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죽이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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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버지 죽이기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궁금했던 소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접했던 오디디푸스 컴플렉스에 대한 소설이라 더욱 기대를 하고 읽은 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 닿았던 말은 '15살 때는 다 미쳐돌아간다' 는 것이었다. 나의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청소년기와 나의 온 마음과 정신을 지배했던 방항심도 생생히 떠올랐다. 그러나 10대 때의 방항심은 20대가 되어 조금씩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서 수그러 들기 시작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들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반항심보다는 안쓰러움이 커져서인가 날카로운 관계 또한 많이 부드러워 지게 되었다. 내가 30대가 된 지금은 부모자식과의 관계가 아니라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혹은 나이든 부모님이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할수 있는 관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딸인 나와는 다르게 아들인 동생과 아버지의 관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에겐 한없이 부드러워 지는 아버지는 아들에게만은 아직까지 꼿꼿한 모습 그대로 이다. 아직은 내가 너에 못지 않다는 꼬장꼬장한 느낌이랄까. 아들인 동생 또한 구부러지기 보단 아직도 날을 세우며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바보가 아니다' 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속의 주인공인 조와 의붓아버지인 노먼과의 관계는 나와 부모님의 관계보다는 동생과 아버지와서 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소설속의 아버지인 노먼은 동생을 대하는 아버지보다는 나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닮은 것 같다. 이미 20대인 아들이지만 10대의 반항심은 그대로 남아있는 아들과 그 아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아버지말이다.

 


조는 15살때  친엄마와 그의 새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받고 집을 나와 마술사인 노먼과 그의 여자인 크리스티나를 만나 가족의 따뜻함을 느낀다. 카드 마술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던 조는 유명한 마술사인 노먼의 제자가 되어 마술을 배운다. 그러나 조는 어머니 같은 크리스티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18살이 될때까지 그 사랑을 간직하며 동정을 지킨다. 실제 인생과는 다르게 조는 실제로 크리스티나와 섹스까지 하게된다. 물론 그녀는 환각제를 복용한 상태였고 노먼 또한 그런 둘을 이해했지만 말이다.

 


그 후 성인이 된 조는 집을 떠나 라스베거스에서 딜러로 일을 하게 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법정에 서게되고 그런 그를 보며 노먼을 고통스러워 한다. 노먼과 크리스티나는 진정한 부모처럼, 집을 떠난 조를 그리워하고 애틋해 하지만 둥지를 떠난 자식인 조는 더이상 그 둘에게 과거와 같은 맹목적인 사랑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20대의 조는 오히려 더 반항적이고 아버지를 부정하는 15살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간 듯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소설은 이렇게 끝이난다. 사춘기소년이 된 조가 철이들거나 아버지를 인정하거나 그 둘의 관계가 회복되거나 하는 친절함이란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것이 바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모를 부정하고 그 산을 넘어야만 성인이 될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던가. 20대가 다 가도록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반항심에 부모와 끝까지 대립을 세우는 자식도 있다. 결국은 자식은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고 그 산을 넘어야만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가 있지만 그 과정은 자식에게도 부모에게도 참 힘든 일이 아닐수가 없다.

 


어찌보면 참으로 충격적이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내용보다는 그 후가 더 궁금한 소설이다. 우리말로 번역이 되면서 원어가 갖는 운율이나 분위기등이 많이 달라졌을 테고 조와 크리스티나의 사건이 일어난 '버닝 맨 축제' 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우리정서와 많이 달라 이질적인 느낌이 많았지만 다른 문화와 느낌을 경험해 볼 수있는 소설임에는 확실한 듯하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누구나 미쳐돌아가는 15살을 겪고 어른이 되지만 늘 자식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때쯤 그들은 우리곁을 떠나고, 우리는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고아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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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을 읽는 월요일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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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을 읽는 월요일

 

 

 

많은 것에 관심이 많지만 나도 저자처럼 도사가 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좋은 산, 혹은 집에서라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도를 닦으면 도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명리학이나 풍수지리 등을 배워야 세상 보는 눈이 트이는 것인지. 저자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는 그 열망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하였다는 것이고 나는 그저 상상만 하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도사가 되고 싶다는 뜻을 이루기 위해 국내 명산을 다니고 많은 도사들과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공부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학문이나 예술, 풍수지리, 인물 등에 대해 많은 지식과 지혜가 쌓였고 세상 보는 눈이 참으로 독특해 진 것 같다.

 

 

우리가 산이나 들, 집터 등을 볼 때 보기 좋은가 살기가 편한가 등을 본다면 그는 그 산의 지형과 터의 발복, 인물의 상 등을 보는 것이다. 이 책은 총 4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지는데 문필가, 화가, 각 지역의 부잣집, 집터, 묘자리에 대한 이야기, 풍수와 인물의 탄생, 집안의 내력, 때로는 영남의 풍수와 대통령의 탄생을,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종교와 정치, 노자와 공자의 일화 등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시각들을 보여준다.

 

 

때로는 해학적으로, 때로는 부드럽게 둘러서, 때로는 흥미롭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주제들이 2~3 쪽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꺼내서 읽기 좋고 그냥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기 때문에 참으로 유익하면서도 재미난 책이 아닌가 한다.

 

 

한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들을 폭넓고 쉬운 말로 다루고, 개인의 경험이 때로는 수필처럼 느껴지는 느낌이 강하지만 현대인들의 바쁜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갖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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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탐욕을 팝니다 - 달콤함에 관한 잔혹 리포트
오를라 라이언 지음, 최재훈 옮김 / 경계(도서출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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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탐욕을 팝니다

 

 

이 책을 읽기전 다른 책을 통해 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에서의 아동노동 착취에 대해 접한 적이 있다. 그 계기로 공정무역운동을 알게 되었고 참 훌륭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일은 그냥 초콜릿을 먹지 않는 것이었고 커피도 마찬가지 였다. 이유는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된 초컬릿이나 커피를 쉽게 접할 수 없다는 것과 굳이 그렇게 하면서까지 초콜릿이나 커피를 먹어야 할 만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동노동 착취와 공정무역운동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는 것과, 지구상에서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최대 생산국인 가나와 코티드부아르의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되었고 그 실상은 참으로 참담하고 안타까웠다. 오늘도 우연히 TV에서 가나의 농민에 대한 다큐를 보았는데 비가오면 흙집이 무너져 당장 살 곳을 걱정해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갈 생각도 못한 채 하루하루 먹을 것을 얻기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하면 절대적인 가난에 허덕이며, 마실것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로치면 유치원에 가야할 어린아이들조차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할 만큼 식량난에 허덕이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런 아프리카가 처음부터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식민지에서 벗어날 때는 식량을 자급자족했고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까지는 식량을 수출까지 하던 대륙이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그들이 지금의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런 의문으로 저자는 이런 책을 쓰게 되었다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가나와 코티드부아르를 찾고 관계자들과 농민들을 만나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씌여졌다. 책의 전반은 아프리카가 이런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게 된 정치적, 경제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중, 후반부에서는 아동노동과 공정무역운동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직접 실상을 살펴보고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된 내용이라 현실감과 현장감이 뛰어나다. 실제 내전이 일어난 장소를 여행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이제껏 알았던 것과는 다르게 카카오 농장은 다국적 기업에 의해 대량으로 경작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3헥타르 정도의 소규모 농장이 중심이며, 온 가족이 농사에 전념을 해야한다. 우리의 농업처럼 과학적이지 않아서 안정된 경작을 할 수 가 없다. 또한 가나는 곧 카카오라 할 정도로 나라의 경제 자체가 카카오를 통해 이루어 지는데 독립이후 독재자들이 나라를 장악하면서 카카오를 통해 얻은 이익을 자신들의 부와 정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정치권의 비리와 내전등이 농민들이 경제의 주역이면서도 늘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먼저 대량 식량 수출대륙이던 아프리카가 가난해지게 되고 오로지 카카오 생산에 나라의 경제가 달려있게된 결정적인 이유를 알아보면 그것은 세계정세와 관련이 있다.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인해 큰 이익을 거둔 석유 수출국들은 미국 금융기관에 투자를 하게 되는데 그 금융기관들은 이익을 내기위해 아프리카를 비롯한 신흥개발국에 돈을 빌려쓰라고 부추기게 된다. 각종 혜택을 받으며 돈을 빌려쓴 나라들은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의 세계 경제의 극심한 불황때문에 이자가 솟구쳐 갚아야 할 이자가 감당할 수 없게 쌓여가자 IMF와 세계은행이 해결처를 자처하고 나서게 된다. 그들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 혹독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조건으로 내거는데 그 핵심은 정부재정 긴축, 공공부분 민영화, 대대적인 규제 철폐와 무역자유화였다. 그로써 정부보조금 삭감, 식량보유고를 헐값에 처분, 식량작물대신 카카오, 담배, 차, 화훼등 수출용 작물을 제배, 규제를 풀어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치, 의료에 들어가는 돈까지 감축해가며 빚을 갚아가게 하였다. 그 이후 조금이라도 가뭄이나 흉년이 들면 대규모 기아사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아동노동착취는 어떻게 된 걸까? 그것은 내가 예전에 알던대로 단지 인신매매나 노예노동의 문제가 아닌 듯 하다. 그 문제는 카카오산업, 농촌 빈곤문제의 핵심과 직접 맞닿아 있는 문제이다. 고향마을에서 도저히 혼자힘으로 살아갈 힘도 희망도 없기 때문에 아이들과 그 가족들까지도  고향을 떠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며 인신매매꾼의 마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단체의 활동가는 출석하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이들을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기 까지 하는 이유가 된다. -p136- 결국 카카오 이외의 식량, 상품작물을 제배할 수 있도록 해주고 더 나은 농민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만 풀수 있는 아주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

 


공정무역은 어떨까? 저자는 공정무역 운동을 빈곤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보지 않고 있으며, 그 효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인 듯하다. 필요 없진 않지만 그것이 문제의 해결책이라고는 보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카카오 산업의 구조와 농민의 상황을 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코코아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농민이 아니라 바로 정부이다. 초콜릿가격이 상승한다 해도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거의 미미하다. 이제까지 정부에서 정한 카카오 가격은 그 폭은 큰 차이가 없지만 꾸준히 상승해 왔기에 공정무역이 보장하는 최저가격보다 높아서 농민들이 공정무역 업체에게 카카오를 팔 큰 이유가 없다. 또한 농민들이 카카오를 누구에게 팔지 결정하는 가장 큰 원인은 누가 현금을 주는가와 생산에 필요한 자금은 신용대출 해주는가이다. 또한 농민들이 지역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추가로 벌어들이는 돈 조차 사채업자의 손에 들어가거나 지방 관리들과 나눠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농민에게 가능한 최상의 가격을 보장하기위해 설립된 기관인 가나의 카카오위원회와 코티드부아르의 카이스탑을 이야기 한다. 가나는 카카오 위원회를 유지하지만 코티드부아르는 카이스탑을 폐지하며 이를 대신할 5개의 기구를 새로 설치한 것을 비교하며 트레이더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등을 설명한다. 또한 내전이 일어난 경위, 독재자의 일들, 정부와 반군의 이야기들을 설명한다. 

 

결국 모든 일들을 살펴보면 실제적인 변화는 소비자가 진열대에서 초콜릿을 집어드는 찰나가 아니라 '투표용지에 찍는 붓 뚜껍, 공정한 개표,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 그리고 농민들은 생산자 일뿐아니라 유권자이기도 하다 -p172-' 는 농민들의 각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프리카의 상황에 연민을 가지고 돈이나 식량등으로 보탬을 주는 것은 어쩌면 일시적인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공정무역 상품을 소비하고 매달 얼마간 기부를 하는 것등의 행위는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이다. 한쪽으로는 기부를 하고 한쪽으로는 달콤함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각성만이 그들 자신을 구원할 것이다. 각국의 이기심과 신자유주의의 경제개념, 좀더 저렴하고 달콤한 초콜릿을 찾는 소비자가 있는한 그들의 가난과 식량난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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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는 없다 - 정신 증상의 양자물리학적 이해
김영우 지음 / 전나무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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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는 없다

 

 


빙의, 신들림, 채널링, 영혼, 염력, 텔레파시, 퇴마의식등 일반적으로 미신 이나 착각이라고 불리거나 비과학적이라 불리는 현상들에 대해 늘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과학자들이나 의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은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로만 듣던 '양자 이론' 이나 TV에서 흥미위주로 보여주던 최면치료에 대해 진지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양자론은 원자보다 작은 전자, 원자핵, 빛등 자연계 현상의 중요하고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는 미시세계의 속성과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이론이며 상대성원리와 함께 현대 물리학의 토대라고 할 수 있으며, 컴퓨터, 휴대전화, 반도체 산업등의 기술의 발달에 기초가 된 학문이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광자나 전자처럼 원자보다 작은 소립자들은 입자와 파동의 두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지며, 하나의 소립자는 구름이 퍼져 있는 것처럼 동시에 광범위한 장소에 넓게 퍼져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서로 연결되어 같은 상태를 한 번이라도 공유했던 소립자들은 아무리 먼 거리를 떨어져 있거나 멀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연결이 유지된다고 한다. 또한  홀로그램은 두 개의 레이져 광선을 이요행 만들어내는 3차원 영상인데 이 필름은 한 부분을 작게 잘라내도 그 안에 필름전체의 영상이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이런 과학적 현상들은 우리 삶의 차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사람의 마음과 의식, 감정의 에너지는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 환경와 영향력, 정보를 주고 받으며 무한대의 시공간 속에 홀로그램처럼 퍼져 저장되며 그 사람의 현실적 삶의 모습을 만들어간다고 한다. 고로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몸,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 주변의 물체, 주위 공간에 물리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며, 감정적으로나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감정의 교감이나 텔레파시 현상이 잘 일어나고, 기도나 정신 집중 등 영적인 방법, 의식의 힘으로 치유의 힘이나 정보를 멀리 있는 환자에세 보내는 치료의 효과도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영혼의 최면치료> 란 책의 개정 증보판인데, 책의 앞부분에는 이런 과학이론의 설명과 저자가 이런 이론을 기초로 시행하고 있는 최면치료의 목적과 효과 의의등을 설명하고, 후반에는 치료 사례들을 통해 실질적인 치료 효과들을 전해 준다. 양자 이론의 과학적인 사실을 토대로 하면 우리의 삶은 죽음이 끝이 아닐 수 있고, 이번 한 번의 생을 끝으로 우리의 삶이 마감이 되는 것이도 아닐 수 도 있다. 현재까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편협하고 기계론적인 시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영적인 부분이나 초자연적인 현상등은 한낱 정신질환으로 치부하고, 제대로 된 치료나 도움을 주거나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분량의 책의 내용을 다 언급할 순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답답하고 경직된 심리학과 의학계의 새로운 움직임을 알수 있어 좋았다. 책의 후반에 나오는 많은 최면치료의 예를 보면서 인간의 삶과 내가 태어나고 살고 있는 것의 새로운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불가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윤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번 생 이전의 많은 생에서 만났을 수도 있는 인연들과, 내가 몇년 동안 느꼈던 지독한 우울감이 내 삶을 더 깊이 있게 하고 더 성숙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거운 삶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 졌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 왜 그런 아픔을 겪었고, 왜 우리 가족들을 만났고, 왜 저 사람은 나를 아프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빙의가 없다는 말을 '빙의라고 부를 수 있는 증상들은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이에 대해 흔히 믿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특별히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양자이론에 의하면 실제로 빙의라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고, 해리성 장애일 수도 있는데 그 실질적인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 약해지거나 어두운 에너지가 생겨날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자신의 마음, 기도등을 통해 영적인 부분이 건강해 지면 극복 가능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며, 그에 대한 최면치료의 효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최면치료을 받아 본 적도 없고, 실제도 본 적도 없지만 그 사례를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많은 생각들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흥미위주로만 생각했던 최면치료의 효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만의 존재가 아닌 온 우주와도 합일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양자 물리학과 최면치료, 초개아적인 학문에 대해서 좀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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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지옥에 가다
이서규 지음 / 다차원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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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지옥에 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체가 실려나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그곳에서 주인공은 반공포로로써 3년 동안의 끔찍한 시간을 겪다가 종교행사로 수용소를 방문한 혜장스님을 통해 가족에게 서신을 전한다. 그러다 국군헌병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은 위험한 도시를 피해 혜장스님이 계시는 부산 범어사로 숨어들어 휘문이란 법명을 얻고 혜장 스님의 제자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혜장스님의 스승이신 홍안스님으로부터 강원도 양구 황태사에서 큰 법회가 열린다는 초대장을 받고 강원도로 떠나게 된다.

 

 

 

황태사에 도착했지만 홍안스님은 전날 이미 입적하신 뒤였고, 그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홍안스님의 미심쩍은 죽음, 혜장스님의 사형인 현정스님의 타박, 잇다른 살인으로 인한 스님들의 죽음, 이제는 주인공처럼 스님이 된 포로수용소에서 그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언청이라는 사내, 그리고 법회 때문에 참석한 많은 스님들의 대립이었다.

 

 

 

이 소설에는 황태사와 법회에 참석한 많은 스님들을 소재로 일제강점기와 그 직후의 전쟁을 관통하는 한국사의 불운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자가 포로수용소에서 인민군의 편에서 반공포로들을 괴롭히고, 그런 자가 오히려 반공포로의 자격으로 석방된 후 자유를 얻게 되는 일, 한편 인민군 출신들이 세운 절의 스님들은 현재는 부처님을 받아들여 스님이 되었으나 한때 인민군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되는 사실, 전쟁이 끝나자 일제의 영향으로 처자식을 거느리게 된 대처승들과 불교를 정리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으로 대책을 논의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드러나는 대처승들의 모습, 불가의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자행된 잔혹한 살인의 모습들.

 

 

 

단지 살인에서만이 아니라, 그런 살인이 일어나게 된 인간들의 나약함과 욕망 모두가 바로 지옥이었던 것이다. 나라를 침략하고 역사와 문화와 인간을 짓 밟고, 이념으로 양쪽이 갈라져 피 터지게 싸우고, 전쟁은 끝났으나 나라는 반 토막이 나고, 종교에서 조차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두려움과 욕망이 결국 살인을 불렀던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이 다른 추리소설들이 주는 긴장감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구성이 그렇게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았고, 문장력이 좋아서 술술 읽히는 느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인공의 생각이나 입장이 명확히 정리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시대의 불교상을 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났을 일들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는 것, 불가의 지옥도를 자세히 보여주었다는 점, 그리고 불가의 입장에서 본 인간의 어두운 모습 즉 욕망과 탐욕, 애증, 미움 그럼에도 인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들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읽을만한 점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일제의 영향으로 대처승들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실제를 본 적이 없었고, 그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점에 많이 놀랐다. 가족을 거느린 수도승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나 무척이나 거부감이 드는 것이 어찌 보면 놀랍기도 했는데, 기독교에서는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가톨릭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에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인간자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악행을 저지르고 나쁜 짓을 일삼는 자라 하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부처라는 불가의 말씀,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말과 행동이 죄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 뇌리에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생은 북도 남도, 좌도 우도 가를 수 없는 부처 자체이다. 부처를 구하라는 소설 속 홍안 스님의 말씀이 가슴이 남는다.   

 

 

 

흔히 상상하는 추리소설의 긴장감과 짜릿함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한 현대사의 굴곡과 불가의 깊은 진리와 만나기에 참 좋은 소설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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