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굴레 8장 - 비즈니스

일본 기업들이 한 때 세계 시장을 지배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 지배는 끝났고,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의 수출형 대기업들은 약화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얘기하지만, 실제로 일본에서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소비자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부품산업, 정밀화학 등 첨단산업들의 부품이나 소재를 취급하는 기업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의 생산성 향상이 더딘 것은 종종 비효율적인 서비스 분야의 탓으로 여겨지곤 한다. 

일본 경제의 문제점은 잘되고 있지 않은 분야에서 잘되고 있는 분야로 인력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효율성을 포기햇기 때문에 일본 대부분 국민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보장이 확보되어 왔다는 것이다. 현재에서는 효율성을 포기한 대가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일본 경제에 던지고 있다. 

현재의 일본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고용관행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의존도 강화, 블랙기업이라는 회사들이 정직원 자리를 주는 것처럼 가장해서 청년들을 뽑고 일정 기간후 해고를 반복하는 양태 등이다.이것이 일본 사회 내부의 종신고용이라는 고용관행을 뒤흔들면서 일본 사회가 그토록 중시하는 사회적 단결을 잠식하고 있다. 

다음으로 일본 경제의 문제점은 세계화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해외파견 일본 회사원들은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결성하고 그 안에서만 생활한다. 현지에 있는 좀 더 현지 친화적인 다른 일본인이라는 역량을 활용하지 않으며, 현지 커뮤니티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글로버러 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집단지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다. 또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외국인을 앉힐 수 잇는 포용력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일본의 기업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는건 일본 기업문화의 면에서도 역시 곤혹스런 일이다. 사무라이 문화에서부터 유래된 일본의 기업문화는 자신이 속한 회사나 상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며, 일본의 엘리트 지배층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친다. 그것이 설령 엄청난 부패의 증거라 할지라도..... 

이는 일본이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에 대처해나가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한다. 좋은 일본인은 자신의 조직, 사람을 배신하기보다는 '주주 가치'나 '공공의 선'같은 추상적인 원칙을 위반하는 쪽을 택한다. 


일본의 굴레 9장 - 사회문화적 변화

일본만의 독특한 창의성의 기원을 흔히 모순과 모호함을 참고 견디는 능력에서 찾는다. 예술 또한 같은 역할을 한다. 전후 일본문화의 상징이었던 샐러리맨은 야구나 TV프로그램같은 일본의 공식적인 문화에서는 이들의 출세에 필요한 덕목을 끊임없이 찬양하는 쪽으로 특화되었다. 그러나 만화를 포함해 좀 더 불온한 장르에서는 샐러리맨을 나약하고 무책임하며 절대 이룰 수 없는 섹스와 돈에만 관심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샐러리맨은 스스로가 자기 목숨을 바쳐도 좋을 대의(회사)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거대한 산업속 교체가능한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자각도 함께 안고 살아야 했다. 이런 모슨은 일본에 속으로는 울면서 겉으로는 의연한 척하는 정서와 닿아있다. 이런 부조화는 일본 문화 전반을 규정짓고 이런 모순과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점점 필수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여성들에 있어 새롭게 나타난 갸루 현상이 말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일본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행동방식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에 닿아있다. 또한 전통적인 오바짱의 이미지를 깬 오바타리안이라는 아줌마 부대, 그 반대에 대형 폐기물을 뜻하는 은퇴한 남편을 가리키는 소다이고미 단어의 등장, 황혼이혼의 증가, 일본 전통적 남성상과 배치되는 초식남의 등장 등 일본 사회는 이전에 보지못했던 새로운 유형들의 인간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전통적으로 일본 남성들이 그들의 사회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던 동류의 남성집단(군대적 위계질서와 자기희생을 강요하던)의 의미도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지도층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는 것 역시 눈에 띄는 변화다. 특히 이는 후쿠시마 원전의 파괴와 더불어 전개돈 사건들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졌다. 수많은 일본인 개인은 실수나 혹은 더 큰 문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책임지려는 훌륭한 태도를 보이지만, 이것이 조직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조직은 실수하지 않는다. 즉 조직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한때 세계 시장을 지배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 지배는 끝났다.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의 수출형 대기업들은 약화되었다. - P327

대부분의 사람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을 이 회사들이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 우위를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정밀화학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의 전 세계 점유율을 합하면 70퍼센트가 넘고, 탄소섬유는 65퍼센트가 넘는다." 애플의 아이폰을 뜯어보면 일본 기업의 이름이 들어간 부품은 많지 않다. 조그맣고 화려한 기계인 아이폰은 미국에서 디자인해 설계되고, 중국에서 생산되어, 한국과타이완의 부품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 중의 30퍼센트가 넘는 부가가치는 일본 기업으로부터 창출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이런 부품들을 이루는 핵심 소재를 일본 기업이 만들고, 이런 부품들을생산하는 공장의 설비를 일본 기업이 공급하기 때문이다. 보잉787 드림라이너에서도 일본 기업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비중은 비슷하다. 보잉사와 에어버스사 사이의 경쟁은 유럽 기업과 미국 기업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그 생산과정과 부가가치의 구조를 뜯어보면 프랑스 독일 연합과 미국 일본 연합 간의 기술구조technostructure가 정면 승부를 벌이고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 P330

일본의 비즈니스가 봉착한 문제에 대한 그간의 분석들을 보면, 일본에는 잘되고 있지 않는 분야에서 잘되고 있는 분야로 인력과 자본을 효과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 P335

비정규직들은 정규직과 사실상 똑같은 업무를하면서 월급은 그들의 반밖에 받지 못했다(일본 회사들이 정사원에게 먼 미래까지 지급해야 하는 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더하면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곧 일본 산업 시스템의 충격을 흡수하며 착취당하는 대상이다. 과거에는 명목상으로만 독립법인인 중소 하청업체가 하던 그 역할을, 이제는 과로에 시달리는 저임금 비정규직이 하고 있을 뿐이다.
- P341

이러한 구조는 전후 일본에 그토록 중요했던 사회적 단결을 잠식하고있다. 안정된 고소득 직업을 장악한 소수의 귀족 노동자들이 절대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양극화된 사회에서도 일본의 사회적 단결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P342

하지만 이 모든 성공에도 일본의 비즈니스는 세계화의 한 가지 중대한 측면에서 뒤처져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지위에 외국인을 앉힐 수 있는 포용력이다. 일본 회사에서 외국인의 부재는 중간 관리자 단계에서도 임원 단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 P348

수 세기 동안 일본의 지배 계급이었던 사무라이들은 군주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충성만이 궁극의 미덕이라는 사상에 경도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일본 경제의 최상층에자리한 대부분의 기업은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메이지 정부 초기에 설립되어 전직 사무라이들에게 주어졌던 회사들을 어떤 형태로든 직접물려받은 조직이다. 올림푸스의 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체계에 녹아 있던 문화적 특징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작동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충실한 병사는 절대로 자신이 속한 회사나 상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며, 일본의 엘리트 지배층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친다.
- P354

그보다 아마 더 심각하면서충성·유착의 행동 규범과 직결되어 있는 훨씬 더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일본이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에 대처해나가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시스템은 실패 혹은 ‘창조적 파괴에 대처하는 제도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 P355

한국의 기업들이 일본의 비즈니스를 크게 위협하는 세력으로 떠오른것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은 환율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1. 한국에는 국제화된 엘리트가 더 많다. 해외에서의 거주 경험과 영어 구사능력은 ‘한국적이지 않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한국의엘리트 계급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에 가깝다. 한국 재계와 학계의지도자들은 대부분 서구의 일류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사회에서 지배층 엘리트가 되는 데 있어 도쿄대학 졸업장이 하는 역할을, 한국에서는 아이비리그(그리고 MIT와 스탠퍼드)가 하고 있다고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다.
2. 한국의 경제·정치 기관들은 훨씬 더 명확한 권력 구조와 뚜렷한책임 소재를 갖고 있어서,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아이폰에 대한 반응으로 삼성이 애플을 단숨에 제치고 세계 제일의 스마트폰 판매사가 되는 동안 일본의 IT 업계 대부분이 우물쭈물하고 있던것이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현대자동차가 끈질기게 따라잡고 있는 것을 보라. 한국의 재벌들은 국내에서는소수에 의한 독재 성향으로 인해 비판받고 있지만, 누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는지가 한눈에 명확하고, 그래서 일본 기업 대부분에 만연한 집단사고보다 저만치 앞서가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3. 마지막 요소는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은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위기상황에 놓여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 P360

도쿄전력은 일본 기업들의 전반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축소판과도 같다. 후쿠시마 재난 현장의 수많은 도쿄전력 직원은 사고 직후 긴박했던 며칠 동안 영웅적이고, 글자 그대로 자기희생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반면 도쿄전력의 경영진은 명백한 직무 유기를 해오고 있었고 결국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 P365

야구나 TV 프로그램 같은 일본의 공식적인 문화가 샐러리맨의 출세에 필요한 덕목들을 찬양하고 있었던 반면,
방대한 망가(만화)를 포함해 좀더 불온한 문화 장르에서는 샐러리맨을나약하고, 무책임하며, (절대 이룰 수 없는 섹스와 돈에만 관심 있는 존재로 묘사했다. 샐러리맨들은 회사와 일을 위해 자기희생을 불사할 정도의 열정을 보여야 했을 뿐 아니라, 이것이 핵심인데, 거기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그 열정을 스스로 믿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심리28상태를 표현하는 일본 단어가 마코토誠다. 마코토는 보통 ‘진정한 sincere‘
이라고 번역되지만, 서양에서 이 단어를 쓸 때처럼 정말로 믿고 있지는않으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과 같은 어감은 들어 있지 않다. 그 대신 일본어의 마코토에는 개인의 내적인 감정을 사회의 외부적 기대와 일치시키기 위해 강제로 끼워 맞춘다는 느낌이 있다.
- P372

 하지만 이 모든가루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특징은 전통적으로 일본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행동 방식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이다.
- P377

일본의 문화와 사회는 오랜 세월 동성 간의 집단,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으로 이루어진 집단들을 중심으로 작동해왔다. 수 세기 동안 일본 남성들은 혈연관계가 없는 다른 남성들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정서적인 지지와 경제 · 정치적인 연대를 얻을 수 있었다.  - P389

하지만 이는 곤란한 문제를 일으킨다. 일본의 가장 뛰어난 강점 중 하나는 사회적 결속력이다. 단합과 상호 신뢰와 책임감에 있어 거의 전 국민적으로 통일된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보통 남성들이 이제더 이상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랄 수 없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런 가치들이 유지될 수있을 것인가. 남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결혼과 가정이라는 개념이 무너지면, 남성 집단은 다시금 지배적인 사회 조직으로 부활한다. 하지만 미래의 남성 집단은 상당수의 서구 사회에서 그랬듯 야만스럽고 무례한 형태로 변할 수 있다.  - P402

일본 관료사회에서는담당 부처의 명예와 해당 산업을 지탱하는 기업들의 안위가 일반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곤 하다.  - P407

수많은 일본의 개인은 실수나 혹은 더 큰 문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책임지려는 훌륭한 태도를 보여준다. 문제를 일으키고도 나서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호사 뒤에 숨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미국인 다수의경멸스러운 행태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조직‘으로 넘어오
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P408

이처럼 조직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일본에서 제도적 협약이라는 것을 둘러싼 신성함에 가까운 아우라에 그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장에서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의 제도적질서를, 이의 제기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울인 의도적인 노력에 대해 얘기했다. 이들은 신성한 존재가 신성을 대신해 제도적 질서를 만든 것이 아니라(왕권신수설), 제도적 질서가 신성 그 자체의 발현인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제도의 신성성은 막부가붕괴된 이후에도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메이지 정부에 들어서는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민족주의 국가를 건설해 전 국민을 동원하는 데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메이지 정부는 그렇게 해서 홉스주의적 약육강식이 난무하던 19세기 말의 세계질서에서 독립국가로 살아남으려고했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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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성장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

1980년대 고도성장은 일본의 관료적 집단지성이 목표로 삼을 새로운 산업을 파악해내고 공략하는데 거의 실수가 없었다는 점. 어쨌든 일본의 관료집단이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고, 또한 기업에 필요한 자금은 상환의 염려 없이 꾸준히 조달되었고, 집단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살인적인 노동강도라 할지라도 - 하도록 훈련되어 있는 고학력 노동자층이 존재한다는 것에 기인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일본이 지불한 것은 먼저 일본 문화의 질이 하락하고 저속화 되었다는 것이다. 교토타워로 상징되는 교토와 같은 오래된 도시 풍경의 파괴, 삼림들이 파괴되고 일본 삼나무의 숲으로 모두 대체되어 버린 것(이 나무는 내가 알기로 봄철에 엄청난 꽃가루를 뿌려서 알레르기 환자를 엄청 양산해내고 있다고 한다), 해안선의 절반 이상은 거대한 콘크리트 방파제의 벽이 점령해버린 것 등등이다.  대기업 샐러리맨들은 그들의 삶이 워낙에 강한 노동환경으로 팍팍해져버려 더 이상 인간의 조건의 질문을 던질 여력이 없어지고 그저 스트레스를 잊도록 응원해주는 오락들을 향유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른바 샐러리맨 문화의등장인데 익히 알고 있는 퇴폐문화의 발흥, 일본의 야구에의 열광(일본 야구 시스템은 대학 시스템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 도쿄대학교에 상응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독주, 고시엔을 통한 선발과정, 팀플레이어를 최고로 치는 문화 등등) 이 그것이다. 

또한 고도성장기에 일본의 여성들은 한번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거의 유일한 집단이다. 적당한 전문대를 나와 OL을 거쳐 적당히 전도유망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이 회사의 노예로 잡혀 주7일노동을 하는 동안 집안경제와 자녀교육, 시부모 봉양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전형적인 일본 여성의 삶이다. 결국 여성들이 기댈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상은 보통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여성들인데 이 세계는 일본 샐러리맨 세계의 복사판이다. 대표적인 사친회를 봐도 일본의 다른 모든 조직에 나타나는 특징 - 겉으로 끝없이 강조하는 화합과 협력 뒤에 숨어있는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수동적 공격 성향(고도로 계산된 비방 전술) 등 말이다. 그러나 고도성장 이후에 와서는 여성의 4년제 대학 입학이 늘어나고, 이들은 노골적으로 이들을 차별하는 국내 회사가 아니라 외국계 회사에 취업하기 시작하며, 정해진 길을 따라 결혼하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증가한다. 그것의 결과는 일본 출산율의 붕괴로 이어진다. 


7장 경제와 금융

아 이부분 어렵다. 경제만 해도 어찌 어찌 맥락을 파악하겠는데 금융이 들어가면 미치겠다. ㅠ.ㅠ

일본의 고도성장기 무제한적인 대출 - 심지어 대출을 하면 이자를 오히려 대출자에게 주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은 두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의 토지가격은 절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과 관료기구인 재무성이 부동산과 주가를 부양할 수 있고, 재무성 감독하의 모든 금융기관을 보호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체를 찰떡같이 믿는다면 마이너스 대출도 가능하겠구나 싶기도 하다.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성장가능성이나 기술 이런 것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담보로 받은 부동산이 절대 하락하지 않고 계속 오를거라고 생각하면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또한 이것을 국가기관이 보장한다는데 말이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미국과의 무역마찰, 환율 조정, 선진기술과 제조업에서 자신들이 절대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부한 것이 환상으로 드러나는 현실 등으로 인해 결국 버블의 폭발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이 부분은 정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이 더 많았으므로 일단 패스....ㅠ.ㅠ



이 모든 것은 고도성장의 제도들이 예상대로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의 관료적 집단지성은 목표로 삼을 새로운 산업을 파악해내고 공략하는 데 거의 실수가 없었다. 기업에 필요한 자금은 상환의 염려없이 꾸준히 조달되었고 집단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하도록 훈)련되어 있는 고학력 노동자층이 존재했다. 일본 기업들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다. 노동 강도에 대한 요구는 끝이 없어 보였지만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어 있었다.  - P248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는 일본 문화의 질이 하락하고 저속화된다는점이었다. 예술과 문학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도 그랬고, 더 넓은 의미에서도 그랬다. 이런 것은 산업 공해에 비하면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되돌리기는 더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눈에 매우 잘 띄고, 수식어를 일부러 고르자면 구체적인concrete‘ 사례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훼손되어가는 교토의 경관이었다.  - P249

하지만 대기업 샐러리맨들의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면서, 인간의 조건에 질문을 던지던 이런 예술적 탐구들은 점점 뒤로 밀려난다.
그 대신, 회사 일과 사회적 스트레스를 잊도록 응원해주고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오락들이 사람들을 잠식해갔다.
- P251

일본 사회에 샐러리맨 문화를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미국에서 수입해온 스포츠인 야구였다.  - P254

고도성장기 일본의 야구 스타들은 전형적인 팀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단 하나의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었으며, 주어진 연봉을 받아들일 뿐 단 한 번도 협상하지 않았다. 일본 야구의 연습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을 발전시키는 것보다는 전반적인 노력이나 인내를 강조했다.  - P255

PTA에는 일본의 다른 모든 조직에 나타나는 특징이 다 드러나 있다. 겉으로 끝없이 강조하는 화합과 협력 뒤에숨어 있는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수동적 공격 성향 passive-aggressive‘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새로 해야 할 만큼 고도로 계산된 비방 전술 같은 것말이다.  - P263

일본은 거의 모든 주요 산업을 이미 제패했거나 거의 제패하면서, 세계 산업들의 본사가 일본에 모여 있는 본사 경제 headquatters economy‘로서의 위상을 구축하고있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할 시점이었다. 일본은 미국에 협력해 양국 환율의 재조정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경제에서 수출 이외의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결국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다.
- P284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충격이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본의 핵심 권력층은 일본이 전쟁의 폐허로부터 ‘기적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던 주원인이 일본이 제조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일본의 ‘충격은바로 이러한 이해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일본이 전쟁에 졌던 이유가기술력이 부족해서였다고 생각했다. 미군정이 끝나고부터 일본은 거대산업국가를 건설하고 완벽히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 P295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를 아마도 가장 당황케 했던 것은 선진기술과 제조업에서 거의 달성한 듯 보였던 일본의 절대 우위, 자부해 마지않던 그 질대 우위가 알고 보니 그게 과장되이 있었거나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었다.
- P305

일본에서 과세되지 않는 소득의 가장 큰 부분은 농민, 개업의와 같은자영업자, 종교단체, 주로 건설회사와 같은 중소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 P319

일본은 이제 벌써 15년 이상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런 장기적인디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경제 성장에는 분명히 좋지 않다. 하지만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인해일본 정부는 채권 시장을 붕괴시키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적자 재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 P320

왜냐하면 기업들이 국내에서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어차피 은행들이 너무 겁을 먹어서 대출을 해주지도않았지만), 기업과 가계 저축의 대부분이 국채 및 정부에서 발행한 기타금융상품을 사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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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1-29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반쯤 보셨군요 일월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일월에 뭐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네요 늘 그렇지만... 바람돌이 님 설연휴 편안하게 보내세요 바람돌이 님 한번 더 새해 복 많이 받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1-29 23:45   좋아요 2 | URL
하루 2챕터씩 읽기로 했는데 그것도 다른 재밌는 책이 끼어들면 또 밀리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ㅎㅎ 어쨌든 반쯤 읽었는데 금융문제가 나오면 또 막 어려워지면서 뭐야 뭐야 이러면서 읽고 있어요. ㅎㅎ 희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

scott 2022-01-3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야구가 일본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이였군요
이책의 저자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다양한 모습을 균형적인 시각으로 쓴 것 같습니다
이 책 찜!^^
 

진정 로스코가 안전하다고 느꼈으면 했다. 로스코가 내게 주었던 안정감을 생각할 때, 나 역시 로스코에게 그러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녀가 두려움을 느끼는것은 원치 않았다.
- P241

효과가 있었다. 로스코에게 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녀는밝고 강인하며 자신감이 넘쳐야 했다. 나는 로스코가 스스로 그 사실을 알아채도록 애쓰고 있었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 로스코의 멋진눈은 용기로 가득 차 있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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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경제 기적

패전 후 일본의 보수파들은 국가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군정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좌파 세력이 일본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전쟁 전 일본 내 권력구조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전략을 쓴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좌파 세력이 성장하면서 1948년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의 당혹감은 이런 일본 보수파와 손쉽게 손을 잡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 일본의 보수파들은 한편으로는 전쟁의 책임 당사자들이었고, 그럼으로써 일본의 본질로 여겨지는 위계질서를 강고히 끌어안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주권이 천황에게 있는지 국민에게 있는지가 헌법규정과는 상관없이 애매해지고, 전후 막강한 관료들이 자신들의 관할 영역에서 입법, 행정, 사법권을 모두 행사하는 결과를 가져온다.(일본의 관료제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가 필요하다.) 과거를 묻고 가는데 있어 미군정과 일본의 보수파들의 이해가 일치하는 지점이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군국주의 침략에 대해 잘못했다는 표현이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마도 이 지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우익은 전후의 민주주의를 맹렬히 공격하는 것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햇고, 교사와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폭력 및 협박에 점점 몰두했다. 


일본의 방위와 외교를 미국이 책임지면서 일본의 관료들은 대부분의 역량을 경제 문제에 집중한다. 

이후 일본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산업과 기업을 키우고, 수출주도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는 경제 관료 기구에 의해 관리되고 배분되어 일본의 발전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일본의 경제 체제에서 주목할 것은 '리스크의 사회화'인데 전략적인 사업에 대해 개별 기업의 리스크를 국가가 보완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에서도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데, 이 예측 가능성은 도쿠가와 시대의 권력 구조에서 허용된 틀을 벗어나 행동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부터 일본의 주요 심성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경제 성장기동안 이 예측가능성 덕분에 개별 기업가나 기업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지 않고, 초기 손해를 감당할 수 있었다. 또한 자민당 정치인들은 관료들이 이러한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대신 관료들로부터 편의를 얻어내는 중요한 파워브로거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일본은 핵신 남자 직원들에게 평생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으로 상쇄해나간다. 이른바 평생직장, 가족기업개념이다. 



5장 - 고도성장의 제도적 기틀

일본의 기업은 종전 직후의 과격한 노동운동에 대응한 이데올로기적 해법으로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개념을 이용한다. 이 원칙은 기업의 생산성이나 품질, 기술력등 모든 요소를 앞서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개념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파생시키며 사회 안정에 기여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노동착취에 다름아니다. 

기업간의 모든 경쟁은 산업협회에서 나오는 비공식적인 지침을 통해 통제되었다. 특히 이 산업협회 덕분에 기업들이 손실을 내는 사업에서 철수하도록 강요하는 시장메커니즘의 부재로 이어진다. 경쟁에서 낙오된 회사들도 고용안정성과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율되고 감시되어진다. 이 속에서 일본 기업들은 고용 관행과 손쉬운 융자, 숙력노동자들의 완벽한 조합을 통해 해외에서 확실하게 시장을 점유해 나갈 수 있었다. 

일본의 고도성장의 또 하나의 바탕으로 고용관행이 있는데 이는 회사가 남성 직원에 대해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교육제도와 맞물려있다.

일본과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교육이 제공한다. 여기서 인재는 일본의 동일한 교육과정 속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학교의 스파르타식 분위기를 받아들여 절도있고 획일화된 외관에 대한 강조를 내면화한 체제순응적 인간들을 의민한다. 또한 이들은 일류대학 학부의 졸업자을 손에 넣음으로써 사회 엘리트의 수순을 밟아 나가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 이들의 성적이나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기술은 기업에서 가르치면 된다. 일류대학이 필요한 이유는 이들 중 기업을 지도층에 이르렀을 때 학연을 통한 연줄을 잡을 수 있는 대학 출신이간 아닌가에 달렸다. 


일본의 금융시스템은 전시체제와 비슷하다. 전시에 군수업체에 잔략적 산업을 몰아주는 것처럼 수출 주도형 기업에 대출을 집중적으로 제공한다. 그러면 초기 자금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를 위해 일본은 가계의 저축을 강력하게 장려하는 한편 정부가 발행한 금융상품(채권)을 사도록 요구하는 정책을 쓴다. 그럼에도 대출초과로 생기는 공백은 중앙은행이 리스크를 대신 떠안는 형식으로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개입이 두드러진다. 


이 외에 일본의 경제성장에 공헌한 것으로 '현실의 관리'라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여러 제도와 관행이 합쳐져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예측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근무시간은 8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모두 그렇게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퇴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직원이 주 48시간만 근무한다는 정교한 픽션이 존재했다. 이런 현실의 관리가 곳곳에 존재한다. 일본 관료들은 일본의 낮은 관세율을 가리키며 일본 시장이 활짝 열려있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회사들은 수입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은 것이다. 또한 사상과 정보의 영역에서도 좌파나 진보적인 생각에 대해 공식적인 탄압은 업지만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가 기다린다. 언론 역시 기자 클럽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야 기사화가 가능하다. 이를 어기면 모든 특종에서이 배제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현실의 관리라는 것은 모든 일본인에게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상세히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이를 일본인들은 일본적인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일본의 보수 지도층은 국가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까지도 무수히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 전략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들의 최우선 과제는 미군정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좌파 세력이 일본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전쟁 전 일본 내 권력 구조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미국의 두려움과, 요시다가 사적으로 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인의 아름다운 오해‘를 이용해서 미국의여론을 조작하는 작업을 포함하고 있었다.
- P179

주장컨대, 일본은 이런 게임을 하는 데 이스라엘 다음으로 숙달되어 있다. 연습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더 힘센 존재를 달래고 조종하는 기술은, 유치원 교실에서 시작해서 정부나 기업의 꼭대기에 오르는 데까지, 일본에서 성공하는 데 있어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 P180

헌법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을 할 수 있는데, 가령 주권재민 규정이 그러하다. 헌법은 주권이 일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아주 명확히 하고 있지만, 적어도 노년층에는 주권의 최종 소재가 사실여전히 천황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헌법은 또 입법권을 국회에 부여했지만, 전후 대부분의 기간에 실제로는 막강한 관료들이 자신들의 관할 영역에서 입법, 행정, 사법권을 모두 행사해왔다.  - P184

일본의 권력자들은 노동조합, 언론 자유, 보통선거권, 법률상의남녀평등이 실현되는 것을 막고, 다시는 학생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내보내지 않겠노라 굳게 결심한 급진적 교사들에게 훼방을 놓고,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천황의 신하가 아닌 공무원이라는 개념이 자리잡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에 내포된 사상은 매우 견고해서, 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최소한 어느 정도 제동을 거는 역할을 계속했다. - P186

그렇기는 하더라도, 미군정은 초기 멤버들이 이루려고 노력했던 일본사회의 민주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존 다우어는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군사정부가 직접 통치했던 전후 독일과는달리 일본의 미군정은 기존 정부 조직을 통해 ‘간접 통치를 했다. 이는항복 이전의 일본 정치체제에서도 가장 비민주적었던 두 가지 제도에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다름 아닌 관료제와 천황제다."
- P187

전후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일반국민이 전쟁을 얘기할 때 쓰던 가장 흔한 말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중국이라는 진흙탕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훨씬 강한 상대인 미국의 눈을 고의적으로 찌른것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일반 국민에게는 이런 어리석음의 원인을 되돌아보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에 참여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정복자인 미국, 일본의 우익 양쪽으로부터 과거의 일은 묻고 잊으라며 적극적으로 주문받았다. 우익은 전후의 ‘민주주의를 맹렬히 공격하는 것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했고, 교사와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폭력 및 협박에 점점 몰두했다.
- P191

 이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일본은 천황이 정치적 권력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고유하고 신성한 땅이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회귀한다. 정통성에대한 이론적 바탕이 전쟁 전의 정치체제에서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재앙이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할 수가 없고, 하더라도 신빙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독일과는 대조적으로, 통치의 정통성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는 일본의 패배로도, 군정에 의해서도, 전후 헌법의 도입을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국가 정치의 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않으면 언제든 끔찍하고 파괴적인 무질서 상황은 재현될 수 있다.  - P193

일본의 보수 지도층은 CIA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일본 내에 흩어져있던 보수 세력을 모아 자유민주당(자민당)으로 통합했다. 자민당은 볼테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유주의도 민주주의도 대변하지 않고, 전통적자의미의 정당도 아닐뿐더러, 줄곧 치러진 선거에서 과방을 넘는 득표를하지도 못했다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닐뿐더러,
제국도 아니라고 했던 것을 응용한 말 옮긴이), 하지만 자민당은 관료가 경제를 통제하고, 일본이 계속 미국의 방어 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어간다.
는 두 가지 사실을 정치적으로 눈가림해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 P197

1950년대 초반의 특수한 상황은 그 후 수십 년간 일본의 경제 기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 전반의 성장 모델의 토대가 되었다. 일본은패전의 폐허를 극복하기 위해 사실상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수출 주도경제를 키우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독립한 많은 신생 개발도상국은 수입 대체‘를 주창하며 과거 식민지 시절 지배국에 의존하던 경제를 개혁하고, 국내 산업을 키우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일본에게 이것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고 애쓰는 대신, 일본은 그 의존도를유리하게 이용해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산업과 기업을 키우는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발전시켰다.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는 적어도 고도성장기의 첫 10~20년간은 경제 관료 기구에 의해 관리되고 배분되어 일본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하는 데 쓰였다.
- P198

좌파는 패배했다. 파업은 해산되고 안보조약은 개정되었다. 하지만 좌파가 모든 면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미쓰이가 노조를 파괴하고 대신 고분고분한 사측 노조를 만드는 데 성공하자, 다른 기업들도 그걸 따라하기 시작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때부터 일본의 대기업들은 핵심 남자 직원들에게 평생의 경제적 안정을 보상할 의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업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분기 이익이나 주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최우선 목표가 되있다. 직원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거나 회사가 재정적으로 힘들 때라도, 제대로 된 회사라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렇게 경제적 안정의 보장이라는좌파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 충족되면서 노동 투쟁은 점접 일종의 의례적인 절차로 변해갔다. - P207

하지만 근대 일본의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개념은 에도 시대의 제도에서 나온 유기적인 산물이 아닐뿐더러 ‘일본 문화의 산물도 아니었다. 이것은 앞 장에서 다룬 종전 직후의 과격한 노동운동에 대응해 나온 이데올로기적인 해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래의 진실도 일본 기업의 관리자들 머릿속에 자리잡은 가족과 같은 회사라는 개념을 흔들지는 못했다.  - P217

장기적으로 보면, 일본이 이렇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필수 요소인
‘창조적 파괴의 가능성을 억제했기 때문에 일부 산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예를 들어 소비자 가전제품 산업은 1990년 이후 애플이나 삼성과같은 해외의 발 빠른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한다. 하지만 고도성장기에는 산업협회들이 일본의 가장 첨예한 경쟁력을 해외 시장으로 향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일본 기업들은 고용 관행과 손쉬운 융자, 숙련 노동자들의 완벽한 조합을 통해 해외에서 확실하게 시장을 점유해나갈 수있었다.
- P220

고도성장의 바탕이 된 세 번째 제도는 일본의 고용 관행이다. 고용 관행은 일본 기업들의 행동 및 일본 경제생활에 불문율로 철저히 녹아들어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 소위 ‘종신고용‘은 실제로는 평생 고용하는것이 아니고, 핵심 남성 직원에 대해 회사가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 P221

절도 있고 획일화된 외관에 대한 강조와 불편을 받아들이는 훈련은,
좀더 광범위한 교육학적 목표의 일부로서, 적어도 언어 수리 능력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다. - P224

대학 시절에 형성된 학연이 중간급 이상의 관리직으로 올라갔을 때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본의 조직에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위치에 올라가면, 회사(또는 정부 부처)의 대외 관계를 관리하고 강화하는 것이 업무의 대부분이 되이버린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너무나 중요한 인맥(진먀쿠脈)을 만드는 데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 P226

현실의 관리란 여러 제도와 관행이 합쳐져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일본인들이모순을 알아차리지 않기로 의도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한 듯 보이는 데서 종종 드러난다. 근무 시간이 그 좋은 예다.  - P236

사상과 정보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힘이 작용했다. 세상이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한 현실을 부정하는 내용을 쓰거나 말한다고 해서 잡혀가는 일은 없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결국은 소외되기 마련이었다. 뉴스의 배포는 기자 클럽을 통해 통제되었다. 기자 클럽은 정치인, 정부 부처, 경찰과 같은 주요 정보원을 취재하는 기자들로 구성된 카르텔이다. 대형 보도 기관의 기자들만이 이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다. 만약특정 뉴스를 어떤 식으로 보도할 것인지에 대한 기자 클럽의 암묵적인동의에 반하는 기사를 썼다가는, 그 기자와 신문사는 앞으로의 특종에서 배제될 것이었다.  - P240

‘현실의 관리‘는 그렇게 가장 아둔한 혹은 ‘일본적이지 않은 이들을밴 대부분의 사람에게,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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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지도자들은 과거 번이나 신분 계급에 따라 나뉘어 있던 농민들을 의도적으로 단일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에도 시대 농촌생활과 긴밀하게 엮여 있던 각 지방의 제도와 문화적 관습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적·사상적 프레임워크를 성공적으로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 언급한 자유민권운동처럼 격렬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저항에 부딪힐 것이뻔했다.  - P138

이런 프레임워크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이데올로기는 일본이 원래 조화로운 사회이고, 합의에 의해 움직이며, 정치경제적 결정은 신의뜻, 곧 천황의 신성한 승인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개념이었다. 여기에 따르면 정치경제적 결정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은 ‘반일본적‘일 뿐 아니라곧 신성한 질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 P139

위계질서에 대한 숭배를 중시하던 신유학 (주자학)이 정치적 사상의 근간을 이루던 도쿠가와 시절의 토대가 있었다고는 해도, 이런 프레임워크를 주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메이지 지도자들에게는예전 사람들에게 없던 수단이 있었으니, 공공 의무교육과 남성의 전원징병제가 바로 그것이다.  - P139

그러나 일본이 갑자기 외부로부터의 군사 위협과 국내의 격화된 자우민권은 동에 직면하자, 사무라이 가치는 에도 시대 박물관으로부터 꺼내져서 단지 근대화된 군대만이 아닌 군국주의 사회 전체에 필요한 가치로 재포장되었다.
삶의 모든 부분이 군사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 P140

국가신토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며, 국가가 영원한 진리의 체현이라는 사상을 주입하는 지극히 의도적인 정치적 산물이었다. - P142

일본에서 유난히 정치적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이른 것은, 일본에서는 정치적 현실과 그 현실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던 ‘허구‘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간극은 물론 중학교 도덕 교과서를 빼고는 어디든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이 유독 독특했던 것은 나라의 지배 구조에 대해 하나도 아닌두 가지 다른 허구가 병존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과거로부터 이어받은허구는 천황제이고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허구는 입헌정치와 법치주의다. - P149

비록 공식적인 형태는 아니었으나 실제 의사결정이 막부를 전복시킨사쓰마와 조슈의 과거 사무라이들로 구성된 ‘삿초‘ 파벌명에 의해 이루어지는 한, 일본 지배 구조의 중심적인 결함은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나이 들어 죽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심각해진다.
카럴 판볼페런은 일본에서 정치적 책임을 지는 주체가 없다는 문제의 원인으로 바로 이 결함을 지목했다. - P151

소위 원로라 불리며 20세기까지 살아남은 메이지 지도자들은 적극적인 정책활동에서 물러나면서 추밀원 같은 자문기관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되 결과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역할을 맡으면서, 거대한 정치적 무책임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 P152

일본을 재앙으로 몰아넣은 범인(들)을 찾는 부질없는 작업을 하기보다는, 전쟁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일본 지배 체제의 연속성이 단 한번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P156

중국에서의 갈등을 격화시킨 핵심 세력은 관동군이었다. 1900년만주 지역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관동군은1920년대에 이르면 사실상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 세력이 되었다.  - P159

명목상의 지도자들은 실은 법바깥에 존재하는 익명의 세력이 미리 만들어놓은 시나리오를 숨을 헐떡이며 따라가기에 항상 급급했다"라고 평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전쟁의 궁극적인 원인은 (또는 적어도 전쟁에서 일본에 책임이 있는 부분에관해서 말하자면) 권력을 탈취한 사람들의 손에 권력이 집중된 데 있었던것이 아니라, 권력이 통제를 벗어나 여기저기 분산되었다는 데 있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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