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특허 표류기
이가라시 쿄우헤이 지음, 김해용 옮김 / 여운(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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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체 특허 표류기》




2013년 미국의 세계적인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예방을 위해 유방을 모두 절제술을 받았다는 기사를 아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꽤 충격을 받았었는데 아니, 걸리지도 않은 암을 막는다고 무작정 신체를 절제하다니 과연 이것이 온당한 일인가 하는 생각과, 서구의 의술이 너무 기계적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또 실제로 내 후배 중엔 대장암 가족력이 있어 대장의 대부분을 드러내는 수술을 한 경우도 본 적이 있어 참으로 놀라고 의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또한 이런 시술이나 과정에 '특허'까지 얽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인체, DNA,유전자 등이 특허의 대상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특허는 현재까지 없던 기술이나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해도 인체특허는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이 책 첫 장에서 나오는 것처럼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하면 이와 관련된 치료법이나 약물을 개발 할 수 있을 텐데 그 결과로 나온 치료법이나 약물에 특허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전자 자체나 검사하는 방식에 특허권을 부여하게 되면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기관이나 과학자는 아예 연구자체를 못하게 될 수도 있을뿐더러, 이 특허가 이윤을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이 가지게 된다면 혹은 국민 건강보험이 없어 사적 보험만 가입해야 하는 나라에서 보험 가입 전에 유전자 검사 정보를 요구한다면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으로 인체특허에 관해 지적 권리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미국과 이에 관해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본을 비교하고 있는데 일본과 비슷한 현실에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도 겹쳐 보여 조금 걱정이 되었다. 우리 사회도 곧 이런 현실에 직면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은 DNA, 염색체, 유전자, 게놈 등의 일반적인 상식, 특히 미국에 관해 인체 특허가 걸어온 과정과 현실, 인체특허가 불러올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세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활자도 큼직큼직하고 쉬운 설명, 다양한 자료 때문에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의학은 특히 신체와 관련된 연구나 특히 일반인이 잘 모르는 유전자나 염색체, 게놈 등의 연구는 기업들의 후원이 없으면 연구가 어렵고, 그들이 이윤과 미래 시장을 위해 확보하려는 특허권이 어떤 문제를 가져올지 모르겠다. 그래서 공익적인 특허권의 획득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민영화의 문제 때문에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앞으로 인체 특허의 문제까지 열려버린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의료, 교육, 복지는 공공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문제도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탐욕, 인간의 권리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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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 현대과학의 최전선에서 탐구한 의식의 기원과 본질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이정진 옮김 / 알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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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의식》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을 말한다. 우리가 사랑이나 마음, 영혼이 과연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것처럼 그 의식이라는 것도 과연 어떤 것인지 고민한다. 확실한 것은 그것은 '뇌'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몸의 감각세포들이 수집한 것들을 뉴런은 전기적 신호로 바꾸고 우리의 뇌는 이를 처리하여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해석할지 결정한다. 뇌를 다치면 거울 속의 나를 나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한 다거나,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기도 한다.


만일 그 의식이 전기적 신호와 이를 해석한 뇌의 작용일 뿐이라면 같은 구조를 가진 컴퓨터나 전기 회로들도 의식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먼 과거로 올라가면 같은 조상을 가진 동물들은 어떨까? 생각해 보면 바로 그 의식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나에게 의미가 되는 것은 이런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몸, 산, 사람, 동물, 음악, 미술을 포함한 예술 등의 세상을 경험하는 유일하는 방법은 주관적인 경험, 생각, 기억을 통하는 것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 하는 과정과 결과 전체가 바로 나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의식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정의 하는 가는 굉장히 중요해 진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 철학, 의학, 물리학 등 모든 학문에서 이 의식을 정의하고 바라보는 것이 그들의 분야를 정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이런 <의식>을 각 분야에서 어떻게 바라보는 가를 설명한다. 총 10장에 나누어 자신의 경험, 의식에 대해 연구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의식이라는 연구주제의 정의가 가져올 수 있는 질문들, 신경학 계열에서 얻을 수 있는 뇌와 의식의 관계, 머리속에서 실제로 일어나지만 우리는 인식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 자유의지와 뇌 활동의 관계를 통해 알 수 있는 의지에 대한 고민, 과학과 종교의 충돌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 고난에 관한 사색등을 살펴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이론서를 읽다가 제일 힘든 부분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이다. 이 지면에 나름대로의 내 생각을 남기긴 했지만 내겐 소화하기 어려운 주제였다는 것을 일단 밝힌다. 그러나 이 책이 읽기에 그리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란 것은 아니다. 문장도 내용도 읽기에 어렵지 않지만 그 깊은 의미,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찾지 못했다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은 심리학과 철학, 종교 등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의식을 철학과 종교의 영역이 아닌 과학의 영역에서 바라보았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 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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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생 소설NEW 1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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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생》

 

 


 

인간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주인공인 남자는 소위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남자이다. 좋은 집안 존경받는 조부모와 부모에 한 도시를 대표할 만한 가문과 명성과 부.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였고 순탄한 길을 걸어 유학을 다녀와 서울의 방송국PD로 입사했다. 그러나 그가 만든 TV프로그램에서 작가로 만난 한 여자로 인해 완벽해 보였던 그의 인생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앞서 말한 '욕망'은 그의 인생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돌아보고 인정하게 된 자기 자신, 자기 가족 모두의 굴레였다. 그의 가족과 인생은 결국 그 '욕망'으로 잉태되고 그로 인해 몰락한다. 그는 아내가 있음에도 그 작가와 불륜을 저질렀고 결국 발각되어 임신한 아내와 이혼 말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 즈음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정계에 진출하기위해 여당의 공천을 받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독립투사이자 6.25 참전 용사인 할아버지의 생애를 조명하는 다큐를 촬영하기위해 고향인 J시로 내려와 있었다. 그런데 이미 헤어진 작가를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는 그녀가 자신을 스토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따로 만나 다투게 된다. 그런데 차가운 눈이 내린 그 다음날 그녀는 시체로 발견되고 그는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런데 그녀와 다투던 그날 너무 많은 술을 마신 나머지 필름이 끊기고 말아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이 일이 지역 신문에 오르자 할아버지는 힘과 권력을 이용해 해결하려 하고 아버지는 이 일로 야당 후보에게 공격당하는 등 위기가 닥친다. 그러나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히고 이어 그녀의 장례까지 마쳤으나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그녀의 유일한 혈육인 언니의 태도와 말,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한 최 형사로부터 들은 조그만 단서들이 그녀가 자신 때문에 이곳에 내려와 있던 것이 아니었고 어떤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은밀한 비밀을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말기 자신의 할아버지가 젊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안타깝고 끔찍하고 기괴한 가족사가 하나하나 밝혀진다. 또한 그 때부터 시작된 뒤틀린 욕망은 결국 그녀의 죽음까지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였음도 밝혀진다. 그리고 예상을 뒤엎는 거대한 반전. 소설은 일제강점기, 전쟁, 군부독제를 통과해 살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가진 욕망과 허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흥미 있는 이야기, 짜임새 있는 구조, 섬세한 심리묘사, 미스터리, 공포와 추리가 적당한 긴장감으로 연결되어 책장을 넘기는 손까지 떨리게 한 멋진 소설이다.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책의 제본 문제이다. 145~160p 가 통으로 빠졌다. 한참 흥미 있는 부분에 다음 문장이 연결되지 않아 의아했는데 페이지가 통으로 빠졌음을 발견하고 참으로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 이었을까. 하여간 그 허점에도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요즘 읽은 소설 중 우리나라에서 발표되는 작품들은 재미없는 작품이 없었다. 정말로 반갑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나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는 독자들에게도 추리, 스릴러 등의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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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
황순종 지음 / 만권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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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과연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맞나 할 정도로 생각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사회, 경제, 교육, 문화, 정치, 종교 등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데, 특히 고위 공직자들 인사검증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역사 인식은 과연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맞나 의심까지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역사, 특히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 여러 종류의 책들을 읽곤 하는데 중국의 조직적인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서 늘 화가 많이 났다. 대체 우리 역사학계는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잘 안됐다. 일본은 일부 극우 정치인들의 발언과 행동이 외교문제가 되곤 하지만 중국은 학술의 형태로 이루어지니 언론 파급력이 일본보다 덜 한 것 같긴 하지만 국가 정책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그 실상은 더 위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심각성을 느꼈는지 이런 이유로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라는 정책을 목표로 하여 2005년 설립된 국가 기관이 바로 '동북아역사재단'인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재단이 오히려 식민사학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제대로 한방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14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동북아역사재단〉의 만행


〈동북아역사재단〉그들이 한 일이란 게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에 10억 원의 국고를 지원해서 한국 상고사 관련 식민사학 논문을 번역하여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식민사관을 그대로 서구사회에 전달하는 일(총 6권), 고조선 개국신화는 신화이며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 간도협약 이전에 간도가 우리 영토에 편입된 사실이 없다는 등으로 학자들이 연구한 자료에 수정을 요구한 것, 게다가 2014년에 북한 강역은 중국 땅이 맞다는 내용의 서적을 발간해서 재외 공간에 배포하고 외국 학생들에게 뿌리겠다는 선언, 앞서 말한 상고사 관련 6권의 내용에는 심지어 고조선은 없고 한사군만, 고구려 백제 신라도 없고 삼한만 있다니! 마치 조선총독부가 현실에 다시 나타난 것 같았다.


무조건 중국, 일본과 다른 역사를 찬란한 역사를 주장하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제대로 된 연구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식민사학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침략논리를 정당화 하려는 것뿐이다. 고조선이 아니라 한사군 때문에 앞선 철기문화를 받아들여 나라가 발전했다는 논리로 일본 때문에 나라가 발전했다는 일제 강점을 정당화하려는 주장, 1차 사료가 버젓이 있음에도 이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론과 다르면 서슴없이 사료가 잘 못 적힌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하던 이병도부터 시작된 식민사학 계보의 학자들이 서울대, 교원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국고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을 모두 장악했다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학자의 자세로 연구하려는 사람들을 재야사학자라 무시하고 심지어 북한 학자의 이론과 비슷하다는 매카시즘의 논리로까지 공격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어찌 받아 들어야 할 지.


이 책에는 식민사학계의 계보, 논점이 되는 고조선과 삼국의 여러 쟁점들을 1차 사료를 들어 조목조목 따지고 있으며, 식민사학 논리의 본질을 파헤치고 있다. 읽다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올지 모른다. 나처럼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미 많은 내용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라면 정말 혼란스러울 것 같다. 게다가 2014년 현재까지도 자행되고 있는〈동북아역사재단〉의 매국행위는 정말로 충격이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이렇듯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실이다. 그 현실은 국정교과서 문제에서 보듯 당장 현실의 교육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일본이나 중국, 북한에 대한 정치, 외교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오늘도 대북삐라 살포 문제로 총성이 울렸다. 국가 요직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느냐에 따라 현실의 모습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친일의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의 대응논리는 색깔론 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들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이 이런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 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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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서 온 소녀 - 잃어버린 왕국
이미희 지음 / 하루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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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서 온 소녀》




먼 과거 전쟁이 일상이던 시기엔 한 나라의 승전은 한 나라의 패망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승리가 영원하지도 않았다. 그 승전국은 훗날 또 다른 나라로 인해 패망 국이 되기도 했으니까. 우리는 승리의 영광과 그 결과만을 기억할 뿐 한 나라와 문화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백성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 따위는 관심이 없다. 아마도 그것은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쓰이기 때문이리라. 한 때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나라들은 지금 모두 사라지고 그네들이 일구고 가꾸고 살고 사랑하였던 그 대지위에 새로운 문명과 국가가 세워지고 또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가야에서 온 소녀》는 가야연방의 멸망을 담은 소설이며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모티프가 된 인물은 2007년 경남 창녕군 송현동 가야 고분군 15호에서 발굴된 인골인데, 석실 중앙의 무덤 주인과 나란히 묻힌 세 사람과 함께 비교적 뼈대를 유지한 채 발견되었다. 천 오백년을 어두운 무덤 속에서 견뎌온 열여섯 살 소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분석한 결과 열예닐곱 살 정도의 소녀로 추정되며 송현동 고분에서 나왔다고 해서 '송현' 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한다.




작가는 이 소녀와 가야의 마지막 운명에 상상력을 더하여 주인공 소녀 '송이', 송이가 살았던 비사벌 국, 신라에 555년 병합되기 직전 그들의 역사를 써 남기려고 했던 태자였다가 마지막 왕이 된 남자, 태자의 정혼녀였다가 운명의 소용돌이로 신녀가 된 송이의 이모, 그녀를 짝사랑하다 비사벌을 배신하고 신라의 관리가 된 제사장을 만들어냈다. 또한 가야의 왕족 출신이면서 신라 장수로 살아야 했던 실존인물 김무력(김유신의 할아버지), 그와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가야의 마지막을 슬프게 장식한다.


백성들에게는 나라가 바뀌는 것이 어떠했을까. 그냥 배불리 먹고만 살면 정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까. 왕족이나 고위층들은 나라가 바뀌어도 부나 위치가 유지되었겠지만 백성들은 더 가혹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이 소설엔 나라를 위해 끝까지 투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세가 기우는 것을 간파하고 먼저 나라를 져버리는 사람도 있고 저무는 역사를 그대로 바라보며 쓸쓸히 죽어간 사람도 있다.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가야에 대한 역사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소설을 통해 가야를 조금 들여다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인골을 발견하고 복원하고 거기에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더해 한 사람의 일생과 한 나라의 황혼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한 작가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많지 않은 분량, 흥미로운 이야기, 매력적인 등장인물, 맛깔난 문장으로 금새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쉽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 가을에 읽기 참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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