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서 아내의 강의 동영상 편집 해주고 나니-편집계의 빠른 손ㅎㅎ- 날이 훤해진다. 그래도 아내의 감사는 짧고 시키는 집안일의 목록은 길다. /ㅠ / 기침이 콜록 콜록 나고 어깨도 약간 욱씬한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지난 달에 폐렴으로-어린이와 노인을 제외하곤 보기드물다던, 그 폐렴- 사흘간 입원하고 -잘 쉬었다- 이제 한달 정도 지났는데 또 살짝 감기 기운이 있는 셈이다. 일단 아픈 것도 겁나지만 쪽팔린게 더 겁난다. 이거 뭐 허우대만 멀쩡 했지 저질 체력과 약골로 볼꺼 아닌가? 운동부족인 건 확실하다. 마흔 넘으면서 건강상 노란 깜박이등이 가끔 점멸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 건강한데 작은 감기 하나로 병자 이미지만 커져버리게 생겼다.

 

추워서 그런가. 힘차고 따뜻한게 그립네.

 

빈 필하모닉은 신년음악회가 유명하지만 여름 철에는 쇤부른 궁에서 이런 것도 한다. 여름밤 아이들과 이런 곳에 한번 가보면 좋을텐데...

 

<여기 원래 유투브 동영상 있었는데...지웠다. 물론 링크연결방식도 있을것이다만...그거 어느세월에 다 수정하랴....지우는게 더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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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본  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중 밑줄 쳐진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의 신호들을 읽지 못하는 한 그 잘난 <자본>을 읽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을 옮기다 보니 이 말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지지해 주는 흐뭇한 의미로 받아들이는,아전인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현재 정치적 어젠더는 선거에 집중되어 있다. 2012년이 선거의 계절이다. 지난 글로벌 호구 정권의 파행이 불러온 퇴행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선거를 통한 변화열망이 무엇보다 높다는 것도 사실이다. 최소한 제도적 정치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투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변화의 폭과 깊이를 깊고 넓게 만드는 것은 중요한 진보적 과제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거리의 신호'를 읽는데 진보는 좀 더 예민해야 하고 능동적이어야 한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이 만든 프레임에 갖혀서도 결코 안되지만 개혁적 진보라고 프레임도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되새겨야 한다. '거리의 신호' 역시 거리를 두고 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꼼수'현상을 긍정한다. 또한 그들이 칭송받는 것 만큼 탄압에도 노출되어 있다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비판은 현재적이어야 현재적 실천성을 갖는다. '그 땐 그런 면도 있었지'는 안타깝게도 회고적 성찰일 뿐 현재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삶의 충만성을 이루려면 무리에 이끌가면서도, 따라가면서도, 이 생각을 놓치 않아야 한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비판적 독서가이길 원했다. 따로 제대로된 학문을 못한 탓이다. '오빠' 이외에 모든 종류의 '-빠'에도 거리를 두었다. 지금도 그렇다.  '열공하는 좌파'도 못되고,'나는 좌파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지도 못하며, 그저 '좌안파'가 되어 왼쪽 강둑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다. 과거 같으면 이런 태도를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분파주의'라고 비판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애석하게도 이런 비판보다는 오히려 '그게 당연한거 아니야?' 그게 좋은거야' 라고 품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매우 고마운 일이고 힘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솔직히 뭔가 석연치 않다. 빗방울 같은 다원주의는 개인주의화,또는 개인의 원자화라는 경로를 통해 결국 단절을 강화한다. 마치 많은 것을 나누는 듯 하고 인정하는 듯 하지만 결코 자기를 파괴하거나 자기를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를 핍진 시키지도 않는다. 방대한 열림이 사실은 방대한 세계와의 단절이며 혁혁한 자기보호의 굴레라는 역설적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얄팍한 지식으로 말해본다면 이 공간은 여러 측면에서 '진화적 안정' 상태이다. 그리하여,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위로의 감성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정치적 이유로 사리진 사람도 있고, 흔한 말로 재미없어서 사라져 버린 사람도 있다. 인식을 뒤틀어 버리는 다크 커피같은 질문은 제공되지 않으며, 에스프레소의 거품 위로 진보라는 한 두 스푼의 설탕이 입맛을 돋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과거 소규모 마을 같은 알라딘은 이제 사라졌다. 별로 아쉽진 않다. 세상이 그렇게 가는 것이다.   

 

한 해도 지났는데 몇 몇 분께 안부를 건내려 했다. 다들 여기 저기 가버려서 찾기도 쉽지 않다. 바람구두나 파란여우님도 사이트 들어가서 다시 경향 사이트로 찾아 들어가야 한다. 내가 매우 좋아했던 메아쿨파님은 아예 사라졌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버려서 인사조차 남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멀리서 인사를 건넨다. 오래 전 친구들이나 또 나를 지켜봐준 분들께 말이다. (별 상관 없겠지만, 글로 세계와 인간을 배운 듣보잡은 제외다. 올해는 꼭 마당 쓸어라.거기가 로두스다.)

 

 "모두들 건강하시구요.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 처럼, 담담하게, 의연하게,뚜벅 뚜벅 임진년 한 해를 보내세요. 소리없이 오래 가야 하는 것이 배터리만은 아닙니다."

 

 

  민들레 뿌리 (도종환)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 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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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찬이와 재원이가 산타 할아버지 맞이 조신 모드에 들어갔다. 예찬이는 파워레인저 정글포스, 재원이는 판다 인형이 며칠전 산타 할아버지 목록에 기재되었다. 

예찬이는 집에서, 그리고 유치원에서도, '파워레인저'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유명한 '앵그리 버드'도 말이다. 먼저 '앵그리버드'에 대해 말하자면, 난 스마트폰 유저가 아니고, 아내는 게임이라면 '사다리 타기' 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예찬이는 '앵그리버드'를 안다. 빨간새 말고 검은 새도 있다는 것을 나는 예찬이 때문에 알았다. (검은 새의 용도는 예찬이도 모르는 듯.)

'파워레인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이 지구를 지키는 '파워레인저' 를 어디서 보았단 말인가?  아내는 유치원 친구들로 추정한다. 친구들의 T셔츠나 가방, 신발 등에 새겨져 있는 캐릭터, 그리고 아이들의 역할 놀이 대사들 "나는 파워 레인저 정글포스다."  내 어린시절 친구들과 '로봇 태권V'와 '마징가Z', '그레이트 마징가'가 되어 날아 다니며 싸웠던 생각을 해보면 아내의 추정이 100%맞을 것 같아.  

지난 주말 아이와 마트에 들렀다가 도대체 '정글포스'가 어떤 구성인지 알아보려고 장난감 코너를 들렀다. 지적 호기심 차원에서. 예찬이가 뭐라 뭐라 설명해주는데 예찬이도 잘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구들따라 '이게 정글 포스 갑돌이니 갑순이니' 하는 것만 해봤지 실제로 자기가 TV에 몰입해서 경험한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략 보니 분리/합체 로봇이었다. '독수리 오형제'라는 선험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1. 인간으로 비닐 옷 쓰고 각기 재능을 발휘한다. 2. 더 강한 적이 나오면 합체 로봇으로 변신한다. 예찬이는 요즘 독수리를 비롯한 맹금류에 대해 관심이 많다. (예찬이는 검독수리 1호다. 재원이는 뭐 좋아하냐고 했더니. '양' 이란다. ) 그래서 그 많은 정글포스 파트들 중에 이카루스, 팔콘 뭐 이런 것들에 눈을 떼지 못했다.   

하여간 대충 '아, 정글포스가 저런 거구나' 하고 장을 보고 나왔다. 

회사에 와서 파워레인저 검색. "아...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아주 친절한 완구 사이트에서 파워레인저 정글 포스의 전모를 파악하고 말았다. (뚜둥) 

 대단히 복잡한 구성이다. 문득 예전에 여자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파워레인저 그거 하나에서 끝나는게 아니라구. 거기에 뭐가 또 있고 또 있고..그거 다 사주려면 끝장난다."  

일단 5명이 합체를 한다는 추론은 맞다. 그런데 정글 포스는 20여가지의 동물들의 캐릭터 능력과 다중 합체를 한다. 예를 들어 정글포스 이카루스는 매 같은 몇가지 동물들이 합쳐져서 완성된다. 또 정글포스 타이탄은 고릴라 같은 힘센 동물들이 합쳐져서 완성.  정글킹,정글 카이저, 정글 타이탄, 정글헌터, 정글 이카루스...등등이다. 

 최근에는 파워레인저 정글포스는 시리즈가 끝나고 파워레인저 미라클 시리즈가  나오고 있단다. 다른 캐릭터의 로봇 조합. 새로운 시장인 셈이다. 오늘 아침 파워레인저 공부 많이 한다.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아주 우화적으로 보여준다.    

 파워레인저 캐릭터의 본질은 무엇인가?  '부모 지갑에서 돈 빼먹는 것' 이라는데 요즘 소와 말도 다 따라 해대서 지겨워 죽겠는 '500원'을 건다.  

그. 러. 나. 

파워 레인저에 대해 내가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담. 산타 할아버지가 알아서 하셔야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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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2-01-15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부모가 산타할아버지라고 아이들이 생각한다는 것이지요..ㅎㅎ 드팀전님,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새해 멋진 음악 많이 들으시고 예찬이에게 사사 많이 받으시길 빕니다. 형이상학적 사유의 본원성에 관한 위의 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요새 우리 아들-순보의 형이상학적 질문에 답하느라 ...

드팀전 2012-01-16 09:00   좋아요 0 | URL
아직은 부모와 산타는 다른 존재라서... 건강한 한 해 되시길.
 

당신은 먼저간 아드님께 부끄럽지 않은 어머니셨습니다. 넓은 치맛자락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야트막한 산그늘이 되어 주셨고, 늙고 오래된 몸으로 젊지만 게으른 몸을 깨워주셨습니다.  

당신의 먼저 간 아들을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 처럼 당신 역시 그렇게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아드님 곁에서 편안하시길....이.소.선 .어.머.니  

 

1천만 노동자의 어머니 끝내 잠들다...이소선 여사 소천

노컷뉴스 | 입력 2011.09.0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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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이대희 기자]

"내가 못 다한 일, 어머니가 꼭 이뤄주소. 내가 죽고 없으면 엄마가 댕기면서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단결해서 싸워야 한다'고... 그렇게 외쳐 주소"

41년 전, 화상으로 온 몸에 붕대를 감은 22살 아들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 당부한 유언이다.

아들 전태일의 마지막 말을 지키는 것, 그것만이 고인의 살아가는 삶의 이유였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였던 이소선 여사가 3일 소천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한 노동자의 평범한 어머니였지만 1970년 11월 13일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날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며 분신자살하면서 고인은 민주화 투사로 거듭났다.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였지만 아들과의 약속을 위해 '전태일'이 돼 살아갔다.

전태일 열사에게 자극 받은 수많은 사람들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벌이며 고인을 찾아왔다.

고인은 이렇게 찾아온 이들을 연결시켜 주거나 공권력에 쫓기는 이들을 숨겨줬다.

수배중이던 고 조영래 변호사를 애인으로 위장시켜 경찰의 포위망을 뚫기도 했고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장기표씨를 숨겨주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김대중 정부 시절 중반까지 20년 넘게 경찰 정보과 형사들이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생활을 하며 4번이나 구치소에 다녀왔다.

노동자의 대모였던 고인에게 나이가 더 많았던 문익환 목사나 김대중 대통령도 깍듯하게 '어머니'라 불렀을 정도였다.

1986년에는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이들의 유족들을 모아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유가협)을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고 죽기 직전까지도 고문을 역임했다.

1989년에는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135일 동안 의문사 진상 규명 농성을 벌였고 1998년에는 의문사 진상 규명 및 명예회복법 제정을 위한 422일 천막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의 현장에는 언제나 고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쓰러져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도 부산 한진중공업 3차 희망의 버스를 타는 일을 상의했을 정도였다.

별세하기 전까지도 아들 전태일이 공장에서 남은 천으로 만들어 앞 뒤 색깔이 다른 겨울 속바지를 입었던 고인.

누구와도 바꿀 수 없었던 아들 전태일을 잃은 천불이 일어 신경안정제를 먹어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 숱했다.

"나는 올 때까지 다 와서 이 달에 갈지 훗 달에 갈지 몰라. (40년동안) 갈 데 안 갈 데 다 다녔는데 변한 게 없어서, 우리 아들한테 가서 할 말이 없어서 큰 일인기라"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짊어졌던 고인.

우리가 고인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아닌 고인의 이름 석 자 이소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2vs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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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 중요한 모니프다. '전선야곡' 을 전선의 낭만이 아니라 갑돌이의 아들, 철수의 아버지로 해석상 전환 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전쟁'에 반대하는 '보편적 휴머니즘'으로 승화시킨다. '전선야곡'을 부르는 화자에게 '전쟁터'는 '사지'이며, 정한수 떠놓고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는 '고향'은 '생'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극단의 간절함이 있다. '어머니와 고향'으로 상징되는 생의 욕구는 '죽음'을 종용하는 권력과 전쟁에 대척점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남과 북 그리고 이념을 초월한다. '전선야곡'은 이 영화에서 '반전'의 주제를 매우 자연스럽게 극중에 융화시키며 또 관객에게 전이시킨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이자 매체인 것이다
 

 영화는 각종 전쟁영화에서 다루어진 클리세들을 적당히 가지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있고 ,<웰컴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도 있으며, <지옥의 묵시록>과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잠시 휴전한 1차 세계대전 이양기)와 <라이언일병구하기>까지...


 이 영화가 이런 저런 유사한 영화의 데자뷰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구조적 완결성을 놓치치 않은 것은 감독의 주제의식에 대한 끈을 끝까지 놓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라는 것 말이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이다윗이란 배우가 이 곡을 부를 때 이 영화가 다다를 지점이 예견된다. 그리고 이 곡은 일전을 앞두고 거대한 생의 합창으로,반전의 합창으로, 반권력의 합창으로 애록고지를 울린다. 이런 노래를 통해 메시지를 스크린 안과 밖으로 투사하는 방식은 매우 현명하고도 효과적이다 
 
다니엘 J 리버틴의 <호모 무지쿠스>란 책에 보면, 인류는 언어/음악과 공진화한다. 특히 음악은 언어와는 다른 소통 매체로 자리잡는다. 즉 음악은 "정직한 신호를 전달하는 체계, 소통자의 진정한 감정 상태와 동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저자는 이어서 감정을 나타내는 신호로 치자면 음악보다 나은게 없다고 말한다. 즉 영화에서 '전선야곡' 이 만드는 남과 북의 병사들의 감정체계는 생의 정직한 신호로 스크린 바깥까지 전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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