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두 아이가 죽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낯선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모로코 출생으로 프랑스로 이주해 두 번째 소설 <달콤한 노래>로 2016년 공쿠르상을 받은 기대주다.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됐는데 요즘 드문 흡입력과 감동을 보장한다고.
잘 직조된 시 같은 이 소설은 슬픔과 소외와 사회적 문제를 그리면서도 적절한 생략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육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부모가 없는데 특히 맞벌이라면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고, 그 이방인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여러 인종이 뒤섞여 복잡한 프랑스에서 인종 차별까지 안 가더라도 이민자들의 삶은 고단하고 그들은 보모나 일용직으로 내몰린다.
루이즈는 폴과 미리암 부부의 보모로 일하는데 평생 가져본 게 별로 없는 삶을 살아왔고, 남편의 죽음으로 빚에 내몰리고 딸은 가출하여 연락이 끊긴 처지다.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이야기를 착각하고 낯선 세상에 와 있는, 영원히 떠돌아야 할 운명을 선고받은 인물' 같아 보인다. 충실히 아이를 돌보며 중산층의 삶을 훔쳐보지만 그리고 갈구하지만, 그녀는 영원히 이방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한 사건으로 발현된다.
한국소설로 치면 <현남 오빠에게> 정도의 사회적 문제의식과 작품성을 갖춘 작품이다. 특히 루이즈라는 캐릭터의 매력, 끝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녀의 생을 그려내는 생략의 미덕이 이 작가의 다른 책을 갈구하게 만든다.

이십일세기북스 문학 브랜드인 이르떼(arte)에서 출간되었다. 요즘 공격적으로 책을 내는 곳이다.

 

그녀는 그들을 붙들고 싶고, 그들에게 매달리고 싶고, 손톱으로 돌바닥을 긁고 싶다. 그녀는 오르골 속 원형 받침대에 고정되어 미소를 짓고 있는 두 무용수같이 그들을 종탑 아래 세워두고 싶다. 그녀는 몇 시간이든 질리지 않고 하염없이 그들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99p

그녀의 눈에 파리는 거대한 쇼윈도다. 그녀는 천천히 걸으며 행인들과 쇼윈도들을 본다. 전부 다 갖고 싶다. 이 모든 걸 다 살 수 있는 삶을 그려본다. 손가락을 까딱해서 사근사근한 점원에게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가리키는 그런 삶.
111p

삶은 이런저런 책무와 완수해야 할 계약, 잊으면 안 될 약속의 연속이 되었다. 미리암과 폴은 일로 정신이 없다. 그들의 삶은 용량을 초과해서, 남은 자리는 겨우 잠을 위한 것일 뿐, 무언가를 응시할 자리는 전혀 없다.
15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보라 체이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 몰아읽기. 2018년 신간인 <눈보라 체이스>는 한 노인의 살해사건 용의자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대학생 다쓰미는 스키장에서 만난,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여신을 찾아 무작정 나가노 현의 신게쓰 고원 스키장으로 떠난다. 거기에 상사에 치이는 의욕 부족의, 찌든 직장인 같은 하지만 인간적인 형사 고스기의 추적이 교차되면서 흥미를 더한다. 쉽고 책장이 잘 넘어가는 엔터테인먼트다. 게다가 시원한 스키장이 배경이어서 겨울 시즌에도 딱 맞다. 독자를 위해 준비된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가볍게 읽기 좋다.

소미미디어에서 나왔는데 겉표지도 얇고 원가 위주로 대충 만든 것 같아, 소장가치는 제로에  가깝다.

 

"어쩔 수 없어요. 우리는 장기 말이거든요. 장기 말은 입 딱 다물고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요. 대세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고스기는 풋콩을 입에 던져 넣고 잔을 기울였다.
285p

"맥주는 이제 됐어요. 독한 술을 좀 마셔야겠네요. 추천하는 술은 뭐죠?"
그렇다면 이거, 라면서 유키오가 내놓은 됫병에는 ‘미즈오‘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28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가시노 게이고 단편집 <그대 눈동자에 건배>의 원제는 '素敵な日本人(멋진 일본인)'이다.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모두 제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어긋남을 그린,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크리스마스 미스터리'가 특히 흥미로웠다. 판타지나 SF 설정을 살짝 가미한 '렌털 베이비', '수정 염주'는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지만, 시간 트릭이나 알리바이를 활용한 '그대 눈동자에 건배', '고장 난 시계'는 재미있게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편도 플롯이 단순한 편이어서, 단편집이 오히려 더 화려한 만찬처럼 더 다채로운 재미를 주는 듯.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는데, 양장본인 건 좋지만 표지 디자인은 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이현작가의 <우리가 녹는 온도>는 형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바로 소설과 에세이의 결합이다.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커피 두 잔' 같은 하나의 주제 아래, 짧은 단편과 그에 대한 에세이가 묶여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 플랜을 세밀하게 세우는 친구와 아닌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 '여행의 기초', 인천 부평의 가난한 연인에 대해 쓴 '지상의 유일한 방'이 인상 깊었다.
소설은 심심한 듯하나 이를 에세이가 풀어주니 상승 효과가 있다. 작가는 어차피 녹아 버리고 말 눈사람을 만드는 인간의 행위에 주목해, 스쳐 지나가면서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변화하는, 살짝 녹는 그런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고.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곧 녹아버릴 눈덩이에게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주는 그 마음에 대하여, 연민에 대하여 나는 다만 여기 작게 기록해 둔다.
17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는 여러 번 가도 질리지 않고 파악도 안 되는 도시다. 언젠가 은퇴하면 일본에서 장기체류하며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있는데 흠 인생은 미지수니까.
1월말 도쿄에 가게 되어 일반적인 여행가이드 외에 새로운 스폿을 소개하는 책 4권을 참고하였다.


<도쿄의 작은 공간>
<플레이스 @ 도쿄>
<Urban Live vol.3 Tokyo>
<도쿄 책방 탐사>

 

 

<도쿄의 작은 공간>은 작은 규모의 박물관, 미술관, 문학관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다지 여길 가게 될까 싶은 느낌이긴 하다. 그러니까 일반인들이 많이 가는 카페, 관광지 등은 배제되었기 때문에 '도쿄의 작은 뮤지엄' 정도의 제목이 정직하지 않을까.

 <플레이스 @ 도쿄>는 도시 건축의 입장에서 도쿄 스폿 96곳을 소개한다. 저자가 닛케이아키텍처여서 건축물 관점에서 명소들-도라노몬 빌딩, 후타고타마가와 라이즈 등을 소개하고 있다. 국내 출간되면서 단순히 트렌디한 명소를 소개하는 것처럼 제목과 콘셉이 살짝 비틀어졌다고 보여진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읽었다.

 

<어반 리브 Urban Live No.3 Tokyo>는 잡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1Ldk, 야에카, 베어폰드에스프레소 등 도쿄의 로컬 브랜드 들을 취재하여 만든 책이다. '도시의 삶을 경험하는 여행 잡지'라는 컨셉의 어반 리브,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되지만, 다소 전문적인 잡지로 비쳐진다. 트렌디한 잡화 브랜드 몇 가지를 알게 되었고 젊은 창업자들의 인터뷰도 인상적이긴 했다.

 <도쿄 책방 탐사>는 도쿄의 골목을 지키고 있는 67개의 작은 책방을 소개한다. 출판사가 남해의봄날이어서 신뢰가 더 가는 것도 있고 저자의 개성적인 시선이 담겨 있어 좋은 듯.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8-02-06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쿄 책방 탐사 재밌게 읽었어요! ^^

베쯔 2018-02-06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저자만의 잔잔한 취향이 드러나서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