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이 덤볐다가 모르는 이야기 한참 읽었다. 나는 레비 스트로스의 현장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예술과 오브제, 회화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부제를 다시 보니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인터뷰>. ,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이야기구나. 깝친 나를 또 반성한다. 나는 왜 나대는가. 나는 왜 까부는가. 부제에 뻔히 쓰여 있는 것을. 그것도 안 보고 왜 이 책을 읽겠다 덤볐단 말인가. 내가 읽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였다. 57쪽과 77.

 


문명화의 가장 큰 문제는 격차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격차는 노예제, 이어 농노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양산과 함께 생겼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했습니다. (57)

 


어떤 사회적 현상에 문자 출현이 늘 그리고 도처에서 발생했다는 것에는 우리가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요. 나는 문자 표기와 동시에 일어나는 사회 현실이 바로 카스트 혹은 계급 체제와 부합하는 분열 · 분리의 출현이라고 봅니다. 이미 말했지만 문자는 그것의 초기에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화하는 수단이었어요. 물건을 사유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77)

 


계급화를 설명할 때, 잉여 물자의 축적으로 인한 계급의 발생이 아니라, 문자의 출현으로 인간이 인간을 노예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보는 이런 해석이, 이런 문장이 내게는 두껍게 진하게 읽혔다. 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슬픈 열대>는 너무 두껍고, 이렇게 두 권을 골라봤다.

 
















주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다.

 


게다가 다른 모든 종류의 오브제로 이행이 가능하지요. 저도 당신 생각에 동의합니다. 두 운동이 있는 거예요. 자연에서 문화로의 열망, 즉 오브제에서 기호로, 언어로의 열망이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운동은, 언어학적 표현을 쓰면 오브제에 감춰진 속성을 발견하고 알아보는 것으로, 인간 정신의 구조와 그 기능 양식과 공통성을 갖는 게 이 속성이지요. (154)

 

대부분 이런 이야기다. 자연 예술과 문화 예술, 추상화, 인상주의 그리고 오브제. 언어에 대한 부분에 관심이 있어서 주의해서 읽었는데도 전혀 쉽지 않았다. 사실은, 많이 어려웠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알라딘 이웃님이 오디오 매거진의 <조용한 생활>을 선물해 주셨다. 운전할 때, 다림질할 때, 혼자 산책할 때, 얼마나 야무지게 잘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좋은 친구는 이렇게 항상 함께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글/오디오를 읽거나 들을 때, 그 배합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를테면, 나는 정희진 선생님과 김혜리 작가 편이 별로 좋지 않았고, 차라리 정희진 선생님과 임경선 작가 편이 더 좋았는데, 김혜리 작가와 홍기빈 작가 편은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이런 종류의 글 중에 기억에 남는 건 필립 로스와 프레모 레비의 인터뷰였다. <왜 쓰는가>는 필립 로스의 글을 모은 거였는데, 그 파트에서는 질문자가 로스이고 답하는 사람이 레비였다. 이 세상 최강의 까칠함을 선보이며 그렇게나 질문자를 괴롭히던 로스가 레비 앞에서는 얼마나 온순한 사람이던지. 적잖이 웃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배려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글책으로는 예전에 읽은 강신주-지승호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이 기억에 남는다. 강신주의 책을 모두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의 핵심적인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낸 지승호의 잘 준비된 질문이 강신주의 예리함과 만났을 때, 말 그대로 좋은 책이 탄생하는 장면이 이렇구나 싶었다.

 



이 책의 질문자 샤르보니에는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니 말은 그게 아니다를 시전하시는지, 뒷부분에서는 약간 피로감이 느껴졌다. 이 책이 잘 읽히지 않고, 불필요한 긴장감이 느껴진다면, 그 잘못은 샤르보니에게 있다. 전적으로.


 

<말 시리즈>의 전체 랭킹으로 봤을 때 이 책은 약간 뒤로 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확실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24-04-09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픈 열대]는 대학 시절 문화인류학 수업 때 읽었는데,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네요.

어떤 사람들이 만나면 시너지 효과가 생기기도 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역효과가 생기기도 하지요. 그래서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거이 중요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4-04-10 15:19   좋아요 0 | URL
대학 시절 문화인류학 수업 듣고 그러셨단 말이에요? @@ 너무 근사한대요. 그 때, 저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감은빛님 말씀처럼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해요. 그리고 가끔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게 더 먼저 필요할 거 같기도 하고요.

잠자냥 2024-04-11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문자가 싸움 거는 거 같아서 피로감 느껴졌다는 말씀에 104% 공감합니다. ㅋㅋㅋㅋ 어제 엠비씨 개표방송의 김진인가 뭔가 그 사람 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4-11 19:04   좋아요 0 | URL
104% 공감 감사해요. 잠자냥님의 3별을 완벽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질문자를 미워하는 것만큼 예술에 대한 저의 이해 부족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엠비씨 개표방송 그 분은 ㅋㅋㅋㅋㅋㅋ 카하하하하
 

















식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책을 읽지 못한다. 방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읽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읽기 싫은 것일 수도 있겠다. 다림질을 끝내니 밤 11. 딱 한쪽만 읽을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친다.

 


자연은 다양성 그 자체로 있는데, 인간은 다양성을 다양성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분류하고 통합하여 파악한다. 상징화한다. 약호화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실체들을 '자유 연상 조합association libre'으로 지각하고 그 안에 있는 내재적 상동성을 포착하고 여과하여 자신 안에 강렬하게 수용하는 동안 스스로 매혹된다. 강렬한 시선/바라보기 regard또는 관찰/주시 observation는 사랑하고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육식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폭로하는 과잉 행동이다. 이미 예감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왜 뒤돌아보았는가? (9)

 



강렬한 시선, 바라보기, 관찰과 주시.

 















희대의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Twilight>에서 이런 장면이 있다. 새로 전학 온 벨라에게 관심 있는 마이크는 미스테리한 컬렌 집안의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눈독을 들이는 걸 눈치챈다. 끼리끼리 커플인 컬렌 집안의 유일한 싱글. 여자애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최강 미모 에드워드가 벨라를 쳐다본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마이크가 이런 말을 한다.

 

”에드워드 걔, 기분 나빠. (벨라) 쳐다볼 때 먹는 거 보는 것처럼 쳐다본단 말이야.

 


이건 은유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적이다. 마이크의 감은 옳다.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에게 인간 벨라는 ‘먹을’ 음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벨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의식을 가진 존재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에드워드에게 벨라의 생각이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벨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벨라는 에드워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눈맞춤.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는 것. 그를 내 눈에 넣을 듯 쳐다보는 것. 혹은 그를 그렇게 내 눈 속에 넣어버리는 것.

 


강신주는 우정과 사랑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정과 사랑은 함께 있을 때 기쁨을 준다. 함께할 때 행복하다. 차이는 헤어져 있을 때 확실해진다. 우정은 떨어져 있는 시간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만나면 즐겁지만 헤어져 있어도 괜찮다.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만날 때 행복하고, 헤어져 있을 때 힘들다. 떨어져 있는 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 만나지 못할 때 괴롭다. 보지 못할 때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연인이 연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절절한 고백은 ‘사랑해!’나 ‘좋아해!’가 아니라, ‘보고 싶어!’라고 생각한다. 보고 싶어. 너를 보고 싶어. 너를 내 눈에 넣고 싶어. 너를, 너를 내 눈동자에 가두어 놓고 싶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걸을 때 나는 자주 뒤에 선다. 뒤에 서서 걸어가는 가족을, 친구를, 내 소중한 사람을 바라본다. 모두 집으로 돌아간 어느 날 늦은 오후, 한 쪽 다리를 삐끗해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 애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그 오후가 반복된다. 내가 뒤에 있음을, 내가 그를 보고 있음을 그는 알 수 없을 테지만. 나는 뒤에 서서 그를 본다. 내게서 멀어져 가는 그를 본다. 내 시야에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본다. 나는 눈맞춤을 바라지 않는다. 영원히. 영원히 그는, 그에 대한 내 사랑을 모를 것이다. 나는 뒤에 있으니까. 나는 주시한다. 바라본다. 그를 내 눈에 넣는다.

 

 


두 쪽 읽고 너무 말이 많았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좀 더 읽어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04-08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0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04-08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음...
강신주의 말을 읽어보니, 저는 사랑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드네요. 만약 강신주의 말대로라면, 저는 사랑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연인도 만났을 때 기쁘지만 헤어지고나서 별로 불편하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이게 제가 스스로를 연애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네요. 크-

아무튼 에드워드와 벨라를 제가 참 좋아했었습니다. 지금 에드워드는 애아빠가 되었고 벨라는 성소수자의 대표가 되었지요. 크-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단발머리 2024-04-10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강신주의 저 말 듣고/읽고 다락방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더랍니다. 사랑이라는 건, 같이 있지 못할 때 괴롭다고 하는 거에요.
아, 괴롭다. 보지 못 해, 괴롭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강신주의 정의니까,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에드워드와 벨라는 요즘 아주 잘 지내더라구요. 각자 ㅋㅋㅋㅋㅋㅋ에드워드가 차은우를 만났어요. 어디 패션쇼던가 그런 자리에서요. 차은우가 더 예뻐요. 더 멋지고 ㅋㅋㅋㅋㅋㅋㅋ 세월의 무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조금 늦게 합류한 편이었는데, 그러니까 친구들이 아렌트!”, “아렌트!”할 때도 내게 아렌트는 그냥 아렌트에 가까웠다. 아렌트가 조금 다르게 보였던 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난 후였다.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그런 경험이 불러오는 억울함, 자괴감을 완벽하게 차단한 채, 학자적 엄밀성을 가지고 사안에 대해 이렇게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는 사람인 것에 나는 적잖이 감동받았다. 그다음으로는 이 책, <한나 아렌트 평전>을 읽은 후, 나도 친구들과 함께 아렌트!”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중립주의혹은 극중주의가 쉽게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명한 민주당 지지자나 확신에 찬 국민의힘 지지자 보다, 내게는 그 가운데 위치한 중도가 더 아슬아슬해보인다. 자신의 입장이 없다는 건, 지배 담론의 영향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생각은 보수적이기 쉽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종편만 보는 사람은 언제나 사시사철 보수정권만 칭찬할 뿐이고, 네이버 뉴스만 읽어서는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KBS땡윤 뉴스가 되어 버렸다. 매스 미디어는 이미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혹은 갖다 버렸다. 15년 이상 구독하던 한겨레 신문, 한겨레 21을 끊은 지 이제 5년이 넘어간다.



대통령은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여권 비대위원장은 빨간 니트를 입고 투표를 할 수 있지만, 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가면 제지를 당한다. 선관위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항의하는 정치 행위를 할 경우 다른 선거인에게 심적 영향을 줄 수 있고, 비밀 투표 원칙도 깨질 수 있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에 따라 대파 소지를 제한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니까, ‘정치적 행위라서 안 된다는 설명인데, 사안을 해석하는 정치적 안목’, ‘정치적 판단은 어쩌란 말인가. 대파 들고 온 사람이 윤석열 정권에 화났다는 점을, 선관위는 알고 있다는 뜻인가. 다만 그 분노를 표현하지는 말라는 뜻인가. 집에 대파 없이 양파만 있는 사람은 걱정이 크다. 사 둔 지 며칠 안 됐는데, 양파에 싹이 났다. (내겐 흔한 일) 싹 난 양파 들고 가는 건 괜찮나. 그것도 정치적 판단의 영역인가.

 





한나 아렌트는,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모순이라고 생각했다(278). 이게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데결론적으로 한나 아렌트는 정체성의 정치를 비판했는데, ‘정체성만으로 규정되어온 역사적 존재가 바로 여성유대인이고, 한나 아렌트는 이 두 가지 요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사람이다. 한나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 책에는 여러 번, 한나가 여성으로서의 특별 대우’(여성 최초의 ***대 교수)를 거절한 장면이 나온다. 그에 더해 유대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넘어선 사람만이 서술할 수 있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가 바로 한나인 점은, 한나가 여성으로혹은 유대인으로사고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나는 단독자로 존재했고, 오직 사유로 자신의 이해를 증명했다.



12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책 출간 이후 미국 학계의 반응과 그에 대한 아렌트의 답이 될 것이다. ‘전체주의의 역사를 쓴 게 아니라, 역사적 측면에서 전체주의를 분석했다’(194)라는 한나 아렌트의 대답. 한나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또 한 장면은 이 사진. 1950년대 한나와 남편 블뤼허의 사진이다






두 사람 간의 사정을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한나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건 편안함이다. 내 예상이 맞을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 챕터 12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도, 죽어서도 남편보다 유명한 아내. 남편의 수업 자료 같이 읽는 아내. 혹은 읽어 봐주는 아내.



블뤼허가 공통 과정을 진행한 첫해, 한나도 집에서 블뤼허의 수업 자료를 읽고 있었다. (203)

 


<전체주의의 기원>을 완독하는 것이 전 우주적인 바램이 되어 버린 지금, <한나 아렌트 평전>을 다시 읽으며 아렌트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맹세해야 할 시간이 돌아온 것 같다. 달콤한 사랑의 밀어가 아니라면 이 책을 다 읽을 수가 없….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준비했다.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거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단발머리 아렌트 컬렉션. 많이 부족하지만, 아무튼 아렌트 컬렉션.






아렌트는 김치 냉장고 위에서도 현명하고 단단하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우시며

대파 없이도 정치적 의사는 표명될 수 있다.


가자. 나가자.

씻고, 옷을 입고 대파 없이.

가자. 나가자.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4-04-06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녀왔습니다 ☺️

단발머리 2024-04-06 11:30   좋아요 2 | URL
어맛! 이 부지런하신 분! 👍🏼👍🏼👍🏼
저 아직도 안 씻어서…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투표권 가지고 있으나 저랑 다른 맘인 저 어린이 아닌 어린이 데리고 가야 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4-06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곧 사전투표하러 나가요!

단발머리 2024-04-06 11:26   좋아요 1 | URL
잘 다녀오세요~ 방금 다녀온 사람 왈, 아직은 원활하다고 합니다!!

공쟝쟝 2024-04-06 12:07   좋아요 2 | URL
제가 사랑하는 비비언 고닉이 이렇게 씁니다.
“아렌트는 그 말이 맞다고 대답했다. 그에겐 유대 민족을 향한 사랑이 없었다. 그는 ˝독일 민족이든 프랑스 민족이든 미국인이든, 노동계급이든, 그 어떤 집단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말했다. 그는 친구들을 사랑했고, 그가 아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을 향한 사랑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점에 대해서 그에게 중요한 한 가지는 -몹시 중요한-그의 인생에서 유대인임은 그저 주어진 것 중 하나라는 점이었다. 다른 무언가가되길 바란 적도 없지만, *유대인이었던 덕분에 사람이 다른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존재임을 허락받는 일이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그 모습 그대로임을 기본적으로 감사하게 되는 게 있다. ‘만들어진‘ 것이아니라 ‘주어진‘ 것이었다는 점을 향한 감사다.˝ 개별 인간에게 주어진 것들에 관한 이러한 견해를 통해 아렌트는 이전 30년 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가 사랑했던 것은 유대 민족의 ‘경험‘이었고, 이 경험이 일반적인 인간 조건을 고찰해보도록 가르쳐주었다. 아렌트가 이보다 얼마나 더 유대인다워야 한단 말인가?”

저는 한국인이고 ㅋㅋㅋ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아니라 내 경험과 조건을 가지고 사유해서 투표장에 갑니다. 물론! 여성에게는 조국이 없다지만 ㅋㅋ (응?) 얼마나 한국인 스러운가…! 내 경험 땡큐!

단발머리 2024-04-10 15:31   좋아요 1 | URL
제가 궁금해하는 지점은 그런 거 같아요. 아렌트가 시온주의자들과 오래 일했고 또 본인도 감옥에 갇혔고 수용소에서 탈출했고, 친한 친구가 반유대주의 때문에 죽었는데... 그 경험을 가지고도 어떻게 그 경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그 생각이요. 그녀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걸 발견했을 때처럼 저는 요즘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아렌트는 이렇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었을까.

다락방 2024-04-07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사전투표를 하고 요가를 갔다가 친구를 만났습니다. 대파를 들고 오면 안된다니, 저는 정말이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그런 사고를 하고 그런 제지를 입밖으로 낼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단발머리 2024-04-10 15:2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투표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사실 대파 머리띠 제작하려다가 ㅋㅋㅋㅋㅋ 자중하자, 까불지 말자, 그래서 말았어요. 저 5살만 더 많았으면 진짜 만들었을 거 같고요.

사람들 진짜 열심히들 사는데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지 모르겠습니다.......
 





 












방학은 끝나가고 (아직도 방학이었던 사람^^ 오늘, 출근 날짜 확정됐습니다. 하하하!) 겨우내 놀기만 하고, 두꺼운 책 한 권도 끝낸 게 없어서 읽고 있어요중에 가장 두꺼운 책 꺼내왔다. 6장부터 읽으면 된단다. <인종주의 이전의 인종 사상>.

 


인종 사상의 기원은 18세기지만, 19세기에 모든 서구 국가에서 동시에 출현했다(320). 제국주의 정치의 주된 이데올로기적 무기(323)로써, 제국주의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설명과 변명을 위해 고안한 장치(359)이기도 하다. 남아프리카에서 인종주의와 관료주의의 상관관계를 살피기 위해서는 보어인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보어인들은 17세기 중반 인도로 항해하는 배에 신선한 야채와 고기를 공급해주기 위해 케이프에 머물렀던 네덜란드 정착민들의 후손이다. (371)

 


극히 척박한 토양과 종족 단위로 조직화해 유목 사냥꾼으로 살고 있는 많은 수의 흑인 주민들 사이에서 보어인들은 쟁의 조종의 형태로 노예 제도를 유지시킨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보어인의 마음 속에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과 같아서는 안 되는 어떤 것에 대한 공포’(372)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이것이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사회의 근본이 되어주었다.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 책은 <암흑의 심장>이라고 번역함)> , 커츠씨의 독백이다.

 


“… 지구는 이 세상 것 같지 않았고 인간들은・・・・・・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다. 가장 나쁜 것은 - 그들 역시 인간 존재일지 모른다는 의혹이었다. 그런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껑충껑충 뛰었으며 빙빙 돌면서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너를 전율시킨 것은 그들이 너희들처럼 - 인간이라는 생각, 네가 이 거칠고 격정적인 소란과 먼 친척뻘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암흑의 심장>, 370).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암흑의 핵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통은 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 혹은 제국주의에 대한 폭로라거나 또는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정도로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문학에서 모든 글이 폭로일 수 없고, ‘폭로일 필요도 없지만, 많은 순간에 문학은 폭로이고, ‘고백’, 정확히는 자기 고백이다. 원주민들 사이에서 처럼, 정확히는 처럼 살고 있는 커츠와 그를 떠받치는 원주민들에 대한 묘사가 메타포로만 이해될 수 있는가.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이 책을 26년 전에 읽었기 때문인데, 계산해 보니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던 터라 그 책을 제대로읽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원주민들에게 복종의 대상이자 의 자리에 있었던 보어인들을 아렌트는 이렇게 평가한다.

 


서구인이 스스로 창조하고 제조한 세계에서 살면서 느끼는 자긍심에서 전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최초의 유럽인 집단이 보어인이었다. (374)

 


원주민들을 원료로 취급하면서도 그들에게 의존해 살았던 보어인들은 타인의 노동에 대한 절대적 의존노동과 생산성에 대한 총체적인 경멸’ (374) 속에 살았다. 그들은 새로운 문명과 사회로 발전하지 못했고, 겨우 살아가기에 충분한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인종주의가 제국주의의 도구로 확정되기 이전에 백인과 흑인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인종주의는 낯선 어떤 것에 대한 끔찍한 경험’(376)을 바탕으로 한다. 생김새, 체취, 의복, 식문화를 비롯해 언어까지. 흑인들은 완강하게 인간적 면모를 나타냈기에 백인들은 자신들을 인간 이상의 존재인 으로써 스스로를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376)는 것이다. 아렌트의 결론은 이러하다.

 


인종주의는 노동에 대한 경멸, 지역적 제한에 대한 증오, 일반적인 뿌리 상실과 신이 자신들을 선택했음을 믿는 행동주의적 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380)

 


그랬던 인종주의가 어떻게 한 국가의 제일 중요한 정책으로 발전했는지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자. 일단 한 템포 쉬고. 딸기 좀 먹고. 청소기 돌리고. 저녁 멕이고.

그다음에 살펴보자.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4-04-03 17: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단발님, 무슨 거짓말을 이렇게 능청스럽게 하세요 ㅋㅋㅋ 진짜 일곱살에 읽었다는 줄 알고 깜놀 ㅋㅋㅋ 믿어드릴까요 말까요 ㅋㅋ
다시 출근하시는군요. 그전에 두꺼운 책 끝내려고 꺼내시다니 훌륭합니다!(끝내시라는 압박ㅋㅋ)

단발머리 2024-04-03 17:35   좋아요 1 | URL
깜놀해주시는 다정한 마음에 큰절 올립니다. 그러나, 믿어주세요. 그렇게 되면 제가 동생이고, 독서괭님을 언니로 모시고ㅋㅋㅋㅋㅋㅋ
다시 출근합니다. 잘 다녀올게요(엥?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주에 끝내야지, 하는 원대한 계획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책 재미있는 거 많네요. 🤪🤪🤪

다락방 2024-04-03 20:09   좋아요 1 | URL
일곱살 암흑의 핵심!! 아하하하 그렇다면 지금 단발님의 나이는 저랑 같군요!! 꺅 >.<

단발머리 2024-04-03 20:27   좋아요 0 | URL
푸후후후후후! 그렇습니다. <암흑의 핵심>을 읽었을 때, 제 나이 7살. 저는 그 때부터 조셉 콘래드를 싫어했더랬죠. 폴란드 출신의 영국작가. 수습선원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1886년에 영국에 귀화하고 1895년에 소설을 썼다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애닳아하는 문장을 써냈다는 이 작가를, 전 일곱살 때 만났습니다 (먼 산)
7 더하기 26은 @@이죠. 다락방님은 저랑 동갑! 우리 이렇게ㅋㅋㅋ나이 공개해도 되는 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4-03 20:46   좋아요 1 | URL
벌써 서른셋이라니, 전 뭐하느라 이렇게 나이를 먹은걸까요..
여러분 우리 나이는 잊어주세요! 찡긋~

단발머리 2024-04-03 20:51   좋아요 0 | URL
하루 한 시간, 1분 1초 아끼며 살아야겠어요. 20대랑 30대가 확! 차이가 나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4-04 06:25   좋아요 1 | URL
어휴, 저 낼모레 서른인데 그렇게 겁주시면 어떡해요 언니들~~

단발머리 2024-04-04 09:26   좋아요 0 | URL
이렇게 우리 한없이 내려가다가 은바오님에게 언니~~ 라고 부르게 되는 거 아니에요? ㅋㅋㅋㅋㅋ은바오 언니! 😎

건수하 2024-04-04 10:25   좋아요 1 | URL
와 다들 엄청 촘촘히 읽으시는군요 ㅋㅋ 전 이 댓글 보고도 일곱 살이 어디 있나 한참 찾았다는 ㅋㅋ

단발머리 2024-04-04 11:52   좋아요 1 | URL
사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26년‘입니다. 이 책 <암흑의 핵심>을 26년 전에 읽었다는 걸, 그걸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쓰다 보니 제 연식이 탄로나게 생겼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모로 송구합니다.
저 7살에 세계문학 그것도, 민음사판 읽고 그런 어린이 아니었습니다. <코스모스> 열세살에 읽은 거는 사실입니다. 그건 제가 알라딘에서 100번 정도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사과 비싼데? ㅋㅋㅋㅋㅋ) 올려 드립니다. 🍎

건수하 2024-04-04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러고보니 저 두꺼운 책 저도 있는데 샀다고 자랑만 하고 펴보질 않았... 산 책을 다 읽을 날은 언제 오나요...

단발머리 2024-04-04 11:35   좋아요 2 | URL
우리 같이 두꺼운 책 쌓아두고 샀다고 자랑하다 보면 언젠가... 곧 언젠가 벚꽃 환히 피는 좋은 날,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먼 산)
근데... 어제 이 책 링크 넣는데 <품절>이라고 떠서요 ㅋㅋㅋㅋㅋㅋ 우앗! 순간 기쁜 마음ㅋㅋㅋㅋ 저 놀부인가요?

2024-04-04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0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4-04-04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여기서 또 푸코 등장합니다 (뻔뻔) 오리엔탈리즘 (인종주의)을 지은 에드워드 사이드는(그도 여혐을 했던걸로 기억...아.. 탈식민주의 종특인가요ㅋㅋㅋ)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그 이론적 토대를 가져오는데요. 어쨌든 차포 다 떼고. 감시자의 시선-> 식민 지배자의 응시(ㅋㅋㅋㅋ) 그래서 사이드가 제안하는 문학연구는 *(내면화된 지배자의 시선을 응시하며) 주체적 비판적 입장에서 영문학*읽기 입니다. 7살의 단발님이 이미 깨우친 것이지요.

단발머리 2024-04-10 15:54   좋아요 1 | URL
에드워드 사이드가 푸코에서 이론적 토대를 가져왔다는 걸, 다음에 만났을 때 차근히 이야기해보았으면 좋겠네요. 제가 보기에 오리엔탈리즘은 상대적으로 선명하고 이해가 쉬운 이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푸코는 그렇지 않고요!!
사이드가 제안하는 문학연구를 이미 통달하신 20대의 쟝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제가 7세에 콘래드를 읽었고, 문화이론을 읽었고, 이데올로기에 대해 들었지만서도 사이드가 제안하는 문학연구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네요.
오늘도 좋은 거 하나 배워갑니다!!
 



 















픽션과 논픽션 중 어느 것이 더 현실을 반영하는가. 리얼한 두 개의 상황 중, 어느 상황에 더 몰입하는가. 누구의 불행이 더 큰가. 새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는 한숨을 고르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소설을 읽는 일이, 픽션을 읽는 일이 내게는 훨씬 더 큰 각오를 필요로 한다.

 

 

아침에는 <Lessons in chemistry>를 읽었다. 움베르트 에코는 아니지만 에코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제 머릿속에는 아직도 낮에 소설을 읽는 것은 지나치게 쾌락을 좇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답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 45) 아침에 소설을 읽는 일은 너무 큰 쾌락이니까. 아침에 소설을 읽는 건 너무 호사스러운 일이니까. 그래서 나도 아침에는 소설을 읽지 않는데, 그래도 소설을 읽고 싶을 때는 영어로 읽는다. 영어=공부라는 공식하에, 쾌락의 일부를 내어놓고 다른 언어가 선사하는 난해함을 껴안는다. 그렇게 어제 아침에는 이 책을 읽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시작한 읽기. 당차고 야무진 주인공 앞에 시련이 닥쳐온다. , 아니. 잠깐만요. 아니, 벌써 이렇게 큰 고난이 닥쳐오면 이 주인공은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 ? 아니 잠깐만요. 고난에 고난, 난관에 난관을 거듭하던 주인공에게 찾아온 인생 최대의 위기. 그녀가 아이를 낳는다. 연신 울어대는 아기, 어찌할 줄 모르는 초보엄마 앞에 구원자가 나타난다. 길 건너편에 사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죄책감에 찌든 초보엄마에게 과거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Years ago, when I was a new mother, Mr. Sloane was away on business and a horrible man broke into the house and said if I didn't give him all our money, he'd take the baby. I hadn't slept or showered in four days, hadn't combed my hair for at least a week, hadn't sat down in I don't know how long. So I said, 'You want the baby? Here." She shifted Madeline to the other arm. "Never seen a grown man run so fast." (145p)

 


엄마에게서 전해 들은 외할머니의 이야기와 똑같다. 첫딸을 낳은 후, 빽빽 울어대는 아이를 보며 어찌할 줄 몰랐다는 20대 초반의 외할머니. 저 아이가 콱 죽어버렸으면 했다는 외할머니. 그 후로 딸 셋과 아들 셋을 더 낳은 외할머니, 젊은 시절의 외할머니.

 

 


친정과 시댁, 그에 더해 친구들까지.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우리집에 놀러 왔다가(큰애를 데리고 외출하기 어려운 나를 위한 가정방문) 큰애와 내가 경쟁적으로 친구에게 말을 걸려고 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는다. 나는 다급했고, 큰애는 절실했다. 친정과 시댁에서 그토록 전폭적으로 양육 지원을 해주셨는데도 그랬다. 자주 웃었고 큰 소리로 노래했지만,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시간을 떠올릴 때의 암담함은 여전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미숙한 엄마였다.

 

나처럼 미숙한 엄마가 여기 나온다. 나처럼 미숙한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 내 몸도 천근만근인데, 내 몸 건사하기도 바쁜데, 쉬지 않고 울어대는 아이가 옆에 있다.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이며, 언제,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 , 내 옆에 있는가. 주인공의 고단함이 너무나도 가까워 나는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펼친 책은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만만치 않게 극적이고 그리고 암담한 상황이 밀려온다. 엄마, 엄마란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 고통을 엄마에게, 엄마의 이름을 가진 여성에게, 엄마라 불리는 여성에게 전가하는가.

 


일하는 엄마라서 햄이나 소시지를 너무 자주 먹였다, 일하는 엄마라서 영상을 너무 많이 보여줘 전자파에 과도하게 노출시켰다. 일하는 엄마라 시간이 없어 아이를 매일같이 재촉하며 압박을 줬다. 일하는 엄마라서 아이의 정서를 세심하게 보살피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줬다. 일하는 엄마라서 아이의 이상징후를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 임신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체중 증가에 신경 쓰며 식단을 관리했다. 대학 때부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염색체 이상 소인을 물려줬다 등등 아픈 아이를 낳고 기른 엄마의 잘못은 끝이 없었다. 가임여성이 된2차 성징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을조각조각 분해해서 살펴봐야 할 판이다. 원인을 모르니 절망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누가 재난을 초래했는지 알 수 없으니 복수할 대상도 없다. 결국 다시 엄마에게로, 나에게로 돌아온다. (39)

 
















<숭배와 혐오>를 읽었을 때였다. 책 속 문장들이 거부감 없이 이해될 때, 혼란스러웠다. 가족 간에는 허물을 보기 쉽고, ‘지극히예의를 갖추는 일이 어렵다. 이런저런 갈등과 다툼이 생길 때,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이다. 이게 누구의 잘못, 또는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그게 나 때문’. ‘엄마 때문이라는 말이 자주 들렸는데, 이건 나의 개인적인 부주의(식구들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편,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하지 않는엄마, 사회적인 일을 하지 않는엄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다른 책을 읽던 중에, 엄마가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에도, 엄마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가족 구성원들의 원망의 대상은 같은 성별, 같은 이름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실패했다. 내 주장의 핵심은 그러한 실패가 재앙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며 실패 역시 어머니에게 맡겨진 임무의 일부라는 점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세상에 들어서는 입구이기에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사회적 퇴보를 막는 신성한 임무를 짊어지게 된다. 현대가족에서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으로 진화해 모든 일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묻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그 결과 어머니는 세상의 온갖 병폐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불가피한 실패 뒤에 찾아오기 마련인 분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죄책감을 갖게 된다. (41)

 


그러니깐 실패의 원인으로 여성, 어머니가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어머니의 임무 중 일부라는 사실이, 우리의 현실이다. 픽션과 논픽션, 모두에서 그렇다. 실패는 엄마가 수행하는 임무의 하나이고, ‘엄마를 탓함으로써 다른 이들은 그 에서 벗어난다. 탈출한다.

 

 


나는 둘째를 낳은 후, 아주 조금 철이 들었는데, 실천하려고 다짐한 일 중 하나가 엄마에게 짜증 내지 않는 거였다. 구체적으로는 엄마에게 큰 소리로 말하지 않기가 내 목표였다. 항상 잘 지켜지는 건 아니고, 안 될 때도 많지만, 내 수준에서는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 엄마에게 짜증 내지 않기. 실패의 원인이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기. 엄마의 잘못이 아닌 일에 엄마를 원망하지 않기. 다정하게 말하기. 전화 자주 하기. 카톡 자주 하기.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24-03-30 2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글 정말 너무 좋습니다.. 엄마 당사자ㅋ… 🥹의 입장에서 읽으니 좀 더 와닿고… 실패의 이유를 나와 가까운 나 아닌 다른 이에게서 찾는 일(미워하고 원망하는 일)은 쉽고 쉬운 일이라 그 첫번째 대상이 엄마가 된다는 말이 뼈 아파요. 그리고… 어쩌면 그게 아주 오랜 가부장 5천년치의 여성에 대한 타자화의 토대이며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어 왔다는.. (어머니 숭배와 혐오…).
사실 진짜 문제는 그렇다면 엄마는 누구를 탓하나?… 라는 것일텐데.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속의 이 훌륭한 엄마는 자신을 탓하지 않기로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씁니다. 반가웠어요. <82년생 김지영>은 미치 잖아요. ㅜ..ㅜ 현실의 작가님은 안미치려고 고군분투!!! 어쨌든 나는 다행스럽게도 지금을 살아서 이 여성들의 글을 읽으면서 자칫 그렇기 쉽게(자책) 사회화되느라 힘들었던 저 자신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다행이라는 생각 뒤에 따라오는 건 고마움. 내 분노가 고마움이 되기까지… 글을 더 읽자. 하아…

단발머리 2024-04-02 08:32   좋아요 1 | URL
이 댓글이 제 글보다 더 좋은데요 ㅋㅋㅋㅋㅋ 전 이 책 읽으면서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그걸 다 쓰지를 못했어요. 백자평도 쓰다가 포기했고요. 좋은 리뷰 쓰고 싶은데 뭐랄까.... 제 경험하고 막 섞이니깐 (그니깐 저의 절망 포인트?) 말로 풀어내지 못하겠더라구요.
자신을 탓하지 않고 용감히 맞선 저자, 신성아님에게 응원과 사랑을 보냅니다. 할일이라는 건 이 책을 사고 또 사는 일일텐데. 아, 읽기 힘든 책인건 또 사실이구요. 그래도 나도 받은 것처럼, 나도 선물해야지~~ 그런 맘입니다.
글을 더 읽자.... 하아.....

공쟝쟝 2024-04-02 09:13   좋아요 1 | URL
어떤 책은 심정적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지적으로가 아니라 심정적으로…. 저는 (지난 몇년 동안)훈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 데, 이거 읽으면서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어요. 저자가 닿은 인식 과정은 공감되었지만… 너무 많은 말이 속에서 우글대다 사라졌지만… 그나마 제가 떠들 수 있는 건 그건 아마 엄마 당사자 단발님 보다 경험이 딱 붙어 있지는 않아서 그럴 거예요….
사랑에는 의혹이 필요합니다…
사랑이기에 의혹이 필요합니다…😭

단발머리 2024-04-02 20:0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쟝님.... 그니깐 전 신상아 작가의 글을 따라 읽으면서 저 자신의 경험, 시간, 과거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거든요. 특히 아이와 부모 사이의 관계가 일방이 아니라는 그 지점에서, 권력의 작동에 관한 푸코의 문장이랑 아스시 난디의 문장도 떠올랐구요.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이더라구요. 참 잘 쓴 글이기도 하구요. 정희진쌤의 추천글이 괜히 나온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
근데 그런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셨다는 점에서 역시 정희진쌤... 그런 생각도 했었더랬죠. 아, 리뷰 쓸 수 있을 것인가....

책읽는나무 2024-03-31 0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엄마. 김치 냉장고 위 치웠어요.˝
ㅋㅋㅋㅋ
어머님 정말 흐뭇하시겠습니다.^^
이모티콘도 쓰시고...어머님 멋쟁이셔요.
예전에 지인 한 분이 친정 어머님이 집에 오시면 김치 냉장고 위를 매번 치워 주시고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말고 살아보라고 포스트 잇 메모를 붙이고 가셨는데 어머니 가신지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도루묵이 되더란 말이 생각납니다.ㅋㅋㅋ
우리 집은 아빠가 계셔서? 김치 냉장고 위를 치우지 않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ㅋㅋ
대신 아빠는 김치 냉장고 위에 올려둔 시계를 못보겠다고 하십니다. 그 시계 앞에도 뭔가 자꾸 쌓여서 시계를 가려버리고 있거든요.
김치 꺼내기 참 힘든 세상이에요.ㅋㅋㅋ

엄마, 여성......늘 양가적 감정을 달고 살아서인지 단발 님의 이런 글이 참 좋아요.
저도 애들 어릴 때 집에 누가 방문하면 서로 손님에게 말 걸기 바빴던 적이 떠오르네요.^^
책들...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라....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하는 좋은 책들인가보다. ✍️하고 갑니다.^^

단발머리 2024-04-02 08:49   좋아요 2 | URL
저의 집의 마지막 보루 김치 냉장고 위를 과자와 쿠키, 음료와 책, 노트, 필기구가 장악한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쌓아두다 보니 김치 꺼내기가 귀찮아서 그냥 김치 없이 밥 먹을 때도 많았구요ㅋㅋㅋㅋ 아이구야 ㅋㅋㅋㅋㅋㅋㅋ
김치를 위해 우리는 김치 냉장고를 샀지만 김치 꺼내기 힘든 이 세상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이번 봄을 맞이해 집 좀 치운다고 여러 계획을 세웠으나 모두 지지부진한데요. 바퀴 달린 작은 서랍장을 샀어요. 거기에 과자, 쿠키, 음료, 책, 노트를 모두 옮겨서, 일단 식탁 위와 김치 냉장고 위를 깨끗하게 치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거실과 책장과 옷장과 신발장만 정리하면 됩니다. 미니멀리즘으로 돌아오는 단발머리되겠습니다!!

서로 손님에게 말 걸기 바쁠 때 정겨운 모습인 건 맞는 거 같아요. 후배가 아직도 그 날이 기억난다고 종종 웃는 얼굴로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길 바래요, 책나무님! 서울은 오늘, 낮에 따뜻하다고 합니다!

독서괭 2024-04-03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김치냉장고 치워뒀다는 카톡 너무 귀엽네요♥
엄마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걸 전가하는 것..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지요. 저도 엄마에게 다정해야겠어요. 자주 안 보고 가끔 도움만 받으니 이젠 짜증낼 일은 별로 없지만, 엄마가 더 나이드시면 또 어떻게 될지..
저는 아이들이 제 탓 하면 반드시 따지고 듭니다. ˝왜 엄마 탓을 해? 네가 속상한 건 알겠어. 그런데 왜 엄마 탓을 하지?˝ 하고 짚고 넘어갑니다. 준비물 못 챙겨준 때도 당당하게 ˝네가 챙겼어야지˝하고 말합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04-04 09:32   좋아요 0 | URL
제가 김치냉장고 위에 책이랑 과자 쌓아두어서 김치를 못 꺼내먹는 역사가 하도 길어서요 ㅋㅋㅋㅋㅋㅋ 예전에 살던 곳에서도 비슷한 형국 ㅋㅋㅋㅋㅋ 그래서 치운김에 자랑했네요^^
저는 독서괭님의 응대&태도가 옳다고 봅니다. 당연히 준비물, 자기가 챙겨야지요. 저는 그걸 조금 늦게 시작해서 처음 그 이야기 했을 때 얘가 놀라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앗! 이게 내 일이었구나!를 깨닫는 순간, 인생은 혼자라는 깨달음 ㅋㅋㅋㅋㅋ독서괭님 정말 잘하고 계세요. 언니~~ 라 부르며 따라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언니~~라 부르지 않으며 따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