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페미니즘 혁명에 대해 우리가이야기하기 시작하고 평등한 권리를 넘어 남성성의 개념이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문화 전반적인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대개 진심으로 우리 편이 되어주지않았다. 우리 대부분에게 이 같은 연대의 실패는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선명하고 고통스럽게 일어났다. 남성 동지들은 특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생각과 여성이 자신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성차별적 사고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가부장제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특권을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성차별적 사회화를 정당히대면하기를 거부하고 정서적·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기를선택한 것은 또 다른 배신이었다.
- P96

우리는 새로 얻은 평등권, 일자리, 돈, 그리고 권력에서 더 나아가, 다른 지배 권력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 역시 남녀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실패했음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우리는 진정한 남녀 간의 사랑은 양쪽 모두 성적 문제에서 가부장적사고에 도전하고 바꾸려 할 때에만 가능함을 모두에게 거듭 상기시켜야 했다. 사랑에 관해 계속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일상에서 지배와 종속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유혹하는 벽을 부수어야 한다.  - P103

따라서 남녀 모두가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믿는 것만이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는 상호적 사랑을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다.
- P132

낸시 프라이데이는 미의 권력』에서 특히 모녀관계를 통해 이상화된 여성성을 벗겨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모성적 사디즘에 관해 기록한다. 소녀들이 임마의 딸이지만 엄마의 복제품이 아닌 개별적 인간으로 키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여성의 반감을 살까 봐 두려워하며 승인을 갈구할 것이다." 모성적 사디즘과 그것이 여성의 자존감에 가한 충격, 그것이 사랑에 대해 알 능력을 억제한 방식은 금지괸 주제로 남아있다. - P134

이제 여성들이 사랑의 사회적 재평가를 요구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사랑을 저평가하게 된 구체적인 역사를 자하는 의지에서 시작해야 한다. 또한 그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라는 성차별적 전형에 대한 철저한 거부와 아무리 어렵고 많은 희생이 따르더라도 사랑의 작업을수행하겠다는 확실한 의지에 근거해야 한다.
- P137

결코 나를 떠나거나 배신하지 않을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여성인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서사랑의 탐색은 시작되어야 한다. 이 여정은 친밀감과 진정한 사랑의 본질에 대한 기존의 사고와 믿음을 재검토하는데서 출발한다. 여성이 천성적으로 사랑에 적합한 존재라는편견을 버리고 사랑을 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을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주체성과 개인적 성장, 정서적으로 열린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 P138

우리는 자신이 신체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를 원한다. 심지어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건 최악의 자기파괴 방식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기대하듯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있는 바로그곳에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살을 사랑할수록 다른 사람 역시 그 너그러움을 축복할 것이다. 여성의 몸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토대로 자신을 향한 더 깊은 관계를, 마음과 몸과 정신을 잇는 사랑의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P155

성장기에 교회 예배 시간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성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네 영혼은 안녕한가? 너는 자유롭고 온전한가?"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면 영혼의 목소리에귀를 기울이게 되고, 더는 버려질까 봐 혹은 무시당할까 봐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명료한 그 모습은 우리 마음의 평화이자 힘의 근원이다.
이런 인식 위에서 우리는 연대하고 축복하며 함께 사랑을탐색할 수 있고, 거기서 우러나는 달콤함을 향유할 수 있다.
- P176

의미 있는 변화를 얻어내려면 상실을 마주해야 한다.
아무리 그래야만 하는 것이더라도 뭔가를 포기할 때에는언제나 위험부담이 있다. 그럴 때 보통 우울증을 앓곤 한다.
- P178

스스로를 사랑하는 여성은 결코 부정적 카테고리를힘의 상징으로 포용하지 않는다. 때로 적극적인 행동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쌍년으로 비치는 상황이 오더라도, 해방된 여성은 발전적인 대응과 무례한 행동 사이의 차이를 안다. 그런데 실로 누구도 성공한 쌍년이 사랑을 하는 사람이리라 예상하지 않는다. 자기표현을 중시하고 권력과 성공을원하는 여성들은 사랑에 대한 지식이나 욕망이 부족하다는추정 때문이다.
- P187

가부장제가 여성과 남성이 서로 맞붙어 겨루게 한다는사실은 여성들에게는 대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자들은남자를 처음 만나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는 그가 위협적인지 아닌지를 빠르게 판단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처음으로 나타내는 반응이 두려움 혹은 안전에 대한 걱정인 한,
여성이 진심으로 남성을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 P215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은 나이를 막론하고 페미니즘 사상과 실천을 향한 남성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성차별에 반대하는 좋은 남자들이 자신의 존재를알리고 목소리를 낼수록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고요한 감옥에 갇혀 있는 남자들에게서 돌아설 것이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전유물일 때 가부장적 문화는 별로 타격을 입지 않는다. 남성이 더 많이 개입할수록 페미니즘 혁명은 가부장제를 끝낼 수 있는 위협이 된다.  - P234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이 자유롭게 낭만적 우정‘
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안정적이고 헌신적인 평생의 플라토닉한 관계를 주된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 관계야말로 여성이 완벽한 짝을 찾아내지 않아도 여전히 진실되고 헌신적인 사랑에 관해 알 수 있게 해준다. 결국에는 이런 사랑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 P263

여성이 사랑을 단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꼭 짝을찾는 관습적인 방식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과 세계의관계에 대한 더 진실된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 P287

그 길에서 우리는 소울메이트, 진정한 친구, 삶의 동반자를 찾을 것이고 연대를 찾을 것이다. 홀로 춤을 추기보다사랑의 원 안에서 춤추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걸 아직 모르는 여성들에게 그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은 위대한 지혜가 주는 선물이다. 낭만적 파트너나소울메이트들도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거기에 즐거움을더하는 것은 이미 우리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사람들,
우리가 의지하고 또 우리에게 의지하는 이들과 나누는 영원한 사랑의 기쁨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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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소녀들은 부모에게는 사회에서든 사랑받을 권리는 스스로 얻어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배운다.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이다. 이것이 가부장적 사고와가치를 배우는 학교에서 여자들이 받는 첫 가르침이다. 너희는 사랑을 얻어내야만 한다. 여자들은 그 자격을 타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치는 언제나 타인, 외부의 누군가가정의해줄 것이다.
- P12

우리는 나이 듦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사랑에대해 생각하는 방식 또한 바꾸었다. 페미니즘 덕분에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을 때, 한동안 계급적 특권이든 교육 혜택이는 덕을 본 건 일부 여성에 불과했다. 대체로 시류를 잘알았던 부류는 종종 예외적인 혜택을 얻었고, 기대 이상으로 성취했다. 페미니즘은 한편으로 이들을 높이 띄웠지만성과는 대개 일부 여성에게 한정되었으며, 평범한 대다수여성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 듦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은 널리 확산되었고, 그에 따라 몸에 대한 성차별적 관념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 P23

사랑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은 여성들이 삶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그럼으로써 여성해방운동이 추구해온 완전한 자아실현을위한 모든 여성들의 자유를 약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페미니스트 사상가와 활동가들이 사랑과 로맨스에 대한 예전의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갈가리 찢어버린 것은 물론 옳았지만,
소녀들과 성인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희망과 약속으로 가득한 새로운 자유의 이상이 필요했다.  - P38

나는 내 이전 세대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대립되는 두 정체성, 즉 독립적이며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이 되려는 욕망과 정착하고 길들여지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었다. 내 어머니 세대가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고 싶은 욕망과 개별적 존재로서의 자기표현에 대한 욕망사이에서 분열되었다면, 나는 내면의 독재자를 따르고자 하는 욕망과 그런 자아에 대한 불신 사이에서 분열된 것이다.
- P52

 사랑을 찾는 여정에서 나는 자유를 향한 길을 발견했다.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곧사랑을 배우는 첫 단계였던 것이다.
- P58

완전하게 사랑한다는 건 우리의 성적 권리를 존중한다는의미였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성의 성적 거부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없다는 진실을 이성애자 여성들은 지금까지도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바로이 때문에 나는 사랑과 성에 대한 페미니즘 논쟁도 끝났다.
고 본다. 이성애자 여성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가 급진적페미니스트조차도 - 상대 남성을 언짢게 하거나 사이가 멀어질까 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성은 굳이 반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성이 이따금씩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괜찮아도, 일정 기간 이상 거부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 P72

1970년대 말에 우리는 자유를 찾았지만, 사랑은 여전히 구하는 중이다. 우리는 새로이 탄생한 자유여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을 찾고 싶었다. 이성애자이건 동성애자이건, 문란하건 순결주의자이건, 우리는 자유로운 여성으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그리고 우리 같은 여성이 사랑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를 포함할 수 있게끔 여성해방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 P74

우리 모두는 직장과 경력, 돈이 사랑보다 중요한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에 따른 실망감을 이야기할 공간은 없었다. 여자들은 일을 통해 온전한 성취감을 느끼지못한다거나 친밀한 사적 관계에서 충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는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낼 수 없었고, 사랑 없는 삶에 대해말하기를 두려워했다. 공식적으로 대부분의 여성은 사랑보다 권력이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했다. 사랑을 다시 어젠다로 옮겨오려면, 일과 사랑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여성은 스스로의 거짓을 벗어야만 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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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서지현 검사를 만났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대형 참사에 대한 어젠다 지키기는 차라리 단순한 것일 수 있었다. 거기엔용기만 있으면 되었다. 미투는 복잡했다. 젠더 문제였기 때문이다.
용기만 가지고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때로는 도가 지나친 공격들에 모두 대응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가해자의 가족들은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했다. 가해자가 대개 알려진 사람이다보니 아무죄도 없는 그 가족들이 겪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아팠다.
- P198

안 전 지사는 결국 그날 법정 구속되었고, 2019년 9월 9일에 대법원에 의해 3년 6개월의 형을 확정받았다.
아마도 이 사건의 판결은 위계에 의한 위력의 범위와 정도를 판례로 규정하는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이 판결은 분명 진보한 것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의승리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의 변화는 조화로움 속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 P205

지금도 미투 보도에 적극적이었던 「뉴스룸에 대한 일부의 비난은 계속된다. 이 장에서 말하고 있는 어젠다 키핑은 그 의도가본질적으로 선한 것이라 해도 현세의 갈등에 의해 얼마든지 폄하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 P206

사르트르는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인 우리에게어느 길이든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그가 가고 싶은 길이면 어떤 길이든 선택해서 갈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해 그는 책임을 져야 한다.
- P238

지금에 와서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더 있었다. 이례적으로 민정수석에서 곧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한 경우의 당위성을 더 따져봤어야 했다. 검찰개혁의 완수를 명분으로 한 그 임명이 결국 무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짚어냈어야 했다. 동시에 검찰의 전광석화와 같았던 수사가 결국 검찰 기득권의 보호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더 강하게 전해야 했다. 또한 검찰개혁이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면, 왜 그런 것인지,
지난날 검찰의 부조리와 권력지향의 행태들을 좀더 일일이 짚어냈어야만 했다.
- P283

그런데 역시 문제의 핵심, 내 고민의 핵심은 그런 상황에서 언론, 즉 저널리즘의 역할이었다. 내 나름의 결론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이렇다. 정치·사회적으로 오랜 억압구조, 혹은 모순의 구조 속에서 일어난 현상을 정파적 이해관계를떠나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옳은 저널리즘이라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만일 그런 저널리즘을 막는 세력이 있다면 이를 돌파하기 위한 운동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말미에 태어난, 내가 속했던 언론노조들은 그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저널리즘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매진한다면, 그것은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 운동 과정에서 나오는 사실들을 보도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저널리즘의 범위를 벗어나 ‘지지‘ 하거나 ‘지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 P288

그러니 언론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체제와 현상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것을 굳이 우리가 쓰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진보‘다. 의심은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과정은 극단적이어선 안 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합리적인 자세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있어야 한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지혜‘도 아마 그것과 맥이 같으리라고 본다. 나는 ‘합리적 진보‘를 그렇게 정의한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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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기사 가치에 따라 시청자나 독자들에게 비용을청구하고 싶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를 써야 하는 시대가올 것이다. 그것은 언론사나 그에 속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저널리즘을 ‘정치운동‘과 맞바꾸어 편 가르기에 몰두하거나, 혹은 ‘끝없는 상업성에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아는 정론 에복무하는 것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시대가 온다고어떻게 장담하느냐고? 그러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합리적 시민사회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것과 같다. 그다음은 정말 암흑이다.
이 책이 주로 다룬 것은 저널리즘의 한 방법론으로서의 ‘어젠다 키핑 (Agenda Keeping)이다. - P9

삼성 문건을 보도한 날, 뉴스제작부의 기자 이세영이 늦은 저녁 자리에서 내게 말했다.

"선배,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마십쇼.."

그에게 내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처럼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변한다는 건 그때까지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인데 그게 어디쉬운 일인가. 나는 변한 다음 비난받는 것이 무서워서라도 잘 못 변한다.
- P27

그마저 철수하면 가족들이 너무 고립된 느낌이 들 것같아서 도저히 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목포신항을 떠난날도, 마지막 실종자 가족들이 세월호 곁을 떠나고 이틀 뒤였다.
그 여덟달 가까운 기간 동안 기자들은 현장에서 100건이 훨씬 넘는 리포트를 보내왔다. 현장에서의 마지막 리포트는 공중에서 촬영한 세월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해서 팽목항에서의 287일, 목포신항에서의 234일, 모두521일간의, 아마도 전무후무할 현장 체류가 막을 내렸다. 그 시간들은 언론이 왜 존재하는가를 깊이 고민하게 했던 시간들이었다.
또한 언론이 단지 뉴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이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들이기도 했다. 굳이 어젠다 키핑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좀더 많이 부끄러웠을 것 같다.
- P70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이 비극은 한국의 현대사를 바꿔놓은 분수령이 있다. 그 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정권의 부침沈)은 사실 한 장면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 정권의 패망과 또 다른 정권의 출현은 단지 그 흐름 속의 필연적인 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 P90

요즘도 회사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진다. 태블릿PC는 조작됐다는 것이다. 무려 5년이 지나도록 저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이유는 앞에 말한 대로이다.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그들은적어도 사회적으로 존재하기 어리울 것이다. 즉, 이제는 ‘태블릿PC 조작설‘이 그들만의 ‘존재의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 P144

그럼에도 평자들이 또다시 우리의 ‘태생적 숙명‘에 대해 논하려 한다면 굳이 논쟁하지 않겠다. 수많은 논쟁의 가운데 있어본 경험에 따르자면 때로 ‘현실은 버라이어티하고, 논쟁은 앙상하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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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환경에서도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레바논이 전쟁 중이라 해도 사람은 살아야지요. 아이들에게 예방접종도 해야 하고요. 나는 이스라엘이고 팔레스타인이고 따지고 싶지 않군요. 사람이 살아야 싸우기도 하는 것 아닙니까. 난 최소한 사람을 살리는 작업을 하고있는 겁니다. 의사니까요." - P35

하지만 이 마드라사에 있는 학생들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자란단다. 다섯 살 무렵에 이곳으로 와서 이슬람 교리와 미국에 대한 적개심만을 배우지. 이 학생들이 자라면 국경 지대나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탈레반 주축 세력이 되는 거야.
만약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이들이 전쟁고아가 되었을까? 이들이 전쟁고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과격한 탈레반이 되지도 않았을 테지. 이 학교에서 새로 배출되는탈레반은 영화 〈괴물〉에 나오는 돌연변이 괴물처럼 미국이 만든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 P66

체첸의 독립으로 막대한 석유 이권을 잃고 싶지 않았던 러시아는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것을 눈감아주었단다. 그 대신 "체첸의 반군 지도자가 국제 테러 조직과 연관돼 있다"며 체첸을 탄압하는 데 대한 미국의 동의를 얻어 냈어.
이로써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러시아군은 거리낌 없이 체첸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냉전 시대에 라이벌이던 미국과러시아가 이렇게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된 것은 중동의 석유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미국과 체첸의 석유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이란다. 미국이 러시아의 체첸 인권 탄압을 외면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야. - P116

체첸이 다시 세상에 등장한 건 2012년부터야. 시리아에 내전이 벌어졌는데 그 혼란을 틈타 IS(이슬람국가)라는 무장 조직이 이곳에 들어간 거야. IS는 처음에 시리아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하더니 자꾸 외국인 전사들을 불러 모았어. 그중에 체첸 전사들이 가장 먼저 IS와 시리아로 들어왔단다. 체첸 사람들은 키도 크고 얼굴도 강인하게 생겨서 아랍 사람들과는 외모가 많이 다르단다.
체첸 전사들은 그동안 러시아와 싸우며 길러 온 전쟁 기술을 선보이며 IS 전투의 최전선에 등장했지. 우리가 들어 본 IS의 잔인한 수법은 거의가 체첸 전사들이 IS에게 전해 준 거야. 인질 참수나 잔인하게 사람 죽이는 방법 등으로 체첸 전사들은 다시 유명해졌어. 체첸 전쟁은 시간이 흐르며 이렇게 괴물을 만들어 낸 거야 - P123

지금 나는 안전한 나라에 사니까 나하고 상관없다고 언제까지장담하지는 못해, 시리아 사람들도 체첸 전사들이 자기네 나라분쟁에 와서 저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
면 체첸 전쟁을 남의 나라 일로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겠지.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었어. 지금 시리아 전쟁은 다시 그 불똥이 유럽으로까지 튀고 있어. 유럽의 난민 문제를 불러오거나 IS 테러의온상이 되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단다. 우리가 다른 나라 분쟁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하는 이유는 전쟁을 미리 막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같은 지구에 살면서 슬픈 비극이 자꾸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하잖아. 괴물이 된 체첸을 보며 엄마는 그 교훈을 깊이 새기게 되었어. 이제 또 다른 괴물이 안 나오게 우리가 다른 세상 소식에 관심을 좀 더 가져 보자.
- P124

침묵하면 때론 공범이 될 수도 있어. 나는 그 죽음에 대한 침묵이 후세인의 만행에 동의한 것이나다름없다고 생각한단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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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26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

바람돌이 2021-08-26 15:34   좋아요 2 | URL
저는 페넬로페님 리뷰보고 이 책을 알게 돼서 읽고 있어요. 저자가 자신의 아들에게 얘기해준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쉽게 정리를 굉장히 잘하셨어요. 지금 재밌게는 보고 있는데 문제는 맘이 많이 아픕니다. 그래도 저자의 말처럼 침묵이 범죄의 공범이므로 열심히 읽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