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면 시작되는 장마... 내 기억 속의 장마는 두 장의 스틸컷이다.

 

#1. 대학 1 학년때. 이미 20년이 훨씬 넘었다.

수업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저녁이 되려면 멀었지만 주위는 이미 회색빛이었다.

혼자 이름모를 대학로 2층 카페이 앉았다.

 

 창 밖으로 우거진 플라타너스 사이로 초록비가 내렸다.

 

아무도 없었다. 소리도 없었던 듯 하다. 내 기억의 스틸 사진 속 장면처럼 말이다. 아니 소리는 기억이 스스로 말소시킨 것일게다.

 

외로움과 다른 이름의 고독을 거기서 처음 대면했다.

 

 이후로 오래도록 친구가 되어 주었다.

 

 

#2

 아카시아 숲 길을 쓸고 있었다. 군복 입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점점 검게 물들고 있었다.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바람이 불었다. 물을 잔득 머금은 목탄화같았다.

 

혼자 하늘을 보다가.  '아.장마가 시작 될 무렵인가?' 라고 생각했다.

 

군대 고참이 "비 오려나 보다. 어서 어서 마감하고 이제 내려가자." 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빗물이 모여들어 흘러내려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3.

 멜랑콜리한 음악이나 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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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가방에서 하루를 재워 놓았던<시사인>300호. 오늘 아침 설렁 설렁 넘긴다. 언론계의 스파르트답게 300호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많다.

 

 커버스토리는 '철수,호남을 얻다' 이다. 여자들이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가 남자 '군대'이야기,'축구'이야기,,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젠 별로 감흥도 없는 신석기 시대 유머이긴 하다. 철수나 영희가 땅따먹는 이야기가 내게 그렇다. 

 

특집은 '삼성경제연구소'이다. SERI는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그람시를 인용하는 스튜어트 홀의 문화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헤게모니적 쟁투이다. 실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정치적 권력의 쟁투이지만 그 이면에 담론의 투쟁은 정치적 권력의 지반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쟁투과정에 매우 중요한 자원이된다. 신자유주의와 그것을 지지하는 세계경제의 흐름은 어느날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또한 그에 대한 대항권력도 '우리 합시다'해서 튀어 나오는게 아니다. 담론투쟁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하다.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최승호 PD와 인터뷰했다. <뉴스타파>는 요즘 인터뷰하기 힘든 인튜뷰어들(^^ ?)이다. '조세피난처'라는 말 대신 '조세 은닉처'란 표현이 어울리는데 하여간 이 뉴스보도 이후 <뉴스타파>는 가급적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를 꺼리는 걸로 알고 있다. 후속보도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다른 인터뷰로는 <한국일보> 해직 편집국장과의 인터뷰도 있다.

 

문화면에서 <진격의 거인>현상에 대해서 언급한다. <진격의 거인>을 일본 사회의 무기력의 은유로 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의 은유로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싸우는 자 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영화<에브리데이>에 대한 평은- 미안하지만-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칼럼이었다. 평화연구자 임재성씨가 쓴 글인데 <공동체와 회사>라는 제목이다. '그린비' 출판사와 노조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문사회학 책을 취미로 읽는 내게 '그린비'는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출판사이다. 글쓴이는 '진보적 인문학 공동체'와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회사'라는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어서 '공동체라는 이름 속에서도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인정' 그리고 '동일함을 강요하는 공동체의 배타성을 넘어 직원을 회사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태도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학문하는 사람들, 또는 문화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 특징 중에 하나가 인간적 유대의 강조이다. 특히 진보적 문화연대의 특징은 그런 끈끈한(?) 연대같은 것이다. 이건 일반 회사에서도 목격되곤 한다. 서류적 인간이 아닌 동지 또는 가식적이긴 하지만 상징적인 또하나의 가족 같은 것이다. 그 안에 싹튼 동지의식은 매우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하고 힘든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과 외면 또는 봉합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연대의 정에 대해 다른 접근을 하는 아랫사람을 만날 때는 더욱 그렇다. 결국 그건 평등이라는 정치적 올바름의 껍질을 쓴 하방식 권력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배나 권력자는 그런다.'너네들 내가 이런 좋은 생각으로 해주잖아. 그런데 나에게 이렇게 하면 어떡해. 이 나쁜'  

 

 시선의 위치는 여기서 매우 중요하다.

 

 동지의식의 카르텔은 스스로 권력 위계를 인정하지 않는, 기형적인 착각을 한다. 우리는 평등한 동지, 불편이나 어려움은 함께 참는 것. 위계나 서열, 또는 비민주적 토의구조 같은 것은 보수적인 녀석들이나 또는 적들의 것일 뿐이다. 어려운 말 끼워넣지 않아도, 착각 중에서도 상착각이다.

 

최초의 어떤 모임들이 발기되는 과정은 소규모의 의기투합일 수 있다. 하지만 관계는 정체되는 것이 아니고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과의 관계 역시 그럴진대 사람이 모인 집단이라면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아..시사인 300 축하해요.ㅎㅎ 인증샷 찍으면 추첨을 통해 상품 준다는데 혹한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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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6-1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전 아직 300호가 배송이 안되었는데요.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승주나무 2013-07-21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랑 책이랑 놀자..도 있었는데.. 지금은 연재 끝났어요. 드팀전 님 포스트에 댓글 단 것은 5년만인 것 같아요. 영화 카테고리는 열어 놓으셨군요~~ 근데 여긴 어디..? ㅎ

드팀전 2013-07-21 21:10   좋아요 0 | URL
예. 시사인에서 보고 반가왔습니다. 영화 카테고리라는 건 따로 없구요. 다 열려있어요.ㅎㅎ
 
아! 팔레스타인 1 -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사 아! 팔레스타인 1
원혜진 지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여우고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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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왜 저럴까? 궁금하긴 하지만 거기에 많은 시간을 쓸 수는 없다면 <아!팔레스타인>은 그런 당신을 위해 씌여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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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저항 -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사토 요시유키 지음, 김상운 옮김 / 난장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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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저항의 방식으로 푸코와 들뢰즈, 외부적 저항의 방식으로 데리다와 알튀세르. 라캉은 공간적 폐색을 만든 적이 되고 말았다.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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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부터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어 보니 고층 건물들 사이로 느린 걸음의 안개가 다가온다.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라디오.  젊은 여자는 놀라운 비밀을 공유하겠다는 우월감 넘치는 목소리로 톤을 높여 이야기한다. 마라톤 행사로 인해 도로 통제가 있단다.

 

...

 

 글렌 굴드의 시벨리우스 피아노 소나타의 느린 악장의 멜로디가 머릿 속을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한다. 하지만 거품처럼 잡히지 않는다.

 

...

 

커피 한 잔을 올려 놓고 이제는 창 문 밖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안개뭉치들을 바라본다.

 

혼자 물끄러미 바라본다.

...

관성의 법칙은 글쓰기에도 존재한다. 한번 멈춘 펜은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지방이 쌓이면서 점점 더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하거나, 또는 소통의 중심거점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그래서 습관적으로라도 무언가 쓰는 것이 옳은 일이다. 전자나 후자나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권할 바는 아니다만. 둘 다 인간관계라는 폭발적 변수들과는 일정정도 거리를 둔다. 그나마 글로 생업을 이어가려면 실물적 흐름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돈이라는 매개는 싫으나 좋으나 접촉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반면 알라딘같은 곳에 취미로 글을 쓰는 것은 즐거운 일이긴 하다. 동호회에 전 회장 같은 느낌으로 여유를 부리며 글을 쓸 때는 더욱 그렇다. 적당한 스노비즘과 적당한 이해의 폭으로 여유를 부린다.

 

... 그래서 글을 더욱 쓰지 않게 된다.

 

2. 최근 문화예술쪽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을 좀 만났다. 그런데 그저 문화자본을 통해 위세를 도모하는 부류들에 지나지 않는것 처럼 보인다.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돈도 좀 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와인을 한잔 기울이며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누군가를 거론하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작품에 대한 이해나 미적 관심보다는 예술계의 네트워크에 더 관심이 많다. 지역 내에서 문화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창작자들, 그들과의 교류 또는 인맥이 예술보다 더 예술적이라고 믿는 것일까?  이들이 '누구 누구 압네' 하며, '그 사람 작품이 아주 좋아' 라고 하면 그보다 사회적 지위도 낮으며, 뭔가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들은 동네방네 다니며 '그 분이 예술적으로 아주 해박하다.' 라고 자발적 스피커가 되어 준다.  그렇게 공생이 이루어지는것 같다. 한 쪽에서는 얄팍한 취미로 자신을 포장하고, 정치경제적 이득을 요하는 사람은- 일단 예술이니 뭐니, 그런건 관심 없으니- 그들의 부족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데 충성을 다한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는 이런 형식으로 마감된다..

 

  "어...그 작품 아주 훌륭하다구...00씨도 너무 돈버는데만 힘 쏟지 말고, 그런것도 경험해 보라구. 아...그리고 이번 주 공치러 가는거 멤버 다 만들어졌나? 누구 누구 나오신다고 했지."

 

3. 점점 더 조용히.. 가만있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만이 강해진다. 

 

미뤄봐야 곧 샤게 될 몇 몇 책들 CD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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