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주제인 ‘젠더 갈등‘과 ‘세대갈등‘도 상당 부분 ‘공감의 게임‘이다. 흥미로운 건 이 갈등들엔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통 없는 ‘젠더 갈등‘과 ‘세대갈등‘에 소통의 싹이나마 틔우기위해서라도 다정한 편파성보다는 냉정한 공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달리 말하자면, 다정한 편파성을 양산해내는부족주의에서 탈출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P9

조고은이 지적한 두 가지 오해는 어떻게 볼 것인가?
첫 번째 오해와 관련, 나는 한국에선 페미니즘 운동이 너무과도한 게 아니라 운동이 겨냥하는 타깃이 정확하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싸워야 할 대상(페미니스트 코스프레‘만 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성세대 남성)은 놓아두면서, 이대남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변화만 추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대남이 그런 전략에 반발하는 걸가리켜 백래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두 번째 오해와 관련,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백래시로보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에선 조고은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 주목의 목적과 내용은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색 역시 투쟁이다.
왜 투쟁을 타도 위주로만 여겨야 한단 말인가? - P33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일자리 영역에선 사회전 분야에 걸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여성 차별이 심해진다. 은밀하게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인지라 정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차별해소 방안이 장기적·포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세대간 불공정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 차별로 인한 수혜는 기성세대 남성이 보고 있지만, 그 차별을 해소하겠다며 이대남에게 집중된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게 이대남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있는 것이다. - P34

사실 그간 이대남 관련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전체 성별 임금 격차의 책임은 이대남이 아닌 기성세대에게따져 물어야 할 것이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나이가 들면서 벌어지는 성별 임금 격차의 요인이기 때문이다.  - P50

상징 투쟁과 진영 전쟁은 모든 문제를 흑백 이분법으로 환원* 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무엇이건 상징이 되면 타협이없는 ‘올인 게임‘이 되고 만다. 상징은 늘 편 가르기에 따라
‘성역화‘되거나 ‘악마‘ 되기에 이런 상징투쟁에 타협은없다. - P62

"남성을 규탄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선대 여성들이억압받아왔다는 역사적 맥락에 의해 언제나 정당했고, ‘이에 반박하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는 세상을 어지럽히려는불순함으로 언제나 매도당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선대의 잘못들까지 모두 뒤집어씌운 채 그렇게 입을 다물고조용히 있을 것을 강요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려 하는 이들은 언제나 여혐주의자, 복고주의자, 극우, 대안우파 따위의 불편한 꼬리표를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2030 남성들의 분노는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물리적, 물질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정신, 문화, 관념적인 억압의 문제입니다."1" - P63

젠더 갈등에서 상징 투쟁이 자주 일어나는 것에 대해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상징투쟁은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이미 정해진 모범 답안에서 후퇴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 P74

"20대 남성들은 성평등과 페미니즘을 다른 개념이라고 봐요. 이대남이 생각하는 성평등은 ‘육아? 우리도 할게‘, ‘경력 단절? 보상해야지‘ 이런 식으로 과거에 여성만지고 있던 의무나 페널티를 완화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게 현재 여성들에게 여성 가산점, 여성할당제와 같은 ‘결과의 평등‘을 제공하자는 건 아니에요." - P91

구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엔 1990년대생은 신인류다. 페미니즘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구세대에게 페미니즘은 무조건 지지해주어야 할 당위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한다. ‘무조건 지지해주어야 할 당위‘라는 건 형식적인 시혜 수준의 제스처일뿐, 그것은 실천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점이다. 즉, 공적영역에선 남성 페미니스트인 척하지만, 사적 영역에선 전혀 다른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미투 운동‘에서 드러난, 수많은 진보주의자의 성폭력 작태를 통해 질리도록 입증된 사실이다. - P92

반면 1990년대생에겐 그런 이중성이나 위선이 없다.
구세대는 생활은 반페미니즘을 실천하면서 머리로만 페미니즘을 긍정하는 반면, 1990년대생은 출생 이후 생활이곧 페미니즘 그 자체였다. 2008년과 2018년의 통계청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자. 2008년엔 가사 분담에 대한 견해를 묻는 항목에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응답이 20대남성은 44.0퍼센트, 20대 여성은 61.3퍼센트로 나타났다. 2018년엔 어떻게 달라졌는가? 놀랍게도, 20대 남성은80.0퍼센트, 20대 여성은 83.0 퍼센트였다.  - P93

1990년대생 남성의 반페미니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과거 세대의 과오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데, 페미니즘은 ‘남자 대 여자‘라고 하는 전통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 P95

맞다.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으로서 정체성 정치를추구함으로써 사실상 집단 간 증오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는 기존의소통방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 이전에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야 한다. 어떻게? 시민단체를 포함해 공익을 위해 일하는 단체나 기관들이 바로 그런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 P124

작가 임명묵은 개딸 현상을 아이돌 팬덤의 문법이 정치 팬덤에 전면 이식된 것으로 보았는데, 이 진단이 의미심장하다. 아이돌 팬덤의 주요 행동강령은 ‘절대적 비타협주의‘이기 때문이다. 오직 오빠를 위하는 일에 타협을 해야 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개딸은 오직 이재명을 지켜야한다는 이유로 검찰 개혁을 외쳤다. 검찰 개혁의 여러 방법론 가운데 ‘절대적 비타협주의‘를 내세우는 민주당 강경파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와 그 리더인 최강욱을 위해서라면 페미니즘에 등을 돌리고 그 영웅인 박지현을 내쫓아야한다는 게 개딸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 P137

문제는 이런 현실주의 페미니즘은 인권운동으로서보편적인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일 게다. 개딸 현상이
‘피해 호소인‘ 사건처럼 ‘정치권력 우선주의‘인지 아니면아이돌 팬덤의 변형일 뿐인지 아직 단언하긴 어렵다. ‘개딸도 모르는 개딸‘이란 말처럼 문화적 현상으로서 아직 형성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개딸이 부디 2년 전 민주당여성의원들이 저지른 ‘피해 호소인‘ 사건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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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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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도 그렇고, 일상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고 나는 다양성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생각은 다양할 수 있어, 다양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거야. 인간은 다양하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고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해. 뭐 이런 말들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이 책에서 뭐라고 하는지 한번 보자.


범주 설정은 개념을 인식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다'문화 가족의 전제는 문화의 기준은 하나이고, 그 하나는 한국이라는 우리 중심적 인식이다. 특히 농어촌의 다문화 가족에게는 이주 여성을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에 동화시키려는 일반의 읜식과 공식적인 정책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처럼 다양성은 다양한 가치가 아니라 '하나'를 중심으로 배제된 나머지를 말한다. -158쪽


내가 쓰던 다양성이란 말은 어떤 의미로 쓰던 것이었나를 문득 돌아보게 한다.

이 말을 쓸 때 나는 이 말들이 전제하고 있는 억압과 배제를 신경 썼던가? 

솔직히 생각도 못해본 지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공부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게 바로 이런 지점이다.

나의 언어를 새로 점검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고 배움이 아닐까?

평소에도 내가 하는 말이 나를 규정짓고, 나를 표현하고, 나의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 앞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결국 질문이다.

왜 공부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


새로운 지식, '나'와 지구를 살리는 지식을 생산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 융합 글쓰기는 그 중 하나다. 융합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가치관, 연결 능력이다. 평화학, 여성학, 환경학은 하나의 학문 분과가 아니라 가치관이다. -11쪽


공부의 결과가 나와 타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고 억압의 기제로 작용하다면 그 공부는 공부라고 할 수 있을까? 저 인용문에서 융합 글쓰기라는 말을 공부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며, 부문과 부문, 사람과 사람, 존재와 환경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고려하지 않을 때 우리는 가방 끈만 긴 무식하고 무례한 못 배운 인간들을 허다하게 만나는 것이다. 

나는 비단 공부에서 가치관의 문제가 학문의 영역에만 머무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므로 일상의 영역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공부가 무엇인가를 알고, 나의 언어를 점검하고, 새로운 언어, 더 나은 언어를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삶을 좀 더 괜찮게 살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당연히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융합'이라는 단어이다. 

융합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어감이 뭔가를 통합한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딱인데 이 글에서 말하는 융합은 그것이 아니다.

융합은 경계를 넘는 것이고, 따라서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가로지른다는 뜻을 가진 '횡단'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 때 가로질러야 하는 각각은 분절된 단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관통하는 더 큰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관통의 새 구조를 만날 때 앎은 확장되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글의 맨 처음에서 말했던 다양성, 배려, 관용이라는 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새롭게 생각하게 된 개념이다.

너무나도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고, 늘 자주 쓰던 말이었는데, 내가 놓쳤던건 저 말들은 모두 말하는 주체인 '나'의 우위를 전제로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배려와 관용은 누가 베푸는가?

바로 저 말을 내뱉고 있는 주체인 '나'다.

다양성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병렬로 두고 똑같은 비중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 말속에는 이미 위계성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A가 옳다고 생각하고 주장하지만, 너의 생각도 고려는 해볼게 정도가 내 다양성개념의 한계일때가 부지기수였고, 그 때 A는 하나의 고정된 기준점으로 작용할 때가 많았다는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다문화가정의 아동을 대하는 것 역시, 그 아동을 어떻게 한국사회와 문화에 잘 적응하게 할 것인가가 중심이지, 그 아이의 문화와 한국 아이들의 문화를 똑같이 놓고 같이 또 다른 새 문화를 만들 것을 고민하지는 않는 것.

이것이 결국 다양성이란 말 속에 숨어있는 나의 패권이었던 것이다. 


지식은 내가 처한 현실에서 - 미시에서 거시로, 아래에서 위로 - 만들어지는 새로운 몸이다. 융합은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변태의 과정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연속선에서 몸(생각)이 변하고 다른 지식이 생산된다. 변태는 알아가는 몸, 그 변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53쪽


어떤 지식도 멈춤에서는 생성되지 않는다. 

부단히 나의 현실을 살피고, 내가 발딛고 있는 곳, 내가 만나는 자연과 사람들과의 교류와 교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지식의 형성과정이고, 공부이며 나의 몸이 현재 서있는 곳 포지션을 인식하는 것이다. 

수많은 포지션 중 어떤 포지션을 선택할 것인가는 내가 지금 누구와 대면하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선택되어 질 수 있다. 

이 때는 내가 선택한 위치에서 기존의 지식을 재조직해야 한다. 

그것이 공부다..


그러면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우리 대부분이 착취하는 자의 언어로 말하고 욕망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 그리고 그 욕망에서 먼저 벗어날 것.그럼으로써 나를 위한 새로운 언어의 첫단계가 준비된다.

그리고 '나는 모른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이해력부터 의심하고 내가 무엇을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지를 알아야 한다.

문해력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의미를 해석 못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가 모른다는 것이 진정 나의 가치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려면 내가 모른다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함께 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융합은 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융합하는 개별적 몸들이 접속하는 것이고, 각자의 가치관이 충돌하여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심히 쓰는 것!

쓰는 것 이야말로 최고의 공부이다.

왜냐하면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열심히 함께 읽고, 얘기하고, 쓰는 것 - 그 전제에 여성주의 , 생태주의, 평화주의를 두고 - 그럼으로써 융합을 추구하는 다양한 몸들과 생각이 만나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

그곳에 새로운 지식, 공부가 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힘도 역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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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9-07 21: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르게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고 나서 쓰기는
일종의 강박이 되어 버린
그런 느낌입니다.

심지어 책 읽고 나서 책에
대해 쓰지 않는다면 아예
읽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
다라는 극단적...

내재된 게으름과 처절하게
투쟁하는 자아의 모습을 보
게 됩니다.

바람돌이 2022-09-07 22:40   좋아요 4 | URL
저도 딱 레삭매냐님 상태와 똑같아요. 진짜 강박인지 읽고 쓰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고요.
그리고 쓰는 것은 정말 너무 힘들어서 읽는것보다 몇배의 힘이 들고..... 그러니까 자꾸 글 쓰다가 딴 짓하고.... 막 가서 설겆이도 하고 냉장고도 뒤지고.... 책읽을 때는 읽는게 너무 좋아서 아무 생각도 안드는데 말이지요. ㅎㅎ
정희진샘 말대로 쓰는 것은 내가 뭘 모르는지를 알게 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자꾸 생각을 해야 하니까 힘들어서 그런것 같기도 해요. 게으름이 아니라요. ㅎㅎ

젤소민아 2022-09-08 01:31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말씀 깊이 공감해요. ‘쓰기‘가 따르지 않는 ‘읽기‘는 가뭇하게 사라지더군요. 독서노트 쓰는 게 읽기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지만, 귀하답니다~~

공쟝쟝 2022-09-07 22: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근사한 리뷰예요. 역시 우리의
바람
돌이
님 💪💪💪

바람돌이 2022-09-07 22:41   좋아요 4 | URL
앞으로 당분간은 제가
바람
돌이
입니다. ㅠ.ㅠ
다락방의 미친 여자 리뷰 쓸때까지 할까요?
닉네임과 상관없이 근사하다고 해서 감사해요. 아 저는 좋다 예쁘다 이런말도 좋지만 저 근사하다는 말은 왠지 진짜 근사한 느낌이라서 너무 좋네요. ^^

mini74 2022-09-07 2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바람처럼 빠르게 읽으시는거 같아요 바람돌이님 ~ 그럼에도 리뷰는 언제나 명품 *^^* 함께 하는 공부 쓰는것이 최고의 공부 ~ 돌이님 말씀에 공감 공감 합니다 *^^*

바람돌이 2022-09-07 22:45   좋아요 2 | URL
저 지금 놀잖아요. 출근 안하죠. 마지막 고딩이었던 둘째가 올해 대학생이 되었죠. 진짜 저 자신을 보살피는 것 외엔 할일이 없어요. 아 진짜 계속 이렇게 살려면 역시 로또를 사야겠죠? ㅎㅎ
저는 항상 혼자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어떤 책을 같이 읽고 글을 쓰고 하는건 여기 여성주의 책읽기가 정말 오랫만이거든요. 그런데 진짜 너무 좋아요. 미니님 글 보면서도 항상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페넬로페 2022-09-07 22: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부는 끝이 없죠.
그리고 그것이 융합의 공부가 되어야하는데 늘 어려워요.
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공부다~~
공감합니다, 바람님^^

바람돌이 2022-09-07 22:46   좋아요 4 | URL
쓰는 것이 최고의 공부라는건 정희진샘 말씀! 저도 공감해요. ^^
근데 저 융합이라는 말은 말의 어감이 진짜 무언가를 통합한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사실 정희진샘 말대로의 의리로 통용되기는 좀 힘들것 같아요. 뭔가 딱 맞는 다른 말을 찾아야 될듯..... ^^ 저는 차라리 횡단이란 말이 더 좋던데말이죠. ^^

젤소민아 2022-09-08 0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작가는 ‘쓰기‘에 천착하는 분이라 역시 사유과 문장이 좋죠~리뷰 고맙게 읽었습니다~자주 들를게요~

바람돌이 2022-09-08 22: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정희진샘은 진짜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읽을 때마다 하게 되네요. 글이 좋다는 건 그만큼 많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가치관을 바르게 하기위한 노력의 결과라는걸 생각하게 되네요.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

희선 2022-09-08 0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글 쓰기 좋군요 글을 쓰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조금이라도 나은 걸 생각하죠 어떤 말은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중요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융합은 평소에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르기도 하네요 바람돌이 님이 말씀 하신 말이 더 좋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2-09-08 22:27   좋아요 1 | URL
나쁜 사람에서 나아가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또 참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최소한 나쁜 사람은 되지 말자 뭐 그런 결심이랄까요? 그래도 그렇게 노력하면 조금은 좋은 사람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ㅎㅎ

coolcat329 2022-09-08 0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번 리뷰도 정말 좋네요. 공부를 하고 글을 써봐야 자신의 무지함을 알 수 있다... 제가 늘 깨닫는 점이네요.
마냥 좋은 말인 줄 알았던 다양성, 관용과 배려에 저도 모르는 우위의식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구요.
책읽고 공부하기의 중요함을 다시 느낍니다.

바람돌이 2022-09-08 22:29   좋아요 0 | URL
나는 좋은 뜻으로 얘기했는데 그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소통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이 책 읽으면서 아 그건 소통이 안된게 아니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말했겠구나 싶더라구요. 이렇게 저를 돌아보게 해주는 글 너무 좋아요. 그래서 요즘 정희진샘 글이 더 좋아지고 잇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2-09-08 07: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깨닫고 깨이고 느낀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바람
돌이님 리뷰 읽으니까 그때의 기분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기분이어 좋네요^^
특히나 저도 이 책 먼 곳은 아니지만 여행길?에 고속버스 안에서도 읽고, 거제 가서도 읽었던 기억이 저절로 떠올랐어요. 돌이님 ktx에서 책 인증샷 올리셨을 때, 저는 한 달 전 고속버스 타고 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흐뭇 했었어요.
잘 읽고 갑니다.
바람
돌이님^^

바람돌이 2022-09-08 22:34   좋아요 2 | URL
끝까지
바람
돌이!!!
우리 나무님 참 뒤끝있으셔요. ㅎㅎ 저는 저도 뒤끝 길기 때문에 뒤끝있는 사람 좋아합니다. ^^

기억나요. 여름에 남편분 계신 거제도 가시면서 읽고, 작은 방에서 읽고 했던 거요.
어떤 책이 특별한 기억과 연결되는 것도 참 좋은거 같아요. 이 책을 그냥 기차에서 읽고 끝냈더라면 어떻게 읽었는지 잊어먹겠지만 이렇게 서재에 글 쓰고 여러분들이 말 걸어주시고, 나무님처럼 고속버스의 기억과 연결해주시고 이러면서 진짜 독서의 여운이 더 오래남는 그런 기억이 되네요. 음.... 좋아요. ^^

책읽는나무 2022-09-09 09:30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제가 너무 짖궂었죠?
죄송해요ㅜㅜ
바람돌이님이 편해서 넘 질척거렸네요~^^;;;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ㅋㅋㅋ

저 어제 오후에 거제 내려왔어요.^^
오늘 남편이 오전 근무 한대서 근무 마치면 같이 성묘 가려고 넘어왔어요.
어제 오는 길에 차도 좀 막히고 터미널에 사람들도 많고..명절 분위기가 나더군요.
바람돌이님도 명절 편안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넙죽!!!🙇‍♀️🙇‍♀️

바람돌이 2022-09-12 16:50   좋아요 1 | URL
짖궂은 나무님을
바람
돌이가
좋아합니다.
^^

명절 즐겁게 잘 보내셧나요.
저는 명절을 싫어해서 항상 그냥 그냥입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2-09-08 08: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양성, 배려, 관용과 관련해 ‘나를 우위를 전제‘한 부분을 적어주신 게 특히 마음에 와 닿아요. 자꾸 잊어버리기 쉬운 부분인데 저도 읽으면서 그 부분이 딱 걸리더라구요. 바람돌이님 페이퍼를 읽고 나니 이 책을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근데 쓰기가... 바람돌이님 같은 고수님에게도 힘든 일이군요. 위로가 됩니다 ㅋㅋㅋㅋㅋㅋ 전 쓸 거 생각하거나 머리속으로 준비하면서, 아... 내가 왜 이럴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이 일을... 이럴때가 있거든요.

바람돌이 2022-09-08 22:37   좋아요 2 | URL
아 진짜 저런 말들이 나를 우위에 둔 말이라는건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진짜 맞는거예요.
말이 참 무섭구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말은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공정하기는 한가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결심도 하게 되네요.

쓰는거 정말 힘들지 않나요? 저는 저보다는 단발머리님 글이 훨씬 좋기 때문에 단발머리님이 오히려 저보다 덜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데요. ㅎㅎ 글 쓸때마다 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면서 글 쓰는 중간 중간 핸드폰 게임 무진장 합니다. ㅎㅎ
 
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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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북펀드 명단에 나의 이름을 바람과 돌이로 나누어 놓은 것에 대해 분개하지만, 그래도 책은 기대만발입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제인오스틴부터 이디스워튼까지 열심히 읽고, 11월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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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9-06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나왔군요 !

펀딩 주최측에서 이런 실수를
하시다니요. 재판 찍을 적에
정정해 주시지 않을까요 ^^

바람돌이 2022-09-06 20:10   좋아요 1 | URL
안해준다에 걸겠습니다. ㅎㅎ

stella.K 2022-09-06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 정말 이건 대단한 실수인데요?
바람과 돌이라닛!
알라딘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ㅋㅋ

바람돌이 2022-09-06 22:27   좋아요 3 | URL
이거 알라딘측 보다는 출판사측에 가서 각성하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쇄는 아무래도 출판사 관할인듯도 하고???? 펀딩 명단을 넘겨준건 알라딘인것 같기도 하고???? 어디 가서 시위를???? ㅋㅋ

책읽는나무 2022-09-06 2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판 찍을 땐 우리 바람돌이님 닉넴 정확하게 찍어주셨음 좋겠네요.^^

바람돌이 2022-09-07 10:51   좋아요 2 | URL
기대하지 않습니다. ㅎㅎ

공쟝쟝 2022-09-06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 돌이~~~

바람돌이 2022-09-07 10:52   좋아요 2 | URL
줄 바꿔야 돼요.
바람
돌이 ㅎㅎ

han22598 2022-09-07 0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과 돌이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바람돌이 2022-09-07 10:52   좋아요 1 | URL
글쎄 누굴까요? 아니면 이참에 그냥 짧게 바꿀까요? 바람과 돌이 중 어느게 나은지 투표라도 붙여볼까 뭐 그런 생각도 합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2-09-07 0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과 돌이~~
괜찮은데요 ㅎㅎ

바람돌이 2022-09-07 10:53   좋아요 3 | URL
그럼 페넬로페님부터 투표할까요? 바람과 돌이 중 어느게 더 좋을까요? 바람이 폼은 나지만 너무 흔하기도 하고..... ㅠ.ㅠ

페넬로페 2022-09-07 11:16   좋아요 2 | URL
그래도 저는 바람이 좋아요^^

scott 2022-09-08 12:13   좋아요 1 | URL
저도 사알짝
페넬로페님 말씀에 동감을 ㅎㅎㅎㅎ

yamoo 2022-09-07 2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북펀드에 참여하셨군요!! 근데, 실수도 너무 큰 실수인데욥!!
앗, 다시 보니 실수가 의외로 좋을 거 같습니다. 의도하지 않는 효과를 내는데요....바람과 돌이...으아~~~ㅎㅎㅎ
생각지도 않은 뉘앙스가...ㅎㅎㅎ

저두 한표! 좋은데요~~^^

바람돌이 2022-09-07 20:01   좋아요 1 | URL
닉네임을 아예 바람과 돌이로 바꿀까요? ㅎㅎ

mini74 2022-09-07 2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바람돌이님 ㅎㅎ 바람&돌이! 변신합체~~~ 막 무지개색 나오면서 합체 !! 하신거 아니에요 ㅎㅎ 글도 댓글도 넘 귀엽습니다 *^**

바람돌이 2022-09-07 21:06   좋아요 1 | URL
댓글들이 너무 귀여워서 어제부터 계속 웃고 있습니다. 슬슬 진짜 분노해야 하는게 아닌가 고민중입니다. ㅎㅎ

젤소민아 2022-09-08 0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람같이 구입한 책!! ‘미친 여자‘들의 쓰기가 몹시 궁금하답니다~~

바람돌이 2022-09-08 22:40   좋아요 1 | URL
저도 궁금은 한데 읽을 생각을 하니 아득합니다. ^^

프레이야 2022-09-09 0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바람 님과 돌이 님
바람돌이 님의 정체성을 꿰뚫어 본 걸까요 ㅋㅋ 저 막 웃다 일어나요. ㅎㅎ

바람돌이 2022-09-12 16:51   좋아요 0 | URL
저의 정체성이 뭔지는 저도 지금 헷갈리고 있는 중입니다. ^^

은오 2023-05-31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과 돌이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6-04 22:23   좋아요 1 | URL
은오님 지금 제 답 댓글만큼이나 뒷북이랍니다. ^^ 잘 지내시죠?

은오 2023-06-05 05:59   좋아요 1 | URL
보자마자 너무 웃겨서 뒷북이라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네~! 바람돌이님 보고싶었어염 ㅠㅠㅠㅠㅠ
 

융합은 환원주의와 반대의 길을 간다. 환원주의가 멈춤이라.
면 융합은 지속적인 이동, 재해석이다. 재해석은 창의력의 발판이고, 창의력이 필요한 이유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융합 능력, 즉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기존의 언어를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른 앎과 만나 혼란을 느끼면서 기존 개념에 의문을 품고, 차이와 경계의 기준을 재설정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안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 P179

요약하면 융합은 원래 존재했고(혼종성, hybridity), 대화가 필요하며(learning), 기존의 지식을 넘어서야 한다(trans~). 물론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 P191

대립하는 논리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융합은 충돌을 지향한다. 합치지말고 충돌 양상을 질문해야 한다. - P200

그들은 시간을 중심으로 삼아 세계를 해석했다. ‘원시 사회 - 봉건제 -자본주의‘처럼 문명의 발전에 따라 역사를 서열화하는 것, 역사를 과거의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 ‘세계 최초‘가세계 최고라는 인식, ‘~의 아버지‘라는 말처럼, 시원(始原)을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한 사회의 역사밖에 서술하지 못한다. 세계 200여개 나라가 동시에 같은 경험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동시대여도 지역마다 삶이 다른데, 하나의 시간을 기준으로삼아 사유하면 ‘문명인, 야만인‘ 같은 구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간 중심 사고는 한 사회(서구)가 기준이 되어 강자 중심의 보편성을 만든다. 나머지 사회는 서구를 따라잡아야 할 역사의 대기실로 간주된다. 타자(the others)를 만들어내려면 단일한 시간개념이 필수다. - P212

객관성은 중립의 대명사다. 그래서 진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너의 객관‘이 ‘내겐 폭력‘인 경우가 많다. 객관은 스스로 선재한다고 여겨지지만, 상황적 지식은 지식이 만들어진 조건을 파고든다. 어떤 조건에서 우리의 인식이 만들어졌는가. 그과정을 알아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모든 지식은 특정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 만사에 적용되는 지식은 없다. 시트콤처럼 어떤 테두리, 상황, 패러다임 안에서만 ‘웃기는 것이다. 다른상황에서 그것을 재연하면 ‘썰렁한‘ 이유가 그것이다. - P222

 이성애의 정상성은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간주했을 때, ‘남성‘은 여성/노인/가난한 사람/장애인 등 지배의 규범에서 배제된 ‘비(非) 남성‘을 상정했을 때만 가능하다. ‘서양‘은고정된 ‘동양‘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백인우월주의는 유색인종이라는 임의적 설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처럼 대개 언어는위계의 만남이다. 이분법은 A와 B가 아니라 기준으로 삼은 A와 그 외 것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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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05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히 222쪽의 글, 기억해 둘 글 같습니다. ˝어떤 조건에서 우리의 인식이 만들어졌는가˝하는 것.
조건이나 상황의 중요성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 인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간과해선 안 되겠습니다.
바람돌이 님의 발췌를 보니 저도 하고 싶네요. 에세를 읽고 좋은 문장을 올려 보겠습니다.^^

바람돌이 2022-09-06 14:29   좋아요 0 | URL
저 문장은 저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옳다고 별 생각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쓰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거나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지 뭐 이런 생각도 한번 더 하게 되고요.
페크님의 에세 문장 열심히 기다릴게요. ^^
 

새로운 지식, ‘나‘와 지구를 살리는 지식을 생산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 융합 글쓰기는 그중 하나다.
융합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가치관,
연결 능력이다. 평화학, 여성학, 환경학은 하나의 학문 분과가아니라 가치관이다.  - P11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이미 배제된(foreclosure)‘ 영역이 있다. 해방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질문하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한계가 아니라 축복이다. - P12

융합은 우리가 아는 지식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공부의 즐거움과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실천(practice)이자 내 생각을 분명히 알고 더 필요한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경계 넘기(rooting and shifting)다. - P16

융합은 계급, 젠더, 인종, 성정체성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상호 교차성 (inter-sectionality)과도 다르다. 계급, 인종, 연령, 지역, 종교를 통한 여성들 간의 억압은 교차하고 겹치는 더 커다란 구조의 매트릭스(母型)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융합의 의미다. 즉 융합은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이고 재구조화perfo이자 자유주의 사상의 질적 전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융합의가장 정확한 번역은 ‘횡단의 정치‘이다. - P21

약자는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애초부터백인 남성 외의 이들은 선제, foreclosure)되었다. 지동설부터 여성주의까지 새로운 사유는 어느 시대나 파문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나를 억압하려고 만든 말에 답하려 하면 백전백패다. 융합적 사고는 언어의 전제를 알고 자기 관점에서 기존지식에 대응하는 사고방식이다. ‘답정너‘는 폭력이다. 질문을 되돌려주거나 말을 궤도 밖으로 끌어내 ‘그들을 낙후시키자. - P40

지식은 내가 처한 현실에서 - 미시에서 거시로, 아래에서 위E로-만들어지는 새로운 몸이다. 융합은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변태(變態, metamorphosis)의 과정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연속선에서 몸(생각)이 변하고 다른 지식이 생산된다. 변태는 알아 가는 몸, 그 변화를총체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 P53

융합은 우리가 그때그때 ‘선택한 위치에서 기존의 지식을 재조직화하는 공부법이다.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 P57

프로이트를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예비 내담자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된다. 좋은 사람은 타인을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장점과 자원을 알아내는데 주력하고 삶의 대처 능력을 함께 모색한다. - P81

파이 통렬하게 지적한 대로 하얀 가면을 쓴 흑인은 백인과 같은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그의 흑인 개념은 헤겔식 노예보다 훨씬 종속적이다. 상대방에 대한 동일시와 욕망 상태에서는 변증이 발생할 수 없다. 당연히 상호 해방의 가능성도없다. 욕망의 특징은 절대성, 일방성, 그리고 주체적 종속이기때문이다.  - P89

문해력은 자신의 가치관과 무지에 대한 자기 인식의 문제다.
그러므로 문해력 향상의 첫걸음은 에포케 (epoche, 판단 정지)이다. ‘나는 모른다‘는 자세가 공부의 시작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력부터 의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 몸에는 이미많은 의미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지하다고 가정하는 데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가 중노동인 이유다.
잠깐의 판단 중지. 그 잠깐의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얇은 자기 진화의 과정이지 시비를 판단하는 행위가 아니다. 지식을 하나의 고정된 정보로 여기는 이들은 타인을 ‘가르치려 들지만‘, 알아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들은 우리를 가르친다‘. - P98

융합은 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융합하는 개별적 몸들이 접속하는 상태다. 융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각자의 가치관이 충돌하여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과 충돌할 자기만의 몸이있어야 한다. 이처럼 도반은 믿을 만한, 편한 길동무라기보다는자극과 긴장 관계에 가깝다. - P104

융합이 가성비 높은 공부인 이유는, 융합을 공부하려면 기존의 지식은 물론이고 그 지식과 융합할 수 있는 자기 가치관을 확립하는 공부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점을확립하고 응용하려면 연습(practice)과 현실 개입적 실천(praxis)이 모두 필요하다. - P115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실험외에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은 많지 않다. 생각과 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 P138

주류 언어가 나의 삶을 삼켜버릴 때, 현실이 교착 상태에 빠져 공동체가 고통받을 때 새로운 말을 찾는 과정이 융합이다.
융합은 창의적 사고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 P146

성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가장 실천과 거리가 먼 단어는 ‘연대‘와 ‘성찰‘이 아닐까? 연대는 융합에 대한 최악의 이해다. 통용되는 연대 개념은
"우리가 99퍼센트(?)이니, ‘나쁜‘ 1퍼센트(?)를 제거하자"는 논리다. 문제는 99퍼센트 안에 광범위한 갈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갈등의 교차 영역에서 발생한다. 오로지 한 가지 억압이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는 것이 아니다.
노학 연대, 청년 빈민 연대, 성소수자 연대, 사회적 약자와의연대・・・・・・ 그런데 연대 과정에서 각 집단은 등가 사슬(chain ofequivalences), 즉 하나의 ‘마디 (article)‘가 되지 못하고 약자는연대에 동원된다. 인구수가 많은데도 여성이나 장애인 이슈는대동단결 일치단결의 ‘대의‘에 종속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대의를 약자와 대립시킨다. 예를 들면 "민족 문제냐, 여성 문제냐"가 있다(이 말 자체가 여성을 민족에서 배제한다). 장애인 문제는 시혜적이고, 성소수자 문제는 ‘나중에‘다. 이것은 융합도 절합도 아니고 폭력이다. - P148

인간이 만든 차이를 두고 "차이는 인정하지만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언설이다. 이 언설은 사회적 구성물인 차이를 본질적인 속성으로 전제한다. 이때 차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공정함이 아니라 배려와 관용이다. 차이는 해소하거나 인정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융합은 차이의 발생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사유, 즉 권력과 지식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자연스러운 차이는 없기 때문이다. - P151

중산층 가족의 계급 재생산, 남성 세력간의 갈등으로 변질된 여성에 대한 폭력, 여전한 일본관 세 사건은 한국 사회를 파악하는 새로운 지식 생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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