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가가 나서 임신한 신체를 규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여성혐오에 근간한 사회적 통제이다. 그 통제의 결과를 가장 심각하게 체감하는 이들은 가장 취약한 여성들일 것이다. 이 책에서 그 점은 변명의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P150

1970년대의 낙태 반대 운동은 낙태에 대한 공격이 (태아의 생명을 중단시켜서가 아니라) 전통적 성역할을 붕괴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로 촉발된 것임을 보여준다.  - P161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시스젠더 여성이든 트랜스젠더 여성이든 관계없이 모든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감시하고 지배할 권리를 갖는다는 의식은 이 극적인 사례만큼 만연하게퍼져 있다. 그 때문에 여성혐오적 감시의 피해자들이 (바로 이들이야말로 끔찍하리만큼 고통받는 존재임에도 오히려 도덕적 괴물로 비난받는 일이 발생한다. - P175

많은 여성들이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남성 파트너가 갖고 있는 부당한 특권의식, 즉 여성의 노동과 남성의 여가 시간에 대해 갖고 있는부당한 특권의식을 반복해서 읊거나 정당화한다.  - P194

맨스플레인은 남성 특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남성 특권이란 지식과 신념, 그리고 정보 소유와 관련된 다양한 인식적 활동을 전유하는 남성의 특권을 말한다. - P202

우리는 이미 이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성 정치인에게 연대의식은 강력한 이중구속이다. 다시 말해 여성 정치인은 자신이특별할 정도로 연대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희망을 줘야 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시각, 공약의 어떤 지점에 불가피하게 실망하게 될 때 그들의 지지가 사그러질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스스로를 지나치게 연대의식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홍보해서도 안 된다. 그럴 경우 클로부차나 질리브랜드처럼 선거 유세 자체를 진행하지 못하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 P253

신뢰받는 남성의 인식적, 도덕적 권위에 도전하는 여성은 해당 남성과 다른 모든 면에서 동등해도 부도덕하거나 오류를 범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 P257

마찬가지로 이전 세대의 백인 여성들이 해온 것처럼 유색인여성들의 감정노동과 물질노동을 착취해선 안 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특권을 지니고 태어날 사람으로서R항상 자신이 무엇을 행동하고, 말하고, 기댈 권리가 없는지 배우며 부당한 특권의식을 억제해야 할 것이다. - P267

나는 내 딸이 (육체적 통증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고통을 느낄 권리가 있고, 따라서 도움을 청할 권리가 있으며, 돌봄과 위로,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 P267

나는 딸아이가 인간이 여러 가지 형태의 성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즉 자신이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 등이 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좀더 자랐을 때, 스스로 자신을 무엇으로 정체화하든 일말의 수치심이나 낙인에 대한 염려 없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충분히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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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누군가를 해하지 않을 때조차 여성들을 어떤 경계 안에 옭아매는 것이 여성혐오다. 우리는 경계를 위반하거나 어떤 과오를 범할 때에야 비로소 애초에 왜 자신이 경계 안에 갇혀 있었는지 그 이유를 깨닫는다.  - P21

그건 바로 여성이 명백히 성별에 근간을 둔 적대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에 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시말해 역사적으로 가부장제가 지배해온 사회에 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 P23

지만, 이것만은 알고 있다. 싸우는 것은 중요하며 가치 있는Start alles일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는지가 명징해지면우리가 더 잘 싸울 수 있으리라는 것. 나는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이어지는 장들을 써나갔다. - P29

 말하자면 인셀은 타인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애정과 존경을 담아 우러러보길 기대하는 남성들이 가진 유해한 특권의식의 결정체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눈길로 자신들을 추앙하지 않았거나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겨냥하고 심지어 파괴한다. 그런애정과 추앙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믿는 특권의식이 가정 - P37

폭력, 데이트폭력, 그리고 친밀관계에 있는 파트너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당수 남성들과 공유하는 특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한다. - P38

반성적 사고를 통해 여성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자명한 사실을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정 어려운 일은 여성이 온전한 인간 존재임을, 그저 사랑과 섹스와 도덕적 지지를 제공하는 존재 그 이상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성은 자기 자신으로 고유하게 존재하고, 다른 사람과 [자율적으로] 관계 맺는 존재로 살 수 있어야 한다. - P49

여성혐오는 여성을 짓밟고, 힘패시는 여성을 짓밟는 폭압자를 "좋은 남자"로 포장함으로써 보호한다.
힘패시는 여성혐오의 피해자나 표적을 비난하거나, 그를논의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 P64

힘패시는 종종 남성이 여성에게, 그리고 어떤 경우 아동에게 가한 폭력을 근본적으로 왜곡한다. 힘패시는 잔혹한 범죄를 이해받을 만한 애정으로 인한 범죄, 또는 공감받을 만한절박한 행동 정도로 기발하게 변모시키며, 강간과 같은 여타의 범죄들을 단순한 오해와 술이 초래한 해프닝 정도로 기발하게 전환시킨다. - P70

밀그램은 피험자들이 설계자의 지시에 순응해야 한다는 허구이지만 강력한 도덕적 의무감을 갖고 주어진일을 수행했다고 상세히 밝힌다. 사람들이 그 순간에 도덕적 양심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실험 설계자의 모습을 하고있는 현장에 존재하는 권위자의 명령에 순응해야 한다는 허구이지만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의무감을 주입하는것이 생각보다 쉽다는 사실이다.  - P101

권위를 지닌 남성 인물에게 저항하고 도전하는 여성들에게는 협박과 처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여성혐오가 여성들에게 내면화된 수치와 죄책감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는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P115

특권을 가진 남성이 통증을 호소할 때, 그 통증이 진짜라는 믿음은 이 사회의 기본값으로설정되어 있다. 덕분에 남성은 의료적 차원의 관심과 치료뿐아니라 공감과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는 존재가 된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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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에서 허위 강간 고발은 인종주의가 발명한 가장 가공할 만한 책략 중 하나로 두드러진다. 흑인 공동체를대상으로 폭력과 테러의 물결이 일어나서 이를 정당화할 만한 설득력 있는 이유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흑인 강간범이라는 신화가 조직적으로 소환되었다.  - P266

백인 여성을 범한 흑인 강간범 신화는 못된 흑인 여자 신화의 쌍생아다. 둘 다 흑인 남성과 여성을 계속 착취하는 데에대한 변명으로, 또한 그 착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안된 것이다. 흑인 여성들은 이 관계를 아주 명료하게인지했고 그래서 일찍부터 린치에 반대하는 투쟁의 선두에섰다. - P267

인종주의의 두드러지는 역사적 특징 중 하나는 늘 백인남성,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적 권력을 휘두르는 남성이 흑인여성의 몸에 접근할 권리를 반론의 여지없이 소유한다는 가정이었다. - P269

다시 말해서 노예 소유주가 주장하는 권리, 그리고 여자 노예의 몸에 대한 그들의 권력 행사는 전체 흑인에 대해 그들이 상정하는 재산권의 직접적인 표현이었다.  - P269

 강간범 흑인 남자라는 가상의 이미지는 항상 대책 없이 난잡한 흑인 여자의 이미지를강화했다. 흑인 남자들이 통제 불가능한 동물적인 성욕을 품고 있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면 그 인종 전체가 동물 수준으로격하되기 때문이다.  - P278

북부의 자본가들이 남부의 경제를 식민화하면서 린치는가장 강한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테러와 폭력을 동원해서 흑인을 점점 늘어나는 노동계급 내에서 가장 야만적인 착취의대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자본가들은 이중의 이익을 향유할 수 있었다. 흑인 노동의 초과 착취에서 추가적인 이익이 발생하고, 고용주를 향한 백인 노동자들의 적개심은 누그러들것이기 때문이다.  - P289

게다가 공포를 자극하는 인종주의의 도구인 린치는 그 자체로 남성의 지배를 강화하는 기능도 수행했다. - P297

인종주의를 통해 확립된 패턴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공격은 유색인종 노동자의 상황이 악화되어가고, 사법시스템과 교육기관, 그리고 흑인과 다른 유색인종에 대한 정부의 학습된 홀대 속에서 인종주의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 P303

하지만 임신중지권 캠페인이 거의 백합처럼 희디흰 사람들로만 이루어졌던 상황의 진짜 의미는 유색인종 여성의 미성숙하고 근시안적인 의식에서 찾을 수 없었다. 진실은 출산통제운동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안에 묻혀 있었다. - P307

유색인종 여성들은 임신중지권에 찬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임신중지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수많은흑인과 라틴계 여성이 임신중지에 의지하면서도, 임신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새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비참한 사회적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 P308

출산통제운동에서 이 일화는 우생학적 사고와 연계된 인종주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승리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출산통제운동은 그 진보적인 잠재력을 탈취당하고서 유색인종들의 개별적인 출산통제 권리가 아니라 인종주의적인 인구통제전략을 옹호했다. 심지어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인구정책을 실행하는 데 운동의 핵심역량을 쏟아달라는 요청까지 받게 된다. - P322

오늘날의 흑인 여성들에게, 그리고 모든 노동계급 자매들에게, 가사노동과 육아의 부담이 자신의 어깨에서 사회로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여성해방의 급진적 비밀 중 하나를담고 있다. 육아와 식사 준비는 사회화되어야 하고 가사노동은 산업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서비스는 노동계급이충분히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P343

 많은 여성들이 ‘그냥 주부‘인 이유는 사실실업 상태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집 밖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공공보육 같은) 사회서비스와 (육아휴직 같은) 취업 혜택을 요구하고, 여성이 남성과동등하게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이 ‘그냥 주부‘ 역할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서는 방법 아닐까?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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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종, 계급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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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종, 계급 이 모든 곳에서 우리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 의식하든 못하든 말이다. 다른 존재에 대한 공감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알아지는 것들이다. 그렇게 공감하고 연대하자. 나은 세상, 나은 삶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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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18 0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진 백자평이네요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군요 정말 그렇겠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면 안 될 텐데...


희선

바람돌이 2023-02-25 12: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사람이란게 항상 자기 자신부터 생각하는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으려 노력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coolcat329 2023-02-18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능력도 공부하고 노력해야 생긴다는 말씀 정말 동감이에요.

바람돌이 2023-02-25 12:05   좋아요 0 | URL
모르는걸 공감할수는 없으니말이죠. ^^ 다시 주말이네요. 이월의 마지막 주말 푹 쉬시고 따뜻한 3월도 함께 보내요. ^^

페크pek0501 2023-02-25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꼭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책값이 비싸서 망설였던 기억이...ㅋㅋ

바람돌이 2023-02-25 14:53   좋아요 1 | URL
진짜 책값 비싸죠. 학술서인경우는 더더더 비싼....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니 책값이라도 높게 설정하는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격때문에 항상 슬프네요. ㅠ.ㅠ
 



1981년에 쓰여진 이 책에서 말한다. 오늘날 강간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인종주에에 빠진 작가들이 아주 많다고.

인종주의에 기반한 흑인 강간범 신화와 흑인여성의 성적 문란이라는 테마는 사실상 오늘날 한국사회에 사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정말 말도 안돼서 대꾸할 가치도 없어보이는데 미국사회에서는 20세기 말까지도 그 힘을 잃지 않고 통용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어떤 사회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논리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고 거짓일뿐인데도 그 사회에서 그 논리가 통용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흑인을 위한 린치는 흑인 강간범 신화로 인해 당연시되고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된다. 더 많은 흑인 남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더 많은 흑인 여성들이 백인에 의해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교회는 그에 대해 "하나님은 강간 살인은 용서해도 인종혼합은 용서하시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학교에 등교하는 어린 흑인 여학생이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까? 이것을 단지 인간의 본성이 악한 것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뒤에는 남부의 경제를 식민화하고 흑인 노동력의 야만적인 착취를 유지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북부의 자본가들이 있다. 또한 이 자본가들은 자본가를 향한 백인 노동자의 적개심을 흑인 노동자들에게 돌림으로써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지킨다. 그러면 이 평범한 가난한 백인들은 왜 자본가가 아니라 흑인들에게 분노의 돌팔매를 던지는가? 한 때 인간의 근본적으로 이성적이고 따라서 논리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설득하면 억압적인 세계의 파괴를 위해 싸우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가 당연히 오리라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바로 이 이성과 합리의 세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실제 세상과 인간의 마음은 늘 이런 이성과 합리의 세계를 비웃듯 다르게 흘러간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돼. 괴롭히면 안돼라는 이런 명제가 뭐가 어렵지? 너무 당연한거잖아. 그런데 세상에는 왜 이런 일이 끝도 없이 일어나는거지? 사람과 세상을 알고자 하는 우리의 생각이 빠트린 것은 무엇이지? 


 또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전방향적인지도 잊지 말아야 한다. 흑인 강간범 신화는 흑인 여성의 성적문란함이라는 쌍생아를 낳고 흑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정당화했다. 또한 공포를 작그하는 린치라는 행위는 그 자체로 남성의 지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 가부장제를 강화시킴으로써 흑인여성뿐만 아니라 백인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도 되었다. 그리고 앞에 말했듯 가난한 백인 남성 노동자들에게는 자본가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흑인에게로 돌리는 역할까지 말이다. 사실상 이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 영향이고 결과인가는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모두가 중대한 있어서는 안되는 폭력이다. 그들이 전방위적이라면 그들에 대한 싸움 역시 전방위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약자에게 필요한건 공감이고, 그 공감에서 나오는 연대이다.  너무 식상한 결론이지만 연대 없이는 싸움의 승리가 없는데 어떡하라고.....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이대남과 이대녀의 대결구도는 정말로 그들의 대결인가? 그 대결을 공론장으로 이끌어낸 이들이 따로 있지는 않은가? 노동시장을 자본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려는 의도와 맞물려있지는 않은가? 사실상 역사는 늘 반복되는데 본질은 그대로이고 겉에 걸친 옷만 갈아입을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속는다. 나의 눈을 가리는 그 속임수에서 어떻게 탈피하고 길을 찾을 것인가?


  분명히 무조건적으로 옳아보이는 어떤 운동이 처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임신중지권은 당시 백인 여성들에게는 당연히 쟁취되어야 할 여성의 권리였지만, 수많은 흑인여성들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많은 흑인여성들은 자신이 처한 비참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 의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들에게 더 절박한 것은 자신의 아이를 낳고자 욕망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던 것이다. 흑인여성들에게 또는 가난한 백인 여성들에게 더 절박한 것은 임신중지권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재생산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둘은 대립되는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당대 페미니스트의 임신중지권 요구가 이런 흑인 여성들의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하지 않는 한 이 두 세력이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이 1981년작이라는 것을 떠올리는건 책의 마지막 장에 가서이다. 여성해방의 전제 조건으로서 가사노동의 문제를 다루면서 작가는 가사노동을 사회화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오늘날에 와서 보면 가사노동의 수많은 부분이 사회화 되었지만 그럼에도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예를 들면 내 어머니 세대에서 육아는 사실상 젖먹이를 벗어나고 나면 끝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그냥 큰다고....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돌봄은 지속된다. 그 돌봄이 끝나고 나면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인하여 부모세대에 대한 돌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돌봄노동까지 포함하는 가사노동의 끝을 어디까지 사회화할 수 있을지,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아직 정확한 답변을 내리기 어렵다. 또한 작가가 독점자본주의의 타도와 사회주의로 완전한 여성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은 이왕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 역시 시대적인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다.



책을 덮으면서

  오랫만에 진짜 꼼꼼하게 책을 읽었고,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을 대부분 정리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따로 쓰지는 않을 듯하다. 미국의 인종차별의 역사와 여성운동의 역사를 교차시키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리는 결론은 역시 해제에서 정희진샘이 말했던 공감의 연대이다. 역사상 수많은 진보와 인권을 위한 운동들이 나의 문제와 타자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하고, 심지어 타자를 계속 타자로 던져두는 억압을 인지하지 못함으로써 실패해왔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실패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에서의 타자들은 누구인가? 여성, 20대 젊은이들, 이주노동자와 여성들, 장애인들, 성적소수자들...... 기준을 어디에 갖다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이러한 타자들의 연대는 나와 당신의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역시 변함없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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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17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질은 그대로이고 걸친 옷만 바꿔 입는다‘는 바람돌이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입장차에 연대가 절실한데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그 연대가 깨지는게 이득이란걸 너무 잘 알기에 갈수록 교묘하게 갈등을 조장하죠. 완독 수고하셨어요!
저는 이 책 인종주의와 성차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특히 좋았어요^^*

바람돌이 2023-02-17 22:53   좋아요 1 | URL
저도 인종주의와 성차별이 만나는 지점과 그 둘이 어긋나는 지점들을 보고 그걸 또 오늘 우리 현실과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 있어 좋은 독서였어요.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제 생각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는게 너무 좋은거 같아요. 물론 또 이런 책을 읽고 바라보는 현실은 너무 갑갑해서 속이 터지기도 하구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3-02-17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언뜻 듣기만 하고,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흑인 여성들에 대한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대해 읽으며 왠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리고 바람돌이님의 리뷰도 쏙쏙 날카롭게 읽힙니다. 공감이 결여된 연대는 쓸모가 없습니다. 공감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마지막 문구를 기억하겠습니다.

바람돌이 2023-02-17 22:54   좋아요 1 | URL
저도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결합되는 순간이나 같이 싸워야 할 사람들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과정같은걸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날카롭게 읽으시고 나무님의 날카롭고 예술적인 100자평도 기대합니다. ^^

은오 2023-02-17 2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은 왜 웃기시면서 정리도 잘하시는거죠 제발 하나만해주세요ㅠ

바람돌이 2023-02-17 23:00   좋아요 2 | URL
그럼 웃기는 쪽으로.... 제가 항상 꿈꾸는 사람이 웃기는 사람입니다만..... ^^

그레이스 2023-02-17 2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사노동의 사회화!
제가 심각하게 생각해왔던 부분이예요.~

바람돌이 2023-02-18 00:09   좋아요 2 | URL
집안일하는 여자 치고 이거 생각안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에 보면 그런 장면 나와요. 집안 청소를 전문 청소노동자들이 와서 해주는거죠. 그들은 그걸로 임금을 받고 여기에 드는 비용은 사회복지 정책으로 국가 지원이 되어서 아주 가난한 노동자도 쉽게 서비스를 이용하고요. 아 진짜 제가 원하는바입니다. 그리고 우리집앞에 3시세끼 밥해주는 곳 있으면 진짜 좋겟어요. ㅎㅎ

희선 2023-02-18 0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깊이있게 잘 보셨군요 모두가 좋은 걸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것도 생각해 봐야 할까 싶기도 하네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겠습니다 모두를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은 그러기 어렵기도 하네요 다른 것도 보게 해주는 게 이런 책이겠습니다 책도 한쪽으로 치우칠 때 있겠지만... 그런 것도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싶네요


희선

바람돌이 2023-02-25 12:08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꼼꼼하게 책읽기를 한 것 자체가 저에게는 또 좋은 일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느낌으로 약간 자아도취랄까요? ㅎㅎ 그리고 모든 책은 어차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제대로 판단하고 나의 입장을 찾는 것이 중요한거겠죠. 항상 관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