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의 문학
스즈키 도시오 지음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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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만든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이사 겸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스즈키 도시오의 에세이집이다. 개인적으로 롤모델로 삼고(모시고?) 있는 분이라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흡사 경전을 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책은 크게 다섯 장으로 구성된다. 제1장 '뜨거운 바람이 온 길'에는 그동안의 지브리 작품을 돌아보며 제작 비화나 소회 등을 털어놓은 글이 실려 있다. 저자에 따르면 '프로듀서의 기본은 구경꾼 근성'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로센을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만화 연재를 구상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자는 미야자키에게 영화화를 해야 한다고 매달렸다. 미야자키는 어디까지나 취미 삼아 하는 일이라며 거절했지만 저자는 끈질기게 매달렸고 결국 그 만화는 <바람이 분다>라는 영화로 완성되었다. 재미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감이 오면 창작자에게 떼를 써서라도 결과물을 받아내는 게 프로듀서의 역할이다.


제2장 '인생의 책장'에는 소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저자가 그동안 읽어온 책들의 목록이 나온다. 이어지는 제3장 '즐거운 작가들과의 대화'에는 아사이 료, 나카무라 후미노리, 마타요시 나오키, 마이클 두독 드 비트 등 일본의 인기 작가, 외국 애니메이션 감독과의 대담이 나온다. 저자는 아사이 료와의 대담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아주 오래전에 <스타워즈>의 프로듀서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할리우드는 그때까지 갱 영화가 됐든 역사 영화가 됐든 주제는 'LOVE'였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PHILOSOPHY(철학)'가 없으면 관객은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선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가 아버지였다는 설정은 들어가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죠."


나카무라 후미노리와의 대담 중에는 이런 말을 했다. "요전에 이케자와 나쓰키 씨의 책을 읽었더니, 지금 세계에서 평가를 받는 건 이 정도로 사람의 유입이 격렬해진 시대인데도 이주민이나 난민처럼 다른 나라로 간 사람, 그리고 그곳의 언어를 하지 못해 고생하면서 언어를 익힌 사람, 그런 사람이 현지의 언어로 쓴 게 재미있다는 ... 그래서 세계문학전집이 옛날 같은 기준으로는 성립되질 않죠." 이에 대해 나카무라는 "이젠 국가의 개성이라기보다는 본인의 개성으로 쓰지 않으면 매몰되고 말아요."라고 답하며 동조했는데(밀란 쿤데라라든가... 줌파 라히리라든가... 약간 다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든가...) 깊이 공감한다.


제4장 '지금 여기를 거듭해서'에는 <바람이 분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 등을 제작하던 시기의 일들이 일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5장 '추천사'에는 제목 그대로 저자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추천사가 갈무리되어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모저모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생각,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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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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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에 이어 읽은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로, 1992년 유학을 떠난 허수경 시인이 20년 넘게 생활한 독일의 도시 뮌스터를 무대로 그곳의 역사와 문화, 그곳에서 활동한 시인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뮌스터는 독일 북서쪽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중소규모의 도시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열 시간 거리를 날아오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기차로 약 세 시간 반에서 네 시간을 달리면 뮌스터에 도착한다. 인구는 30만 명 정도인데, 그 가운데 학생의 숫자만 5만 명이 넘는다. 전통적으로 대학과 행정을 담당하는 건물이 많고, 교회와 성당의 수는 백여 개를 넘는다. 라인강이 가로질러서 도시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고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여유로운 편이다. 뮌스터 출신의 시인이 많은 것은 어느 때나 하염없이 흐르는 저 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하이네, 트라클, 벤, 작스, 괴테, 릴케 같은 이름난 시인이나 그베르다, 아이징어, 호프만슈탈, 드로스테휠스호프 같은 덜 유명한 시인이나 사려 깊고 꼼꼼하게 소개한다. 그 유명한 <로렐라이>를 쓴 독일의 대표 시인 하이네는 생전에 당대의 시인이었던 아우구스트 그라프 폰 플라텐과 크게 다퉜다. 하이네는 플라텐이 동성애자라고 비난했고, 플라텐은 하이네가 유대인이라고 조롱했다. 19세기 중반에 살았던 두 사람은 불과 몇십 년 후에 자신들의 조국에서 동성애자와 유대인을 모두 혐오하는 정치 세력이 나타나 처참한 살상을 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 책에는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와 마찬가지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저자의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세계의 노예'가 되기 싫어서 자의로 택한 이방인의 삶이지만, 아직 입에 선 외국어와 익숙지 않은 외국 음식,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의 사람들 때문에 지치고 힘든 날도 많았다. 그때마다 저자는 낯선 거리를 정신이 들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면 낯설기만 한 이 도시도 누군가는 사랑을 하다가 헤어지고 그럼에도 사랑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흐뭇해졌다. 현지인이나 나나 결국 여기에 계속 있는 존재가 아니라, 얼마든 살다가 언젠가 떠날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저자는 이따금 뮌스터의 중심가를 둥글게 품은 푸른 구역의 구석에 있는 칠기 박물관에 들르기도 했다. 옛 부유한 이의 빌라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이곳에는 한국, 중국, 일본과 이슬람 세계의 칠공예품이 진열되어 있다. 저자는 우울할 때마다 이곳에 와 한국에서 온 칠공예품과 나전칠기 등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 조개들도 내 고향의 해안에서 혹은 바다에서 자랐으리'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고향에 다녀온 듯이 마음이 든든해졌다. ​ 이 외에도 낯선 독일의 도시 뮌스터를 정겹게 느끼게 해주는 잔잔하고 단단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독일어를 열심히 배우고 돈도 열심히 모아서, 언젠가 저자의 행선지를 따라 뮌스터를 여행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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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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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완독한 일본 만화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히라가 키튼 타이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학자로 설정되어 있다. 현재는 보험조사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장래에는 고고학자가 되는 것이 꿈인 그는 틈만 나면 각국의 발굴지를 찾아가 유물을 채취하거나 유적을 탐사하며 시간을 보낸다.


허수경 시인이 1992년 돌연 독일 유학을 떠난 것도 뮌스터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의 편안하고 익숙한 삶을 버리고 독일로 떠난 시인은 기숙사 아니면 셋방을 전전하며 공부에 몰두했다. 여름방학이면 오리엔트로 발굴을 하러 가기도 했다. 그곳에는 기숙사나 셋방만 한 숙소조차 없어서 여러 명이 임시로 지은 텐트에서 생활해야 했다. 서울의 빽빽한 빌딩 숲을 벗어나면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이다. 대체 시인은 거기서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는 2003년 2월에 나온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의 개정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쓴 139개의 짧은 산문과 9통의 긴 편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자가 독일 유학 중에 경험한 일들이나 만난 사람들, 고향에 대한 그리움, 발굴을 하면서 겪은 일들에 관한 단상을 담고 있다.


저자는 서양의 고급 식당에 앉아서 소리를 내면서 수프를 들이키는 고향 선배를 보며 창피함을 느낀다. 민박을 하는 독일인에게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쌍둥이칼을 많이 사느냐, 너희 민족은 닌자냐는 말을 들으며 민망해한다. 한국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저자가 얼굴을 붉힌 건 조국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넘쳐서다. 저자는 대학 시절 동기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나누어 마셨던 막걸리의 맛을 그리워한다. 중국 식당이나 베트남 쌀국숫집에서 먹는 음식으로는 한국 음식에 대한 갈증을 대신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진주 유등축제, 시골 오일장, 강변, 골목길, 주점 등등 한국에만 있는 풍경, 한국에만 있는 특별한 정서를 낯선 이국에선 찾을 길이 없다.


저자가 낯선 이국땅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발굴지를 탐사하며 찾고 싶었던 건 새롭고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익숙하고 보편적인 무언가이지 않았을까 싶다.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는 땅에도 한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다는 걸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수천 년에 죽고 사라진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살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과거와 현재가 다른 것 같지만 다르지 않듯이, 여기와 저기가 다른 것 같지만 다르지 않고, 너와 내가 다른 것 같지만 다르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부디 하늘에선 편히 쉬고,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더는 외롭지 않으시기를. 너무 일찍 세상을 등진 이의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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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 소심한 글쟁이의 세상탐구생활
김소민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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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 10년 차. 갑자기 견딜 수 없는 허리 통증이 찾아온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의 저자 김소민은 휴직을 신청하고 산티아고로 떠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생각난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의 답장을 받고 독일로 가서 그와 결혼했다. 그를 따라 부탄에도 갔다. 허리가 아파서 휴직을 신청했을 때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다.


이 책은 저자가 9년에 걸쳐 스페인, 독일, 부탄 등지에서 타향살이를 하며 만나고, 생활하고,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독일에서 저자는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베르트는 아침마다 계란 하나 삶아먹는 데 갖은 수고를 들인다. 계란 삶기 전용 기계에 계란을 삶아서 계란 전용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그냥 숟가락으로 파먹으면 맛이 다르단다. 홍보 회사에서 일하는 에른스트는 알몸주의자이다. 왜 벗고 싶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봐. 왜 어떤 부분은 가리게 됐는지. 성기나 무릎이나 다 몸인데 말이야. 교육이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내 머릿속에 들어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어." 일견 수긍이 가는 대답이다.


한국에선 대학 나오고 일간지(한겨레신문) 기자로도 활동한 엘리트이지만 독일에선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었다. 문방구에서 바코드로 물건 찍으며 숫자만 찍으면 되는 단순한 아르바이트도 독일어를 못한다는 사실이 들통나자마자 바로 잘렸다. 고생 끝에 한국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정식으로 일하기 전 테스트 기간에는 얼마를 주는지, 최저임금 이상을 줄 건지 물어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일을 잘하면 당당하게 물어볼 수 있을 텐데, 일을 잘 못하니 - 캘리포니아롤은 왜 내가 썰 때만 아보카도가 튀어나올까 - 채용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인종 차별도 수두룩하게 겪었다. 분식점에서 김밥을 말고 있는데 5,60대로 보이는 독일인이 들어와 "한국에도 겨울이 있어요?"라고 물었다. 이건 모를 수 있다고 쳐도, "한국도 프랑스 식민지였어요?"라고 물어볼 때에는 속이 부글거렸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니하오마"라고 인사하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무지라면 몰라도 혐오라면 심각한 문제다. 극우정당 지지율이 10퍼센트를 넘는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하면 낫지만, 독일도 최근에는 극우세력이 점점 득세하는 추세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다양하게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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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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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나보다 먼저 인생을 경험하고 담담하게 알려주는 마스다 미리.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큰사건을 겪어내며 경험한 일들은 유용했고, 생각한 것들은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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