은 하겠다는 기개가 있는 글이다.

그래서 이 책은 멋있다. 


예를 들려고 하니 첫번째 이야기부터 심상찮다.



서양화에서 흔하디 흔한 그림이지만 이 그림의 제목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876년 쥘 르페브르라는 화가가 그림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다.

아니 비너스가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 예수의 제자 막달라 마리아라고?

신성모독으로 저 화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나싶은데 그런 일은 없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저렇게 관음증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것에 대해 이유리작가는 단호하게 그래도 됐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예수의 제자였으며 십자가 아래에서 다른 제자들이 회피했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예수의 죽음을 지켰고, 부활한 예수를 처음으로 본 이도 막달라 마리아다. 그리고 예수 사후 광야의 동굴에서 은둔 수도자로 3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기독교의 성인 반열 중에서도 베드로 못지 앟은, 아니 베드로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베드로의 심기를 어지럽혔으리라.....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들보다 더 예수와 그의 가르침과 더 가까웠다는 것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었을까?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꾸준히 폄훼되었고, 심지어는 근거가 불분명한 기록을 인용해 마리아라는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 출신으로 만든다. 심지어 59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설교를 통해서 말이다.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에서는 올랭피아 외에도 한명의 인물이 더 등장한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흑인 하녀말이다.

이 흑인하녀는 이름도 없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데 왜 그림속에 등장할까?


올랭피아는 인기 많은 쿠르티잔으로 설정됐기에 일단 미모가 출중해야 했다. 마네는 올랭피아의 미모가 돋보이려면 한눈에 비교될 많안 못생긴 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네에게 그런 여자로는 흑인이 적격이었다. 이는 마네 이전에도 백인 남성 화가들이 흑인 여성을 소비한 방식이기도 하다. - 32쪽


수많은 그림해설하는 이들이 올랭피아란 그림이 당대 부르조아 사회에 던진 도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이유리 작가는 이 그림속 흑인 여성 '로르'의 이야기를 전한다. 

장 미셀 바스키아의 그림 <올랭피아의 하녀>를 통해서....



그래피티로 유명한 장 미셀 바스키아는 

어느 날 미술관에 가서 여자 친구에게 "이곳을 봐. 흑인이 하나도 없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흑인이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야."라고 말했다.

그저 한마디 말만으로도 미술계의 인종차별의 실상을 드러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후세페 데 리베라가 그린 <내반족 소년>이라는 그림이다. 

내반족은 발이 안쪽으로 휘는 장애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이 소년의 그림은 왜 그려진걸까?

흔히 좋은 말로 이 그림은 '어려운 환경에도 삶을 긍정하는 인간'에의 경의를 표현한 그림으로 소개가 되곤 했다지만 에이 그럴리가? 1642년에 그려진 이 그림을 생각하면 정말로 물감도 비싸고 그림은 부자나 권력자의 주문이 없으면 그려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절이다. 그리고 당대의 부자나 권력자들이 하층민 소년에 대해서 저런 생각을 했을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비밀은 소년이 쥐고 있는 종이의 글자에 있다. 

"당신이 신의 사랑을 받으려거든 저에게 자선을 베풀어주세요."라고 라틴어로 적혀있는 것이다.

성격에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했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바로 그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서 저런 그림을 주문하고 자신의 선행의 증거로 삼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유리 작가의 그림 해석은 기존의 해석과 다른 면들이 많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고, 다르게 읽는데 주저함이 없으므로 역시 이 책은 끝까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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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14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멋있는 책이라니~ 막달라 마리아 그림은 그래도 한 번 본 그림이라 익숙한데 두 그림은 전혀 못 보던 그림입니다. 올랭피아가 아닌 로르에 대한 주목 참 좋네요. 그리고 <내반족 소년> 뒤의 해석이 역시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책 미니님도 언급해주셨던 책이었던 것 같은데 관심이 더 생기네요! 고리타분한 해석보다 새롭게 접근하는 이런 시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22-10-15 13:39   좋아요 1 | URL
새로운 해석을 하면서도 정말 쉽고 명확하게 얘기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에요. 이유리 작가의 다른 책을 봐도 그런 경향이 있는데 다른 책에서는 약간씩 걸리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번 책은 그런 것 없이 모든 글이 다 좋았어요. 추천합니다.

잠자냥 2022-10-14 1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부터 삐딱하니 화끈하네요. ㅎ 흥미가 갑니다!

바람돌이 2022-10-15 14:15   좋아요 2 | URL
표지의 저분 남자예요. 심지어 저 그림을 그린 화가는 저 남자분의 아내고요.
뼛속까지 여자가 되고싶어했던 저 분은 성전환수술을 몇번이나 하다가 결국 수술휴유증으로 돌아가셨다네요. 안타까웠어요.

미미 2022-10-14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말씀 이곳저곳에 공감만땅입니다. 자기검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최근 읽은 한나 아렌트 평전에서 자신을 용기있게 드러내고 현실을 겪어내는 삶에 대한
문구에 감동받은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렇게 똑똑한 한나 아렌트도 결코 쉽지 않았을
그길을 뚜벅뚜벅 그렇게 걸었구나 뭉클뭉클했어요. 이유리 작가도 그런 사람같아요.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2-10-15 14:17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는 왜 그렇게 감동적인 말만 한대요? ㅎㅎ
하긴 말만이 아니라 삶도 감동적이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다는건 어떤 경우에도 참 용기가 필요한일이예요.
이런 책을 읽으면서 내게 모자란 용기를 충전하고 있습니다. ^^

coolcat329 2022-10-14 1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바로 찜입니다. 마네의 올랭피아의 흑인하녀가 그런 의도 였다니 놀랐습니다. 제목이 왜 기울어진 미술관인지 알겠어요.

바람돌이 2022-10-15 14:18   좋아요 1 | URL
백인 남자 화가들 자신이 일부러 생각한게 아니라 하더라도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분위기가 저런 해석을 가능하게 할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인종 외에도 여러가지 차별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기울어진 미술관... ^^

희선 2022-10-15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을 여러 가지로 보는 거 좋은 거겠지요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간다니 멋지네요 그렇게 그림을 보고 글을 써서 많은 사람이 그 글을 좋아하겠습니다 끝까지 멋있는 책이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2-10-15 14:19   좋아요 1 | URL
네 끝까지 멋있는 책이었고 작가인 이유리라는 분도 끝까지 멋있었습니다. 오랫만에 이렇게 명쾌하게 얘기해주는 책을 보는 저도 즐거웠고요. ^^

난티나무 2022-10-15 0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됐기 때문에!!!!!!!!!!!!! 😡

바람돌이 2022-10-15 14:19   좋아요 1 | URL
실제로 책 안에 이유리 작가가 저렇게 썼어요. 그래도 됐기 때문이라고요. ^^

2022-10-15 0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10-15 08: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정말 근사하네요. 최근에 페미니즘 영향으로 예술 작품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우세한 듯 하잖아요. 미술 쪽이 특히 앞서가는 것 같은데 이유리 작가의 책은 그림 선정에서부터 문제 제기를 하는 것 같아요. 논점을 명확히 하는 글쓰기에도 큰 점수를 주신것 기억해 둘게요.
자기 검열 이야기하셨는데, 저도 그런 생각 많이 하거든요. 읽는 사람도 적은, 우리 조용한 알라딘서재에 독자리뷰일 뿐인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자꾸 검열하거든요. 저도 바람돌이님과 같은 생각 여러 번, 지금도 자주 하는 생각이라 너무 공감됩니다.

바람돌이 2022-10-15 14:30   좋아요 2 | URL
서양의 유명 미술관 가면 아는 그림보다 모르는 그림이 더 많잖아요. 사실 그 미술관에 들어올정도면 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일텐데 우리가 잘 모르는거죠. 이 책에서 이유리작가가 제시하는 그림들은 처음 보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는 나름 미술관도 많이 가고 미술사 공부는 좀 해서 이런 저런 그림을 많이 봣다고 생각하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이유리 작가의 그림선정이 굉장히 신선햇어요.
어떤 글이든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검열을 피할 수 없다고 봐요. 다만 그 자기검열을 어느 지점에서 하고 있는지는 항상 돌아보고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할뿐요. ^^

그레이스 2022-10-15 2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유리 작가의 해석은 정말 달라요.
그림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죠.
강하지않은 억양으로 설득해요
멋있는 책이예요

바람돌이 2022-10-17 14:16   좋아요 1 | URL
그림 좋아하시는 그레이스님이 동의해주시니 더욱더 제 기분이 업됩니다.
아이 참 제가 쓴 책도 아닌데 제가 왜..... ㅎㅎ
어쨋든 중요한건 이유리 작가는 앞으로 책이 나오면 다 보게 되겟구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