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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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낼 거면 이 세상에 내도록 해.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건 다 세상이 나빠서니까."  
 
 
도쿄에서 손님인 양 천연덕스럽게 업소에 들어와 권총으로 협박한 후 돈을 갈취해 가는 연쇄 강도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의 특이점이라면 스물대여섯 정도의 청년으로 갈색 반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흰색 장갑을 끼고 있으며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의도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다는 느낌이 더 크다. 
 
범인은 고시바 쌍둥이 형제로 경찰에게 덜미를 잡히지만, 이들은 서로가 범인이라고 지목하며 죄를 떠넘긴다. 정황 증거만 있을 뿐, 지문을 비롯한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형제는 경찰을 농락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란듯이 범죄를 이어간다. 
 
결정적 증거를 잡지 못해 애를 태우는 담당 형사 앞에 의문의 편지가 도착하고, 편지에는 쌍둥이 형제들의 지난 몇 차례의 범죄 내용과 앞으로 벌어질 범죄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시나리오처럼 쓰여져 있다.  
 
누가 편지를 보낸 것일까? 
 
뚜렷한 대안이 없는 미야지 형사는 편지에 적힌 예측 범죄의 동선을 따라 쌍둥이 형제를 미행하고 그들은 결국 은행 강도 행각 도중 체포된다. 체포 과정에서 범인이 쏜 총알에 맞은 일곱 살 여자아이가 사망하고 만다. 자신들의 동선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고시바 쌍둥이 형제. 형사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그들의 배후라 여기고 추궁하지만, 쌍둥이 형제조차 자신들에게 일련의 범죄를 제안한 자가 누군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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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마을 관설장 호텔에서 홍보 이벤트 대상자로 선정되어 무상으로 휴가를 보내게 된 여섯 명은 약혼한 사이인 회사원 교코와 모리구치, 마사지 샵에서 일하는 아야코, 회사원 야베, 범죄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이가라시, 택시 운전기사 다지마 등이고, 도쿄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호텔 사장 하야카와를 통해 초대받은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묘한 말을 듣는다.  
 
관설장은 외지인 K마을에서도 산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눈이라도 내리면 통행이 수월치 않다. 초대받은 여섯 명이 도착한 날에도 하야카와가 설상차를 운전해 마중을 나와야 할 정도로 폭설이 내린다. 드디어 모두 모인 여섯 명. 이리저리 맞춰봐도 자신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지 못해 궁금증을 더하지만, 휴가를 즐기기로 하고 볼링 레인 앞에 선다. 그런데 볼링핀이 아홉 개 뿐이다. 분실했다는 볼링핀 한 개, 왠지 좋지 않은 기분이 든다. 
 
이튿날, 야베를 제외한 일행은 스키장으로 향하고 스키가 서툴렀던 교코와 모리구치는 뒤떨어지게 되고 교코는 산에서 창문을 통해 야베씨가 천정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죽은 야베 씨의 방 벽에는 섬찟한 메모 카드가 붙여져 있다. 카드에는 무엇을 암시하는지 알 수 없는 마크가 그려져 있고, '첫 번째 복수가 이뤄졌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밖에서는 문을 열 수 없는 밀실 형태의 방에서 죽은 야베 씨의 죽음을 다들 자살이라고 짐작하지만, 이가라시는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범인은 바로 이 안에 있다는 말과 함께. 더불어 볼링핀 한 개가 더 사라졌다. 살인이 시작된 것이다. 
 
사건을 신고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지만 전화선은 끊어져 불통이다. 이에 다지마 씨가 설상차를 이용하자며 차고로 달려가지만, 설상차는 물론 스키까지 파손되어 있다. 시신 한 구와 생존자 여섯 명은 고립 상태다! 
 
그 와중에 두 여성은 TV 뉴스를 통해 다지마가 택기 운전기사를 살해하고 도망친 살인 용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지마가 살인자일까? 다지마를 향한 의심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사라진 다지마는 계곡에서 추락사한 상태로 발견된다. 그의 가방에는 지도와 고장난 남침반이 있다. 그는 왜 고장난 나침반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에게 고장난 나침반을 준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당연히 볼링핀 한 개가 더 사라졌다. 두 번째 살인이다.
  
밤마다 사라지는 약혼자 모리구치를 의심하는 교코. 그러나 그 역시 한밤중에 건조실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손에는 손도끼를 들고, 후두부를 강타당한 상태로. 건조실 선반에는 여지없이 세 번째 복수가 이뤄졌다는 문장과 마크가 있는  카드가 붙어있다. 도대체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이며, 카드에 그려진 알 수 없는 마크가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쯤되면 남은 생존자들은 관설장 호텔의 사장 하야카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왜 자신들에게 이런 초대장을 보낸 건지, 그 의도는 무엇인지.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하야카와 역시 돈을 받고 부탁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의뢰를 한 사람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며 돈을 선납했기에 제안을 수락한 것이라고. 
 
범죄학을 연구하는 이가라시는 의뢰자가 보낸 필적과 생존자들의 필적을 대조하자는 의견을 내지만, 대조해본 바 그들에게서는 동일한 필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황을 리드해 가던 이가라시까지 죽은 채 발견되고, 두 여성은 서로를 용의자로 의심한다. 결국 두려움에 더이상 버티기 힘들어진 교코는, K마을에 경찰과 언론기자들이 대기 중이라는 소식에 그동안의 상황을 정리한 편지를 침대 밑에 숨기고 호텔을 나선다. 그러나 이후 그녀 역시 누군가로부터 둔기에 맞아 사망하고, 아야코 역시 독극물에 중독되어 살해된다.  
 
날이 밝고 호텔에 도착한 경찰과 유족, 그리고 기자들. 그들이 본 것은 여섯 개의 무덤과 의자에 앉은 채 죽어있는 아야코의 시신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호텔에는 피해자를 비롯한 그 어떤 지문도 남아있지 않으며, 사건의 수많은 트릭은 범죄를 은폐하기 위함이 아닌 사건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범인은 왜 보통의 그들을 죽였을까?
그리고 도쿄의 고시바 쌍둥이 형제의 강도 사건과 관설장 호텔 살인 사건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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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표지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정면으로 도전하다!'라는 문구가 있다. 그저 유사한 플랫을 사용한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어떤 자극적인 요소보다 추리에 집중했기 때문일까, 여러 추측을 했었는데 아뿔사, 모리구치를 통해서 작가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직접적으로 소환한다. 대놓고 오마주다(물론 작가가 오마주라고 말한 적은 없다).  
 
피해자들에게 보낸 초대장과 고립, 밀실 살인,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의뢰, 한 사람씩 죽을 때마다 사라지는 인디언 인형ㅡ볼링핀, 남아있는 사람들이 갖는 극도의 공포심과 서로를 향한 의심, 전원 사망, 그리고 마지막 그 한 사람.  
 
 
독자는 150여쪽을 남겨놓은 즈음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설 내에서 범인이 자신의 범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고 했던 것처럼, 작가도 범인을 굳이 숨길 의도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범인이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게끔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연관이 전혀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의 범인은 정황상 그(들)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범인은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와 어떤 의도로 살인을 저질렀는지 말한다.독자가 이 소설에서 찾아내야 할 것은 '범인'이 아니라, '왜' 살인을 했냐는 것이며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냐는 점이다. 
 
 
범인은 형사 앞에서 말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p351) 


범인이 범죄를 저지른 동기에, "그만한 일에 복수를 한다고?"라며 놀라워 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가 죽지 않는 이상 어지간한 사건.사고에는 무감각하다. 아니 누군가가 죽었다고 해도 나와 가족 혹은 나와 관계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조차도 그러려니 하는 이상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남들도 다 그래"라는 명분에 숨어 무심코 한 행동이나 말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방관과 외면이 나도 모르는 새에 악행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또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잘못 해석된 자신만의 개인주의를 들먹이며 타인의 입장과 이해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머니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이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 있다. 일곱 살 여자아이의 죽음이다. 그저 범죄를 부추기는 글을 써서 보냈을 뿐인데, 단지 그들의 비웃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한 것 뿐인데, 그 소설같은 글이 원인이 되어 아무 잘못이 없는 소녀가 죽었다. 그렇다면 그 소녀의 부모는 그들에게 똑같은 방식의 복수를 해야 하는가? 
 
우리가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하는 사소한 행동들, 공감과 이해가 결여된 어설픈 신념과 주장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로 돌아올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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