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가 된다는 것 - 시를 필사하며 누리는 마음 정화의 시간
허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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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가 된다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시집을 읽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유일하게 이외수, 류시화 작가의 시집을 샀던 것 이외에는. 아마도 10년도 넘은 일일 거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고기 집에 앉아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때 천정과 맞닿게 높은 곳에 올려 진 텔레비전에서 시에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장내가 시끄러워 전체적으로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몇몇 시 구절이 갑자기 마음을 파고들면서 나도 모르게 ‘왜 시를 잊고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생각하니 학창시절 했던 문학공부가 참으로 원망스럽다. 시의 맛을 알기도 전에 시의 주제와 문법을 먼저 배우고 가르쳐주는 대로 외우게 했던 교육이 참으로 그렇다. 오늘 마침 영어 시험에 관련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영어지문을 낸 출제자의 답안과 시인이 답한 답안이 전혀 맞지 않았다. 이런 웃기는 현실이라니!

 

이 책은 어느 시인의 시집이 아니다. 실은 그래서 읽고 싶단 생각을 했다. 앞서 말한 일화로 부터 거의 10년도 넘은 이 시간 동안 나는 몇 편의 시를 읽고 읊었는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 각박하고 바쁜 일상에 시는 정말이지 쉽게 잡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왜냐면 시는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의문을 가지게 만들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감동과 회한, 그리움, 죄책감, 절망과 희망의 눈물.

 

이 책의 특징이라면 눈으로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손으로 써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역시 시는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읊으며 손으로 써 보는 것이 좋다. 특히 입으로 소리 내고 손으로 쓰는 것은 어떤 문학 작품에 적용해도 좋을 것이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는 것이 아닌 탁자위에서 펜을 손에 들고 조용히 나를 만나는 시간, 이 시집을 읽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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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마의 신
하라다 마하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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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마의 신》



 

 

아버지. 늘 제 멋 데로인 아버지. 평생 가족을 위해서 라곤 무엇 하나 해준 적이 없던 아버지. 심지어 경마로 생긴 빚을 뻔뻔하게도 가족들이 대신 갚게 한 아버지. 딱 보면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같다. -그나마 여자문제는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이런 아버지라도 엄마는 외면하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늘 아버지의 빚을 갚아주며 딸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리고 나. 얼마 전까지 승승장구하던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다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마흔이 넘은 나이에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아직 퇴직했단 말도 못했는데 아버지의 빚 문제가 터지고, 엎친데 겹친 격으로 아버지는 심장수술까지 받게 된다. 그래서 딸은 입원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건물 관리 일을 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 아버지가 이제껏 쓴 영화 감상노트를 보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이 번 돈은 대부분 도박으로 날렸고 놀랍게도 나머지는 영화를 보는데 썼다. 하루에 2~3편을 보기도 했고 개봉한 거의 모든 영화를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를 섭렵한 마니였다. 몇 십 년 전부터 써온 아버지의 평론(감상)은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페이지 속에 딸은 자신이 그날 본 영화의 평론을 끼워 놓았는데 나중에 퇴원한 아버지가 이 평론을 한 영화 잡지에 기고한 것이 인연이 되어 딸은 일본의 가장 유서 깊은 영화잡지에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참으로 엉뚱하게 흘러간다. 분명 주인공은 딸인데 어느새 아버지로 바뀌어 있고 또 어느새 영화 잡지사의 구성원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있다. 소설은 ‘영화’ 라는 매개체 하나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고, 복합상영관이란 거대한 공룡에 짓밟히는 작은 영화관을 살려내고, 사회와 담 쌓은 히키코모리를 세상으로 불러낸다. 회생불능인 것 같던 잡지사도 ‘자본’인 아닌 블로그, 그 안에 담긴 진정성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부활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는 화해를 통해 단란한 가족이 되고,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생산의 주체가 아닌 ‘노인’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잔잔하지만 굉장히 속도가 빠르다. 마흔 넘어 퇴직한 사람이 다시 직업을 갖고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는 것, 누가 봐도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이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거대자본에 무너지는 골목상권, 가족의 해체와 소외 등 우리가 처한 현실의 암담함이 그대로 녹아있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 해결이 ‘영화’와 블로그를 통한 국적을 넘어서는 ‘우정’ 이라니! 다소 동화적인 설정이 분명 말도 안 되는 것이나 그래도 ‘영화’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의 신. 결국 힘들 때 우리가 찾게 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다 못해 내 모든 것이 되어버린 ‘꿈’이 아닐까. 순수함 일 수도 있겠고, 어떠한 순간에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그 무엇일 수도 있는. 이 소설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 소설을 읽은 후에 꼭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미뤄두었던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보았고, 퇴근 후 멍하게 예능 프로그램만 보던 TV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소설에선 그래도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난 남편과 잠옷을 입고 과자를 먹으며 감상하는 영화도 좋다. 사랑하는 내 야옹이 ‘미오’를 쓰다듬으면서.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다. 따뜻한 내 집에서 보는 로맨틱 코미디처럼 달콤하고 따뜻하고 환상적인. 겨울에 읽으면 마음까지 따스해질 그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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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테레사 카푸토 지음, 이봄 옮김 / 연금술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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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부고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되니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내게도 곧 일어날 일이구나’ 하는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든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이의 죽음은 그 고통과 상실감이 더 크리라. 어쩌면 평소에 잘 하지 못했다거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 못지않게 클지도 모른다.


이렇듯 왜 우리는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누구는 더 심한 고통을 받으며 죽거나 남겨지는가? 과연 사후의 세계는 존재하는가? 영혼이 있으며 그들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은 정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내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지 않고서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곁엔 믿건 아니건 간에 이런 질문에 답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영매, 무당, 만신 등으로 불리며 늘 우리 곁에 있어왔던 사람들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갑자기 두렵고 숨이 막히고, 곧 죽을 듯 고통스러움을 느낀다거나 이상한 형체를 보는 등 신비하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을 많이 했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을 벗어나기도 힘들고, 대인관계도 어려웠으며 이 때문에 자신의 가족들 까지 힘들게 했다. 당연히 저자는 심리적, 정신적 문제로 생각하여 병원에도 다녔지만 전혀 문제없다는 결과만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저자는 자신이 겪은 일들에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바로 죽은 자들의 영혼이 저자에게 혹은 저자를 통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후 저자는 막연한 고통 속에서 벗어났고 영혼이 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삶을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매로서 자신이 진행했던 많은 리딩 케이스들을 통해 사후의 세계와 영혼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전해주고 있다. 저자는 사후의 세계가 고통스럽지 않으며 누구나 이유가 있어 이 세상에 온다고 한다. 영혼은 자신이 태어날 사람과 장소를 스스로 정하며 여러 번 삶과 죽음을 겪으면서 ‘성장’한다고 한다. 영혼의 궁극적 목적은 물질세계에서 많은 윤회를 통해 영혼을 영적으로 성장시킬 배움을 얻는 것으로 인내와 기쁨. 충실함, 이타심등을 말한다. 또한 지상에서 우리는 신의 한 조각이지만 천국에서 우리 영혼은 신과 하나라 말한다.


그러면 왜 우린 끔찍한 일을 당하고 이 지구엔 고통스러운 일이 많은 걸까? 누구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누구는 살인을 저지르며, 누구는 전쟁을 일으키고, 병과 사고로 죽어가고, 수많은 사람이 기아에 허덕이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도 저자는 이 책에서 전하고 있다.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점을 많이 발견했는데 저자가 영매로 각성하기 전에 겪었던 고통은 우리가 말하는 ‘신병’과 흡사하다. 저자는 과거나 현재나 주말이면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는 독실한 신자이나 ‘윤회’는 불가에서 말하는 것이고 또한 이를 통해 영혼이 성장함은 해탈하여 부처가 되는 과정과도 흡사하다. 그리고 종교에 따라 사후의 모습도 다른데 영혼이 나타나거나 메시지를 전할 땐 메시지를 받을 사람들이 가진 믿음이나 종교의 모습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에선 그 어느 종교를 갖더라도 신은 단 하나 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이나 지옥은 없는 듯 보이는데 책에선 설명을 위해 천국이라는 표현을 쓴다.


또 하나는 얼마 전에 읽었던 《라이프 사인》과 유사한 부분이다.《라이프 사인》에선 ‘세렌디피티, 동시성,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사건’을 ‘라이프 사인’ 즉, 바로 우주가 나에게 보내주는 사인이라 말하는데 이 책에선 이와 똑 같은 현상을 바로 ‘영혼’이 알려주는 것이라 말한다. -여기서 영혼은 가족이나 친구 등 이 메시지를 받는 사람과 아주 가까운 사이의 영혼을 말한다.- 결국 누가 이런 메시지를 주느냐 보다 받는 사람이 이 메시지를 어떻게 알아차리는가가 더 중요하지만 말이다.

《라이프 사인》http://bandafrica.com/220455568123


이 책은 읽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겠지만 누군가는 재미로 읽기도, 누군가는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누구는 사이비나 미신이라고 비난할 지도 모른다. 책 후반부에선 조금 지루하고 불편한 내용도 있었고. 또한 저자가 영매로서 받는 메시지는 ‘밝은’ 부분에 한정적이라 어두운 부분에 대해선 알 수 없다. 그러나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확고하다. 죽음이 끝이 아니며 우리는 늘 영적으로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 그러니 살아서도 영혼이 되어서도 우리는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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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달인이 되려면 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 우리가 몰랐던 명문장의 진실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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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이 책 소개를 보는 순간 내 글쓰기를 도와줄 책은 ‘바로 이거다’ 싶었다. 책을 읽고 쓰는 리뷰를 비롯해서 페이스북, 블로그, 카페 등 SNS에 짧은 글을 쓰면서 늘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문장이 너무 길어져서 어디서 끊어야 할지 난감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때론 주제가 무엇인지 글을 쓰는 나조차도 잘 모를 만큼 뒤죽박죽인 글도 있고, 마치 번역체 같은 수동형의 문장이 읽기를 거북하게 하는 글도 문제였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부분들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거창하게 작가를 꿈꾸지 않더라도 우리는 글을 잘 써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이 보급 되면서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SNS를 이용하여 자주 소통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직업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와의 소통하고 하는 일의 홍보를 위해 블로그, 페이스북 페이지 등을 운영하며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쓸까’ 고민이 많다. 이런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양질의 컨텐츠’이겠지만 이를 필요한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문장력’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다룬 책은 많은데 문장 자체를 다루는 책은 처음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블로그 글쓰기, 소설쓰기와 같은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책은 여러 권 읽어 보았는데 이런 책들은 주제를 정하고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전개하는 가 등의 큰 구조를 이야기하는 반면 이 책은 글을 이루는 가장 작은 부분인 ‘문장’을 어떻게 쓰는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많이 알려진 소설, 자서전, 수필, 칼럼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분석하고 수정하는 방법 즉 ‘문장 비평’으로 글쓰기의 법칙 27가지를 설명한다. PART1 1장부터 9장까지 이 법칙들을 설명하고 PART2에선 이를 바탕으로 글쓰기 방법론의 책들 속 문장들을 분석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들이 문법에 맞는 않는 말이 너무나 많음을 알게 되었다. 영어 문법의 영향으로 자주 쓰는 수동형이나 피동형, '~의' 가 남발된 문장들은 특히 문제가 많았는데 번역 소설을 읽을 때 불편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ex)재미있게 구성된 글, 독자가 싫증나지 않게, 끝까지 긴장감 있게 짜인 글이 ‘좋은 글’이다.(『글 고치기』 전략 중에서)


→재미있게 구성한 글이 좋은 글이다. 그러려면 독자가 싫증나지 않게,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게 글을 짜야 한다. (p43)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문장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걱정이 많이 된다. 한 번 읽고 바로 올바른 문장을 쓰기는 어려울 테니 이 책은 곁에 두고 자주 펴서 읽고 훈련해야 하는 책이다. 그리고 훌륭한 글을 쓰기 원한다면 한 권 쯤 꼭 소장하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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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영혼의 지도
머레이 스타인 지음, 김창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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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영혼의 지도》




요즘 아들러의 심리학이 대단한 각광을 받고 있다. 심리학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그것도 굉장히 긴 시간 1위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니 한 때 위로나 힐링이 대세가 되던 분에서 좀 진일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로나 힐링은 나 자신이나 현실이나 고통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고통을 잊게 해주는 미봉책에 불과 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은 자신이 아픈 구석이 어딘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게 해주고 스스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에서 진일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심리학하면 프로이트정도를 떠올리던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학자를 소개해 주었다는 것에서 긍정적 역할을 해 준 것 같다.


실은 나는 심리학도이다. 대학을 졸업한지는 10년도 훌쩍 넘었고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심리학 전공자들은 (내가 느끼기에) 자신이 현재 학생이 아니어도 늘 ‘심리학도’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학부생 4년간 공부하는 것은 심리학의 수많은 이론과 다양한 분야, 학자들을 대략 훑고 지나가는 정도라 심리학의 맛만 보는 이유인 지도 모른다. 매 학기마다 상담, 정신분석, 집단, 사회, 인지, 조직, 교육 등 다른 분야의 심리학을 배우고 그 안에도 얼마나 많은 학자의 다양한 이론이 있는지 정신없이 4년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심리학의 상징적인 존재인 ‘융’은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학부에서 프로이트를 중요하게 다루다보니 비슷한 듯 다른 융은 뒷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 한다. 내가 융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영성’이나 죽음, 혹은 조금은 초자연적인 내용을 다룬 책을 접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융과 아인슈타인의 이론 때문이다. 그 전에도 융의 이론을 다룬 책을 읽기도 했지만 너무 어려워 포기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그의 연구와 이론들을 일반인이 읽기에도 쉽게 소개하고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었다.


융의 연구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내용도 많아 제대로 공부하긴 어렵다. 이 책은 저자가 융이 그려놓은 거대한 영혼의 지도를 찾아갈 수 있게 만든 ‘안내서’이다. 저자가 20년 넘게 융의 저작들을 평가하고 연구하여 융에 대해선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인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정리한 것이다. 융은 저자가 보기에 직관에 의존한 창조적 사상가이며 플라톤과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이기도 했다. 저자가 그려주는 융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누구보다 엉뚱하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초보자를 위해 썼다고 하지만 분석심리학 자체가 어려워 그리 쉽게 읽히거나 이해되지는 않는다. 이론은 어렵고 게다가 번역서이니 모든 문장이 쏙쏙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읽는데 조금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읽다가 문장이 얽히기 시작하면 책의 앞뒤 목차와 용어 해설을 자주 펼쳐보며 읽었다. 내가 주의 깊이 읽었던 부분은 역시 2장 콤플렉스와 9장 동시성이다. 콤플렉스는 아마도 융의 연구 중에 가장 기초가 되는 중요한 부분이며 전 연구에 걸쳐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동시성은 앞서 말한 대로 다른 책에서 자주 보게 되는 부분이라 더 관심이 생겼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한번 읽어 바로 이해가 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의 문제가 아니라 융의 연구가 그만큼 깊이가 있기 때문인데 프로이트나 다른 학자들의 이론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뜨문뜨문 알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해하기에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이 책은 저자가 융의 《전집》에서 그의 지도를 설명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특별한 구절을 다루고 있으니 융의 세계로 가기에 가장 적합한 안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다루는 한 챕터가 따로 한두 권의 책으로도 소개되고 있지만 그 길로 가기 전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최소한 2번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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