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기억해요 - 우리였던 기억으로 써 내려간 남겨진 사랑의 조각들
박형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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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감성이 점점 무뎌짐을 느낀다. 때는 귀가 터져라 들었던 사랑 노래도 이제는 시큰둥하고, 예전 같으면 가슴 설레며 봤을 게 분명한 멜로 영화도 이제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사랑보다 삶이 시급하고, 남보다 내가 더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일까. ​ 


그래서일까. 1994년생. 올해로 스물여섯 살이 되는 박형준의 책 <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기억해요>를 읽는 내내 참 많이 부러웠다. 이제 겨우 한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을 뿐인데, 아직도 여전히 그 시절의 일을 하나씩 하나씩 헤아리며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는 저자의 모습이 딱 그 시절 내 모습 같았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어정쩡한 연애를 하고 어정쩡한 이별을 한 후 여전히 어정쩡하고 서툰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은 저자가 이별 후에 본 열다섯 편의 영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브런치에서 연재한 위클리 매거진 <어쩌면 우리도 영화처럼>과 <우리라는 이름이었던 날들>을 통해 공개된 글이 다수 있다. 저자가 본 영화의 목록은 <뷰티 인사이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녀>,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라이크 크레이지>, <파수꾼>, <한 공주>, <맨체스터 바이 더 씨>, <1987>, <이터널 선샤인>, <컨택트>, <라라랜드>, <더 테이블> 등이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고 쓴 글에서 저자는 '찰나의 사랑조차 될 수 없'는 이별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엠마와 아델은 이별 후 다시 마주 앉는다. 아델은 엠마에게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고, 엠마는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차갑게 답한다. 영화 <봄날은 없다>의 명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한때는 나를 붙잡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였던 입으로 이별을 고하는 상대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그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 어떤 사랑은 변하지만, 어떤 사랑은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워도 다시 생성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커플을 보면 알 수 있다. 남자 주인공 조엘은 헤어진 여자친구가 자신에 관한 기억을 지운 걸 알고 자신도 여자친구에 관한 기억을 지운다. 헤어지기 전 분노와 증오로 가득했던 기억을 지운 덕분일까. 조엘은 우연히 만난 클레멘타인을 보고 다시 설레고 또 한 번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의 제목이 '이터널 선샤인', 즉 영원한 햇살인 건, 심한 먹구름이 잠깐 가려도 따뜻한 햇살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있으며, 영원히 있으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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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교토 (꽃길 에디션)
주아현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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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인스타그래머 주아현(@ah.hyeon)의 교토 여행책 <하루하루 교토>가 봄날 감성을 가득 머금은 꽃길 에디션으로 재출간되었다. <하루하루 교토>는 어릴 적 <두나's 도쿄 놀이>나 <다카페 일기> 같은 책을 읽으며 일본 여행의 꿈을 키운 저자가 교토에서의 한 달 살이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내용을 담고 있다. 골목을 산책하고 카페에 앉아 글을 쓰며 공상을 하는 일은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도 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도시 교토에서 해보니 한 순간 한 순간이 새롭고 특별했다. 






저자는 교토에서의 한 달 살이가 선사한 행복 중 하나는 여행 와서 게으름 피워도 된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전에는 대부분 3박 4일 또는 4박 5일 일정으로 교토를 찾았기에 매일매일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본전 생각에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여행 후 더 피곤하기도 했다.


살아보는 여행은 달랐다. 알람 없이 푹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햇살을 만끽한다. 느긋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서 발길 닿는 대로 걸어다닌다. 며칠 사이에 익숙해진 버스를 타고 오늘은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생각나는 맛집이 있으면 그곳으로 향한다. 기대와는 다른 맛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다음이 있으니 괜찮다. 천천히 움직이고 느긋하게 행동하니 크고작은 행운도 더욱 자주 마주쳤다.






이 책은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저자가 매일 기록한 여행 일기를 담고 있다. 오늘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는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담고 있어 마치 내가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침 저자가 여행한 시기가 봄이라서 봄에 읽으면 더욱 좋은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DSLR을 들고 사진 촬영하러 다니는 걸 즐겼던 저자가 찍은 수준급의 사진도 멋지다. 이 봄, 교토 여행을 처음 계획하는 사람, 교토에서 한 달쯤 살아보고 싶은 사람, 교토든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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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나리오 1 - 의문의 피살자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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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만 해도 북미 관계가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전되었다. 한국에서는 종전 선언은 물론 통일도 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그러나 올해 초 베트남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결렬되면서 북미 관계는 미궁에 빠졌고 동시에 한반도의 평화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대체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일까. 한반도의 평화는 누구의 손에 달린 것일까.


<제3의 시나리오>는 한반도 위기를 소재로 팩트에 기반한 다양한 픽션을 창조해 온 김진명 작가의 2004년작이다. 초판 출간 당시 대중 소설로서는 드물게 국가 간 대치되는 상황을 치밀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CIA 학술정보지에 등재되었고, 2006년에는 한반도 문제에 민감한 일본에 수출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15년 전에 발표된 이 소설이 재출간된 건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역학 관계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서울지검 공안부의 장민하 검사가 중국 베이징의 위안 검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위안은 이정서라는 한국 소설가가 이틀 전 평양발 고려항공으로 베이징에 도착해 그날 밤 피살되었다며 수사를 도와달라고 말한다. 장민하는 이정서의 행적을 알아보다가 그가 국제 정치, 특히 북미 관계에 관한 소설을 주로 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한국을 떠나기 전 대통령안보보좌관실과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정희, 김정일뿐만 아니라 이 사회 각 분야의 중요한 인사들은 이미 도청에 걸려 치명적 약점이 다 노출돼 있다고 보면 돼. 사소한 일에는 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정작 중대한 문제에서는 상대의 의도에 따라 춤을 추는 꼭두각시밖에 못 되는 거야. 그들은 심지어 군사 장비까지 동원해 도청을 하고 있어. (72쪽)


장민하는 진실에 다가갈수록 이정서의 죽음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엄청난 정치적 음모가 숨어 있는 사건임을 알게 된다. 남북한의 핵심 인사들은 물론 지도자조차 '이 나라'로부터 도청을 당하고 있으며 치명적인 약점이 다 노출돼 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한반도 문제가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이 아닌 '이 나라'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통해 하던 장민하는 자신보다 먼저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을 알게 되고 '엄청난 사건'을 벌인다. 과연 이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국제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것이다. 모든 나라는 타국의 평화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이는 세계 패권국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그 세계 패권국이 군수 산업과 석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면 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바람에 북미 관계에 새로운 전개가 펼쳐지기는 했어도 이들의 속내를 의심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소설의 재미는 작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메시지를 한 편의 그럴듯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를 보는 것이다. 15년 전에 발표된 소설인데도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슬프다. 북미 관계가 덜컥거리는 요즘 같은 시기에 읽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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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 - 초경에서 완경까지 내 몸으로 쓰는 일기
프랑스 카르프 외 지음, 김수진 옮김 / 온(도서출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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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살면서 어떠한 몸의 변화를 경험할까. 프랑스 카르프와 카트린 조르주와이오가 공저한 책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는 월경과 피임, 낙태, 결혼, 임신과 출산 그리고 완경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성장하고, 생식 활동을 하고, 질병과 싸우고, 성숙하고 늙어가며 경험하는 몸의 변화를 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이 책은 두 개의 틀로 진행된다. 일기 형식의 첫 번째 틀 안에서는 한 여성의 몸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호르몬으로 인해 몸이 겪게 되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1961년생으로 상정된 주인공이 초경을 하고, 첫 경험을 하고, 낙태를 하고, 피임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등등의 과정이 자세하게 나온다. 두 번째 틀 안에서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음직한 몸에 관한 의문점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자연피임은 가능한가, 월경 중에 수영장에 가도 되는가, 여성은 왜 출산을 무서워하는가 등 다양한 질문이 나온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은 완경(폐경) 전후의 몸의 변화를 다룬다. 출산 전에 임신기를 거치듯 완경 전에는 완경주변기가 온다. 완경주변기에는 체중이 늘기 쉽다. 이는 호르몬 때문이다. 식욕을 조절하는 에스트로겐과 배란기에 칼로리 소비를 돕는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식욕을 잘 조절할 수 없게 되고 쉽게 살이 찌게 된다. 이 책에는 급격한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한 운동법과 식이요법, 명상 방법 등이 나온다.


이 책은 여성의 몸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도 다룬다. '핑크 택스' 문제가 대표적이다. 핑크 택스란 거의 알아차릴 수 없게 여성들에게만 부과되는 세금 또는 비용을 일컫는다. 월경은 여성들이 불가피하게 하는 생리현상인데도 기업은 생리대 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정부는 생리대에 높은 세금을 부과한다. 프랑스 통계에 따르면 여성들이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생리현상을 감당하기 위해 평생 동안 지출하는 비용은 평균 1500 유로(약 192만 4천 원)에 달한다. 이외에도 낙태 금지법과의 전쟁, 산후 우울증, 남성의 바람기, 유방암 등의 문제를 폭넓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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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독썰 - 휩쓸리지 않고 나답게 살고 싶은 당신을 위한 와이낫 스피릿
유현재 지음 / 토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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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50대 이상의 남성이 쓴 책은 읽지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건 목차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좀 삐딱하게 살면 어때? 도대체 뭐가 올바른 건데?", "나대라. 자뻑해라. 실제 잘난 건지도 모르잖아?", "중퇴가 포기는 아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면 와이낫?" 등 젊은 힙합 뮤지션의 입에서 나올 법한 문장이 50대 중년 남성 저자의 손에서 나왔다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 독썰>의 저자 유현재는 금강기획과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7년간 광고를 만들었고, 현재는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력이면 학력, 경력이면 경력, 직업이면 직업,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인생을 꾸려온 저자에게도 고비라고 부를 만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미국 유학을 결정하던 때가 그랬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광고 회사에 들어가 7년간 순조롭게 커리어를 쌓았다. 잘하면 조만간 승진도 할 것 같은 시점에 미국 유학 생각이 간절해졌다. 서른두 살에서 더 늦으면 미국에서 살아볼 기회가 아예 없어질 것 같았다.


미국 유학 이야기를 꺼내자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이 32세, 제일기획 꽉 찬 대리, 카피라이터, 두루두루 만나는 이성 친구들, 하지만 여전히 미혼, 스포츠카, 내 이름으로 된 6천만 원 정도의 전세. 이 모든 게 미국 유학을 결정하는 순간 훅 사라질 거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겁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미국으로 떠났다. 다행히 석,박사를 5년 안에 모두 마쳤고, 6년 차엔 미국에서 교수도 되었다.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와 명문대에서 교수로 일하며 살고 있다.


그때 그렇게도 말렸던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참 잘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국 유학으로 인해 저자는 그토록 사랑했던 광고라는 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또래 친구들처럼 가정을 꾸리지도 못했고, 그 사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형의 죽음도 맞았다. 한국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의 시간도 가질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회사에 다니며 모은 돈도 바닥난 지 오래였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지금 좋아 보이는 것이 나중에 나빠 보일 수도 있고, 지금 나빠 보이는 것이 나중에 좋아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선택이든 포기든 자기 자신의 온전한 생각과 느낌으로 내린 결정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 법과 윤리와 인성에 반하지 않는 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라, 기약 없이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그저 '때우고' 무기력하게 '빈둥빈둥' 사는 행위는 자신에게 범하는 큰 죄임을 명심하라는 조언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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