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장 없는 여행기라니 하다가 초판 작가 서문의 ˝여행은 마음의 발걸음이기도해서, 다른 장소에 가면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이 여행에서 내 마음의 발걸음도 한번 따라가보고 싶었다˝라는 구절을 되짚어본다. 여행기라기보다는 여행을 연결점으로 한 작가 내면의 사색과 생각의 행로를 그리는 에세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훌륭한 문장과 생각들이 너무 자주 등장하고, 내가 가보지않아 모르고 역사도 잘 모르는 곳이라 인터넷 검색을 끊임없이 하게 하는 책이라 진도는 더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또 작가의 말을 한번 더 곱씹게 하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나는 모르몬교 신도들도 좋아한다. 미국의 서부 이민자들 중에 북쪽 사막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다. 아니, 미국의 서부에 정말로 정착한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다. 그곳은 새로운 약속의 땅이라는것, 그곳에 온 자신들은 노예의 사슬을 끊고 탈출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이 그들의 판타지였던 만큼, 그들의 유타는 1846년 이래 오랫동안 구약의 세계, 옛 세계의 합판을 덧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서부로 온 백인들 중에서 그곳에정착해 그곳을 고향으로 만든 사람들은 그들뿐이었다.
- P19

산에 오르는 건 산 밑을 내려다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1년 동안 집을 떠나 멀리까지 돌아다닌 적이 있다. 여행이몸의 위치뿐 아니라 기억의 위치, 상상의 위치를 바꾸어놓는다.
는 것, 처음 가본 곳들, 몰랐던 곳들이 주로 망각 속에 묻혀 있는 묘한 연상들과 욕망들을 끄집어내준다는 것, 그러니 여행자가 가장 많이 걷게 되는 길은 마음의 길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실감했다. 여행은 내가 나라고 생각지 않았던 나를 발견할 기회가 되어준다. 나의 무너지는 정체성이 내가 가보고 싶은 땅으로이어지는 것이 여행이기에.
- P32

관광객들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침입자들이 미친 것처럼 노골적이지는 않다해도 어쨌든 문화에 독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침입자들과마찬가지다. 관광지에 가는 공식적 이유는 이국적 문화, 상이한문화, 예전의 문화를 구경하는 것이지만, 관광지가 된 곳에서는새로운 경제가 출현하고 결국은 관광객 문화라는 림보가 만들어진다. 관광객이 보러 오는 곳이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곳이 된다. 관광 사회학자 딘 맥캐널(Dean McCannell)은 제3세계관광산업의 산물인 호텔 리조트 단지를 준군사적 점령지(글자6그대로의 침입)에 비유하기도 했다.
- P47

 관광산업이 현지의 문화와 역사를 관광객의 입맛에 맞도록 각색해서 공연하는 연극이라면, 이미 거대하고 점점 더 거대해지는 관광산업은 전 세계를 일련의 연극 무대로 바꾸어놓을 위험이 있다. 관광객의 손은미다스의 손과 정반대라서, 관광객이 찾아다니는 것은 진정성과 이질성이지만, 관광객의 손이 닿은 것은 진정성을 잃고 동질화된다.
- P48

크롬웰 이후에 아일랜드로 건너온 조부모를 둔 그(조나단 스위프트)가 영국인인가 아니면 아일랜드인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결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확연한 사실이라기보다는 욕망과 정치다.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둘 다였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대답일 듯하다. 나고 자란 곳은 아일랜드였고, 청년기를 보낸 곳은 영국의 문학적, 정치적 동인사회였고, 인생 후반기를 보낸 곳은 고향 아일랜드였다. 어느나라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안락과 양심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던 그는 어느 나라에 있든 다른 나라 사람 같은 데가 있었던 것 같다.
- P56

유머는 식인을 아일랜드의 빈곤에 대한 합리적 해법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득권 세력의 착취 방식들이 본질적으로 식인과 다르지 않음을 까발리는데 있다. 유머를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기성 질서의 수혜자들이었고, 유머는 언제나 그 간극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의 놀이이자 연장이자 무기였다. 더블린에서 바라본 세상은 비극적, 영웅적, 감상적일 때가 많았지만, 뼈 아프게 웃긴 경우도 있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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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 클래식 클라우드 2
이진우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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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옛적에 니체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책이 입문을 위해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아 자서전이란게 있네?

이래서 본게 <이 사람을 보라>

처음에는 키득거렸던 것 같다. 제목도 어찌나 잘 써주셨는지....

이 책 속 소제목이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뭐 이런식이었다.

아! 이 무슨 자뻑 대마왕이란 말인가?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위선적으로 겸손했던 - 지금은 아주 절절하게 진심으로 겸손하다. 인생의 쓴맛을 제법 본 덕분에....

젊은 시절의 나는 저 제목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감당할 수 없는 게 있었으니 바로 내용이었다.

아 도대체 무슨 말이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책이 정녕 한글 번역본이 맞단 말인가?

그래 한 줄 한줄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근데 문단을 읽었는데 왜 머리속에 아무것도 안 떠오르지? 왜? 왜? 왜?

아 나는 바보인가봐....ㅠ.ㅠ

 

그래도 그 때는 시간도 많고 인내심도 있어서 어쨌든 보기는 다봤다.

다 보고 나니 뭔가 니체가 말하려는게 여태까지의 통념적인 상식과는 다르다는 그냥 느낌만 느껴졌었다.

그냥 느낌이다. 내용은 모르겠다.

 

지금보다 훨씬 용감했던 나는 다음 책으로 <도덕의 계보>를 집어들었다.

보다 보면 언젠가는 알 수 있을거야라는 별로 신빙성도 없는 느낌만으로...

그래도 <도덕의 계보>는 <이 사람을 보라>보다는 좀 나았다.

일단 뭘 말하려는지 큰 줄기는 알 것도 같았다.(여기서 알 것도 같다는 말은 중요하다. 왜냐? 안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 것같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나는 여전히 니체를 모른다.)

 

<도덕의 계보>에서 말하는 건 결국 현재의 도덕, 도덕적 기준, 선악의 기준 이런 것들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설파하는 듯했다.

그래서 말 그대로 계보, 즉 도덕의 기원까지 따라 올라가면서 현재의 선악 이분법의 도덕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지,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른 삶이 왜 중요한지 등등을 얘기하고 있었다.

근데 이건 내가 이렇게 이해한 바가 이렇다는 거지, 이 책의 서술과 논리 전개 과정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으며 요약정리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니체의 책에서 글을 읽은게 아니라 행간과 행간을 띄엄띄엄 읽었던 느낌이다.

그리고 내 맘대로 아 이건 이런 뜻인가봐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원래는 마지막 책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서 니체의 생각을 1차 정리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의 용기는 딱 2권째 <도덕의 계보>까지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니체를 잊고 살았다.

차라투스트라까지 읽으면 나도 춤을 출 수 있을까 싶었지만, 뭐 춤을 못춰도 사는데 별 지장은 없었다.

 

지금 저 오래된 기억을 소환시킨 이 책은 니체 전문가이면서 니체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며 니체에 대한 이야기 또는 해설서이다. 또 한편으로는 니체처럼 생각하기를 실천하는 학자의 여행기이기도 하다.(오래전에 질린 니체를 지금 내가 읽은 건 이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2권이기 때문이다. 숫자나 순서에 일종의 강박이 있는 나는 1권 셰익스피어가 좋았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완독하기로 결심했고, 완독은 당연히 한권도 빼지 않고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

 

이 책 역시 참으로 니체적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니체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책의 쓰여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게 읽다보니까 뭔가 아! 하는게 있다.

니체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니체를 읽는 방법이 보인다.

그러니까 니체를 읽을 때는 먼저 내 머리부터 비울 일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기본적으로 책을 읽을 때 나의 머리는 준비자세를 취한다.

특히 그 책이 인문 사회과학같은 이론서일 때는,

"자 너의 머리를 준비해! 지금부터 너의 머리를 풀가동해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논리적으로 굴려. 그래야 너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올바른 지식과 태도에 이를 수 있을거야." 딱 이 자세다.

그런데 딱 이 자세가 바로 니체가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었던 것이다.

 

논리적 합리적이란게 무엇인가?

이런 생각의 방법 역시 계보학적으로 따라가보면 결국 근대의 산물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한 후에 이성과 이성의 작용인 합리성, 논리성은 모든 영역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져왔다. 사실 이건 소크라테스 이후 서양철학이 줄기차게 걸어왔던 길인데 데카르트에 이르러 한 획을 긋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후 이런 이성과 합리주의의 전통은 근대의 위대한 너무도 유명한 철학자들, 우리가 안 읽어도 이름은 다 아는 헤겔, 칸트, 마르크스 이런 이들에 의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상상해본다.

여기 홀로 칼을 빼들고 춤추는 이가 있다.

이성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적인 감성과 본능, 이성과 합리의 영역을 넘어선 자유, 인간이 만든 선악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을 꿈꾸고 주장하는 이.

근대철학의 한가운데서 근대철학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바로 니체다.

니체가 결국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너무 일찍 태어난 천재였던 것이다.

포스터 모던 - 근대 너머를 너무 일찍 기획했던 니체의 마지막 삶이 광인이었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이 가버린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내가 니체의 책이 그렇게 어려웠던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앞에 말했듯이 나의 사고습관은 논리성과 합리성을 찾도록 자동 방향설정이 되어 있다.

그렇게 모던 - 근대를 뛰어넘자고 포스터모던 어쩌고 하지만 사실상 근대를 뛰어넘는건 쉽지 않다.

우리의 뇌의 작용방향은 아주 질기게도 근대의 이성을 향해 있다.

사실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학교교육에 있다.

답을 찾지 않는 학교 교육? 판단하지 않는 학교교육? 상상이 가는가?

제도권 학교교육이 너무 잘 되어 있어 국민 대부분이 이 과정을 거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니체의 사고를 따라가는건 정말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우리 세상에는 내가 잘 못하고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꼭 먼저 가서 해보고 알려주는 이가 있다.

어디나 선생님들이 있고, 또 인터넷의 발달로 그런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쉬워졌으니 이것만은 복받은게 틀림없는듯하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분인듯하다.

그 어려운 니체를 먼저 공부하고 니체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니체가 사고했던 방식대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면서

"자 어렵죠? 여러분! 하지만 불가능한건 아니예요. 그리고 완벽하려 애쓰지 말고요. 나도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은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니체의 말을 음미해보고 이렇게 생각해보고 살아보면 불가능한건 아니예요. 니체의 말을 잘 음미해보면 우리의 삶을 좀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니체가 위대한 것은 그의 사상의 내용이 아니라 그의 사고의 방법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나를 학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니체를 또다시 찾아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니체의 생각의 방식, 사고의 방식을 어렴풋이라도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다.

오래된 열등감 - 책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을 이제 살짝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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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대성은 하나의 시대에 다양한 현상들이 공존하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공통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킨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언어, 인물, 기법 등은 이후의 작가들에게만 지대한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 영어권 사람들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 채 셰익스피어의 말과 표현법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흔히 쓰는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melted intothin air"는 『폭풍』에서 프로스페로가 처음 한 말이다. 이아고, 에드먼드, 리처드 3세와 같은 악당들이 없었더라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근대소설의 주인공들도 부지기수이다. 쥘리앵 소렐, 라스콜리니코프, 스타브로긴 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작품 속 인물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헤겔,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데리다 등을 읽을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셰익스피어와 마주치게 된다. 이런 점에서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이 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선택 사항이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문학에는 예술성과 대중성이 분리할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있고, 근대문학이 삭제해버린인간의 세속적 욕망과 본성이 풍부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위해 존재"(벤 존슨)하게된 것이다.
- P15

스트랫퍼드를 떠나는 순간부터 이시골 청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미래로부터오는 빛이 희미할수록 더 치열하게 걸었으리라. 그렇게 온몸으로맞닥뜨린 세계의 단면들이 그의 신체 속으로 침투하여 새로운 정신을 빚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에게 스트랫퍼드와 런던사이의 거리는 공간적 개념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것은 ‘윌리엄‘과 ‘셰익스피어‘ 사이의 거리, 스트랫퍼드가 빚어낸 청년과 세계적인 극작가 사이의 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미지의 8년간은,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든,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벼려내려는 의지가 들끓었던 용광로 같은 것이었으리라.
- P56

학교 가기 싫어서책가방을 메며 징징거리는 학생달팽이처럼 기어가는 빛나는 아침 얼굴.
『뜻대로 하세요』, 2.7.144-146 - P62

이 작품에서 리어의 부조리한 언어와 글로스터의 조리있는 언어는 대비적 관계 속에서 서로를 보완한다. 셰익스피어는 이처럼이질적 성격을 지닌 인물들을 병렬함으로써 노년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놓았고, 모든 노인은 리어와 글로스터 사이에 놓일수 있게 되었다.
- P91

유럽의 석조 건축물들은 밀도가 높은 물질적 시간성을 간직하고 있지만, 나는 그 웅장하고 정교한 건축물들에 다소 물려 있었다. 왕궁과 성을 우러러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석조 건물 특유의 견고함이 안과 밖을완전히 단절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에 있는 사람과밖에 있는 사람 간의 상대에 대한 이미지는 시선의 방향만큼이나 정반대였을 것이다.  - P138

당신들이 그들을 샀으니까요. 제가 한 말씀 드리지요,
‘그들을 놓아주시오, 그들을 당신네 상속자들과 결혼시키시오.
왜 그들이 짐을 지고 땀을 흘립니까? 그들의 침대를당신네 침대처럼 푹신하게 해주시오, 그리고 그들의 입맛도마찬가지 음식으로 맞춰주시오.‘ 당신들은 이렇게 말할 거요.
"노예들은 우리 거야. 저도 당신들에게 그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그에게 요구하는 살 1파운드는비싸게 산 것이오.. 그건 내 것이니, 내가 가질 거요.
당신들이 거절한다면, 당신네 법은 엉터리요!
4.1.90-100 - P218

그 복원‘
이 오래 흘러온 시간의 흔적들을 지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오.
르크 지멜Georg Simmel은 폐허, 하나의 미학적 시론」에서 폐허의 매력‘은 인간이 만든 것을 자연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썼다.
- P280

 순결한 사람이 자신의 순결을 증명해야 하고 죄 없는 사람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라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불행은 죽은 자를 살려내는 마법으로 위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극이든 희극이든질투의 뒤끝은 언제나 씁쓸하다.
- P270

‘대중성이 풍부하다‘는 말은 일차적으로 당대의 대중적 현실과일상적 생활감각이 풍부하게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예술성을 담보하지 못한 대중성은 문학작품을 통속적 수준에 머물게 한다. 대중성과 예술성은 하나가 결핍되면 다른 쪽도상처를 입게 되는 그런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셰익스피어가 빚어낸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의 상호작용은 세계문학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진폭이 크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는 당시 대중의 환호와 지금 비평가의 탄성이 동시에 터져나오는 시공간이 된다! 이것은 결코 나 하나만의 상상이 아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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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상상해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 따사로운 햇볕과 사이프러스 그리고 유쾌하고 친절한 사내들, 거대한 유적들과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개들, 파랗고 잔잔한 지중해와 그것을 굽어보는 언덕 위의 올리브나무, 싸고 신선한 와인과 맛있는 파스타, 검은머리의 여성들과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 P50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다섯시경이 되면 우리도 거리에 나가 사람 구경을 하거나 장을 봤다. 여행안내서에 이 섬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모두가 모두를 아는 섬‘, 기리에선 모두가 모두에게 인사를 한다. 차가 멈추면 그것은 인사를 하기 위해서고 클랙슨이울려도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 P78

그렇다면? 그저 나는 그리스인들이 바다를 사랑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이왕 힘들여 극장을 지을 거라면 바다가 보이는 데가 좋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고향이 그랬으니까. 아테네가코린트가 그랬으니까. 지금도 전 세계의 이민자들은 자기가 살던 곳과 비슷한 곳에 정착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시칠리아를 떠난 이민자들도 바다가 있는 뉴욕, 그것도 섬인 맨해튼에 정착했고 지평선만 보고 살던 독일 중부와 체코의 이민자들은 미국의 중부에 주로 자리를 잡았다.  - P88

그럴 때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갈 데 모를 방랑이 아니라 어두운 병 속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빛나는 편린들과 마주하는, 고고학적 탐사, 내면으로의 항해가 된다. - P91

구름들이 절벽을 스쳐 해협을 통과하며 붉은 지평선을 향해 몰려갔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보았지만 그 어떤 이미지도 내가 본 것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디지털카메라의 2.5인치 액정에 담긴 해협과 절벽, 불카노의 풍경은 빛바랜 관광엽서처럼 식상하고 진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스쿠터를 타고 달려와 맞이한 풍경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이미 그것의 일부였다. 수백만 년 전 내 발밑 저 깊은 곳에서시작된 지각변동이 이 섬과 저 건너의 불카노를 만들었다. 지도만 보고 작다고 무시했던 섬이었다. 그러나 작고 보잘것없는 것은 바로 나였다. - P120

어떤 풍경은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런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때, 우리 몸의 일부가 갑자기 격렬히 반응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기생수라는 만화에서 외계의 생물이 지구인인 주인공의 일부, 정확히 말하면 오른손이 되어 살아간다. 그렇듯, 풍경의 장엄함도 우리 몸 어딘가에,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진 채 깃든다고 믿는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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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 -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이탈리아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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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행관련 에세이서적들을 보면 크게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실제 여행을 갈때에 필요한 온갖 정보를 중심으로 하는 책과(그 중에서도 요즘은 맛집 기행이 대세인듯.... ),

또 하나는 실제 여행지를 경험했을때 저자 자신의 감성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책들이다.

실제 여행을 갈때 필요한 책은 전자지만 어디를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를 결정하거나 여행의 경험을 대리만족하거나 하고 싶을때는 후자의 책들이 더 유용하다.

 

이 책 <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는 읽기 전에는 전자, 즉 정보중심의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읽다 보니 이 두가지가 미묘하게 섞여있다.

이탈리아의 여행코스나 현재에 대한 정보의 제공보다는 이탈리아 각 지역의 역사, 전설, 미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정보들은 실제 여행을 하는데는 별로 필요치 않다.

오히려 여행을 준비하거나 할때 아 여기 가보고싶구나 라는 마음을 일으키기 위한 정보라고 할까?

이 책은 그런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좋아하고 느끼는 이탈리아를 여러분도 꼭 한번 가보라고 충동질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런 책이다.

그러다보니 글속에서 각 지역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나 마음이 쏠쏠히 묻어나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시간과 지역과 많은 역사속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베네치아에서는 먼 옛날 아틸라가 이끌던 훈족의 침입을 피해 해안쪽으로 도망쳐온 사람들이 석호를 메워 두만개의 기둥을 석호바닥에 꽂아 인공섬을 만들어 오늘의 베네치아를 만들던 시절

르네상스기 한때는 세계 인쇄업의 중심지로서의 베네치아를 찾기도 한다.

베네치아의 가면 축제가 생긴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또 현실로 돌아와 베네치아의 다리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따라가고 있다.

또한 이 이야기들 속에 토마스만의 작품과 비스콘티의 영화로 유명한 <베니스에서 죽다>를 만나기도 하며,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카사노바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한다.

베네치아를 가기 전에 꼭 베니스에서 죽다와 카사노바를 읽어야겠구나라는 마음이 절로 드니 저자의 말솜씨가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북부의 작은 도시들에서 관심이 가는 곳은 볼로냐이다.

세계 최초의 대학이 들어선 도시이며 요리가 발달해 뚱보들의 도시이자 붉은 벽돌건물과 사회주의자들의 세력이 강해 붉은 도시로 불리운다는 볼로냐

사실상 크게 볼거리가 없어 대부분의 여행자가 지나치는 도시인데 저자의 맛깔스런 소개를 듣다보면 볼로냐의 맛있는 소시지를 넣은 샌드위치 또는 스파게티를 먹으러 꼭 가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또한 오래된 건물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켜 도서관과 서점, 카페 등으로 활요하고 있다는 건물 살라 보르사는 지하의 로마 유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것을 유리 바닥을 통해 건물을 걸을때마다 훤히 보이게 한 구조라니 그것도 궁금하다.

문화를 박제시키지 않고 어떻게 생활속의 문화로 만들까라는 고민의 흔적을 한올 걷어올릴 수 있을 듯하다.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서는 도시의 아름다운 외면이 아니라 르네상스 정신에 주목하고자 한다.

피렌체의 역사를 간략하게 얘기하는데서 시작한 글은 건물이나 예술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만들었던, 또는 피렌체를 살아갔던 사람들에 주목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비교하고 그들의 관계에 얽힌 에피소드들 - 사이가 무지 나빴던 이야기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그리고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당한 사보나롤라를 만나며 그의 개혁정신과 실패를 얘기한다.

아 베키오다리에서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평생 2번 만났단다.

현대로 훌쩍 넘어오면 페라가모를 통해 이탈리아 패션과 장인정신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로마!

사실상 로마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양 역사의 중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으므로 책의 몇장으로 서술하기 어려운 도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전체에서 디테일면에서 가장 공감이 덜 가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로마라는 도시가 훌륭하지 않거나 감흥이 없는 도시라서가 아니라 저자 역시 이 도시를 감당하기에는 몇 장의 서술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된다.

어쩌면 저자는 이 아쉬움때문에 <일생에 한번은 로마를 가라>쯤 되는 책을 다시 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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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5-01-28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번에는 이탈리아 가실 준비 하시나요?

바람돌이 2015-01-28 23:37   좋아요 0 | URL
눈치도 빠르셔라... 근데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요. 그냥 다음은 이탈리아다 뭐 그러고 있습니다. 일단 돈부터 열심히 모아야죠. ㅎㅎ

rosa 2015-04-04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 가신다면.. 토리노도 가보세요.
저는 유일하게 토리노에만 다녀왔지만.. 토리노가 참 특별하고 좋았습니다.
쁘리모 레비의 흔적을 쫓아다닌 일주일이 근 1년이 다 된 지금에도 계속 마음에 남아요.
멋진 영화박물관에서 더 뒹굴거리지 못했던 게 아쉽고.. ㅎㅎ
여행을 준비하고 또 떠나시는 바람돌이님이 진정 부럽네요.
저는 한동안 무조건 방콕해야 할 상황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