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제임스 볼드윈.라울 펙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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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회에서 억압받는 자로 산다는 것은 아주 어린시절 정체성의 형성기부터 억압당하는자로 만드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것에 저항하는 것은 백인과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과 싸워야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나는 당신당신의 정의에 의해서 규정지어지는 그 니그로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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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9월 4일 도로시 카운츠는 15세의 나이로 그 지역의 백인 학교에 지원하였다. 그녀가 경찰과 주방위군의 경호를 받으며 등교하는 사진은 유명하다. 의연하게 등교하는 그녀에게 백인 어른들은 그들의 아이들에게 "침을 뱉어라"라고 요구했다. 또한 백인 학부모 여성은 진지하고 침통한 얼굴로 "주님은 살인과 간통은 용서하시지만 인종통합에 대해선 분노를 금치 못하시죠"라고 인터뷰한다. 사실 나를 더 경악케 하는 것은 어른들의 말보다도 도로시 카운츠가 간 학교의 백인학생들의 집단 괴롭힘이다. 웃으며 침을 뱉고 놀리고 욕을 하는 저 또래학생들의 행동이 사춘기의 도로시 카운츠에게 어떤 상처와 두려움이 될지를 짐작하기에 도로시 카운츠의 저 야무지고 결의에 찬 표정을 보고도 안심이 안되는 것이다. 차라리 다행스럽게도 도로시 카운츠는 아이의 안전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부모에 의해 나흘만에 결국 전학을 가게 된다. 잘 된 일이다. 우리의 신념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그것을 아이에게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사진은 다른 한 사람을 움직였다.  흑인으로서 동성애자로서 미국에서의 억압과 생명의 위협을 견딜 수 없어 파리로 이주해있던 작가 제임스 볼드윈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도로시와 함께 있어야만 했다!

바로 그 날, 화창한 오후에 프랑스를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파리에 눌러앉아 알제리 문제나 미국 흑인 문제를 논하며 빈둥댈 수는 없었다.

다들 자신의 몫을 하고 있었고 나도 돌아가 내 몫을 해야 할 차례였다. - 41쪽


내가 역사를 좋아하는 것은,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 때문이다. 역사속에는 어리석고 나쁘고 이상한 인간들이 정말 많지만 이렇게 훌륭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꼭 하지 않아야 할 일에 자신의 양심과 마음속의 정의감때문에 행동하는 이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흑인 인권운동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도 여성운동도 있을 수 있었고, 세상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싸우는 현재진행형의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늘 인간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를 묻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이타적인 인간도 이기적인 인간도 넘쳐난다. 그냥 그게 세상이다. 다만 그 이타적인 인간들로 인해 그나마 인류가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일 뿐이다. 


작가였던 제임스 볼드윈은 미국으로 돌아와서 텔레비전 출연, 강연 등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 흑인의 삶을 이야기 한다. 세계 최초의 흑인공화국을 세웠던 나라 아이티출신의 영화감독 라울 펙이 제임스 볼드윈이 갔던 길을 따라가며 그의 삶을 되살린다. 제임스 볼드윈이 흑인 인권운동가들- 메드가 에버스, 맬컴 액스, 마틴 루터 킹-에 관해 썼던 <Remerber This House>의 초고 메모 또는 원고 등 30여페이지의 그 글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영화는 제임스 볼드윈의 여로를 따라가고 그의 말을 따라가고 그의 생각을 따라간다. 

흑인들은 왜 항상 인종이나 종교에 집중해야 하느냐고? 당신은 흑인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작가이고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크지 않느냐는 백인의 질문에 제임스 볼드윈은 "나는 파리에 정착했을 때 수중에 40달러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미국에서보다 더 나쁜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여기서는 한번 등을 돌렸다하면 죽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과 눈빛은 그저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위험속에서 살아온 자신과 동족의 슬픔을 강렬하게 대변한다. 

우리가 미국의 인종차별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저 언어나 먼 나라의 사건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

미국에서는 백인 아이들도 흑인 아이들도 같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랐다.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영화속에서 언제나 백인은 영웅이었고, 흑인은 사회적 루저 아니면 악당이다. 5살 6살 정도의 흑인 아이가 자신이 그 루저나 악당인 흑인임을 자각하는 순간을 생각해보라. 그 정체성의 혼란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는 차별받는 이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심지어 언제 어디서든 공격받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차별 말이다. 


  메드가 에버스, 맬컴 액스, 마틴 루터 킹, 이 세사람은 모두 흑인의 인권을 위해 싸웠지만 주장하는 바도 싸움의 방법도 모두 달랐다. 그러나 그들 모두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모두 암살당했다. 감히 흑인 주제에 인간이기를 요구했기 때문에...... 


  제임스 볼드윈이 꿈꾸던 세상은 그저 흑인이 백인과 평등해지는 세상만은 아니었다.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세상에 대한 메타포가 그에게는 있었다. 다분히 공상적이고 이상적인 생각들. 그러나 언제나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길을 밝혀왔다. 인간은 앞으로도 여전히 이전투구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나아갈 바를 이렇게 얘기하는 이가 있어 우리는 길을 잃었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새로운 메타포가 있다. 새로운 소리가 있다. 새로운 관계가 있다. 남성과 여성은 전과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도 달라질 것이다. 그들은 돈버는 읽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다. 인간의 삶을 그보다는 가치있게 하라. 일의 개념을 고역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회복하라. -13쪽


영화와 극본집을 같이 보고 읽었다. 

번역은 극본집이 훨씬 유려해서 내내 다시보기 하듯이 읽었다.

처음으로 영화와 극본집을 통해 제임스 볼드윈을 만났으니 이제 책을 통해 그를 만날 차례다.


















아 참 책 <아이엠 낫 유어 니그로> 163쪽에 

영화 편집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가 서문을 쓴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책의 앞에 서문에는 편집자 이름이 알렉산드라 스트라우스이다. 

어느쪽이 맞을까? 알렉산드라쪽일 거 같은데.... 어쨌든 다음 판에서는 수정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라고 해서 올리버 키트리지의 그 엘리자베스인줄 알고 잠시 깜짝 놀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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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01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엔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어디나 인종차별은 있겠지만, 미국은 가장 심하고 지금도 아주 사라지지 않았겠습니다 프랑스도 심하다고 한 듯한데... 미국에서 자라면서 텔레비전을 보면 백인과 흑인을 다르게 보겠네요 이건 미국만 그렇지는 않겠습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죠 한국사람은 다른 곳에 가면 차별받고...

한번에 달라지지 않겠지만, 앞으로도 조금씩 바뀌어가길 바랍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겠습니다 바람돌이 님 삼월 좋은 달이기를 바랍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3-03-01 16:00   좋아요 1 | URL
어쩌다 여행객으로 지나치면서 느끼는 인종차별과 그곳에 살면서 삶에 속속들이 틀어박히는 차별을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거 같아요. 또 차별받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또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세상이 참 힘든데 그래도 이렇게 양심에 따라 사는 사람들로 인해 나아지고 있고 나아질거라고 믿고싶습니다. 희선님도 봄냄새와 함께 하는 따뜻한 삼월 되세요.

거리의화가 2023-03-01 0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아이엠 낫 유어 니그로> 이야기해주셔서 궁금했는데 이렇게 올려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최근에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여성, 인종, 계급>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던 참이었어요.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일어서고 그래서 잘못된 역사는 바뀔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책도 영화도 궁금하네요.

바람돌이 2023-03-01 16:02   좋아요 1 | URL
책이 극본집이라 영화와 같이 나가지만 그럼에도 또 다른 감동이 있었어요. 스쳐가는 영화의 화면 대신 스틸사진들을 문장과 함께 오래 응시하면서 느껴지는 감정은 좀 다른 듯도 했구요. 같이 보시는거 추천드려요. ^^

레삭매냐 2023-03-01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희망도서로 읽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못 다
읽고 반납한 기억이 나네요.

영화로도 있다고 하니 한
번 보고 싶어지네요.

바람돌이 2023-03-01 16:04   좋아요 1 | URL
제가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읽다가 다 못보고 반납한 책 쌓으면 그것도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갈거예요. ㅎㅎ
요즘은 관심가는 영화가 있으면 어디서든 저렴한 가격으로 찾아볼 수 있으니 그건 참 좋은거 같아요. 영화와 함께 봐서 더 좋은 책이었습니다. ^^

페넬로페 2023-03-01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잘 몰라도 도로시 카운츠의 저 사진은 너무 유명하죠!
세상에 악인도 많지만 더 좋고 의식있는 사람이 많아 그나마 세상이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영화도 봐야겠어요.

바람돌이님!
내일부터 다시 출근하시는데 건강 유의하시고요^^

바람돌이 2023-03-01 22:34   좋아요 2 | URL
영화도 좋았습니다. 생각보다 제임스 볼드윈의 영상자료가 많이 나와요. 그의 목소리, 표정 이런 것들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오랫만에 출근하려니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게 어찌나 많은지 하루종일 부산한 하루였네요. 걱정하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떻게 되었나요, 라울? 어디에 있던지 모든 일이 잘되기를 기도합니다. 1973년 오빠가 남긴 말을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새로운 메타포가 있다. 새로운 소리가 있다. 새로운 관계가 있다. 남성과 여성은전과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도 달라질 것이다. 그들은 돈버는 일을쓸모없게 만들 것이다. 인간의 삶을 그보다는 가치 있게 하라. 일의개념을 고역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회복하라."
_2009년 4월 글로리아 카레파-스마트가 라울 펙에게 보낸 편지 - P13

미국 남부의 한 여성하나님은 살인도 용서하시고 간음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흑백통합을 하려는 자들에게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 저주하십니다. - P39

우리 중 누군가는 도로시와 함께 있어야만 했다!
바로 그날, 화창한 오후에프랑스를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파리에 눌러앉아알제리 문제나미국 흑인 문제를 논하며 빈둥댈 수는 없었다.
다들 자신의 몫을 하고 있었고나도 돌아가 내 몫을 해야 할 차례였다. - P41

빛나는 공화국에서 태어난 미국 니그로의 경우... 태어나는 순간부터 달리 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나뭇가지와 돌과 얼굴은하얗다고 여기게 되죠. 거울을 보기 전까지는 자신도 하얗다고여깁니다. 그러다 5살, 6살, 혹은 7살쯤 되면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응원하던 게리 쿠퍼가 인디언을 몰살하는 장면에서 그 인디언이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거든요. - P53

문제는 일종의 냉담함과무관심인데, 이야말로 분리 정책으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하는 대가입니다. 분리 정책의 문제는 바로 냉담함과 무관심입니다. 당신은 저쪽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알고 싶지않은 거죠. - P75

미국에서 나는 싸울 때만 자유로웠다.
쉬면서는 도무지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쉴 곳을 찾지 못한 이는싸움에서 길게 버티지 못한다...
젊은 백인 혁명가는대체로 흑인보다훨씬 낭만적이다. - P86

니그로는 한 번도 미국 백인들이 믿고 싶었던 것처럼 유순했던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화였죠. 우리는 둑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지내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어요. 매우 잔혹한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고 있었단 말입니다. "니거"는 자기 자리에서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습니다. - P87

백인의 증오는 공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밑도 끝도 없고 이름도 없는 공포.
한없이 두려워하지만실체는 사실 그의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 P98

TV 속 이미지들은 시청자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안심시키기 위해서 고안된다.
이미지들은 또한 세상과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대할 수 있는 능력을 훼손한다. - P125

폴 바이스흑인이나, 백인이냐에 초점을 맞추면 이 자리의 주제를 강조할수는 있겠습니다만, 이는 강조하다 못해 과장하는 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집단에 묶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한 집단으로 묶게 되죠. 저는 학문에 반대하는 백인보다 흑인 학자들과 공통점이 더 많습니다. 볼드윈씨도 문학에 문외한인 사람보다백인 작가와 더 공통점이 많고요. 그러니 우리가 왜 피부색에만집중해야 하나요? 종교도 있잖아요? 아니면 다른 뭐든? 사람들을연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말입니다. - P127

작가를 정체성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러려면 삶의모든 안테나를 꺼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이 사회를 비판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죽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두려운데 타자기 앞에 앉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한 가지는 좋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이런특정한 사회적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요. 제 공포는 마음속 피해망상이 아니라 모든 경찰, 모든 고용주,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보이는 현실의 사회적 위험이었습니다. - P128

"하지만 당신은 너무 신랄해요!"
글쎄, 내가 신랄한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신랄한 거라면,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마치 인생은 신랄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미국인의 외면 또는 비겁함을 용인하고 싶지 않아서다. - P140

백인들이 해야 할 일은 애초에 왜 "니거"가 필요했는지 각자의 마음에 물어보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니거가 아니라 사람이니까요. 그러나당신생각에 제가 니거라면, 그건 당신에게 니거가 필요하기 때문이겠죠.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해야할 질문이고 이 나라 백인들이 스스로에게 해야할 질문입니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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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휴가 여행 가면서 어차피 밤에 할일도 없는데 뭐 하면서 이 책을 넣어 갔다.

하지만 밤마다 우리는 술도 없이 음료수와 커피와 과자를 앞에두고 수다를 떨어댄다고 역시나 펼쳐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가져왔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야 다 읽은 책. 

나는 책을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고싶은데 사실은 여행가서 노는걸 더 좋아하는 거구나...... 

여행가서 책읽는분들 보면서 나도 저거 해봐야지 했지만 아직은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까 생각나네. 

대학교 1학년 때 당시 불법써클 몇명이서 산에가서 책본다고 배낭에 책을 5권인가를 (그것도 벽돌책) 넣고, 그외의 짐도 넣고 계룡산을 넘어가다가 낙오할 뻔 했던거. 그 때 내 얼굴 하얘지면서 눈 돌아가는 거 보고 불쌍하다고 제 배낭 대신 들어주셨던 지나가던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책들은 한권도 못보고 밤마다 술만 먹다 왔어요. ㅠ.ㅠ



하여튼 중요한건 잭 리처!

다락방님덕분에 이 시리즈를 보는데 시리즈 딱 중간 8권째에 와서야 주인공 잭 리처가 진짜 좋아졌다. 

물론 앞 시리즈에서도 잭 리처를 좋아했지만, 이번 권에 와서 왜 내가 이 잭 리처를 좋아하는지를 알게되었다는 얘기다. 

이번 편 <어페어>는 과거로 돌아가서 잭 리처가 군대를 그만 두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을 다루며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더 그의 생각이랄까 이런게 더 와닿는다.


그동안 시리즈를 읽으면서는 잭 리처는 아무런 소속이 없는 그냥 떠돌이 자유인이니까 당연히 법과 절차보다는 응징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특히 법을 통해 빠져나갈 가능성이 많은 진짜 나쁜 놈들에 대해 바로 응징을 하는 데서는 속시원한 후련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어페어>를 보면서 알게 된건 잭 리처의 그런 면은 그가 조직에 있을 때나 아닐 때나 똑같다는 것이다. 특히 부와 권력을 통해 빠져나갈 여지가 너무 많은 범죄자에 대해 잭 리처는 법과 절차를 따르지 않고 그냥 응징해버린다. 일종의 정의의 칼, 아니고 주먹을 받아랏이랄까? 타고난 범생이로서  주어진 제도의 한계를 못벗어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잭 리처의 활약은 카타르시스 그 자체이다. 좋다. ^^


또한 마초로서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이 사내가 그렇지 않은 것도 너무 좋다. 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 사랑을 하는 방법도 좋다. 책 중간에 여자 주인공의 입을 빌려 나오는 대사가 있다.


"당연히 아픔이 있었죠. 슬픔과 상실감도 있었고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체념이었어요. 늘 있어왔던 일이라는 거죠. 만일 미시시피에서 살해 당한 여성들이 오늘 밤 무덤에서 모두 일어나 시가 행진을 한다면 당신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될 거예요. 아주 긴 행렬이라는 것과 참가자들 대부분이 흑인 여성들이라는 것, 이 지역에서는 가난한 흑인 여성들이 끝없이 살해 당하고 있어요. 부유한 백인 여성들이 살해 당하는 일은 아주 드물어요." -193쪽


 3명의 여성이 살해당했는데 그 앞의 2명의 여성은 흑인 여성이어서 조명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백인여성이 살해되어서야 뭔가 조사를 하고 대책을 세우는 1997년의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런 사회에 대한 진단이 이 한마디에 나오고, 주인공 잭 리처가 이런 것에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좋다. 


그리고 <어페어>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마지막에 나타나는 잭 리처의 사고방식이다.

오랫동안 몸담았고, 어쩌면 그의 평생의 유일한 공간이었던 군대를 떠나면서도 그는 자유롭다. 


나는 서른 여섯살이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내가 극히 일부밖에 보지 못한 한 국가의 시민이었다. 갈 곳도 있었고 할 일도 있었다. 도시도 있었고 시골도 있었다. .......내가 원한다면 친구도 있었고 원하지 않는다면 고독도 있었다. 그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도로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중 아무 도로나 고른 뒤, 한쪽 발만 차도 위로 내디뎠다. 그러고는 한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490쪽



인생의 어떤 선택에서 이렇게 쿨할 수 있을까? 사실은 이런 태도로 삶을 살고 싶은데 지금도 여전히 나는 작은 일에도 안달복달하고, 미래에 대해서 여전히 과잉걱정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잭 리처의 삶의 태도를 보면서 대리만족과 그와 똑같지는 못하더라고 삶의 온갖 장면들에 일희일비할게 뭐냐 뭐 그런 마음을 또 가져보는데 어쨌든 잭 리처는 이번 편 <어페어>에서 굉장히 멋있었다. 


단양과 제천으로 갔던 겨울 가족여행에서 건진 사진 몇장 투척 하는 것으로 그동안 책 못읽은거 퉁치기. ^^

나는 잭 리처처럼 한쪽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는거 못하고, 남편이가 열심히 운전해주는 차에 실려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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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14 0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은 혼자거나 저마다 시간을 보낼 때 보기 좋겠지요 바람돌이 님은 식구들과 밤에 이야기하다니 좋으셨겠습니다 그래도 이 책 한권 보셨군요 잭 리처가 멋지게 보였다니, 앞으로도 이 시리즈 보시겠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3-02-15 00:01   좋아요 1 | URL
일상에서는 다들 자기 일 하느라 바쁘니 사실 가족간의 대화는 커녕 같이 밥먹기도 힘들어요. 가족끼리 어쩌다가 한번이라도 여행을 가게 되면 한 방에서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앉아서 수다를 막 떨게 되는듯요. 이게 가족여행의 좋은점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이 책은 사실 여행 갔다와서 집에서 늘어져 있으면서 읽었어요. 여행지에서는 펴보지도 못했답니다. ㅠ.ㅠ

다락방 2023-02-14 0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왓 바람돌이 님 찌찌뽕!!
저도 방금 잭 리처 좋다고 페이퍼 썼는데 바람돌이 님도 잭 리처 좋다고 글 쓰셨네요 ㅋㅋㅋㅋㅋ
잭 리처로 하나되는 우리입니다. 뽀에벌!!

바람돌이 2023-02-15 00:03   좋아요 0 | URL
앗 찌찌뽕!!! 저 오늘 오랫만에 출근해서 슬펐어요. 하루종일 바빠서 서재 글도 못읽고.... 곧 읽으러 달려가겠습니다. 시리즈가 계속 될수록 잭 리처 막 좋아져요. 잭 리처 뽐뿌질 막 해주신 다락방님 감사해요. ^^

blueyonder 2023-02-14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 사진 정말 멋지네요!

바람돌이 2023-02-15 00:04   좋아요 1 | URL
다른 계절과는 다른 겨울만의 풍경이죠. 겨울 풍경이 굉장히 황량해서 사실 예쁜 사진이 안 나오더라구요. 어쩌다 건진 사진입니다. ^^

은오 2023-02-14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어디 갈 때 괜히 가방 무겁게 책들고가서 거의 안 읽고 오는거 너무 공감돼서 빵터졌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혼자 여행가면 읽는데 같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안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15 00:05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저는 혼자 여행간적이 진짜 없네요. 늘 누군가가 내 옆에 딸려오는.... 귀찮게시리.... 그래서 더더더 책을 못읽습니다. 이젠 안 가져가려구요. ㅎㅎ 그래놓고 다음 여행 가방 싸면서 또 고민하고 있을 제가 훤히 보입니다. ㅠ.ㅠ

책읽는나무 2023-02-15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잭 리처도 좋고, 단양 제천 풍경도 좋네요^^
겨울이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곧 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겠죠?
잭 리처의 매력은 이 책에서 진정 뿜어져 나오는군요.

여행가서 책 읽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공감 공감 대공감입니다ㅋㅋㅋ
저는 앞부분 몇 장정도 읽어왔던 것 같아요.
그나마 다음 날 새벽에 눈 떴을 때 말이죠.
그래서 낮엔 피곤해서 다크써클 내려와 있구요. 혼자 여행이라면? 책 읽어지려나요?
저도 그래본 적 없어서...ㅋㅋ

바람돌이 2023-02-15 23:46   좋아요 1 | URL
여행기간동안은 사실상 날이 따뜻해서 놀기 좋았습니다. 목련꽃망울이 올라오는 곳도 있더라구요.
2월만 되어도 봄이 오는구나 뭐 그런 느낌이죠. ^^

전 아마 혼자 여행가도 책 못읽을거 같아요. 여행가면 워낙 하고싶은 것이 많아져서 막 산만해져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3-02-15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혼자 여행 가면 카페에서나 자기 전에 책을 좀 읽고 오는데,
다른 사람과 같이 가면 책을 거의 못 읽지만,, 그래도 항상 가져갑니다^^
1월에 친구들이랑 여행 갈 때도 책을 가져갔으나 역시 한페이지도 읽지 않았다는.
4일 여행이니 두 권 가져갈까 하다가 한 권만 가져가길 잘했다는 생각 ㅎㅎ
두 분이 이렇게 좋다고 하시니 진짜 잭 리처 읽어봐야겠는걸요?

바람돌이 2023-02-15 23:49   좋아요 1 | URL
전 거의 책을 안가져가다가 요즘에야 한 두권씩 넣어가는데 이제 안가져가려구요.
역시 안읽히는건 안읽히는거야하고 알게 된 시도였네요. ㅎㅎ

잭 리처 시리즈는 일다 재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이 매력적입니다. ㅎㅎ
그러나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는 링컨 라임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남녀 주인공 모두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두 사람의 연애도 너무 너무 좋습니다. ^^
 

퍽! 완벽한 일격이었다. 타이밍, 힘, 충격. 모든 게 제대로 들어맞았다. 거기다 놀라움까지 사람들은 머리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다. 인간의 머리는 원래 뭘 박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오래된 유전 인자에 그렇게 새겨져있다. 박치기는 싸움의 판도를 바꾼다. 박치기가 사용되고 나면 싸움은 잔인성과 야만성을 띠게 된다. 갑작스러운 박치기 공격은 칼만 사용하기로 한 싸움에 엽총을 들이대는 것과도 같다. - P116

"아니야." 내가 말했다. "난 도움이 필요 없어. 난 내가 하는 일을 잘 알고있어. 게임을 하는 법도 물론 잘 알고 난 결코 내 양심을 저버리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자네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어. 그리고 자네 도움 없이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날 거야." - P128

"당연히 아픔이 있었죠. 슬픔과 상실감도 있었고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체념이었어요. 늘 있어왔던 일이라는 거죠. 만일 미시시피에서 살해당한 여성들이 오늘 밤 무덤에서 모두 일어나 시가행진을 한다면 당신은 두가지 사실을 깨닫게 될 거예요. 아주 긴 행렬이라는 것과 참가자들 대부분이 흑인 여성들이라는 것. 이 지역에서는 가난한 흑인 여성들이 끝없이 살해당하고 있어요. 부유한 백인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일은 아주 드물어요." - P193

처음부터 치기와 겉멋에 겨운 사내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그들은 설치류를 순교자로 둔갑시킬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거룩한 희생을뒤따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것 또한 분명했다. 피와 뇌수는 현실이다.
그리고 거짓된 열정으로 뭉친 집단은 현실을 결코 환영하지 않는다. - P297

나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내가 극히 일부밖에 보지 못한한 국가의 시민이었다. 갈 곳도 있었고 할 일도 있었다. 도시도 있었고 시골도 있었다. 산도 있었고 계곡도 있었다. 강도 있었다. 박물관도 있었고 극장도 있었다. 모델, 클럽, 술집, 간이식당도 있었다. 유명한 전적지도 있었고.
건국과 구국 영웅들의 탄생지도 있었다. 역사도 있었고 이야기도 있었고 전 - P490

설도 있었다. 내가 원한다면 친구도 있었고 원하지 않는다면 고독도 있었다.
그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도로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중 아무 도로나 고른 뒤, 한쪽 발만 차도 위로 내디뎠다. 그러고는 한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P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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