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렇다. "예술은 사기다." 

 

코끼리표 전기 밥솥이나 삼성전자 컬러 TV 만큼이나 진부한 이 말은 영화<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도 적용된다. 영화가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뻥으로서의 예술, 사기로서의 이야기, 판타지로서의 영화' 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영화는 팀 버튼의 <빅피쉬> 나 타셈 싱의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의 연장선 속에 있다. (이 정도 이야기하면 이미 다 아는 사람들은 "아...뭔 풀 뜯어 먹는 소리하려는지 알겠군." 할테지만) 두 영화 모두 '이야기에 대한 아름다운 영화' 이다.  팀 버튼과 타셈 싱 모두 헐리우드의 스타일리스트이다. 그들이 만드는 시각적 이미지는  동화적이고 환상적이다. 독보적인 시각 이미지로 영화의 식욕을 높인 사람들이다. 이런 스타일리쉬한 영상은 21세기에  분홍빛 셔츠를 입고 헐리우드를 활보할 것 같은 웨스 앤더슨에게로 이어진다. (사랑스러운 영화 <문라이즈 킹 덤>을 보라.)

 

영화를 비롯하여 모든 예술은 일정 정도 숙성된 이후 자기반영적인 속성을 갖는다. 자기반영이라는 건 쉽게 말하면 '되먹이는 것'이다. 이것은 놀이가 될 수 도 있고, 성찰이 될 수도 있으며, 또한 전제가 된 개념에 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즉 예술이 예술 자체를 소재로 삼고, 영화가 영화 자체를 대상으로 삼아 노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글로리아 스완슨이 나오는 영화<선셋대로>)는 헐리우드 무성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자,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자기 성찰 또는 영화 자체의 의미를 되짚는 자기 반영성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작품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역시 동화적인 시각이미지와 코믹 스릴러 양식을 전면에 내새우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한 겹 아래에는 앞서 말한 뻥으로서의 '이야기'와 '예술' 또는 '영화' 에 대한 경이와 존경을 담고 있다. 

 

영화는 먼저 선명한 색상과 잘 짜여진 화면 구성으로 마음을 빼앗아 간다. 단 한 장면도 건성으로 찍은 샷이 없을 정도로 프레임으로 통해 들어오는 시각이미지는 완벽히 감독의 의도와 통제하에 놓여 있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눌러 찍듯 한 장면 속의 색상과 소품, 세트, 조명 등이 일관된 흐름 속에서 진행된다. 빨간 색 엘리베이터, 보라색 유니폼, 분홍색 케이트샵, 푸른 빛의 감옥, 하얀 설원. 감독의 게이적인 아지자기함이 사랑스럽다. (대단히 키치적인 색 분포아닌가? 키치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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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늙은 작가(톰 윌킨스) 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늙은 작가의 영화 속 이름은 없다 !!<흥부전>이나 <해와 달> 이야기의 원작자가 없듯이. 태초에 이야기가 시작될 때 거기에 작가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형태의 문학인 구비 문학이란 것이 무명씨들의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젊은 작가 역시 이름이 없다. 

 

카메라를 응시한 무명의 작가는 자기의 스토리를 시작한다. 영화는 피카레스크 구성을 따른다. 이제 수 십년 전 벚꽃 피는 오늘처럼 젊은 날의 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젊은 작가(주드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머무는  - 우리 현대인들이 그러하듯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어슬렁 거린다.  젊은 작가의 눈에 한 명의 노인이 들어 온다. 엄청난 부호이자 호텔의 주인인 무스타파(머레이 에브라함)이다. 그는 좋은 방을 놔두고 로비 보이의 숙소로나 적당한 자기 호텔의 작은 방에 머문다. 무스타파는 "오래되어 운치가 있다는 목욕탕" 에서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젊은 작가에게 들여준다. 로비 보이로 이 호텔에 오게 된 이야기와 그의 스승이자 상사였던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와의 오래된 추억을 말이다.

 

잠시 정리해보자. 관객은 늙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데, 작가가 어렸을 때, 어떤 늙은이가 해 준 자신의 젊은 날의 이야기를 듣는 셈이다. (이야기가 좀 헷갈려 보이지만 의도한거다. 즉 '이야기'에 대한 영화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영화는 보다시피 두 번의 화자를 통해, 즉 두 번의 액자를 통과하여 메인 스토리에 도달한다. 액자 속의 또 다른 액자.  자...좀 전에 영화의 색감을 이야기하며 장면이나 씬이 아니라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왜 썼는지 눈치 챘어야 한다.  영화는 프레임의 예술이다. 액자는 다른 말로 하면 창이고 프레임이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촬영된 스크린이라는 창문을 통해 경험한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띌 정도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구도가 바로 창문이미지이다. 창문(프레임)을 통해 호텔 내부를 보고, 창 틀에 서서 이야기하는 주인공들이 나온다. 창문과 관련된 이미지가 너무 너무 자주 등장한다. 공원의 비둘기 똥만큼 많다. 창을 중심으로 수평 패닝을 한다거나 창문을 통과하여 줌 인, 줌 아웃한다. 반복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감독은 쿨하게 "난 그게 좋았을 뿐이고"라고 말할 터이지만. 감독의 의도가 영화를 보는 해석의 종착역은 아니다. 그런 수직적 비평관은 '작가를 죽여버린'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창문의 이미지는 영화 프레임에 대한 상징적 기표인 셈이다. (이제는 진부한 상징아닌가?) 

 

우리는 벌써 두 번의 '액자'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액자 소설'의 액자, 그리고 '프레임'으로서의 액자이다. 영화의 중심사건은  '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명화를 유산으로 받게 된 호텔 지배인이 겪게 되는 소동이다.

 

그렇다. 그림이다.그림.

 

히자만  주인공은 그림을 숨기거나 옮기지 않는다. 그림이 걸린 액자를 옮긴다. 뭔 말 장난이냐고.? 잠시 나와서 좀 보자.   잠시 삼천포를 들렀다가. 과문해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사과를 든 소년'은 처음 보는 그림이다.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은 안다. (정말 '사과를 든 소년'이란 그림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상관없다. 뻥이니까) '사과를 든 소년'  대신 벽에 걸렸다가 결국 분노 폭발한 아들(애드리언 브로디)에게 발각되어 부셔지는 그림은 누구나 알 만하다. 에곤 쉴레다. 영화<파란 대문>에서 김기덕이 하숙방에 졸라 떡하고 걸어 놓은 것도 에곤 실레였다. 하여간 우리는 그림을 옮긴 것 같지만, 사실 액자를 옮긴 것이다. 이건 말장난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데리다는 예술작품에 있어서 에르곤과 파레르곤의 관계를 설명한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작품, 예술의 내적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그것은 '에르곤'이다. 그리고 부차적인 그것, 즉 액자와 같은 것은 '파레르곤'이다. 데리다는 이 에르곤과 파레르곤의 경계를 해체한다. 오히려 그동안 외면당했던, 인식에 포함되지 않았던 파레르곤과의 위상, 침투, 넘나듦, 경계에 주목한다. 이렇게 세 번째 '액자'가 등장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파르레곤은 화면비이다. 관객은 뭔가 변화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를 수 도 있다. 아니면 "아 왜 갑자기 화면이 줄었지?" 정도로 파악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는 화면비가 1: 1.37 1: 1.85 , 1: 2.35 등으로 변화한다. 스토리의 시간에 따른 변화인 셈이다. 화면비의 변화는 영화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상징하는 한가지 오마주인셈이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미학적 경험은 분명 시대를 따라 변화해 왔다. 영화 <그래비티>의 시각적 이미지의 변화가 놀라운 것이 듯, 화각의 변화, 스타일의 변화, 색깔의 변화 등 영화의 기술적 시지각의 변화 역시 영화라는 예술 체험에 있어서 거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파르레곤으로서의 영화 프레임의 변화. 우리의 영화적 체험은 그런 파르레곤의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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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언급했던 영화 <더 폴>의 도입부에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장중한 울림 속에 멋진 흑백 오프닝씬을 만날 수 있다. 그 장면은 감독 타셈 싱이 무성영화 시대의 영화인들에 대한 존경으로 포함시킨 장면이다. 영화<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어떠한가?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든 연기와 액션은 그야말로 버스트 키튼이나 해롤르 로이드의 그것 아니던가?  유산 발표장에서의 주먹다짐, 감옥에서의 도주씬, 호텔에서의 총격전 등등등... 현대의 코미디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올드한 ,그렇지만 향수를 자아내는 고전 코미디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나는 장면들이 아닐수 없다.

 

영화 속 마지막 대사에서 호텔 주인 무스타파는 '구스타브는 그 당대에도 이미 오래전 사람이었으나, 그의 환상 속에서 살았다.' 라는 말을 한다.(정확히 기억아지 않는다.) 

 처음부터 무스타파가 로비 보이였는지 의문이 갔다. 외모가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그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무스타파가 결국 구스타브이며 로비 보이 제로라는 것이다. 아니 그것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이 영화가 그 문제를 밝히는 스릴러는 아니지 않은가?  궁극적으로 이 영화가 '이야기'와 '영화'라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라면 주인공은 구스타브여도 제로로 불러도 상관이 없다.

 

한가지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점이 있다. 인도 소년으로 보이는 로비 보이의 이름. 그의 이름은 '제로'(ZERO)다. 그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민자, 난민이다. 그래서 '제로'이다. 수학에서 '제로'의 의미는 무엇인가 알면 그 '제로'라는 기표가 환상이라는 기표와 대단히 상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로는 '없는 것이며 있는것이다' '없음으로 있음을 보장하는 것이며 있지만 그 실체를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이다.  우리가 예술이라는 것, 영화라는 것. 이야기라는 것. 그것이 바로 '제로' 와 같은 도상에 서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영화에 대한 '벚꽃 예찬' (우리 아들 이름이다.)이다.   

 

**  엘리베이터 타고 열심히 멀티플렉스 영화관 올라가서- 예전엔 대개의 영화관이 1층에 있었다- 뒤적여봐도 확 꼽히는, 볼 만한, 그런 영화 찾기 쉽지 않은 시즌이다.

그런데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외면 한다고...당신은 미세 먼지때문이거나, 봄날의 멜랑꼴리때문에 제 정신이 아닌게 분명하다. 아님 말고 홍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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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29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행기 조종보다 더 힘든 운전을 하셨으니 비행기 조종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게 편하실 것입니다.

비로그인 2014-03-29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동네 주변에서도 예술이 나치즘의 시간이었고 춘화의 시간이었고 뻥이었던 시간들을 간직하셨을 테니까요. 되풀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 미리 경고한다. 나는 격한 말로 쓸 거다. 왜냐하면 이들은 진짜 나쁜 놈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나쁜 놈인지는 물론 주관적 의견이기 때문에 아니라고 하면 할 수 없다.

 

노동당의 박은지 대변인이 죽었다. 어제 영결식이 있었다. 자살로 추정된다고 한다. 먼저 명복을 빈다. 이제 모든 것을 놓았으니 바람처럼 자유로와지시길...

 

그것이 무엇이었든 삶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먹는 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 그리고 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뚝 떨어져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그 실존의 공감으로 그녀가 겪었을 아픔을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위로하고 싶다.

 

아침 포털사이트에서 주말 기사를 보다가 고 박은지님 관련된 글을 봤다. "9살 아들이 발견"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아들과 비슷한 나이다. 초등학교 2학년 또는 3학년. 

 

이 장면은 여러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아마 그 상상대로 모든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보았던 것이다.

 

나는 아이가 받았을 충격과 공포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이 빌어먹을 기자님들에게 쌍욕을 하고 싶어졌다.

이 새끼들, 진짜 나쁜 놈들이다.

 

 

그들이 '아이의 충격'을 걱정했을까? 아이의 충격을 걱정했다구?  지랄하십니다..

아...사건의 진실을 전하고 싶으셨다구요. 그게 이 사건에 대단히 중요한 진실이었군요?

이 개나리 똥구멍만한 종달새 개새들아

 

어디 가서 누구 누구 만나 들을 소리를 가지고 뭔가 아는 척하고, 자기가 꽤나 높은 무엇입네 하고 다니면서 결국 한다는 짓이 저런 짓들이다. 거기에 장례식장 가서 우는 아이 사진 찍어서

모자이크해서 올리고.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결국 싸구려 내러티브에 익숙한 위대한 기자님들의 글빨 짓과

셔터질에 지나지 않는다. 아...좋은 대학 나와셨다구요.

 졸라대 새대가리과를 나오셨나 봅니다.

 

sns에 올라오는 글들은 "아이는 어쩌구" "저런 모진 엄마" 이런 흐름으로 간다. 대중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보수언론의 신문기자 새끼님들이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거니까. 댓글에는 분명히 "자식도 버리는 냉혈한 모정"이나 "자식은 아랑곳 하지 않는 빨갱이" 라는 악성 글들도 이미 있을 것이다.

 

위대한 기자님들께서  비스켓 부스러기만큼이라도 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해 공감했다면- 그리고 그런 일을 목격했던 아이라면 당연히 보호해주어야하는게 사람의 도리 아닌가- 저 따위 글을 올릴 수 없다.

 

저들은 '아이의 충격'을 이용한 것 뿐이다. 그러니까 너네들은 아이의 슬픔과 충격을 이용해서 너네들의 하루 업무를 마친 거라구. 시방새들아. 너네들이 독가스실 버튼 누르는 놈들이라구...

 

아이가 발견한 것이 도대체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나? 기자들은 물론 관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최초 발견자와 목격자를 써야하니까. 그 경우도 대개는 기사 내에 숨어서 넘어간다.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하여...또는...가족이 발견하여....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그걸 표제에 떡걸어서 "아이가 발견"이라고 쓰는 건 뭐 하자는 짓인가? 그걸로 뭘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위해 한 사람의 죽음과 한 아이를 팔아넘기는가?

 

대중의 관심과 클릭 수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저 아이의 고통과 상처는 눈에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이미 충격적인 엄마의 죽음으로 평생 따라다니게 될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보호해주어야만 하는 가엾은 존재다. 그런데 이런 작은 존재를 너네들의 셔터질과 글질로 더 깊은 상처를 줘. 그러니 너네들은 개새소리를 들어야 마땅한거다.

 

이제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수근 거릴 것이다.

"아이구...애가 그걸 다 봤다지." "애가 그 담부턴 좀 이상하데요","아이구...참 안됐네. 애가 무슨 죄가 있어." ....

 

'아이의 충격'을 걱정해준 좋은 대학을 나오시고, 월급도 괜찮으시고, 회사원들보다는 어디가서 폼잡기도 괜찮으신 기자새끼님들이 만들어 주신 상황이다.

 

에라이 이...수준 낮은 새끼들.

너네들은 나쁜 새끼들이야. 그거나 제대로 알라구.

 

아...아침부터 진짜 열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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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3-1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였지요.
비열한 언론들은 옳다구나 달려들었겠지요.
마구 자극적으로 써댔겠지요.
이번 기회에 페이지뷰를 올려 광고 단가를 올리고 싶었겠지요.
아마도.

드팀전 2014-03-12 10:33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위대한 기자 정신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야죠.
직업 윤리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어른으로서의 자세 조차 못가진 것들이
대중 매체를 점거하고 있다는 위치만으로
헛짓을 해대니...


북극곰 2014-03-12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래 애 가진 엄마라 드팀전님 심정 백번 공감합니다!

드팀전 2014-03-12 10:35   좋아요 0 | URL
^^ 네. 제가 특히 아이들 관련된 거에 욱 잘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작은 존재들이니까요.

그 아이들을 잘 키워야 지금보다 조금 나은 세상이 될 지도 모르니까하는 생각에..

뭐 아빠죠.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요즘 포털 검색 1위는 역시 개인정보 유출이다. 어제 백화점에 잠시 들렀는데, 카드 담당창구는 정말 바글 바글 했다. 주로 50대 이상의 장년층 및 노년층들이었다. 창구 직원을 붙들고 하소연하는 분부터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창구에서 상담이나 해주던 직원이 왠 봉변인가?  정말 자기랑은 아무 관련도 없는데 연신 굽신 굽신...하도 안돼 보여서 지나가면서 "고생하시네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냈다.

 

주민등록제에 대해 다들 얼마나 관심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90년대 후반이었던가 주민등록 교체할 때 하도 개겨서 주민등록에 대해 읽고 들은게 있었다. 이번 일로 그게 생각이 났다. 주민등록제도는 박정희 정권 때 본격적으로 시행된 제도이다. 전국민에게 고유식별번호를 부여하여 국가가 개인의 신상을 일목요연하게 수집,관리하는 제도이다. 간첩 및 불순 세력 색출,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이 주요 관심사였다.

 

뭔가 좀 수상쩍다 싶으면  "어이 거기 민증 좀 봅시다." 이건데.  당시 군부 출신의 국정 책임자들은 바빠서 영화를 못보셨던 것이다. 스파이 임무의 첫 번째는 "자, 여기 자네 여권과 신분증일세." 이거 아닌가?  결국 간첩 잡는 건 핑계였다. 간첩 중에 주민등록증 미소지로 걸린 사람 있던가?

결국 사회안전이라는 이름의 사회통제가 목적이었다.

 

하여간 90년대 말, 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권력의 통제라는 주제에 대단히 깊은 관심이 있었다. 일상적 파시즘론을 비롯하여, 미셀 푸코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한국의 주민등록제도는 세계 최강이다.  대개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국민들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국가가 관리한다. 근대 주권국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배제/포함을 정치 철학적 근간으로 삼기 때문이다. 대개는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되는데 몇 가지 공통적인 방식들이 있다. '개인번호 식별제','거주지 등록제', 그리고 '신체정보 등록제'다. 이중 최강은 맨 마지막에 있는 '신체정보 등록제'이다. 쉽게 말하자면, '지문 날인'이다. 이건 서구권 국가에서는 범죄자들에게만 채취한다. 그러니까 좀 확대해석해서 보면, 전 국민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셈이다. 뭐 그렇게 까지 볼 필요가 있겠냐만, 그래도 그런 거긴 하다.

 

 각 나라는 각기 국내 실정에 맞춰 이를 선별적으로 적용한다. 미국은 의료 보험번호나 자동차 등록증 번호로 이를 대체하고 개인 고유번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고유번호가 있지만 거주지를 따로 등록하지 않는다. 동사무소 가서 전입신고 안해도 된다. 대개 국가 권력과 국민의 자유 사이에 침해소지가 국가 초기부터 쟁점시 되었던 나라들이다.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 등 복지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들은 국가에 의한 주민관리제도가 미국이나 프랑스등에 비해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관계법령으로 사회복지 이외의 사용을 대단히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국가권력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쟁점...뭐 이런거 없다.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에 눈물, 콧물, 감동 비빔밥 3종 세트를 9900원에 모셔도, 절대 저런 건 관심이 없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도, 이런거 문제 제기하면 영화<남쪽으로 튀어>의 김윤식 대하듯, 튀는 사람 또는 빨갱이 또는 무정부주의자 ,반정부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가권력과 개인의 자유'는 빨갱이들의 반정부세력의 관심주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 사람들이 키워 낸 문제다. 그러니까 빨갱이의 문제가 아니라 파랭이의 문제라는 거다. 똥과 된장을 구분 못하는 이들이니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결국 '국가'에 과잉 몰입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일부러 '국가'몰입한 거 아니다. 권력은 여러가지 다양한 전술을 통해 개인의 자유 및 신체를 장악한다. 그리고 오랜 권력의 개입 효과를 지우는 방식, 즉 개인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권력의 개입을 받아들이게하는 방식으로 마감된다. '권력의 내면화'라는 것이다.  푸코의 권력론에서 이 권력은 단순히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착각해서 '난 정치권력 이런거로 부터 자유로운데'하면 안된다. 먼저 정치권력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으며, 둘째, 푸코의 권력은 길게 이야기 할 순 없지만 협소한 권력개념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푸코의 권력/자유에 대한 관심은 '규범권력-생체권력-통치성' 이라는 방법으로 완성된다. 푸코가 7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적 주체성의 출현을 예기하며 언급했던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현재 우리가 도달해 있는 곳이다.

 

국가 권력이 잘 만들어 준 개인정보등록법은 자연스럽게 기업체의 고객정보가 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또는 아마존 같은데 등록해본 사람은 안다. 한국보다 훨씬 가입 절차가 간단하다. 이미 국가가 포맷을 만들어 놓고 잘 쓰고 있는 정보들이니 기업체도 그 익숙함에 기대어 그걸 요구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신상은 다 넘겨 준다. 최고의 시장 조사 자료가 아닌가. 생년월일 나와 있지, 사는 곳 나와 있지, 핸드폰 번호 있지... 결국 국민은 국가권력의 감시 대상이며 또한 기업체의 밥이 되는 거다. 국가와 기업은 원래 친했고  소비자/국민을 호구로 삼아 앞으로도 잡은 손을 쉽사리 놓치 않을것이다.

 

주민등록제도는 쉽사리 안 바뀐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강화 하는 쪽으로 수정되기 보다는 오히려 효율성의 이름으로 점점 강화될 것이다. 생체칩 이런 이야기도 나오는 마당이니 말이다.  정치적 감수성이 개입된 디테일이 살아야 이런 문제에 대해 따지고 자시고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당징 그런게 어디있겠나. 시켜서 하고 마지 못해서 하고 불편하니까 한다.

 

일단 현 단계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의 분노를 밀어부쳐서 기업체의 정보 수집 약관 고치고, 주민번호나 기타 가입 항목도 좀 줄이고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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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1-2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단 하나의 번호로 치환해버리는 어이없는 시스템이 싫지만,
벗어나서 살 수는 없죠.(벗어나려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고유번호를 정했으면,
그 번호를 꽁꽁 숨겨놓고 왠만하면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정상일텐데,
여기나 저기나 무조건 주민번호부터 요구하는 게 현실이니 참 이상합니다.

내 주민번호로 누군가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끔찍해요!

드팀전 2014-01-23 09:01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예전에 이런 이야기 아는 사람에게 했더니... "뭐 좀 알면 어때? 남들도 다 그러는데"라며 별 신경 안쓰더군요.

yamoo 2014-01-2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서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싫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현재의 제 상태로는 죽음 이외에는 피할 방도가 없는데...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시스템은 아무렇지도 않게 유지되겠지요.
거주지 주소도 그렇고...주소체계를 단번에 바꾸는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밖에 없지 않나...생각이 듭니다. 미국식을 따르면 편할거 같다는 단순한 발상이 불편을 초래하고 있으니...정말 열불납니다..

정말 좋은 글에 추천을 얹고 가지 않을 수 없네요~

드팀전 2014-01-23 13:38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지요...예전에 한 번 뵌 것이 벌써 몇 년 전일인 듯 해요
그런게 싫고 짜증나고 답답합니다만 ㅎㅎ 그게 우리의 토대이고 조건이니 그 조건들이 나를 잡아먹어 피폐해지진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31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덧글이 안 보인다 해서 생각해 보니 덧글을 남긴 게 아니라 추천만 누르고 나왔었더군요. ㅎㅎㅎ. 이젠 정말 애국이라는 껍데기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건 무소불휘의 권력을 행사하니.. 참내....

드팀전 2014-02-02 02:05   좋아요 0 | URL
전 '애국'하는 게 꼭 나쁘다고 생각치는 않아요. 단 자기 방식의 독단적 애국, 남들 끌어들이는 몰개성적 애국, 타자를 비애국자 만드는 배타적 애국, 친권력,친기득권을 애국과 혼동하는 망상적 애국, 건전한 비판을 틀어막는 몰지각한 애국등은 사실 애국이 아니라 '매국'인데 그걸 '애국'이라 생각하니 할 말이 없어지요.
 

1.새해 첫 페이퍼인가 싶기도 하다. 올해는 더 바빠질 것 같은 예감이다.

문제는 태도라는 건 며칠전 내가 회사 선배에게 약간은 신랄하게 뱉은 말이다. 그냥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정도에서 -늘 그렇지만- 마감할 수 있었던 건 선배의 부드러운 인성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는 돌 듯이... 그래도 문제는 태도이다.

 

우연히 광고 하나를 보았는데, 내가 했던 말과 똑같은 이야기가 나와서 혼자 웃었다.

하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와 "문제는 태도다." 이것이다.

 인공위성을 띄울 정도가 되어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송호준에 대해서는 지난 부산 영화제때 만난-

다큐멘터리 영화<망원동 인공위성>과 관련된 일을 한 -후배가

이야기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삶이 지루하면 지는 거다.

 

2.예찬이가 만화 삼국지를 보더니 너무 아쉬워한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빠, 원통해"다.  내가 어린 시절 삼국지를 보고 느꼇던 것과 같은 이유때문이었다.

 

 유비,관우,장비가 다 죽고 천하통일은 다른 이의 몫이어서...

 

 예찬에게 "아빠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하며 공감해주니 아이가 "그렇지. 아빠도 그랫지."라며 조금 위안받는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타임머신'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언 맨 슈트'를 입고, 유비, 관우, 장비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옆에 있던 동생 재원이는 덩달아 "나도 그렇게 할거야."라고 한다. 결국 그래서 다섯명이 도원결의를 하는 수준에서 합의했다.

 

그리하여 예찬이가 타임머신을 완성하는 그날이 오면

여러분들은 <삼국지>를 읽을 때 ,유비,관우,장비 + 예찬,재원을 보게될 것이다.

이상하게 생긴 쇠갑옷을 입은 넷째, 다섯째 동생들과 더불어

중국을 통일한 버전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삼국지연의>는 그 때는 없다.

 

아이들과 노는 것도 지루할 틈이 없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망원동 인공위성>(김형주 감독,2013),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올 여름경에 극장 개봉을

예정 중이라고 한다.

 

망원동 인공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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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4-01-1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컸군요. ㅎㅎ

그래요. 지루하면 지는 걸로 하죠. ㅎㅎ 건필하시구요. 새해 복 많이 지으시길 바랍니다. 여울드림.

드팀전 2014-01-16 10:22   좋아요 0 | URL
허...오랜만입니다. 올리자마자 댓글로... 건필은 잘 안되구요. 건강 할려구요.
새해 인사하기 절묘한 시점이네요. 오후 3시쯤 된...새해 첫 날과 음력 설 중반즈음...

이 절묘한 시점에 저 역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재미있는 일 많은 한 해가 되시길

mong 2014-01-1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아이들이 아빠의 귀여움을 따라 잡았군요 :)

드팀전 2014-01-17 05:25   좋아요 0 | URL
^^ 오랜만이지요. 귀여운건 언제나 그대의 몫이 아니셨던가요.ㅎㅎ 지금은 중견(?) 아이 엄마 아니세요? 하도 오랜만에 이야기를 하는 거라서 가물가물 합니다.

가족 모두 2014년 내내 행박하세요. (행복+대박) ㅋㅋㅋ

2014-01-19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지루하면 지는 거예요. / 문제는 애티튜드다. 이것도 많은 생각 드는 말이네요..

드팀전 2014-01-24 15:40   좋아요 0 | URL
태도가 어떤 길을 만드니까요...중요한 문제같아요
 

영화에 대한 평가는 뒤로 하고

 곽경택 감독은

 영화<친구>에서

"쪽팔리다 아이가" 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대사라고 했다.

 

내부에 낙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요즘 늘 내 마음에 울리는 소리가 바로 저거다.

 

이래 저래 쪽팔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태연한 척 있는 것도 쪽팔리고

자판 두드리면 풀려나오는 생각이랍시고 눌러 찍는 글들도 쪽팔린다.

 

예전만큼 음악을 열심히 듣지도 않고 책도 열심히 읽지 않는다.

그래도 무언가 꾸준함은 있다.

 

네이버 TV의 '온스테이지'는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이고 해보고 싶었던 콘텐츠다.

최근 리스트(오른쪽)에 있는 기타리스트 박윤우를 알게 된 것도 그곳이다.

 

부산에 잉거마리 공연이 있던데 박윤우가 올지 모르겠다. 시간되면 가보고 싶은데

이래 저래 걸림돌이 많다.

 

 

한동안은 차 안에서 피타입을 열심히 듣고 다녔다. 1집 부터 찾아 들었다.

좋은 랩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스타일에는 맞는다.

가사 좋다.

 

 

좋은 악기는 예민한 악기다.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 그 성능을 최대치로 표현하면 천상의 소리가 나오지만 얼렁뚱땅한 범인을 만나면 그 크고 작은 실수들을 다 드러낸다.

 

뭘 하든  쪽팔리진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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