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월 마지막 일요일 아침, 아무런 계획 없이 집을 나선다. 버스 타지 않고 걸어서 관악에 들어가기로 정한다. 수많이 걸었던 그 길을 천천히 따라가며 어제 인연 짓기와 오늘 인연 짓기를 엮고 얽는다. 어제와 오늘 이야기가 맞물면서 역사는 현실로 부활하고 현실은 더욱 중후해진다. 여기서 미래가 창발한다.

 

보고 듣고 맡고 만지는 일이 서로 넘나들며 걸음 속도를 갈래 지게 한다. 가을 끄트머리라 갈래는 비교적 단출하다. 까치산길을 조금 걷다가 인헌공 강감찬 길 안내판에 눈길이 가닿는다. 그 길을 걸어 강감찬 장군 사당인 안국사로 가 볼 생각이 불현듯 든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인헌공을 잠깐 본 탓이리라.


 

원작자 의도를 정확히는 모른다. 드라마 의도는 더욱 모른다. 중국과 한껏 척지고 있는 현 상황, 정치 문외한 대통령, 그리고 아버지 놀이하는 법사를 떠올리면 딱 맞아떨어지는 알레고리가 대뜸 들이닥치니 아연 심사가 날카로워진다. 묵념하면서 간절히 빈다: 장군이시여, 당신께서 그리 소비되는 일을 막아주소서!

 

묵직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백악 남서쪽 끄트머리 칠궁으로 향한다. 후궁이면서 임금을 낳은 일곱 분을 모신 사당이다. 흩어져 있던 궁을 여기로 모았는데 그 본궁이 육상궁이다. 육상궁은 우리가 다 아는 최숙빈을 모신 사당이다. 그런데 도리어 그 현액이 연호궁 현액 뒤에 숨겨져 있다. 언제 누가 이래 놨을까.


 

다시 정치적 알레고리가 들이닥친다. 서인 최숙빈: 남인 박정희. 현재 내 능력으로는 안국사 서사도 육상궁 서사도 내막을 알 방법이 없다. 내 음모론적 상상력은 나 하나 인생에 영향을 미칠 따름이지만 권력이 알게 모르게 꾸미는 음모 실재는 사회 전체를 뒤틀어 버린다. 이런 일을 무수히 겪으면서도 설마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설마 했던 이승만이, 설마 했던 박정희가, 설마 했던 전두환이, 설마 했던 이명박이, 설마 했던 박근혜가, 설마 했던 윤석열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잡았는가. 관악 발치에서도, 백악 발치에서도 나는 죽임당한 자들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숲이 품고 있다가 들려주는 명징한 웅얼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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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 오늘따라 무슨 일인지 일찌감치 듬성듬성 자리가 빈다. 임산부 배려석 옆에 앉는다. 잠시 뒤 장년 여자 사람이 그 앞에 선다. 머뭇머뭇하더니 이내 앉기를 포기하고 옆 기둥을 붙잡고 선다. 다음 정류장에서 비슷한 연배 여자 사람이 탄다.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그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다. 그 자리 앉기를 포기한 여성이 옆에 서 있는 사실도, 임산부 배려석인 사실도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다.

 

내가 내리려고 일어서 한 걸음 채 옮겨 디디기도 전에 그는 내가 앉았던 자리로 이동한다. 두 사실 모두 알고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서 있던 여자 사람은 그 자리에 앉으려 몸을 움직이다가 또다시 포기하고 선 자세로 되돌아간다. 어찌 보면 그는 같은 사람한테 두 번씩이나 양보하기를 당한(!) 꼴이다. 이들이 기울어진 까닭은 견지한 명분이 아니라 명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다. 명분을 사유화하면 앉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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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제자들과 너무 유쾌한 술자리를 가진 탓에 심신이 찌뿌듯하다. 35년째 이어오는 인연인지라 이 모임에서는 심취와 숙취가 동의어다. 해정을 위해 조금 일찍 집을 나선다. 백악산 남쪽 사면을 남서에서 북동으로 관통하는 청와대 전망대-법흥사 터 골짜기-숙정문-성북동-정릉 길로 향한다. 지난 5일 처음 걸었던 길인데 낯익음과 낯섦이 교차하면서 묘한 제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념하고 살피러 간다.

 

청와대 전망대에는 너덧 사람 모여 왁자하게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을 지나쳐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8자 진언으로 축원 올리고 숙정문을 향해 가면서 찬찬히 살펴보니 법흥사 터 골짜기는 물을 제법 품은 실한 소곡이다. 이 물이 내를 이루어 경복궁 동쪽을 거쳐 광화문 교보 뒤로 흘러 청계천과 합류한다. 중학천이다. 이런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땅과 숲으로 향하는 눈길은 더 깊어진다.

 

이미 걸어 본 숲길이라고 해서 데면데면해진다면 등산이다. 나는 등산하지 않는다. 등산이 아니어야 걸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으로 말미암아 숲이 지닌 매혹은 결결이 펼쳐지고 겹겹이 쌓인다. 소곡들 갈피를 감아 돌며 숙정문에 다다르기까지 백악산 아리잠직한 숲은 싱그러운 내음으로 그때그때 가득 찬다. 수시로 멈춰 서서 바람 소리, 나뭇잎 서걱대거나 떨어지는 소리, 새소리, 그리고 물소리를 듣는다.

 


숙정문이 까꿍 나타나 대사관로 따라 성북동으로 내려가는 길을 안내한다. 성북동은 내게 평창동과 흡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 실세로 군림했던 차지철이 성북동 살았다. 50년 전 그 집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성북동도 도둑촌이구나 하면서 살았다. 가난한 얼굴을 틈틈이 내밀긴 해도 과연 대부분 집은 저택 수준이다. 특권층 부역자 소굴이 틀림없다.

 

성북동을 벗어나자마자 북악산로를 가로지르면 정릉동이다. 능선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이 드러난다. 눈앞을 가로막는 골프 연습장은 정릉동 사람 아닌 성북동 사람을 위한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 그 아래 무슨 갤러리도 마찬가지다. 백악산 북동쪽 사면 자락은 가난을 즈려밟고 재개발 아파트를 쌓아 올린 욕망으로 낭자하다. 그 한가운데에 사방팔방 물어뜯긴 신덕왕후 유택이 있다. 그곳으로 나는 간다.

 

8자 모양 그리며 산책로 모두를 천천히 걷는다. 작은 물소리를 가만 들여다본다. 사위어가는 단풍 검붉은 빛 냄새를 맡는다. 거칠고 빠르게 날아오는 직박구리 노랫가락을 톡톡 건드린다. 마침내 신덕왕후 체취를 귀 기울여 듣는다. 그 육백 년 체취는 내 육감으로 피어나 비원을 빚어낸다. 나는 곡진히 신덕왕후를 역사에서 현실로 이끌어 모신다. 신덕왕후는 어디부터 나투시기 시작할까? 물론, 나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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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사기막골 가는 길은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해서 두려웠는데 이번 숨은 계곡 길은 지도로만 봐도 두려움을 준다. 1,000m도 안 되는 산인데 싶지만 실제로 북한산에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 더군다나 혼자서 평상복 차림으로 가니 초행길은 늘 조금씩은 두려움을 안기 마련이다.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다. 지도에 있어서 들어섰는데 막상 가 보니 주민이 길 없다며 돌아가란다. 처음부터 느낌이 영 싸하다.

 

밤골 들머리부터 얼마 동안 길은 소리만 들려줄 뿐 계곡물과 떨어져 간다. 물과 가까워진 다음부터는 풍경이 아주 좋다. “좋다!”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나지막한 폭포가 연속이라 할 만큼 자주 나타나 물소리를 더욱 맑게 해 준다. 나올 때도 이 길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이닥친다. 어느 지점부턴가 갑자기 돌무더기 길이 막아선다. 돌 위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인적이 없다면 언제든 길 아닌 곳으로 발길이 향할 상황이다. 숨이 거칠어진다.

 

그때 중년 남자 사람 셋이 더듬더듬 내려온다. 그중 한 사람이 묻는다. “오신 길이 좋습니까?” 나는 가볍게 대답한다. “.”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겁에 질린 표정을 채 숨기지 못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한다. “저희는 조난될 뻔했습니다. 여러 번 길을 잃어서 짐승 길 따라왔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내가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거리자 아예 명토를 박는다. “선생님, 연배도 높으신데, 저라면 가지 않겠습니다.” 그 많은 숲길에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다.

 

생각이 씨가 된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냥 되돌아 내려가면 다음 행로를 구성하기 어렵다. 돌무더기 위에 서서 스마트폰 지도를 다시 들여다본다. 조금 내려가서 서쪽 효자리 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경험상 이런 길은 막아놓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길을 택한다. 마지막 순례길로 정했던 곳을 거꾸로 걷는 경로다. 숨은 계곡 3/4과 함께 다음 주에 걸을 계곡 넷을 오늘 걷기로 한다. 전체일정을 앞당겨 준 이 좌초를 수용한다.

 

인적이 지워져 가는 소로를 따라 효자리 계곡으로 내려간다. 효자리 계곡은 하류 쪽은 어떨지 모르지만, 오늘 걸은 부분은 특별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북문을 거쳐 원효봉 정상으로 향한다. 물론 정상은 밟지 않는다. 부드럽고 넓은 오지랖을 지닌 바위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 부위는 날카롭고 좁은 의상봉과 사뭇 대비된다. 내려오면서 부엽토 한 움큼을 담는다. 개연폭포 계곡은 폭포가 장관인데 접근 불가다. 그러나 소곡이라 물소리만으로도 고맙고 고맙다.


 

보리사를 끼고 돌아 잠시 백운 계곡 길을 올라간다. 법용사를 끼고 국녕사 계곡 길로 접어든다. 이 계곡은 작디작아서 가느다란 물소리가 가파른 길을 오르는 내 숨소리 사이로 간간이 들린다. 가사당암문을 지나 의상봉은 스치듯 쳐다보기만 하고 이내 청수 계곡으로 접어든다. 이 계곡도 나름 깊은데 숲길은 물길과 멀리 떨어져 있다. 서너 번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곳 풍경은 제법 좋다. 북한산 둘레길과 만나서 다시 백운 계곡 입구 쪽으로 나오니 네시다.

 

내가 마지막 계곡 순례에서 원효봉을 굳이 오르고 의상봉을 그냥 지나친 까닭이 있다. 원효는 당 제국 유학을 포기하고, 김춘추의 사위면서도 당 제국에 고구려·백제를 팔아먹은 김춘추 부역 전쟁에 반대한 각성 부역자다. 의상은 당 제국에 유학하고, 왕실 불교 핵심으로서 부역 전쟁을 합리화한 특권층(진골) 부역자다. 후세인들이 그 사실과 무관하게 산에 붙인 이름이라 할지라도 모든 싸움은 이름들의 싸움”(리베카 솔닛)이기에 나는 이런 행위 제의를 짓는다.

 

이로써 북한산 계곡 스물하나를 걸었다. 모든 계곡을 다 걷지는 않았지만 더 보태지 않는다. 도봉산과 관악산 계곡까지 합하면 오십을 걸었다. 이제 계곡 순례를 더 하지는 않는다. 숲이, 나무가, 풀이, 곰팡이가, 돌꽃이, 생명 팡이실이 운동을 파괴한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존엄한 전사라고 제의로써 선언했으니, 이제부터는 내밀한 화쟁을 시작한다. 소리 듣고 냄새 맡는다. 소리 듣되 귀로만 듣지는 않는다. 냄새 맡되 코로만 맡지는 않는다. 그 길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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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동창들 만나면 나더러 세월 도둑놈이라 한다. 더 젊어 보여서 하는 말이다. 한의사니까 보약 지어 먹은 덕이라 그들은 믿지만 나는 한약이 먹히지 않는 이상한한의사다.

 

나는 몸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두 가지 이상한방법을 써서 홀가분한 상태로 바꾼다. 하나는 일부러 대변보기다. 속에 탈이 나면 둔중이 느껴지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뒤()가 무지근하다는 느낌이다. 대변보고 나면 장이 가벼워진다. 그다음에는 몸 전체가 가벼워진다.

 

있어야 하지만 없는 무엇을 채우는 일과 없어야 하지만 있는 무엇을 비우는 일 가운데 나는 어떤 일에 더 능할까. 평생 가난 속에서 겨우 간신히 아슬하게 살아온 나는 후자를 운명으로 느낀다; 보양보다 정화가 천명이라 느낀다. 내가 이 치료를 먼저 발견한 곡절이 여기 있다.

 

다른 하나는 국수 먹기다. 속에 탈이 나면 경직이 느껴지는데, 그중 중요한 하나가 가운데()가 굳어 있다는 느낌이다. 국수를 먹으면 위가 풀어진다. 그다음에는 몸 전체가 풀어진다.

 

모든 국수가 다 그런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꼭 똑 소면 잔치국수만 치료 효과를 빚어낸다. 가난한 산동네 소년에게 한 번도 이뤄보지 못한 소원이었던, 하여 끝나지 않는 그리움이었던 낭창낭창하고 뽀얀 소면 국수가 마침내 몸을 달래고 치료하는 약식(藥食)으로 승화된 셈이다. 뻣뻣하고 누런 넓적 국수에 절어 빠진 몸을 다독이고 쓸어주니 묘약이 아닐 도리가 없다.

 

늙어가면서 입을 닫으라는 말은 이른바 꼰대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내가 입을 닫는 이유는 다르다: 남들이 나를 이상히 여길 때 구태여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이상히 여겨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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