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지음, 서제인 옮김, 정희진 해설 / 엘리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네의 일기>의 저자 안네 프랑크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안네 프랑크의 집'이 있다. 이곳에는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오는데, 몇 년 전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 야물커(유대인 남성이 쓰는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고용주에게 질책을 들었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박물관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을 저해한다는 명분이었다." (본문 27-8쪽 요약)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는 정희진 선생님이 추천사를 쓰시고, 정희진 선생님이 진행하는 팟빵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에서 소개하셔서 구입한 책이다. 책의 본문에 나오는 위의 일화를 듣고 책을 안 살 수가 없었다. 다른 장소도 아니고 유대인 박해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유대인 직원에게 유대인 정체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을 준수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약자, 소수자 차별 및 혐오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시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쓴 데어라 혼은 1977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에서 히브리 문학과 이디시어 문학을 공부했고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대인에 관한 소설을 다섯 편 집필했으며, 이 책은 저자가 집필한 첫 번째 논픽션 도서다. 이 책에는 모태 유대교 신자이자 대학에서 유대교와 유대 언어, 유대 문학, 유대 문화 등을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한 학자, 전문가로서 저자가 직접 경험하거나 관찰한 반(反)유대주의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사실 나는 유대교에 대해 잘 모르고, 필립 로스나 니콜 크라우스 같은 유대인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대인의 삶이나 유대인들의 문화, 역사에 대해 접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을 읽은 것이 유대인, 정확히는 유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반(反)유대주의에 대해 가장 자세히, 깊이 있게 배운 최초의 계기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안네 프랑크의 집' 사건 외에도 하얼빈에 남아있는 유대인의 문화유산, 홀로코스트 문학이나 영화의 영웅이 주로 비유대인인 문제, 유대인 서사는 우울하고 불편해서 읽기 싫다는 편견(의 탈을 쓴 혐오), 홀로코스트에 대해 조명하면 할수록 모방 효과에 의해 차별과 혐오가 기승하고 '홀로코스트 정도는 되어야 유대인 혐오. 아니면 유대인 혐오 아님'이라는 식의 백래시 현상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정희진 선생님이 해설에 쓰셨듯이, 이 책은 기독교 중심적인 서양 사회가 어떤 식으로 타 종교를 탄압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남성 중심적인 인류 역사가 어떤 식으로 여성을 타자화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람들이 '죽은 유대인'(만)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죽은 여성'만을 사랑한다. (여기서 '죽은'은 물리적 죽음만이 아니라 정신적 죽음-대상화, 비인간화 등등-을 포함한다). 

저자가 열 살 아들과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 오디오북을 듣는 일화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작품의 빌런인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 점과, 샤일록에 대한 묘사가 당대의 (그리고 현재의) 반유대주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살코기 1파운드'가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아들의 간청으로 25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귀로) 읽었고, 읽으면서 작품 전체가 유대인을 향한 '가스라이팅'이라고 느꼈다. 이런 식의 해석도 흥미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강경 마음공부 - 불안과 두려움을 다스리고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페이융 지음, 허유영 옮김 / 유노북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할 때 읽을 책들을 사 모으는 습관이 있다. 전에는 주로 서양 철학 책을 샀는데 최근에는 동양 철학 책에 눈길이 간다. <금강경 마음공부>는 언젠가 김연수 작가가 <금강경>을 즐겨 읽는다는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나서 구입했다. 저자는 1990년부터 불경을 연구한 연구가이자 다양한 책을 저술한 작가로, 전문성과 대중성 모두 갖춘 듯해 믿음이 갔다. 


금강경은 무엇인가. 금강경은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경전이며, 불교학의 기본이 되는 교법을 담고 있다. 금강경의 '금강'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는 빠르고 맹렬한 번개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단단한 암석인 다이아몬드를 뜻한다. 한 마디로 금강경은 온갖 번뇌가 찾아와도 번개처럼 깨뜨려 날려 버릴 수 있고, 마음이 단단해져서 그 어떤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부자나 유명인이 되는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불교의 지혜는 세상의 모든 도리를 알고, 세상 만사에 집착하지 않으며, 오로지 최고의 정신적인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사유 방식을 바꾸는 책이다. 돈을 많이 버는 방법, 대결에서 승리하는 방법이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 승리에 대한 갈망 자체를 회의하도록 이끈다. 인간을 미혹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게 한다. 


총 10장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은 6장 '모든 집착을 내려놓아라'이다. 부처는 자아의 상, 타인의 상, 중생의 상, 생명이 존재하는 시간의 상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상(相)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데, 나는 선입견이나 편견이라고 이해했다. 부처는 어떤 대상의 개념이나 명칭, 정의 또한 상으로 보았다. 변기를 두고 '샘'으로 명명한 현대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떠오르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 서울편 4 - 한양도성 밖 역사의 체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4권은 크게 강북편과 강남편으로 나뉜다. 강북편의 메인은 성북동이다. 성북동 하면 강북의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도 유명하지만 간송미술관, 수연산방, 길상사 같은 고즈넉한 장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책에는 후자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장소들과 함께 이태준, 김용준, 김환기, 김향안, 김자야, 백석, 조지훈, 최순우, 박태원, 한용운, 김광섭 등 한국의 근대 문화와 예술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강남편은 선정릉과 봉은사를 다루고,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 중랑구에 위치해 있으며 오세창, 유관순, 박인환, 이중섭, 조봉암, 한용운, 문일평, 방정환, 지석영, 김상용 등이 묻힌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모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위인들인데, 그동안 이들의 묘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나 파리의 페르 라셰즈 비슷한 공간이 서울에도 있고, 그곳이 '망우리 공동묘지'라는 옛 이름으로 오랫동안 알았던 곳이라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컷들 -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있는데, <암컷들>의 저자 루시 쿡의 '학계 탈출 사연'이 그와 비슷하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동물학 석사 학위를 받은 저자의 스승은 그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다. 저자는 동물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 학문과 자신의 스승이 동물 암컷의 실상을 무시하고 나아가서는 여성인 자신을 부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불안의 근원은 성(性)이었다. 이 분야에서 여자는 딱 한 가지를 뜻했으니까. 패배자.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다. 착취의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사실에 있다." 대학 시절 우리를 가르쳤던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론의 바이블인 <이기적 유전자>에 쓴 말이다. (17쪽) 


결국 저자는 학계에서 나와 직접 마다가스카르섬과 캘리포니아의 설산, 하와이나 캐나다의 바다 등을 모험하면서 직접 동물들을 조사하고 탐구하고, (낡아빠진 과거의 진화생물학이 아닌) 새로운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만났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기존의 생물학이 과거의 성차별적 신화의 영향을 받아 사실을 왜곡하는 면이 많고, 특히 현실에서 인간 여성이 차별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 암컷을 바라보는 방식도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존 생물학은 성세포의 차이가 성 불평등의 확고한 생물학적 토대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정자를 가진 남성은 작고 양이 많은 정자의 특성에 따라 성적으로 방종한 특성을 지니는 반면, 난자를 가진 여성은 크기가 크고 수가 제한된 난자의 특성에 따라 까다롭고 정숙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정설이자 상식이지만, 저자가 직접 자연 세계를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알게 된 바는 전혀 달랐다. 난자를 가진 동물 암컷의 상당수가 육체적으로 수컷을 능가하고, 성적으로 방종하고, 성격도 능동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동물 암컷들의 놀라운 실상을 소개한다. 두더지 암컷은 남성호르몬이 넘치고 음경이 발달해 수컷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점박이하이에나 암컷도 수컷과 동일한 음경이 있으며, 이들은 동물의 생식기로 성을 구분할 수 있다는 통념의 반증이다. 성별이 평생 고정되어 있다는 것도 편견이다. 올챙이는 모두 XX로 태어나 암컷으로 발전하지만, 연못에서 나와 개구리가 되면 절반이 난소가 정소로 변형되며 XX수컷이 된다. 암컷의 특성과 수컷의 특성이 한 몸에 있는 암수한몸, 교미 전후로 상대를 잡아먹는 팜파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레즈비언' 도마뱀은 수컷의 도움 없이 복제만으로 번식한다. 


다윈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이 남성에게 유리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자연 세계를 관찰한 것은 뿌리 깊은 남성 우월주의 탓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왜곡되고 편향된 가설이 부인하기 힘든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남성과 여성의 생래적인 특질로 인식되면서, 강간, 스토킹 등 여성 대상 범죄를 합리화하고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 차별 및 혐오를 당연시하는 관습 및 문화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생물학 연구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과 편견을 폭로하는 내용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동물 연구 그 자체를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수컷들이 어떤 기발한 행동을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웠는데, 그 중에서도 암컷의 관심을 끌려고 암컷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변장하는 담수어 구피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성욕과 식욕은 연관되어 있구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23-05-25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고싶은 책인데ㅠ 벌써 읽으셨군요! 리뷰 잘 봤습니다ㅎ
 
세계 괴이 사전 : 현대편 세계 괴이 사전
아사자토 이츠키 지음, 현정수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제일 좋아했던 만화 시리즈가 <소년 탐정 김전일>이라서 그런가. 비현실적인 이야기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선호하지만, 오컬트물이나 호러물은 비현실적인데도 좋아하는 편이다. 일본 소설도 요즘 유행하는 SF물보다는 미야베 미유키나 교고쿠 나츠히코, 요코미조 세이시처럼 요괴가 나오거나 심령 현상이 중심에 놓인 작품에 끌리는 편. 이런 취향이다 보니 <세계 괴이 사전 : 현대편>을 보고 참 반가웠다. 


이 책을 집필한 아사자토 이츠키는 1990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괴이요괴 애호가이자 작가다. 현재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괴이, 요괴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 연구하고 이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세계 괴이 사전 : 현대편>은 제목 그대로 20세기 이후 현대에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 각지에서 이야기된 유령이나 요정, 요괴, 괴인, 괴이 등에 관한 정보를 사전 형식으로 담고 있다(일본의 유령, 요괴 등은 <일본 현대 괴이사전>에 나온다). 각 정보는 지역별로 분류되어 있고, 가나다순으로 정렬되어 있다. 


책에서 제일 먼저 본 반가운(?) 이름은 '강시'다. 강시는 중국, 대만 일대에서 전해지는 괴이로, 지역과 설화에 따라 약간의 변형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밤에 시체가 움직이면서 사람의 살이나 피를 먹는다. 강시 하면 두 팔을 앞으로 뻗고 통통 튀어 다니는 모습이 상징적인데, 이는 시체이기 때문에 관절이 경직되어 팔다리를 살아있는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시아 지역 편에서는 주로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지역의 요괴, 귀신을 다루고, 아쉽게도 한국의 요괴, 귀신 이야기는 없다. 


유럽 편에서는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밴시'를 발견해 반가웠다(책에서의 명칭은 밴시가 아니라 '반시(beansi)'다). 반시(밴시)는 아일랜드 및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전해지는 괴이다. 밴시가 나타나면 가족 중 누군가가 죽는다는 뜻이고, 녹색 옷에 잿빛 상의를 걸치고 긴 머리카락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를 지녔으며, 죽은 자를 위해 계속 울기 때문에 눈이 빨간 것이 특징이다.


'프레디 머큐리의 유령'이라는 항목도 있다. 1991년 타계한 영국의 록그룹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유령이 런던 도미니언 극장의 복도나 음악실에 종종 출현한다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런던 도미니언 극장은 퀸의 곡으로 구성된 뮤지컬 <We will rock you>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장기 공연된 장소다. 사람들이 본 것은 정말로 프레디 머큐리의 유령이었을까, 아니면 프레디 머큐리가 그리운 나머지 그의 유령이라도 보고 싶은 팬들의 간절한 소망이 만들어낸 환영이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