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021) 오후에 브런치 북 하나를 만들었다. 아직 하나를 더 만들 시간이 남아 있다. 일요일 아침 잠시 고민했다. 숲 걷기를 중단하고 한의원 가서 브런치 북 하나를 더 만들어 출판프로젝트에 응모할까? 이내 숲 걷기로 정한다. 일주일 동안 쌓여 일요일 아침에 스멀스멀 스며 나오는 도시 독을 빼는 일이 더 중요하다.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삼천사 계곡에서 들어가 비봉 능선을 거쳐 구기 계곡으로 나오는 경로를 택하고 간다. 은평구 쪽으로 북한산에 접근한 경험이 여러 번 있어 그렇겠거니 하고 버스를 탔는데 잘못이었다. 연서로와 진관로를 확실하게 구별하지 않아 노선버스 번호를 착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내리려던 정류장이 두 길이 만나는 곳 가까이 있어 조금 더 걸었을 뿐 갈아타지 않고도 목적지에 도착했다.


 

삼천사 계곡은 물길도 사람 길도 돌투성이다. 복류하는 경우가 많아 물길은 말랐고 돌과 돌을 딛고 가야 하는 사람 길바닥은 시선을 사로잡아 놓아주지 않는다. 잘 알려진 길인지 사람이 많다. 둘러앉아 먹고 마실 만한 곳은 벌써 시끌벅적하다. 숲에 오는 인간적 목적, 그 너머 숲에 갖추어야 할 도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있을까.

 

얼마쯤 들어가자 길이 둘로 나뉜다. 마침 지나는 중년 여자 사람이 있어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이 멋진지 아느냐고 묻는다. 좋으냐고 물으면 편한 길을 알려주지 않을까 해서 그리 물은 것이다. 그는 서슴없이 자신이 가려던 길과 다른 길을 가리킨다. 걸으며 보니 과연 멋진 길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 대부분은 아까 그 다른 길로 가고 나만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이유는 아마도 숲에 드는 목적과 맞닿아 있으리라.

 

능선에 다다라 사모바위를 거쳐 걸었던 적 있는 비봉 능선에 잠시 몸을 맡긴다. 곧 승가사 앞을 지나서 구기 계곡으로 들어간다. 그다지 큰 계곡은 아니나 1급수에서만 볼 수 있는 버들치를 많이 품은 물이 흐르고 있다. 상류 작은 웅덩이에서 시작해 버들치 교라는 다리가 놓인 제법 큰 물길을 지나도록 사람들이 버들치 이야기를 한다.


 

여러 사람이 하는 버들치 이야기는 대개 매운탕이나 어죽으로 마무리된다. 저들이 숲에서 부동산·주식 투기 떠벌이고, 부역 정치 쉴드치는맥락과 같다. 그런 이야기를 하필 숲에 와서 하는지 숲에서조차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숲을 야외에 있는 트레드밀로 여기고 인간적 탐욕을 가감 없이 배설하는 부박하며 파렴치한 행위가 숲을 오염시키며 모독하고 있다는 사실이 심각하다. 자해며 자살임을 모르니 말이다.

 

사죄와 속죄 제의로서 숲 걷기를 마치고 구기동 큰길로 내려와 음식점을 찾는다. 계곡에서 먼 탓만은 아닌 이유로 손님이 거의 없는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혼자 들어오는 손님에게도 손을 내젓지 않는다. 잘 먹고 나오면서 주인한테 맛있는음식이라 하지 않고 좋은음식이라 감사를 표했다. 맛있다는 말은 달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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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과 관악산에 이어 북한산 계곡 순례 마무리에 들어간다. 북한산은 규모에서 앞 두 산을 압도한다. 관악산은 일상적인 지성소를 찾느라 소곡까지 톺아 스물이었지만 북한산은 이름있는 곳만 챙겨도 스물이 넘는다. 다섯 번에 열두 곳으로 들어가게 일정 잡는다. 큰 눈 내리기 전에 마쳐야 한다. 오늘은 구천 계곡으로 올라가 소귀천 계곡으로 내려온 다음 진달래능선길로 잠시 올라갔다가 백련사 계곡으로 내려올 생각이다.

 

구천 계곡에서 발원한 대동천을 따라 난 길을 걷다가 막다른 골목을 만난다. 지도를 확인하고 되돌아 나와 건너편 시가지 길로 들어서려는데 곧바로 백련사 계곡에 닿는 길을 본다. 경로를 바꾼다. 거꾸로 백련사 계곡으로 올라가 구천 계곡으로 내려오련다. 백련사 계곡은 작지만, 비가 좀 내리면 풍경이 알뜰할 곳이다. 쩌렁대는 독경 소리가 더없는 소음이다. 백련사 계곡이라는 이름이 야속하다 싶은 찰나 나타나는 무덤 하나.



심산 김창숙 선생 유택이다. 독립운동과 해방 후 정치 활동을 통해 나타난 반제국주의 인생은 물론이려니와 말년에 박정희가 예의상 찾아왔을 때 인사받지 않고 돌아누웠다는 일화가 내게 깊은 인상으로 각인돼 있다. 선생 유택이 여기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모름지기 숲이 이 근처를 지나는 내게 들리지 않는 소리로 알려준 덕에 여기 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숲에서 만난 그 많은 무덤 가운데 처음으로 극진하게 예를 갖춘다.

 

심산 선생 유택을 둘러보면서 든 생각은 정성스럽게 격조 높게 기려지고 있지 않다.’. 봉분은 물론 주위 조경이 엉성하고, 심지어 멧돼지가 훼손한 부분은 보수 중이라는 알림 글이 무색하게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다. 차마 그곳에 앵글을 맞출 수 없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면서 또 생각한다. 반제국주의 전사 김창숙을 여기 방치한 자들이 바로 특권층 부역자 박정희를 국립묘지에 모신 자들이며 저들이 현 지배집단이다.

 

옹골진 사죄와 속죄를 걸음마다 심으며 계곡 길을 오른다. 능선에 오르니 소귀천 계곡으로 가는 소로를 막아 놓았다. 무시하고 직진하려는데 마침 어린아이를 포함한 한 가족이 그 앞에서 휴식을 취하는 바람에 우회해 능선 길을 따라 내려온다. 다른 소로가 지도에 그려져 있어서다. 거기도 역시 막아 놓았다. 이번에는 바로 직진한다. 길이 아리잠직하고 고요하다. 좌정하면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가 보이는 지성소도 있으니 좋다.


 

소귀천 계곡 물소리가 청량하다. 골이 깊고 갈래가 많아선지 수량이 실해 보인다. 인기가 많은 길이라 끊임없이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버섯과 인사를 나누는 틈틈이 단풍을 눈에 담는데 내 또래 남자 사람이 내려오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이상하게 올해 단풍은 예쁘지 않네요.” 그 말 듣고 살펴보니 미처 푸른 물을 비우지 못한 잎과 이미 검은 물이 가득한 잎이 한창 붉은 잎에 과연 어지러이 섞여 있다.

 

건강한 활엽수는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조금 늦게 일제히 색을 바꾸어 아름다운 단풍을 빚어낸다고 한다. 이를 두고 번성하기 위해 세운 전략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리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해 단풍이 이런 이치에서 벗어나 있다면 어떤 기후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후 문제 또한 여지없이 제국주의 체제 소산이므로 단풍 상태만 보더라도 숲은 반제국주의 으뜸 전사여야 하지 않나.

 

소귀천 계곡 끝에서 만난 진달래 능선 따라 대동문을 향하지 않고 반대로 구천 계곡을 향한다. 구천 폭포 때문에 구천 계곡인지 알 수 없지만 구천은 높은 하늘이란 뜻인데 이름 대로 계곡이 가파르고 낙차 큰 바윗길로 덮여 있다. 위험해서 긴장하는 시간이 길지만 그만큼 기분은 고조된다. 거의 다 내려와 촉촉하고 비옥한 부엽토를 조금 담는다. 도봉·관악과 합토해 집, 한의원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나무와 풀을 응원하려 함이다.



, 한의원에서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여남은 분() 식물 생명은 거의 아내나 내가 선물로 받았다. 그런 분 식물은 대부분 일 년 안에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내 한의원 분들은 13년째, 집 분들은 7년 이상 살고 있다. 이런 차이가 사람을 아껴 사람이 된 나무라고 생각하며 사는 내게서 연유한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숲을 반제국주의 전쟁 전우라고 생각하는 일은 결코 신비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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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오랫동안 구도 수행을 좇아 온 내게는 단학(丹學), 참선, 방하(放下), 좌망(坐忘), 명상, 기도 같은 개념과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다. 어느 순간 나는 이들이 평범하기에 내 삶과 그 정체성을 이룰 수밖에 없는 일상과 불연속인 무엇이라는 진실과 맞닥뜨린다. 설혹 연속인 무엇이라 하더라도 특별, 더 정확히는 예외로서 무엇이며 아주 찰나적-그렇지 않다면 중독-이며 그래서 배타적인 무엇임을 알아차린다.

 

배타성은 자기 완결이라는 망상과 인과를 주고받으며 끝내는 그 인과마저 벗어난다. 인과를 벗어난 자기 완결은 스스로 거룩함을 부여한다. 그 거룩함을 성불이라 하든, 등선이라 하든, 구원이라 하든, 말짱 다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자기기만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악의가 아님은 물론이다. 인류가 생태 조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빚어낸 문명이 음성 되먹임을 이탈해 자신을 포함한 온 생태계를 비가역적으로 수탈·살해하자 나름 극복한답시고 모색한 대안이다. 파멸 속도를 나름 늦추기는 했지만, 치명적·근원적인 단점을 내장하고 있다.

 

수행과 그 결실 수혜가 지극히 고립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다. 당최 왜 이런 수행이 필요했는지를 망각해서다. 인간이 문명이라는 도구로 온 생명과 공생하는 팡이실이를 파괴하고 소수 지배 집단의 물질 야욕에 몰두해서 일어난 참극을 극복한다면서 똑같은 방법을 쓴 셈이다.

 

나는 그래서 단학, 참선, 방하, 좌망, 명상, 기도로써 경지에 오른 신선, 생불, 요기, 성자 따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온전한 영성과 그 영성을 사건으로 일으키는 신적 존재는 일상 팡이실이를 통해 현현한다. 중뿔난 방법, 심오한 각성, 고결한 지혜는 또 다른 수탈·살해 덫이다.

 

코메디닷컴 보도에 따르면 eBay가 영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행한 설문조사에서 91%가 일상사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 데 동의했으며, 56%는 그 일상사가 명상 같은 방법보다 더 평안할 수 있다고 답했단다. 진리다. 어떤 진리도 평범한 일상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진실을 보탠다: 인류가 30만 년 전에 추방한 숲을 일상으로 복권해야 한다. 숲에 들고 나는 일은 장비과시하며 등반하는 일이 아니다.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일과 꼭 똑같은 일이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등산화도 스틱도 없이 등산하다니, 무섭다. 나는 대답한다: 등산화 신고 스틱 찍으며 출근하다니, 우습다. 내게 일상은 반제국주의 전쟁이며, 인간 너머 나무와 풀이 전우며, 전우애가 평안을 선물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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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와 까치 능선길을 따라 관악산으로 들어가는 경로는 다소 지루하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서 차를 타지 않고 숲길을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큰 산은 관악산뿐이다. 오늘은 그렇게 걸어 아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등산로를 따라 계곡을 거쳐 능선에 도착한다. 천년송 지나자마자 낙성대역으로 내려가는 능선으로 들어선다.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내 지성소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내려가면서 지난번에 걷지 못한 계곡물 발원지를 확인한다. 물론 발원지는 하나가 아니다. 계곡 갈래를 잘 살피면서 내려오다 보니 또 다른 발원지가 나온다. 누군가 그곳을 보존하려고 석축을 쌓고 들머리 물길을 확보해 놓았다. 사람이 자주 지나는 곳이라 훼손될 염려가 커서 그리 한 모양이다. 숲에 나뒹구는 사람 자취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이런 손길은 결 다르게 느껴진다. 완전한 야생 숲이 진리는 아니다.

 

문제는 숲을 행락 장소로 써먹는 사람이다. 내가 지성소 삼은 작은 폭포 위 너럭바위에 남녀 여럿이 앉아 고기 먹고 막걸리 마시며 왁자하다. 도시 오염된 공기와 자동차 소음 속에서 먹고 마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숲이 다만 그런 도구로 여겨지고 마는 일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은 숲에서 태어났다. 숲이 사람에게 팡이실이를 가르쳤다. 나무가 사람 직립 본성을 일깨웠다.

 

나는 이 진실에 감사하며 먹고 떠드는 사람을 등 뒤로 하여 숲에 큰절을 올린다. 정화수와 잔을 올리고 반제국주의 진언, 그러니까 부역 아이콘을 위한 축원을 올린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진다. 흐르는 물소리 가을벌레 소리가 교향악으로 영을 채운다. 숲을 도구 삼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내 말을 숲은 듣는다. 피톤치드로나 기억하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나무의 말을 나는 듣는다.



지성소 계곡에서 나와 서울 둘레길을 따라 낙성대로 향한다. 세 번째 찾은 음식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는다. 맛있게 먹은 다음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 여자 사람이 말을 건넨다. “선생님, 참 단정해 보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참 다정해 보이십니다.” 곱슬해서 제멋대로 뻗친 꽁지머리에 회백색 수염이 덥수룩한데 단정해 보인단다. 단정하면 냉정해 보일 텐데 다정해 보인단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극찬의 표현이다.

 

칭찬에 서투른 나는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엉뚱하게 대답하고 만다. 민망한 나머지 서둘러 백악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가면서 생각해 보니 그 대답은 엉뚱하지 않다. 그 대답은 내가 아니라 숲 자신이 했기에 말이다. 오늘따라 연이어 오는 등산객 때문에 청와대 전망대 아닌 장소를 택해 제의를 진행한다나지막이 소리 내어 백악 생명에게 내 뜻을 전한다. 고요히 귀 아닌 귀를 열어 말 아닌 말을 듣는다.

 

앞으로 이 순례와 제의가 내 삶에서 주축을 이루게 될 듯하다. 그 이름을 관백제라 붙인다. 오늘 관백제 끄트머리는 다소 심란하다. 청와대에서 무슨 떠들썩한 공연이 벌어지고 있다. 들려오는 노래 면면이 거시기하다. 청와대 희화화 일환은 아닌지. 무슨 법산가 하는 자가 내린 처방은 아닌지. 특권층 부역 정권이 하는 패악이 점입가경이니 분노하는 일도, 슬퍼하는 일도, 견뎌내는 일도 여간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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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거실 통창을 통해 관악산 푸르스름한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온다.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다. 이로써 내 하루가 시작된다. 관악산은 여기 사는 동안 내가 깃들 넉넉한 품이다. 시월 초하루 나는 관악산 스무 계곡 중 남은 셋을 걸음으로써 모든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 셋 중에서 지성소로 삼을만한 곳을 찾았다.

 

집에서 살피재를 가로지르는 능선을 타고 걸어 까치산으로 간 다음 서울 둘레길로 접어들어 갈래 진 소곡들을 더듬어 간다. 첫 계곡은 무당골이다. 입구에 등산로 폐쇄를 알리는 안내 표지가 덜렁대고 거의 사용되지 않는 듯한 화장실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성소 찾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나뭇가지로 거미줄을 걷어내며 깊숙이 들어간다. 가까이에 무당 바위가 있어 그저 무당골이라 이름한 모양으로 영검한 기운은 없다. 인적 끊겼으니 고요히 제의를 수행할 호젓한 곳은 있다. 문제는 정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 천명은 정화에 우선순위가 있으니 이 문제를 각별하게 신경 쓴다.

 

돌아 나와 산자락을 타고 다음 계곡으로 향한다. 들어서는 순간 느낌이 좋다. 이름도 없는 소곡이지만 나름 깊어 영롱한 물소리를 낸다.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고요한 편이다. 무엇보다 정갈한 느낌을 준다. 몇 군데 눈길을 끄는 곳 가운데 나름 폭포 형상 풍경이 있어 살펴보니 길가긴 하지만 온욱하다. 그래 여기다.

 


올라온 길을 도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더 올라간다. 정상 직전에서 우회해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다음 계곡으로 넘어가는 자락 길로 접어든다. 샘방골이라는 이름을 지닌 계곡 입구에 도착해 보니 각종 편의 시설과 사방공사로 풍경이 사납다. 진입 자체를 단념한다. 다시 자락길을 걸어 다음 계곡으로 넘어간다. 소박한 소곡인데 나지막이 소리 내어 물이 흐른다. 그 물에 발을 담그고 중년 여자 사람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볍게 인사하고 계곡 이름을 물으니 모른단다. 다음 계곡으로 넘어가는 자락길이 있느냐고 다시 묻자,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킨다. 물론 지도에 없는 오솔길이다.

 

오솔길로 접어들어 조금 걸어가니 밤나무가 나타난다. 방금 떨어진 듯한 토실한 밤알이 있어 당을 보충한다. 저혈당 상태를 살포시 감지해서다. 감사 예를 표하고 더 깊이 숲으로 들어간다. 더 깊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숲을 벗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잠시 뒤에 알아차린다. 갑자기 눈앞에 서울대 관악사 운동장이 나타나서다.

 

관악사 운동장에서 들어가는 계곡이 관악(산속) 지리()’ 계곡이다. 이렇게 해서 관악산 계곡 순례가 끝났다. 이제부터 걸어서 들어갔다가 걸어서 나오는 관악산 지성소를 또 한 축으로 삼아 내 삶과 제의, 인간과 숲을 잇는 일을 계속한다. 북쪽 주산 백악과 남쪽 객산 관악을 반제국주의 전선 공동 주체, 아니 으뜸 주체로 모시고 나, 그러니까 사람 나무가 살아가는 나날을 나는 천명 수행 과정으로 여긴다. 오늘 여기서 이웃해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삶을 어찌 생각할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깜냥대로 공부하고 사유하며 실천해 온 내 삶이 지닌 전체성에 터 잡아 순간을 살아 낼 따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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