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모르지만...그는 그저 다른 장식들로 치장을 한 세련된 척하는 사회진화론자일 뿐이다. 그리고 사회 진화론자들에 대해서는 친절하게도 불관용하는 것이 당신과 나의 공통점이다.(인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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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 3시 30분. 눈을 떳다. 한 잔의 물을 위 속으로 떨어뜨렸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트위터로 한진중공업 소식이 타전된다. 이정희 의원이 병원에 실려갔다. 정동영 의원의 글도 보인다.  마음 속에 커다란 추 하나가  가라앉는다.  이 늦은 시간에 신발 끈을 묶는다면 이것도 하나의 과잉일게다. 실제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토요일은 9시에 출근을 했다. 7-8월 매주 토요일 출근이 예상된다. 아침부터 하늘을 몇 번 씩 처다봤다. 구름을 봐도 십분 뒤의 날씨를 알 수 없었다. 물기만 잔뜩 머금고 있기만을 바랬다.장마라고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바깥에서 하는 일에 날씨는 가장 큰 복병이었다. 오전 내내 먹구름만 가득했다. 오전 일은 비교적 수월하게 처리했다.   

오후에는 외부 설치해서 일을 꾸려야 했다. 외주 장비 업체팀이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몇 번을 물어봤다. "바깥에서 하실 겁니까?" "곧 비가 올지도 모르는데"  

점심 식사 전까지 몇 번씩 모여서 회의를 했다. 준비된 외부에서 진행할 것인가 작은 강당으로 들어갈 것인가. 최종 결정은 내가 해야만 했다. 

일단 준비된 대로 야외로 결정했다.  외주 업체팀들은 부랴 부랴 짐을 내리고 장비를 설치했다. 대략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예정된 시간을 1시간 앞두고 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했다. 5분...10분....일하는 모든 스텝들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스텝 중 하나가 오더니 " 00씨 결정해야 돼. 더 기다릴 껀지 아니면 다 접고 실내로 들어갈 껀지"  현장에 있는 30-40명의 성인 남자들이 군데 군데 천막 안으로 몸을 숨겼다. 몇 몇은 담배를 피우며 하늘 한번 쳐다보고 바닥의 빗방울을 바라봤다. 내 얼굴 한번 쳐다보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더 늦출 수는 없었다.  

비는 거세졌다. 장비를 모두 뜯고 다시 세팅하는데 얼마쯤 걸릴지 물어봤다. 대략 1시간-1시간 30분. 

 결정해야 했다. 

 " 들어갑시다."  "미안해요.어쩔 수가 없네. 다들 이동 준비해주세요." 군데 군데서 한숨과 불평의 소리가 들려왔다. 

비는 직접 맞으면 아플 정도로 쏟아졌다. 

전기장비를 다루는 친구들은 비를 가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장비에 뒤집어 씌웠다. 그리고 우의도 없이 2층 강당으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속옷까지 모두 젖었음에 틀림없다. 신발과 양말이 온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내로 들어가니 아무래도 갑갑할 수 밖에 없었다. 실내는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그러나 매우 더웠다. 그럭 저럭 일을 마쳤다. 돌아가는 길에 외주업체팀 중 오늘 가장 큰 고생을 한 친구 둘을 불렀다.  20대의 젊고 순박한 친구들이다. 뭐 해 줄 건 없고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서 목욕하고 가라고 주머니에 꽂아 주었다. 두 친구 다 손사래를 쳤다."이러시면...괜찮습니다.다음에 맛있는거나 사주세요." 라고 느릿한 사투리로 말했다. "그건 그거구...너네들 지금 옷 다 젖어서 어디 찜질방이라고 갔다가 집에 들어가라.뇌물 주는 것도 아닌데 뭐." 라고 하고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에 손인사 한번하고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7시 넘어서 회사에  돌아올 수 있었다. 몇 몇이 밥이나 먹고 가자고 했다. 중국집에서 고추잡채, 탕수육, 짬뽕, 그리고 소주 시켜 놓고 저녁을 먹었다. 계속 비는 내리고 8시 30분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매우 매우 긴 하루였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가 어찌되었나 궁금했다. 9시 k방송국의 뉴스를 틀었다. 20분 가까이 뉴스를 봤는데 관련 소식은 없었다.   

결국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트위터로나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호우주의보를  뚫고 내려와서 폭우 속에 앉았던 사람들. 공권력이 그들에게 준 선물은 색칠한 매운 물대포였다. 달리 할 말이 없다.    

 

영도에서 분노 속에 비 맞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곳까지 이어지는 도시고속도로를 바라보았다. 듣고 있던 바흐에 정지 버튼을 눌렀다. 살짝 창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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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야구의 도시라는 부산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또래라면 누군나 한번쯤은 '야구광' 이었던 적이 있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부터 중학교1,2학년때까지.  

제일 처음은 고교야구였다. 동대문야구장. 

선린상고, 경북고, 부산고, 경남고, 천안북일고,광주일고, 군산상고 등등  

초등학교때 프로야구가 생기고 나는 OB의 팬이었다. 21번 박철순의 OB. 그 이후 최일언이 있을때 까지만 기억이 난다. 이후 나는 프로야구의 성적에 별 관심을 잃었다. 중학교 들어서면서 농구에 꼽혔다. 야구는 최소한 둘이 있어야 캐치볼이라도 가능한 반면 농구는 언제나 가능했다. 손이 꽁꽁 언 추운 겨울에도 빈 운동장에서 눈발을 맞으며 슛 연습을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하아..)  

농구로 전향한 나이지만 스포츠 하이라이트에서 박철순이 등판한 장면은 꼭 챙겨봤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그는 나의 영웅이었으니까.( 동네리그 야구에서 최강투수였던 내게는 당연한 일이다.) 

 

 

나는 두산팬은 아니다. 두산감독이 누군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OB팬'일 뿐이다. (OB모자도 있다.) 선수들 이름으로 치자면 부산의 연고팀인 롯데 선수들을 더 많이 안다. 하도 주위에서 '그노마 자슥' '에라이 이 빙신가튼기'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이름들을 많이 들어봐서다. 이 곳에서 롯데 야구선수들은 거의 마을동생이나 학교후배 또는 조카 정도 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그래서 좀 듣기 거북한 욕도 편하게(?) 하는 것 같고,또 열광도 하는 것 같다.  

2.메이저 리그를 열심히 보는 사람은 Moneyball이란 단어를 알것이다. 초록색과 노란색이 배색된 모자를 쓰는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단장 빌리 빈과  폴 드포데스타식 야구경영을 뜻하는 말이다. 마이클 루이스가 이들의 이야기를 <머니볼>이라는 책으로도 출간하여 히트를 쳤다. 

빌리 빈의 '머니볼' 핵심은 '출루율'이었다. 바로 'run'이다. 당시 MLB에서는 타율이나 홈런 같은 전통적인 선수 평가 수치만을 중심으로 트레이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출루율은 그다지 중요한 통계가 아니었다. 영세한 구단인 오클랜드의 빌리 빈은 '출루율'이 괜찮으나 몸값이 싼 선수들을 대략 매입(?) 한다. 주식시장으로 이야기하자면 기업실적은 좋은데 저평가된 종목들을 찾아낸 것이다. 빌리 빈은 평가 기준을 '출루율' 에 촛점을 맞춘 것이다. 승리하려면 일단 점수를 내야하고 점수를 내려면 주자가 루상에 나가야 한다. 즉 안타든 포볼이든 일단 살아나가는 선수가 좋은 선수다.  오클랜드는 '머니볼'이라는 야구경영스타일을 가지고 5-6년간 상당히 좋은 성과를 기록한다. (최근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올 가을경에 영화도 나온다고 한다. 브래드 피트가 빌리 빈의 역을 맡는다.야구가 수치와 통계의 경기이고 머니볼도 궁극적으로 그런셈이긴 하다. 하지만 스포츠의 진짜 재미는 그런 통상적인 수치와 통계를 뒤집는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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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 김현정의 뉴스쇼 > ]

- 노조지회장 직권조인 법적효력 없어
- 크레인 174일 중 가장 참담한 광경
- 정리해고 철회가 유일한 해법
- 강제퇴거시 '용산' 재연 우려
- 동료 노동자 2명 죽음 후 8년동안 보일러 못 켜고 살아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사태가 타결됐다, 노조는 총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전면 복귀하겠다" 어제 이런 속보가 떴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한진문제가 해결이 됐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부상황이 상당히 복잡한데요. 노조의 집행부, 지도부는 사측과 합의를 했다고 밝힌 반면, 일부노조들은 강력 반발을 하면서 지금 크레인위에서 농성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왜 이분들은 여전히 내려올 수가 없는 건지, 김진숙 씨가 174일째 올라가 있는 고공크레인 위로 가보겠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연결을 해보죠.




◇ 김현정 > 김진숙 위원님 안녕하세요?

◆ 김진숙 >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 안녕하신 거 맞습니까?

◆ 김진숙 > 안녕 못합니다. 사실은. (웃음)

◇ 김현정 > 사실은 인터뷰 연결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제부터 크레인에 전기가 끊겨서 배터리도 충전이 안 된다고요?

◆ 김진숙 > 저 같은 경우는 배터리뿐만 아니라 식사도 차단이 되어서 어제 저녁부터 밥도 못 먹고 있습니다.

◇ 김현정 > 식사도 그 위에까지 배달이 안 되고 있어요?

◆ 김진숙 > 지금 용역들이 크레인을 점거, 점령한 상태로 완전히 고립되어있어요. 우리 중간에 올라와있는 10여명은 식사가 공급이 되는데, 작년에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단식을 오래하면서 위가 상해 죽을 먹거든요. 그 죽을 공급해주는 선이 끊겨가지고 못 먹고 있습니다.

◇ 김현정 > 지금 퇴거명령이 내려지고, 공권력도 투입이 된 것으로 아는데, 그 이후에 지금 상황이 어떤 건가요? 트레인 주변이?

◆ 김진숙 > 어제 같은 경우에는 가처분결정을 법원에서 들고 와서 집행을 한 건데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이지만 경찰병력이 어마어마하게 3천명이 왔었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둘러싼 상황에서 조합원들을 강제로 들어냈는데, 원래 가처분결정의 내용이 정문에서 노동조합까지는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을 하고, 85호 크레인까지도 생산을 방해하지 않는 이상은 허용되는 걸로 나와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법원에서 법을 어기는 집행을 어제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밑에 있던 조합원들은 끌려 나가고, 크레인이 중간지점이 또 있거든요. 제가 있는 데는 혼자 있고, 중간지점에 조합원들이 한 25명 정도 올라와 있다가 몸이 안 좋아서 내려간 분들도 계시고 사측에서 12명만 남으면 정리하고 용역을 철수하겠다는 약속을 해서 12명 남기고 내려갔는데도 지금까지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 김현정 > 지금 크레인에는 12명이 남아계시는 거군요?

◆ 김진숙 > 꼭대기에는 저 혼자 있고요.

◇ 김현정 > 중간쯤엔 12명, 지금 꼭대기에는 김진숙 지도위원 1명. 끌어내리는 상황에서 다치신 분은 없습니까? 어제 50명 정도가 밧줄로 서로 몸을 묶고 있는 사진을 봤거든요?

◆ 김진숙 > 많이 다쳤겠죠. 그런데 저는 지금 휴대폰도 끊긴 상황이라 완전히 고립되어있어서 상황의 파악이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일부만 지금 얘기를 듣고 있죠.

◇ 김현정 > 어제 오전에 분명히 타결이 됐다는 속보를 봤는데, 왜 지금 김진숙 위원장과 다른 분들은 거기에 왜 남아계시는 건가요?

◆ 김진숙 > 제가 민주노총 지도위원이기도 하지만 한진중공업의 해고자이기도 하고, 노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저께 오후 3시 반부터 집행부하고 조합원들 간의 간담회가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지회장이 일방적으로 업무복귀 선언을 하겠다, 그래서 거기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이 다 강력반대하고, 지회장이 기자회견을 강행한다는 얘기를 듣고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사무실을 사실 점거하기도 했습니다. 기자회견을 막기 위해서 그랬는데 그것을 이메일로 언론사에 발송을 하고, 그리고 사실은 이 조합원들이 바닥에 질질 끌려나가는 과정에 사장하고 지회장이 만세를 부르면서 악수를 하는 장면을 보고, 제가 오늘 174일째인데 가장 참담한 광경이었습니다. 정리해고당한 조합원들이 평생을 일했던 공장에서 쫓겨나는 것도 억울해서 지금 반 년 넘게 싸우고 있는데, 집에도 못 들어가고, 거기에 노동조합, 집행부마저 조합원들을 버리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어떤 조합원의 표현대로 죽고 싶다,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습니다.

◇ 김현정 > 그러면 조합원의 어떤 찬반투표라든지 동의과정이 없이 지회장이 그냥 합의서에 사인을 해줬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 김진숙 > 직권조인을 한 건데 그게 사실은 법적으로도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금속은 산별노조이고 금속노조 위원장이 체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효력이 없을 뿐더러 오늘 합의안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11시, 민주노총하고 금속노조차원에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김현정 > 그러면 노조위원장이 합의한 내용을 한번 보죠. 내용자체는 동의하기가 어려우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러니까 반발을 하고 계시겠죠?

◆ 김진숙 > 첫 번째 희망퇴직을 한다는 것, 지금 한진중공업 같은 경우는 2년 넘게 희망퇴직을 계속 받아온 상황이었거든요. 아무 그게 없고. 그리고 두 번째 정리해고는 이후에 협의한다, 6개월을 넘게 파업투쟁을 하고 고공크레인에 174일을 있어도 어떠한 내용의 진척이 없었는데 그렇게 한다는 것은 결국 법적으로 가겠다는 건데, 대법원까지 3년이 넘게 걸립니다. 생계가 아무 것도 없는 해고자들이 3년을 무슨 재주로 버티겠어요? 그 안에 떨어져나가게 한다는 전략으로 저희들은 받아들여지고, 그다음에 대법원 판결이 난다하더라도 그게 안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내일 청문회를 앞두고 이틀 전에 이렇게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공권력이 위협을 하고, 조합원들을 끌어내는 상황에서 국회까지도 지금 우롱하는, 이 자본의 행태가 어떤 법이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 김현정 > 선 업무복귀 후 협상, 해고자 문제 말입니다. 그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말씀이신데요.

◆ 김진숙 > 저희들은 요구하는 게 정리해고 철회, 한 가지밖에 없었어요. 지금까지. 그런데 지금 아무 것도 진전이 없는데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 김현정 > 오늘로 174일째 크레인이 계시는 거죠?

◆ 김진숙 > 네.

◇ 김현정 > 뭐가 제일 어렵습니까?

◆ 김진숙 > 앞으로 더 어려워지겠죠. 노동조합으로부터도 배척당하고, 저는 조합원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좀 꿋꿋하게 올바른 판단들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진중공업은 궁극적으로 필리핀 수빅으로 조선소를 빼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이게 정리해고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2003년부터 죽 유지되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그 과정 중 하나였던 거고, 이게 끝난다 하더라도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게 예상입니다.

◇ 김현정 > 지금 노조집행부로부터 고립 당했다, 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공권력 집행관들이 하나 둘 씩 크레인에서 사람들을 끌어내리면서 압박을 하고, 크레인 꼭대기에는 김진숙 위원장 한분만 계시는 거고요. 만약 그 꼭대기까지 와서 끌어내릴 가능성도 지금 있는 건가요?

◆ 김진숙 > 지금까지 계속 그런 위협이 있었죠. 특공대들이, 저 옆 84호 크레인의 구조가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같은 베일을 쓰기 때문에 85호 크레인까지 접근할 수 있어요.

◇ 김현정 > 만약 특공대들이 그 위에까지 와서 내려가십시오, 라고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 김진숙 > 174일을 오만 것을 다 견디고, 악조건들을 견디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게 강제적으로 끌어내린다면 제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사실은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거죠. 그야말로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밀어 넣는 건데요. 저는 답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 문제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 김현정 > 트위터에 용산이라는 단어를 어제 적으셨어요. 이 얘기는 제2의 용산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 김진숙 > 그렇죠. 제가 여기 좁은 공간에 올라와있는데 그걸 강제집행을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중간에 있는 조합원들도 마찬가지, 절박한 심정으로 올라와있는 해고자들이거든요.

◇ 김현정 > 그런 의미로 용산이라는 단어를 적으셨던 거군요?

◆ 김진숙 > 그 트위터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배터리가 끊겨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 김현정 >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말아야 될 텐데요. 재현되어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 김진숙 >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 김현정 > 엄밀히 말하자면, 김진숙 위원장하고는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미 80년대 해고당하신 분이니까요. 왜 이런 어려움을 자처하십니까? 170일이 넘도록.

◆ 김진숙 > 2003년도에 똑같은 정리해고 문제를 가지고, 저는 2명의 20년지기를 잃었습니다. 그때 이 85호 크레인에 129일을 매달려있었던 '김주익'이라는 사람, 그리고 2주일 만에 '곽태규'라는 사람이 또 죽었습니다. 그 죄책감 때문에 저는 8년 동안 한 번도 보일러를 못 켜고 냉방에서 살았어요. 그렇게 두 사람의 목숨을 지켜서 받아낸 단체협약서, 그리고 조합원들, 그것을 다 무너뜨리고 그 약속을 어기고 사측이 나오는데,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되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조합원들이 잘리고 길바닥에 내몰린다면 저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닙니다. 살 수가 없어요.

◇ 김현정 > 알겠습니다. 내일 청문회도 있으니까 끔찍한 상황, 불상사까지는 가지 않도록 그전에 좀 조속하게 해결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인데 이렇게 인터뷰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프로그램 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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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에서 '한진중공업'사태와 관련한 청문회를 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물론 청문회를 연다고 무슨 극적 해결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산 영도에서 찌라시(전단)로 시민들에게 내용을 알리던 지난 시절에 비하면 큰 성과다. 지난해 가을이였던가...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 문제로 갈등이 촉발되고 있을때, (본격적인 정리해고 통보는 그해 겨울있었다.)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자에게 찌라시 한 장 받았다. 나는 그 분들이 보는 앞에서 읽었다. 나로서는 그게 그 분들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예의이자 연대였으니.(사실 나는 길거리에서 정치적이든 상업적이든 찌라시를 잘 받는 편이다.)  

결국 김진숙 위원이 크레인을 올라가면서 이 문제에 언론과 다른 지역의 시민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그녀가 남긴 말  '김주익 동지가 못했던 일. 올라갔던 그 길로 다시 내려오겠다' 는 다짐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랬다.  그런 바람들이 모여서 일까?  전국 각지의 시민들의 도움과 연대는 크레인에서 그녀를 외롭게 방치하지 않았다.  1차 '희망버스'에 이어 오는 9일에는 2차 희망버스도 다시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온다. 

한 사람의 신념과 용기가 많은 이들을 움직인 것이다.  

김진숙이 크레인 투쟁을 결정했을 때, 어떤 이들은 그런 말을 했다. "노동자도 좋고, 진보도 좋은데...매번 그렇게 촌스럽게 해야되는 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말고.."   

촌스럽게 않고 투박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와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파트너들이 그들을 '부리다가 안되면 짤라도 되는' 그런 부속품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들에게 돌봐야 하는 부모가 있고, 키워야하는 아이들이 있고, 유지해야 할 삶이 있고....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점을 동등하게 생각한다면 말이다. (물론 자본의 운동방식은 그런 것을 뛰어 넘는 시스템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촌스럽지 않게, 악다구니 쓰지 않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을 것이다. ^^   

촌스럽지 않게 투쟁하기. 물론 창의성 뛰어난 시위들도 있다. 1인시위.com 같은 기발한 사회운동사이트도 나오는 시점이다.  기발하고 재미있게 하는 시위 정말 좋게 생각한다. 돌아가는 길에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모카 한 잔 마시면 얼마나 가뿐하겠나.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촌스러운 시위'를 무시하지 않는 한...) 

그렇지만 촌스러울 수밖에 없는 시위, 몸을 던지는 시위들도 존재한다. 땀냄새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타기가 민망한 그런 시위들도 존재한다.  전술상의 오류가 아닌 이상, '촌스러운 진정성'을 촌스럽다고 뭐라 하는 것은...글쎄... 뭐랄까...뭐랄까... '피식 피식'....... 말을 아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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